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18화 (18/66)

18화. 신세계

이야기가 끝이 난 건 새벽 2시를 앞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안줏거리가 바닥을 보이는 순간 이야기는 끝이 났다. 깊게 취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잠들기 딱 좋은 취기였고,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딱 좋은 시간이었다.

“언니, 들어가서 자요.”

이우희가 소파에서 잠든 채유리를 들고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채유리가 사라진 소파 위를 하선우가 자리 잡았다.

“침대방은 넉넉한데 침대에서 주무시지, 왜 소파에서 주무십니까?”

이강우의 물음에 하선우는 짧게 대답했다.

“전 소파가 더 편해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요. 전 버즈 알 아랍에서 숙박할 때도 소파에서 잤습니다.”

세계 최고의 호텔에서도 소파에서 자는 게 편해서 그렇게 잤다는데 굳이 더 강요할 필요는 없을 터.

여러모로 하선우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알게 되는 날이었다.

“예, 잘 주무십시오.”

“강우 씨도요.”

이후 이강우는 밖으로 나왔다.

한숨 돌릴 속셈, 아무래도 이대로 잠들기에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아까웠다. 머릿속 정보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이강우가 숙소 밖으로 나와 제주 밤바람을 만끽하고 있을 때.

우웅!

스마트폰이 울었다.

* * *

“스토커 짓을 할 생각은 없지만, 나도 사정이 있어서. 그쪽 번호를 권력으로 캐낸 건 미안해.”

김재범의 말에 이강우는 담담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담담한 대답과 다르게 이강우의 속마음은 바짝 타들어 갔다.

‘마법사란 직위를 이용해서 즈믄나래 내에 있는 내 개인정보를 빼돌리고, 새벽 2시에 사람을 부르다니…… 이 인간도 정상적인 사고회로를 가진 인간은 아니군.’

이강우가 밤바람을 맞이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다. 눈앞의 사내, 김재범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강우는 김재범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길드를 통해 번호를 알아냈다는 의미.

여기에 하나 더.

이강우가 밖에 나오는 순간 타이밍 좋게 전화를 걸었을 리 없다. 실시간으로 이강우를 감시하며 그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의미다.

‘생각보다 속이 구린 인간인 모양이군. 자기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 타입.’

여기에 하나 더, 이강우는 김재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선우로부터 말이다. 하선우는 그가 굉장히 위험한 사내라고 했다. 특히 성격이. 거칠고 자기 잘난 맛에 살며, 자기 눈에 거슬리는 건 시비를 걸어서라도 뭉개는 성격이라고.

하선우 말만 듣고 사람을 평가하고 싶진 않지만, 이강우의 머릿속에 김재범이란 인간에 대한 점수가 높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하나.

‘이 사내에게 알아낼 게 많아.’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김재범을 보면 군침이 나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의 부름에 응했다.

“그보다 그건?”

“전부 가져왔습니다.”

이강우가 수르스트뢰밍 통조림이 담긴 비닐봉지를 통째로 김재범에게 건네줬다.

김재범이 이강우를 부른 이유였다.

‘고작 냄새나는 통조림 받으려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엿 먹이다니. 진심인가?’

이강우 입장에서는 더 화가 날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이강우가 김재범의 제안을 거절할 순 없었다. 이강우는 성격은 나쁘지만 실력은 확실한 권력자를 일부러 적으로 만들 만큼 모난 성격도 아니고, 대단한 실력자도 아니니까. 적어도 지금은.

“정말 고마워.”

김재범은 곧바로 감사의 인사를 하며 통조림을 받았다. 이강우가 그런 김재범에게 툭, 던지듯 질문을 했다.

“이건 요리하는 게 꽤 힘들뿐더러, 요리하더라도 한국인 입맛에는 안 맞을 텐데…… 정말 좋아하시나 봅니다? 입맛이 특이하시거나.”

“응? 아니, 그럴 리가. 이걸 누가 먹어? 단지 이 냄새가 필요할 뿐이지.”

냄새라는 말에 이강우가 실소를 지었다. 궁금하긴 하다.

“그 냄새를 무기로 쓰시렵니까?”

“음…….”

여기서 김재범은 즉답 대신 이강우를 지그시 한 번 바라봤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답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내 별명이 뭔지 알아?”

