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53화 (53/66)

53화. 7서클 마법 아티팩트

빛 한 점 들지 않는 터널을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아득하기 그지없는 그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이강우는 그 빛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빛이 환하게 시야를 가득 채우는 순간, 이강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 이강우를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다름 아닌.

“어? 대장 깼습니까?”

김재범이었다.

채유리, 김수애, 호령.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미녀들을 놔두고, 썩 잘 생기지도 않은 얼굴이 눈앞에 등장했을 때, 이강우는 천천히 다시 눈을 감았다.

“대장!”

그런 이강우의 행동을 모를 김재범이 아니다. 김재범이 헛웃음을 지으며 이강우를 불렀다.

그러나 이강우는 묵묵부답, 입을 다물었다. 더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니, 지금 상황이 어느 때인데 이런 장난을 칩니까?”

이강우의 노골적인 외면에 김재범이 헛웃음 대신 울상 비슷한 표정을 지은 채 이강우를 억지로 깨웠다.

결국 버티지 못한 이강우가 눈을 떴고, 김재범의 정면에서 한숨을 내뱉었다.

“와.”

김재범도 허탈감 가득한 한숨을 토해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병간호해 준 게 누군데…… 고맙다는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이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처음 본 얼굴이 미녀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내가 서러워서 태국을 가서 수술을 받든가 해야지.”

김재범의 그 투덜거림을 들은 후에야 이강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장난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재범을 봤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김재범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강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다행이다.’

살아있었다.

자기 자신도 그리고 김재범도…… 모두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와 동시에 이강우는 또 다른 기쁨을 느꼈다.

‘해냈다.’

이강우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순간 이강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기 시작했다. 그 기쁨 속에서 머릿속으로 모든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과 얼음의 군단이 싸우는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백점만점에 백이십점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꿈에서 봤던 것, 그 이상으로 대단한 실력을 보여줬다.

물론 활약상은 인상적이진 못했다. 돌원숭이의 강력함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때문에 위기가 왔지만, 그 위기 속에서 찰나만에 떠올린 절망의 태양과 붉은 뿌리의 응용인 절망의 뿌리를 강구해낸 건 분명 기적이었다.

보통 때라면 그런 조합을 감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강우, 용케 해냈구나!’

이강우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이윽고 이강우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말했다.

‘이 몸뚱이가 닳고 닳아 걸레짝이 되더라도, 그리 쉽게 넘기진 않는다.’

이윽고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몸을 움직이는데 문제는 없었다. 김재범이 그런 이강우에게 전후사정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말해 줬다.

“김수애 양이 대장 고치느라 탈진했습니다.”

“전신 골절이었을 텐데…….”

“대수술이었죠. 나름 의법사들하고 친해서 걔네들 수술하는 걸 몇 번 봤는데…… 김수애 씨 능력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습니다. 진짜 어마어마하더군요.”

온몸의 뼈가 성한 곳이 없었을 텐데…… 참 대단한 여인이다.

“출문은 찾았습니까?”

이강우는 질문과 함께 몸을 풀기 시작했다. 우득, 우득! 굳은 몸이 풀리는 소리가 꽤 컸다.

“못 찾았습니다. 진짜 나름 열심히 찾으려고 했는데 그 짧은 시간 내에 운 좋게 나오진 않더군요. 그리고 도중에 4등급 몬스터를 발견하는 바람에 걔 피해서 움직이느라…… 지금 수색 중입니다만, 아직도 남은 몬스터가 제법 되는지라, 당장 결과가 나올 것 같진 않았습니다.”

말을 하던 김재범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보다 대체 어떻게 잡은 겁니까?”

이강우, 그가 3등급 몬스터와 맞짱을 떠서 잡았다.

그 광경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보지 않았다고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그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는 이 또한 없었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강우는 이제 어디 가서 본인이 최강의 마법사라고 말해도 된다. 그만한 자격과 능력을 증명했다.

이강우는 그런 김재범의 질문에 다시 한번 생각했다.

3등급 몬스터 돌원숭이를 잡았다는 사실에 조금 전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그때를 돌이켜 보면, 오히려 등골이 오싹해졌다.

‘결국 운이 좋았지.’

이강우의 순수한 실력만으로 잡았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궁합이 안 좋았던 건 사실이다. 돌원숭이가 아닌 다른 타입의 몬스터였다면, 절망의 태양, 붉은 뿌리 그리고 불과 얼음의 군단, 세 가지만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궁합이 좋지 않다는 변명은 의미가 없다. 승리에 기뻐하는 건 좋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이강우가 대답 대신 이를 꽉 물었다.

‘그래, 결국 현실을 보면 간신히 임기응변으로 살아남았을 뿐이야.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심기가 뒤틀린 이강우를 보며 김재범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기분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7서클 마법 아티팩트 확보했습니다.”

* * *

이강우는 돌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덩이들은 완성된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 있었다. 덕분에 돌덩이의 정체가 돌원숭이의 사체라는 것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강우는 돌덩이를 바라보며 곧바로 마법을 썼다.

