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37화 (37/66)

37화. 에이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거실에서 초조하게 TV를 보고 있던 이혜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시계를 봤다. 시침이 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밖은 캄캄했다.

새벽 2시 22분.

이혜연은 일단 멀쩡하게, 다친 곳 하나 없이 신발을 벗는 이강우의 모습에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오빠 왔어?”

“안 자고 뭐 했어?”

이강우는 여동생의 말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은? 한동안 집에 오기 힘들다며? 잘 됐어?”

“하던 일이 갑자기 도중에 취소됐어.”

“무슨 일 없었지?”

이강우는 거듭해서 자신을 걱정하듯 말하는 여동생의 모습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평소라면 그녀는 이강우가 들어오든 말든 TV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이렇게 연달아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건, 지금 여전히 TV를 가득 채운 서울 삼성동 코엑스 테러 사건 때문일 터.

즈믄나래가 테러를 진압한 사건이고, 이강우가 즈믄나래 소속이니, 이강우를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무슨 일이 있었겠냐? 있었으면 여기 오질 못 했겠지.”

이강우는 그런 여동생의 불안감을 짓누르기 위해, 억지로 퉁명스러운 대답을 뱉었다.

“그보다 엄마는?”

대화 주제도 바꿨다.

“주무셔.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 유리 언니도 괜찮은 거야? 갑자기 통화가 안 돼.”

채유리가 언급되자 이강우의 표정도 살짝 굳었다. 그녀가 출동했다는 이야기는 들었고,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괜찮을 거야.”

‘채유리가 다칠 정도로 어마어마한 몬스터가 등장했으면,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있지도 못했겠지.’

이강우는 애써 안 좋은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담담한 척하려던 이강우는 결국 표정을 구겼다. 그런 이강우의 모습에 이혜연은 하려고 했던 질문을 전부 삼켰다.

“밥은?”

“먹진 않았는데…… 괜찮아.”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곧바로 잘 건데 라면은 무슨. 그보다 웬일이야? 네가 라면을 다 끓여주겠다고 말하고?”

“필요 없으면 됐어.”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이혜연은 더 이상 이강우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듯, 거실에 있는 TV를 끄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강우 역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이강우는 점퍼를 벗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동시에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제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피로감이 급속도로 전신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침대에 누워 잠들고 싶을 지경.

하지만 이강우는 잠들지 않았다. 잠들 수 없었고, 잠들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였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최악인 하루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최악으로 기록될 하루.

‘설마 한국 정부가 속은 건가?’

국제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한국 정부가 무대를 만들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섭외하고, 무대를 연출했다.

그런데 그 무대가 하루아침에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렸고, 다른 곳에서 진짜 말도 안 되는 쇼가 펼쳐졌다.

‘속은 거겠지. 적어도 그때 거기 있는 사람들 표정은 연기가 아니었어.’

심지어 표적이었던 테러집단 간부는 자신의 존재를 정부에 드러내며, 도발까지 했다.

파격 그리고 충격의 연속.

한국 정부가 테러리스트 집단에 정말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아마 이 사실이 공개되면, 테러 사건으로 이미 추락한 정부의 신뢰도는 바닥을 뚫고 들어갈 터.

‘그런데 위스프는 대체 왜 그런 거지?’

한편으로는 위스프의 행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을 벌였다. 그것도 전 세계를 상대로, 단순히 일개 테러 조직이 보여줄 수 없는 능력을 보여줬다. 아마 21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테러 조직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정도다.

‘멋지지만, 실속은 없었어. 아니, 오히려 실패한 거 아닐까?’

하지만 막상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그들의 능력에 비해서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지만 만약 코엑스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호텔, 백화점에 몬스터를 출몰시켰다면? 사망자가 최소 두 자릿수 단위로 나왔을 것이다.

아니, 코엑스란 무대 자체도 의문이 든다. 즈믄나래 길드 본부가 근처에 있는 걸 몰랐던 걸까? 절대 아니다. 몰랐을 리 없다.

