56화. 모래군주
“이제부터 모래군주 사냥 작전, 디저트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멕스코 대령은 말과 함께 사병 식당 안을 크게 둘러봤다.
‘숨이 막히는군.’
평소에는 사병으로만 가득 찼을 식당, 멕스코 대령 입장에서는 귀엽거나 사납거나 성깔 더러운 강아지들만이 보이던 그 공간이 오늘은 멕스코 대령의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예상외였다.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유적 사냥꾼들이 백전노장의 베테랑이며, 각국을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실력자란 사실은 질리도록 들었지만, 그래도 대령이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멕스코 대령은 그들에게 기세에서 밀리리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여기 모인 마법사들 그리고 총꾼들은 보통 이들이 아니었다.
특히 가장 앞줄에 앉은 자들, 멕스코 대령의 눈동자의 동공 크기마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지척에 있는 자들이 내뿜는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범 앞의 하룻강아지가 된 느낌.
‘이게 세계 최고 수준의 마법사들인가?’
물론 그들은 보통 이들이 아니었다. 이번 모래군주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그야말로 키라고 할 수 있는 6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었다. 그것도 그냥 6서클이란 감투만을 뒤집어 쓴 채 지나온 마법사가 아니라, 6서클에 어울리는 유적 사냥을 거듭해온 실력자들이었다. 말도 안 되는 괴물들과 정면에서 맞서 싸운 자들이었다.
멕스코 대령이 기세에서 밀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크흠.’
칼칼해진 목을 헛기침으로 가볍게 푼 멕스코 대령이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 디저트 작전의 핵심은 유인 그리고 생존입니다.”
디저트 작전.
언어유희다. 사막을 뜻하는 데저트란 영문과 간식을 뜻하는 디저트의 영문이 비슷한 걸 이용한 언어유희. 모래군주라는 괴물을 가뿐하게 마무리하자는 의미가 담기기도 했다. 보통 작전명을 내릴 때는 긍정적인 표현을 쓰는 법이니까.
“사하라 사막을 포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이번 작전은 모래군주를 찾아 유인을 해서, 놈을 처리해야 합니다. 물론 사하라 사막이란 혹독한 환경 그리고 몬스터 소굴이나 다름없게 된 그런 공간에서 3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유인 작전을 펼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의 키워드는 생존이 됐습니다.”
멕스코 대령이 대기 중인 병사 한 명에게 손짓을 하자, 병사가 마련된 단상 위로 올라왔다.
병사는 온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 슈트와 듬직한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 슈트는 맹독카멜레온의 가죽을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작열하는 사막 속에서도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헬멧에는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통신 기능은 물론 헬멧의 스크린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위치 및 좌표를 확인할 수 있고, 지형지물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인식을 도와줍니다. 거리감을 잃기 쉬운 사막에서 그 어느 것보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사막에서의 활동을 도와줄 뿐입니다. 또한 사하라 사막은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 지 8년, 이제 올해가 지나면 9년째에 접어듭니다. 그런 만큼 사하라 사막 어디에도 거점으로 삼을 만한 지역은 없습니다. 임시 거점을 만들어도 언제 습격을 당할지 모릅니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을 대피소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던 이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문? 무슨 소리지?’
‘설마?’
멕스코 대령이 다시 대기 중인 부하 병사에게 손짓을 하자, 부하 병사들이 수레를 끌고 문 하나를 가지고 왔다. 2미터 남짓한 높이에 1미터 남짓한 폭을 가진 나무 재질의 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문 위에 달린 모래시계가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끓었다.
모래시계문이었다.
“거듭된 조사 그리고 실험을 통해 몬스터가 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사하라 사막이란 거대한 땅을 탐색하는 일에서 안전한 대피소를 마련하는 건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과제였다. 이 부분을 이번 디저트 작전 기획팀은 생각의 전환을 통해 해결했다.
“9등급 문 455개, 8등급 문 387개를 확보했습니다. 이 문 중 일부는 이미 사하라 사막 곳곳에 설치되었고, 나머지 문들은 상황에 따라 사하라 사막에 무인비행기를 이용해 떨어뜨릴 겁니다.”
모래시계문을 대피소로 이용한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물론 이 방법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모래시계문에 들어가는 순간 유적 클로즈를 하기 전까지는 작전 수행을 할 수 없다. 또한 모래시계문을 열고 나왔는데, 그곳이 안전한 장소라는 보장도 없고, 유적 안에서 사망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나름 최선의 방법이다.
좌중의 분위기가 멕스코 대령에게 집중됐고, 멕스코 대령은 그 분위기를 이어갔다.
생존 수칙, 생존을 위해 필요한 도구, 유인 방법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설명이 끝났을 때.
“다음은 모래군주에 대한 설명입니다.”
진짜 중요한 설명이 시작됐다.
‘드디어.’
‘3등급 몬스터라…… 최초로 현실에 등장한 놈이겠지?’
모래군주.
놈에 대한 정보는 세상에 공개된 게 많지 않았다. 일단 정보 자체가 극비로 취급됐다. 아무나 모래군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순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극비보다는 정보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가위손 버튼이 전투 그리고 수색을 포기한 이후 모래군주에 대한 감시와 정보 수집은 무인기 그리고 위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제 몸뚱이를 모래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녀석을 하늘 위의 눈으로만 파악하는 건 솔직히 소용없는 짓이었다.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관찰하는 꼴과 다를 게 없었다.
때문에 이번 작전을 앞두고 유엔은 각국의 도움을 받아, 모래군주에 대한 정보 수집에 나섰다.
“지금 제가 말할 정보는 98명의 목숨을 희생하여 얻은 정보입니다. 그런 만큼 정보의 가치를 이해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쉽지 않았다.
마법사를 포함해 98명의 사망자가 생겼고, 부상자를 합치면 200명이 넘어가는 이들이 정보를 위해 희생했다.
적지 않은 희생이었다.
덕분에 적지 않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모래군주의 특징은 네 가지입니다.”
멕스코 대령이 말하는 특징 네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특징 하나, 환수 타입이다.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으며, 마법에 대한 저항력도 강해, 6서클 이상의 마법만이 통한다. 심지어 6서클 마법으로도 유효한 결과를 얻어내기 힘들다.
특징 둘, 모래를 이용해 모래 괴물 군단을 만들 수 있다. 모래 군단은 개체에 따라 9등급에서 7등급 수준의 몬스터와 비슷한 강함을 가진다. 현재까지 파악된 최대 숫자는 1121마리다. 모래 군단의 무서운 점은 사막에서 움직일 때 은밀함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낌새도 내지 않는다. 지척까지 접근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특징 셋, 모래군주는 모래 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 최대 높이 10미터, 길이 200미터 정도의 거대한 해일을 일으킨다. 표적의 발을 묶을 때 혹은 도망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사용한다. 단, 연속해서 모래 해일을 사용했던 기록이나 흔적은 없다.
마지막 특징 넷.
“모래군주는 모래를 이용해 자신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이 사례는 7등급 몬스터, 불꽃 꼬리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최근 조사 결과 녀석에게 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핵의 크기는 이 정도입니다.”
멕스코 대령이 말과 함께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좌중에게 보여줬다.
“손바닥 크기로 색깔은 사막의 모래와 비슷한 황금빛 색을 띠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자료 사진은 회의가 끝나면 모든 분들에게 영상 자료와 함께 제공될 겁니다.”
그 말에 좌중이 눈빛을 빛냈다.
이제까지 들은 이야기들 중에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사하라 사막이란 땅이 얼마나 지옥 같은 땅이고,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인지, 그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답이 나왔다. 바늘구멍이나 작은 틈, 그 틈 속에 숨은 답이지만, 그 사실에 이곳에 모인 유적 사냥꾼들은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유적 사냥꾼이란 언제나 작은 틈 속의 답을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이 틈, 모래군주의 약점이라 판단되는 핵의 존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소식이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멕스코 대령은 바뀐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배기들이군.’
* * *
디저트 작전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작전 내용에 대한 회의 그리고 토론까지.
이 작업은 하루아침에 끝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세부적인 조율은 케네디함이 아프리카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보름이란 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때문에 6시간 동안의 회의를 마치고 휴식이 주어졌다. 식당이었기에, 식사를 원하는 자들은 곧바로 마련된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가장 반색한 건 채유리였다. 그녀는 뷔페식인 항공모함의 식사 메뉴에 만족했다. 반대로 가장 기분이 나빠진 건 김수애였다. 그녀는 본인이 가지고 온 물만 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포식자 팀이 식사를 시작할 무렵, 익숙한 얼굴이 포식자 팀의 식사 자리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 선생님께 인사드립니다.”