‘분석.’

숫자가 보였다.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머리 부분에 모인 마력 포인트가 무려 70만 포인트에 다다랐다. 이강우는 혀를 내둘렀다.

‘머릿속에 마나스톤이 있는 모양이군.’

이강우가 녀석의 머리를 좀 더 자세히 바라봤다. 비명을 내지르며 죽은 덕분에 녀석의 머리는 입을 벌린 채였다. 그런 녀석의 입안은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 이빨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다.

또한 녀석이 가진 붉은 보석 같은 눈동자는 여전히 흉흉한 기색을 뿜어대고 있었다.

이강우가 그런 돌원숭이의 머리통을 발로 툭툭 찼다. 묵직한 느낌이 발끝으로 전해졌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쪼개지도 못하겠지.’

이강우와 돌원숭이의 전투가 끝날 시점에 이강우를 구하기 위한 구조대가 움직였다.

총꾼이 수색대가 되어 상황을 파악했고, 전투가 끝난 걸 파악하는 순간 김수애가 곧장 이강우의 치료를 위해 달려왔다. 그렇게 김수애가 이강우를 치료하는 와중에 총꾼들은 눈치를 발휘해,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퍼진 돌원숭이의 사체 파편을 회수했다.

이후 회수된 사체 파편은 김재범의 소관으로 넘어갔고, 김재범은 나름의 연구를 시작했다.

문제는 연구를 위해 돌원숭이의 사체를 쪼개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김재범은 이강우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했었다.

“아니, 이걸 대체 어떻게 부셨습니까?”

돌원숭이의 몸뚱이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견고함을 자랑했다.

아니, 견고함이란 표현조차 무색할 정도의 강함이었다. 김재범의 마법으로는 제대로 된 생채기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고, 그래서 김재범이 투정을 부렸다. 이강우가 기절하는 사이 마음껏 돌원숭이의 사체를 분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강우는 머릿속에 떠오른 김재범의 표정을 지우며, 돌원숭이의 몸뚱이 위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냥 손바닥이 아니었다. 바츠무의 손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바츠무의 손으로 돌원숭이가 가진 마력을 흡수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강우가 살짝 혀를 찼다.

‘골치 아프게 됐군.’

애초에 바츠무의 손이 통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걸 어떻게 먹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돌덩이다. 당연히 씹을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몸뚱이 위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도 부서지지 않을 놈이다. 이강우가 이놈을 터뜨린 게 용한 수준이었다.

또한 이강우는 많은 걸 요리해봤지만, 돌덩이를 요리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걸 하는 인간도 없다. 심지어 이 세상 생명체 중에 돌을 주식으로 삼는 생명체는 없다.

‘아니지. 자르는 게 문제야.’

일단 당장 이걸 자르는 것부터 문제다. 약 서른 마리의 몬스터 그리고 이강우가 빈혈을 느낄 만큼의 피와 7서클 마법사인 그가 마력 쇼크를 느끼기 직전 수준의 마력을 절망의 태양을 이용해 뭉친 후에 만든 절망의 뿌리, 그걸 이용해 식칼을 만들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무기나, 마법으로 가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순간 이강우가 생각을 바꿨다.

‘차라리 이걸 방어구나 무기로 써먹는 게 낫겠어.’

어지간하면 먹어 치우겠는데, 지금 상황은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원래 몬스터의 가죽 따위는 식용보다는 여러 소재로 쓰인다. 아이기스 슈트만 하더라도 몬스터의 가죽 등을 이용해 만든 방어구다.

하물며 놀라운 방어력을 가진 돌원숭이의 사체는 훌륭한 갑옷이나 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꼭 어떻게든 섭취해야 하는 게 있었다.

‘그래도 머리는 먹어야지.’

약 70만 포인트의 마력이 집중된 머리! 이 머리의 마력만큼은 어떻게든 흡수해야 한다.

특히 머리 안에 필시 마나스톤 혹은 그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있을 터. 그건 무조건 섭취해야 한다.

‘권능 강화를 위해서라도…….’

불사황제는 그것을 먹어 치우면, 자신의 권능을 보다 오롯하게, 보다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불사황제의 5대 권능을 강화해주는 검붉은 책을 구매하기 위해선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꼭 먹어야 한다.

결국 일단 골부터 부셔야 한다는 의미.

‘설마 난생 처음 먹는 원숭이 골이 돌일 줄이야. 진짜 골 때리는군.’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7서클 마법을 확인해 볼 차례인가?’

* * *

7서클 마법.

모래시계문이 세계에 등장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단 한 번도 세상에 등장한 적 없는 마법이다.

이런 7서클 마법은 위력을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6서클 마법만 하더라도 그 위력은 무지막지한데, 그것을 뛰어넘는 마법을 상상한다는 건…… 어지간한 상상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일 테니까.

그런 7서클 마법을 품고 있는 마법 아티팩트가 이강우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생김새부터가 기존의 마법 아티팩트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컸다. 이번에 포식자 팀이 발견한 7서클 마법 아티팩트는 반지나, 목걸이 같은 모양이 아니었다.

