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28화 (28/66)

28화. 합격

반듯한 돌판. 그 아래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당연히 돌판은 뜨겁게 달구어진 상태였다. 고깃덩이 정도는 금방 제대로 익힐 수 있을 정도의 열기.

그 위로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묵직한 느낌의 고기 한 덩이가,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깃덩이가 떨어졌다.

츠으으으!

고깃덩이는 돌판 위에 떨어지자마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분을 증기로 토해냈다. 김이 올랐다. 고기 익는 소리도 피어올랐고, 고기가 익으면 나는 끝내주는 냄새도 피어올랐다.

김, 소리, 냄새.

세 가지가 적막하기 그지없고, 오직 돌판 아래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불빛이 전부인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사내가 다시 한번 고기를 뒤집자, 고기에선 나온 육즙이 돌판 위에 떨어지며, 통통통! 튀어 올랐다. 향이 더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사내, 이강우는 콧속을 흠뻑 적시는 고기 냄새를 크게 들이마시며, 만족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아.’

동시에 이강우가 자신의 옆에 놓아두었던 고깃덩이들, 그 너머에 감춰져 있던 병 하나를 집었다. 검지 크기의 병 안에는 노란빛 액체가 있었다. 액체를 바라보는 이강우의 눈빛이 식욕으로 번들거렸다.

‘이 병이 마지막이군.’

액체의 정체.

독이었다.

더불어 그냥 독이 아니라 7등급 몬스터인 칼꼬리전갈의 독이었다.

‘이번 유적 사냥에서 MVP를 주라면 이 녀석이지.’

괴식가 기예르모!

그가 그토록 찬양했던 칼꼬리전갈독을 이강우는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게 닷새 전이었고, 이후 이강우는 닷새 내내 몬스터 고기를 무조건 스테이크로 구워 먹는 중이었다.

부위는 상관없었다. 이강우는 마치 스테이크 중독자처럼 스테이크만 먹었다. 당연히 칼꼬리전갈독을 발라서 먹었다. 실상 스테이크 중독이 아니라 칼꼬리전갈독에 중독된 셈이다.

뽕!

이내 이강우가 병의 뚜껑을 열었다. 달짝지근한 향이 이강우의 코끝을 간질였다.

‘난 이 냄새가 정말 좋아.’

사실 칼꼬리전갈독은 꽤 강한 독이다. 7등급 몬스터가 가진 독이 약할 리가 없다. 지금 이강우가 손에 쥔 양이면, 8등급 몬스터 정도는 10분 안에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몬스터의 거대한 덩치와 생명력이니까 10분이란 계산이 나오는 거지,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 반의반의 반 정도 되는 양이면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세다. 이런 걸 요리에 써서 먹는다는 상상은 아마 세상천지에 오직 한 명, 기예르모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예르모도 감히 하지 못하는 짓을 이강우는 하고 있었다.

그대로.

해독 마법을 쓰지 않은 채, 이강우는 칼꼬리전갈독을 그대로 요리에 사용했다.

처음에는 기예르모가 그랬던 것처럼 해독을 해서 먹었지만, 어느 순간 이강우는 호기심을 품었다.

어차피 어지간한 독은 소화할 수 있는 이강우 아닌가? 그냥 해독하지 않고 요리에 써봤다. 그러자 해독했을 때보다 그 효과가 곱절은 좋아졌다.

그 이후 이강우는 계속 독 그대로를 사용했다.

지금도 그랬다. 이강우가 스테이크 위에 독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칼꼬리전갈독이 떨어지자, 제법 단단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스테이크가 스르르! 무너졌다. 그대로 녹았다. 그 과정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광경에 이강우가 꿀꺽, 침을 삼켰다.

‘이건 정말 끝내준다니까.’

말과 함께 이강우가 다시 병을 바라봤다. 이게 채취한 칼꼬리전갈독의 마지막이었다.

이 순간 이강우가 병의 마개를 닫았다. 마음 같아서는 남은 고기에 전부 써먹고 싶지만…….

‘나중에 채유리가 칭얼거리면 비장의 한 수로 써먹어야지.’

