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사하라 사막으로
이강우의 애마, 포르쉐가 마법청 본청으로 들어가는 정문 입구 앞에서 멈췄다. 보안이 중요한 만큼 정문 경비원에게 신분을 밝혀야 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짜고짜 자신의 차 앞을 가로막은 후에 손을 흔드는 사내 때문이었다.
이강우의 차 앞에서 손을 흔든 사내가 운전석 방향으로 접근했고, 이강우가 창문을 내렸다.
“대장님 오셨습니까?”
이강우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는 김재범의 모습에 이강우는 대답 대신 헛웃음만 흘렸다.
‘아니, 이 인간이 대체 왜?’
그가 마법청 본청에 있는 건 아무래도 좋다. 이강우가 불렀으니까. 그가 이강우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것 역시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가 마법청 정문 경비원처럼 이강우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이강우가 오자마자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는 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모로 괴상한 일이었다.
“혹시 정문에서 저를 기다린 겁니까?”
“예.”
“왜요?”
보통은 그냥 삼켰을 말. 그런데 너무나도 궁금해서 이강우는 툭 말을 던졌다.
그러자 김재범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별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대장님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제 충성심으로 받아주십시오.”
안 하니만 못한 대답이다. 이강우의 뚱한 표정이 그 증거다.
‘충성심 때문은 절대 아니군.’
결정적으로 이강우는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김재범의 행동이 그가 말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인간이 대체 왜……?’
여러모로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언제까지 건물 정문 입구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일단 주차하고 이야기합시다.”
“예!”
김재범이 자리를 피했고, 이강우가 창문을 올린 뒤 정문을 통과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 이강우의 차를 어미 오리 뒤를 쫓는 새끼 오리마냥 김재범이 따라왔다. 차에서 내린 이강우는 그런 김재범을 바라보며 이제는 도무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 인간이 뭘 잘못 먹었나? 설마 예전에 문 관리센터 상점에서 구매한 수르스트뢰밍이라도 먹었나?’
오늘 마법청 본청 방문은 중요한 방문이었다. 마법청이 포식자 팀에게 의뢰를 제안하는 무대, 협상무대였다.
이제까지 마법청의 요구를 들었던 것과 다르게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마주 보고 협상을 하는 자리였다. 이 협상 결과에 따라서 앞으로 포식자 팀이 이제까지처럼 호구가 되느냐, 아니면 마법청 그리고 한국 정부와의 거래에서 계속 주도권을 가지고 갈 수 있느냐, 그것이 판가름나는 자리였다.
당연히 이강우는 만반의 준비를 했고, 보다 확실한 준비를 위해 포식자 팀의 멤버 전원을 소집했다. 안중현만 사정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 그렇게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왔는데 김재범의 이런 표정을 보니, 갑자기 맥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그런 이강우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재범은 이강우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평소와 다르게 꽤 시끄럽게 굴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입을 떠벌렸다. 그렇다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변잡기, 최근 세계 정세에 대한 이야기들……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지만, 귀 기울일 필요는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이강우가 슬슬 귀찮아질 무렵.
“그보다 여동생 분이신 이혜연 씨는 지금 무슨 공부를 하시나요? 대학을 다니시나요?”
“공부는 무슨, 백수지.”
이강우가 김재범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혹시 특별히 전공하신 분야라도?”
“음악 했습니다.”
“배우신 분이시군요. 느낌이 단아하신 게 왠지 음악을 하셨을 것 같았습니다. 음악이라…… 그럼 클래식을 즐기시겠군요.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음악에서 손 뗀 지 오래 됐습니다. 요즘 보니까 집에서 드라마만 쉴 새 없이 보던데…….”
그때 하선우가 등장했다.
“여깁니다!”
미리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선우는 김재범과 이강우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모델 포스를 풍기는 그의 등장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 자기 존재감에 대해 자격지심을 가지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그런 하선우의 등장에 이강우가 툭, 말을 뱉었다.
“그러고 보니 혜연이, 걔가 하선우랑 아는 사이라니까 사인 좀 받아 달라고 했었죠.”
이쯤 되면 이강우도 눈치를 채지 못할 리 없다. 그래서 툭 던졌다. 이제까지 자기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며 자신의 머릿속을 어수선하게 만든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를 위해서.
그 의도는 아주 잘 먹힌 듯, 하선우를 바라보는 김재범의 눈빛이 예전 눈빛으로 돌아갔다.
‘응?’
하선우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얘는 또 왜?’
그래도 최근 동안 티격태격하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적의라니? 이런 상황에서 하선우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무시밖에 없었다.
괜히 터지기 직전인 풍선을 건드릴 필요는 없는 법. 하선우가 이강우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에도 보통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이강우가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렴. 보통 일을 우리가 할 이유가 없지.’
포식자 팀이 하는 일이 쉬운 일일 리는 없다. 그 누구도 못하니까, 아무나 할 수 없으니까 포식자 팀이 나서는 거다. 굳이 말하면 궂은일을 맡는 셈이다.
