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수제자
즈믄나래 본부 빌딩 최고층에 위치한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 그곳에서 여러 대의 모니터를 앞에 둔 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작업을 하던 강희의 시선이 키보드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향했다.
[도착]
단순하기 그지없는 알림 내용에 강희는 잠시 하던 일을 멈췄다. 키보드 자판에서 손을 뗐고, 깍지 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몸을 풀었다. 우드득, 시원한 소리와 함께 강희의 머릿속에 크로포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크로포드는 얼굴을 기억하기 참 쉬운 사람이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외모에서는 특별한 분위기가……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게으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행동거지도 썩 좋진 않다. 뭘 시켜도 귀찮은 티를 팍팍 풍기는 사내.
‘휴가를 앞두고 그와 접촉할 기회가 생기다니, 운이 좋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실력이 없었다면 리볼버란 별명이 붙었을 리 만무하다. 그는 블랙 스택에 소속된 마법사 중 가장 강하다. 몬스터 사냥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만하다.
그러나 크로포드의 진가는 몬스터 사냥이 아니다.
마법 그리고 마법사, 그것들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이 크로포드가 가진 능력의 원천이다.
어떤 몬스터든 6번의 마법이면 잡을 수 있다? 7서클 마법사답게 사용하는 마법이 강력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만큼 적재적소, 효율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그는 그런 자신의 능력을 통해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고, 캐낼 줄 안다. 그 증거가 크로포드 본인이다. 크로포드는 스스로의 재능을 가늠하고, 그 재능을 한계치까지 끌어내서 7서클 마법사가 됐다.
그게 강희가 급하게 크로포드에게 이강우를 보낸 이유였다.
‘크로포드라면 이강우가 가진 특별한 게 뭔지 눈치를 챌 수 있겠지.’
크로포드가 이강우의 진면목을 드러낸다면 이강우가 가진 것을 알 수 있을 테고, 그러지 못한다면 이강우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이번 일은 그것을 알기 위한 실험이었다.
‘만약 그 특별함이…….’
강희, 그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실험이기도 했다.
* * *
크로포드는 이강우에게 테스트를 한다는 말만 툭, 남긴 채 사라졌다. 이후 통역관이 이강우에게 상황을 알려 줬다.
“이제부터 테스트를 받을 겁니다.”
정말 너무 큰 도움이 되는 상황 정리였다. 이강우는 기뻐 죽으려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말했다.
“무슨 테스트입니까?”
통역관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신에 이강우를 데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현재 층은 지하 5층.
통역관은 여기서 다시금 더 낮은 층, 지하 10층을 눌렀다. 그걸 본 이강우가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꾹 참고, 억지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높게 쌓은 층 놔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블랙 스택이 승승장구하면서, 블랙 스택의 본부가 위치한 시애틀 디스커버리 공원에는 30층짜리 빌딩만 3채가 있었다. 여기에 지금 1개 빌딩 하나가 더 건설 중이다.
이런 블랙 스택의 본부 빌딩 상층에서 바라보는 디스커버리 공원 풍경은 절경으로 유명하다. 블랙 스택 본부를 방문했는데 상층에서 디스커버리 공원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 사진이 없으면, 블랙 스택 본부 방문을 인정해주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 그런 절경이 보이기는커녕 지하로 처박히고 있다. 이강우는 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완전 총꾼 취급이군.’
속전속결.
지금 모든 일이 신속하게 일어났다. 이강우가 중간에 태클을 걸 틈조차 주지 않았다.
물론 이강우도 괜히 이런저런 헛소리로 시간을 낭비하는 걸 원치는 않지만…… 이건 아니다. 예전 이강우라면 이런 대우는 아무래도 좋지만, 지금 이강우는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즈믄나래 소속 마법사이고, 넘버스 멤버 아닌가?
‘총꾼도 이런 식으로 테스트는 안 받는데 대체 무슨 테스트를 할 속셈이지?’
테스트…… 물론 받을 순 있다.