이강우는 꾹 참았다.

꾹 참으면서 이강우가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칼꼬리전갈독은 고기 육질을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부드러워진 육질은 요리가 쉽지 않다. 너무 익히면 못 먹을 정도로 부드러워지고, 덜 익히면 스테이크 특유의 맛이 안 난다.

타이밍.

이강우는 그 타이밍을 가늠하기 위해 스테이크에 모든 집중력을 투자했다.

그런 이강우의 눈에 자신의 주변에 너부러진 십여 구의 몬스터 사체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 * *

이강우가 모래시계문을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이강우를 바라봤다.

3서클 마법사가 7등급 유적에 들어가서 30일 동안 생존을 마치고 유유히 복귀하는 광경을 예상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이강우는 그런 그들에게 이번에도 기념품을 선물했다.

“꽃등도마뱀 육포입니다. 끓인 물에 넣어 우려내면 코코아 먹는 맛이 날 겁니다.”

이후 이강우는 곧바로 어떤 방으로 끌려갔다. 샤워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물 한 모금 먹을 틈도 없이 곧장 밀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공간에 갇혔다.

의자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인 그곳에 이강우가 앉았다.

‘드디어 끝.’

자리에 앉는 이강우, 그의 표정은 평온하고 담담했다.

과거와는 전혀 달랐다.

과거의 이강우라면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유적에서 나왔는데 갑자기 영문도 모르는 곳에 끌려와서 누가 보더라도 취조를 받는 취조실 같은 공간에 갇혔는데 담담한 기색을 유지하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이제 인·적성 검사 하나만 남았나?’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미 별일을 다 겪은 이강우 기준에서 지금의 상황은 그리 놀랄 만한 상황이 아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 남은 건 우주 방어전 정도겠지.’

더군다나 지금 당장 이 주변에 이강우를 위협할 요소는 없다. 지금 이 무대, 이강우를 죽이기 위한 무대가 아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약 30여 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은 채 버티기에는 힘든 시간이다. 이강우 역시 자세를 여러 번 고쳐 앉았다.

‘시간을 들여서 어떻게든 내 틈을 만들겠다는 건가?’

이미 몸이 근질근질거리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세 명이 이강우가 있는 밀실 안으로 들어왔다.

중년 남성 두 명과 젊은 여성 한 명이었다.

‘음.’

개중에서 이강우는 가장 먼저 콧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를 바라봤다. 중년 사내를 바라보는 순간 이강우의 몸을 간질이던 기운은 사라졌다. 이강우는 자리에 똑바로 앉았고, 긴장된 기색으로 그 사내를 바라봤다.

‘이 인간 보통 인간이 아닌데?’

사내는 그런 이강우를 보며 가볍게 묵례를 했다. 이강우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등장한 셋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선 채로, 이강우를 내려다보듯 바라본 채로 대화가 시작됐다.

“이제 인·적성 검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술술 나오고, 술술 이해되는 말.

‘셋 중 누가 마법사지?’

통역 마법을 쓴 모양이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클로저 라이센스 테스트에 응시한 이유를 말해주십시오.”

인·적성 검사.

‘오케이, 시작이군.’

이강우는 이 무대에서 괜한 수작은 부리지 않았다. 상대는 단순한 사람들이 아니라, 클로저 라이센스라는 어마어마한 권력 집단들이 만들어낸 자격증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자들이다.

‘구라는 쳐 봤자 마이너스.’

이강우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을 것이다. 괜한 거짓말을 해봤자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감점만 받을 터.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이강우을 탈락시킬 권한과 자격이 있다. 아무리 7등급 유적 사냥을 마치며 기세등등해진 이강우라고 해도 여기서 콧대를 높일 이유는 없다.

이강우는 모든 질문에 진실을, 적당한 수준의 진심을 말했다.

“앞으로 클로저 라이센스를 획득하면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독자적인 유적 사냥을 할 예정입니다. 유적 사냥에서 얻는 메리트는 크니까요.”