이후 속속 사람들이 도착했다. 안중현을 제외한 모두가 모였고, 이강우는 그들에게 몇 가지 설명을 했다.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이강우가 모두를 이끌고 협상을 위해 마련된 회의실로 향했다.
* * *
“사하라 사막에 등장한 3등급 몬스터 모래군주를 사냥하기 위해 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팀이 합동 작전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말을 내뱉은 여인은 자신의 네모난 뿔테 안경을 다시 한번 고쳐 썼다.
이강우는 그런 여인을 지그시 바라봤다.
여인의 이름은 방주희.
현재 대선을 앞두고 바빠 죽을 지경인 이부성 마법청장과 볼코프의 테러 사건 당시 입은 부상으로 본인이 원함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배제된 채 요양 중인 안대욱 부청장을 대신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여인이었다.
‘엘리트.’
안중현의 설명에 따르면 마법청의 차기 간부 자리에 앉을 수 있을 만한 엘리트라고 한다.
‘경력은 없지.’
대신에 경력은 없다. 이 바닥에서 경력이 없다는 건, 경험이 없다는 의미니 마찬가지.
‘좋아.’
이강우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는 사항들이다. 이강우는 곧바로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그러니까 사하라 사막에서 3등급 몬스터를 잡아야 하니까 한국 대표로 포식자 팀이 그 사냥에 참가하라? 이런 말입니까?”
“예.”
“그럼 보수는 어떻게 됩니까?”
보수!
그 말에 방주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위험수당을 포함해서 100억 원 정도가 지급될 겁니다. 동시에 마법청이 보유한 모든 것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유엔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팀에서 지원을 해줄 예정이고, 유엔 차원에서 미션 클리어 보수로 약 500만 달러가 지급된다고 합니다.”
“100억 원에 500만 달러 더하면, 대충 150억 원.”
“예, 그 정도 나오겠군요.”
“세금은?”
“한국 정부가 지급하는 돈은 면세 혜택을 드릴 수 있지만, 유엔에서 제공되는 보수는 세금이 붙을 겁니다. 22퍼센트 정도 붙을 겁니다.”
그 말에 이강우는 혼잣말을 지껄였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는 연봉이 3천만 달러던데, 한국 최고의 팀 목숨값이 그 양반 반년 치 연봉이다?”
혼잣말이었지만, 절대 혼잣말이 아니었다.
“정부가 드릴 수 있는 금액은 이게 한계입니다.”
“재작년에 터진 방산비리 사건 하나로 관계자들이 해먹은 돈이 5천억 원인가 그랬는데, 돈이 없다…….”
“금액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하선우 씨.”
이강우가 갑자기 하선우를 불렀다. 하선우가 곧바로 예, 하고 대답을 했고 이강우가 곧장 질문을 던졌다.
“재작년에 하선우 씨가 소득 신고 얼마 했습니까?”
“60억 원 정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김재범이 반응했다.
“뭐? 60억 원? 넌 뭘 하기에 그렇게 많이 벌어? 아니, 그보다 그럼 세금을 얼마 낸 거야?”
“모범 납세자상도 받았습니다.”
“와, 진짜 나도 모델을 해야지. 마법사로 목숨 걸고 지랄을 해도 취미로 모델 생활하는 놈만큼 벌질 못하네.”
김재범이 괜한 사족을 달았지만, 이강우는 그 사족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이강우가 다시 방주희를 바라봤다.
“3등급 몬스터를 잡는 일입니다. 참가자들 전부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죠.”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 3등급 몬스터가 아프리카에 등장한 지 근 반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동안 녀석이 활동하는 사하라 사막에서 제대로 된 모래시계문 처리 작업이 진행됐을 리 없을 테고.”
“예.”
“그럼 몬스터 소굴을 뚫고 3등급 몬스터를 잡으라는 건데…… 그것도 사하라 사막이라는 장소,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땅에서 잡는다…… 리스크가 곱절이 되겠군요.”
“죄송하지만 더 많은 돈을 드릴 순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추가 예산을 받으려면 국회의 허락이 필요한데 지금 국회가 정상 활동을 못하는 중이라서…….”
이강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거래는 파투를 내는 수밖에 없겠군요.”
“잠깐만요.”
방주희가 곧바로 말을 꺼냈다.
“분명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협조를 해준다는 조건으로 아이기스 슈트를 받아 가셨잖아요?”
“그거 받은 이후로 입어본 적도 없습니다. 반납해 드리죠. 크게 배려하는 마음에서 착불이 아니라 선불로 그리고 우체국택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주소지는 마법청 본청으로 해 드릴까요, 아니면 제주 문 관리센터로 해 드릴까요?”
방주희가 놀라며 재차 말했다.
“나라를 위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걸맞은 보수를 제공해 주는 게 오히려 정답 아닙니까?”
“그야…….”
방주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안의 중대함 그리고 마법사의 몸값을 고려하면 그녀가 제시한 액수는 그녀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액수라고 보기는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이강우 말대로 정말 순수하게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면 이보다 더한 액수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일은 단순히 나라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각국의 현재 마법 전력을 과시하기 위한 무대였다. 이강우에게 자세한 사실을 밝히진 않았지만, 유엔이 이번 작전을 펼치는 건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즉, 어느 정도 승산이 있는 전쟁이었다. 이기는 판, 발을 담그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무대에서 우리는 이 정도 마법 전력을 갖추고 있다! 그 과시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 내에서 발언권과 인지도, 입지 확대를 노리는 게 마법청의 목적이다.
