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52화 (52/66)

52화. 돌원숭이

“오늘 메뉴는 뭡니까?”

장린이 남긴 연구 자료를 검토한 김재범이 식사를 준비하는 김수애에게 질문했다. 김수애는 그런 김재범의 질문에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흑혈우에요.”

무덤덤한 정도가 아니라 차가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김재범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차별이 너무 심하네.’

만약 똑같은 질문을 이강우가 했다면, 자신이 어떤 요리를 만드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심지어 그 요리에 소금이 몇 알갱이가 쓰이는지도 말해 줬을 것이다.

물론 김수애가 이강우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지만, 그래도 온탕과 냉탕 수준을 뛰어넘는 대접을 받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김재범이 뚱한 표정으로 김수애를 바라봤다.

하지만 김수애는 그런 김재범의 반응에 감흥도, 관심도 없다는 표정만 지었다.

‘아주 그냥 나만 찬밥이네.’

그렇다고 여기서 김재범이 한바탕 난리를 피울 순 없다. 김수애의 심기는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 수틀리면 그녀가 요리에 이상한 걸 넣을 수도 있다. 독이 아니더라도 좋다. 남들은 설탕 넣어주는 걸 소금만 넣어줘도 아주 제대로 상대를 골탕 먹일 수 있으니까. 더불어 그녀는 유일한 치료 마법의 소유자다. 밉보이면 끝장이다.

‘여하튼 대장은 복도 좋아. 애인이 있는데, 이런 여자가 좋다고 여전히 달라붙는 걸 보면. 그러고 보니 이 여자도 웃긴단 말이야. 아니, 대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렇게 입맛이 대단해서 몬스터밖에 못 먹는다면 그냥 사다 먹으면 될 일 아닌가? 혹시 다른 이유로 대장하고 붙어 다니는 거 아니야?’

김재범이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림을 되새김질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김수애가 포식자 팀을 위한 저녁 식사 메뉴를 완성시켰다. 그녀가 만든 요리는 며칠 전 이강우가 잡은 흑혈우의 안심과 등심을 이용한 스테이크였다.

그러나 보통의 스테이크와는 비교를 거부했다.

“스테이크이지만, 포크와 나이프는 필요 없어요. 숟가락으로 퍼 먹으면 될 거예요.”

그 자체만으로도 연한 흑혈우의 육질. 그런 육질을 숙성과정을 통해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것도 그냥 숙성이 아니라, 김수애는 자신의 혀를 이용해 맛이 절정이 다다르는 포인트를 정확히 잡았다.

여기서 다시 김수애는 재료들을 가지고, 흑혈우의 육질을 더더욱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녀 말대로 숟가락으로도 퍼먹을 수 있는 부드러움의 극치를 완성했다.

여기에 차갑게 식힌 흑혈우의 피가 음료로 추가됐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흑혈우의 피가 준비된 와인잔의 절반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저 와인잔은 누가 가지고 온 겁니까?”

와인잔을 본 총꾼 한 명의 의문이었다.

보통 유적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식기는 최대한 부피를 줄일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하며, 내구성이 좋은 것들로 선정된다. 그래야 다른 중요한 보급품을 더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와인잔은 쓸모에 비해 부피를 많이 차지하고, 휴대는 당연히 불편하며, 내구성은 거론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볼품없다.

유적에서 마법 아티팩트보다 보기 힘든 물건이란 소리다. 그런 물건이 나오니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물론 못 가져올 건 없지만, 보급품과 관련된 문제는 언제나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멋대로 자기 용품을 가져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심각한 문제다.

모두가 혹시? 하는 눈빛으로 김수애를 바라봤다. 미식가인 그녀가 개인 용품에 와인잔을 추가한다는 건 의외로 있을 법했다.

그러나 김수애는 그 정도까지 세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여인이 아니었다.

“제가 가지고 온 게 아니에요. 선발대의 보급품 상자에 있었어요. 멋진 와인도 같이 말이죠.”

선발대의 보급품.

그 말에 모두가 동시에 떠올렸다.

‘최후의 만찬이군…….’

죽음이 예고된 유적 탐사를 앞두고, 최후의 만찬을 위해 와인잔과 멋진 와인을 들고 유적으로 들어가는 걸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깨끗하기 그지없는 와인잔은 분위기를 더욱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기껏 준비한 최후의 만찬마저 즐기지 못했다는 의미이니까. 그 와인잔을 바라보는 포식자 팀의 시선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그때 이강우가 와인잔을 들고, 단숨에 와인잔을 비웠다.

그 후에 이강우가 입을 열었다.

“맛있는 음식 맛있게 먹읍시다.”

착잡한 분위기를 가질 필요는 없다.

“결국 다들 먹고 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이강우의 말에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라도 지었다.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은 법이지.”

모두가 자리에 앉았고,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김수애가 말한 것처럼, 안심과 등심, 두 덩이의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고깃덩이를 푸딩 파내듯, 숟가락으로 파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이들도 쉽게 숟가락을 통해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네.’

‘이 정도로 부드럽다니…….’

그렇게 숟가락 안을 채운 스테이크를 입 안에 덥석 집어넣는 순간.

‘와우!’

고기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살살, 이가 아니라 잇몸으로 씹어도 될 정도로 부드러운 육질이 느껴졌다. 더욱더 신기한 건 고기의 결이 분명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아이스크림처럼 그냥 녹는 게 아니라, 정말 부드러운 육질이었다.

더 절묘한 건 씹는 순간에야 육즙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로 부드러운 고기라면 요리 과정에서 육즙이 그냥 대부분 빠져나와도 이상할 게 없을 터인데, 신기할 정도로 육즙이 고깃덩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강우는 그 부분에 놀랐다.

‘완벽한 스테이크다.’

스테이크는 단순하게 보면 그냥 고깃덩이를 불에 굽는 거다. 요리 방법 자체는 단순하다. 그래서 어렵다. 고기가 가진 맛을 잘라낸 고깃덩이 안에 완벽하게 가두는 건 예술에 가까운 경지였다. 더군다나 보통 이런 재주는 경험에 따라 완성된다. 수백, 수천 번이 넘는 요리를 시도하면서, 감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김수애가 평생 흑혈우를 얼마나 만져봤겠는가? 처음 접하는 요리재료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완벽하게 스테이크로 굽다니?

‘미식가답군.’

절대미각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혀가 만들어낸 신기(神技)다.

이강우가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김수애를 바라봤다. 김수애는 그런 이강우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이강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사이 경쟁이 붙는 둘이 있었다.

포식자 팀의 명실상부 최고의 대식가 채유리! 그런 그녀에게 호령이 도전장을 냈다.

김재범의 말대로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맛이란 걸 즐기게 된 호령은 이후 매 끼니때마다 놀라운 식성과 무시무시한 위장의 크기를 보여줬다. 그 수준이 채유리에 버금갔다. 포식자 팀에 효율 좋은 6서클짜리 식충이가 두 명으로 늘어난 셈.

그 둘은 단숨에 자신에게 배정된 스테이크를 해치웠고, 곧바로 요리사인 김수애를 바라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수애는 그 둘의 시선에 뭘 봐요? 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둘을 더 먹이기 위해 김수애가 수고를 할 리가 없을 터.

‘어휴.’

결국 이렇게 되면 움직이는 건 이강우다. 이강우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채유리도 먹어야 하고, 호령도 먹여야 한다.

‘그래, 차라리 잘 먹어 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아무래도 그는 평생 요리를 할 팔자인 모양이었다.

* * *

“사냥 완료. 주변 상황은?”

