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27화 (27/66)

27화. 꽃밭

침대를 의자 삼은 채 앉아있던 이강우는 시계를 봤다. 시계는 오전 4시 32분을 표시하고 있었다. 새벽이다. 보통 사람들은 잠들어야 마땅한 시간인데, 이강우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로 딱 30시간이군.’

8등급 유적의 클로즈를 마치고 복귀한 직후부터 이제까지, 30시간이 흐르는 지금까지 이강우는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피곤하다.

당장 누우면 잠들 것 같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베개에 머리를 파묻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따듯한 물로 목욕을 하고, 조금 도수가 있는 술을 마셨음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불면증은 아니었다.

이강우는 그 누구보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자신에게 찾아온 이 고통스러운 나날들의 원인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유적 사냥하면서 영어 공부나 좀 할걸.’

이유는 다름 아니라 8등급 유적 사냥이었다.

지금 이강우는 그 어느 때보다 그 과정을, 나날들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떠올리기 힘들어도 떠오를 정도였다. 눈만 감으면 그때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서 잠들지 못했다.

‘내가 잠시 미쳤었나?’

이번 유적 사냥은 이강우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파격적이었으니까.

8등급 유적…… 과거 총꾼 시절 이강우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무대였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몬스터 때문에 긴장감으로 가득 찬 채 움직였다. 100미터를 걷는 속도가 굼벵이만큼 느렸다. 이동할 때마다 왜 내가 이런 고생을 고작 돈 때문에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탓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탓했다.

그런데 이번 8등급 유적 사냥은 그런 이강우의 나날들을 처절할 정도로 부정했다.

물론 총꾼 시절과는 처지가 달라진 게 맞다. 이제 이강우는 3서클 마법사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강우는 이번 8등급 유적 사냥을 너무나도 쉽게…… 아니, 차라리 쉬우면 다행이다. 이강우는 스스로가 봐도 정말 미련하게, 무식하게 유적을 사냥했다.

‘내가 미친 게 맞아.’

이강우는 유적에 들어가기 전 언제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조심하라, 경계하라, 방심하지 마라, 자중해라, 서두르지 마라, 무리하지 마라, 시간에 쫓기지 마라…… 아마 인간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근심 어린 조언은 다 해준 것 같다.

그게 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나뿐인 목숨, 조심하라는 게 과한 조언일까?

그런데 이강우는 이번 유적 사냥에서 자신의 조언 전부를 완벽하게 부정했다.

조심한 적? 없다.

경계? 개미굴이라는 여러모로 활동에 제약이 있는 무대에서 몬스터를 발견하면 기쁜 마음에 달려들었다.

서두르지 마라? 몬스터를 잡지 못해 안달이 난 수준이었다.

무리하지 마라? 알비노 리자드를 보는 순간, 8등급 몬스터를 보는 순간 오히려 쾌재를 부르며 놈이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달려들었다.

이 모든 과정을 정말 마음껏 즐겼다. 몬스터를 잡는 게 즐거웠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놈들의 몸뚱이에 손을 집어넣고, 놈들의 피와 마력을 흡수하는 걸 즐겼다.

심지어 더 이상 흡수할 마력과 피가 사라지면, 후련함 대신 아쉬움마저 느꼈고, 그 아쉬움이 다음 사냥을 재촉했다.

그 당시에는 그 행동이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면 이강우의 그런 행동은…….

‘불사황제가 나한테 마약이라도 먹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 모습이 아니었어.’

미친 짓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또라이 짓, 과거 이강우였다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짓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잠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망각하고 있던 것들이, 30일 동안 축적된 공포와 섬뜩함이 지금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바츠무의 손.’

더 나아가 이강우는 자신이 그렇게 미쳐 버렸던 이유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바츠무의 손 때문이다.

이 녀석이 가진 힘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라서, 이 힘을 취했고, 이 힘에 취했다.

그리고 이강우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마법이 아니야.’

이강우가 오랜 세월 마법을 쓴 대단한 마법사인 건 아니다. 마법에 대해 무어라 규정을 내릴 만한 깜냥 따윈 없다.

하지만 바츠무의 손이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권능이다.

이것은 바츠무란 존재의 권능이었고, 이강우는 그런 권능에 잠시 정신이 나갔었다.

‘내가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가?’

이 사실에 이강우는 자신의 변질을 걱정했다.

‘대체 모래시계는 뭐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모래시계문의 존재를 걱정했다.

‘젠장, 나 혼자만 이런 비밀을 알고 속앓이를 해야 하는 건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고민과 근심을 외로이 곱씹어야 하는 자신을 걱정했다.

이강우는 그렇게 걱정 속에 잠들지 못했다.

* * *

8등급 유적 사냥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강우는 곧바로 20평 남짓한 방에 갇혔다.

외부활동은 조금도 할 수 없고, 외부와 접촉도 할 수 없으니, 갇힌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터.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았다. 한 달 만에 유적 밖으로 나왔는데 가족하고 통화도 할 수 없는 처지. 더군다나 이강우는 어머니의 마법 치료 소식이 어느 때보다 궁금했다. 나름 높으신 양반들이 잘 처리해 줬겠지만, 치료에 문제가 있진 않았을지……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

그런 이강우에게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없는 관계자는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뭐든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뭐든지.”

이강우의 심중을 알 리 없는 관계자는 이강우에게 자랑하듯,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듯 우리는 그 이상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했다.

물론 심기 뒤틀린 이강우의 괜한 착각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어머니 걱정,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 바츠무의 손이 주는 매력 속에서 이미 정신머리가 사라진 이강우는 심술을 부렸다.

“뭐든지?”

“예.”