하지만 테스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 테스트는 과정일 뿐이다. 그럼 이강우가 받고자 하는 테스트는 무엇을 위한 테스트인가?
‘테스트 통과하면 정장 입혀서 세계평화 악당을 처리하는 데 투입할 생각인가? 킹스맨 속편이라도 찍으려고?’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띵!
그 무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이강우는 문이 열리고 보이는 풍경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연구실.’
투명한 유리들이 벽을 대신해 층 곳곳을 채우고 있었고, 유리 벽 안에 마련된 장소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비롯해 위생 장비를 착용한 채 실험 도구들을 이용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쉴 새 없이 주변을 확인하는 이강우의 시야에는 ‘Warning’이란 단어가 거듭 밟혔다.
‘독.’
몇 분 전 크로포드로부터 들었던 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강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독에 대한 내성 테스트라…….’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다. 독에 대한 내성을 테스트해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마법하고 무슨 상관인가?
이런저런 생각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이강우의 표정은 조금씩, 의도치 않았지만 굳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통역관이 문을 열었다. 다른 곳과 다르게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평범한 벽으로 만들어진 방이었고, 안에는 이강우를 놔두고 자리를 떠났던 크로포드가 언제나 그렇듯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는 이강우가 등장하자마자 별말 없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테이블 위의 작은 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용량이 50㎖도 되지 않을 법한 작은 컵 안에는 소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 순간 이강우가 입을 열었다.
“이 테스트의 목적을 알고 싶습니다.”
어눌하지만, 이강우가 영어로 크로포드 본인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 크로포드는 이강우의 질문을 듣자마자 놀라거나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질문이 나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귀찮아.”
정말 담담하게 이강우도 이해할 법한 단순한 표현을 뱉었다. 이강우가 구겨지려는 표정을 억지로 붙잡았다.
대답은 통역관 입에서 나왔다.
“마법사는 모두 마법에 대한 저항력, 항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법으로 만들어진 독에 중독될 경우 항마력에 의해 중독 증상이 달라집니다. 3서클 마법사와 5서클 마법사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독에 대한 증상이 전혀 다릅니다. 때문에 중독 증상에 따라 대상이 가진 마법 능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모르는 잠재력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3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5서클을 개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이와 3서클이 전부인 이 역시 차이가 있습니다.”
독에 대한 단순한 내성 검사가 아니라, 독에 대한 내성 정도를 통해 마법 능력을 가늠하는 것. 그게 이번 테스트의 목적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강우는 납득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이 설명을 앞서서 해주면 뭐 입에 가시가 돋나?’
정말 듣는 순간 모든 게 이해되는 멋진 설명이다. 만약 이 설명을 진작에 들었다면 이강우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테스트를 받았을 것이다.
‘정말 빌어먹을 취급이군.’
말과 함께 이강우가 컵을 들었다. 찰랑거리는 액체, 양으로 따지면 5㎖ 정도 보였다. 침보다 적은 양.
‘분석 마법을 쓸까?’
분석 마법을 쓰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하지만 7서클 마법사를 앞에 두고 분석 마법을 쓰는 게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마법사 앞에서 분석 마법을 쓰고 들킨 적은 없지만…… 7서클 마법사와 그들을 단순하게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은가?
‘의미 없겠지.’
결정적으로 분석 마법으로 독이 가진 마력 수치를 파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이강우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둘 중 하나뿐이니까.
먹느냐, 마느냐.
사실 답은 나와 있다. 투정을 부리든 말든, 분명한 건 크로포드라는 거물 중의 거물을 상대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강우도 나름 궁금했다.
그가 가진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꿀꺽!
이강우가 단숨에 독을 들이켰다.
그와 동시에 이강우의 몸이 굳었다. 그의 정신이 아득한 세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야 너머로.
[1,202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932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마력 섭취를 알리는 알림이 흐릿하게 보였다.
* * *
블랙 스택은 그 어느 곳보다 정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블랙 스택에 소속된 이들은 중요한 내용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특수하게 제작된 핫라인을 통해 나눈다.