‘피해자 숫자를 보면 오히려 경각심만 심어 줄 뿐 공포감을 심어주진 못 했어.’

작심하면 5분 안에, 헤이스트 마법을 쓰면 출동 3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우글거리는 주변 지역을 왜 하필 표적으로 삼았을까? 삼으려면 코엑스가 아니라 더 좋은 무대도 있었을 텐데? 단순히 코엑스에 모래시계문을 숨길 장소가 많아서?

‘도발도 이해할 수 없어.’

하물며 일을 저지르려면 그냥 저지를 것이지, 왜 그 대단한 서열 3위 간부가 정체를, 위치를 드러내면서 일을 저질렀을까? 그저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

‘만약 이게 영화라면 프롤로그이겠지.’

그럴 일은 없다.

위스프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고작 이 정도 스케일의 범죄에 만족할 리 없다.

‘도발도 그들이 노리던바. 피해가 적은 것도…… 나름 그들이 노리던바.’

결정적으로 테러 집단이라면 테러를 저지른 후에 그 목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걸 위해서 테러를 저지르는 거다.

그러나 위스프는 자신들이 테러를 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성명 따위를 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들이 아무런 소리도 없는 걸 보면 테러는 현재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이제 시작이다.

‘미친 새끼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이강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게 프롤로그라니? 그 난리 통이 그들에게는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고? 그럼 그들이 생각하는 에필로그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강우의 고민은 여기까지였다. 이강우는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당분간 골치 아프겠군.’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정말 바쁜 나날이 시작될 테니까.

* * *

테러 사건의 피해는 그 자체로는 크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한국군은 모래시계문 수색을 위해 전국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길드 역시 언제든 실전에 투입될 수 있도록 경계근무에 들어섰다.

당연히 크루들과 모래시계문을 거래하는 암시장은 벌집이 됐다. 그동안 정부의 묵인 하에 활동하던 그들을 정부가 대대적으로 소탕하기 시작했다.

그런 야단법석 속에서 이강우는 안대욱 마법부청장 그리고 강희 길드 마스터, 그들과 삼자대면을 하고 있었다.

이강우는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바쁜 자들 그리고 지금 이 시류를 이끌어갈 권력을 가진 자들과 나란히 앉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내가 잘 나가긴 잘 나가나 봐. 이런 자리가 더 이상 어색하기보다는 짜증 나는 걸 보면.’

물론 이 자리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이강우는 이 자리가 마련되는 순간 기분이 안 좋았다.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서, 그가 득을 봤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때문에 이강우는 굳이 먼저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기 싸움에서 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 건 강희였다.

“이강우 씨, 고생하셨습니다.”

“예. 고생했죠.”

대답을 하는 이강우는 강희가 아니라 안대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

“그보다 이렇게 되면 그때 한 거래 내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강우와 안대욱, 둘 사이에는 거래가 있었다.

이강우가 위스프 스윕 작전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대가로…… 그러니까 마법청이 요구하는 만큼의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을 만들어주는 대가로, 제작된 마나 서클 비약의 2할을 달라고 했다.

통 큰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협박에 가까운 베팅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강우는 기왕 하는 거, 그 정도 메리트 없이 목숨을 담보로 잡고 싶진 않았다.

안대욱은 그런 이강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강우는 위스프 스윕 작전이 진행될 무렵에 나름 기대를 했다. 마력을 짭짤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눈앞이 펼쳐졌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협상도 달라질 겁니다.”

때문에 안대욱은 그때의 거래를 부정했다.

흥! 이강우가 짧게 콧방귀를 뀌었다.

‘아주 날 가지고 노는군. 자기들 마음 내키면 거래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겠다?’

이강우의 분위기가 삼엄해졌다.

결국 강희가 나서서 중재를 했다.

“그 거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또 저보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국익을 위해 희생해 달라…… 이런 건 아니겠지요?”

“비슷한 겁니다.”

“아, 비슷해요?”