“독술사, 세계에서 독 마법을 가장 잘 쓰는 마법사 중 한 명.”

“마음에 드는 표현이군. ‘중 한 명’이란 건 좀 그렇지만. 본론으로 들어와서 독은 냄새가 있는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갑작스러운 퀴즈.

이강우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야 없는 게 좋겠죠.”

“독을 무기로 써본 적이 없군.”

이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여기서 자신이 독을 잘 쓴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독을 그냥 뿌려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긴 쉽지 않아. 특히 대단한 가죽이나 비늘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로는 피부에 독액을 뿌려 봤자 의미가 없지. 그렇다고 놈들 가죽을 뚫고 독을 집어넣는다? 그런 주사기가 있다면, 그냥 주사기로 찔러 잡는 게 낫지. 자, 그럼 무슨 방법을 쓸까?”

그 질문에 이강우는 두어 번 생각한 뒤 대답했다.

“먹이면 되겠군요.”

“정답. 현명한 사냥꾼은 사냥감이 독을 먹도록, 독을 맛있게 만들지. 즉, 냄새는 어떤 의미에서 독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요소지. 없는 게 좋을 때도 있고, 강렬한 게 좋을 때도 있고.”

“악취는 어디에 씁니까?”

“여기부터는 영업비밀. 하지만 그쪽도 제법 눈치가 있는 것 같으니까 금방 답을 찾겠지.”

말과 함께 김재범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건 서비스다. 하선우는 마음에 안 들지만, 중현 선배는 내게도 고마운 사람이니까.”

그가 꺼낸 건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병이었다. 그 병 안을 맑고 투명한 액체가 채우고 있었다.

“독입니까?”

“빗살무늬전갈독이다.”

빗살무늬전갈독.

‘아…… 6등급.’

기예르모 레시피에 나온 독이다. 6등급 몬스터로, 놈의 독은 어지간한 몬스터는 순식간에 마비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독이라고 했다.

특이한 점은 마비 상태에 빠질 뿐, 생명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 독이라는 점이었다. 괴식가 기예르모의 표현을 추가로 빌리면, 먹는 순간 뿅 가는 맛이라고 했다.

“넌 잘 모르겠지만 마비독이다. 중현 선배에게 내 선물이라고, 유적 사냥 잘하라고 말과 함께 전해줘.”

안중현이 인덕은 많은 모양이다. 어지간한 마법사들이 그에게 전부 호의를 보여주는 걸 보면.

이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향수 뭐 쓰십니까?”

“응?”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다.

그 질문에 김재범은 고개를 갸웃했다.

“향수? 내 몸에서 냄새가 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난 가지고 다니는 독 때문에 샴푸도 특수한 것만 쓰는데?”

그와 동시에 이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설마? 내가 맡은 냄새가…….’

곧바로.

‘분석.’

분석 마법을 썼다.

그 순간 이강우는 볼 수 있었다.

‘맙소사.’

김재범의 온몸 곳곳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마력 덩어리들, 1만이 넘어가는 마력 포인트들을.

‘……이젠 독도 처먹으라는 거냐?’

아무래도 불사황제, 그가 이강우에게 새로운 뭔가를 준 것 같다.

아주 골치 아픈 뭔가를!

* * *

모래사장.

제주도에 퍽 어울리는 이 표현은 다름 아니라 문 관리센터의 핵심구역, 모래시계문이 보관되는 그 장소의 명칭이었다. 물론 정식 명칭은 아니었다. 정식 명칭은 모래시계문 특수 관리센터 돔이지만, 편의상 마법사들은 모래사장이라고 불렀다.

모래사장이라 불리는 곳은 외형은 거대한 돔구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형태였다. 내부 역시 돔구장과 흡사했다. 뻥 뚫린 거대한 공간 안에 무수히 많은 모래시계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이 모래시계문 주변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래시계문의 강도를 테스트하고, 모래시계문에 달린 모래시계의 시간을 계산하고, 모래시계문을 포장하는 사람들까지. 마치 모래시계문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보였다.

특이점은 각각의 모래시계문 주변에 설치된 3개의 전자시계였다. 시계는 전부 똑같은 시간을 품고 있었고, 똑같이 시간이 줄어들었다.