소위 국격을 높이는 일이 되는 셈인데, 실상 그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건 높으신 양반들뿐이지, 보통 사람들은 솔직히 조금도 체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뉴스를 보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넘어갈 뿐.
‘내 정보력을 너무 무시했군.’
이강우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굳이 정보력을 운운할 필요도 없다. 3등급 몬스터를 잡자고 나선다는 건, 7서클 아티팩트를 확보했다는 의미와 마찬가지이니까. 그런 판에 끼어든다? 속내가 뻔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강우가 굳이 스스로 가치를 낮출 필요는 없다.
“그럼 어느 정도 액수를 원하시는 거죠?”
반대로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포식자 팀을 놓칠 순 없다. 현재 6서클 마법사 중에 두 명이 포식자 팀이다. 아직 이강우가 7서클에 도달했다는 걸 마법청은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포식자 팀의 전력은 한국 최고다. 특히 여전히 비수 김지홍이 부상 중인 상황에서 명궁 고재응만을 데리고 팀을 구축하면 무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비수나 명궁이라고 해도 순순히 이런 거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거래를 해야 한다면 최선의 카드와 거래를 하는 게 정답.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전투기 한 대 값 정도는 몸값으로 받고 싶습니다만.”
“천억 원이요?”
정부가 개인에게 그 정도 돈을 주는 사례는 없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 돈을 줄 수 있을 리는 없고.”
“당연하죠. 불가능해요.”
“그럼 그 외적인 것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지요. 6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받고 싶습니다.”
더 어마어마한 제안이 나왔다.
방주희는 너무 놀라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심호흡을 했다. 후우, 후우. 심호흡 뒤에 그녀는 다시 질문했다.
“현재 마법청이 보유한 6서클 마법 아티팩트가 몇 개인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3개로 알고 있습니다. 빛화살, 가름칼, 아이스큐브. 그중 하나를 받고 싶습니다.”
“6서클 마법 아티팩트의 값어치가 얼만데…….”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있어도 못 쓰는 것들 아닙니까? 6서클 마법사가 더 있습니까?”
이강우는 언제까지 바보가 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강우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세력들이다. 정부라는 거대 집단들, 개인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집단이고, 그 너머에는 이런 세계를 종말에 다다르게 하려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강우가 할 수 있는 건?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다. 그건 소용이 없다.
반대.
그들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이강우에게 기대게 만들어야 한다. 이강우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그걸 위한 작업이었다. 앞서서 김재범과 하선우의 대화도 미리 준비해둔 연출이다.
‘내가 6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확보하면, 정부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내게 기댈 수밖에 없지.’
빼앗는 거다.
상대방이 가진 카드를 이강우의 것으로 만들어서 이강우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 이강우도 뭔가를 하는 보람이 있다.
물론 이 대답은.
“제가 이 자리에서 답변을 드릴 수가 없겠네요.”
방주희 수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법청이 아니라, 정부의 가장 높으신 분이 결정할 문제다.
‘잘하면 대통령도 한 번 만나보겠군.’
대통령.
필시 그쪽까지 보고가 갈 것이고, 대통령의 결정이 곧 마법청의 결정이 될 것이다.
‘대선 앞두고 과연 대통령이 무슨 결정을 내릴지도 궁금해. 화끈하게 지르려나? 아니면 몸을 사리려나?’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강우는 손해 볼 게 없다. 이건 시작이니까. 어차피 결국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한국 정부는 이강우를 상대로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봅시다.”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 여덟 명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강우를 필두로 모두가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 * *
즈믄나래의 길드 마스터 사무실.
그곳의 현재 주인인 안중현이 자신의 사무실을 방문한 방문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6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마법청으로부터 연락이 왔네.”
그런 안중현의 말에 방문객, 이강우는 손에 쥐고 있던 큐브를 공처럼 가볍게 던진 후에 가볍게 받았다.
“안타깝군요.”
안타깝다?
그리 말하는 이강우의 표정 어디에서도 스스로가 뱉은 안타까움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나오나?’
안타까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강우에게 6서클 마법 아티팩트 자체는 계륵이다.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없어도 치명적인 단점이 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일단 이강우는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확보했다. 조만간 칠성문에 빌려줘야 하지만 그 대가로 7서클 마법 아티팩트 복제품을 받을 예정이다. 나중에 다시 진품을 돌려받으면 7서클 마법 아티팩트가 2개가 된다. 여기에 골드북 구매를 통해서 5서클 마법도 3개 더 확보했다.
결정적으로 5대 권능이 있다. 검붉은 책, 블러드북도 하나 확보해둔 상황이다.
이강우는 지금 자신이 가진 능력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6서클 마법 아티팩트의 추가는 과유불급. 어차피 받아봤자 이강우가 쓰기보다는 채유리가 쓰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그런 요구를 한 건, 상대방이 가진 패를 빼앗기 위해서, 단지 그뿐이었다.
