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5대 권능
[5,932 포인트의 마력을 흡수하셨습니다.]
[9,111 포인트의 마력을 흡수하셨습니다.]
[3,842 포인트의 마력을 흡수하셨습니다.]
이강우가 오른손으로 마나스톤을 쥐었고, 그런 이강우의 오른손바닥 안에서 마나스톤이 품고 있는 빛은 눈 녹 듯 사그라졌다.
이강우가 손을 폈을 때 그의 손바닥에 남은 건 그저 평범한 검은색 돌멩이였다. 이강우는 그 돌멩이를 대충 근처에 던졌다.
그렇게 굴러가서 쌓인 마나스톤의 양이 봉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상당했다. 하지만 이강우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곧바로 가방 안에서 새로운 마나스톤을 쥐었다.
‘이제 끝이 보이는군.’
이강우가 중얼거림과 함께 자신이 앉은 의자, 그 바로 정면, 자신이 고개를 드는 순간 자신의 전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전신 거울에 비친 이강우의 머리 위에 여섯 개의 고리가 밝게 빛났고, 일곱 번째 고리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고리의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지만, 이강우는 더 이상 이 사실에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7서클, 세계에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는 대마법사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사실에 기쁨보다는 슬픔이 느껴졌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이강우는 억지로 자신의 감정을 담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강우는 그 머리 위 고리를 바라보며, 새로운 마나스톤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바츠무의 손을 이용해 흡수했다. 마력 흡수를 알리는 알림이 눈앞에 떴다.
그 순간.
[마나 서클이 개발됐습니다.]
[7서클에 도달합니다.]
이강우가 기다리던 소식이 생겼다.
그 소식을 바라보던 이강우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제…… 뒤는 없다.’
* * *
[이강우]
-마력: 8서클 개발 중(0%)
-보유 마법: 9개
-마법 슬롯: 8개
-섭취 마력 포인트: 1,509,021포인트
이강우는 거울에 비친 일곱 자리의 숫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몇 가지 기억들이 눈앞을 스쳐 갔다. 처음 불사황제와 조우했던 순간부터 첫 마나 서클 개발에 성공했을 때, 마법을 배웠을 때…… 그러나 그런 기억 앞에서 이강우는 감상에 빠지지 않았다.
빠질 이유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아직 뭔가를 이룬 게 아니다.’
이강우는 이후 망설임 없이 도서관 항목으로 들어갔다. 이강우가 거울로 보는 광경이 바뀌었다. 거울 속 이강우는 거대한 도서관 속에 있었다. 이강우가 거울을 통해 그 도서관을 채운 책들을 바라봤다.
정말 많은 마법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강력한 마법도 결국 불사황제가 가진 권능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이강우는 그 무수히 많은 책을 무시했다.
오직 하나, 플래티넘북만을 바라봤다.
[플래티넘북을 구매하시겠습니까?]
3권의 플래티넘북을 구매했고, 플래티넘북은 곧바로 이강우에게 자신의 비밀을 드러냈다.
[얼음과 불의 군단 마법을 습득하셨습니다.]
[검은 파리 마법을 습득하셨습니다.]
[불꽃 심장 마법을 습득하셨습니다.]
[얼음과 불의 군단]
-7서클 마법.
-불과 얼음으로 된 군단을 소환합니다. 소환된 병사는 마력이 주입되는 동안 결코 쓰러지지 않으며,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에게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자폭을 통해 주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검은 파리]
-7서클 마법.
-파리처럼 보이는 검은 불꽃을 소환합니다. 검은 파리는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검은 파리의 개체 수는 적의 시체를 먹어 치울수록 늘어납니다.
[불꽃 심장]
-7서클 마법.
-심장을 불꽃으로 만들어,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 능력이 유지되는 동안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을 얻습니다. 그러나 불꽃 심장을 사용하면, 처참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됩니다.