-아무런 낌새도 없습니다.

3등급 유적 입장 한 달째에 접어들었다.

유적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강우는 유적 사냥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불사황제의 권능을 쓰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보다 정말 넓군요.

유적 사냥이 순조로웠던 가장 큰 이유는 크기였다.

이번 유적은 이미 유적의 범주를 벗어날 정도로 거대했다.

넓은 만큼, 몬스터와 조우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당연히 그에 따른 문제점도 있었다.

‘출문 발견이 쉽지 않겠어.’

넓다는 건, 출문 탐색을 위한 수색 범위도 넓어진다는 의미다. 한 달 동안 아직 이 유적의 넓이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을 정도니, 여차하면 농사를 해서 자급자족이라도 할 각오를 해야 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이 유적이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찾지 못하면 놈이 먼저 우릴 찾겠지.’

포식자 팀은 외래종이다. 기존의 생태계를 유린하는 존재.

그런 외래종의 등장에 기존의 포식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것이 동물원과의 차이점이었다. 동물원은 옆 우리의 동물이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생태계는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최상위 포식자는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이곳의 최상위 포식자인 3등급 몬스터를 이강우가 먼저 찾지 못하면, 역으로 놈이 포식자 팀을 찾을 것이다.

하물며 상대는 3등급 몬스터 아닌가?

미지의 존재, 티끌만큼의 정보도 없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사전 정보 입수마저 실패한 채 역으로 선공을 내준다면 그건 곧 악몽의 시작이다.

‘어떻게든 먼저 찾아야 해.’

이강우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 * *

악어고릴라.

5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호전적이고, 강한 놈이다. 고릴라보다 곱절은 큰 덩치에서 나오는 무지막지한 힘과 총탄으로는 뚫기도 힘든 두꺼운 가죽, 여기에 악어처럼 튀어나온 주둥이와 그 주둥이에 달린 톱니 같은 이빨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턱의 힘은 큼지막한 바위도 두부 으깨듯 씹어 먹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특히 지능을 가진 녀석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주제에 숨을 죽일 줄 알고, 사냥감을 유인할 줄 알며, 도망치는 듯하다가 역습을 하거나, 미끼를 이용하고, 별거 아니지만 돌멩이나 몽둥이 따위를 이용할 줄도 알았다.

물론 그런 것을 쓰는 것보단 제 주먹을 휘두르는 게 더 세긴 하지만 여하튼 도구를 쓸 줄 안다.

이런 이유로 유적 사냥꾼들은 악어고릴라와의 조우를 꺼린다. 어지간한 마법은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거리를 두어도 돌멩이 따위로 거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녀석의 존재는 껄끄럽다. 무엇보다 한 번 잡은 먹잇감을 그냥 죽이지 않고 유린하듯, 농락하듯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아주 지독한 취미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악어고릴라가 지금 유린을 당하고 있었다.

우오! 우우!

악어고릴라의 입에서 나오는 울음은 겁에 잔뜩 질린 울음이었다. 울음을 토해내는 악어고릴라의 왼쪽 팔은 처참할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마치 깡통이 찌그러진 것처럼, 무언가에 맞아 뭉개진 흔적이 역력했다. 총탄에도 멀쩡한 가죽과 콘크리트보다 단단한 근육과 철근보다 단단한 뼈를 가진 악어고릴라의 팔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악어고릴라 앞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2미터 남짓한 신장을 가진 원숭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제 꼬리로 잡은 채 박쥐처럼 매달려 악어고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괴한 원숭이였다. 마치 회색 돌을 깎아 만든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눈과 손발이 유독 기괴했다.

눈은 붉은 루비처럼 빛났으나, 섬뜩한 빛이었고 손과 발은 검붉은 것으로 물들어 있었다. 핏방울이 계속 떨어지며 종유석처럼 쌓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 돌원숭이가 꼬리에서 힘을 풀며 바닥에 착지했다. 악어고릴라가 돌원숭이를 보며 입을 벌리고 소리쳤다.

우오오!

무언가를 갈구하는 목소리였지만, 돌원숭이는 대답 대신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쥐어 던졌다.

쉭!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돌멩이가 악어고릴라의 오른쪽 어깨에 푹! 하고 박혔다. 고작 돌멩이였는데 깊숙하게 박혔다. 좀 더 강했으면 어깨를 뚫고 나왔을 정도.

우오오! 우오!

악어고릴라가 재차 비명을 토해내자, 돌원숭이가 그 악어고릴라를 향해 입을 벌렸다.

끼이이이익!

그 굉음에 악어고릴라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놈의 입에 게거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 * *

“이거 악어고릴라 맞죠? 다른 놈 아니죠? 설마 롤랜드 고릴라가 여기 있을 리는 없을 테고.”

악어고릴라의 처참한 시체를 발견한 이강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함께 온 하선우와 김재범의 표정도 비슷했다.

“이야, 이놈이 깡통처럼 찌그러졌네.”

거대한 악아고릴라의 몸에는 무시무시한 구타의 흔적이 역력했다.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강인하기 그지없는 악어고릴라의 몸뚱이를 생각하면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던 10톤짜리 트럭에 부딪쳐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 이상의 물리력,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힘에 유린을 당했다는 의미다.

이강우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과연 악어고릴라를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이강우에게 악어고릴라를 잡는 건 어렵지 않다.

붉은 뿌리, 절망의 태양. 두 가지 마법만 있으면 3분 안에 잡을 수 있다. 그 두 가지 마법이 없어도, 기존 마법만으로도 여건만 마련되면 여섯 번의 마법 사용으로 잡을 수 있다. 리볼버처럼 잡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런 꼴을 만들 자신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강우의 마음에 걸리는 건 시체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이놈을 죽인 놈, 기분 따라 죽였어.’

이곳은 생태계가 존재한다.

사냥을 하는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대상을 먹어 치우기 위해서 한다.

그런데 시체가 그냥 남아 있다? 먹을 생각이 아니었단 의미다.

즉, 이 생태계의 최정점에 도달한 놈이 심기가 비틀려서, 기분 전환을 위해서 해치웠다는 의미다.

‘대체 어떤 놈이지?’

이강우, 그가 상대해야 할 괴물은 그런 종류의 괴물이었다. 어쨌거나 이것으로 단서는 발견했다. 이강우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주변 상황은?”

-드론과 벌룬으로 감시 중입니다. 특별한 낌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순간.

쾅!

하늘 위를 날고 있던 드론이 무언가에 맞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 드론을 부순 것은 로켓처럼 더 높이 솟아오른 후에야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드론 격추 당했습니다!

유적에서 드론 격추라니? 흔히 볼 수 없는 경우다. 그러나 그 사실에 의문을 품을 시간은 없었다.

주변에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

그렇다면?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군.”

이강우의 말과 함께 하선우와 김재범이 자리를 떠났다.

* * *

[192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1,392포인트를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꺼억…….”

이강우는 자신의 눈앞에 마력 섭취를 알려주는 알림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속을 가득 채운 가스를 소리 내어 토해냈다.

식사 시간에 사람이 보일 수 있는 가장 볼썽사나운 무례였지만, 이강우는 주변 시선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후우!

짧은 한숨과 함께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토할 것 같아.’

그렇게 호흡을 고르지 않으면 간신히 먹은 것을 당장에라도 게워낼 것 같았으니까.

이내 이강우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두 여인이었다.