정육면체 모양의 큐브였고, 성인 남자의 손바닥 위에 딱 올라갈 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큐브 외부에는 기괴한 문양이 음각과 양각, 다양한 방법으로 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강우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큐브를 바라보며 옆에 있던 김재범에게 질문했다.

“무슨 마법이 걸렸습니까? 불? 얼음?”

그 질문에 김재범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장, 이걸 쓸 수 있는 마법사가 대장 빼면 없는데 그걸 나한테 질문하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 확보한 7서클 마법 아티팩트에 어떤 마법이 걸린 지는 아무도 몰랐다.

채유리가 한 번 써 보려고 도전했지만, 어마어마한 마력을 주입해도 미동도 하지 않은 탓에 포기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7서클 마법 아티팩트라는 명확한 증거였다.

어쨌거나 이 큐브에 담긴 마법이 뭔지,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이강우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배기 7서클 마법이군.’

더불어 이강우에게도 7서클 마법은 미지이자, 신비였다.

분명 이강우가 플래티넘북을 통해 습득한 불과 얼음의 군단이나, 검은 파리도 표기상은 7서클 마법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강우의 능력에 맞춰서 불사황제가 다운그레이드 해준 것뿐이다. 순수한 의미의 7서클 마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진짜배기 7서클 마법과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셈.

여기서 이강우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봤다.

‘붉은 뿌리와의 궁합.’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무수히 많은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해서 절망의 태양을 살찌운 후에 그 절망의 태양에 붉은 뿌리를 심고, 그렇게 만들어진 붉은 뿌리 무기에 7서클 마법을 주입한다면?

분명한 건, 위력은 끔찍한 수준이 될 것이다.

‘끝내주는군.’

이강우는 큐브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런 이강우의 모습에 김재범이 넌지시 말했다.

“말만 하시면 비슷한 거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가짜 건네줘도 칠성문 애들은 모를 겁니다.”

김재범이 칠성문과 이강우 사이의 거래를 알 리 없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칠성문이 자국 내의 모래시계문 사냥을 통해 이강우가 확보한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그냥 줄 리가 없다는 사실은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할 터.

“설마 대마도사인 챠이 수를 불러서 테스트를 해 보겠습니까? 한국으로 튈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을 겁니다.”

김재범은 나름 진지하게 말했고, 그 말에 이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여러모로 유쾌한 사내다.

어쨌거나 이 소득은 컸다.

‘이제 남은 건 출문뿐.’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확보했고, 3등급 몬스터도 잡았다.

이제 출문만 찾으면 이번 유적 사냥은 과정이야 어쨌건, 최고의 결과물로 끝날 것이다.

‘최대한 빨리 출문을…….’

이강우는 큐브를 내려놓았다.

‘아니지.’

이 순간 이강우는 스스로를 돌아봤다.

‘이걸로 만족할 순 없어.’

돌원숭이와의 싸움에서 이강우는 자신의 부족함을 그 누구보다 제대로 깨달았다.

그런데 고작 7서클 마법을 확보했다고 좋아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런 이강우의 눈에 하늘이 들어왔다.

‘그래.’

어쩌면 이건 기회였다.

이곳 유적 안에서는 그 어떤 위협 없이 버틸 수 있다. 밖에 있는 자들이 문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 이상, 위스프의 습격 같은 걸 염두에 둘 필요도 없다.

심지어 이 모래시계문은 파괴도 쉽지 않다. 이보다 멋진 연습장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이기도 했다.

이강우가 김재범을 바라봤다. 김재범은 이강우가 내려놓은 큐브를 잽싸게 손에 쥔 후에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의 눈빛은 당장에라도 이걸 해부해서 속을 확인해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강우가 그런 김재범에게 말했다.

“마나 서클 자극 비약 레시피 알고 싶지 않습니까?”

“아, 절대 이거 부수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조금도 안 했습니다.”

갑자기 딴 소리를 내뱉은 김재범이 일시 정지했다. 말을 뱉은 상태로 굳었고,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어, 잠깐만요, 대장. 뭐라고 그랬습니까?”

“마나 서클 자극 비약 레시피.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강우의 재차 질문에 김재범은 얼빠진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수, 수강료는 얼마죠?”

정말 얼빠진 대답이었다.

* * *

“마나스톤이 더 필요하시다고요?”

능숙한 영어 솜씨로 상대방과 통화를 하던 류복희가 잽싸게 수화기 옆에 놓아둔 계산기의 숫자를 두드렸다. 곁눈질로 계산기에 표시된 숫자를 확인한 류복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구해 드릴 순 있습니다. 가격은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돈을 위해서 회장님과 거래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그 방법으로 전달토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렇게 통화가 끝났고, 통화가 끝나는 순간 류복희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뱉었다.

‘로드리게스 회장이 평소에도 자주 마나스톤을 요구했지만, 이번에는 양이 너무 많아.’

로드리게스 회장.

그는 류복희의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자금력 부분에서 류복희는 굳이 로드리게스 회장의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목적은 두 가지.