이강우는 여기서 화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정도까지 심기가 뒤틀리니, 이제는 어디까지 가는지 그게 궁금할 정도다.

“들어는 보겠습니다. 들어는.”

이강우가 말과 함께 안대욱을 바라봤다. 안대욱이 안경을 한 번 고쳐 쓴 후 대답했다.

“현재 한국 정부는 테러 조직 위스프가 3등급 모래시계문을 확보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황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몇 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갈 데까지 갈 생각이었던 이강우가 표정과 기세를 바꿨다. 이강우가 갑자기 한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그리고는 대화를 잠시 멈췄다. 침묵이 깔렸고, 그 침묵 속에서 이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3등급 모래시계문이라면…….”

“예. 생각하시는 그 문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모래시계문을 시한폭탄처럼 써먹는 테러 조직이 3등급 모래시계문을 가지고 있다, 이겁니까?”

“예.”

안대욱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래서 이강우는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인간은 표정이 없는 건가? 아니면 그냥 미친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 전 세계를 상대로 도발을 한 어마어마한 테러 조직 손에 도심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쓸어버릴 몬스터가 담긴 모래시계문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 폭탄이 일반적인 폭탄과는 다르게 사용에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단순히 내 기분을 내세울 때가 아니야.’

정말 중대한 사안이다. 이강우는 자세를 고쳤다.

“좋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대량으로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이라도 만들어서 마법사들에게 배포해라, 이런 걸 요구하실 생각이십니까?”

이강우가 생각하기에 그게 아니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없다. 어쨌거나 지금은 보다 많은 마법사들, 보다 마나 서클이 많은 마법사들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러나 안대욱은 그런 이강우의 말을 부정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마법사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건,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7서클 마법사의 확보입니다. 3등급 모래시계문을 단시간 내에 파괴하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라운드제로 레벨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단어가 나왔다.

“그라운드제로 레벨은 뭡니까?”

이강우는 곧장 질문했고, 안대욱은 곧장 대답했다.

“문의 파괴를 위해서 핵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레벨, 그것을 의미합니다.”

“핵무…….”

이강우는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설마 여기서 핵무기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생각하시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수준의 핵무기는 아닙니다. 전략적 핵무기입니다.”

나름 이강우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인 듯했지만, 이강우는 조금도 안심하지 못했다.

“아니, 그래도 핵무기는 핵무기 아닙니까? 만약 모래시계문이 저번처럼 코엑스에서 발견된다면…….”

그제야 이강우는 파악했다.

“핵무기가 있다고 해도 쓸 수가 없군요.”

안대욱이 뭘 원하는지.

“누군가 클로즈를 하는 수밖에.”

왜 3등급 모래시계문의 유적 사냥을 염두에 두고 7서클 마법사를 운운하는지.

“하다못해 모래시계문을 처리하기 전까지 버티거나. 안에 사람이 들어가면 모래시계는 멈추니까.”

3등급 몬스터가 모래시계문 밖으로 나오면 이미 게임은 끝이다. 등장한 지역은 초토화가 된다.

가장 좋은 건 문 자체를 처리하는 거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우주로 보내거나 혹은 아주 깊은 해저에 떨어뜨리거나.

하지만 당장 문이 터지기 전,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떨어지기 전이라면? 문의 처리는 둘째 치고 시간 벌이를 위해서라도 누군가 문 안으로 들어가 줘야 한다.

‘그마저도 고민할 수 있는 국가 자체가 몇 없겠지.’

하지만 이런 고민도 3등급 유적을 클로즈 할 수 있는 멤버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고민이다.

때문에 한국의 경우에는 이런 고민을 할 이유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력으로 3등급 유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하신 말씀 전부 맞습니다. 때문에 현재 마법청장께서는 중국과의 교섭을 진행하려고 하십니다.”

안대욱의 말에 이강우가 또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미국을 놔두고 중국 말입니까?”