설명을 보기만 해도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 짤막한 설명을 본 이강우는 곧바로 준비해두었던 안대를 썼다. 그리고는 곧바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이강우는 굳이 이 마법을 이리저리 시도할 필요가 없다.
꿈나라로 가는 순간 가장 확실하게, 온몸으로 이 마법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야크센, 한 판 붙자!’
이강우, 이제 그도 자신의 운명에 익숙해졌다. 이제 야크센을 만나는 게 기대가 될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야크센, 네놈 미간에 구멍을 내주지!’
이강우가 이를 꽉 물었다.
* * *
즈믄나래 2대 길드 마스터가 된 안중현의 일상은 생각 이상으로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즈믄나래 길드는 정치적으로 다양한 세력과 얽혀 있었다.
정치인들과의 만남이 수도 없었고, 만날 때마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또한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즈믄나래가 가진 것을 뜯어먹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승냥이 같은 이빨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건 물론 역겹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재계와도 만나야 했다. 그나마 AU그룹이 해준 지원 덕분에 숨통을 트고 버텨올 수 있었다. 문제는 AU그룹의 지원이 공짜가 아니라는 점. 그들도 적지 않은 요구를 했다.
그것들을 제외하더라도 길드 업무 자체가 상당했다.
특히 테러사건의 주역인 볼코프를 잡으면서, 마법청이 다시 길드 내 마법사들의 유적 사냥을 허가해주기 시작했다. 밀렸던 유적 사냥 계획을 검토하는 작업만으로도 안중현은 바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즈믄나래의 상태였다. 즈믄나래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속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저곳 돈을 퍼붓는군.’
즈믄나래는 전국 곳곳에 비밀 사업장을 가지고 있었다.
만석루 같은 사업장이 전국에 열 곳이 넘었다. 개중에는 안중현도 처음 듣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 들어오는 자금은 상당했는데, 그 자금이 쌓이기는커녕 오히려 이곳저곳으로 빠져나고 있었다. 이곳저곳,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돈의 흐름이 엄청났다.
‘검찰이나 국세청이 털면 먼지가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먼지 때문에 폐렴에 걸렸을지도 모르겠군.’
안중현이 알게 된 즈믄나래는 정상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그래서 안중현은 더더욱 즈믄나래를 의심했다.
‘누가 보더라도 미래를 보는 조직이 아니군.’
미래를, 훗날을 도모하는 집단이라면 이런 식의 운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안 좋은 짓,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더라도 나중을 기약하고 저지르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다. 심지어 도둑조차도 도망칠 구석을 염두에 두고 도둑질을 한다.
달리 말하면, 즈믄나래는 아주 근거리의 미래만을 염두에 두고 운영됐다.
놀라운 건 마구잡이식 운영은 또 아니라는 점이었다. 불법과 범법행위를 저질렀지만 자금 세탁 과정 등은 교묘했다.
‘강희는 모래시계문의 주인들과 접점이 있다.’
덕분에 강희에 대한 심증은 확실해졌다.
그는 모래시계문을 이 세계에 가져온 족속들과 한패다. 그는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에 맞추어 즈믄나래를 운영했다. 5년…… 아니, 3년 뒤면 즈믄나래가 공중분해가 되든 말든 알 바 없다는 듯이 즈믄나래를 이끌었다.
그 누구도 아니고, 즈믄나래 창설부터 이제까지 모든 것을 관리한 강희가 그딴 식으로 행동했다는 건, 심증을 넘어 그냥 물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당연히 중요한 과제가 됐다.
여기서 보통 범죄자라면, 여기서 그냥 구속을 하면 된다. 교도소에 집어넣으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탈출은 불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다. 그는 정말 문제가 생기면 교도소 정도는 가뿐히 탈출할 것이다.
‘제거를 하는 것도 불가능.’
차라리 뿌리를 뽑는다는 심정으로 그를 제거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만, 지금 만약 이 상황에서 강희가 죽으면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요동을 칠 것이다. 죽이려고 한다고 해서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강희 자체를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하나 더 있었다.