“아직 마법청이 여유가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강우는 마법청이 자신의 제안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이강우는 그만한 거물이 됐다.
반면 마법청은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안대욱 부청장의 부재 속에서 우두머리인 이부성 마법청장도 정치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대선 결과가 야당의 승리로 끝나면? 정권 교체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부기관은 없다.
“대신에 이강우 개인이 아닌 즈믄나래 길드에 6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장기대여 해줄 수는 있다고 하더군.”
“역시나.”
이강우의 예상대로였다.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아무래도 개인에게 마법 아티팩트를, 그것도 6서클짜리를 넘겨주는 것보다는 길드에 빌려주는 게 주변에는 설명하기 쉬울 테니까.”
이강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몇 년짜리입니까?”
“30년.”
“기네요.”
“30년 후에도 현역으로 뛸 생각인가?”
안중현이 질문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 아니면 거절하겠느냐? 그런 의미의 질문이었고.
“5년 안에 세상이 망하느냐, 마느냐, 그게 걸렸는데 30년은 생각도 안 하고 있습니다.”
이강우가 곧장 대답했다.
이번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그보다 뭘 준다고 합니까?”
받기로 했다.
그럼 이제는 뭘 받을지가 중요하다. 안중현은 그 말에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아직 그 부분까지 합의가 안 됐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 마법청이 가진 3개 중 2개는 주인이 있으니까, 새로 발견한 게 자네 것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
“비수는 여전히 치료 중입니까?”
안중현이 두 눈을 게슴츠레 떴다. 현재 한국 정부가 보유한 3개의 6서클 마법 아티팩트 중에 2개는 주인이 있다. 비수와 명궁의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강우가 비수의 부상을 언급한다는 의미는?
“가름칼이 관심이 있나?”
“다른 무기들보다는 저한테 어울리는 놈 아닙니까?”
가름칼!
닿는 모든 걸 갈라 버리는 절삭 마법의 최고봉 중 하나다. 이강우에게 어울리는 놈이 맞다.
“비수가 기분 좋아할 일은 아니겠군.”
“그가 멀쩡하다면 이런 말을 감히 꺼내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비수의 공백이 너무 깁니다. 명궁도 그렇고요. 최근 그들이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소문으로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강우의 그 말에 안중현은 대답 대신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시계의 바늘들이 1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딱 좋은 점심시간. 안중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식사나 하지. 점심은 먹고 해야지.”
“사 주시는 겁니까?”
이강우가 반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법인카드라는 멋진 놈이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 말과 함께 안중현이 이강우를 직접 데리고 간 곳은 점심시간인 덕분에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찬 곰탕집이었다.
넘치는 사람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강우는 나름 변장용이랍시고 준비해온 안경을 고쳐 썼다. 의외로 심심한 인상에 최근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뿔테 안경까지 쓴 이강우를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강우는 하선우처럼 딱 봐도 연예인 같은 포스를 풍기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법인카드로 사 먹기에는 좀 저렴한 곳이군요.”
이강우가 짧게 투정을 부렸다.
“여기가 마음에 안 드나?”
“그럴 리가요. 여기 곰탕 맛 진짜 장난 아닙니다.”
유명 곰탕집이었다. 예전에 이강우가 한 번 먹고 반해서, 그 자리에서 한 그릇 더 시켰던 집.
맛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법인카드라니까 비싼 걸 사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저 투정을 부릴 뿐이다. 한 번 뱉고 지나가는 종류의 투정.
“길드 재정 상황은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네. 마법사들의 인건비는 높은데, 반면 생산성은 떨어지지. 여기에 마법청이 모래시계문의 공급을 관리하는 만큼, 거기서 밉보이면 그마저 수입도 사라지지. 유적 사냥을 통해 얻는 수익 대부분은 국가에 귀속. 즈믄나래의 사정이 이 정도니, 아마 다른 길드 사정도 빛 좋은 개살구 꼴일 걸세.”
“애초에 미래를 기약하고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잖습니까?”
그런 그 둘의 대화는 주변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금방 묻혔다. 그게 안중현이 이곳에 온 이유였다. 이곳에서는 도청기를 쓰더라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이강우도 그 부분을 이미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때문에 이강우는 기다렸다. 안중현이 스스로가 준비해온 중요한 말을 해주기를.
이윽고 안중현이 입을 열었다.
“비수와 명궁을 비롯해 실력 좋은 5서클 및 4서클 마법사들 중 몇몇이 연락이 두절됐네.”
“연락 두절이요?”
“안 좋은 의미는 아니고, 상황을 보면 마법청이 나서서 그들을 관리하는 듯하네.”
“마법청이요?”
“안대욱 부청장의 의중 같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가 위스프에 습격을 당하기 전에 무언가 준비를 했던 모양이야.”
안대욱 부청장은 위스프가 노렸던 인물이다. 그 점을 고려한다면, 마법청 관계자 중에 그나마 가장 신뢰도가 높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도 출중하다.