“현재 당신은 블랙 스택의 한국 지부인 즈믄나래 길드 소속입니다. 그렇다는 건 길드를 나오신다는 이야기입니까?”

“길드와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시험이 끝나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생각입니다.”

“현재 당신의 마나 서클은 몇 개입니까?”

“4개입니다.”

“당신의 후원자는 누구입니까?”

“블랙 스택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로드리게스 회장입니다.”

무리 없이 진행되는 대화.

그러나 이강우는 이 대화가 진행될수록 더욱더 긴장된 기색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은 단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는군.’

콧수염의 중년 사내.

그는 이제까지 이루어진 수십 개가 넘는 질답 속에서 숨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이강우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그의 시선은 꽤 부담스러웠다.

‘내가 부담을 느끼다니.’

이강우는 그 생각에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7등급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세상 속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쉽사리 긴장하지 않는 이강우가 고작 사람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다?

이강우는 그게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걸 착각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게 착각일 것이다.

‘대체 정체가 뭐야?’

착각이 아니라 콧수염의 중년 사내에게 무언가가 있는 거다. 이강우가 낌새를 느낀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이니까.

이강우가 지그시 중년 사내를 바라봤다. 중년 사내 역시 그런 이강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거기서 잠시 대화가 멈췄다.

이제까지 쉴 새 없이 대화를 하던 두 명이 이강우와 콧수염 사내의 기색을 보자 말을 멈췄다. 마치 그 둘의 눈싸움을 배려해주겠다는 듯한 행동.

물론 이강우에 대한 배려심이라기보다는 콧수염 사내에 대한 배려심이다. 그들이 이강우를 배려해줄 이유는 없으니까.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결국 콧수염 사내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콧수염 사내는 일단 대화에 앞서 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일반적인 카드 3장 정도를 겹친 듯한 두께의 카드였다. 카드 정면에는 U라는 글자가, 뒷면에는 N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U라는 글자 안에 Closer no. 33이라는 글자가 작게 새겨져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애들 장난감 같은 카드였다. 콧수염 사내, 마르쿠스는 그 카드를 이강우에게 던져줬다.

다른 두 명이 놀랐다.

‘무슨 짓이지?’

‘의도가 대체…….’

그게 클로저 라이센스였으니까.

그걸 마르쿠스가 이강우에게 건네준다는 건 이강우의 인·적성 검사 통과를 알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카드를 받은 이강우도 대충 낌새를 느낀 듯, 카드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핀 후 질문했다.

“테스트에 통과한 겁니까?”

“사용법은 간단하네. 카드 측면을 보면 일정 시간 주기로 코드가 생성되는데, 유적에 입장하기 전 그 코드를 유엔에 알려주면, 유적을 사냥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치를 유엔이 취해주는 거지. 물론 먼저 유적을 클로즈 한 후에 통보를 해도 문제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상사는 어찌할 수 없네. 예를 들어 자네가 정부 관계자의 만류도 무시한 채 대뜸 모래시계문으로 들어갔는데, 정부가 심기가 뒤틀려서 홧김에 자네가 들어간 모래시계문을 마리아나해구에 처박을 수도 있지.”

사람이 들어간 모래시계문을 바닷속에 버린다? 섬뜩한 소리지만, 실제로 많이 있었던 이야기다.

모래시계문은 이동이 가능하다. 모래시계문은 땅에 뿌리를 내리는 식이다. 뿌리를 내린 나무를 옮기듯, 옮기면 된다. 그래서 문 관리센터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유적 사냥꾼이 들어간 모래시계문 역시 이동이 가능하다. 그런 모래시계문을 바닷속 깊은 곳에 집어넣는다?

본래 이 방법은 문 폐기 방법이었다. 강력한 폭탄으로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모래시계문을 바닷속 깊은 곳에 집어넣으면, 몬스터가 뛰쳐나오더라도 즉사할 테니까.

비용도 저렴했다. 모래시계문에 무거운 걸 단 후에 그냥 바닷속에 가라앉히면 됐다. 무게추와 배를 움직일 기름값 정도가 전부다. 몬스터 한 마리가 서울 시내에 빌딩 한 채를 무너뜨릴 경우의 피해액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시민들 모금으로도 치를 수 있을 정도다.