호령, 그녀가 이강우를 보며 절도 넘치는 자세로 인사를 했다.
이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반갑습니다.”
그런 이강우의 눈은 호령이 들고 있는 접시를 채운 소소한 수준의 음식으로 향했다. 채유리에 버금가는 대식가인 그녀에게 결코 어울리는 양이 아니었다.
즉, 그건 그녀가 지금 절제를 한다는 의미.
군인이 먹을 것 앞에서 절제를 하는 경우는 대개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이 사람이…….’
높으신 분이 옆에 있을 경우.
이강우의 시선이 호령의 뒤편에서 접시를 들고 있는 단아한 느낌의 여성으로 향했다. 느낌은 40대 초반쯤으로 보이지만, 외모는 30대 중반으로 보일 만큼 젊은 여성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게 잘 어울렸다.
‘챠이 수.’
겉으로만 보면 동안 외모를 가진 여성.
그녀의 정체는 칠성문을 대표하는 7서클 마법사이자, 모든 마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마법사, 대마도사 챠이 수였다.
세계를 대표하는 마법사 중 한 명.
그런 그녀가 호령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강우가 그런 그녀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령, 이분이 칠성문을 대표하는 마법사, 챠이 수님이 맞습니까?”
이강우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챠이 수가 먼저 스스로를 이강우에게 소개할 리가 없으니, 이강우가 먼저 나선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지위에 이강우가 맞장구를 쳐준 셈이다.
호령이 절도 넘치는 자세로 대답했다.
“예. 스승님, 이분이 이강우 선생님이십니다.”
그제야 챠이 수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어색한 느낌이 나는 걸 보면, 평소에 한국어를 자주 쓰기보다는 이 자리를 위해 특별히 인사말 정도는 배워온 듯한 느낌이었다. 예상대로 호령이 곧바로 통역 마법을 시전했다.
“당신이 포식자 이강우인가요?”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축하해요.”
축하한다?
아마도 3등급 유적 클로즈를 말하는 것일 터. 이강우가 가볍게 묵례로 대답했다.
그런 이강우의 모습을 보던 챠이 수가 방긋 웃었다.
“리볼버가 자기 후계자로 삼을 만하네요. 아니, 이미 리볼버를 대신할 만한 실력자가 됐군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리볼버에게는 안 된 일이에요. 그 누구보다 당신의 성장을 기대했을 텐데.”
그 말에 이강우가 실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니 이강우가 7서클이 됐다는 소식에 가장 기뻐할 건 그 누구도 아닌 리볼버일 것이다. 드디어 블랙 스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까.
그런데 그런 소식을 듣기도 전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다니?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내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작전에서 리볼버가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 됐어요.”
“남은 이들이 열심히 힘을 합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겠지요.”
“동감이에요.”
말과 함께 챠이 수가 손을 내밀었고, 이강우가 곧바로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이강우의 손바닥에 무언가가 잡혔다. 이강우는 악수가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손을 움켜쥐었다.
“그럼 인사는 이걸로 하지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요.”
“예,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대화가 끝났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챠이 수가 건네준 건 쪽지였다. 쪽지 안에는 작은 칩이,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의 칩이 같이 있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入, 그 한자 한 글자가 전부였다.
이강우가 손바닥 위의 칩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7서클 마법 아티팩트는 아닐 테고.’
만약 이 칩이 7서클 아티팩트라면, 칠성문은 필시 외계인을 고문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까지 소형화된 마법 아티팩트 제작은 불가능할 테니까.
‘집어넣으라는 소리인데.’
대략적인 상황은 이해가 됐다. 입(入)이라는 건, 이 칩을 어딘가에 집어넣으라는 의미다. 칩이 열쇠 역할을 한다는 의미일 터. 그렇다면 이 칩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거래를 할 때 주려나?’
사실 생각해보면, 칠성문 쪽에서 대뜸 아티팩트 복제품을 줄 리는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거래다. 복제품을 주는 대가로 이강우의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빌리는 거래.
‘본 거래…….’
한 번 더 거래를 해야 한다.
이강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강우 입장에서는 어떻게 됐건,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하나 이상 소유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복제 아티팩트의 마법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적어도 이강우가 확보한 7서클 마법 아티팩트, 섬광(閃光)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력적이니까. 이강우는 7서클 마법 아티팩트 중에서도 섬광의 위력이 손에 꼽을 만한 위력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들렸다. 영어로 나온 방송이었지만, 이강우가 이해하는데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이강우를 포함한 세 명이 호명됐고, 간부 회의실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언질을 받았다. 디저트 작전 설명회가 끝난 후에 앞줄에 앉았던 이들에게 멕스코 대령이 차후 소집이 있을 테니, 대기하라는 말을 전달해 줬다. 아마 어느 때보다 중요한 회의가 진행될 것이다. 이강우는 쪽지 안에 다시 칩을 넣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때 이강우가 머무는 선실의 철문이 쿵쿵! 소리를 냈다.
“대장!”
김재범이었다. 어차피 나가야 하는 이강우가 곧장 문을 열었다. 김재범이 이강우를 보며 말했다.
“대장 부르던데요?”
“그 정도 영어는 저도 이해합니다.”
“아, 다행이네요.”
이강우가 영어 방송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일부러 여기까지 이강우에게 정보를 주러 온 모양이다.
“그보다 왜 갑자기 부르는 걸까요?”
부르는 이유? 뻔하다.
“고양이 목에 칼을 찔러 넣을 쥐들이 서로 물어뜯는 것만큼은 피해야 할 테니까. 그게 이유일 겁니다.”
이강우의 예상은 정확했다.
* * *
간부 회의실에 모인 건 세 명이었다.
한 명은 챠이 수였고, 다른 한 명은 이강우였으며 마지막 한 명은 흑인 사내, 포크바였다.
모두 유명인이었다.
챠이 수는 두말할 것 없는 칠성문을 대표하는 마법사이자, 세계를 대표하는 7서클 마법사다.
이강우도 나름 유명하다. 그가 7서클이란 사실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6서클 마법사에 무엇보다 리볼버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는 사내다. 리볼버로부터 마나 서클 자극 비약 레시피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포그바란 사내 역시 유명한 사내였다.
‘블랙 볼트를 이렇게 보는군.’
블랙 볼트.
세계 3대 길드, 이존을 대표하는 마법사 중 한 명이다. 6서클의 마법사인 그는 전격계 마법을 세계에서 가장 잘 쓰는 마법사로 유명했다.
물론 가장 잘 쓴다는 게,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붙은 건 아니지만, 여러 종류의 마법 중에서도 다루기 가장 힘든 편에 속하는 전격계 마법을 기똥차게 쓰는 걸로 유명하다.
‘제대로 된 조합이군.’
더불어 이 셋은 각각 칠성문, 블랙 스택, 이존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챠이 수와 포그바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이강우 역시 일단 표면상으로는 블랙 스택의 지부인 즈믄나래를 대표하는 마법사이며, 블랙 스택 최강의 마법사 리볼버의 제자다. 블랙 스택을 대표하기에 부족함 없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6서클 이상의 마법사에, 세계 3대 길드를 대표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마법 강국이라 불리는 중국, 프랑스, 한국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자들이다.
분위기가 묘했다.
이강우와 챠이 수는 이미 한 차례 인사도 했고, 무언의 동맹을 맺은 관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서도 차가운 냉기가 흘렀고, 포그바는 적의 어린 눈빛으로 이강우와 챠이 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멕스코 대령이 간부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살벌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앞서서 수백 명의 유적 사냥꾼들 앞에서 디저트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했을 때도 긴장했지만, 지금 긴장감은 그 이상이었다.
멕스코 대령은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같이 들어온 부하 직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부하 직원이 가지고 온 반지에 마력을 주입했다. 통역 마법이 발동했고, 멕스코 대령이 입을 열었다.
“세 분 다 시간이 많지 않으실 테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결국 모래군주를 처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래군주를 잡기 위해서는 7서클 마법이 필요합니다. 현재 7서클 마법 아티팩트는 3개를 확보했고, 그에 맞추어 7서클 마법사 세 명이 이번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7서클 마법사만으로 모래군주를 상대하긴 힘듭니다. 모래군주에게는 모래 군단이 있는 만큼, 7서클 마법사를 보조할 6서클 마법사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간다고 말한 것치고 사족이 꽤 길었다.
그래서일까?