당연히 이 핫라인을 통해 연락이 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곧장 통신에 응해야 한다. 강희가 자신의 집무실에 위치한 샤워실에서 면도를 하다 말고 나와서 고풍스러운 수화기를 집어 든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여전히 면도 크림이 묻어 있는 상태로 수화기를 집어 든 강희는 곧장 들여오는 목소리에 실소를 머금었다.
“크로포드, 오랜만입니다. 그보다 그렇게 갑자기 인사도 없이 말을 하면 듣는 쪽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좀 진정하시죠.”
통화 상대는 크로포드였다.
-내가 진정하게 됐어? 희, 대체 그 녀석 어디에서 구한 녀석이야?
그런 크로포드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나른하고, 게으르고,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던 때와 전혀 달랐다. 말도 속사포처럼 나왔고, 목소리에는 힘도 담겨 있었다.
강희는 놀랐다. 크로포드와 알고 지낸 지는 꽤 됐다. 모래시계문이 등장한 직후 알게 됐으니까. 그런 그가 이런 목소리를 보여주는 경우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개중 한 번은 크로포드 본인이 일곱 번째 마나 서클 개방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만큼의 놀라움.
“무슨 의미입니까?”
-강우.
“예, 제가 보냈습니다.”
-항마력 테스트를 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
강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크로포드 식의 항마력 테스트 방법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그 방법 쓰는구나. 안 쓴다고 들었는데…….’
사실 굉장히 무식한 방법이었다. 말이 테스트지, 사람 다리를 부러뜨릴 만큼 힘을 준 후에 다리가 부러지면 강도를 측정하는 식이다. 몸이 상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몇 명이 몸이 상했다. 그래서 1년 전부터는 블랙 스택에서 크로포드에게 그 방법 쓰지 말라고 했고, 크로포드 역시 1년 동안은 그 방법을 안 썼다.
물론 강희가 아는 크로포드라면 블랙 스택이 금지해서 쓰지 않았기보다는 테스트에 필요한 재료가 없어서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운 나쁘게, 이강우가 갔을 때 테스트에 필요한 재료가 갖춰진 모양이다.
“놀라운 결과라니, 사망 소식이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물론 안 좋은 결과가 나와도 정말 큰 문제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7서클 마법사인 크로포드가 해독 마법을 써주니까. 약간의 후유증이 남긴 하지만, 위험한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그 테스트, 속칭 크로포드 테스트라 불리는 테스트를 받은 이들 중에 남의 도움으로 블랙 스택 건물 밖으로 나온 경우는 없었다. 어쨌거나 모두 제 다리로 걸어서 나왔다. 물론 이후 크로포드 이름만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며 크로포드를 향해 욕설을 토해내는 사소한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테스트 결과가 나보다 좋아.
“예?”
그런데 이 순간 강희의 머릿속의 모든 잡념을 지울 만한 이야기가.
-말 그대로야. 강우, 그의 잠재력은 나보다 높은 것 같아.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나왔다.
‘설마?’
그 순간 강희의 눈빛이 달라졌다.
* * *
이강우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 위에 있었다.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온몸에 있는 체액을 침으로 뱉으려는 듯, 침을 정말 과할 정도로 질질 흘린 채 있었다.
“쩌업…….”
그 침이 만들어낸 불쾌함이 이강우의 눈을 뜨게 만들어줬다. 더럽기 그지없는 기상. 거기에 방점을 찍으려는 듯, 이강우는 눈을 뜨자마자 길게 트림을 내뱉었다.
“끄으윽!”
트림을 하자 역겨운 것들이 이강우의 코와 입을 가득 채웠다. 이강우는 명치 부근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으으, 왜 이래?’
제이드 플라워를 먹고도 어쨌거나 버텼던 속이다. 물론 그때 대장과 항문은 버텨주지 못했지만. 이후 독마저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강우는 배가 아픈 적은 있었어도 속이 쓰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속이 쓰리다고? 그제야 이강우는 자신이 기절하기 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젠장, 뭘 먹인 거야?’