하나는 정보다.

로드리게스 회장과 접점이 있다는 건, 정보력을 크게 넓힐 수 있다는 의미이니까.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지?’

두 번째는 로드리게스 회장의 위치, 그 자체다.

일단 그는 블랙 스택 창립에 가장 결정적인 지원을 한 인물이다. 이후 블랙 스택의 실권을 잡지 못해, 블랙 스택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블랙 스택이 이 세상을 위협하는 모래시계문의 주인들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들과 가장 가까운 접점을 가진 로드리게스 회장은 간과 쓸개를 빼서 주더라도 접점을 마련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다니, 대체 이유가 뭐지?’

그런 로드리게스 회장이 막대한 양의 마나스톤을, 전 세계적으로 수집하고 있었다.

류복희는 이미 다른 루트에서 로드리게스 회장이 마나스톤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확보했다. 돈으로 따지면, 그 액수가 천억 원에 다다를 정도로 엄청났다.

‘포션 제조는 아닐 테고.’

마나스톤의 거래는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 정부가 유통을 금지하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 국가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했던 경우는 없다.

국가가 마약거래 하지 말라고 해서 마약사범이 없는 나라가 있었던가?

마나스톤도 마찬가지다. 마나스톤 밀거래는 활발하다. 특히 마나 포션 제조 기술의 등장으로 마나스톤에 대한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했다.

동시에 공급도 늘어났다. 인류는 적응의 생물이란 말처럼, 무시무시한 모래시계문도 이제는 인류가 몬스터 고기와 마나스톤을 얻을 수 있는 양식장이 되어 버렸다.

로드리게스 회장은 이런 밀거래 시장의 숨은 큰손이었고, 그게 류복희가 로드리게스 회장과 접점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분명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뭔가와 관계가 있다. 괴식가가 건네준 정보 때문에 뭔가를 벌이는 게 분명해.’

어쨌거나 그런 로드리게스 회장의 움직임에 류복희는 골치가 아팠다.

고래가 꼬리를 치면 파도가 생기는 법.

‘그 인간이 작심하고 꿍꿍이를 벌이면…… 미치겠군.’

더군다나 로드리게스 회장이 확고한 목적, 인류 구원 같은 대의명분을 추구하는 타입이라면 정체를 드러내고 손을 잡겠는데, 류복희가 봤을 때 그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탐욕스러운 자였다.

그가 블랙 스택의 명예직에 있으면서도, 그런 블랙 스택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건, 그가 블랙 스택을 의심해서, 그들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자신의 지배하에 놓이지 않으니까 심기가 뒤틀려서 반대세력을 만드는 것뿐이다.

선의를 가진 행동도 때때로 처참한 결과를 만드는 법인데, 선의는 조금도 가지지 않은 채 자기 욕심에 충실한 인간의 행동은 언제 암담한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알 수 없는 법.

아니, 로드리게스 회장의 행동이 세계정세에 악재가 될 가능성은 꽤 높았다.

‘그나마 호재는 룬 코드 복사가 생각보다 성공적이라는 점이겠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희소식도 있었다.

칠성문의 유적 연구소인 곤륜에서 진행 중인 7서클 마법 아티팩트의 룬 코드 분석 및 복제가 굉장히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 5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녹여서, 7서클 마법 아티팩트 제조에 필요한 성분을 추출해야하지만, 문제 될 사실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하나라도 더 확보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이니까.

‘유엔도 움직이고.’

또한 유엔이 드디어 칼을 뽑았다. 클로저들을 움직였고, 전 세계 마법강국들에게 통보를 했다.

인류를 위해서, 각 나라가 3등급 모래시계문 클로즈에 전력을 다하라고. 유엔 마법부의 지침에 각국은 3등급 모래시계문 클로즈를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만간 3등급 모래시계문 클로즈를 위한 러시가 시작될 것이다. 피해는 있겠지만, 감수해야 할 피해고, 그 피해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결과를 토대로 인류는 승리할 것이다.

인류는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위기를 맞이했지만, 언제나 승자로 살아남았으니까.

“음.”

그때 류복희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문자를 확인한 류복희는 머릿속에 있던 모든 고민을 일단 뒤로 했다. 놀란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110일 만에 클로즈에 성공했다고?’

포식자 팀, 그들의 무사귀환을 알리는 문자였다.

* * *

큰 온천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도 가뿐하게 수용할 수 있을 법한 온천이었는데,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전세를 낸 듯, 소수의 사람만이 온천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포식자 팀이었다.

유적 클로즈를 마친 이후, 그들은 칠성문이 마련해준 온천에서 4달 가까운 유적 사냥의 회포를 풀기 위한 휴식에 돌입했고, 오늘은 그 휴식일의 첫날이었다.

당연히 포식자 팀은 그 첫날부터 온천욕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으럇차.”

가장 먼저 온천에 몸을 담근 건 김재범이었다. 김재범을 시작으로 모두가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온천탕 안에는 여러 종류의 음료와 잔이 담긴 나무통이 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김재범이 그 통 중 하나를 제 앞으로 가져왔다. 차가운 캔맥주가 담긴 통이었고, 김재범이 곧바로 칭다오 맥주를 집어 들었다.