채유리와 호령. 그녀들은 푸근한 표정을 지은 채, 만족감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녹아웃 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두 여인을 괴물 보듯 바라봤다. 더불어 그들의 그 시선은 이강우를 볼 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그 와중에 자기 할 말은 어떻게든 뱉어야 속이 풀리는 김재범이 기어코 한마디 했다.

“장담컨대 우리 팀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사인(死因)은 과식일 거야. 배가 터져서 죽는 건 둘째 치고, 이렇게 먹고 몬스터에게 살해당하면 그건 그냥 배가 너무 불러서 몸이 둔해지는 바람에 죽는 게 될 테니까. 어떤 식으로 죽든 잘 먹고 죽은 때깔 좋은 귀신이 되겠지.”

그렇게 말은 하는 김재범의 배도 그리 정상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덜 먹었을 뿐이지, 김재범도 꾸역꾸역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음식을 입에 넣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았다. 딱 한 명, 김수애만이 먹을 만큼만 먹었다.

어쨌거나 김재범의 말에 이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7서클 개방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이강우는 여기서 좀 더 강해져야 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 8서클의 경지에 도달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먹는 수밖에 없다. 당장 먹는다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올 리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더불어 이강우는 여전히 마력 포인트가 필요했다.

‘어디 보자…… 이걸로 슬슬 10만 포인트에 도달했을 것 같은데?’

이강우는 플래티넘북 5권을 구매했다. 이것으로 불사황제의 5대 권능 전부를 습득했다.

남은 건 3등급 몬스터를 먹어 치울 경우 생기는 검붉은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를 통해 5대 권능을 강화하는 일이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분명한 건 이제 이강우가 도서관에서 5대 권능보다 더 강한 마법을 얻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도서관에는 여전히 다양한, 무궁무진한 종류의 마법이 잠들어 있다.

이제는 그것들을 이강우의 마법 목록에 채워 넣을 때다.

‘골드북을 구매할까? 아니면 실버북을 3권 구매할까?’

정부의 지원으로 5서클 이하 마법 아티팩트를 구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제약이 생긴다.

특히 이강우는 언제,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어떻게 싸우게 될지 모른다.

이번에 갑자기 중국행이 정해진 것처럼, 이강우의 행보에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한국 정부에 마법 아티팩트 지원을 요청하는 건 어렵다. 위험하기도 하다. 마법청에도 바츠무 족, 그들이 심어둔 간자가 분명 있을 테니까.

결국 마법 목록을 최대한 잔뜩 채워야 한다.

목표도 세워 뒀다.

‘실버북은 물론, 일단 골드북에서 나오는 마법을 못해도 10개 이상은 채워둬야지.’

10만 마력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골드북 마법 10개!

골드북에서 바츠무의 손이 나온 걸 생각하면, 골드북에서 구매 가능한 마법의 등급과 질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못해도 5서클 이상의 마법이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스템은 불사황제의 의중에 따라, 그가 원하는 마법을 이강우에게 줄 수 있다.

랜덤 시스템 따위가 아니다. 이미 이강우도 경험해봤다. 골드북을 구매하기만 하면, 불사황제가 이강우에게 필요한 적재적소의 마법을 알아서 마련해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강우가 신경 써야 할 건 결국 본래 목적 그대로, 최대한 많은 마력을 먹어 치우는 일이다.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식사를 하던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건 식사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 총꾼들과 마법사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정리할 준비를 했다.

그때.

“뿔칩 드실 분?”

이강우가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계획서 보내드렸습니다. 순번이 언제쯤 됩니까? 6등급 유적의 경우에는…… 20일 정도? 꽤 걸리는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안중현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한숨을 내뱉었다.

‘잠잠해.’

조금 전 통화 내용은 다름 아니라 마법청과의 통화내용이었다. 즈믄나래가 6등급 유적 사냥 계획서를 보냈고, 마법청은 현재 대기 순번이 많으니 20일 정도 후에 유적 사냥이 가능할 거라고 대답을 해 줬다.

‘너무 잠잠해.’

이상한 일이었다.

‘6등급 유적이 인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대기 20일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6등급 유적 사냥에 나설 수 있는 유적 사냥 파티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닐 텐데…….’

단순히 이것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최근 국방부나 마법청에서 즈믄나래에 마법사 파견을 요청했던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알아보니, 산간지역에서 발견된 몬스터 개체 수가 조사 이래 가장 낮았다고 한다.

‘그 난리가 난 게 얼마 전 일인데…….’

위스프의 테러 사건 전까지만 하더라도 갑자기 강원 산간 지역, 군사분계선 주변에 몬스터의 개체 수가 빠르게 늘어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너무 대한민국이 잠잠해졌다. 몬스터는 물론, 발견되는 문의 개수도 줄어들었다.

좋게 보면 평화가 온 셈이다. 모래시계문의 등장이 줄어들어서 일반 국민에게 나쁠 건 없다.

때문에 보통 이들은 이러한 사실들, 수치들, 상황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안정기, 평화기에 상황이 접어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중현은 달랐다. 그는 작금의 상황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너무 껄끄러웠다.

‘이제 대선으로 접어든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대선이 시작되면? 한국 정부 그리고 정계가 제구실을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집단이 된다.

장담할 수 있다. 2023년 초중반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조금 많이 과장하면 무정부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안중현은 만약 그들이, 모래시계문의 주인들이 수작을 부린다면 이 시기에 수작을 부리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평화라는 것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안중현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결국 놈들이 원하는 건 보다 높은 등급의 모래시계문이 개방되어, 보다 강한 몬스터가 세상에 뛰쳐나오는 거겠지.’

놈들의 목적은 알고 있다.

그리고 놈들의 목적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도 알고 있다.

놈들의 문을 찾는 것!

놈들은 필시 세계 어딘가에 3등급 이상의 문을 숨겨두었을 것이다. 문을 숨겨둔 채, 문이 보다 빨리 열릴 수 있는 작업을 진행 중일 것이다.

즉, 그걸 막으면, 최소한의 피해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에 문을 숨겨두었을까?

그에 대한 필요조건은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세계에서 고립된 지역이 좋다. 사람들이 쉽게 닿을 수 없는 지역이면 들킬 확률은 내려간다. 세상의 눈이 쉽게 닿을 수 없으면 더더욱 좋다.

혹시 모를 사태를 제어할 수 있는 나름의 인프라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곳도 좋다. 그 시스템이 어떤 집단, 어떤 우두머리에 의해 거의 완벽에 가깝게 통제된다면 그리고 그 우두머리 혹은 집단이 자기 이익만 보장되면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조건에 부합되는 지역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까?

‘내 예상이 맞는다면, 지옥이 펼쳐질 거다.’

많진 않다.

많지 않았기에 안중현은 대략적으로 몇 개의 지역을 이미 특정하고 있었다.

슬픈 건,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안중현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이강우, 무사해라. 결국 이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건, 너 같은 사람밖에 없다.’

이강우, 세상의 구세주가 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 * *

유적 입장 55일째.

-치직!

헤드폰을 파고들어 오는 강렬한 잡음에 총꾼 한 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 헤드폰의 음량을 거의 최대한으로 올려놓았던 만큼, 갑작스러운 노이즈는 고문에 가까웠다. 또한 그가 보던 모니터 영상 역시 노이즈가 잔뜩 껴 있었다. 영상 송출이 끊어졌다는 증거였다.

옆에서 같이 모니터를 통해 영상을 보던 하선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그놈입니까?”

“이제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드론과 벌룬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습니다.”

아홉 대째였다.

포식자 팀이 운영하던 드론과 벌룬, 총합 아홉 대의 비행감시장치가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에 의해 파괴됐다.