독을 먹었다. 그리고 먹자마자 세상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잃었다.
‘빗살무늬전갈독을 먹고도 정신은 안 잃었는데.’
어지간한 독은 중독 증상이 생겨도 소화되면서, 그 증상이 사라진다. 이강우는 몸으로 직접 경험해봤다.
그런 이강우가 독을 먹자마자 기절했다. 독을 소화하는 능력마저 가뿐하게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독이라는 증거다.
‘살아남은 게 다행이군.’
이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와우.”
넓은 디스커버리 공원, 그 너머로 보이는 퓨젯사운드와 그 퓨젯사운드 아래로 가라앉는 석양.
정말 멋진 풍경에 이강우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제까지 품었던 불만을 잠시 동안 잊게 해주는 풍경이었고, 이강우는 그제야 자신이 호텔 스위트룸 부럽지 않은 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강우가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 무언가 대접받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이강우가 그 헛웃음을 지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일단 얼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침부터 씻어야 했으니까.
“그래, 이게 마법사 대우지.”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곧바로 화장실을 찾아 들어간 이강우가 세면대 앞에 섰다.
그 상태로.
“응?”
거울을 바라본 이강우가 그 상태로 정지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이강우가 여전히 표정은 정지한 채로, 제 손으로 머리 위에 떠 있는 고리를 바라봤다.
반짝이는 두 개의 고리.
그리고.
‘왜 이게 절반이나…….’
반쪽이 빛나는 고리 하나.
‘……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야?’
2.5서클.
이강우의 몸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다.
* * *
[이강우]
-마력: 3서클 개발 중(53%)
-보유 마법: 6개
-마법 슬롯: 3개
-섭취 마력: 40,322포인트
‘이상해.’
거울에 뜬 자신의 능력치 현황을 본 이강우는 작금의 상황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해.’
크로포드가 준 소량의 액체를 마시고 기절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1만 포인트 가까운 마력을 섭취했다.
대단한 일이다. 눈물 만큼에 불과했던 미량의 액체에 1만 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 걸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 기뻤다.
‘좋긴 한데, 정말 좋은데…….’
분명 기쁜 일이다. 이런 식으로 기연을 얻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연이라고 해도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법 아닌가?
‘1만 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했는데 활성률이 30퍼센트나 증가했다는 게 말이 돼?’
고작 1만 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한 주제에 세 번째 마나 서클이 30퍼센트나 더 활성화됐다. 분명 섭취한 마력 포인트보다 마나 서클 활성률이 높은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마령화를 먹었을 때 이미 한 번 경험해봤다.
‘솔직히 마령화 때도 나름 이해할 만한 수준이었어.’
그렇다고는 해도 고작 1만 포인트의 마력 섭취로 30퍼센트나 되는 활성률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냥 순수하게 기뻐하라고 하면 할 수 있다. 머릿속을 비우면 된다. 원숭이처럼, 당장 도토리를 더 준다는 사실에만 기뻐하면 문제 될 건 없다.
그러나 이강우는 원숭이처럼 재주는 부려봤어도, 뇌까지 원숭이가 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게 이유였다.
‘내가 뭔가 그동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아홉 개의 고리를 이강우가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불사황제가 나를 택한 거지?’
이강우가 이제 마주 봐야 하는 질문을 마주 보기 시작했다.
* * *
시애틀에 밤이 찾아왔다. 노동법을 준수하는 블랙 스택의 직원들 대부분은 이미 퇴근을 했고, 일이 밀린 몇몇 직원들만이 야근을 준비하거나 늦은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노동법은 이강우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강우에게 퇴근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이강우는 깨어나자마자 곧장 크로포드가 머무는 29층으로 이동해야 했다. 야근수당조차 주어질 리 없었지만 이강우는 그런 시답잖은 소리로 가뜩이나 복잡하고, 더부룩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단순하게, 하지만 명쾌하게 상황을 분석해야 해.’