“한 잔 하실 분?”

김재범의 질문에 하선우가 대답 대신 잽싸게 맥주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

김재범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가 막 온천으로 들어온 이강우를 보며 말했다.

“대장, 한 잔 하실래요?”

이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재범은 어깨를 으쓱했고, 곧바로 다른 이들에게 맥주를 권했다. 이강우를 제외한 모두가 맥주캔을 하나씩 들었고, 온천에 몸을 담근 채로 맥주캔을 따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전세 낸 온천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의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살아서 다행입니다.”

“여기에 뿔칩이나 좀 먹었으면…….”

“그러기에 다 먹지 말고 남기자고 말했잖아? 그걸 여기서 맥주에 같이 먹었어야 했는데…….”

살아있기에 누릴 수 있는 이 호사를 마다하는 자는 없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강우는 온천물로 가볍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그 후 드러난 이강우의 눈빛은 여전히 긴장감과 진지함을 품고 있었다.

‘소득은 크다.’

이번 유적 소득은 여러모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역대 유적 사냥 중 최고 수준이었다.

일단 3등급 몬스터를 잡았다.

그리고 7서클 마법 아티팩트도 발견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드넓은 유적을 연습장 삼아 기량 발전을 위한 연습도 했다.

굳이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검붉은 책을 구매했으나 어떤 권능을 강화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그 검붉은 책, 일명 블러드북을 구매하는 작업이 쉽진 않았다.

일단 돌원숭이의 골을 쪼개는 게 정말 어려웠다. 다시 한번 절망의 뿌리를 만들기 위해 몬스터를 어마어마하게 사냥해야 했다. 절망의 태양과 붉은 뿌리의 융합 기술인 절망의 뿌리를 이용해서 만든 도구만이 돌원숭이의 몸을 쪼갤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돌원숭이의 골을 쪼갰고, 간신히 마나스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돌원숭이의 마나스톤은 바츠무의 손으로 흡수가 불가능했고, 그냥 꿀꺽 삼키기에는 크기가 너무 컸다. 씹어 먹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결국 가루를 내어서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작업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역이었다.

‘정말 힘들었지.’

마음 같아서는 망치 따위로 두드려서 부수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했다. 바닥에 바위를 두고 돌원숭이의 마나스톤을 망치를 치면 밑에 있는 바위가 부서질 뿐, 마나스톤은 멀쩡했다.

결국 감자칼로 감자를 깎듯, 절망의 뿌리로 만든 칼로 가루를 긁어내듯 긁어냈다. 이 작업도 쉽진 않았다.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이 어떤지, 이강우는 난생처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크으…….’

가장 고역스러운 작업은 그 가루를 먹는 작업이었다.

이강우는 그때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최악이었어.’

이강우가 먹어본 것들 중에서 최악이라고 하면 역겨운 맛을 자랑하는 마령화와 극한의 매운맛을 자랑하는 제이드 플라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원숭이의 마나스톤은 그 둘과 비교될 만큼, 극한의 쓴맛을 자랑했다. 입에 넣으면 혀와 목이 쓴맛에 얼얼해질 정도였다.

먹을 때마다 속도 쓰렸다. 제이드 플라워조차도 무리 없이 소화했던 이강우의 위장이 마나스톤 가루를 소화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강우는 가루약 먹듯, 매일매일 조금씩 먹어야 했다. 그 대가로 매일매일 설사를 한 것도 고역 중 하나였다.

그렇게 간신히 먹어서 구한 블러드북을 쉽사리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우려되는 점도 있었다.

블러드북을 통해 권능이 강화됐을 때 과연 그 능력을 이강우가 쓸 수 있을까? 만약 권능이 강화되어 요구조건이 8서클이 되어버린다면?

‘너무 강해서, 오히려 고민이군.’

그렇게 된다면 이강우는 버닝 마나를 쓴 상태에서만 그 마법을 쓸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권능에 이강우가 잡아먹힐지도 몰랐기에 당장의 선택은 미뤄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 선택을 언제까지나 미뤄둘 수 없다는 것.

‘앞으로 더 위험한 일에 투입되겠지.’

이제 세계가 포식자 팀을 그냥 두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 * *

거대한 공간이었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런 장소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그 공간 안을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가득 채우고 있다.

그 나무에는 다양한 형태의 과일이 매달려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준비된 크레인을 타고 움직이며 나무에 달린 과일을 조심스럽게 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공간이 고작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 사내가 이 모든 과정을 따로 마련된 방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하게 눈빛을 빛내며 광경을 바라보는 이는 다름 아니라 리볼버 크로포드였다.

언제나 귀찮아 죽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생기가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다 됐어.’

그 순간 크로포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비서, 콜먼이 입을 꽉 다문 채 서 있었다.

“로드리게스 회장에게 슬슬 작업을 준비해 달라고 전해줘.”