그런 그가 무언가를 준비한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언가를 대비하는 것 같네.”
그때 그 둘이 주문한 곰탕이 나왔다. 이강우와 안중현은 대화를 멈춘 채 능숙한 솜씨로 곰탕에 밥을 말았다. 곧바로 둘이 동시에 국물을 살짝 떠서 입에 넣었다. 기름진 감칠맛과 푹 고아진 고기의 향을 듬뿍 품은 곰탕 국물이 입안을 기름칠했다.
기름칠을 마친 국물을 꿀꺽! 삼키자, 속에서 적당한 열기가 샘솟았다. 이제 겨울이나 다름없는 추운 날씨 속에 살짝 살얼음이 낀 속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후우!”
둘이 곧바로 입으로 열기를 토해냈다.
“뜨겁군.”
“좀 많이 뜨겁네요.”
맛은 좋았지만 아직 당장 후루룩 먹기에는 뜨거웠다. 조금 식을 필요가 있었다. 곰국이 식을 때까지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무엇에 대한 대비입니까?”
“안대욱 부청장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안대욱 부청장 역시 어떠한 것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듯하네. 진실을 알진 못하지만, 국가 존폐를 논할 만한 위협이 있다는 건 짐작했겠지.”
“그럼 비수는…….”
“의법사가 있으니,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이미 쾌차했겠지. 대신에 요양을 핑계로 외부 활동을 끊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무엇보다 위스프는 여전히 위협적이니까. 위스프는 언제든 대한민국 요인을 암살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줬네.”
“위스프가 다시 한국에서 테러를 시도하리라 봅니까?”
“그들이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어떠한 수작을 부렸는데, 그 수작이 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어. 설마 그들이 군사분계선에서 한반도 통일 평화를 기원하면서 사과나무를 심진 않았을 것 아닌가?”
위스프 역시 골칫거리다.
위스프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들이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한반도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는 이상, 이강우는 그들의 존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강우가 고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안중현을 만나서 고민을 더나, 싶었는데 고민이 더 늘어났다. 물론 안중현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고민하기도 전에 그냥 무작정 당했을 것이다.
‘힘들겠지.’
여기서 안중현은 스스로가 준비했던 가설 하나를 곰국과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그 이야기까지 해 줄 필요는 없겠지.’
추측 하나가 있었다.
알려지면 이강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심장이 덜컥거릴 정도의 추측. 근거나, 증거는 하나도 없는 추측.
본래는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제 조만간 아프리카로 넘어가 다시 한번 혈투를 벌여야 하는 이강우에게 괜한 골칫거리를, 막연한 추측 때문에 생긴 고뇌를 안겨주고 싶진 않았다.
“골치 아프군요.”
이강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숟가락을 움직였다. 그제야 식은 곰국이 술술, 입 안으로 들어왔다.
* * *
“이제 아프리카로 가겠군.”
식사가 끝났을 때 이강우와 안중현은 가게에서 좀 먼 곳에 위치한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거리는 적막했고, 그 적막한 거리를 그 둘은 천천히 걸었다.
“예.”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을 기점으로 그 주변 지역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더군.”
3등급 몬스터인 모래군주가 등장한 이후 아프리카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중이었다. 일부에서는 그냥 핵을 쏘자는 의견마저 나왔고, 그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다.
유엔이 지금 나서서 3등급 모래군주 사냥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이상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그때 가서는 정말 누구 말대로 핵무기를 사용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전 세계가 지옥이 되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이강우 역시 핵무기까지 발사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무기를 써서 정리가 되면 상관없다.
하지만 정리가 안 된다면? 인류는 아득한 절망감 앞에서 무너질 것이다. 종말과 맞서 싸울 힘 따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강우가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선봉에 서서 싸우는 게 제 역할 아닙니까?”
이강우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고, 동시에 이강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안중현은 그런 이강우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이강우를 봤을 때는 눈치 빠른 총꾼, 적어도 방해물은 되지 않을 실력 괜찮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중현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짐을 짊어진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안쓰러웠다.
누가 봐도 소시민에 불과했던 그가 지금 여기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근심, 걱정을 품었을까? 안중현도 고생 꽤 했지만, 이강우가 치렀을 나날들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이강우에게 안중현은 무언가 격려 섞인 말도 뱉을 자신이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인간의 괜한 소리가 될 것 같았다.
때문에 다른 말을 뱉었다.
“마법청은 자네가 7서클 마법사인 걸 아나?”
“아직 말 안 했습니다. 제가 3등급 모래시계문을 클로즈 한 사실도 모르고 있을 텐데요.”
“숨길 생각인가?”
“이미 지금 자격으로도 교섭에서 충분히 유리한데, 굳이 히든카드를 제가 먼저 꺼낼 필요는 없지요.”
이강우의 중국행은 어디까지나 칠성문과의 교섭을 위한 것으로 한국 정부와 마법청에게 알려져 있다. 이강우가 3등급 유적을 클로즈했다는 사실은 소수만이 알고 있다.
히든카드다.
이강우 입장에서는 나중에 정부가 이강우를 상대로 다시 갑질을 시작한다면, 그때 7서클 마법사인 걸 내세울 것이다. 아주 훌륭한 반전카드가 되어줄 것이다.