기회가 왔다. 이강우의 마법사 인생에 크나큰 전환점이 될 기회가. 그 기회 앞에서 얼빠진 짓을 하면 결국 이강우가 손해를 볼 것이다.
그렇게 이강우가 각오를 다지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가 목적지인 29층에 도착했다.
띵! 명쾌한 소리와 함께 이강우의 머릿속도 명쾌하게 정리했다.
‘최우선으로 알아내야 하는 건 크로포드가 왜 내게 관심을 가지는가, 그리고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거다.’
정리를 마친 이강우가 열린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그런 이강우를 5성급 호텔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광경이 반겼다. 평소라면 탄성 혹은 여기 깔린 카펫과 저기 벽에 걸린 그림의 값이 얼마일지 계산했을 이강우, 하지만 이강우는 모든 걸 무시했다.
‘2901.’
크로포드가 머무는 방을 찾았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넓은 공간에 방은 고작 6개 밖에 없었으니까.
2901호실 앞에 선 이강우가 문 정중앙에 달린 고리를 이용해 노크를 했다. 캉캉캉, 클래식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반응이 없었다.
이강우가 다시금 노크를 하고, 그 후에도 반응이 없자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덕분에 이강우는 제 손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이강우를 반긴 건…….
‘……진짜 대단한 인간이야.’
문과 약 3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작은 텐트, 그리고 그 텐트에 반쯤 걸친 침낭 속에서 쌕쌕, 콧바람을 내며 꿀잠을 자고 있는 크로포드의 모습이었다.
‘판다가 따로 없군.’
굼벵이처럼 침낭 속에서 얼굴만 내민 그 모습은 게으르기로 소문난 판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강우는 그런 크로포드를 보며 짧게 숨을 들이마신 후.
“왔습니다.”
크로포드가 깰 정도의 목소리로, 제법 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강우의 말에 크로포드 몸을 가볍게 뒤척이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콜먼은 자리에 없어. 지금부터 해야 할 대화는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
크로포드는 말을 하면서도 눈은 감고 있었다. 신기한 건, 분명 영어로 뱉은 그의 말이 이강우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통역 마법이군.’
통역 마법.
비운의 마법이다.
마법의 시대가 왔을 때, 통역 마법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과 기대를 가졌지만, 실상 통역 마법은 마법 중에 가장 효용 가치가 낮은 마법 중 하나가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통역 마법은 기본적으로 3서클 마법이었고, 그런 통역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3서클 마법사가 필요한데, 3서클 마법사를 통역에 고용할 바에는 그냥 통역사를 고용하는 게 훨씬 쌌으니까.
어쨌거나 이강우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통역사를 통해 대화하는 건 이강우도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보다 내가 준 건 어땠어?”
“독 말입니까? 기절할 정도로 끝내줬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끝내주는 놈이었다. 더 있으면 더 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거 사실 독 아니야.”
말과 함께 크로포드가 두 눈을 떴고,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두 팔을 꺼내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어갔다.
“4등급 마나스톤을 메두사의 독으로 녹인 후에 마나그넷이란 신비한 돌을 이용해 채집한 특수한 마력 용액이지. 정식 명칭은 엘릭서. 블랙 스택이 이제까지 생산한 생산량이 100㎖도 채 되지 않은 신비의 묘약이지. 개중 내가 절반을 써먹었고.”
엘릭서.
대충 설명만 들어도 보통 놈이 아니다.
‘4등급 마나스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일단 4등급 마나스톤이 거론됐다. 5등급 몬스터인 멜트 드래곤만 해도 10만 포인트 가까운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4등급 몬스터의 마나스톤에는 얼마만큼의 마력 포인트가 있을지 가늠도 안 된다.
여기에 메두사의 독과 마나그넷이란 이름을 가진 돌.
‘신세계군.’