‘그놈이겠지.’

처음 악어고릴라를 발견했을 때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원인이야 당연히 몬스터일 터.

현재 심증으로는 3등급 몬스터가 저지르는 행패로 보고 있었다.

하선우는 곧바로 마이크를 통해 이강우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드론 파괴됐습니다.”

-캠프로 복귀합니다.

상황을 보고받은 이강우는 곧바로 베이스캠프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감시해주는 눈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움직이기에는 리스크가 컸으니까.

김재범과 채유리와 함께 복귀한 이강우는 일단 잡아온 몬스터 사체를 베이스캠프에 내려놓았다.

그의 입에서는 곧장 한숨부터 나왔다. 한숨을 뱉은 후에 하선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얼마나 남았습니까?”

“드론은 아직 다섯 대가 남아있습니다만, 벌룬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드론과 벌룬의 역할은 유적 사냥에서 매우 중요하다.

드론은 하늘의 눈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준다. 아무리 마법사가 대단해도 탐색 범위와 능력은 드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탐색 범위가 이제껏 그 어떤 유적과도 비교 불가한 지금 3등급 유적에서 드론은 구명줄이나 다름없다.

벌룬도 마찬가지다. 벌룬은 통신망 역할을 해준다. 벌룬을 띄우면 드론의 탐색범위는 곱절이 될뿐더러, 통신 범위도 늘어난다. 마법사 및 총꾼의 유기적인 행동 범위도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 그 중요한 눈들이 망가지고 있었다.

“혹시 출문은…….”

“아직 낌새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출문 발견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드론과 벌룬이 절반 이상 망가진 건, 분명 심각한 수준의 문제였다. 그나마 선발대가 탐색을 목적으로 다수의 드론을 준비해둔 덕분에 다섯 대가 남은 거지, 이미 포식자 팀이 가지고 온 드론은 전부 파괴된 상황.

이강우는 준비해둔 질문을 그냥 삼켰다. 여기서 더 질문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이강우가 생각의 대상을 바꿨다.

‘영리한 놈이다.’

3등급 몬스터인 놈의 드론 파괴 방법은 간단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돌을 던져 파괴하는 식이었다.

방법은 간단했지만 위력은 섬뜩했다. 정말 먼 거리에서 던진 돌멩이인데도 드론이 속절없이 파괴됐다. 만약 드론이 아니라 사람이 맞았다면 똑같은 신세가 됐을 것이다.

도구를 쓸 줄 안다는 건 나름의 지능이 있다는 의미. 하물며 그 도구를 이용해 미지의 도구인 드론만을 저격한다? 놈이 드론이 뭔지 알 리는 없겠지만, 드론 따위가 있으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직감하고, 그에 따른 대응책을 보여주고 있다.

즉, 놈은 인지하고 있다.

‘우리를 알고 있고…….’

포식자 팀의 존재를.

그리고 지금 놈이 하는 건 포식자 팀과의 전쟁을 위해 사전 작업이다.

‘우리와의 전쟁을 준비 중이야.’

정체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괴물이 이미 백척간두의 결전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는 포식자 팀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탐색은 이제 힘들어. 그럼 결국 전투부터 준비하는 수밖에.’

어차피 놈을 무시하고 그냥 이 유적을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이강우에게 이번 유적 사냥은 중요한 시험대다.

이미 이강우는 강해질 만큼 강해졌다. 지금 이 수준에서 더욱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시간…… 8서클을 개방할 때까지의 시간 혹은 3등급 몬스터를 먹어 치우고 얻게 되는 권능 강화의 기회, 이것밖에 없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이강우가 계산한 결과, 8서클 개방을 하려면, 못해도 800만 포인트 이상을 섭취해야 한다. 하루에 3만 포인트씩 섭취해도 1년은 잡아야 한다.

더욱이 1년 후에도 지금처럼 원하는 대로 유적 사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진 않았다. 세상이 이강우를 위해서 모은 모든 마나스톤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또한 그 시간 동안 어떤 식으로든 3등급 몬스터와 여러 차례 교전을 벌일 것이다.

결국 3등급 몬스터와는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한다. 전투를 피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당하고 나서 움직이면 누군가는 죽는다.’

이강우가 결심을 내렸다.

“새로운 플랜을 발표하겠습니다. 플랜 이름은 시산혈해. 이제부터 전투를 준비합니다.”

* * *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이강우는 드넓은 숲을 바라봤다. 숲을 바라보는 이강우의 눈이 사냥꾼의 눈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놈은 덩치가 큰 편이 아니다.’

3등급 몬스터다.

본 적도 없다. 정보도 없다. 탐색 로봇과 드론을 움직였지만 결국 녀석의 발자국 하나 찾지 못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점들을 토대로 녀석의 특징을 특정할 수 있었다.

일단 놈은 덩치가 큰 놈은 아니었다. 덩치가 무시무시하게 컸다면, 어떤 식으로든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강우는 이번 3등급 몬스터의 크기를 신장 3미터 이하로 잡고 있었다.

‘땅을 걷는 타입도 아니야.’

더불어 녀석은 제대로 된 발자국은 땅바닥에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대신에 나무 사이를 오고 간 소소한 흔적 정도만을 남겨두었다.

‘마지막으로 사냥을 즐기는 놈이다.’

또 하나, 놈은 굳이 먹을 이유가 없음에도 폭력을 행사했다. 그 과정이 괴팍하기도 했으며, 녀석의 폭력에는 잔혹성이 가득했다. 녀석에게 당한 몬스터의 사체가 녀석의 잔혹성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강우는 그런 정보들, 놈이 남기지 않았기에 도리어 추측할 수 있는 정보들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정리했지만 그리 좋은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려도 결국 확신을 할 수 없는 가상의 모습일 테니까.

‘후우.’

숨을 고르는 이강우의 머리에는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이강우는 그 숨을 고르며, 자신의 온몸을 두르고 있던 긴장감도 정리했다. 이윽고 이강우가 소형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작전 개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우웅!

이강우의 머리 위로 3대의 드론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론 3대가 각자의 위치를 잡은 채 직선으로 질주하기 시작했고, 이강우가 곧바로 헤이스트 마법을 발동했다.

‘가자.’

이강우가 드론을 쫓아 움직였다.

놈의 마지막 특징, 드론을 보는 순간 주저하지 않고 돌멩이를 이용해 드론을 파괴하는 습성. 그 습성을 역으로 이용해서 녀석을 잡을 것이다.

그런 드론의 등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퍼억!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돌멩이가 단숨에 드론 한 대를 공중에서 산산조각을 냈다.

-오른쪽. 거리 측정 중입니다.

곧바로 드론을 원격 조종하는 조종사가 돌멩이가 날아온 위치를 알려줬고, 드론이 돌멩이가 날아온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강우가 그런 드론을 쫓아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드론이 나름의 묘기를 부리며, 쉽사리 맞출 수 없는 동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러나 첫 번째 드론이 산산조각이 난 지 십여 초가 흐르자마자 곧바로.

콰직!

두 번째 드론이 산산조각이 났다.

놀라운 명중률이었다.

-위치 파악. 지금 방향으로 전방 900미터 부근에서 돌멩이가 날아온 걸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보다 확실하게 녀석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강우가 숨을 골랐다.

‘900미터.’

이제까지 달린 거리도 적지 않으니, 못해도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돌멩이를 던졌던 셈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놀라운 수준의 적중률을 유지하다니?

‘대체 어떤 놈이지?’

여러모로 어떤 놈인지 궁금했다.

그러는 사이.

콰직!