“그럼 캐비어 2캔에다가, 송이버섯 12송이에, 적당히 조리를 마친 푸아그라 200그램에 곁들여 먹을 와인…… 5대 샤토 중에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대신에 2010년하고 2014년산 중에서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당연히 이강우의 심술은 통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관계자 직원은 곧바로 와서 그건 불가능하겠다고 다른 주문을 요구했고, 이강우는 관계자의 모습에 라면하고 계란 그리고 김치를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여기에 초콜릿은 뭐든 좋으니 잔뜩 가져다 달라고 했고, 직원은 허쉬 초콜릿 한 박스를 가져다줬다.

그렇게 라면에 밥까지 말아 먹고, 후식으로 초콜릿을 단숨에 해치운 이강우는 그제야 기분이 풀렸다. 역시 피곤하고 짜증 날 땐 당분과 나트륨이 최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래, 인생은 초콜릿이지.’

그러나 기분은 풀릴지언정,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이강우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게 될 테니까.

‘혼자서 7등급 유적 사냥이라니, 나도 진짜 미친놈이 됐구나.’

이제 7등급 유적을 홀로 사냥해야 할 테니까.

9등급과 8등급의 차이도 크다. 그러나 7등급과 8등급의 차이와는 비교할 수는 없다.

길드와 크루의 구분 기준도 바로 8등급과 7등급이다. 8등급은 크루 소속 총꾼이나, 크루를 고용하는 마법사들이 자기 깜냥으로 후딱 해치울 수 있다. 하지만 7등급 유적은 길드 차원에서 처리한다. 크루가 7등급 유적 사냥에 개입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 7등급 유적을 혼자서 사냥한다?

‘아마 들어가자마자 몬스터 한 마리 해치우고 피 냄새 맡으면 실컷 날뛰겠지.’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이강우의 상태다.

이강우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바츠무의 손이 가진 매력에 흠뻑 젖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이강우의 본능이, 감이 인지했다.

지금 이강우에게 8등급 몬스터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바츠무의 손을 이용하면, 이강우는 8등급 몬스터도 가뿐하게 해치울 수 있다. 8등급 몬스터인 알비노 리자드를 단숨에 해치운 게 그 증거다.

첫 사냥에 나서는 맹수는 사냥감을 두려워하지만, 사냥에 성공한 맹수는 그 이후부터 절대 사냥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 이강우의 상태가 딱 그거다. 이강우는 7등급 유적에 들어가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뛸 것이다.

하지만 7등급 유적에 있는 몬스터들은 물이 아니다. 놈들도 엄연히 이빨을 가진 괴물이다.

‘잘 되면 대박, 안 되면 결혼도 못 하고 총각귀신이 되겠네.’

그에 따른 근심과 걱정.

동시에 이번 7등급 유적 사냥마저 성공했을 경우 따라오는 어마어마한 메리트까지!

사실 단순히 손해만 보이는 일이었다면, 메리트에 비해 리스크가 훨씬 큰 상황이었다면 이강우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여기서 시험을 포기했겠지.

그런데 실상 상황은 반대다. 이제부터는 메리트가 리스크에 비해 훨씬 더 크다.

일단 마지막 실전 테스트다. 이후에 인·적성 검사가 있긴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무리 없이 통과될 것이고 그럼 클로저 라이센스를 획득하게 된다.

그 이후는?

클로저 라이센스를 얻은 이강우는 그 누구도 아닌 로드리게스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마음껏 유적 사냥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유적에서 나오는 모든 게 이강우 소유다.

‘7등급 유적에서 섭취할 수 있는 마력 포인트는 3만 안팎.’

마나스톤을 독점할 수 있으면, 이강우의 마력 섭취량은 지금까지보다 곱절이나 많아진다.

여기에 이제는 무조건 몬스터를 먹어서만 마력을 섭취할 필요도 없다. 필요하다면, 바츠무의 손을 이용해 마력만 쭉쭉 빨아먹을 수 있다. 7등급 유적 하나에서 3만 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만약 제이드 플라워나 마령화 같은 걸 발견한다면? 기생망고거북을 발견한다면?

유적 사냥 한 번에 5만 포인트의 마력 섭취. 두 번 사냥이면 10만 포인트다. 바츠무의 손과 같은 어마어마한 수준의 마법을 얻을 수 있는 골드북을 구매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되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힘들겠지만 영차영차 해서, 50만 포인트를 모아서 플래티넘북을 구매한다면…….’

골드북에서 나온 마법이 이 정도인데, 플래티넘북에서 나온 마법은 어떨까?

그 이후 순차적으로 마나 서클도 개방하는 거다. 리볼버 역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것이다. 어쩌면 올해에 5서클까지 개방하는 건 물론 6서클 개방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 내년에 6서클 마법사가 되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강력한 마법들을 쓸 수 있게 된다.

세계를 대표하는 마법사 중 한 명이 되는 거다. 당장 공항에 입국하면, 그 소식이 뉴스를 통해서 나오고, 남녀노소가 가리지 않고 사인해달라고 접근하고, 이강우는 보디가드 호위를 받으며 쿨하게 그들을 무시하고, 대기 중인 리무진에 타자마자 이래서 인기남은 괴롭다니까, 그래서 오늘은 국방부 장관하고 미팅인가? 별이 타주는 커피 좀 마시겠네. 으하하! 같은 푸념도 내뱉고…….

‘……내 인생이 그리 평탄할 리 없지.’

어림도 없는 상상이다.

‘왠지 느낌이 올해 6월쯤에 하나 큰 거 터질 것 같단 말이야.’

이강우는 자신의 인생이 단 한 번도 자신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 * *

클로저 라이센스 시험은 허술한 듯 보여도, 굉장히 철두철미하게 시험이 진행된다.

클로저 라이센스 자체가 굉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응시생의 실력은 물론 수시로 응시생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

특히 응시생의 내력을 중시한다. 정체를 감춘 테러리스트에게 클로저 라이센스를 준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테니까.