전부 처음 들어본다. 이강우는 일단 스택 레코드에 있는 7등급 유적 관련 정보까지 습득했다. 그런데도 이강우가 모른다는 건 6등급 유적 이상에서 나오는 물건들이란 의미다. 그런 어마어마한 것들이 한데 모여 나온 결과물이 평범한 것일 리 만무하다.
“설명만 들어도 대단하군요. 효능은 뭡니까?”
“복용자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지. 참고로 엘릭서에 대한 정보는 극히 소수만 알고 있어. 강희도 모르는 정보야.”
길드 마스터도 모른다?
“내가 연구하고 발견한 거고, 때문에 내 허락 없이는 블랙 스택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정보야. 오늘 이 시간부로 널 포함해서 엘릭서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 열 명도 없어.”
그런데 그런 걸 이강우에게 말해준다?
‘코를 꿰는 정도가 아니라, 내 양손, 양발에 수갑을 채우고 목줄도 채울 속셈이군.’
제대로 이강우를 제 손에 쥐겠다는 의도다. 이강우가 결코 블랙 스택 그리고 크로포드를 배신할 수 없도록. 이 귀한 정보를 이강우가 발설이라도 한다면, 이강우의 미래는 그렇게 달콤하지 못할 테니까.
기분은 안 좋다.
하지만 반대로 기대는 생긴다.
‘이런 어마어마한 특급 정보까지 뿌리면서 날 잡고 싶다, 이거지?’
7서클 마법사가 고작 2서클에 불과한 마법사 나부랭이를 잡으려고 이 정도까지 나서면 뭔가 있다는 거다. 이강우 본인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게 이강우 안에 있다는 거다.
“뭐,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애들 독 먹여서 괴롭힌다고 생각하더라고. 일단 먹으면 대개 기절하고, 기절했다 일어나면 손발이 저리고, 가슴 답답하고, 머리 아프고…….”
“누가 봐도 독이군요. 부작용은 없습니까?”
“부작용이라…… 이론상으로는 재수 없으면 죽는데, 다행히도 재수 없었던 사람은 없었네. 이제까지는.”
그 섬뜩한 이야기에 이강우는 슬그머니 제 가슴팍을 쓰다듬었다.
‘내 위장, 대단하구나.’
엘릭서란 무시무시한 놈을 깔끔하게 소화해준 위장이 대견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엘릭서를 전부 소화한 사람도 없었지.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이 대목에서 크로포드의 어조는 조금 전과 전혀 달랐다.
“다시 말하지. 나를 포함해서 엘릭서를 복용한 이들 중 엘릭서 전부를 소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달리 말하면 넌 내가 가진 이상의 잠재력을 가졌다는 거야.”
크로포드 이상의 잠재력.
“8서클 이상.”
8서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강우는 몇십 분 전 거울을 보며 느꼈던 어렴풋했던 감정을 보다 뚜렷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저 짐작만 하고 있었던 것들을 모아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없던 게 생긴 게 아니라…….’
이강우는 이제까지 불사황제가 자신에게 마법사의 재능을 줬다고 생각했다. 없던 것을, 무에서 유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당장 생긴 이 권력에 충분히 만족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강우는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봤다. 만약 자신이 불사황제라면, 아무것도 없는 이강우를 고를 필요가 있을까? 불사황제가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아무것도 없는 인간을 무시무시한 마법사로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이강우를 고를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그곳에 있던 3서클 마법사 박준영을 자기 숙원을 풀어줄 제물로 삼는 게 나았을 텐데?
여기서 시작된 의문은 새로운 생각을 만들었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재능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이강우에게 불사황제가 재능을 준 게 아니라, 애초에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이강우를 불사황제가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재능을 발휘할 계기를 준 것뿐이라면?
여기까지였다.
‘고민은 다음 기회에.’
지금 당장 이 고민에 휩싸일 여유가 이강우에게는 없었다. 이강우 앞에는 당장 맞서 싸울 크로포드란 태풍이 있었으니까.
“대충 상황은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8서클 마법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까?”
“침착해서 좋네. 혹시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죠.”