“원하는 바를 말씀하시오.”
포그바가 한마디로 멕스코 대령의 말을 잘랐다. 무례한 짓이었지만, 반대로 그만큼 포그바의 심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멕스코 대령이 터져 나오려던 한숨을 삼킨 뒤 말했다.
“이 자리에서 세 분이 동맹 조약을 맺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개인 자격이 아닌 대표 자격으로.”
이강우의 예상 그대로였다.
‘주머니에 송곳이 너무 많으면, 그건 주머니가 아니라 그냥 걸레가 되는 법이지.’
애초에 유엔의 계획 자체가 경쟁심리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유엔의 재정 상황을 봤을 때, 유엔이 금전적인 보상을 통해 각국을 대표하는 마법사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란 불가능하니까.
결국 유엔은 지금 마법 강국이라 불리는 이들의 자존심에 불을 지피는 데 성공했다.
지옥이 되어버린 땅, 사하라 사막은 세계 최고의 마법 강국을 가리는 무대가 됐다.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군주를 상대로 우수한 결과를 내놓는 이가 최고가 되는 무대.
허울뿐인 영광도 아니다.
사하라 사막에서의 성과는 유엔 내에서 진행 중인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 내에서 발언권으로 이어진다. 강대국들의 경합 속에서 발언권이 가지는 위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3등급 몬스터를 앞에 두고 서로가 잡으려고 경쟁을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어쨌거나 모으는 게 우선이라, 이렇게 모으긴 했지만 어느 때보다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말도 안 되는 일.”
이런 멕스코 대령의 제안에 포그바가 가장 먼저 판을 엎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경쟁을 붙인 건 유엔인데 이제 와서 우리끼리 협력하라?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건가?”
반면 챠이 수와 이강우는 이 순간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둘의 밀월 관계는 확고하다. 단지 여기서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게 더 이익일지, 그걸 계산했다.
계산을 먼저 마친 건 이강우였다.
“조건대로 협력을 해서 모래군주를 잡았을 경우 모래군주 사체에 대한 소유권은 어떻게 됩니까?”
이강우의 질문에 멕스코 대령이 부하에게 손짓을 했고, 부하 한 명이 곧장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영어가 잔뜩 박힌 서류를 보자마자 이강우는 현기증을 느꼈다.
‘어, 이건 좀…….’
다행히도 이강우가 서류 내용을 해석할 필요는 없었다.
“모래군주의 사체는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 팀이 확보한 이후 공동연구를 위한 자료로 사용될 겁니다. 그 부분이 핵심입니다.”
멕스코 대령의 말에 이강우가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180도 뒤집었다. 멕스코 대령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그럼 그냥 내 팀이 알아서 모래군주를 잡겠습니다. 지원은 조금도 필요 없습니다.”
명백한 거절.
멕스코 대령은 억지로 표정을 굳혔다. 여기서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까.
‘이 자…….’
이강우에 대한 프로필은 읽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자였다. 성장 속도는 눈부셨고, 가지고 있는 자격과 커리어가 상당했다.
더불어 멕스코 대령은 이강우가 3서클 마법사일 당시에 클로저 라이센스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기에 위스프의 서열 3위 볼코프와 1대1로 싸워 완승을 거두었다는 내용까지!
아직 세상에 유명세를 떨치진 않았지만, 경력 어디에도 가소로운 것 하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6서클 마법사다. 그런 그가 팀을 이끌고 단독으로 모래군주를 사냥한다?
“정말 지원이 필요 없으십니까?”
“일단 배는 탔으니, 여기서 내릴 순 없고, 아프리카에 도착하면 항구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이후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겠습니다. 물론 우리 팀이 모래군주를 잡으면 우리 팀이 독식할 겁니다.”
국가적 지원 없이 사하라 사막에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다. 이강우의 말은 누가 보더라도 죽고 싶어 안달이 났으니, 제발 좀 도와주세요, 그런 소리다.
그게 아니라면 이강우 그리고 그가 이끄는 팀에게 확실한 카드가 있다는 의미다.
“이 자리는 포커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멕스코 대령이 기세를 올렸다. 이제까지 기세 싸움에서 밀렸지만, 그건 뒤로 밀려도 떨어질 곳이 없으니 그냥 밀려줬던 거다. 지금처럼 뒤로 밀리면 절벽이 되는 곳에서는 밀려서는 안 된다.
“협박과 허세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강우는 그런 멕스코 대령의 모습에 방긋, 미소를 지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포그바가 이강우에게 말을 걸었다.
“미쳤소?”
의외로 격하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말이 나왔다. 협력을 하지 않는 것과 개인 팀으로 사냥을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였으니까.
물론 챠이 수는 달랐다.
‘3등급 모래시계문을 농락한 자, 단신으로 3등급 몬스터를 잡은 자.’
이강우의 숨겨진 경력을 알고 있는 그녀 입장에서는 이강우의 모습이 허세도, 연기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동시에.
‘이제까지 자기를 감추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어둠 속 영웅으로 남지 않겠다, 이건가?’
이강우의 심중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챠이 수가 계산을 끝내는 사이, 이강우는 포그바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미쳤다고 치고, 자살행위를 시도해서 성공했다고 치면 그쪽이 손해 볼 건 없잖습니까?”
“그 무슨…….”
포그바의 말문이 막혔다.
그때 챠이 수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 건 이강우 씨, 당신이 7서클 마법사가 됐다는 의미인가요? 자신감의 의미는 그 때문인가요?”
챠이 수의 말에 멕스코 대령과 포그바의 안색이 바뀌었다. 새로운 7서클 마법사가 등장했다고?
그 대답에 이강우는 미소를 지었다.
‘맞장구를 쳐주는군.’
“그 대답에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어차피 상황이 끝나면 알게 될 문제이니까요.”
이 순간 급해진 건 멕스코 대령이었다.
‘설마 정말 7서클인가?’
이강우의 7서클 개방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더군다나 이미 앞서서 참가한 3명의 7서클 마법사들을 중심으로 모든 작전을 짠 상황에서 이강우라는 새로운 7서클 마법사의 등장은 작전 수정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멕스코 대령이 입을 열었다.
“잠시 상황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모습에 이강우가 쾌재를 불렀다.
‘넘어왔군.’
이걸로 이강우가 모든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제 남은 건 이 상태로 마침표를 찍는 것뿐!
“아프리카에 도착하기 전까지 정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프리카에 내리자마자 우린 단독 행동에 나설 겁니다.”
* * *
“오케이.”
권재용 박사는 수개월 동안의 연구의 결과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 양손을 번쩍 들었다.
이후 연구 결과를 확인한 권재용 박사의 표정에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놀람 그리고 기쁨.
기쁨의 이유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가능성을,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됐다는 점이었다.
놀람의 이유는 그 놀라운 기술을 가진 집단이 그 누구도 아닌 위스프란 점이었다.
‘위스프, 놈들이 대체 어디서 이런 기술을 확보한 거지?’
놀라운 기술이었다.
‘마법사에게서 마력을 추출해 정제하는 기술이라니…… 이건 크로포드도 시도조차 못한 짓인데?’
이강우가 가져다준 캔, 위스프의 조직원이 가지고 있던 캔이 담고 있던 건 다름 아니라 정제된 마력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제된 마력, 마나스톤을 정제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만들어낸 마력을 정제한 결과물이었다.
이제까지 마법사의 마력을 정제하려는 시도는 수도 없이 했지만, 성공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나스톤을 정제하는 게 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작업이라면, 마법사의 마력을 정제하는 건 대기로부터 수소와 산소를 채취한 뒤, 그걸 결합해 물을 만드는 수준의 작업이었다. 적어도 관련자들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놀라운 기술이다.
그런데 그 기술을 그 누구도 아닌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이 가지고 있다?
‘위스프가 모래시계문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순간부터 놈들의 배후에 범상치 않은 자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아무래도 내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이 있는 모양이군.’
이 순간 권재용 박사는 고민했다.
보통 경우라면 정보를 거래한다. 그게 권재용 박사란 인간이다. 극비도 필요에 따르면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는 자.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마법사의 마력을 정제하는 기술, 모래시계문에 마력을 주입해 모래시계문의 개방을 앞당기는 기술…… 여기에 마법사의 마나 서클을 개방시켜주는 기술까지 있으면…….’
위험했으니까.
이 기술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기술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권재용 박사가 고뇌를 시작했다.