이런 이유로 응시생들마다 리포트가 있으며, 이 리포트는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가 발견될 때마다 갱신된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실전 테스트를 앞둔 지금, 클로저 라이센스 시험진행위원회는 시험을 앞둔 일곱 명의 리포트를 놓고 7등급 유적 테스트 적격성 유무를 논의했다.

“챠이 수의 응시를 반대하는 사람 있습니까?”

“대마도사가 이제 와서 굳이 클로저 라이센스에 응시하는 저의가 궁금하지만 반대할 이유는 없지.”

“블랙 볼트에 대해선?”

“이존을 대표하는 6서클 마법사에다가 이미 유엔 휘하에서 여러 차례 아프리카 내에 등장한 몬스터 사냥에 자원하면서 공적을 쌓은 그의 자격과 내력을 의심한다면, 모든 마법사들을 의심해야 할 터.”

“패스트볼의 자격에 대해서는?”

“블랙 스택의 떠오르는 루키, 너무 공격적인 게 문제지만, 클로저 라이센스에는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마법사일지도 모르겠군. 실력 하나는 화끈하니까.”

언급되는 응시생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최소 5서클 이상의 마법사, 여기에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실력자들이었고, 당연히 그들의 응시 자격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진행위원회 관계자들은 리포트를 만화책 읽듯 가볍게 읽고 넘겼다.

그런 그들 모두를 멈추게 한 건.

“포식자 이강우의 자격에 반대하시는 분?”

다름 아니라 이강우의 이름이었다.

“3서클 마법사. 솔직히 자격 미달 아닌가? 7등급 유적 사냥에 3서클은 보조로만 참가할 수 있는데?”

“배경이 마음에 걸려. 블랙 스택 휘하 지부인 즈믄나래 출신이라니, 결국 한국 국적에 즈믄나래 소속이란 것 아닌가? 추천자가 리볼버가 아니었다면 추천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심지어 리볼버 성격을 생각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사람을 추천한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8등급 유적을 무리 없이 소화했지. 일반적인 3서클 마법사가 8등급 유적에서 30일 동안 버틴 후 아무런 상처 없이 클로즈에 성공할 가능성은? 솔직히 앞선 후보들 중에서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지만, 상처 없이 클로즈에 성공한 자는 절반에 불과하지.”

“즈믄나래 정보에 따르면 마법사가 된 지 반년 만에 1서클에서 3서클까지 성장했다는군. 성장 속도는 놀라운 수준이야. 반년 정도 더 기다리면 5서클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

“그럼 내년에 응시를 하는 게 정답 아닌가? 그만한 인재가 무리한 도전으로 희생당하는 걸 막는 게 우리 위원회의 역할 아닌가?”

이강우의 이름을 앞에 두고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클로저 라이센스 제도가 생긴 게 길지는 않았지만, 이강우 같은 케이스는 그가 유일했다. 3서클 이하 마법사가 응시한 적은 있어도 8등급 유적 테스트까지 완벽하게 끝낸 경우는 없었다.

당연히 이 소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진행위원회 관계자들 역시 오늘 이강우에 대한 논의가 중점이 되리라 생각하고, 미리 만반의 준비와 각오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소란은…….

“본인이 원하는데 시험 자격은 줘야지. 무엇보다 내 안목이 리볼버보다 낫다고 생각되지 않는군. 그가 추천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중후한 음색을 가진 고풍스러운 콧수염을 가진 중년 사내. 이제까지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그가 이강우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순간.

“통과.”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끝이 났다.

* * *

로드리게스는 이번 클로저 라이센스 시험에 관심이 많았다. 이강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클로저 라이센스 시험에는 유독 굵직한 이름값을 가진 이들이 다수 참가한 게 진짜 이유였다.

특히 칠성문 소속 최강의 마법사, 대마도사 챠이 수의 응시는 여러모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실 그녀는 굳이 클로저 라이센스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마법사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가 이번 클로저 라이센스 시험에 응시한 사실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존 소속 실력자 중 한 명인 블랙 볼트도 참가했다. 블랙 볼트의 참가는 예상되어 있었다. 작년 11월에 6서클의 개방에 성공한 그는 이존 소속 이전에 프랑스 국적으로 클로저 라이센스 추천권을 가진 유엔 상임이사국 중 한 곳인 프랑스가 기회만 되면 언제든 클로저 라이센스 응시에 추천하고자 때만 기다리던 차였다.

블랙 스택 소속 패스트볼 역시 이름값은 훌륭했다.

이 세 명 외에도 나름 쟁쟁한 이름값과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이번 시험에 참가 중이었다.

물론 애초에 그 정도 실력이 없으면 통과하기 힘든 시험이었다. 7등급 유적을 자력으로 클로즈 하는 건, 단순히 전투 능력만 우수하다고 가능한 게 아니니까.

그걸 고려해도 이번 참가자 면면은 매우 화려했다. 특히 대마도사의 참가는 단순히 개인의 참가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녀가 속한 칠성문에서 선수를 놓은 셈이다. 이 수에 맞수를 두면, 판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클로저 라이센스는 여러 권력 집단의 이익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격증이다. 마법사 한 개인의 자격증이 아니라, 여러 이익집단의 이익이 얽힌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번 클로저 라이센스의 모든 과정을 전달받던 로드리게스 회장은 3차 실전 테스트에 대한 내용을 속보로 받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진행위원회에서 딱히 탈락자가 나올 것 같진 않았지만…….’

사실 그는 이번 진행위원회의 내용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진행위원회에서 응시자를 떨어뜨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이강우의 경우에는 결격 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로드리게스 회장은 이강우 역시 충분히 통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름 아니라 크로포드가 추천을 했으니까. 그가 추천을 했는데 논쟁이 있을지언정 결국은 모두가 찬성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설마 마르쿠스의 찬성으로 잡음이 사라질 줄이야.’

그 과정에서 마르쿠스가 움직일 줄은 몰랐다.

‘그가 이강우와 관계가 있나?’