유적 관련에 있어서 한국 정부는 이미 미국을 택했다. 블랙 스택이 즈믄나래 지부를 만든 건 한미 동맹의 명백한 상징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과 손을 잡는다? 미국이 그걸 그냥 좌시할까?

“자세한 설명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다양한 선택지를 준비해두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저보고 중국으로 가서 교섭을 하라는 말은 아닐 테고.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예상하신 대로 결국 작금의 상황에서는 7서클 마법사의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7서클 마법사 후보로 이강우 씨를 뽑았습니다.”

그 순간 침묵하고 있던 강희가 입을 열었다.

“이강우 씨의 성장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맙소사.’

이강우는 잠시 생각을 멈췄다.

긴장과 경악의 연속 속에서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던 제안이 나왔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판단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제 내 인생에 봄날이 오는 건가?’

그동안 남들에게 빨려만 먹혔던 이강우의 인생에 아무래도 봄날이 오려는 모양이다.

물론.

‘젠장, 뭘 좋아하고 있어? 결국 7서클 마법사를 만들어서 3등급 유적에 집어넣겠다는 거잖아?’

혹독한 겨울을 앞에 두고 마주한 짧은 봄날일 뿐이다.

어쨌거나 혹독한 겨울을 버티려면, 미리 대비를 할 때. 이강우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당장 7등급 마나스톤 100개 정도 지급해주실 수 있습니까?”

* * *

합의를 마친 이강우가 자리를 떠났다.

강희의 집무실에는 강희와 안대욱만이 남았고, 강희는 안대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강우가 제안을 무리 없이 받아들여서 다행입니다. 솔직히 그가 한국 정부에 염증을 느끼고, 파행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그의 말에 안대욱은 언제나 그렇듯 담담하게.

“예, 다행입니다.”

짤막한 대답만 뱉었다.

그러나 그 대답을 내뱉는 순간, 강희를 바라보는 안대욱의 눈빛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무거웠다.

본래도 눈빛이 무거운 사내였지만, 작심하고 눈빛에 무게를 실으니 그 무게감은 보는 이의 어깨가 아니라 머리를 꾸욱, 짓누를 정도였다.

강희는 그런 안대욱의 시선에 눈을 돌렸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강희를 보며 안대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희가 다시 안대욱을 향해 눈을 돌리며 말을 던졌다.

“저와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마법청과 즈믄나래 길드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할 듯한데.”

“이번 테러 사건 진압에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강희가 보여준 호의에 안대욱은 담담함을 넘어서 차가운 모습을 보이며 강희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안대욱이 사라지는 순간, 강희가 연극을 위해 지었던 표정을 바꾸고, 비릿한 미소를, 본심을 입가에 걸었다. 안경도 벗었다. 그러자 뱀처럼 비릿한 기운이 맴도는 눈빛이 번뜩였다.

‘안대욱.’

강희가 그 상태로 안대욱의 이름을 먹이 씹듯, 곱씹었다.

‘대충 어느 정도 그림은 그린 모양이군. 하긴, 그 정도 능력이 있으니 그 자리까지 올랐겠지.’

강희가 짧게 혀를 찼다.

‘역시 그가 부청장 자리에 오르는 걸 반대했었어야 했나? 그랬으면 너무 의심을 받을 것 같았는데…… 차라리 그때 의심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강하게 나갔어야 했어. 만약 안대욱이 대업에 영향을 준다면, 명백한 내 실수로 기록되겠지.’

말과 함께 강희가 다시 안경을 쓰고, 표정을 바꾸었다. 자신의 얼굴에 있던 비릿한 모든 것을 지웠다.

* * *

수행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안대욱은 수행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탕 하나 주게.”

“예.”

수행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사과맛 사탕 하나를 꺼냈고, 안대욱은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빠삭!

그 단단한 사탕을 단숨에 입 안에서 박살 냈다. 안대욱이 화가 났을 때, 심기가 좋지 않을 때, 보이는 습관이었다.

‘역시 강희, 그가 가장 의심스러워.’