* * *
사하라 사막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보통의 비가 아니었다. 비를 머금은 구름부터가 괴상했다. 비구름은 땅으로부터 고작 상공 200미터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크기도 축구장 대여섯 개를 합친 크기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비구름의 색은 보랏빛을 띠고 있었으며, 그 비구름이 토해내는 빗줄기의 색은 검정에 가까운 보랏빛이었다.
뚝뚝, 보랏빛 비구름이 삽시간에 황금빛 사막을 보랏빛 대지로 바꾸어 버렸다.
키이이이!
그러자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사막의 모래 속에 숨어 있던 괴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네였다. 그냥 지네가 아니라, 몸뚱이에 무수히 많은 가시가 돋아난 지네. 몸길이는 무려 10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그마저도 한 마리가 아니었다. 다섯 마리의 지내가 모래더미를 박차고 등장했다.
7등급 몬스터 가시지네.
단단한 갑주를 자랑하며, 가시투성이인 자신의 몸뚱이로 먹잇감을 휘감아 처참하게 죽이는 무시무시한 놈이다.
또한 무리 생활을 한다는 특이사항 때문에 유적에서 가시지네를 만나는 건, 모든 유적 사냥꾼들이 탐탁지 않아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유적이 아니었다.
“독구름 효과가 좋군.”
“독 마법사 열 명이 나서서 제각각 독을 섞었잖아? 효과가 당연히 좋아야지.”
사하라 사막을 찾은 수백 명의 마법사들, 그것도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모두가 4서클 이상, 그리고 평균적으로 오십 번이 넘는 유적 사냥을 마친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 모였다.
그런 그들은 유적에서처럼 몬스터에게 머릿수를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빨리 끝내자고. 저놈들을 위해서 보호운동을 해줄 단체도 없으니까.”
지금처럼 마법사들은 머릿수를 이용해 압도적인 전력으로 몬스터를 처치했다.
독 마법사 열 명이 독구름에 각각의 독을 심었다.
그렇게 내린 비는 사막 안으로 스며들며 숨어있는 몬스터를 자극했다. 정신을 멀게 하고, 감각을 뒤흔들고, 생명을 좀먹는 독 앞에서 몬스터들이 먹잇감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인내심 따위를 발휘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가시지네들처럼, 놈들이 모래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이야기는 끝이었다.
“마법사가 나설까?”
“힘들게 우리가 나설 이유가 뭐있어?”
마법사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기 중이었던 포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준 완료, 대기, 파이어! 이 소리에 맞춰서 120mm 박격포가 포탄을 토해냈다. 열 대의 박격포가 순차적으로 토해내는 포탄이 독에 의해 몸이 둔해진 가시지네의 몸뚱이 위에 떨어졌다.
쿠웅!
포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보랏빛으로 물든 모래 그리고 가시지네의 몸뚱이가 들썩였다. 박격포의 위력은 훌륭했다. 꽤 단단한 가시지네의 갑옷 같은 몸뚱이는 그 안에 든 고운 살점과 함께 터졌다. 사방으로 가시지네의 피륙이 터져 나갔다.
진짜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상처 부위에 다시금 독구름의 독우(毒雨)가 스며들었다.
심지어 산성 성분마저 가진 독은 여리디여린 가시지네의 살점을 녹이기 시작했다. 가시지네들이 집게처럼 생긴 주둥이를 따닥, 따닥! 움직이며 절망 가득한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망원경을 통해 그 장면을 보던 마법사 한 명이 피식, 웃었다.
“내 감성이 메마른 건지, 정신이 나간건지는 모르겠는데 몬스터 새끼들이 저렇게 농락당하는 꼴을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 걸?”
그 말에 모두가 옅게 웃었다.
눈앞에서는 지옥도나 다름없는 광경이 펼쳐졌지만, 그 사실에 울상을 짓거나, 혐오감에 구역질을 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보급받은 과자를 먹으며 눈앞의 광경을 영화 보듯 바라보는 자들마저 있었다.
그러는 사이 등장한 다섯 마리의 가시지네가 거듭된 포격 앞에서 몸부림을 멈췄다.
마법사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바람 마법으로 독구름 이동시키자고!”
“형태 망가뜨리지 말고! 괜히 힘자랑하겠다고 강풍 만들어서 간신히 만든 독구름 쪼개지 말라고!”
그 말과 함께 쉬고 있던 바람 마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뭍은 모래를 툭툭 털었다.
이윽고 바람 마법이 독구름을 천천히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독구름은 투둑, 보랏빛 독우를 떨어뜨렸다. 사하라 사막 위로 보랏빛 카펫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 카펫에 맞추어 유적 사냥꾼들 그리고 군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투명 마법 덕분에 결코 육안으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내의 곁으로 똑같이 투명 마법을 뒤집어쓴 이가 도착했다.
“하마드 대장님, 이대로 녀석들이 움직이길 기다립니까?”
“상관없다. 저 정도는 애들 장난.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놈들이 문으로 들어가는 걸 기다리는 일이다.”
“하지만 놈들의 전력이 너무 강합니다. 우리가 수작을 부려 녀석들의 병력을 줄이거나, 방해를 하는 게…….”
“상관없다. 넓은 땅에서 재주를 부려 봤자, 잠깐일 뿐이다. 우리는 이번에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 그저 수확만 할 뿐이다.”
“예.”
짧은 대화가 끝났고, 곧바로 하마드 대장이란 자가 역으로 질문했다.
“그보다 이강우, 놈은 여전히 항공모함에서 대기 중인가?”
* * *
‘기다리는 것도 지치는군.’
항공모함 갑판 위에서 낚시꾼들이 쓰는 의자를 하나 가져와 앉은 채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이강우는 짧게 혀를 찼다.
‘배짱은 통했는데 말이야.’
이강우의 머릿속으로 이십여 일 전 광경이 떠올랐다.
멕스코 대령이 3대 길드 대표자들에게 합의를 요청하는 그 자리에서 이강우는 배짱을 부렸다.
그냥 무작정 배를 째라고 나선 건 아니었다. 어차피 칼자루는 이강우가 쥐고 있었으니까. 7서클 마법사 없이 모래군주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 핵이라도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은.
그런데 이렇게 천 명이 넘는 실력자들을 모은 상황에서 그냥 작전을 변경해서 핵을 떨어뜨리자고 나선다? 핵무기라는 걸 쓰기 싫어서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벌인 것이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7서클 마법사들이 결판을 지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목숨 걸고 싸운 대가로 얻은 걸 공동 연구 재료로 내놓으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강우만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들 배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유엔 입장에서는 누군가와 협상을 하는 것조차 애매해졌다. 누구 한 명의 손을 들어준다고 상황이 정리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배를 못 째는 것도 문제이긴 하네.’
그때 이후 계속 이 상황이다. 모래군주를 잡기 위한 특공대는 아프리카 땅조차 밟지 못하고 있다.
케네디함에 있는 특공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프리카를 포위하듯 자리 잡은 3대의 항공모함에 탄 모든 7서클 마법사들 그리고 그들을 보조할 마법사들에게 허용되는 이야기였다.
‘이러다 모래군주가 나오면 완전 개판되는 건데.’
분명한 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모래군주를 놓고 경쟁이 시작되면, 좋을 건 없다는 점.
대의를 위해서라면, 결국 모두가 한 발자국씩 물러나 손해를 감수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강우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갑판 위에 있는 이강우를 향해 누군가 전력으로 달려왔다.
“지금 당장 작전지휘실로 와주십시오.”
이강우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군인의 표정을 봤다. 군인의 표정이 심각할 정도로 굳어 있는 걸 보면 보통 일이 아닌 모양. 이강우가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 * *
“모래군주가 등장했습니다.”
멕스코 대령의 말에 세 명은 침음을 흘렸다.
“현재 모래군주는 이집트와 수단의 국경선 부근에서 출몰했습니다. 마법사 3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했고, 33명이 준비된 모래시계문 안으로 긴급 대피했습니다.”
모래군주의 등장.
일단은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또한 등장 위치가 나름 긍정적인 위치이기도 했다. 이집트와 수단은 사하라 사막의 동부 지역이다.
“모래군주의 이동 속도는 현재 시속 70킬로미터에서 110킬로미터 사이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모래군주가 등장한 지역 그리고 등장한 시간, 모래군주의 이동 속도를 가늠하면, 사하라 사막의 서부 지역은 탐사 범위에서 제외해도 될 테니까.
물론 그렇게 해도 사하라 사막은 넓지만, 분명한 건, 생각보다 모래군주의 등장이 빨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에 맞춰서 대응도 빨리 해야 한다.
“이제 합의를 내야 합니다.”