크로포드의 명령이라면 언제나 완벽하게, 일언반구 없이 행하던 콜먼.

그런데 지금 그 콜먼이 크로포드의 말에 예, 라는 대답 대신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일은 위험할 듯싶습니다.”

콜먼, 그는 그저 충실한 개가 아니다. 그가 그저 단순한 예스맨이었다면, 절대 크로포드란 사람 옆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크로포드는 위치도 위치이고, 성격도 괴팍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며, 무엇보다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였으니까.

그런 그를 오랜 세월 보좌를 한 콜먼이 보통 사람일 리 없다. 그는 마법사 크로포드와 연구가 크로포드, 둘 모두를 동시에 서포트 할 수 있는 지식 수준과 능력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비서였다.

때문에 콜먼은 지금 크로포드의 모습이 이질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크로포드는 그답지 않게 너무 들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나무는 위험합니다.”

크로포드는 게으르다.

그리고 게으르기에 그는 훌륭한 연구가가 될 수 있었다.

당장 가시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실험 따위를 시도하고, 그걸 반복하는 게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는 과정 속에서 여러 번의 생각을 거치고, 그 생각에 확신이 든 후에야 실행에 옮기는 게 크로포드란 사내였으니까.

남이 보기에는 그냥 게을러서 연구와 실험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뿐, 크로포드는 무엇을 시작하면 언제나 좋은 결과, 유효한 결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크로포드는 이번 프로젝트…… 일명 꿈의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와 관련된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열정과 적극성을 품은 채 진행하고 있었다.

콜먼이 크로포드의 비서가 된 이후로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았던 적은 굳이 꼽자면 이강우를 발견했을 때 이후로 없었다.

심지어 지금 크로포드가 준비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위험하겠지.”

그 사실은 크로포드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8서클의 경지에 도달하는 일인데, 당연히 위험하겠지. 아무렴. 위험하지 않으면 그게 웃긴 거겠지.”

크로포드.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을 세상에 탄생시킨 그의 목표는 그 방법을 이용해 8서클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론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극도로 압축된 마력 덩어리를 재료로 삼아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을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자의 돌 연구를 했던 것이다. 마력을 정제해서 보다 순도 높고, 질도 높고, 부피와 크기를 작게 만드는 연구가 곧 현자의 돌 연구였으니까.

그러나 그 연구는 어느 순간 벽에 가로막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눈앞의 나무가 등장했다.

꿈의 나무!

놈은 모든 마력을 먹어 치워, 응축해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현자의 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무였고, 크로포드는 이 나무를 이용해 8서클 개방을 가능케 해 줄 비약을 만들 속셈이었다.

당연히 임상시험은 없었다. 7서클 마법사 중 누군가를 데려다가 그에게 비약을 시험하는 건 불가능했을뿐더러, 결과가 좋을 경우 그야말로 죽 써서 개를 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첫 비약은 오로지 크로포드만이 복용할 수 있는 셈.

“정말 위험합니다. 전 만류하겠습니다.”

콜먼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임상시험조차 하지 않은 걸 먹는다는 건, 독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크로포드는 절대 그런 식으로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되는 사내였다.

“자네의 태도는 이해해.”

크로포드는 그런 콜먼의 거듭된 의견을 존중했다.

그러나 존중할 뿐, 그 의견을 따를 생각은 없었다. 크로포드가 직접 수화기를 들고, 로드리게스 회장에게 연락을 했다.

“로드리게스 회장,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보러 오실 겁니까?”

크로포드의 말을 들은 콜먼은 이를 꽉 물었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 * *

포식자 팀의 휴일은 길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꿀맛 같았다. 온천 하나를 통째로 전세를 냈고, 평소라면 대여섯 명이 넉넉하게 지낼 방을 개인이 쓸 수 있었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또한 요구하는 모든 게 제공됐다. 주문할 수 있는 맥주 중 고를 수 있는 맥주 종류만 100종류가 넘어갔다. 오래 전 왕조차 누리지 못하는 호사였다.

하지만 그런 휴일이 멈추지 않자, 슬슬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이거 가두는 건 아니지?”

첫 일주일은 그냥 지나갔지만, 열흘이 되고 보름째에 접어들었을 때도 칠성문이나 중국 정부는 딱히 이렇다 할 접근을 하지 않았다. 좋게 보면 간섭이 없는 셈이었지만, 세상만사에 공짜는 없는 법 아닌가?

이강우는 애초부터 긴장을 풀지 않았지만, 이강우 역시 접촉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이런 경우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접근이 없는데?’

현재 칠성문과 포식자 팀은 정산을 마치지 않았다. 포식자 팀이 유적에서 얻은 것들 중 중요한 것들…… 마법 아티팩트와 돌원숭이의 사체는 여전히 포식자 팀이 보관 중이었다. 이강우가 본인이 머무는 방에 보관한 채로 매일 감시를 하고 있었다.

물론 사전 합의는 했다. 칠성문이 포식자 팀에게 3등급 모래시계문을 비롯해 유적 사냥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포식자 팀이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구할 경우, 아티팩트 복제를 위해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빌려주기로.