“그래, 그걸 알고 있었으면 강희가 널 여기 보내지도 않았겠지. 애초에 강희가 널 나한테 보낸 걸 보면, 네가 어느 정도 되는 놈인지 몰라서 알아보려고 보낸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멋진 일이 생겼지.”
멋진 일!
크로포드가 그 표현과 함께 이강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쁜 기색으로 말했다.
“드디어 내 숙원을 풀어줄 사람을 찾았으니까.”
숙원.
그 단어를 내뱉는 크로포드의 얼굴에는 더 이상 게으름, 나태함 같은 감정은 없었다.
숙원이란 단어를 들은 이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강우는 그 누구보다 숙원이란 단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불사황제와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 숙원을 위해서, 난 이제부터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이강우 널 최강의 마법사로 만들 거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각오가 크로포드의 음색에 섞여 있었다.
“날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나를 뛰어넘는 마법사로, 세계 최강의 마법사로 만들 거야.”
꿀꺽!
이 순간 이강우도 긴장감에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궁금하고, 초조하고, 긴장됐다.
“그렇게 널 최강의 마법사로 만들어서…….”
세계 최강의 마법사 중 한 명인, 리볼버 크로포드. 그가 이렇게까지 섬뜩한 각오를 가진 이유가 궁금했고, 그 이유의 주인공이 자신이 됐다는 사실 때문에 초조했고, 세계 최강의 마법사로 만들어주겠다는 그의 말에 긴장했다.
그런 이강우에게 크로포드가 자신이 품은 각오의 이유를 말해줬다.
“내가 가진 업무를 죄다 네게 넘길 거야. 난 일선에서 물러나고, 네가 나 대신 블랙 스택 최강의 마법사로 활약하는 거지. 널 건네주면 블랙 스택도 날 놓아줄 테고, 그렇게 되면 1년에 보름짜리 휴가도 얻지 못하는 이 빌어먹을 인생하고도 작별이야.”
절박함이 가득한 이유였다.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진심이 담긴 고백!
“이번 한 달짜리 휴가를 얻기 위해 2년 6개월 동안 휴가 한 번 내지 못한 인생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아……!
그 순간 이강우는 깨달았다.
‘내가 또라이에게 잡혔구나.’
크로포드, 그는 상식을 초월한 또라이라는 것을.
* * *
늦은 밤.
이미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어둠이 짙게 깔린 세상에서 캠프용 소형 전등을 앞에 두고 크로포드는 이강우를 상대로 기본 교육을 시작했다.
“나는 마법사의 성장을 등산으로 비유해.”
마법사의 재능은 정해져 있다. 3서클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마법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4서클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7서클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마법사가 숨만 쉰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7서클 마법사가 되는 건 아니다.
때문에.
“마법사에게는 각자의 봉우리가 있어. 마나 서클이란 이름의 봉우리지. 누구는 3개, 누구는 7개. 마법사는 그런 봉우리를 하나씩 정복하면서 성장을 하게 되지.”
재능 그리고 노력.
두 가지 전부가 있어야 마법사는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제까지는 등산 방법은 오직 하나였어. 마법을 열심히 쓰는 거야. 그 외의 답은 없었지. 마나 서클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마나 서클에 꾸준한 자극을 줘야 하고, 그 방법은 마법을 쓰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이 개념을 바꾼 게 바로 괴식가 기예르모지.”
그러나 모든 게 그렇듯, 모든 일에는 꼼수가 있는 법.
“그가 유적에서 보통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들을 열심히 주워 먹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지. 운 좋게 그 일기가 외부로 유출됐고, 덕분에 그 일기를 참고한 마법사, 연구원들은 마법이 아니더라도 마법사의 마나 서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 방법을 알게 되지.”
기예르모 레시피.
몇몇 이들은 그저 괴팍한 마법사의 일기 정도로 치부하는 그 책은 모래시계문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길드, 정부, 기업 등이 마법사의 마나 서클에 영향을 주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연구는 기존의 연구와 뒤섞이며 시너지 효과도 냈다.