멕스코 대령의 말에 이강우, 챠이 수, 포그바는 입을 다물었다. 중요한 일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이번 일을 위해 투입된 인력, 자금 등은 어마어마하다. 이런 상황에서 거듭 이익을 주장하다가 판이 뒤집히면, 독박을 쓰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쉽게 답이 나왔다면 이제까지 지리멸렬하게 시간을 보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챠이 수가 입을 열었다.
“합의는 보류하도록 합시다.”
보류?
“모래군주 사체가 가지는 가치는 무궁무진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래군주를 잡은 후에 논할 수 있는 문제죠. 지금 당장은 모래군주를 잡는 게 중요하겠죠.”
나름 명쾌한 해답이 등장했다. 일단 잡고 보자! 물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잡고 본 후에도 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분쟁의 여지를 미뤄두는 것뿐이다.
“문제는 전투에서의 합의겠지요.”
이강우가 말을 덧붙였다.
“친한 사이도 아니고, 당장 전투에 돌입해서 협력하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차피 모래군주를 잡으려면 포위망을 형성해야 합니다. 3개 팀이 포위망을 형성해서 각개 전투로 갑시다.”
“협력이 필요한 전투 상황이 분명 올 겁니다. 상대는 3등급 몬스터 아닙니까?”
3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각개 전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포그바나 챠이 수의 생각은 달랐다.
“방해 없는 각개 전투. 좋소. 어차피 누군가는 미끼가 될 테고, 누군가는 사냥꾼이 될 테니까.”
“필요하다면 전장에서 유기적으로 협력을 하면 되겠지요. 제대로 된 유적 사냥꾼이라면 자존심과 목숨을 어디까지 저울질해야 하는지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요.”
멕스코 대령은 이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단결이라는 이름이 전쟁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는 군인 입장에서는 이런 유적 사냥꾼들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유적 사냥꾼들은 원래 이런 족속이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걸 하는 자들이다. 만약 생존을 위해 전폭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면, 누가 제안할 것도 없이 그 즉석에서 협력을 할 것이다. 유적 사냥꾼은 군인이 아니라 사냥꾼이니까.
그때 부하 한 명이 작전 지휘실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왔다.
“모래군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5개 팀, 88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상부 명령은?”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생존이 최우선이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식으로 미끼가 되어야 하고, 유인 작전을 펼쳐야 하고, 탐색 작전을 펼쳐야 하는 전력들이 모래시계문으로 대피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들의 역할을 대신 해줄 사람이 없다.
유인 작전을 펼쳐줄 모든 이들이 모래시계문 너머로 도망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멕스코 대령이 셋을 바라보며 말했다.
“잡을 수 있습니까?”
그 대답에 세 명은 동시에 대답했다.
“물론.”
잡을 수도 없는 사냥감을 잡기 위해 사냥감이 머무는 사냥터에 오는 사냥꾼은 없다.
* * *
모래시계문 하나가 고고하게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런 모래시계문 주변에 발자국들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발자국들이 어수선하게 모래시계문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모래시계문의 형태가 신기루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발자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막 위에 생겨난 발자국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부스러지며 사라졌다.
* * *
일백의 모래 늑대들이 사막을 질주하고 있었다. 사막 위를 질주하는 모래 늑대들은 무시무시한 기세와는 다르게 소름 끼칠 정도의 적막함을 풍기고 있었다. 녀석들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도 남기지 않았다. 모래 위를 미끄러지듯, 요술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일백의 모래 늑대들의 바로 앞에는 일곱 명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헤이스트 마법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날렵하게 만든 일곱 마법사들은 모래 위에 희미한 족적만을 남긴 채 움직이고 있었다.
쫓고 쫓기는 이 두 무리 사이의 거리는 오백여 미터 남짓했다.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놀라운 속도로 질주하는 이들의 속도를 가늠하면, 언제든 좁혀질 수 있는 거리였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면 쫓기는 쪽이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위엄만이 존재하는 괴물 무리들, 아무리 달려도 지친 기색 가득한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무리들에게 쫓긴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린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쫓기는 마법사들의 헬멧 속 표정은 그렇게 다급하거나, 초조해 보이지 않았다.
“아주 발정 난 개처럼 쫓아오는군.”
그들의 분위기는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았다.
“잘 쫓아오니, 고맙지 뭐.”
이 모든 게 그들이 의도한 바였으니까.
“헤이스트 마법 지속 시간이 얼마 남았지?”
“455초.”
“목표 지점까지는?”
“1.2킬로미터 남았습니다.”
미끼.
그게 그들의 역할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최고의 대어를 낚는데 성공했다.
“좋아. 그럼 거리 유지하고, 슬슬 막판 스퍼트 올리자고. 모두들 스크린에 모래시계문 위치 보이지?”
“예!”
우렁찬 대답이 모두의 헬멧 안을 가득 채웠다. 대답을 내뱉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넘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한 그들은 이제 좀 더 가면 맞이하게 될 모래시계문 너머로 몸을 던질 것이고, 그 후에 모래시계문 너머의 유적으로 먼저 넘어간 이들이 준비해 놓은 맥주와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긴 후에 유적 사냥을 마치고 나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에 대한 포상을 받으면 될 테니까.
그렇게 달리던 그들 앞에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모래시계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누가 들어간 듯, 문이 활짝 열린 2개의 모래시계문은 시커먼 어둠을 품고 있었다. 그 모래시계문을 바라보는 일곱 마법사들의 눈에는 그 어둠이 푹신한 이부자리처럼 보였다.
“팀을 나눈다.”
달리던 일곱이 두 개로 나뉘었고, 일렬로 자리를 잡았다.
“일주일 뒤에 보자, 제군들!”
그리고는 모두가 모래시계문의 어둠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의 몸은 마법처럼 모래시계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렇게 일곱 명의 마법사가 모래시계문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 그들을 쫓던 일백의 늑대들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모래로 만들어진 늑대가 모래 위에 녹아내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 2개의 모래시계문이 고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소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2개의 모래시계문을 중심으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네 개의 팀이, 숨죽인 채, 정체를 감춘 채, 모래 속에 숨어 있던 그들이 하나둘씩 모래 위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 * *
유엔은 7서클 마법 아티팩트가 확보되는 순간부터 모래군주를 잡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당연히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확보하고, 그 7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7서클 마법사를 보유한 국가, 길드, 조직을 중심으로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3개 팀이 조직됐다.
첫 번째 팀은 챠이 수가 이끄는 칠성문 팀이었다. 대마도사 챠이 수를 중심으로 6서클 마법사 4명과 5서클 마법사 9명, 4서클 마법사 9명, 총 23명으로 구성됐다.
두 번째 팀은 가위손 버튼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존 팀이었다. 6서클 마법사 6명, 5서클 마법사 10명, 4서클 마법사 10명, 총 28명의 마법사로 구성된 팀이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실력자들이 모인 유럽 올스타팀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세 번째 팀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마법사, 스톰 벤 사하르를 중심으로 하는 블랙 스택 팀이었다. 리볼버의 부재 속에서 블랙 스택은 자신들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스라엘 대표 길드, 모사르드 길드와 손을 잡았다. 동시에 블랙 스택은 각국에 세운 지부 소속 실력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6서클 마법사 10명, 5서클 마법사 23명, 총 34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모두가 무시무시한 전력을 가진 팀이었고, 모든 팀이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조합 속에서 이강우가 이끄는 포식자 팀의 역할은 구멍을 메우는 역할밖에 없었다.
‘배짱을 그렇게 부렸는데 결국 땜빵 취급이군.’
물론 이강우는 이런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서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일단 이강우는 여기서 자신이 나서서 직접 모래군주를 처치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면 나서겠지만, 그가 조연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충분히 마무리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 부디 내가 조연으로 남기를 바란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강우는 자신이 나서는 상황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강우가 나서지 않는다는 건 상황이 그만큼 깔끔하게, 무리 없이 끝난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다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소망이지만.’
하지만 이강우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3등급 몬스터, 돌원숭이를 상대해본 이강우다. 3등급 몬스터의 강함이 상상 이상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단순히 7서클 마법을 확보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또한 모래군주와의 전투 작전 역시 무언가 회심의 작전, 꼼수 따위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종류의 작전이 아니었다.
모래 군단은 활동 범위는 모래군주를 중심으로 반경 3킬로미터에서 5킬로미터 사이다. 결코 적은 범위가 아니다. 여의도를 서너 개 정도 합친 크기다. 이런 넓은 영역 내에서 성인 남자의 손바닥 크기인 모래군주의 핵만을 확실하게 노려서 타격한다?