“너무 숨기지만 말게.”
그런 이강우에게 안중현이 짧게 충고를 했다.
“모든 걸 숨긴 채 혼자만 짊어지는 건 숭고한 일이지만, 그게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네. 다른 누군가를 이용할 수 있다면, 당당히 이용하게. 이기적이라고 해도 상관없네. 자네의 이기심으로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고 해도, 자네가 감수할 대가 역시 저렴할 리가 없으니까. 굳이 자네만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일세. 자네가 고생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고생하게 만들게.”
“제 배가 아프니 다른 사람 배도 아프게 만들어라?”
“혼자만 배 아프면 억울하지 않은가?”
안중현은 말과 함께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강우가 미소와 함께 손바닥을 잡았다.
“아프리카에서 다녀올 때도 멋진 기념품 하나 부탁하네.”
“예. 맛있는 술로 준비하겠습니다.”
“별로 기대는 안 되는군.”
짧은 악수와 함께 그 둘이 서로를 등으로 마주 봤다.
* * *
사하라 사막.
아프리카를 차지하고 있는 이 거대한 사막은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혹독한 대지였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은 모든 생명체에게 혹독했지만, 모래시계문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자상했다.
드넓은 모래 세상 속에 등장한 모래시계문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등장하더라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래 속에 모래시계문이 숨어버리는 일도 잦았다. 모래시계문에게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사하라 사막은 몬스터들에게도 척박하고 혹독한 땅이었다. 모래시계문의 개방과 함께 문을 박차고 나온 몬스터들 중에 사하라 사막이란 혹독한 땅에서 살아남은 개체수는 몇 없었다. 대부분이 말라 죽거나 혹은 굶어 죽었다. 강인한 놈들만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모래시계문이 최초로 등장한 2015년으로부터 8년이 흘렀다.
8년의 세월 동안 사하라 사막은 인간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되어 있었다. 사막에서도 살아남은 무시무시한 몬스터의 세상 속에서 인간의 삶은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죽음의 땅 위로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일곱.
그 일곱 명은 사막 여행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일단 그들은 모두가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 비슷한 재질의 옷을 입고 있었다. 보통은 그 위에 천 옷이라도 입을 법한데 그들은 그냥 타이츠만 입고 있었다. 여기에 머리에는 오토바이 헬멧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나름 듬직한 크기의 헬멧을 쓰고 있었다. 여러모로 사막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들이 그 누구보다 사막을 자유롭게 다닌다는 점이었다.
파바바밧!
당장 그들은 발이 푹푹 빠져야 마땅한 사막의 모래 바다 위를 평지 달리듯 날렵하게 달리고 있었다. 속도도 어마어마했고, 어느 정도 높이를 자랑하는 사구도 훌쩍훌쩍 뛰어넘었다.
마법사들이 분명했다. 마법이 아니고서는 그들이 보여주는 능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렇게 그들이 사막을 질주하자, 당연히 사막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몬스터들이 그들을 쫓았다.
쿠웅!
거대한 굉음과 함께 모래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 굉음이 터지는 순간 달리던 일곱 명은 고개를 돌렸다. 치솟은 모래기둥만이 보였다.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놈인가?”
누군가 나지막이 혼잣말을 지껄이자, 그 혼잣말에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모래군주가 아니다. 6등급 몬스터 송장뱀이다. 다시 말한다. 모래군주가 아니다. 6등급 몬스터 송장뱀이다.
이 와중에도 일곱 명은 계속 달리고 있었고, 대장격으로 보이는 사내가 달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명령을.”
아주 잠시 뜸을 들인 후,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사냥하라.
그 명령이 내려오는 순간 달리던 일곱이 크게 도약했고, 날아가면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착지하며, 모래기둥이 치솟았던 방향을 바라봤다.
“사냥을 시작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마법사가 양손을 모래 위에 푹! 집어넣었다. 그들의 가슴팍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그들이 착용한 마법 아티팩트를 지나친 후 모래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쿠쿠쿠!
곧바로 굉음과 함께 모래가 성벽처럼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모래는 시멘트처럼 굳어 있었다.
4서클 마법 샌드월의 발동.
3명의 마법사가 각각 거대한 모래벽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3개의 벽은 ㄷ모양으로 맞물리며, 등장한 6등급 몬스터 송장뱀의 주변을 가로막았다. 이제까지 모래 속에 송장처럼 숨어있던 녀석이 갑작스러운 벽의 등장에 당황한 듯, 머리를 들어 벽을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세 명의 마법사가 손바닥 위로 회오리바람을 만들었다. 자그마한 크기의 회오리바람은 어느새 사람 하나를 잡아먹을 만한 크기가 됐고, 세 명의 마법사가 팽이를 날리듯 회오리바람을 송장뱀을 향해 날리는 순간 세 개의 회오리바람이 하나로 뭉치며, 거대한 크기의 회오리바람이 됐다. 5미터 높이, 집도 삼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크기의 회오리바람이 주변의 모래를 빨아들이며 송장뱀을 향해 질주했다.