‘내가 해저 1만 미터에서 헤엄쳐서 올라올 수 있으려나? 몇 놈은 가능하던데.’

하지만 물에서 살 수 있는 몬스터들이 간간이 뛰쳐나와 문제를 일으키면서, 이 방법은 이제 거의 쓰지 않는 방법이 됐다.

어쨌거나 이게 마법사들이 정부에 협조하는 이유 중 하나다.

단순히 무기나 장비 지원만 받는 게 아니라, 마법사들이 유적을 사냥하는 동안 문밖에서 정부가 그 문을 지켜주고, 관리해주는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를 길드가 정부에 지급하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지금 이 자리에서 꺼낸다?

‘일단 경고군. 이런 거 준다고 멋대로 나대지 말라는, 이건가?’

대충 이유는 짐작이 된다.

더불어 듣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이강우의 그런 심중을 읽은 듯.

“경고가 맞네.”

마르쿠스가 말로 도장을 찍었다.

“클로저 라이센스를 그저 편리한 프리패스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없지 않으니까. 하지만 클로저 라이센스는 그저 마법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등장한 게 아닐세. 그런 이유라면 사실 이런 걸 만들 필요가 없지.”

“그럼 무슨 이유로 만드셨습니까?”

“내가 만든 적은 없네.”

이강우가 입술을 살짝 내밀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조크는 아니겠지?’

여전히 진심 가득한 마르쿠스의 표정을 보니, 농담으로, 분위기 전환용으로 내뱉은 말은 아닌 듯했다.

“그럼 클로저 라이센스는 무엇을 위해 탄생했습니까?”

이강우가 질문을 바꿔 다시 질문했다.

“편의가 아닌 자유를 위해서.”

그러자 마르쿠스 입에서 꽤 그럴싸한 대답이 나왔고.

“클로저 라이센스를 이용하면 마법사는 정부나 길드와 같은 집단의 방해와 간섭을 최소화한 채 모래시계문이란 신비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네. 단순한 이익을 떠나서, 그 누구보다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셈이지.”

설명이 이어졌다.

그 설명 속에서 이강우의 마음을 제대로 흔든 단어는 한 가지 단어였다.

“모래시계문에 진리가 있습니까?”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진리가 있는 법이지. 때문에 나는 클로저란 단어를 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라, 문이 가진 진실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때때로 해석을 한다네.”

“멋진 해석이군요.”

“그리고 이 해석을 언제나 이렇게 마주 보는 새로운 클로저에게 강요하지.”

강요라는 말에 이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마르쿠스는 꽤 섬뜩한 눈빛으로, 마치 쥐를 바라보는 뱀의 눈빛을 품은 채 이강우에게 말했다.

“클로저 라이센스를 이용해 어설픈 장난이나, 지극히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라이센스를 회수할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을 이용해 얼마든지 스스로 반납하게 만들어줄 수 있네.”

그제야 이강우는 강요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클로저가 된 걸 축하하네.”

테스트가 끝이 났다.

* * *

쉴 새 없이 내리는 샤워기의 물줄기 사이에서 이강우는 오랜만에, 그러니까 한 달 만에 제대로 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샴푸로 머리를 네 번 헹구고, 보디워시로 몸을 세 번 씻은 후에도 이강우는 만족하지 못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근 후에 세신사로부터 제대로 때밀이를 한번 받아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하지만 그런 이강우의 표정은 샤워기 밑에 달린 작은 크기의 거울을 보는 순간 달라졌다.

이강우가 손을 움직여 거울 한구석을 터치했다. 거울 위로 초록빛 글자가 떠올랐다.

[이강우]

-마력: 5서클 개발 중(3%)

-보유 마법: 7개

-마법 슬롯: 5개

-섭취 마력: 283,321포인트.

‘4서클.’

이강우, 그는 불사황제가 준 선물을 기꺼이 받았다.

받아서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그 덕분에 4서클을 개방했고, 30만 포인트에 가까운 마력 섭취할 수 있었다.