마르쿠스.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 신사를 로드리게스가 알게 된 건 모래시계문이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모래시계문의 등장은 인류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 같았다.

모래시계문에서 뛰쳐나온 몬스터가 등장해 야단법석을 피우자, 그 당시 세계적인 대부호들은 서로 모여 진지하게 어느 곳으로, 어느 방공호로 도망을 칠 것인가, 하는 이야기만 서로 나눴다. 일찌감치 사업을 정리하는 이들도 있었다.

로드리게스 회장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 역시 모든 사업을 접고, 평생을 지하 속에서 지내야 하는가? 그런 일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무렵에 네 명이 로드리게스 회장을 찾아왔다. 미 국방성 장관의 소개로 만난 그 네 명은 로드리게스 회장에게 블랙 스택 창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로드리게스 회장에게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마르쿠스, 강희, 이바노프…….’

그중의 한 명이 마르쿠스였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사실 그리 기분 좋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후한 이미지의 신사지만, 로드리게스는 마르쿠스를 보는 순간 과거 아마존에서 여행을 할 당시 아나콘다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의 느낌을, 소름 끼칠 정도로 비릿한 공포감을 느꼈다.

마르쿠스는 여러모로 신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투자를 했다.

위기는 곧 기회, 로드리게스 회장은 그 사실을 실천에 옮길 줄 아는 과감한 사내였고, 그런 그의 성정이 그를 세계적인 대부호로 만들어줬다.

결과적으로 그때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블랙 스택은 기대 이상으로 거대해졌고, 어마어마한 단체가 됐다. 단순히 수익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로드리게스 회장은 투자금을 이미 회수했다.

하지만 막상 로드리게스 회장은 가장 원하던 것, 블랙 스택에 대한 영향력은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싹수 있는 마법사와 개인적인 접촉을, 거래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마르쿠스의 행보는 눈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마르쿠스는 로드리게스 회장이 원하던 것을, 지금 시대를 움직이는 마법사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블랙 스택 창립 멤버이며, 미국 정부 휘하 마법위원회 위원장, 클로저 라이센스 시험진행위원회 일원, 유엔 휘하 마법부 부장…… 전 세계 마법사들 중에 마르쿠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마법사는 극히 드물다.

반대로 그는 굉장히 얌전하고 고요한 행보를 보인다. 특정 마법사를 지목해서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 그가 이강우를 언급했다. 이강우의 3차 테스트 응시에 찬성을 보냈다.

나름 파격적인 일이다. 아마 그 진행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던 관계자들 역시 꽤 놀랐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의도지? 마르쿠스와 이강우 사이에 접점이 있는 건가? 아니면 리볼버가 수작을 부린 건가?’

로드리게스 회장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 순간 로드리게스 회장은 이강우의 전적을, 그가 즈믄나래 소속이란 사실도 떠올렸다.

‘강희.’

즈믄나래의 길드 마스터 강희.

자신을 찾아와 블랙 스택 창립을 주장했던 멤버 중 한 명.

블랙 스택 창립 이후 마르쿠스는 블랙 스택을 떠났고, 강희 역시 즈믄나래의 길드 마스터가 되면서, 둘 사이의 접점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정말 그 둘이 소원하고, 별거 아닌 관계였다면 블랙 스택 창립을 위해 모여서 자신을 찾아오는 일은 없었을 터.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야.’

* * *

이강우는 모래시계문 앞에 서 있었다.

나무로 만든 듯한 질감의 검은색 모래시계문은 거대했다. 높이는 5미터였고, 폭은 3미터로 그건 마치 문이 아니라 집처럼 보였다. 심지어 문 중간에 위치한 문고리는 이강우가 머리 위로 팔을 쭉 뻗고 점프를 해야 간신히 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강우는 그 거대한 문 앞에서 숨을 골랐다.

‘마지막 찬스다.’

돌아가려면, 여기서 돌아가야 한다. 들어가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으니까.

‘가느냐, 마느냐.’

고민의 나날들, 이제 그 고민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이강우는 클로저 라이센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불사황제가 마련해준 시스템은 이강우를 언젠가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런데도 이강우가 고민을 하는 건, 우습게도 지금 이강우가 이 문 너머에서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7등급 유적을 앞에 두고 고작 3서클 마법사가 지껄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지만, 이강우는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8할 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놀라운 수치다.

그 정도로 이강우가 가진 힘은 그가 가진 마나 서클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다.

‘불사황제, 당신도 내가 죽는 걸 원치 않겠지. 그래서 그토록 내 꿈에 나타나는 것일 테고.’

결정적으로 이강우는 이 순간 불사황제를 믿었다. 앞서 한 소리보다 훨씬 더 우스운 소리이고, 멍청한 소리이지만, 불사황제가 위기의 순간 자신을 구해주리란 확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강우는 깨달았다. 지금 이강우는 불사황제에게 무조건 힘을 받는 게 아니다. 없는 걸 받는 게 아니다. 불사황제는 이강우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이강우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힘을 깨워주고 있었다.

‘불사황제, 괜히 마력 섭취니 이런 게임 같은 장난을 치지 말라고. 정말 내가 강해지는 걸 원하면, 내가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네가 가진 패는 전부 꺼내!’

때문에 이번 유적 사냥은 어떤 의미에서 불사황제에 대한 협박이었다.

이제까지 그에게 당하기만 했던 이강우가 이번에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 셈이었다.

“문 열어 주십시오.”

오픈 더 도어.

그 말에 대기 중인 관계자가 고개를 끄덕였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관계자가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렸다.

어둠이 보였다.

그 어둠을 바라보는 이강우의 눈동자가 먹잇감을 앞에 둔 뱀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포식의 시간이 왔구나.’

* * *

딱딱!

어둠 속, 이강우는 자신이 딛고 있는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입꼬리 한쪽을 살짝 올렸다.

‘돌이다.’