칠성문 입장에서는 괜히 나서서 그 합의가 공중분해되는 것보다는 포식자 팀을 최대한 배려해준 후에 일을 처리하고 싶을 터.

또한 그 거래를 위한 조건이 있었다. 이미 사전에 칠성문이 확보한 7서클 마법 아티팩트 복제품이 완성됐을 경우, 그 완성품을 이강우에게 준다는 것, 그게 조건이었다.

‘복제품이 완성되지 않아서 시간을 끄는 건가?’

즉, 상황을 보면 아직 칠성문은 복제품 제작에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일 가능성도 없진 않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두고 그렇게 밑천이 드러나는 수작을 부리는 건 좀 그렇지.’

하지만 반대로 상대는 중국 정부이며, 칠성문이란 거대 세력이다. 상황이 급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강우로부터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강탈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이 있다.

무엇보다 국가가 추구하는 이익, 대의 앞에서 개인의 이익은 가차 없이 짓밟히는 법이다.

조용함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상이다.

‘대체 언제 접근할 생각이지?’

분명한 건 언제까지 이렇게 포식자 팀을 놔두진 않을 것이다.

‘먼저 아쉬운 쪽이 지는 거다.’

여기서 이강우는 참을성을 발휘했다.

그런 이강우에게 칠성문이 접근한 건, 포식자 팀이 유적 사냥을 마친지 25일째 접어들 무렵이었다.

“이강우 씨.”

류복희, 그가 이강우를 찾아왔다.

“리볼버가 쓰러졌습니다.”

어마어마한 소식과 함께.

* * *

유엔 휘하 마법부의 간부들이 긴급 소집됐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등장한 3등급 몬스터, 모래군주에 대한 처리에 대한 긴급회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진 긴급 소집이었다.

1년에 한 번 하면 많이 하는 긴급 소집이 연달아 일어나니,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모든 약속을 캔슬한 채 긴급회의를 위한 회의실로 향하는 마법부 간부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어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정말 심각한 일인 모양이군.”

“설마 또 다른 곳에 3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건가? 아직 모래군주조차 처리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마법부의 간부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자리에 참석한 건 마법부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쿠스였다. 그는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았고, 상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경고했다.

“오늘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네.”

마법부의 긴급회의 내용을 외부로 발설하는 자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경고한다는 건, 이번 사안이 그만큼 비밀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터.

하물며 마르쿠스는 이런 부분에서는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괜한 과장을 하지 않는 인물.

그런 그가 본론을 꺼내기 전부터 단호하게 말하자,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긴장했다.

“크로포드가 현재 의식불명 사태에 빠졌다.”

크로포드.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여기 있을 리 없다. 미국을 대표하는 마법사이자, 세계적인 길드 블랙 스택을 대표하는 마법사이자, 모래시계문 관련 연구 분야 중 마나스톤 및 마나 서클 분야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연구 업적을 내놓은 연구가를 모른다면, 마법부 간부라는 호칭 자체를 알아서 반납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그가, 만약 노벨상에 마법이란 분야가 있었다면 필시 한 번 이상은 노벨마법상 같은 걸 탔을 그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맙소사.’

모두가 놀랐다.

동시에.

‘설마?’

‘습격을 받아서? 위스프 놈들이 움직였나?’

‘몬스터 사냥에서? 하지만 리볼버를 그렇게 만들 만한 몬스터는 3등급 이상밖에…….’

‘미국에 3등급 몬스터가 출몰한 건가?’

우려했다.

만약 크로포드가 누군가에게 당했다면? 심각한 사건이다. 습격을 받았다면, 그건 거의 9.11테러에 버금가는 사건이 될 것이다.

몬스터에게 당해도 문제다. 여섯 개의 마법이면, 어떤 몬스터도 잡을 수 있다고 평가받는 리볼버가 당할 정도의 몬스터라면, 어마어마한 놈일 테니까.

그런 간부둘의 우려 가득한 표정을 본 마르쿠스가 곧장 말을 이어갔다.

“사고다.”

그나마 다행히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물론 의문은 여전히 진행됐다. 대체 어떤 사고가 났기에 크로포드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단 말인가?

“정확한 사유는 블랙 스택에서 밝히지 않고 있는바,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다.”

그 말에 모두가 의문 대신 이해를 했다.

‘당연한 조치겠지.’

‘리볼버가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끔찍하군.’

리볼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니까. 가짜를 내세워서라도 리볼버에게 일어난 사건을 은폐할 필요가 있다. 이미 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 대체 왜 그 소식이 여기까지…….’

오히려 반대로 크로포드가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사실이 이 간부 회의에서 언급된 게 신기할 지경이다.

블랙 스택은 절대 이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이 소식 때문에 간부 회의가 소집됐다. 아무리 이번 회의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비밀이란 건 많은 이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

하물며 여기 모인 이들은 저마다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들이다. 크로포드의 부재를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의 부재를 염두에 둔 행동만으로도 이미 적지 않은 파급력을 가질 만한 자격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마르쿠스가 공개했다.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크로포드가 사전에 남긴 유언 때문이네.”