‘넘버스 멤버.’
강희, 그가 마법사들 중 특별한 이들을 선정해 관리하는 넘버스 멤버에 대한 자료 대부분이 삭제됐다.
‘보통 단체는 아니다.’
이강우에게 이야기를 듣기로는 이강우 본인이 9번이었고, 하선우가 2번이었으며 채유리가 7번이었다고 한다.
‘김재범을 넣는다고 하더라도…….’
김재범을 제외한다고 해도 5명이 남는다. 강희, 그가 직접 고른 자들이니 보통 존재는 아닐 터.
‘대체 누가?’
그런데 지금 안중현은 그 존재들을 제대로 특정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일선에서 활약하는 최고의 마법사들은 전부 넘버스 회원인 셈이니까. 그 외에 나름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이들을 제외해도 아직 몇 명이 남았다.
‘위험해.’
다른 비리 사실은 전부 그대로 나뒀으면서 넘버스 멤버에 대한 정보만을 폐기했다는 건,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넘버스 멤버는 강희의 비밀이다.
‘어떻게든 찾아야 해.’
그렇기에 이걸 찾는 게 우선이었다. 이건 독이니니까. 언제 어느 순간 즈믄나래를 그리고 이강우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 모르는 독. 강희가 숨겨둔 독. 반대로 발견만 하면, 강희에게 역으로 한방 날릴 수 있는 화살이 될 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넘버스 멤버에게 돈이 흘러들어 간 정황이 있을 거다. 그걸 찾아야 돼.’
그렇게 안중현이 고민하고 있을 무렵, 이강우로부터 연락이 왔다.
* * *
“3주 뒤, 8월 14일에 중국에 갈 겁니다.”
이강우의 말에 안중현은 놀랐지만, 놀란 표정을 짓는 대신, 이유를 묻는 대신.
“필요한 게 있나?”
필요한 걸 물어봤다.
이 믿음직하기 그지없는 안중현의 모습에 이강우는 미소를 지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그를 만난 건 하늘이…… 아니, 종말과 몰락을 맞이하기 싫은 이 세상이 이강우에게 준 선물이자, 배려였다.
“팀을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난 힘들겠군.”
안중현이 쓰게 웃었다. 길드 마스터인 그는 지금 이렇게 짬을 내서 밖에서 누군가 대화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머지 멤버들, 적당한 사유로 여행처럼 꾸며서 중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채유리와 자네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네. 그래서 방법은 마련했나?”
“예. 이부성 마법청장을 이용했습니다.”
이용해?
그 표현에 안중현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이부성 마법청장 같은 정치인을 이용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를 통해 중국으로 갈 루트를 확보했다? 안중현이 보기엔 오히려 가장 반대할 사람이 이부성 마법청장일 텐데?
이강우는 그런 안중현의 표정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준 게 있는데, 이제 받아도 좀 봐야죠.”
처음에는 중국으로 가겠다는 이강우의 말에 이부성은 당연히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부성 본인이 칠성문과의 접점을 원하긴 했지만, 이미 한국 내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가진 마법사가 된 이강우를 중국으로 보내는 건, 이부성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강우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두드려 맞는 건 이부성 청장이었으니까.
그런 이부성을 움직인 건 칠성문이었다. 칠성문이 이부성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강우의 중국행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부성 마법청장에 대한 칠성문의 지지를 철회할 생각이라고. 그 과정에서 넌지시 다른 유력 인사의 존재를 언급했다. 안대욱 부청장의 이름을 슬쩍 언급했다.
‘외통수에 걸린 셈이지.’
이부성 청장 입장에서는 이미 블랙 스택과 한바탕 싸웠다. 강희가 검찰에 구속수사를 당한 건, 현 정부가 주도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부성 청장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 수가 없다.