안대욱, 그는 이번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단 한 가지를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국가 내부에 적이 있다는 사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한국 정부는 물론 세계 각국 정부가 무참하게 농락당하는 건 불가능했다. 피해가 적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 위스프의 테러는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왜 안대욱은 그 내부의 적으로 강희를 의심하는 걸까?

장소 때문이다.

모래시계문을 이용한 테러는 모래시계문이 등장한 시점부터 거론된 이야기였다.

때문에 각국 정부는 모래시계문을 이용한 테러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한국 정부는 그런 부분에서 가장 우수한 결과물을 만들고 있었다. 마법청의 모래시계문 관리 매뉴얼과 시스템은 미국이나, 중국, 독일 등이 보고 배워갈 정도다.

그 증거로 마법청은 이제까지 테러집단의 모래시계문 테러를 용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방어막이, 시스템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으로 뚫리고 말았다.

‘코엑스.’

틈은 있었다.

코엑스는 클로즈를 마친 모래시계문이 제주 문 관리센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모래시계문을 정복했다는 상징이 있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시계문을 숨기기에 제격이다. 코엑스는 일반 가게도 모래시계문을 가게 문으로 사용한다. 가게 문이 닫혀있다면 그냥 모래시계문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모래시계의 작동 유무다.

그러나 이마저도 방법이 있다. 모래시계문의 모래시계는 사람이 입장하면, 작동이 멈춘다. 사람 목숨을 대가로 타이머 기능을 설정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방법은 아무래도 좋다.

‘즈믄나래 길드라면, 코엑스에 모래시계문을 얼마든지 가져다 넣을 수 있다.’

핵심은 그 코엑스의 모래시계문 대부분이 즈믄나래가 클로즈한 모래시계문이라는 점이다. 즈믄나래 길드는 코엑스에 모래시계문을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가져다 놓을 수 있다.

즈믄나래 그리고 즈믄나래의 길드 마스터인 강희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더군다나 안대욱은 예전부터 강희가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강희, 그자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속을 알 수가 없으니까. 도무지 무슨 의도와 의지로 즈믄나래 길드를 운영하는지, 안대욱은 그를 안 지 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그 부분은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어쨌거나 일은 터졌다.

위스프의 테러는 성공했다.

성공의 증거로, 그들이 가진 3등급 모래시계문을 각국 정부 요인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막말로 3등급 모래시계문을 테러 무기로 쓰는 건 그냥 핵폭탄을 무기로 쓰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이번 테러에서 9등급 위주의 몬스터들이 출몰한 것도 9등급 모래시계문이 작기 때문이다. 위스프가 각국 정부에 몰래 공개한 3등급 모래시계문의 크기는 상당했다. 그걸 정부의 감시체계를 뚫고 운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위협은 없다.

그러나 위스프가 이번 테러를 통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게 테러의 목적이다. 실질적인 피해 이상의 공포감과 사회적 불안감, 기존 시스템과 인프라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것.

한국의 경우에는 이부성 마법청장이 겁에 질렸다. 그것도 아주 안 좋은 방향으로.

‘미국을 믿는 건 아니지만, 중국과의 접촉은 결국 또 다른 불안감을 조성하겠지.’

오히려 이번 테러에 의한 피해보다, 이부성 마법청장이 중국 정부 그리고 칠성문과 접촉하면서 생기는 한중미, 삼국의 신경전이 한국에 더 큰 피해를 줄지도 몰랐다.

그런 사실이 기어코 이강우의 포섭까지 이어졌다.

그가 가진 능력들, 요소들은 적어도 긍정적인 평가를 만들어낸다.

공포감을 이겨낼 수 있는 건 결국 희망뿐이니까.

이강우는 희망이란 단어를 만들어낼 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요소가 있다는 거다.

‘이강우를 앞세워서 분위기를 잠시 환기하고, 그 와중에 이부성을…… 처리해야겠지.’

애초에 안대욱은 이강우를 전폭적으로 믿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용할 뿐이다.

‘그다음은 강희, 당신이다.’

띵!