물론 쉽진 않았다.

‘7등급 몬스터만 일곱 마리를 잡았지.’

던전 타입이니, 일반 유적보다 몬스터의 개체 수가 많으리란 건 예상했지만 7등급 몬스터가 일곱 마리나 있을 줄은 몰랐다.

상식적으로 그 정도면 7등급 유적이 아니다. 6등급 몬스터만 없다뿐이지 실질적으로 난이도는 6등급 유적에 버금간다.

어쨌거나 소득은 확실했다.

일단 4서클이 됐다는 건, 이강우에게 마나 서클 개수 이상의 가치를, 의미를 가진다.

이강우의 마나 서클 개방속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당연히 이강우는 지금의 능력은 물론 잠재력 역시 높게 평가받을 것이다. 이미 리볼버 크로포드가 8서클의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를 한 상황에서, 그 평가의 근거가 될 만한 가시적인 성장을 보여준 셈이니까.

간단히 정리하면, 모두가 이강우가 대마도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여기에 클로저 라이센스까지 섞는다면?

이강우는 5서클 마법사 이상, 잘하면 6서클 마법사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30만에 가까운 포인트 역시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30만 포인트를 채우면, 골드북을 3개 구매할 수 있다. 바츠무의 손, 그 놀라운 마법과 비등한 수준의 마법 3개가 추가된다.

더군다나 이강우가 4서클이 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폭도 넓어졌다. 이제 5서클 마법이 나와도 충분히 쓸 수 있다. 지금 이강우는 버닝 마나의 힘을 이용해 채유리가 가진 청뢰 마법을 쓸 수도 있다.

좀 더 모아서 플래티넘북을 구매하면?

‘그가 쓰던 힘이 내 것이 되는 건가? 그 힘이?’

이강우는 봤다. 불사황제, 그가 만들어낸 놀라운 광경을! 손짓 한 번에, 눈짓 한 번에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떼로 학살을 당하는 광경을!

대단하다.

‘그 힘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어쩌면 그 힘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들은 이강우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강우의 표정은 구겨졌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강우는 어두워졌다.

‘불사황제, 대체 당신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는 거지? 대체 당신이 가진 권능은 뭐지?’

외면했던 진실을, 답이 나오지 않음에도 답을 찾아야 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가 왔으니까.

불사황제의 존재는 무엇인가?

인류 앞에 갑작스레 등장한 모래시계문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새로운 도약을, 새로운 미래를 위한 신이 준 선물인가 아니면 인류를 더 빠르게 종말로 몰아세우는 사악한 악마의 노림수인가?

세상의 무수히 많은 석학들이 답을 내기 위해 달라붙는 이 밑도 끝도 없는 논쟁의, 탐구의, 난제의 세상에 이제는 이강우도 머리를 담가야 한다.

‘젠장.’

더 이상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방패 삼아 이강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외면할 수는 없다.

불사황제가 이강우를 고른 이상, 이강우는 그만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불사황제는 나를 노리는 적이 있다고 말했지.’

그의 경고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불사황제는 이강우를 노리는 적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불사황제는 그런 놀라운 힘을 가졌으면서, 본인 스스로를 불사의 황제라 칭하면서도 직접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강우란 그릇을, 대리자를 내세워서 움직이고 있다. 불사황제 본인이 움직이지 못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본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다.

이 모든 것들 사이에 모래시계문이 있다.

‘대충 상황을 보면 불사황제에게는 적이 있고, 그 적이 만든 게 모래시계문일 가능성이 높지.’

가설, 아니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헛소리다.

‘그럼 모래시계문을 만든 어떠한 존재가, 거대한 집단이 있다는 의미인가?’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강우는 자신의 머리를 계속해서 두드리는 샤워기의 물방울, 그 아래에서 망상에 가까운 소설을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모래시계문을 만든 세력이 있다면 목적은? 인류에게 모래시계문을 건네준 이유는? 그들은 불사황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까? 불사황제는 과연 인류의 적인가 아니면 구세주인가?’