만약 그 일에 이부성 청장이 아무런 관련도 없다면, 그게 오히려 심각한 문제다. 이부성 청장이 아무런 실권도 쥐지 못했다는 증거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이부성 청장이 블랙 스택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하나, 칠성문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부성이 기댈 곳이 블랙 스택밖에 없다면 블랙 스택이 이부성을 대우해줄 리 없지만, 이부성이 칠성문과 긴밀한 접촉을 한다면 블랙 스택은 그런 이부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먼저 구애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즉, 칠성문과의 관계는 이부성의 모든 정치적 생명이 걸린 일인 셈.
그 목표가 위협 받게 생겼는데…… 아니 자칫 잘못하면 이 모든 걸 안대욱이 날름 먹어버릴지도 모르게 생겼는데, 이부성 청장이 더 강하게 NO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그가 나서서 이강우의 중국행을 허가해 줬다.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총대를 메고 책임지겠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그 인간도 쓸 데가 생기는군.”
정치인이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퍽 신기한지, 안중현은 말을 뱉으면서도 피식 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길지 않았다.
‘또 다시 위험한 길을 가는구나.’
이강우가 중국으로 간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팀 포식자를 이끌고 들어간다.
여행일 리는 없다. 유적 사냥을 위해서 가는 거다.
그마저도 쉬운 유적 사냥은 아닐 것이다. 5등급 이하 유적 사냥은 한국 내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폭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고, 영웅처럼, 위풍당당하게 모래시계문을 개선문처럼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으로 간다는 건, 그 이상…… 4등급 이상의 모래시계문을 노린다는 의미일 터.
언제나 그랬다.
이강우는 언제나 세상이 자신을 평가하는 평가치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직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운명은 계속 될 것이다. 이제 이강우는 세상을 위협하는 거대한 난제 속에 몸을 던질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안중현은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만 들었다.
“몸 건강히 다녀오도록.”
그냥 그런 말만, 모두가 할 수 있는 평범한 말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이강우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올 때 선물로 괜찮은 술 한 병 사오겠습니다.”
* * *
전쟁이었다.
꿈이라는 무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실현가능한 그 무대에서 이강우와 불사황제 야크센의 전쟁이 시작됐다.
불사황제는 괴물들을 만들어냈다. 세상이 몬스터로 가득 찼다. 그렇게 불사황제가 만들어낸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이강우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강우는 그 괴물들을 상대로 불사황제의 권능을 아낌없이 펼쳤다. 절망의 태양을 띄웠고, 그 태양 아래에서 자라난 붉은 뿌리를 무기로 만들었고, 그 무기들로 무장한 불과 얼음의 군단 앞에서 거칠 게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하늘 위를 나는 몬스터들은 검은 파리 떼의 식량이 되어 처참한 꼴로, 시체 조각만 간신히 남긴 채 바닥에 떨어졌다. 시체가 비처럼 쏟아졌다.
“으아아!”
그렇게 괴물들을 해치우던 이강우는 불사황제를 향해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내는 괴성을 내질렀다.
해볼 만하다!
그런 생각이 이강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 불사황제는 이강우의 항쟁을 몇 번의 손짓만으로 항쟁이 아닌 발악으로 만들었다.
불사황제가 자신의 권능을, 이강우에게 주었던 권능을 직접 발휘하기 시작했다.
불사황제가 직접 보여준 그의 권능들은 이강우의 것을 어린아이 장난으로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절망의 태양은 이강우의 것보다 작았으나, 탐욕은 이강우의 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으며, 불사황제가 만들어낸 붉은 뿌리는 이강우의 것보다 곱절이나 질기고, 날카로웠다.
심지어 불사황제는 자신의 주변에 붉은 뿌리로 만들어진 숲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강우가 수십의 병사를 만들 때, 불사황제는 수백의 군단을 만들었고, 이강우가 만들어낸 파리 떼가 하늘을 날아다닐 때, 불사황제가 만들어낸 검은 파리 떼는 구름이 되어 있었다.
‘미친 새끼!’
욕이 절로 나왔지만 이강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이강우는 더더욱 처절하게 발악했다.