불가능하다.
즉, 무언가 틈을 찾아서, 그 틈을 노리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상대를 쉴 새 없이 두드리는 거다. 상대가 가드를 올리면, 그 가드 위를 무참하게 두드려서 상대가 알아서 가드를 내리고, 틈을 보이도록 만드는 거다.
말 그대로 정면승부를 펼치는 거다.
3개 팀이 평균적으로 30명이 넘는 마법사를 확보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모래군주가 이끄는 모래 군단을 뭉개뜨릴 만한 강력한 화력을 준비한 것이다. 모래 군단은 무시무시하지만 각각의 개체는 결국 강해봐야 7등급 몬스터 수준이다. 100명 가까운 마법사들, 그것도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 내뿜는 무시무시한 화력 앞에서는 숫자 자체가 무의미하다.
모래 군단이 무너지면, 모래군주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도망치거나 혹은 스스로 직접 싸우거나.
도망칠 경우 끝까지 추격을 해야 하고, 직접 싸운다면 정면승부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다.
무엇이 됐건 결국 모래군주도 정면승부를 치를 수밖에 없고, 그럼 결국 실력 대 실력, 강한 놈이 살아남는 전투가 치러질 수밖에 없다. 요행수, 꼼수, 도박수는 통하지 않고, 강한 패를 가진 놈이 승리하는 판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판에 낄 수 있는 건 7서클 마법사들밖에 없다.
가위손, 대마도사, 스톰.
‘결국 이제부터 시작되는 전쟁은 내 몫이겠지.’
그 세 명의 명성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불사황제의 권능이 없다.
때문에 이강우는 마법사들이 등장하는 순간 모래 속으로 자신의 몸을 파묻었다.
그가 나서는 건, 모래군주가 본체를 드러냈을 때, 도망치지 못하고 정면승부를 택했을 때, 그때가 될 테니까.
* * *
전투의 시작을 알린 건, 구름이었다. 비도, 벼락도 아닌 불을 품은 구름이 불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황금빛 사막 위로 불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모래군주를 향한 도발이었다.
그 도발 앞에 모래군주는 군주답게 자신의 군단을 등장시켰다. 사막 위의 모래들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다양한 종류의 괴수들이 사막 위에 등장했다.
괴수들이 등장했을 때 마법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자신들에게 덤벼 달라는 듯이, 꼬랑지도 아니고 정면을 보여주는 마법사들의 등장에 괴수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들을 탄생시킨 군주의 위엄에 도전하는 무리들을 심판하기 위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질주는 무참하게 짓밟혔다.
5미터의 신장을 자랑하던 모래 거인은 멀리서 날아온 라이트닝 스피어에 뚫리며 무너졌다.
놀라운 질주 능력을 보여줬던 모래 늑대들은 칼처럼 날카로운 칼바람 앞에 난도질을 당하며 모래로 돌아갔다.
단단하게 굳은 모래 몸뚱이를 자랑하던 무시무시한 덩치의 모래 골렘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불화살 앞에서 치즈처럼 구멍투성이가 된 채 모래 위에 무릎을 꿇었다.
사방에서 정확하게 날아오는 강력한 마법들은 백 마리의 모래 괴수들을 눈 깜빡할 사이에 처치했다.
하지만 이 사실에 눈 한 번 깜빡할 모래군주가 아니었다. 사막 속 어딘가에 본체를 숨기고 있는 녀석은 단숨에 전력을 발휘했다.
일백이 통하지 않다는 걸 아는 순간, 녀석은 그 열 배인 일천의 모래 군단을 소환했다. 가지각색의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일천의 병력이 세 방향에 위치한 적을 향해 돌진했다. 각각 삼백이 넘는 괴물들이 돌진했다.
또한 이번 돌진은 영리했다. 덩치가 크고, 단단한 녀석이 방패 역할을 하듯 앞에 섰다. 동시에 몇몇 놈들은 모래 속에 파고들어 모습을 감춘 채 접근했다. 여기에 상대방에 비해 10배가 넘는 머릿수를 이용한 인해전술까지!
하지만 마법사들 역시 이제까지, 이제는 2023년, 모래시계문 등장 이후 9년째에 접어드는 시간 동안 아무런 발전도 변화도, 진화도 이루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진 않았다.
특히 3등급 유적을 정복하기 위해 모든 국가가 6서클 마법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6서클 마법을 이용해 3등급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융합 마법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전력(電力)을 준비하라!”
블랙 볼트 포그바,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5서클과 4서클 마법사들이 전격계 마법을 사용했다.
열다섯 명의 마법사들이 전력으로 구성된 가지각색의 무기를 만들어냈다. 창을 시작으로, 화살, 도검…… 포그바는 그렇게 만들어진 무기들을 자신의 6서클 전격계 마법 체인 라이트닝 마법을 통해 하나로 이었다. 이어진 것들은 이내 하나가 되었다.
파직, 파지직!
무시무시한 번개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포그바는 그 번개 덩어리를 반죽하듯 길쭉하게 뽑았다. 어설프지만 뱀의 형태를 만들었다. 몸길이가 무려 20미터에 이르는 번개로 된 뱀이 모습을 드러냈고, 번개뱀이 번개 같은 속도로 접근하는 삼백의 모래 군단을 향해 움직였다.
번개뱀의 등장에 모래 군단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앞장서던 몇몇 모래 괴물들이 접근하는 번개뱀을 상대하려는 듯 번개뱀을 향해 몸을 던졌다. 번개뱀은 그런 그들을 그냥 몸으로 밀었다.
파지직!
모래와 번개가 닿자 강렬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터졌다. 그 소리와 함께 모래 괴물들은 새카맣게 타 버렸다. 그게 전부였다. 이 강력하기 그지없는 번개뱀 앞에서 7등급 이하 몬스터들은 방어조차 할 수 없었다. 방어라는 개념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
번개뱀이 날뛰기 시작하자, 곧장 백에 가까운 모래 괴물들이 새카맣게 타기 시작했다.
그사이 다른 방향에서는 챠이 수, 그녀가 본격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왼손으로는 바람을 만들었고, 오른손으로는 불덩이를 만들었다. 두 손을 합치자, 그녀의 손바닥 위로는 불타오르는 바람이 등장했다.
챠이 수가 그 불꽃바람을 던지자, 삽시간에 덩치를 키운 불꽃바람이 모래 군단을 빨아들이고, 태우기 시작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방향에 위치한 벤 사하르 팀은 굳이 어려운 방법을 쓰지도 않았다.
스톰 벤 사하르.
폭풍이란 별명답게 바람 속성 마법에 있어서 최고라 불리는 그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7서클 마법, 우라칸!
그야말로 자연재해에 가까운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는 그 마법을 사용했다.
명백하게 보여주기 위한 실력 행사였다.
7서클 마법을 벌써부터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한 선택이었지만, 무리한 선택인 만큼 위력은 확실했다.
직경 300미터짜리 허리케인이 삼백여 마리의 모래 괴수들 중심에서 생성됐다.
등장한 허리케인은 모래 괴수를 빨아들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무차별적인 폭력, 쉴 새 없는 물리적 타격으로 모래 괴수들은 그냥 모래알로 만들어 버렸다.
모래군주가 자랑하는 모래 군단이 삽시간에 무용지물이 됐다.
하지만 모래 군단은 모래군주가 살아있는 이상 불사의 군단이나 다름없다. 모래 군단의 재료가 될 모래는 여전히 사방에 넘쳐났다. 모래군주가 새로운 모래 군단을 만들어냈다.
그와 동시에.
쿠쿠쿠쿠!
모래군주의 두 번째 능력인 모래 해일이 등장했다. 10미터 높이, 건물도 집어삼킬 수 있는 높이의 모래 해일이 이존 팀을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재해.
그 재해 앞에 선 건 이미 일찍이 모래군주의 위엄을 몸소 체험했던 사내였다.
가위손 버튼, 그가 모래 해일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손을 활짝 폈다. 이 맨손으로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몬스터를 잘라왔던 그가 이제는 맨손으로 거대한 모래 해일마저 잘라낼 속셈이었다.
이존의 마법사들은 그런 가위손의 등 뒤에 섰다.
그러는 사이 버튼이 두 손을 합장하듯 모았다. 합장하듯 모은 손의 손끝 정면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 상태로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로, 두 손을 교차하듯 수직으로 움직이는 순간, 그의 양손이 머금고 있던 7서클 마법 엑스칼리버가 버튼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것을 잘라 냈다.