지금은 어차피 가설만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두는 거다. 이후 이강우가 접하게 되는 경험과 정보, 지식이 그러한 이야기들을 정리해줄 것이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제거하면, 결국에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만 남을 것이다.

‘불사황제, 당신은 나를 먹어 치우기 위해 키우는 건가 아니면 세상을 위해 나를 키우는 건가?’

물론 그 상상만으로도 이미 이강우의 심기는 한계까지 비틀려지고 있었다.

힘에는 그만한 책임과 대가가 따른다…… 그저 할리우드에서 판을 치는 히어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 시시껄렁한 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이 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이강우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반짝이는 네 개의 고리 아래 한없이 우울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 * *

이강우는 긴 샤워를 마치고, 건네받은 옷을 입었다. 적당한 두께의 면바지와 면티.

‘봄이구나.’

이강우는 그 옷을 받은 후에야 계절이 겨울을 지나 봄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새삼스러웠다.

‘유적에서만 석 달 이상을 보낸 건가?’

사실 특별한 느낌은 아니었다.

총꾼 시절에도 이 정도로, 매일매일 유적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100번 가까운 유적 사냥이 가능했을 리 없다.

그래도 이렇게 혼자서 유적에서 버틴 경험은 처음이었고, 총 한 자루 쥐지 않은 채 유적을 탐사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동안 고생한 게 큰 도움이 됐어.’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죽을 것 같았던 나날들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안중현, 어떤 의미에서 내가 만난 제대로 된 선생이었지.’

특히 안중현의 밑에 들어갔을 때, 한 달 내내 스택 레코드를 통해 8등급 이하 유적에 대한 정보를 공부한 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심지어 안중현은 자기 권한을 넘어서 7등급 유적에 대한 정보도 적잖게 이강우에게 줬다. 그 정보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가 이강우를 즈믄나래에 꽂아줬다. 그가 아니었으면 즈믄나래와 계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후 블랙 스택과 접촉하고, 클로저 라이센스를 획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 추석에 한우나 좀 보내 드려야지. 아니, 한우보다는 통 크게 큼지막한 굴비로 보내드려야겠어. 산삼도 작은 거로 몇 뿌리 골라서…….’

생각이 안중현으로 넘어가자, 곧바로 머릿속에 쟁여두었던 고민이 떠올랐다.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앞으로의 계획.

대략적인 그림은 있다.

일단 유적 사냥을 주도할 것이다. 4서클도 됐고, 로드리게스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에 클로저 라이센스까지 얻었으니, 이제 이강우도 안중현처럼 파티를 만들어서 활동할 수 있다.

‘계약서 쓰고도 일 처리가 안 되는 게 세상사인데, 쉽진 않겠지.’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클로저 라이센스를 마음대로 쓰는 게 쉽지 않다. 클로저 라이센스가 있으면, 유엔에 가입된 나라라면 어디든 간에 유적에 선진입하고 후통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활동하면 안 된다.

법이 있다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건 아니지 않은가?

특히 아티팩트 소유권은 민감한 문제다.

만약 중국에서 유적 사냥으로 얻은 아티팩트를 한국 정부에 팔면, 중국 정부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출입금지조치는 양반이고 온갖 방법으로 보복을 할 것이다. 혹은 중국 정부에 팔아서 돈을 챙길 수 있겠지만, 중국 정부가 큰돈을 제시할 가능성은 없다.

클로저 라이센스는 그런 거다. 강대국을 등에 업고 약소국을 상대할 때 효과가 크지,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마음대로 무언가를 하는 건 힘들다.

이강우 역시 미국이란 나라를 등에 업으면 모를까, 지금 처지로는 클로저 라이센스를 암행어사 마패 다루듯 쓸 수는 없다.

대신에.

‘다른 국가와 교섭이 가능하다, 지금 클로저 라이센스가 가진 장점은 이 정도인가?’

길드 그리고 국적이란 틀을 벗어날 수 있다.

클로저 라이센스를 이용하면 타국의 모래시계문을 개인 자격으로 클로즈 하는 게 가능하다. 아티팩트를 싼값에 넘기겠다, 그런 조건이면 충분히 거래가 가능할 테니까.