이윽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강우가 손으로 지면을 만졌다. 우툴두툴한 돌멩이를 반듯하게 잘라 길바닥을 만든 듯했다.

‘인위적인 길.’

개미굴이나, 정글처럼 자연적으로 탄생한 게 아니라 필시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된 공간이었다.

‘미로인가?’

이런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된 유적 타입은 둘 중 하나다.

미로 혹은.

‘설마 던전?’

던전 타입.

‘미로라면 빛이 있을 텐데, 빛이 없는 걸 보면…….’

던전 타입이란 층으로 나누어진 공간을 말한다. 여러 타입의 유적 중에서 가장 독특한 형태다.

동시에 유적 사냥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층마다 몬스터가 분산되어 있는 만큼 몬스터 사냥이 수월하고, 층으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기에 베이스캠프 및 휴식 장소 확보가 쉬우며, 가장 아래에 출문이 있을 가능성이 현격히 높다.

쉽게 말해서, 던전 타입 유적은 하나부터 열까지 유적 사냥 전체를 설계하기가 쉽다. 변수의 등장도 적고, 변수가 등장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여러 타입의 유적 중 던전 타입 유적이 유적 사냥 파티의 클로즈 가능성, 생존율이 가장 높은 게 그 증거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있다.

바로 몬스터의 숫자!

‘던전 타입이 몬스터는 훨씬 많은데…….’

던전 타입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숫자는 정글, 개미굴, 미로 타입에 비해서 곱절 정도 된다.

몬스터가 많으니 단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냥 자체가 쉽기 때문에 오히려 다수의 마나스톤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강우 입장에서는 일장일단이다. 몬스터가 많으니, 섭취할 마력은 많아지겠지만, 상대할 몬스터도 많아진다.

그래도 미로 타입이나 다른 타입보다는 낫다.

‘자, 그럼…….’

이강우는 곧바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야간 투시경을 썼다.

이번 3차 테스트에는 몇 가지 장비가 추가로 지급됐다. 야간 투시경을 비롯한 서바이벌 도구들, 충분히 개인이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장비는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야간 투시경을 쓰자 어둠이 사라지고 녹색 세상이 이강우를 반겼다. 마치 고대유적의 통로에 들어온 것처럼, 반듯하게 잘린 돌덩이가 레고처럼 쌓여 바닥을 만들고, 벽을 만들고, 천장을 만들고 있었다. 크기도 컸다. 큼지막한 트럭도 지나갈 수 있을 법했다.

‘대체 이런 건 누가 만든 걸까? 절대 자연적으로 탄생할 수는 없는 건축물인데?’

짧은 의문과 함께 이강우는 몸을 풀었다. 몸풀기의 마지막은 오른손에 낀 장갑을 벗는 일이었다.

바츠무의 손.

‘이것만 있으면 돼.’

바츠무의 손을 떠올리자, 잠잠했던 이강우의 기세가 다시 불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힘은 분명 이강우를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미쳐도 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 순간.

‘음!’

이강우가 무언가 낌새를 느낀 듯, 자세를 낮췄다. 그런 이강우의 야간 투시경 너머로 무언가 흐릿한 움직임이…… 아지랑이 비슷한 출렁거림이 잠시 포착됐다.

잠시였다.

이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강우는 이 순간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등장한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맙소사.’

갑자기 보였다 사라지는 이 낌새.

‘설마 꽃등도마뱀?’

7등급 몬스터, 꽃등도마뱀을 떠올리게 만드니까. 더군다나 이강우는 이제까지 꽃등도마뱀을 여러 번 잡아봤다. 해체도 여러 번 했다. 최근 잡아본 7등급 몬스터 중 가장 많이 잡아본 게 꽃등도마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정말 제대로 먹어도 봤다.

그거다.

먹어 봤다는 것.

이 순간 이강우의 입에서 군침이 흘렀고, 그 군침과 함께 꽃등도마뱀의 맛이, 이강우의 뇌리에 각인된 그 달콤한 살코기가, 꽃등도마뱀 스테이크와 탕수육 그리고 그걸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 채유리의 얼굴이 빠르게 떠올랐다.

이보다 명확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젠장!’

7등급 유적에서 이강우가 마주한 첫 상대가 7등급 몬스터, 꽃등도마뱀이라는 명확한 증거!

* * *

꽃등도마뱀의 은신 능력은 명불허전이다. 그 대단한 현대과학의 기술력으로도 녀석의 은신 능력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건 불가능하다. 마법 역시 마찬가지다. 녀석의 은신 능력을 파악할 만한 마법은 있겠지만, 이강우에게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강우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도망치느냐, 싸우느냐.’

일단 도망치는 걸 고민해보자.

‘추격전은 위험해.’

이강우가 도망치는데 꽃등도마뱀이 손수건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할 리 없다. 악착같이 달라붙을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추격전이 시작될 터.

헤이스트 마법을 이용하면, 꽃등도마뱀과의 추격전도 해볼 만하다. 하지만 쉽진 않다. 꽃등도마뱀은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주제에 매우 빠르니까. 또한 놈과는 거리를 가늠하는 게 쉽지 않다. 보이는 적을 뿌리치는 것과 보이지 않는 적을 뿌리치는 것, 동일한 속도라고 해도 난이도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몬스터를 만나면 끔찍한 상황이 연출되겠지.’

결정적으로 도망치는 와중에 다른 몬스터를 조우, 그들을 자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강우는 7등급 몬스터를 혼자 잡을 만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2마리 이상의 8등급 몬스터를 상대로는 승산이 매우 떨어진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 이미 답은 나온다.

추격전은 힘들고, 위험하며, 이강우에게는 7등급 몬스터를 상대할 능력이 있다.

‘싸운다.’

선택지는 골랐다.

그럼 이제 고른 선택지에 맞는 시나리오를 그릴 차례.