일단 그의 앞에 있는 모래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갈라졌다.
이윽고 갈라지던 모래 바닥이 모래 해일에 닿는 순간.
쾅!
소름 끼치는 굉음과 함께 모래 해일이 반으로 갈라졌다. 하나의 해일이 두 개의 해일이 됐고, 두 개의 해일이 버튼과 그의 뒤에 선 이존의 마법사 무리들의 양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야말로 모세의 기적.
버튼이 눈앞의 광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광경을 바라본 챠이 수도 미소를 지었다.
“다들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군요.”
모래군주와의 일전만을 위해 모인 7서클 마법사들이 벌써부터 7서클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계획과는 달랐지만, 반대로 모두가 마법을 써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던 것이다. 7서클 마법사가 됐지만, 오랜 세월 7서클 마법 아티팩트가 없어서 마법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마련됐는데, 마다할 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챠이 수는 그 갈증을 이 자리에서 해소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곁에 있던 호령에게 말했다.
“모래 해일을 사용했으니, 당분간 모래 해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전열을 바꾸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세요.”
호령이 절도 넘치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이상 현상이 포착됩니다. 모두들 정면에 집중하십시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모래군주, 놈이 본체를 드러냈다.
* * *
이강우는 여전히 숨을 죽인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잘 해 줘야 하는데…….’
포식자 팀은 현재 다른 일을 치르는 중이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이강우에게 돌아오는 순간이 이강우가 움직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상 현상이 포착됩니다. 모두들 정면에 집중하십시오.
때문에 이강우는 모래군주가 곧바로 자신의 본체를 구축하기 시작했을 때.
‘젠장.’
짧게 혀를 찼다.
좀 더 전투가 길어질 줄 알았다.
실제로 모래군주는 실체를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실체를 드러낸다는 건, 모래군주 입장에서도 자신의 명백한 약점인 핵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 핵은 모래군주가 만들어낸 본체,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한 모래더미의 보호를 받지만, 그래도 모래군주 입장에서는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 모래군주가 실체를 드러냈다.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았어.’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특히 거듭된 7서클 마법의 존재가 녀석의 타오르는 위기감에 부채질을 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갑옷을 입지 않은 상황에서, 본체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운 나쁘게 7서클 마법에 휘말릴 경우 핵이 파괴될지도 몰랐으니까. 방어를 위해서라도 본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상황 전체를 놓고 보면 희소식이었다. 생각보다 더 일찍 결판을 낼 기회가 왔다.
-다음 작전으로 넘어갑니다.
실제로 이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부는 이 상황을 호재로 받아들였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마법사의 피해가 없는 상황 아닌가?
반면 이강우는 다급해졌다.
“김재범.”
그가 작업 중인 김재범을 불렀다.
-예, 대장.
“얼마나 진행됐습니까?”
-열다섯 마리 잡았습니다.
“지금 위치는?”
-근처입니다. 교전 소식을 듣자마자 이동 중입니다. 거의 지척까지 도달했습니다.
이강우가 두 눈을 감았다. 운이 좋았다. 만약 예정대로 그대로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면…… 절망적인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다.
“녀석에게 헤이스트 마법 걸어주십시오.”
대답은 없었다. 대답 대신 아주 조금, 1초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에.
-헤이스트 마법 걸었습니다.
김재범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이강우가 불사황제의 권능을 발동시키며 읊조렸다.
“나에게 오라, 나의 병사여.”
* * *
모래군주가 모래를 모아, 자신의 육체를 만들었다. 모래 사장을 가득 채운 모래가 한곳에 모이고, 뭉치면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래군주가 만든 자신의 모습은…….
“문어?”
“문어네?”
“문어지?”
문어였다.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대 문어가 등장했다. 다리 길이는 가늠자체가 되지 않았고, 머리의 크기는 10층짜리 아파트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정말 거대했다.
마법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살짝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모래군주는 뭐로든 변할 수 있으니 문어가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설마 문어가 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랬다. 더군다나 사막이란 땅 아닌가? 여기서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괴물을 볼 줄이야?
“정신 차려!”
그러나 몇몇 이들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공격이 올 거다! 대비해!”
상대는 3등급 몬스터다. 문어가 아니라, 개복치로 변신을 한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방심하지 마!”
긴장감을 풀지 않은 이들의 경고 섞인 외침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대비를 했다.
‘그래, 여기서 정신줄 놓으면 사망이지.’
‘그런데 대체 어떻게 공격하려는 거지? 설마 이 거리에서 채찍처럼 다리를 휘두를 생각인가?’
그 순간 모래군주가 움직였다. 모래로 변신한 녀석이 여덟 개의 다리를 모래 속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집어넣은 팔이 등장한 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는 마법사 무리들 사이였다.
푸홧!
모래기둥처럼 솟아오른 문어 다리가 마법사 한 명을 단숨에 휘감았다. 다리 힘은 엄청났다. 휘감긴 마법사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몸이 폭발했다. 사방으로 핏물, 살점이 터졌다. 섬뜩한 광경이었지만, 당황하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절삭 마법을 이용해 등장한 문어 다리를 잘라냈다.
서걱!
의외로 문어 다리는 쉽게 잘렸다. 문어 다리를 자른 마법사 스스로가 의구심을 가질 정도였다.
‘4서클 마법인데?’
이쯤 되면 잘린 게 아니라, 잘려 준 수준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바닥에 떨어진 문어다리가 곧바로 모래 늑대로 변했다. 성난 모래 늑대가 곧장 근처에 있는 마법사 한 명을 향해 주둥이를 내민 채, 포탄처럼 몸을 날렸다. 늑대가 단숨에 마법사의 어깻죽지를 물어뜯었다.
“으악!”
마법사가 비명을 내질렀고, 근처에 있는 다른 마법사가 다시 한번 절삭 마법으로 늑대의 몸을 절반으로 잘라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잘려나간 늑대의 몸뚱이는 고릴라의 머리통으로 변하더니, 주변의 모래를 빨아들이며, 단숨에 3미터 크기의 괴물 고릴라로 변신했다. 고릴라가 거대한 두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젠장, 자르지 말고 터뜨려!”
“모두 포메이션을 짜!”
펼쳐진 아수라장.
그 속에서 7서클 마법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누가 보더라도 본체가 확실한 문어의 머리를 향해 움직였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건 가위손 버튼이었다.
‘뜯어낸다.’
가위손 버튼은 절삭 마법의 효과를 자신의 손바닥으로 머금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이었고, 그게 가위손이란 명성을 만든 이유였다. 7서클 마법 엑스칼리버를 손바닥으로 머금는 것 역시 충분히 자신 있었다. 연습도 마쳤다.
때문에 가위손 버튼은 모래군주의 몸뚱이를, 놈이 어떤 수작을 부리든 뜯어낼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놈의 몸뚱이를 뜯어내면, 그 후에는 벤 사하르의 우라칸이 버튼이 뜯어낸 모래군주의 몸 조각들을 모래 단위로 해체할 것이다. 그러면 놈의 핵이 필시 모습을 드러낼 터.
그 핵을 파괴하는 게 챠이 수의 역할이다. 챠이 수가 어떤 마법을 가졌는지, 이미 사전에 정보를 받았다. 그 정도 정보 교환을 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틀어진 건 아니니까.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그럼 조커를 꺼내는 거다.
이강우, 그가 조커 역할이다.
이 작전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 그냥 이런 작전이 있을 수도 있다, 사전에 통보만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굳이 합의가 필요한 작전도 아니었다. 각자의 역할은 분명했고, 지금 이 상황에서, 지금 자신들의 부하들이 아수라장 속에서 처참한 꼴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외면할 사람은 없었다. 정말 그런 짓을 한다면, 그건 자존심이 강한 게 아니라 그냥 또라이다.
달리는 버튼을 막기 위해 모래군주 근처에서 모래 군단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번개창에 맞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아수라장 속에서도 자기 역할을 잊지 않는 6서클 마법사들이 후방 지원을 했다.
버튼은 조금의 마력 낭비도 없이, 마나 서클 안을 마력으로 가득 채운 채로 모래군주와 거리를 좁혔다.
둘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200미터 남짓한 거리가 됐고, 그 거리가 되는 순간 버튼이 엑스칼리버 마법을 발동시켰다.