그런 발악 앞에서 불사황제가 처음으로 말했다.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그것은 경고였고 동시에 격려했다.
“이제부터 네가 마주할 진짜 괴물들! 바츠무, 그 추레한 것들의 장난감이 아닌 바츠무조차 사육 못해 그저 우리 속에 가둘 수밖에 없었던 그 괴물들마저 먹어 치워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네 것이 될 것이다.”
그 말 앞에서 이미 거듭된 불사황제의 공격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이강우는 마지막 말을 쥐어짜내듯 소리쳤다.
“그리고 나중에는 전부 네 것이 되겠지!”
이강우의 그 외침에 불사황제는 대답 대신 자신의 주변에 울창하게 자라난 붉은 뿌리 나무들, 대나무와 흡사하게 생긴 붉은 뿌리 하나를 잡고, 꺾었다.
꺾어서 손에 쥐는 순간 붉은 뿌리 나무는 반듯한 투창(投槍)이 되었고, 불사황제는 그 투창을 이강우의 심장을 향해 던졌다.
그 순간 이강우는 속으로 소리쳤다.
‘불꽃 심장!’
불멸에 가까운 재생 능력을 만들어주는 불꽃 심장을 발동했다.
‘헉!’
그러나 이강우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꽃 심장을 외치는 순간 이강우는 자신의 이성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아……!’
그때처럼.
볼코프에게 가슴이 찔렸을 때처럼.
이강우는 아득해지는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이대로 이성을 잃으면, 영원토록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런 이강우의 아득한 정신 속으로 불사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꽃 심장은 불사의 권능. 그것을 쓴다는 것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의미일지어니. 명심하라. 내가 차지할 건 네 시체다.”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이강우가 감았던 눈을 떴다.
끼익!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강우가 타고 있던 차량이 멈췄다. 운전석에 있던 호령이 곧바로 뒷좌석에 앉은 이강우와 채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이 선생님.”
호령이 어색한 무뚝뚝한 어조로 이강우를 불렀다. 이강우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호칭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짧게 흘렸다. 그 호칭에 어색한 건 호령의 옆 좌석인 조수석에 탄 김수애와 이강우의 옆에 앉아 있는 채유리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호령을 보는 순간 얘는 또 뭐야? 그런 표정을 쌍둥이처럼 지었던 둘은 지금도 호령을 상대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이강우를 놓고 벌이는 애정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강우는 그런 그 둘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잽싸게 고개를 돌려 자동차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을 보는 순간 놀랍게도 복잡한 고민이 눈 녹 듯 사라졌다.
‘여기가 황산이구나.’
머릿속 고민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과연 중국 제일의 명산답네.’
황산.
중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이름난 절경을 품은 산이다.
‘이런 곳에 모래시계문을 숨기다니…… 머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낭만이 있는 건지 모르겠군.’
그런 황산 안에 3등급 모래시계문이 숨겨져 있었다. 그야말로 절경(絶境) 속에 비경(秘境)이 숨겨져 있는 셈.
어쨌거나 이 운치 넘치는 곳에 3등급 모래시계문이 있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치고는 나쁘지 않은 광경이 될 듯했다. 비단 이강우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이강우 일행이 차에서 내리고, 뒤에 따라오던 차에서 나머지 일행이 내렸을 때, 모두가 황산을 바라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모래시계문 너머에서 유적 사냥을 하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그들도 자연이 주는 장엄함 앞에서는 겸손해졌다.
“따라오십시오.”
그런 그들을 호령이 안내했다.
목적지는 황산 안이었다.
* * *
황산은 세계적인 관광명소였지만, 2015년 모래시계문 등장 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험준한 황산 안에서 모래시계문을 처리하는 건 쉽지 않았고, 언제 몬스터에게 습격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황산을 관광지로 놔두는 건 관광하러 온 사람이나, 관리하는 사람이나, 둘 다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으니까.