그때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꽉 움켜쥐었던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 안에는 작은 불씨가 있었다. 사내는 그 불씨를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그러자 움켜쥔 손가락 틈 사이로 성난 불길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사내의 손에 불꽃으로 만들어진 창 한 자루가 잡혔다. 사내는 투창 자세를 취한 뒤, 회오리바람을 향해 창을 날렸다.
쉬익!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으며 회오리바람을 향해 날아간 불꽃창은 회오리바람에 꽂혔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회오리바람이 불꽃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무시무시한 불길을 품은 회오리바람이 3면이 가로막힌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도망치지 못한 송장뱀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불꽃으로 된 회오리바람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송장뱀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다. 형태도 없는 불꽃 회오리바람과 무슨 수로 싸운단 말인가?
끼에에에에!
결국 송장뱀이 할 수 있는 건 죽음을 앞두고 단말마를 내지르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꽃 회오리는 송장뱀의 질긴 가죽을 태우고, 그 후 드러난 살점을 갈기갈기 찢은 후에 하늘 위로 높이 들어 올려, 토해내듯 흩뿌렸다.
후두두!
바짝 타버린 송장뱀의 사체 조각들이 비처럼 떨어지며 메마른 사막 위를 적시기 시작했다.
“사냥 완료.”
일곱 명의 마법사들이 숨을 골랐다.
-수고했다. 다음 포인트로 이동해 보급을 하도록. 보급을 마치면 곧바로 귀환한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지령이 내려왔고, 그것으로 통신이 잠시 중단됐다. 통신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입을 열었다.
“이제야 귀환 명령이 나왔군! 이제 이 빌어먹을 사막도 당분간 안녕이야.”
“너무 좋아하진 말라고, 가는 길에 뒈질지도 모르니까. 하물며 모래군주 잡기 전까지는 계속 이 짓을 해야지.”
“굳이 그런 말을 해야겠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려고 하자,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짝! 박수 한 번을 쳤다.
모두가 말을 멈추고, 대장을 바라봤다.
“잡담은 보급 지역으로 이동한 다음 한다. 전부 헤이스트 마법 다시 준비하도록. 마력이 부족한 자는 포션으로 채운다.”
그 순간.
-경고!
조금 전 통신을 했던 이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그들의 헬멧 안을 가득 채웠다.
-즉시 자리를 이탈하라! 다수의 모래 괴물들이 그쪽으로 이동 중이다! 즉시 자리를 이탈하라.
그 말에 모두가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었다. 사막 특유의 고요함만이 그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기다!”
그때 큼지막한 사구 너머에서 다수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젠장, 말이 씨가 됐군!”
모래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울음소리 없이, 발소리 없이, 침묵을 유지한 채 그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후퇴!”
대장이 소리치자, 약속이라도 한 듯, 3개 조로 나뉘어서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갑자기 그들을 덮친 거대한 모래 해일 앞에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 * *
“유리, 약소하지만 내 마음이야.”
“강우 씨 고마워요.”
연인이 연인에게 진심 어린 선물을 한다면, 그건 누가 보더라도 프러포즈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강우가 연인인 채유리에게 진심 어린 선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둘 사이의 분위기는 프러포즈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강우가 채유리에게 건네준 건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도 아니었고, 진한 향기를 자랑하는 장미꽃도 아니었다. 여자가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큼지막한 칼이었다.
6서클 마법 아이스 큐브 아티팩트다.
이강우는 즈믄나래로부터 이것을 받자마자 곧바로 채유리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유리! 널 위해 줄 게 있어!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프러포즈를 준비한 연인의 연락 아닌가?
웃긴 건, 칼을 받은 채유리가 멍한 표정을 짓기는커녕, 진심으로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이강우의 선물을 품에 꼭 안는 모습이었다.
“잘 쓸게요.”
이혜연 말대로 부모님들 상견례가 아니면 결코 결혼에 도달할 수 없는 연인다운 모습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이강우는 그저 자신의 선물을 소중하게 품는 채유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쓴웃음을 감추는 미소였다.
‘부디 저놈이 유리의 목숨을 한 번이라도 구해주길.’
이강우가 가는 길은 언제나 위험이 넘쳤다.
하지만 채유리는 그런 이강우의 곁을 지키며, 언제나 이강우의 든든한 동료로 활약했다.
고맙다.
그 사실이 고맙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타들어 갔다. 채유리와 사이가 더 가까워질수록 속은 더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채유리에 대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채유리가 잘못될 경우 이강우는 과연 자책감에 자신이 어떤 꼴이 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를 이번에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무대로, 사막이란 혹독한 땅으로, 몬스터 소굴로 데려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진심 어린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리 없다.
안다.
이강우가 떼어 놓으려고 해도, 채유리가 절대 이강우의 옆을 떠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이강우가 결국 쓴웃음을 참지 못하고 머금었다. 애써 지은 미소가 무색해졌다.
우웅!
다행히도 타이밍 좋게 전화 한 통이 왔다. 이강우는 채유리에게 쓴웃음을 보여주기 전에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호령입니다.