격전지가 될 무대를 일단 살펴보자.

길이다. 아주 긴 길이고, 큰 길이다. 큼지막한 대형 트럭도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길이니 작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꽃등도마뱀의 덩치를 고려하면 녀석에게는 그리 큰 길이 아니다. 녀석은 여기서 유턴을 할 수 없다.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거나, 두 가지 방향만 설정할 수 있다.

이강우에게 유리하다. 이강우는 꽃등도마뱀의 행동을 보다 쉽게 예측할 수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잡아야 할까?

‘올라타기만 하면…….’

다른 건 없다.

이강우가 가진 마력을 퍼붓는 것도 나쁘진 않다. 버닝 마나를 써서 프로즌바이트와 라이트닝 다트를 써먹으면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강우가 놈의 등에 올라타서, 차근차근 놈을 도축하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

‘3분이면 충분해.’

자신한다.

머릿속으로 그려진 시뮬레이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강우는 3분 안에 꽃등도마뱀을 처치할 수 있다.

그만한 정보도 있다. 이강우는 꽃등도마뱀의 골격은 물론 내장의 위치, 혈관의 위치, 가죽의 두께와 질긴 정도, 지방의 깊이와 특징, 고깃덩이의 단단함…… 그 전부를 알고 있다. 머리로 알고 있고, 몸으로 알고 있다.

‘자.’

생각은 여기까지.

‘헤이스트.’

이강우가 헤이스트 마법을 쓰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평범한 검을, 아티팩트가 아닌 도축용 칼을 왼손으로 들었다.

동시에 정면을 바라보는 이강우. 야간 투시경 너머로는 여전히 아무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꽃등도마뱀이 이강우를 향해 달려온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조짐도 없었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움직이면 땅 울림이라도 생길 텐데, 그마저도 없다.

귀신같은 놈이다. 꽃등도마뱀이 붙은 이름에 비해 무시무시한 악명을 자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강우는 간을 보기 위해.

팟!

전격침 하나를 만들어 던졌다.

곧게 날아간 전격침이 파직! 짧은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터졌다. 터지는 순간 이강우의 정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달라졌다. 전격침의 따끔함에 꽃등도마뱀이 화가 난 모양.

그 순간 이강우가 도약했다.

바닥을 박차고 올랐고, 동시에 허공에서 몸을 회전했다. 헤이스트 마법으로 가벼워진 몸뚱이는 단숨에 천장에 닿았고, 이강우는 천장을 밟고 다시 한번 도약했다. 이강우의 몸이 스프링처럼, 연달아 튕겨 올랐다. 이강우가 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칼을 앞세운 채로.

그냥 칼이 아니었다. 마력검 마법을 썼고, 이강우의 마나 서클이 내뱉은 마력이 칼을 휘감았다. 마력은 칼의 예기를 보다 날카롭게, 강도를 보다 단단하게 만들었다. 칼은 이제 강철조차 얇으면 뚫을 수 있는 뾰족함과 날카로움과 단단함을 품을 수 있었다.

그 칼끝이 정확하게.

푹!

꽃등도마뱀의 두꺼운 등가죽을 뚫었다. 이강우의 몸도 자연스럽게 꽃등도마뱀의 등줄기 위에 닿았다.

이 순간 이강우를 가장 먼저 반긴 건 꽃향기였다. 꽃등도마뱀의 등에 피어난 꽃들의 향기가 이강우의 코끝을 간질였다.

이 순간.

정말 찰나의 순간, 긴박하기 그지없는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 정말 우스운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없어서 다행이야…… 만약 나한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었으면 여기서 재채기를 하다가 죽었겠지? 세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기록되겠어. 2021년 다윈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군!

……같은 생각.

정말 이런 순간에 해서는 안 될 정도로 우습고 멍청한 생각이었지만, 그건 동시에 이강우에게 여유가 넘친다는 증거였다.

그 여유는 꽃향기 사이로 퍼지는 피 냄새를 맡는 순간 사라졌다. 이강우는 여유를 버리고, 그 자리를 긴장감과 집중력으로 채웠다.

이강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강우는 바츠무의 손을 발동시킨 오른손으로 꽃등도마뱀의 등가죽을 잡았다. 바츠무의 손이 단숨에 꽃등도마뱀의 가죽이 가진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쭈글쭈글한 형태로, 잡기 좋은 형태로 바꾸었다. 동시에 이강우는 바츠무의 손이 가진 흡수력을 흡착력으로 바꿨다.

떨어지지 않는 손잡이를 잡은 상태에서 칼을 쥔 이강우의 왼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깊게 들어간 도축용 칼. 그 칼을 운전 기어를 조작하듯, 아래로 내렸고, 곧바로 바깥쪽으로 움직인 후, 다시 위로! 빠르게 조작했다.

칼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꽃등도마뱀의 가죽과 지방, 살점을 아주 가뿐하게 잘라냈다.

심지어 꽃등도마뱀의 등에 난 뼈를 조금도 터치하지 않았다. 뼈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살점만을 정확하게 베는 솜씨는 도축이 아니라, 명의(名醫)의 수술처럼 보였다.

쿵!

이 순간 꽃등도마뱀도 반격을 시작했다.

놈이 제 몸을 벽에 내동댕이치듯 던졌다. 등 뒤에 올라탄 이강우를 뿌리치기 위한 작업이었다. 살은 이미 줄 만큼 줬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강우에게 반격을 하고 싶을 터.

이강우는 로데오를 시작한 카우보이가 됐다. 시야가 크게 흔들렸고, 온몸의 감각들이, 균형을 가늠하는 기관들이 칵테일 셰이커 속에 들어간 술처럼 출렁거렸다.

보통 사람이면 구역질을 하고, 민감한 사람이라면 기절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강우는…….

‘오케이.’

오히려 이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과 시야 그리고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거다.