기어코 세 번째 드론마저 파괴됐다.

-더 이상 드론을 통한 지원은 불가능합니다.

남은 다섯 대의 드론 중 세 대를 미끼로 썼다. 고작 녀석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면, 낭패가 될 터.

‘500미터.’

그러는 사이 이강우는 빠르게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900미터, 제아무리 다리가 빠른 사람도 몇 분은 걸릴 거리지만 헤이스트 마법을 사용한 이강우에게는 지척이었다.

성큼성큼, 멀리 뛰기를 하듯 장애물 가득한 숲길을 달리던 이강우는 어느 순간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죽인다.’

도발이었다.

놈의 특징 중 하나인 폭력성과 잔혹성을 고려한다면, 이강우의 이 도발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더군다나 놈은 이 세계의 최상위 포식자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놈에게는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그런 놈이 갑자기 튀어나온 장난감의 도발을 그냥 놔둘 리 없을 터.

아마도 놈은 이강우를 기다리거나 혹은 역으로 이강우를 발견하고 잡으러 움직일 터.

그런 이강우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강우가 돌멩이가 날아왔으리라 예상되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놈이 이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강우는 놈을 보는 순간 실소와 함께 소형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3등급 몬스터 발견. 이름은 돌로 된 원숭이, 돌원숭이로 지칭하겠다.”

돌원숭이, 이강우가 놈과 처음으로 조우했다.

* * *

돌로 된 원숭이.

특이하기 그지없는 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강우의 등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쉽지 않겠어.’

3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쉬운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머릿속으로 그린 어려운 상황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될 듯싶었다.

‘찔러서 피가 나올 법한 놈은 아니야.’

딱 봐도 피가 흐르는 놈이 아니었다.

절망의 태양 그리고 붉은 뿌리, 이강우가 자신하는 두 개의 권능이 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든 타입이라는 의미다.

물론 그렇다고 도망칠 순 없다. 이강우가 도망치면 모두가 죽는다. 이강우는 곧바로 아이스웨폰을 이용해 한 자루의 칼을 만들었다. 칼에 마력검을 발동시켰다.

이강우가 자세를 잡았다.

그러는 사이 돌원숭이는 나뭇가지 위에 앉은 채 이강우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놈의 붉은 눈동자가 내뿜는 시선이 굉장히 불쾌했다. 마치 고기의 등급을 분류하는 축산 관계자의 눈빛 같았다. 이강우가 그 눈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끼이!

그 순간 괴상한 울음과 함께 돌원숭이가 이강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위에서 아래로, 돌원숭이의 동선이 대각선을 그리는 순간.

‘토문!’

이강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토문 마법을 발동했다.

푸홧!

굉음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땅바닥에서 3미터 높이의 거대한 토문이 솟아올랐다.

‘뚫고 오겠지!’

여기서 이강우는 돌원숭이의 행동 패턴을 가늠했다. 필시 놈은 이 벽을 그냥 무참하게 뚫고 나올 것이다. 벽과 함께 그 너머에 있는 이강우도 단숨에 치우려고 할 터!

이강우가 얼음으로 된 칼을 고쳐 잡았다.

‘한 번 부딪쳐 본다.’

놈이 토문을 뚫고 나오는 순간, 전력을 다해 몸의 몸뚱이에 칼질을 해볼 속셈이었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 이강우가 판단과 마음의 준비 그리고 다음 행동을 기약했을 때.

‘어?’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토문이 산산조각이 나는 광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찰나가 지나가고, 다시 한번 찰나가 더 지나갔을 때 이강우가 왜? 하는 의문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토문 위였다.

그곳에 토문을 밟은 채로 쪼그려 앉은 돌원숭이가 있었다. 돌원숭이는 토문 위에서 이강우를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 이강우를 향해 돌원숭이는 같잖다는 듯한 눈빛을 품고 있었다. 적어도 이강우는 그렇게 느꼈다.

이강우가 이를 꽉 물었다.

‘이 새끼…….’

이강우가 이를 무는 순간, 돌원숭이가 이강우의 머리 위로, 발을 앞세우며 떨어졌다. 이강우가 뒤로 몸을 날렸다.

쿵!

돌원숭이가 바닥에 착지하게 묵직한 소리를 냈다. 착지를 마친 돌원숭이가 곧바로 이강우를 향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이강우는 그 오른팔을 쳐낼 기세로, 쳐내면서 잘라낼 기세로 칼을 휘둘렀다.

이강우의 칼과 돌원숭이의 팔이 허공에서 교차하며 충돌했다.

캉!

거친 쇳소리가 났다.

그 쇳소리와 함께 이강우의 칼이 두 동강이 났다. 반면 돌원숭이의 팔은 멀쩡했다.

‘큭!’

최선을 다했다. 컨디션에 따라 그날 기량이 달라질 테니, 최고라고는 할 수 없어도 지금 보여줄 수 있는 나름의 전력이었다. 그런데 그 전력이 통하지 않았다.

이강우가 그 사실에 헛바람을 마시는 순간, 돌원숭이가 이번에는 왼팔을 뻗었다. 녀석은 이강우의 멱살을 잡을 속셈이었다. 이강우가 이번에는 몸을 돌려 녀석의 팔을 피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돌원숭이의 발이 호쾌한 동선을 그리며 이강우의 옆구리를 파고 들어왔다.

파각!

무언가가 산산조각이 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발차기에 맞은 이강우의 몸이 포탄처럼 날아갔다.

쾅, 쾅!

굵직한 나무기둥 두어 개를 부러뜨린 후에야 이강우는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이강우가 곧바로 땅바닥 위에 두 다리로 섰다.

쿨럭, 쿨럭!

이강우의 입에서 기침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공격 그리고 충격에 따른 후유증이었다.

‘이 무슨…….’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건 단순한 위력, 그 자체가 아니었다. 마치 힘이 한곳에 집중된 느낌. 단순히 근력과 체격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기술이 가미된 위력이었다.

이 순간 이강우가 자신의 옆구리에, 피격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크리스털 아머의 파편들이 만져졌다.

‘붉은 뿌리로 크리스털 아머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노림수였다.

몬스터를 잡아 확보한 붉은 뿌리에 크리스털 아머를 부여했다. 그렇게 만든 크리스털 아머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현재 이강우가 쓸 수 있는 최강의 방어 마법이었다. 그걸 믿고 지금처럼 과감한 전투를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방어 마법이, 노림수가 고작 발차기 한 번에 깨져버렸다.

또 맞으면?

그저 뼈가 부러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녀석에게 지금 이강우가 쓰는 아이스웨폰과 마력검의 조합은 통하지 않았다. 그 정도 방어력이라면, 5서클 이하 마법도 쉽사리 먹히지 않을 터.

이곳에서 당장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는 정도의 전투만 치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3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그마저도 욕심이었던 모양이다.

‘간 볼 틈도 없다, 이건가?’

그 순간 이강우가 몸을 돌려 도망쳤다.

* * *

이강우가 달렸고, 돌원숭이가 그런 이강우를 쫓았다. 그 둘의 속도는 비슷했다. 덕분에 이강우는 따라 잡히지 않은 채, 원하는 곳까지 도주를 감행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돌원숭이는 봐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놀이를 하듯, 이강우의 속도에 제 속도를 맞춰주는 것이다. 과연 이강우가 무엇을 준비했을지, 이강우가 발악을 하며 어떤 식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줄지, 그걸 보고 싶어서 장난을 치는 것일 수도 있다.

쫓기는 입장인 이강우가 느끼기에는 후자였다.