그 사실이 황산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산은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그런 황산 속에 중국 정부와 칠성문이 몰래 4등급 이상의 모래시계문을 특별 관리하기 위한 무대를 만들었을 줄은 전 세계 그 누구도 쉽사리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다면, 그건 상상이 아니라 망상이었겠지.
“풍경이 대단하군요.”
“설마 황산 같은 명산을 이런 이유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확실히 보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광경이네.”
그 황산 속에 숨겨진 3등급 모래시계문을 사냥하러 가는 포식자 팀에게 이런 황산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건 최후의 만찬, 그 비슷한 것이었다.
“그보다 칠성문이 용케 3등급 모래시계문 사냥을 허용해 줬네요.”
그때 김재범이 한 마디 했다. 대답은 이강우가 아니라 하선우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가 들어가서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처치하면 칠성문 입장에서는 이득이지. 그리고 우리가 유적 사냥을 하는 동안에는 모래시계문의 모래시계는 멈출 테니까 그것도 이득. 만약 우리가 모래시계문 사냥에 성공하면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니, 그것도 이득.”
대답을 듣던 이강우가 속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전멸하면, 마나 서클 자극 비약 레시피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칠성문은 우리의 실패를 원할 지도 모르겠군.’
전후사정을 놓고 봤을 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팀 포식자의 3등급 유적 사냥을 말릴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 덕분에 팀 포식자가 이렇게 빨리, 순조롭게 3등급 유적을 사냥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선우, 넌 갑자기 말을 놓는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있겠어? 그냥 충고 하나 하자면 밥 먹을 때 앞으로 은으로 된 식기를 애용해라. 혀가 더 짧아지면 수명도 짧아질지 모르니까.”
이 무렵 김재범과 하선우가 막간을 이용해 콩트를 했다. 그런 그 둘의 콩트에 호령이 찬물을 부었다.
길안내를 하던 그녀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등을 돌려 팀 포식자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3등급 모래시계문을 만나게 됩니다. 경고하겠습니다. 다들 준비하십시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듯한 딱딱한 한국어를 듣고 그녀의 진의를 단숨에 파악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팀 포식자가 3등급 모래시계문 앞에 섰을 때, 모두가 호령이 한 경고의 이유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욱!”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총꾼들이었다. 그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는 5미터 높이에, 회색빛 암석을 깎아 만든 듯한 모래시계문을 보는 순간 크게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고는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라고 해서 마냥 멀쩡한 건 아니었다. 4서클 마법사인 김수애를 비롯해 5서클 마법사인 김재범과 하선우는 이를 꽉 물었고, 두 눈을 터뜨릴 기세로 부릅떴다.
6서클 마법사인 채유리 역시 평소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잊은 채 이를 꽉 물었다.
호령도 다를 건 없었다. 그녀는 부동자세를 취했지만, 절도 넘치던 그녀의 몸은 계속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3등급 모래시계문의 위엄이다.
이 위엄 앞에서 보통의 존재들은 느끼는 감정과 아득함은 고소공포증 환자가 100미터짜리 번지점프대 위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감정과 흡사하다.
미쳐버린다. 다리가 떨리고 머릿속이 흔들리고, 멀쩡하던 심장이 쿵쾅거리고…….
그런 모래시계문의 위엄 앞에서 오직 한 명, 이강우만이 번듯했다.
‘불사황제에 비하면 이 정도는…….’
고작 이 정도의 위엄 따위에 밀릴 이강우가 아니다. 이보다 더한 것과도 맞서 싸웠고, 그것보다 더한 것들과 맞서 싸울 각오를 했다. 이강우가 처벅처벅, 문을 향해 걸었다. 모래시계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야크센의 기억을 더듬었다.
‘바츠무 족이 만들어낸 가짜 괴물이 아닌, 바츠무 족조차 쉽사리 길들이지 못해 우리 안에 꽁꽁 가둔 괴물들.’
야크센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됐다.
지금까지 인류가 맞이한 몬스터들은 바츠무가 만들어낸 몬스터들이다.