이 감각이 이강우로 하여금 확신을 품게 해줬다. 알비노 리자드를 잡을 때, 이 감각을 맛보면서, 이강우는 자신이 7등급 유적도 충분히 포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시나리오대로, 완벽해.’

초감각.

보통은 그저 감각으로 남을 뿐. 하지만 헤이스트 마법은 그 감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걸 가능케 해줬다.

이강우가 날뛰는 꽃등도마뱀 등 뒤에서 빠르게 작업을 했다.

이강우는 등산을 하듯, 등허리 부근에서 꽃등도마뱀의 목이 있는 부근으로 올라갔다.

그냥 올라가진 않았다.

길게 뻗은 등뼈, 그 등뼈로부터 나뭇가지처럼 갈라져 나온 여러 개의 갈비뼈들.

이강우는 그런 뼈를 건드리지 않은 채, 뼈의 사이사이에 연달아 칼집을 냈다. 뼈에 붙은 살점을 잘라내듯 깊게 상처를 냈다. 그 칼 놀림은 정말 절묘하고, 신속했다. 당하는 꽃등도마뱀 입장에서는 고통보다는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긴 대동맥. 이쪽에는 장기가 있지.’

이강우는 지르면서, 등 쪽에 위치한 혈관과 장기가 있는 부위는 더 깊숙이 찔러냈다.

푹푹, 푹!

칼집을 내며 달리는 꽃등도마뱀의 몸을 오르는 이강우, 그런 이강우가 지나간 길이 피범벅이 됐다. 꽃등도마뱀의 투명한 몸뚱이가 본인의 피로 반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괴상한 광경.

그저 날뛰는 낌새만 있을 뿐.

쿵쿵!

꽃등도마뱀이 연달아 벽에 몸을 던지며, 부딪치며 이강우에게 충격을 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기어코 이강우는 꽃등도마뱀의 목덜미까지 도달했다. 목덜미, 달리 말하면 귀와 가까운 부근. 꽃등도마뱀은 이강우가 짧게 내뱉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강우도 꽃등도마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고동을 들을 수 있었다.

심장이 내뿜은 피가 머리, 뇌로 향하는 소리. 아주 중요한 혈관이 북처럼 두근거리는 소리.

이강우가 그 소리를.

푹!

완벽하게 끊었다.

깊숙하게 들어간 칼은 손쉽게 빠졌고, 칼이 뽑히는 순간 핏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푸화홧!

달리는 꽃등도마뱀, 녀석의 목에서 뿜어진 핏물은 벽면을 길게, 아주 길게 흩뿌렸다.

거기서 꽃등도마뱀은 무너졌다. 치명적인 출혈량에, 등이 너덜너덜하게 농락당한 상황에서 꽃등도마뱀은 더 이상 날뛸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쿠쿠쿠!

질주하던 꽃등도마뱀이 넘어졌고, 놈이 제 몸뚱이로 바닥을 사정없이 긁었다. 그 상황에서도 이강우는 꽃등도마뱀의 몸에 붙어 있었다. 몸에 붙은 채로, 이강우는 제 손을 흠뻑 적신 꽃등도마뱀의 피를 혀로 가볍게 핥았다.

피는 참으로 달콤했다.

* * *

이강우의 해체는 완벽했지만 난잡했다. 이강우가 베어낸 고깃덩이들, 굳이 부위명을 정하자면 목심, 등심, 채끝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위들이 길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나름 맛난 부위들이었다. 보통 때의 이강우라면 그걸 줍느라 바빴을 터.

하지만 지금 이강우의 눈에는 그런 고깃덩이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맙소사…….’

보다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분석 마법을 썼다.

그리고 죽으면서 은신 능력이 사라진 꽃등도마뱀의 사체 위에 피어난 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섯 자리의 숫자가 이강우의 이목을 단숨에 강탈해버렸다.

‘마령화잖아?’

잊을 리 없다.

자신에게 놀라운 세계를, 여러모로 놀라운 세계를 알려줬던 마령화가 꽃등도마뱀의 등에 피어 있었다.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는 환호성과 함께 탄식이 터졌다.

이런 재수가! 하는 환호성!

아, 마령화를 또 먹어야 하나…… 하는 탄식.

아주 조금, 일부에서는 제이드 플라워보단 낫지! 라는 안도의 한숨까지.

물론 대단한 운이다. 재수가 좋다. 꽃등도마뱀의 마나스톤, 녀석이 가진 마력의 양 여기에 마령화를 합치면 최소한 2만 포인트가 넘는 마력을 섭취할 수 있다.

대박 중의 대박이다.

‘아.’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번쩍였다.

‘혹시?’

이강우가 바츠무의 손을 발동한 상황에서 마령화에 손을 댔다. 그리고는 마력을 흡수했다.

그러자 마령화가 급격하게 시들었다.

[11,320포인트의 마력을 흡수했습니다.]

[마령화를 섭취하셨습니다. 마나 서클의 빛이 밝아집니다.]

그것으로 마령화 섭취가 완료됐다.

이강우가 놀라며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와우.”

이럴 수가!

바츠무의 손을 이용하면 맛이 겁나 없는 마령화는 물론 먹는 게 고문인 제이드 플라워까지 무리 없이 마력만 흡수할 수 있다니?

‘맙소사, 이거 진짜 최고네?’

까도 까도 새로운 면이 발견되는 바츠무의 손 앞에 이강우는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다. 이강우가 만족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으며, 꿀꺽, 침을 삼켰다.

역겨운 마령화도 금방 흡수했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

‘단맛이 초콜릿 이상으로 강하고, 초콜릿과 다른 풍미를 가진 꽃등도마뱀의 살을…… 모든 수분을 제거하고 육질을 극한으로 압축하면 어떤 맛이 나올까?’

꽃등도마뱀을 맛있고, 몸에 좋고, 마력에도 좋은 간식으로 만들 차례다.

그런데.

‘……이런!’