‘잔인한 놈.’

대상을 가지고 놀 줄 아는 놈이다.

‘오냐, 해보자.’

그런 돌원숭이의 장난을 이강우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강우, 그도 나름 제대로 준비를 했으니까.

‘그곳에서도 과연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 한 번 두고 보자고.’

그렇게 달리고 달리던 이강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나무를 타고 이강우를 쫓던 돌원숭이도 거리를 벌린 채 멈췄다. 그 순간 돌원숭이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본 것이다.

이강우가 발걸음을 멈춘 것, 그 정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몬스터 시체의 산을 말이다.

이강우도 봤다. 수십 마리가 넘는 몬스터의 몸을 양분 삼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붉은 뿌리 나무들을 말이다.

이 무대가 이강우 그리고 포식자 팀이 준비한 무대였다.

전투에 앞서서 몬스터를 사냥했다. 사냥한 몬스터를 도축하지 않은 채 한곳에 모았다. 모은 후에 이강우가 놈들의 몸에 붉은 뿌리를 심었다. 붉은 뿌리 나무로 이루어진 작은 숲을 만들었다.

시산혈해!

‘3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애초에 간을 본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지.’

그 붉은 뿌리 숲에서 이강우가 대나무처럼 생긴 붉은 뿌리 나무의 기둥 하나를 잡았다. 잡는 순간 나무줄기는 한 자루의 창이 됐다. 이강우가 그 창의 뭉툭한 아랫부분으로 땅을 한 번 크게 두드렸다.

쿵!

짧은 소리와 함께 이강우의 주변에서 스물다섯 개의 얼음 그리고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불과 얼음의 군단!

‘전력이다.’

이강우, 그가 불사황제의 세 번째 권능을 사용했다.

불기둥은 곧바로 무장을 마친 병사가 됐다.

이강우는 가장 지척에 있던 병사에게 자신이 쥐고 있던 창을 던졌다. 불의 병사가 창을 받자마자 양손으로 잡은 채 창끝으로 돌원숭이를 겨누었다.

이강우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처에 깔린 붉은 뿌리 나무를 이용해 다양한 무기를 만들었고, 불과 얼음의 병사들에게 무기를 쥐여 줬다. 무기를 쥔 병사들이 전부 줄을 맞춘 채 돌원숭이를 겨누었다.

돌원숭이는 그 모든 과정을 그저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돌부처처럼 무덤덤했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광경이 본인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강우 입장에서는 물론 불사황제 야크센, 그의 입장에서도 일생일대의 굴욕이었다.

그래서일까?

이강우가 스물여섯 번째 무기, 불과 얼음의 군단이 아닌 본인이 사용할 붉은 뿌리 검을 쥐었을 때.

“죽여!”

분노에 가득 찬 일갈을 내질렀다.

* * *

“역시 3등급 몬스터인가? 대장이 시간 벌이도 하지 않고, 곧장 본무대에 들어가네…….”

하선우와 김재범 그리고 채유리.

그 셋은 이강우가 3등급 몬스터인 돌원숭이와의 교전을 치르는 순간, 출문 확보를 위한 탐색을 진행했다.

본래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이강우가 전투를 하는 사이, 출문을 찾거나 혹은 이강우의 전투를 돕거나.

처음에는 당연히 이강우의 전투를 돕기로 했다. 3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자리다. 전인미답, 무시무시한 3등급 몬스터와의 전투를 앞두고 주효한 전력인 그 셋이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강우는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채유리를 비롯해 팀원들은 분명 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강함이 3등급 몬스터를 상대로는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강우에게 두어 번의 기회가 더 생기는 것, 그게 전부일 게 분명했다.

반대로 만약 그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내에 출문을 발견하고 확보한다면 최악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일발역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출문 발견이 그렇게 쉽게 될 리 없었다. 두 달 가까이 탐색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던 게, 고작 몇 십 분, 길어봐야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추가 탐색을 한다고 금방 드러날 리 없을 테니까.

분명 그동안 두 달 가까운 탐색으로 출문이 있을 법한 지역을 특정하긴 했지만 그건 확률을 높여줄 뿐, 확신을 주는 요소는 아니었다.

또한 이곳 유적에는 3등급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다. 4등급 이하 몬스터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런 몬스터들과 교전이 시작되면, 시간 소모도 소모지만, 생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분명 그건 실력보다는 운에 기대는 도박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제까지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클로즈하지 못한 3등급 유적에서 3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인데, 단순히 실력만으로 승부한다는 게 오히려 우스운 일일지도 몰랐다. 도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그 도박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이강우는 최대한 전투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다양한 방법으로 보다 많은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해 많은 시나리오를 짰다.

그런데 이강우는 거두절미하고, 곧장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했다. 3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가당찮은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대장이 막을 수 있을까?”

이미 상황을 보고받은 김재범을 비롯해 나머지 이들이 그런 상황을 유추하지 못할 리 없었다.

김재범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하선우가 한마디 하려고 했다. 우리 임무에 충실하자, 그런 충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채유리가 입을 열었다.

“찾아.”

짧고 굵게.

“출문.”

그녀는 두 단어로 김재범의 입을 다물게 했다.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이강우를 염려하는 건 채유리, 그녀였기에 그녀의 그 짧은 말은 그 누구의 말보다 강력했다.

* * *

파앗!

대지를 박차고 도약한 불의 병사 셋이 나무기둥을 밟고 보다 높이 도약했다.

동시에 땅에 있던 얼음 병사 둘이 창을 고쳐 잡았다. 투창의 자세를 취했고, 동시에 돌원숭이를 향해 창을 던졌다.

쉬이이!

얼음 병사가 던진 창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돌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나뭇가지에 있던 돌원숭이가 자리에서 도약하며 창을 피했다.

화르르!

그런 돌원숭이의 머리 위로 앞서 도약한 불의 병사 셋이 떨어졌다.

카앙, 카앙!

불의 병사 셋과 돌원숭이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공방을 펼쳤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시간이 길어봐야 3초 남짓.

그런데 그 3초 사이에서 터진 쇳소리가 삼십을 넘어갔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방이었다.

그 공방에 쇳소리를 추가하기 위해 다른 병사들도 움직였다.

삽시간에 돌원숭이를 포위한 병사들이 시계의 부품처럼, 돌원숭이를 향해 쉴 새 없는 공방을 펼쳤다.

절묘한 공방이 시작됐다.

한 명이 정면으로 창을 찌르면 나머지는 둘원숭이의 대처에 따른 대응을 염두에 두었다. 놈이 창을 오른쪽으로 피할 경우, 그 방향으로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는 병사가 있었고, 놈이 왼쪽으로 피할 경우 놈의 동선 사이에 자신의 도를 날렵하게 휘두르려고 하는 놈이 있었다. 놈이 회피가 아닌 공방으로 맞수를 낼 때를 대비해 이미 돌원숭이의 뒤통수를 향해 다시 한번 창을 내찌르는 병사도 있었다.

창과 창, 도검이 돌원숭이의 몸을 중심으로 쉴 새 없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 혼란 속, 도검과 창으로 이루어진 감옥 속에서 돌원숭이의 대응은 단순했다.

끼이!

놈은 정면에서 오는 건 손으로 캉!

막아 쳐냈고, 뒤에서 오는 건 쉬익!

가뿐하게 피했다.

때때로는 피하지도 않았다.

쿵!