안대욱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온 안대욱은 평소처럼 묵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이강우]

-마력: 6서클 개발 중(3%)

-보유 마법: 8개

-마법 슬롯: 6개

-섭취 마력: 121,970포인트

이강우는 즈믄나래 본부 내 위치한 카페에서 주문한 자신의 스페셜 초콜릿 음료를 마시며, 손거울을 통해 능력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강우가 빨대에서 입을 뗐다. 초콜릿 음료를 바라보던 이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아무리 먹어봤자 도움이 안 돼.’

이강우가 마시던 초콜릿 음료를 그냥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손거울도 접었다.

단맛 중독자 이강우,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마시던 초콜릿 음료에 회의적인 감상을 보냈다.

세상이 뒤집힐 정도의 사건!

실제로 이강우의 머릿속은 그만큼 혼돈의 도가니였다.

‘모래시계문을 이용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단계에 돌입했어.’

이강우는 대단한 역사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모래시계문을 중심으로 시작된 시대가 바뀌었다는 건 알고 있다.

처음 모래시계문이 등장했을 때, 모래시계문은 파괴의 대상이었다. 모래시계문의 파괴를 위해서, 모래시계문을 뛰쳐나오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단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모래시계문은 파괴가 아닌, 공략의 대상이 됐다. 보다 높은 등급의 모래시계문을 공략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모래시계문이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준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모래시계문을 이용해 서로를 해치는 단계까지 왔다.

‘마법 전쟁…….’

이건 시작이다.

모래시계문으로 서로가 전쟁을 벌인다는 건, 그 모래시계문에서 나온 모든 것이 전쟁에 동원된다는 의미다. 몬스터는 물론 마법도 전쟁에 동원될 것이다.

문제는 마법을 이용한 전쟁에 대해 사회는 조금의 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게 핵심이다.

현대 병기…… 총이나 미사일, 전투기 등을 통한 전쟁에 인류는 어느 정도 내성이 있다. 많은 전쟁을 치러봤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마법을 이용한 전쟁에 내성이 있을까? 있을 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마법으로 인한 충돌이,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날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3차 대전.’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아니, 인류 역사에 파멸을 고할 섬뜩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 없지 않다.

‘모래시계문을 만든 놈들이 그걸 노리는 것일 수도 있어.’

모래시계문은 절대 호의로 인류를 찾아온 게 아니다.

또한 명백히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지구에 뿌리고 있다.

만약 그들의 목적이 인류의 파멸이라면, 그들의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 중인 셈이다.

‘빌어먹을.’

이강우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설마 나보고 세계 3차 대전 발발을 막으라는 건가? 불사황제, 지금 그런 걸 말하는 거야?’

그저 무시무시한 몬스터나, 괴물을 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인류의 운명이 이강우에게 걸린 모양이다.

물론 이 모든 게 이강우의 착각일 수도 있다.

이강우 입장에서도 차라리 그랬으면 한다. 자신이 어마어마한 착각을 하고, 거기서 그렇게 모든 게 끝났으면 한다. 그냥 자신이 과대망상가로 남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이강우가 가진 힘은 적어도 이강우가 마주해야 하는 적이 보통 적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이강우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강해져야 해.’

다른 건 없다.

지금 이 순간 이강우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걸 먹어 치우고, 먹어 치운 것을 자신의 뼈와 살로 만드는 일이다.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부를 믿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더 이상 주는 엿만 먹는 건 사양하겠어.’

이제까지는 시류에 따랐다.

그러나 이제는 이강우가 시류를 만들 때가 왔다.

* * *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은 어디까지나 도와주는 역할이다. 단순히 마나 서클 자극 비약만으로 마나 서클을 활성화하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결국 먹어야 한다.

이강우는 빨리 성장하고 싶으면 먹어야 한다. 마나스톤은 물론 몬스터 고기를 비롯해서, 몬스터를 먹어 치워야 했다. 그리고 몬스터를 먹어 치우기 위해서는 유적 사냥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결국 평생 유적에서 식사할 운명이야.’