호령의 전화였다.
3등급 유적 사냥 이후 이강우 일행과 함께 귀환하지 않고 중국에 남은 그녀가 오랜만에 연락을 줬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이강우가 살짝 긴장했다.
‘설마 괜한 트집을 잡으려는 건 아니겠지?’
주성륜과 약속을 했다. 호령을 열심히 먹여서 그녀의 마나 서클 개방을 도와주겠다고. 이강우는 그 약속대로 호령을 아주 잘 먹였다. 너무 잘 먹어서 탈이 날 정도. 힘든 와중에도 꼬박꼬박 그녀를 위해 효소를 이용해 고기를 처리하고, 직접 요리를 만들었고, 때때로는 좀 더 나은 효과를 위해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을 요리에 섞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7서클 개방에는 실패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작 100일 정도의 식사만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보긴 힘들다. 6서클 개방도 아니고, 7서클 개방 아닌가? 본인이 효과가 있다고 느끼는 것 자체도 대단한 일이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다. 이강우가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었다는 걸로.
거기서 주성륜과의 거래는 끝난 셈이다.
“무슨 일입니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 뵙겠습니다.
“약속?”
그런데 약속이라니? 이강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A/S를 요구할 모양인가?
-예, 완성됐습니다. 찾아 뵙겠습니다.
다행히도 이강우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맙소사!’
상황을 파악한 이강우는 기겁했다.
‘정말 7서클 마법 아티팩트의 복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한 거야?’
호령이 말한 약속은 이강우가 복제 마법 아티팩트를 받는 조건으로 본인이 확보한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칠성문에 빌려준다는 내용, 그 내용의 약속이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아티팩트 복제에 성공할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이 거래는 무조건 지켜야 한다.
“거래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십시오.”
-거래는 사하라 사막에서 하겠습니다.
사하라 사막!
유엔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3등급 몬스터, 모래군주 사냥을 위해 모일 때 하자는 의미다.
이강우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아티팩트를 마음껏 들고 다닐 수 있는 그곳이라면, 주변의 의심 없이 충분히 거래가 가능할 터.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강우가 곧바로 채유리를 바라봤다. 이강우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다음 여행지는 사막인데, 괜찮겠어?”
그 말에 채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어떤 의미에서는 천생연분이라 할 수 있는 둘이었다.
* * *
헬기 한 대가 거친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H가 그려진 장소 위에 천천히 내려왔다. 이윽고 헬기가 바닥에 닿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헬기의 문을 열어줬고, 곧바로 헬기에 탑승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홉 명의 사람들이 헬기에서 내렸고, 헬기에서 내린 이들은 곧장 주변을 바라봤다.
“대단하군.”
그런 그들의 주변을 가득 채운 건 드넓은 바다였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해가 펼쳐져 있었고, 거기서 다시 고개를 돌리면 그들을 반기는 건 거대한 갑판이었다.
“설마 항공모함 타고 목적지에 가는 날이 올 줄이야.”
포식자 팀, 한국을 대표해 사하라 사막에 등장한 모래군주 사냥에 참가할 그들을 위해 마련된 운송수단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미국이 보유한 최신 포드급 항공모함, 존.F.케네디 함이었다.
대단한 일이었다.
전세기도 타본 이강우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항공모함까지 움직이다니.’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팀이 모래군주 사냥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소식은 이미 여러 번 들었다.
일단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에 참가한 참가국 대부분이 자국을 대표하는 올스타팀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모인 팀의 숫자가 89개 팀이었고, 머릿수는 1천3백 명을 넘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몬스터 사냥을 잘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셈이었다.
그런 최정예가 모였는데, 나름 화끈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설마 항공모함이 지원될 줄은 몰랐다.
‘3대라고 했지?’
심지어 지원된 항공모함은 한 대가 아니었다.
지금 아프리카의 서쪽, 대서양에 1대, 지중해에 1대 그리고 현재 포식자 팀이 탑승한 케네디함은 인도양을 가로지르며 아프리카 동쪽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2015년 이후 이 정도의 전력이 몬스터 사냥을 위해 움직였던 적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때는 마법사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몬스터와 싸워온 백전노장의 최정예 마법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참가한 7서클 마법사가 세 명이었다. 이강우까지 포함하면 총 네 명인 셈.
‘여기서 패배하면, 인류의 패배나 다름없겠군.’
어마어마한 전력이다.
그렇기에 이 전력으로도 모래군주를 잡지 못한다면, 그 리스크는 적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강우는 의심했다.
‘만약 바츠무 족, 놈들이 수작을 부린다면 이곳보다 좋은 무대는 없겠지.’
오롯하게 모래군주하고만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필시 바츠무 족이 수작을 부릴 것이다.
이강우, 그는 그들의 수작에 맞서 싸워야 한다.
때문에 이강우는 각오를 마쳤다.
만약 바츠무 족이 이 무대에서 본색을 드러낸다면, 이강우도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필요하다면 야크센의 권능을 세상에 공개할 것이다. 안중현의 조언대로,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힘을 감춘 채 음지에서 활약하는 영웅으로 남을 생각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