확실한 메리트다.

하지만 이 메리트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강우 개인의 활동이 아니라 파티가 필요하다.

여기서 이강우의 약점이 이강우의 발목을 잡았다.

‘젠장, 아는 마법사가 있어야 파티를 만들지…….’

빈약한 인맥.

이강우의 인맥 대부분은 총꾼 시절 쌓은 인맥인데, 의미가 없다.

일단 하이에나 크루 소속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사람이 있을 리 만무.

그렇다고 사업할 때 쌓은 인맥을 여기에서 써먹을 수도 없다.

군인 시절 인맥? 별 달고 제대한 것도 아닌데 당연히 의미 없다.

딱 한 명, 백광현 정도가 그나마 의미 있는 인맥이겠지만 이강우의 파티 구성에 도움은 안 된다.

결국 남은 건 즈믄나래 길드에 소속된 이후 쌓은 인맥이다.

‘채유리가 칭얼거리긴 해도, 실력은 참 좋은데…… 밥만 잘 먹이면 아주 대단한 마법사지. 밥도 시원시원하게 먹고. 내 것까지 탐내서 문제지만.’

일단 채유리.

처음에는 참 귀찮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제는 그녀를 모시는 것도 익숙하다. 아니, 채유리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적어도 예전처럼 묵묵부답, 사람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짜증 나게 만드는 일은 적어졌다.

‘안중현.’

그러나 정말 탐나는 건 안중현이다.

‘다시 안중현하고 팀을 맺을 수 없을까? 즈믄나래가 허락해 줄까?’

안중현은 정말 믿을 수 있는 실력자다. 그는 비유를 하면 뛰어난 사수다. 본인 자체가 무기로는 채유리처럼 아주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채유리 같은 무기를 쥐여주면 정말 제대로 사용할 줄 안다.

아니, 사실 그도 약하진 않다. 불놀이꾼이란 닉네임은 불장난 좀 했다고 얻은 별명이 아니다. 마법을 이용해 보여주는 그의 전투는 훌륭하다.

‘허락만 해준다면, 믿을 순 있어.’

무엇보다 이강우는 이제까지 호흡을 맞춘 마법사 중에 그만큼 유적 사냥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한 마법사를 본 적이 없었다.

이강우가 만난 마법사들 대부분은 마법 아티팩트에만 관심이 많았다. 유적 사냥을 통해 나오는 이득, 계산이 가능한 이익에만 집중했다. 사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그렇다. 유적 사냥에 어떠한 사명감을 가진 경우는 없다. 그래서 길드는 마법사와 계약할 때 일정 횟수 이상의 모래시계문 클로즈를 조건으로 내건다.

‘안중현의 목적은 돈이 아니니까.’

하지만 안중현은 달랐다. 그는 보다 높은 곳으로 향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어찌 보면 미련하지만, 숭고함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를 품고 유적 사냥에 나서는 자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유적 사냥에 임한다.

더군다나 만약 이강우가 안중현을 손에 넣으면, 그의 인맥은 자연스럽게 이강우의 것이 된다. 이강우가 안중현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가 가진 인맥은 생각보다 거대할 것이다.

‘즈믄나래와의 거래도 문제군.’

뭐든 결국 즈믄나래와 한 번 이상, 길드 마스터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넘버스 제안을 괜히 받았나?’

어쨌거나 이강우는 여전히 넘버스 멤버다. 이강우가 클로저 라이센스를 내밀고, 리볼버 크로포드와의 인맥을 내세운다고 해도 즈믄나래와의 연줄을 멋대로 뿌리치는 건 쉽지 않다.

아니, 생각해보면 멋대로 뿌리치는 게 이강우에게 이득이란 보장은 없다.

‘일단 귀국부터 하자.’

일단 여기서 고민해봤자 소용은 없었다.