이강우는 이 명제를 비틀 생각이 없었다.

이걸 비틀기 위해 머리를 굴릴 시간에 차라리 유적을 하나라도 더 사냥하는 게 맞다.

편한 방법 따위는 없다. 이강우는 유적에서 고생하는 것만이 보다 빨리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마나 서클 자극 비약의 효과와 유적 내에서의 포식을 통해 최단시간 내에 성장한다.’

이 모든 걸 위해서 필요한 건 하나다.

국가 차원의 지원.

그리고.

“안중현 씨, 밑도 끝도 없이 날 위해서 유적 사냥을 지휘해주실 수 있습니까?”

믿을 수 있는 팀원이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물론 아무와 사냥을 할 수는 없다. 실력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이강우의 기행에 대해 입을 다물어줄 신뢰. 이제부터 하는 이강우의 유적 사냥은 단순한 유적 사냥이 아니다. 유적에서 이득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유적 자체를 먹어 치우기 위한 과정이다.

이익은 없다.

마나스톤도, 몬스터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이강우가 먹어 치울 테니까.

이 괴상한 유적 사냥을 납득해주거나 혹은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비밀로 공유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날 골라주니 고마울 따름이군.”

그래서 가장 먼저 안중현을 포섭했다. 안중현은 가장 믿을 수 있고, 실력도 뛰어나다.

“유적 안에 있는 거 전부를 먹어 치울 겁니다. 제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이익 창출이 아니라, 독식을 하겠다는 거겠지.”

“이 기행에 아무 말 안 하고 따라줄 마법사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강우는 안중현에게 사람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강우 입장에서는 솔직히 마법사들 사이에서 인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안중현의 안목을 믿었다. 그가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

“김재범.”

여기서 안중현은 가장 먼저 김재범을 추천했다. 의외의 인물이 나왔다.

“내가 아는 마법사들 중에서 입이 무거운 편에 속하고, 기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법사네.”

“김재범이요?”

“같이 유적 사냥을 해봐서 알겠지만, 그는 탐구심이 대단해. 자기 이름을 딴 대학을 만드는 게 꿈일 정도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건 학문적 가치야. 물질적인 가치, 마나스톤이 얼마인지, 몬스터를 잡으면 수익이 얼마인지, 마법 아티팩트를 몇 개 가져가야 유적 사냥이 수익이 날 수 있는지, 그런 개념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네. 그저 유적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상대로 자기 독이 얼마나 먹히는지, 생체실험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일세.”

납득했다.

“그다음은 누구입니까?”

“하선우.”

“가장 의외의 이름이 나왔군요. 날 이용해먹으려고 수작을 부린 사람 아닙니까?”

“하선우도 목적이 분명하네. 그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받고 싶어 하는 거야. 남들의 인정을 받고 싶지만, 반대로 자신의 한계는 명백하게 알고 있지. 그런 그가 자네를 이용한다는 건, 자네를 자신보다 더 높게 본다는 의미야. 무엇보다 그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상황이지.”

이강우는 하선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안중현이 필요하다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보안을 추구한다면, 여기서 추가 멤버는 두세 명 정도면 충분하네.”

“그럼 채유리가 포함되겠군요.”

“채유리…… 그녀가 포함되는 것도 좋겠지. 대신에 내게 지휘권을 보장해준다면, 그녀를 설득하게.”

“설득이요?”

“자네가 위기에 빠져도 내 명령을 듣겠다는 설득. 각서 따위가 아니라 설득을 받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명심해. 그녀를 양날의 검으로 만들지 마. 그녀가 가장 소중한 건, 내가 아니라 자네일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한 명을 추천하고 싶네. 자네는 모르지만…… 자네의 행보에 도움이 될 걸세.”

“누구입니까?”

“미식가 김수애. 한번 만나 보게. 어떤 의미에서는 자네의 선배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동시에 우리에게 가장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줄 걸세.”

“부족한 부분이요?”

“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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