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거친 쇳소리 끝에 돌원숭이의 몸뚱이에 생기는 보잘것없는 상처가 전부였다. 생채기였다. 사람으로 따지면 피조차 나지 않을 법한 상처였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의 몸에 생채기가 나는 순간 돌원숭이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못하겠다는 듯, 놈의 눈빛이 달라졌다.

끼익!

놈이 입을 벌려 울음을 토해냈다. 드러낸 이빨,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는 이빨들과 송곳니 사이로 섬뜩한 울음을 토해낸 녀석이 곧바로 뒤로 창을 내찌르며 접근하던 녀석에게 뒷발차기를 날렸다. 뒤로 발을 쑥 빼며, 발로 얼음 병사를 밀어내듯 찼다.

쾅!

절도 넘치고, 담백한 발차기에 맞은 얼음 병사의 몸뚱이는 총알처럼 날아가며 나무기둥에 처박혔다.

산산조각이 났고, 팔다리가 후두두, 제각각 바닥에 너부러졌다. 그러나 얼음병사는 스멀스멀, 자신의 몸뚱이를 스스로 붙이더니, 다시금 붉은 뿌리로 만들어진 창을 들고 일어났다. 제 모습을 갖춘 얼음 병사가 얼음으로 된 투구 사이로 눈빛과 함께 하얀 김을 토해냈다.

그 광경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며, 강력한 마법으로 원거리 지원을 준비하던 이강우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순간 이강우의 감정은 두 가지였다.

‘대단해.’

하나는 불과 얼음의 군단이 보여주는 능력이었다.

‘꿈에서도 봤지만 이 정도의 전투력일 줄이야?’

그들은 단순히 무기를 들고 인형처럼 움직이는 병사들이 아니었다.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놀라운 협공마저 펼치는 백전연마의 전사들이었다. 이제까지 이강우는 잘 싸우는 마법사들을 여러 번 봤지만, 불과 얼음의 군단만큼 잘 싸우는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동시에.

‘그런데도 안 통하다니.’

저 믿음직한 병사들 앞에서 춤을 추듯 싸우며, 제 몸에는 그저 자그마한 생채기만을 허락하는 돌원숭이에 대한 경계심을 뛰어넘는 우려와 걱정이 피어올랐다.

꿀꺽!

이강우가 침을 삼켰다. 긴장감 섞인 침이었다.

‘젠장.’

원래 원하던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시산혈해, 몬스터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만든 붉은 뿌리 나무 숲과 불과 얼음의 군단, 이 두 조합 그리고 7서클 마법사라는 이강우의 원거리 포격을 이용해 압도적인 머릿수와 화력으로 단숨에 놈을 뭉개는 것! 공방이 아닌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

그게 이강우가 원하던 바였다.

‘이대로는 안 돼.’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준비해온 모든 것이 휴지조각이 됐다.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젠장.’

등골이 싸늘하게 식을 정도로 섬뜩한 일이었다.

각고의 노력과 만반의 준비로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버려야 한다? 그 대가가 목숨이 될지도 모르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게 혼자만이 아닌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모든 동료들까지 포함될지도 모르는데?

‘버려. 안 되는 건 시도해볼 가치도 없어.’

가슴이 썩어 뭉개질 만한 일이다. 과연 이 상황에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위해 준비해온 모든 시나리오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이강우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떠올려라.’

안 되는 걸 억지로 해서 실패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 바닥에는 유종의 미도 없다. 아름다운 시나리오도 없다. 그저 시체와 그 시체를 먹는 승자만이 있을 뿐이다.

거듭된 전투, 유적에서의 나날들이 이강우의 과감한 선택을 가능케 해 줬다.

‘이강우, 떠올려!’

이 순간 이강우의 손이 자신의 가슴팍을 향했다. 불과 얼음의 군단이 싸우는 광경을 바라보는 이강우가 손으로 자신의 심장이 있는 부근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빠득!

이를 가는 이강우의 머릿속에 불사황제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원하는 바는 이강우의 시체뿐이라고.

또한 그 이전에 불사황제는 말했다.

이강우, 스스로가 자신을 원할 것이라고.

‘빌어먹을.’

그 의미, 모를 리 없다.

이강우, 그가 불사황제를 부르고 싶다면 그는 시체가 되면 된다. 그가 스스로 심장을 뭉개는 순간, 불꽃 심장이 발동되어 이강우의 육신은 불사조처럼 타오르며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불사황제, 그가 죽어버린 이강우를 대신에 이강우의 육신을 지배할 것이다.

불사황제라면, 눈앞의 정도를 벗어나는 괴물을 얼마든지 농락할 수 있을 터.

죽으면 된다.

이강우가 죽으면, 적어도 동료들은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강우가 자신의 가슴을 좀 더 세게 움켜쥐었다. 이강우가 스스로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과연 이게 최선일까? 이강우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평생 발악을 해왔어.’

여기서 이강우가 가슴에서 손을 뗐다. 손을 떼고 고개를 돌려 붉은 뿌리 나무의 숲을, 몬스터의 시체로 쌓은 산을 바라봤다.

‘그래, 죽는 게 답이라면 죽기 전까지 발악을 하는 게 낫겠지.’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이 번뜩이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이강우가 손바닥을 들었다. 그런 이강우의 손바닥에서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한번 시도해 보자.’

* * *

쉬익, 샤삭!

사방에서 활활 타오르거나 혹은 차가운 냉기를 내뿜는 병사들이 보기에도 섬뜩한 검붉은 무기를 쥔 채 돌원숭이를 향해 쉴 새 없이 적의와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끼이!

돌원숭이는 그들의 공세에 다양한 방법으로 맞대응을 했다. 요리조리 피하기도 했고, 도망치기도 했고, 맞서 싸우기도 했고 때때로는 녀석들을 발로 차거나, 잡아 던지기도 했다.

끼이이!

돌원숭이에게 있어서 지금 이 모든 상황은 놀이에 불과했다. 재미난 놀이. 돌원숭이는 무료하기 그지없었던 기나긴 나날 속에서 오랜만에 과거의 향수를 떠올렸다. 이와 비슷한 무리, 어마어마한 숫자의 무리 속에서 그들과 놀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내 좋아진 기분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녀석은 도리어 분노했다.

끼익, 끼익!

언제나 똑같았으니까.

이런 기분 좋은 놀이의 끝에서 돌원숭이를 기다리는 건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속에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것들의 포식자인 자신이 신비한 힘을 가진 작자들이 만든 공간에 갇힌 채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들이 주는 가소로운 유흥만을 누린다는 현실이 돌원숭이를 분노케 했다.

이윽고 돌원숭이가 폭발했다.

돌원숭이가 놀이를 그만뒀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의 창날을 피하며 창대를 잡았다. 창대를 들었고, 파리채를 휘두르듯, 창대 끝에 달린 불의 병사를 바닥에 크게 내리쳤다.

꽈릉!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폭풍이 터졌다. 돌원숭이가 창대로 내리친 곳에는 운석이 떨어진 듯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놀라움을 넘어 섬뜩한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돌원숭이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그 자리에서 창대를 두 동강으로 부러뜨렸다. 부러뜨리고는 얼음 병사 둘을 향해 양손으로 창대를 던졌다.

콰직!

던진 창대는 얼음 병사의 머리통을 가뿐하게 부수고도 여전히 힘이 남은 듯, 줄지어 늘어선 나무기둥을 거침없이 꿰뚫고 지나갔다.

처벅, 처벅!

그 와중에도 전의를 상실하지 않은 병사들이 돌원숭이에게 거듭 공세를 퍼부었다. 돌원숭이는 그런 병사 중 하나를 잡아 맨손으로 병사의 몸을, 다리와 팔을 잡고 뜯어 버렸다.