마력을 머금은 아티팩트가 마법을 토해냈고, 토해낸 그 마법을 버튼은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 능력을 통해 자신의 손에 담았다. 버튼의 두 손이 마력을 머금으며 주변 광경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손에서 아지랑이가 잔뜩 피어오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마력의 사용에 버튼이 탈력감을 느끼긴 했다. 더군다나 이번이 두 번째다. 마나 회복 포션을 마셨다지만, 연달아 7서클 마법을 쓰는 건 오버 워크였다.
오늘 세 번째는 없을 것이다. 버튼에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 셈.
그야말로 칼날 위에 맨발로 선 채 싸우는 일이다. 한 번의 실수가 끝장이 된다.
‘가자.’
그러나 버튼은 여기서 괜한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걱정과 우려는 뒈진 후에도 할 필요가 없으니까.
팟!
버튼이 도약했다. 그의 오른손이 단숨에 모래군주의 머리, 문어 머리 위에 닿았다.
콰직!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이는 모래였지만, 버튼의 손가락은 모래가 아니라 마치 바위를 뚫듯 들어갔다.
묵직했지만, 반대로 버튼은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는 이조차 하지 못해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이번에는 손가락이 파고 들어갔다. 쉽게 들어갔다.
‘오케이.’
버튼이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손이 날렵하게 움직이며, 모래군주의 머리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가 수도(手刀)를 휘두르면, 그의 손이 품고 있는 예기(銳氣)가 마치 검기(劍氣)처럼 잘라냈다. 마치 감자를 감자칼로 깎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우라칸 마법이 모래군주의 머리 위에서 발동했다. 거대한 폭풍이 등장했다. 폭풍은 점차 자신의 몸집을 부풀렸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버튼이 잘라낸 모래군주의 몸뚱이들이 폭풍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고, 사정없이 분쇄됐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이제는 버튼조차도 폭풍에 빨려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
버튼이 때를 가늠하고, 곧바로 손바닥을 합장하듯 모았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교차하듯 움직였다. 오른손이 위로, 왼손이 아래로.
그러자 모래군주의 머리가 단숨에 반으로 쪼개졌다.
버튼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후우!”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몇 초.
그 몇 초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토해낸 버튼이 처음으로 숨을 돌렸다.
그러나 그에게 숨 돌릴 여유는 없었다. 이제는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게 최대의 과제가 됐으니까. 그런 버튼을 도와주기 위해 이미 구조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을 폭풍이 집어삼키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가장 빠른 헤이스트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 두 명이 버튼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고, 그의 몸을 잡고, 엄청난 속도로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버튼 구조 완료.
이제 그들에게서 통보가 오는 순간 우라칸 마법이 참았던 파괴본능을 폭발시켰다.
하늘 위를 지배하던 폭풍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마치 거대한 문어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는 것처럼.
그렇게 난도질당한 모래군주의 머리통을 우라칸이 휘감았다. 폭풍은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산산조각을 냈다.
콰콰콰콰!
모래 단위로 분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폭풍 속에서도 아스러지지 않는 게 있었다. 마치 태풍에 휘감긴 금고처럼, 굳건하게 자기 형태를 유지하는 물체가 보였다.
모래군주가 가진 핵, 그 핵을 감싸고 있는 최후의 갑옷이다. 가로, 세로 높이 2미터짜리 정육면체의 모래! 그 안에 모래군주의 핵이 존재할 게 분명했다.
그 핵은 우라칸의 폭풍 속에 휘말린 채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 무시무시한 폭풍 속에서 조금의 흠집도 보여주지 않았다.
챠이 수가 그런 모래 큐브를 향해 마법을 썼다.
‘유성우는 열 번.’
7서클 마법 유성우!
엄청난 위력을 가진 불덩이가 벼락처럼 정해진 표적에 내리꽂히는 마법이다.
심지어 마법 한 번에 쓸 수 있는 유성우의 개수는 열 개!
위력으로는 지금 여기 있는 7서클 마법 중에 가장 위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폭풍 속에 맴도는 모래 큐브를 정확하게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폭풍을 멈추는 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폭풍이 멈추는 순간 모래군주는 주변의 모래를 있는 힘껏 끌어모아 다시금 거대한 모래 옷을 뒤집어쓸 것이다. 폭풍 속이니까, 지금 큐브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챠이 수는 이 순간 망설이지 않았다.
대마도사, 마법 컨트롤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녀는 짧은 순간 우라칸 마법이 만들어낸 흐름을, 바람의 흐름을 이해했다.
'흐름에 맞추면 돼.'
그리고 마법을 썼다.
꽈릉!
굉음과 함께 유성우 하나가 떨어졌다.
떨어진 유성우는 놀랍게도 우라칸의 흐름에 순응했다. 거침없이 도는 우라칸을 거부하지 않은 채 우라칸에 몸을 맡겼고, 그 흐름 속에서 날렵하게 모래 큐브를 쫓아 움직였다.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두 개의 물체가 충돌하듯, 모래 큐브와 유성우가 충돌했다.
콰직!
그러자 모래 큐브의 한 면에 금이 갔다.
정말 놀라운 명중률이었지만, 반대로 그 광경을 확인한 몇몇 이들은 이를 꽉 물었다.
‘고작 금…….’
한 방에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작 금이 가는 선에서 끝나다니?
챠이 수도 이를 꽉 물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아홉 개의 유성우 전부를 우라칸의 흐름 속에 심었다. 조금이라도 회복할 여유를 줘서는 안 된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차를 두고 연타를 먹어야 했다.
아홉 개의 유성들이 우라칸 속에 빠졌다. 그리고는 모래 큐브를 쫓아 빠르게 이동했다.
꽈릉!
이윽고 유성우가 연달아 모래 큐브를 두드렸다.
충돌이 있을 때마다 천둥소리보다 더 거대한 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충돌이 연거푸 이어졌을 때는 그 위력이 엄청나서, 우라칸의 폭풍이 크게 비틀릴 정도였다.
그게 문제였다.
‘아!’
‘젠장!’
챠이 수는 설마 거듭된 충돌로 우라칸의 흐름이 휘청거리며 일그러질 줄은 몰랐다.
그 비틀림이 어긋남을 야기했다.
본래대로라면 순차적으로 모래 큐브를 두드려야 했을 유성우 두 개가 모래 큐브의 끄트머리만을 스치듯 지나가고 말았다.
열 개의 유성우가 그렇게 사라졌다.
모래 큐브는 폐차 직전의 자동차처럼, 모든 것이 처참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모래 큐브가 모든 공격을 확실하게 흡수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직 아니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그러니까 이제 조커가 나설 때다.
“이강우!”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강우가 등장했다. 그런 이강우는 무언가를 타고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원숭이가 이강우를 어깨에 짊어진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돌원숭이 갑옷을 입은 얼음 전사!
이강우의 노림수였다.
이강우는 돌원숭이를 잡은 후 녀석의 몸뚱이를 가공해서 갑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불과 얼음의 군단, 그 권능을 이용해 만든 병사에게 그 갑옷을 입혀줬다.
지금도 그랬다.
미리 얼음 전사를 만들어두고, 녀석에게 돌원숭이 갑옷과 붉은 뿌리로 만든 검을 쥐여 줬다.
그 상태로, 포식자 팀과 함께 주변 몬스터들 사냥을 시켰다. 어떤 식으로든 붉은 뿌리를 살찌우게 만들기 위해서,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렇게 열다섯 마리의 몬스터를 머금은 붉은 뿌리가 이강우의 손에 쥐였다.
‘버닝 마나.’
말처럼 자신을 짊어진 채 달리는 얼음 전사 위에서, 이강우는 버닝 마나를 사용했고.
‘섬광.’
왼손에 쥐고 있는 큐브에 그 마력을 전부 주입했다. 온몸의 마력을 쥐어짜 큐브에 담았다.
이강우의 마력을 머금은 큐브가 토해낸 마법은 이강우의 몸을 타고 이강우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붉은 뿌리에 닿았다. 검의 형태를 품었던 붉은 뿌리가 붉은 번개가 됐다.
파직, 파직!
붉은 번개가 이강우의 손바닥 안에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이강우는 그런 붉은 번개를 우라칸의 폭풍 속에서 여전히 쉴 새 없이 휘날리는 모래 큐브를 향해 던졌다.
던지면서 외쳤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그 말과 함께 이강우가 내던진 붉은 번개의 창은 놀랍게도.
스윽!
사라졌다.
사라지고, 눈을 한 번 깜빡하는 순간.
콰직!
모래 큐브에 꽂힌 채로 등장했다.
공간을 뛰어넘어 표적에 명중하는 백발명중의 마법, 섬광! 그 섬광이 모래군주의 핵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