이강우의 등줄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식었다. 이제까지 열기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들떴던 가슴속이 차갑게 식었다. 감성과 이성이 곧바로 현실을 직시했다.

이강우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줄기를 싸늘하게 만든 방향을 봤다.

그러자 야간 투시경 너머로, 분석 마법이 보여주는 시야 너머로 묘한 불꽃의 일렁거림이 보였고, 이내 사라졌다. 네자릿수 숫자가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이강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이 느낌 역시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불꽃꼬리?’

아무래도 정말 제대로 된 꽃밭에 온 모양이다.

* * *

불꽃꼬리와의 전투를 마쳤을 때.

[8,322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이강우는 불꽃꼬리의 꼬리를 날름, 먹어치웠다. 거듭된 전투 때문에 단내로 가득한 입 안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청량감으로 가득 찼다.

이후 곧바로 이강우는 1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가지자마자 8등급 몬스터인 삼색꽃뱀과 전투를 치렀다.

[5,922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삼색꽃뱀의 독을 전부 흡수했다.

그로부터 10시간 후, 이강우가 9등급 몬스터 네 마리를 제거하고 던전 타입 유적의 층을 탐색했을 때 이강우는 다시 한번 꽃 한 송이를, 곱게 핀 마령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걸 먹었다.

그 자리에서 이강우는 바츠무의 손이 아니라, 자신의 입 안에 마령화를 넣었다.

[12,922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마나 서클의 빛이 강해집니다.]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강우가 섭취한 마력 포인트는 무려 5만 포인트를 넘어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7등급 유적 하나를 독식하면 얻을 수 있는 마력 포인트를 3만 정도로 잡았는데, 아직 유적을 한 층조차 털지 않았는데 벌써 5만 포인트의 마력을 흡수했다.

말이 안 된다. 이걸 운이 좋아서, 기적이 일어나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건 미련하고 멍청한 짓이다.

이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마령화를 발견했을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두 번째 마령화를 발견하는 순간, 이강우의 기분은 시궁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사황제, 이 개새끼가…….’

의문을 가졌었다.

과연 이강우가 계방산에서 발견한 모래시계문을, 그 문 너머의 유적을 들어갔는데 그게 우연히 불사황제의 시체가 잠든 제단일 가능성을 확률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때문에 불사황제가 이강우에게 없는 것을 줬다고 생각했을 때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무능력자인 이강우가 불사황제의 눈에 들었다고, 이강우가 아니라, 다른 이가 그 기회를 잡으면 그가 기회의 주인공이 됐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강우는 본인이 참 운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가설은 이미 깨졌다. 크로포드는 이강우가 무능력자가 아닌, 위대한 재능의 소유자임을 알려줬다.

거기서 이강우는 자신이 운 좋게 불사황제를 찾은 게 아니라, 불사황제가 이강우로 하여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박준영을 따라 유적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낌새가 안 좋았다. 분명 잘해봐야 8등급 유적이었다. 모래시계문의 강도를 몇 번이나 테스트했다. 하지만 유적 내부는 8등급 유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결국 그곳에서 불사황제를 만났다.

이런 사항을 조합하면, 불사황제는 모래시계문 너머의 내용을 바꿔치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 그리고 지금 불사황제가 그 능력을 사용했다. 이강우가 보다 빨리 강해질 수 있도록 환경을, 꽃밭을 마련해줬다.

참으로 빌어먹을 일이다.

‘내가 그동안 아등바등 지랄을 했군. 불사황제, 네놈의 앞에서 내가 재롱을 떨었어.’

이런 방법을 왜 진즉에 써주지 않았을까?

이유는 불사황제만이 알겠지만, 이강우 입장에서는 참으로 빌어먹을 일이다.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몇 번이나 목숨을 걸고 유적 사냥을 하면서, 몰래 마력을 섭취했다. 100포인트라도 더 먹으려고 먹을 걸 숨겼다. 좀 더 처먹으려고 공짜 요리사를 자처했다. 남들 비위 맞추느라 간 쓸개도 살짝 꺼냈다.

그렇게 마력을 야금야금 섭취하면서 간신히 마나 서클을 개방하고, 마법책을 구매해서 마법을 습득했다. 그 작은 소득 하나하나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과 기쁨을 표출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불사황제는 하루아침에 이룩할 수 있는 방법이, 능력이 있었다.

이강우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단숨에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렸다.

이강우는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마령화를 입에 넣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너무 빌어먹어서,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서, 불사황제에 대한 분노로 온몸이 터질 것 같아서, 자해하는 심정으로 씹었다. 잘게잘게, 그냥 삼키지도 않고 그 썩은 내를 거듭 곱씹었다.

지독한 맛.

이루 말할 수 없는 맛이 이강우의 뇌리에 각인됐다. 평생 악몽으로 남을 경험이 실시간으로 쌓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강우는 실없이 웃었다.

‘불사황제, 당신의 힘이 몸서리치게 두려우면서도…….’

무섭다.

불사황제의 권능이 어느 정도인지, 대체 그는 어떤 존재인지, 무서울 정도로 두렵다.

동시에.

‘당신의 힘이 너무나도 탐나는군.’

이런 말도 안 되는 위엄을, 능력을 보여주는 불사황제의 힘에 대한 갈증이 더 지독해졌다.

가지고 싶다.

이 위대한 힘을 가지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 힘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의 성취감을, 달성감을, 만족감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불사황제는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 치워 스스로를 살찌워라. 그리하면 네 몸을 양분 삼아 자라난 나의 권능들이…….

“……너의 충실한 종이 되어줄 것이다.”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꽃밭, 생일케이크로 받아주지.’

불사황제가 마련한 이 무대, 기꺼이 받아줄 것이다. 기꺼이, 주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울 것이다.

먹어 치워서.

‘아주 고맙게 먹겠어.’

불사황제마저 먹어 치울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