유언!

“물론 아직 그가 죽은 건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죽거나 혹은 지금과 같이 본인이 온전한 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경우에 대비해 유언을 남겼네.”

크로포드는 지식인이다. 그가 자신의 지식을 이곳저곳 떠벌리며 자랑하는 걸 즐기는 이는 아니지만, 학자라면 최후의 순간……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자신이 이룩한 결과만큼은 남기고 싶어 하는 법이다.

하물며 마법사의 삶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크로포드 정도 되면 매 사냥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이다.

당연히 그가 남긴 유언은 자신이 이제까지 이룩한 지식에 대한 것일 터.

모두는 그렇게 예상했고, 그 예상 그대로.

“마나 서클 자극 비약 레시피를 사용할 권리를 임시로 유엔 마법부에 양도한다.”

지식의 양도였다.

모두가 숨을 삼켰다.

‘이런…….’

마나 서클 자극 비약 레시피.

세상 모든 마법사들, 모든 국가와 기업이 가지고 싶어 하는 지식이다. 크로포드를 더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주는 결과물이다.

만약 크로포드가 사업에 생각이 있거나, 돈 욕심이 많았다면 그는 그 레시피를 이용해 진작에 세계적인 대부호 중 한 명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게 유엔 마법부의 손에 넘어왔다.

“순수한 양도입니까?”

물론 유엔에게 그 지식을 준 건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몇 가지 조건을 걸었네. 일단 레시피를 볼 수 있는 건 크로포드의 유언장에 적힌 사람들만 가능하네. 두 명이지. 제조 역시 그 둘만 가능하네. 또한 생산할 수 있는 양 역시 제한이 있고, 이 모든 것은 10년 동안만 유효하네. 이후에는 그 레시피를 폐기하고, 레시피를 본 둘 역시 평생 입을 다물고 살아가야겠지. 더불어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의 상업적 이용 역시 불허.”

크로포드는 조건을 걸었다. 제법 빡빡한 조건이었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건이었다.

“상업적인 이유만 아니라면, 사용 방법 등은 우리가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겁니까?”

“그게 우리가 이제부터 논의를 해야 할 일이지.”

어쨌거나 유엔에게는 어마어마한 도구가 생겼다.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을 이용하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물론 생산 가능한 수량에 제약을 걸었으니,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게 간부 회의가 소집된 이유였다.

그것을 논의하는 것.

“잘 됐습니다.”

논의는 곧바로 시작됐다.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을 상품 삼아서, 이번 기회에 소극적이었던 세계 각국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다음, 사하라 사막에서 활동 중인 모래군주를 처치하는 겁니다.”

일단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하라 사막에 등장한 모래군주였다.

아직까지는 사하라 사막에서만 활동하고 있지만, 언제 놈이 활동영역을 넓힐지 모른다. 특히 가장 우려되는 건, 녀석이 사하라 사막에서 활동하면서 또 다른 3등급 몬스터 혹은 그에 준하는 몬스터가 모래시계문을 박차고 나올 가능성이다.

사하라 사막에 몬스터가 쌓이기 시작하면, 아프리카는 정말 죽음의 땅이 되어버리고, 그다음은 유럽이다.

“동감입니다.”

“이번 사태를 막는 게 어느 때보다 시급합니다.”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을 상품으로 건다면, 이제까지 소극적이었던 마법강국들이 태도를 바꿀 것이다.

그때 마르쿠스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내 의견은 다르네. 그 일도 분명 시급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지. 무엇보다 버튼조차 어찌하지 못한 놈을 마법사의 머릿수가 채워진다고 해결될 리도 없고.”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7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일 터.”

“하지만 7서클 마법 아티팩트는…….”

“하나만으로는 안 되겠지. 그러니까 현재 각국이 진행 중인 마법 아티팩트 복제 기술을 하나로 통합하는 걸세.”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아티팩트 복제 기술은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만약 전 세계를 대표하는 마법강국들이 그 기술을 서로 공개하고, 공동 연구에 나선다면, 좀 더 이른 시일 내에 더더욱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터.

“그게 좋을 듯합니다.”

“찬성합니다.”

반대는 없었다.

* * *

강희.

즈믄나래의 초대 길드 마스터인 그는 현재 자신의 저택을 감옥 삼아 지내는 중이었다.

1심에서 그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연히 강희는 항소를 했다.

물론 항소를 한다고 강희가 바쁘거나 신경 쓸 일은 없었다. 그와 관련된 문제는 그가 고용한 변호사들이 알아서 해결해줄 테니까.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무기한의 휴가를 아낌없이 즐겼다.

그런 휴가 속에서 마르쿠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르쿠스는 마법부의 간부 긴급 회의에서 나온 내용들을 짤막하게 전달했다. 그 말끝에 제물을 바칠 때가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고, 통화를 마친 강희는 미소를 지은 채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뱉었다.

“사육되는 돼지는 자신이 먹는 사료의 의미를 모르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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