이미 몇몇 이들은 눈치를 챘다. 몬스터들이 자연적으로 탄생한 존재가 아니라, 생태계의 섭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작위적인 존재라는 증거는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 상대해야 하는 놈들은 다르다. 바츠무 족조차 길들이지 못해 그저 우리에 가두었을 뿐인 괴물들, 세상을 가차 없이 무너뜨릴 수 있는 살아있는 악몽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강우를 보다 살찌우게 해줄 것이다. 이강우를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내가 강해지면 나 혼자만 죽지만, 강해지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다.’
이제 행보에 망설임은 없었다.
이강우가 곧바로 문에 손을 댔다.
그러자 곧바로 문에서 뿜어지던 위엄이 사라졌다. 문 너머의 괴물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자들에게 으르렁거리며 경고를 하던 놈이 이강우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물론 그 인정이 적수로 인정한 건지, 아니면 사냥감으로 인정한 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누가 먹힐지 한 번 해보자고.’
그러니까 이제 놈에게 그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누가 먹잇감이고 누가 포식자인지.
* * *
유엔에게 요청을 받아 3등급 몬스터, 모래군주 사냥에 나섰던 가위손 버튼이 사냥 포기를 선언하고 아프리카 땅에서 물러날 무렵, 개인적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몰래 아프리카에 잠입했던 리볼버 역시 아프리카를 떠나 그리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애틀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그가 가장 먼저 만난 상대는 로드리게스 회장이었다.
로드리게스 회장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자신이 직접 찾아가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크로포드가 직접 자신을 찾아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심지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프리카에서 그리스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시애틀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직후 자신을 찾으러 왔다고 한다.
로드리게스 회장이 아는 크로포드라면 그 과정과정 속에서 최소 하루 이상을 수면과 간식 섭취로 보냈어야 한다.
나무늘보가 갑자기 치타처럼 달리는 꼴을 본 셈.
“정말 놀랍군. 자네가 이렇게 신속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내 눈으로 목격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일단 로드리게스 회장은 미소를 지었다.
크로포드가 이렇게 급하게 자신을 찾아왔다면,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의미. 아쉬운 놈이 아쉬운 소리를 하고, 고개를 숙이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크로포드는 그런 로드리게스 회장의 거만하면서도,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며 기분 상한 표정 대신 오히려 웃음기 넘치는 눈빛을 품은 채 대답했다.
“그 사진 속에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음?”
“씨앗입니다.”
말과 함께 크로포드가 보온병과 비슷하게 생긴 걸 꺼냈다. 보온병의 뚜껑을 개봉하자, 그 안에서 빛이 뿜어졌다. 신비한 빛이었다. 로드리게스 회장이 관심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 크로포드는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설명을 해 줬다.
“마력을 흡수해 응축하는 능력을 가진 씨앗입니다. 그 거대했던 나무의 흔적은 이 씨앗이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발아한 흔적이었습니다.”
“마력을 흡수한다?”
“흡수해서 응축을 합니다. 지금 이것 하나가 4등급 마나스톤의 곱절이 넘는 마력을 품고 있습니다.”
로드리게스 회장이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했다.
“비유를 좀 해주겠나?”
“원자력입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로드리게스 회장은 고개를, 머리를,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명색이 에너지 산업을 통해 세계적인 대부호가 된 로드리게스 회장이다. 원자력이란 단어가 가지는 가치를 모를 리 없다. 로드리게스 회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건?”
“이 씨앗을 키울 공간이 필요합니다. 거대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크기가 필요한가?”
“최소한…… 뉴양키스타디움 정도 되는 공간은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양키스의 홈구장이자, 5만 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야구장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다?
“어려울 건 없지.”
로드리게스 회장에게는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로드리게스 회장이 잠시 고민했고, 답을 줬다.
“보름 정도면 되겠군. 필요한 건 그게 전부인가?”
“그 외에 필요한 건 제가 구할 겁니다. 직접.”
곧바로 대답을 내뱉는 크로포드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