끼이! 끼이!

분에 가득한 녀석의 울음이 숲을 울렸다. 그 울음이 숲을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숨을 죽였다. 몇몇은 숨을 잃었다.

섬뜩한 공포.

그 속에서 이강우가 등장했다.

“아주 지랄을 하는군.”

이강우의 등장에 돌원숭이가 고개를 돌렸다.

끼이!

이 모든 게 저놈이 만든 놀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았다. 이제까지는 재미있었다. 그래서 봐줬다. 살살 다뤄 줬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 불쾌한 기분에 끝을 낼 때가 왔다.

끼이!

돌원숭이가 이강우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분노를 토해냈다. 이강우는그런 놈의 앞에서 맨몸으로 서 있었다.

올 테면 와라!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심지어 전투 자세를 취하지도 않은 채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 자세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도발이라고 해도 될 정도.

돌원숭이가 그런 이강우를 봐줄 리 없었다. 돌원숭이가 이강우를 향해 네 발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불과 얼음의 군단이 주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돌원숭이는 두 팔을 휘두르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그 상태로 날려 버렸다. 쾅쾅! 굉음이 연달아 터졌고, 그 굉음과 함께 불과 얼음의 병사들이 나무기둥에 처박혔다.

찰나였다.

이강우가 돌원숭이를 바라보고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순간 돌원숭이가 지척까지 도달했다.

너무도 빨랐다. 돌원숭이는 이강우가 대처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돌원숭이는 이대로 이강우를 단번에 죽일 생각이 없는 듯, 몸통 박치기만으로도 이강우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팔을, 이강우의 오른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쾅쾅!

이강우의 몸뚱이를 파리채처럼 휘둘렀다. 땅바닥을 향해 두 번 내리쳤다.

‘컥!’

이강우의 숨은 거기서 잠시 멈췄다. 온몸이 내지르는 비명과 고통 속에 숨을 쉴 여력은 없었다. 이강우의 시선도 검게 물들었다. 몸을 덮친 어마어마한 충격에 시신경에 문제가 생긴 모양.

그나마도 크리스털 아머 덕분에 이강우는 버틸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한 번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크리스털 아머마저 벗겨진 상황이었다. 맨몸이 된 이강우, 두 번 정도면 숨통이 끊어질 것이다.

그 사실을 돌원숭이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녀석은 이강우에게 더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끼이!

차근차근, 이강우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가지고 논 후에 죽일 속셈이었다.

놈이 모든 정신과 감각을 이강우를 괴롭히기 위한 작업에 곤두세웠다.

그 순간.

스윽!

이강우의 지척에서 숨을 죽인 채 대기 중이었던 얼음 병사가 들고 있는 검은 창으로 돌원숭이의 등을 찔렀다. 돌원숭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제껏 수도 없이 당한 공격, 기껏해야 생채기만 날 법한 공격에 피할 가치와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콰직!

그 창이 놀랍게도 돌원숭이의 등을 뚫고, 가슴 밖으로 나왔다. 돌원숭이의 등이 활처럼 변했고, 돌원숭이가 두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창을 바라봤다.

바닥에 너부러진 이강우는 보이진 않았지만, 콰직! 들리는 그 통쾌한 소리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네놈은 당장 먹잇감을 죽이지 않는 잔혹한 놈이지.’

* * *

절망의 태양은 마력과 피를 머금고 제 몸을 키운다.

붉은 뿌리는 대상의 마력과 피를 머금고 자라난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이강우의 머릿속에서 충돌했을 때, 이강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강우에게는 돌원숭이를 찌를 수 있는 창이 필요 했고,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으며, 이강우가 준비해놓은 모든 것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강우는 쓸모없는 것들을 뭉개기로 했다.

‘먹어 치워라!’

절망의 태양.

놈에게 모든 걸 줬다.

시산혈해, 몬스터의 사체와 피웅덩이를 줬다.

붉은 뿌리의 숲! 그마저도 먹어 치울 수 있도록 허락했다.

심지어 이강우는 제 몸에 상처를 냈다. 자신의 피와 마력! 그마저도 허락했다.

이강우는 메말라갔지만, 절망의 태양은 살이 찌기 시작했다.

이윽고 절망의 태양이 거대해졌을 때, 이강우는 그것을 꿈속의 불사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작게 만들었다. 압축했다. 그 거대한 핏덩이와 마력 덩어리를 농구공 크기로 줄였다.

‘제발.’

그렇게 작아진 절망의 태양에 붉은 뿌리를 심었다. 붉은 뿌리는 단숨에 절망의 태양을 휘감았다. 절망의 태양이 몸부림을 쳤지만, 이번에는 붉은 뿌리가 탐욕을 발휘했다.

뿌리를 내린 붉은 뿌리는 시커멓게 변했다. 너무나도 짙은 핏기와 마력은 붉은 핏기마저 잃어 버렸다.

쑥쑥!

그 핏기를 머금은 붉은 뿌리가 검게 물들어, 검은 줄기가 되었다.

절망의 뿌리!

이강우는 자신이 긴급하게, 그러나 소름끼치게 만들어낸 섬뜩한 작품을 바라봤다.

이거다!

이것이 돌원숭이의 그 무시무시한 몸뚱이를 꿰뚫는 창이 될 것이다!

그 확신 앞에서.

‘방법!’

이강우는 마냥 취하지 않았다.

최강의 무기도 대상의 몸에 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강력한 무기만으로는 안 된다. 이강우는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다. 무작정 힘에만 취하지 않았다.

방법!

‘떠올려라.’

돌원숭이의 몸뚱이에 이 섬뜩한 절망의 뿌리를 박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이강우 본인이? 그건 불가능했다. 백전연마의 실력을 보여주던 초인적인 능력의 불과 얼음의 군단마저도 돌원숭이에게 가뿐하게 제압됐다.

녀석은 싸울 줄 아는 놈이었다. 이강우에게 놈의 몸을 난도질할 수 있는 무기가 있더라도 싸움은 불가능하다.

‘그래, 미끼!’

그 순간 이강우는 답을 내렸다.

이강우가 칼을 꽂는 심판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이강우에게는 믿음직한 병사가 잔뜩 있다!

심판자는 그들이다.

이강우는 그들이 대상을 심판할 수 있도록, 대상이 단두대 위에 오를 수 있도록 미끼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먹잇감을 장난감으로 취급하는 돌원숭이의 습성이라면, 자신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순간 필시 틈을 보이리라 생각했다.

그 예상.

‘네놈의 그 빌어먹을 성격이 네놈의 생사를 갈랐다.’

적중했다.

끼이, 끼이!

이강우가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돌원숭이의 가슴을 절망의 뿌리로 만든 창이 관통했다.

하지만…….

끼이이!

아직 돌원숭이는 패배를 선언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예고하지도 않았다. 녀석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제 가슴을 뚫은 창을 이리저리 비틀며 뽑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암담한 상황이었다.

이강우가 전력 이탈을 감수하고 미끼를 자처하고, 준비해놓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이마저도 돌원숭이에게 통하지 않다니!

만약 돌원숭이가 저 창을 빼낸다면, 녀석의 가슴에는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생기겠지만, 이강우는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이 참담한 상황 속에서 이강우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강우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그 미소 사이로.

‘빵!’

소리없이 주문을 외웠다.

이강우의 입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과 함께.

콰아앙!

돌원숭이의 가슴에 박힌 창이 폭발했다.

붉은 뿌리가 머금은 마법, 이강우의 마지막 노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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