“마법사의 마나 서클에 영향을 준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나게 가치가 있는 일이야. 잘 쓰면 마법사의 마나 서클 개방을 촉진할 수 있고, 좀 더 잘 쓰면 마법사의 마나 서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서 마법사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연구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마나 서클 자극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앞선 결과물을 내놓는 건 크로포드였다. 그는 이 분야의 권위자였을 뿐더러, 자기 자신이라는 최고의 실험 대상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특권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난 연구를 거듭했고, 결국 괜찮은 방법을 만들어냈지.”
결국에 크로포드는 마법사의 마나 서클을 자극해, 마나 서클을 촉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마나스톤을 정제해서 먹는 것.”
마나스톤 섭취.
그게 크로포드가 내놓은 방법이었다.
물론 그냥 섭취한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먹으면 의미가 없어. 그래서 처음에는 마법 무기를 위해 정제된 마력을 먹었는데 이 역시 효과가 없었지. 사람이 먹는 기름하고, 자동차가 먹는 기름은 다르니까. 결국 기예르모를 찾아가서 거래를 했고, 기예르모가 힌트를 줬지. 몬스터 중에는 다른 몬스터 혹은 마법사가 가진 마력이나 마나스톤을 섭취하거나, 흡수하는 놈들이 있지. 놈들의 소화 능력을 이용해 마나스톤을 정제한다면?”
마력을 섭취하거나 소화할 수 있는 몬스터의 위액, 타액 등에 있는 소화효소를 이용했다.
결과는 대성공.
“9등급부터 4등급까지, 여섯 등급의 마나스톤을 섭취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33가지의 레시피를 발견했지. 지금도 발견 중이고. 엘릭서 역시 그 과정에서 만들었지.”
크로포드 레시피의 탄생이었다.
더 나아가 크로포드는 그 레시피를 이용해 본인의 일곱 번째 마나 서클을 개방시켰다. 임상실험도 완벽했다.
“이제부터 내가 알려줄 건 바로 그 레시피다. 장담컨대 네가 열심히 몬스터만 해치우면, 넌 3년 이내에 최소 6서클까지 개방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극소수에게만 공개됐던 크로포드 레시피를 이강우가 알게 됐다.
“어때? 이 어마어마한 지식을 알게 된 소감이?”
“……놀랍습니다.”
당연히 이강우는 이 상황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설마 이런 식으로 마나스톤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줄이야?’
자신에게 이런 기회가 온 것에 감사했다. 동시에 자신에게 엿을 먹인 크로포드가 성인(聖人)으로 보였다. 구배지례라도 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이건 어마어마한 기회다.
마나스톤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물론, 먹을 수 있는 명분마저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가장 마력이 알토란 같이 모여 있던 마나스톤을 명분과 방법을 몰라 먹지 못했던 아쉬움을 떨칠 기회가 왔다.
그런 이강우의 놀란 표정에 만족한 듯, 크로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통역 마법도 얼마 안 남았군. 더 이상 마법 쓰기 귀찮으니까 질문 하나만 받고 오늘 교육은 마치겠어.”
질문 하나.
“어떤 질문이든 됩니까?”
“내 사적인 생활에 관련된 것만 아니라면.”
그 말에 이강우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마나스톤 정제하면 맛이 어떻습니까?”
그 순간 크로포드는 정말 몹쓸 꼴을 본 표정을 지었다. 이강우가 크로포드를 만난 이후 본 표정 중에 가장 감정이 진하게 드러내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크로포드가 뜸을 들인 뒤 역으로 질문했다.
“너 기예르모랑 아는 사이야? 지금 맛이 중요해? 똥맛이라도 마나 서클 개방을 촉진해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먹어야지! 와, 내가 이 질문을 살면서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맛이 없나 보군요.”
이강우의 짧은 푸념에 크로포드는 헛웃음을 흘리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네?”
또라이가 또라이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