어차피 모든 일은 끝났다. 블랙 스택 관광이 본래 목적이었지만, 의미 없는 목적이 됐다. 이제 와서 다시 블랙 스택 관광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일단 여기서 나가는 거다. 나가면서 스마트폰도 지급받고, 크로포드의 아티팩트 룸을 한 번 방문한 뒤, 곧바로 비행기도 예약해서 아주 끝내주는 퍼스트 클래스에 누워서 땅콩을 까먹으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강우가 낡은 가방을 짊어졌다.

‘굿바이 아메리카.’

* * *

이강우는 소란스러운 버거킹 매장 안에 있었다.

이강우가 주문한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이미 이강우의 배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고, 콜라도 얼음만이 남았다.

이제는 자리를 떠나주는 게 예의인 상황.

그런데도 이강우는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스마트폰만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이 부모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았다.

‘4서클 마법사가 애처럼 버거킹에서 얼음만 남은 콜라 빨대만 쪽쪽 빠는 처지가 될 줄이야.’

이강우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모를 리 없었기에 짧게 속으로만 짜증을 뱉었다.

‘설마 펜타곤이라니…… 솔직히 이건 너무 당황스럽잖아? 왜 언질 한 번 안 해주는 거야? 시애틀에 있던 내가 설마 여기가 펜타곤일 줄 알고 있었을 것처럼 보였나?’

이강우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했고, 곧바로 스마트폰을 돌려받았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강우는 자신이 있는 곳이 워싱턴주에 위치한 시애틀이 아니라, 저 건너편에 위치한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미국 국방성 펜타곤이란 사실을 아는 순간 패닉에 빠졌다.

너무 놀라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세운 계획 전부를 잊어버렸다.

당장 공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 공항을 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펜타곤 내에 마련된 버거킹을 발견하고 일단 배라도 채울 겸 버거킹에서 주문을 했다. 로드리게스 회장이 준 그 카드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로드리게스 회장의 도움을 바로 받게 될 줄이야.’

그 덕분이었다.

로드리게스 회장은 곧바로 이강우가 펜타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강우에게 연락을 했다. 본인이 아니라,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비서를 통해서.

-펜타곤에 계시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음 목적지가 어떻게 되십니까? 시애틀로 오실 예정이십니까?

“한국…… 아니, 시애틀로 가겠습니다.”

-비행기 표 예약 및 공항까지 갈 수 있도록 차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대목에서 이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 후에 자신의 심정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 듯, 허세도 부려봤다.

“그런데 근사하게 전세기 타고 가는 건 안 됩니까?”

허세 섞인 농담.

그런데.

-……가능은 합니다만,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2일 후에 가능하신데, 전세기를 타고 이동하고 싶으시다면, 근처 호텔을 예약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 농담이 먹혔다.

이강우는 다시 놀랐다.

‘내 스폰서가 어마어마하긴 하군.’

로드리게스 회장의 재력이 새삼스러워지는 순간.

“……농담입니다. 그냥 일반 비행기 편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난 이후 이강우는 자신을 데려갈 사람이 올 때까지 버거킹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게 지금 이강우의 상황이었다.

‘로드리게스 회장이 아니었으면 미아센터부터 찾아갈 뻔했네. 그런데 펜타곤에 미아센터가 있나?’

이제는 나름 진정한 이강우, 그런 그가 슬슬 스마트폰을 꺼내 여동생과 통화를 해야 할지, 여기서 통화하면 요금이 얼마 정도 나올지 고민을 할 정도로 여유를 되찾기 시작할 무렵.

‘응?’

전화가 걸려 왔고, 번호가 떴다.

‘하선우?’

발신자는 다름 아닌 하선우.

이강우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짧은 인사를 오고 갔고, 하선우는 짧은 인사 끝에 곧장 본론을 말했다.

-이강우 씨, 저랑 같이 팀을 짭시다.

“팀? 목적이 뭡니까?”

-이번 6월에 한국 마법청의 주관 하에 이루어지는 4등급 유적 사냥을 위한 팀입니다.

“어? 제가 그런데 왜 거기…….”

-길드 마스터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예?”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강우는 몇 달 전 자신이 스스로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이럴 줄 알았어. 6월에 한 번 고비가 올 것 같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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