“시계가 3개인 건 시계가 고장 날 때에 대비하는 겁니다. 시계가 고장 나는 바람에 약속에 늦었어…… 그런 식으로 미안하다는 말 하나로 넘길 수 있는 놈이 아니니까요.”

이강우는 하선우의 설명이 첨부된 광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을 뱉었다.

‘대단해.’

이렇게 많은 문이, 그것도 7등급 모래시계문이 줄지어 늘어선 광경을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광경이다.

‘그야말로 신세계군.’

정말 새로운 세계다. 그런 세계에 이강우가 발을 들여놓았다. 이강우가 짧게 웃었다.

“그럼 지하로 내려갑시다.”

그런 이강우에게 하선우가 진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 * *

모래사장 지상 1층에 위치한 모래시계문은 전부 7등급으로 6등급 모래시계문은 그 아래층, 지하 1층에 있었다.

지하 1층은 지상 1층과 비슷했다. 넓은 공간이었고, 높은 공간이었다. 차이점은 모래시계문의 숫자가 굉장히 적다는 것.

이강우의 눈이 빠르게 숫자를 가늠했다.

‘50개가 안 되네.’

모래시계문의 개수는 50개 아래였다.

‘생각보다 적군.’

대한민국 전역에 있는 6등급 모래시계문을 한자리에 모았을 터인데, 숫자가 50개라는 것. 이강우의 예상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저겁니다.”

그때 하선우가 손가락으로 모래시계문을 가리켰다.

그 말에 채유리를 포함해 이강우와 이우희가 하선우의 손끝에 있는 모래시계문을 바라봤다.

‘저게…….’

‘우리가 들어갈 유적의 문?’

꽤 컸다.

높이는 5미터 정도, 폭은 3미터 남짓. 문짝과 문틀은 대리석으로 만든 느낌인데, 그 대리석 느낌이 굉장히 불길했다. 검은색 마블링이 섞인 대리석이었다. 문은 양문이었고, 모래시계문의 문틀 위에는 모래시계가 있었으며, 그 양은 절반 정도 모래가 떨어져 있었다. 이강우의 시선이 곧장 모래시계문의 옆에 전자시계를 향했다.

[922h 54m 22s]

남은 시간은 제법 됐다. 일수로 따지면 한 달은 훌쩍 넘는 시간이니까.

“실패한 팀은 없습니다. 만약 모래시계문에 입장을 하게 되면 최초가 되는 거겠죠.”

“좋은 겁니까?”

이강우는 질문을 하면서도 스스로 머릿속으로 답을 내놓았다.

‘좋거나 나쁘거나.’

하선우 역시 이강우가 답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솔직히 제가 답변해 드리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최초의 문을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문을 바라봤다.

‘시험무대로는 제격이군.’

그때 갑작스럽게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클로즈! 클로즈 됐어!”

클로즈.

그 말에 모든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래시계가 멈춘 채 문이 열린 모래시계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중의 분위기도 움직였다. 고요하고, 잔잔했던 분위기가 발랄하게, 달리기를 하는 육상선수의 심장처럼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료팀! 부상자가 있다! 의료팀!”

갑작스레 터진 절규에 분위기는 삽시간에 긴박하게 변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하선우가 짧게 말했다.

“봐서 좋을 건 없겠군요. 우리는 지하 3층으로 이동합니다.”

* * *

모래사장 지상 1층에는 7등급이, 지하 1층에는 6등급이, 지하 2층에는 5등급 모래시계문이 있다.

그렇다면 모래사장 지하 3층에는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모래사장 지하 3층이 만들어진 이후로 무언가가 보관됐다는 기록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언가가 들어와도 그 존재가 기록되는 일은 없다.

보물창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어떤 보물이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방문자들도 그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여기서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건 그냥 사소한 기억으로 남기십시오. 추억으로 삼지도 마세요.”

하선우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리 경고했다. 이강우는 그 경고를 듣는 순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심각한 장소인데 저 같은 놈이 들어가도 됩니까?”

4등급 모래시계문.

사실 논란이 많은 놈이다. 특히 일반인들 기준에서는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놈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은 왜 정부가 4등급 모래시계문을 그냥 놔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 4등급 몬스터가 뛰쳐나오기라도 하면, 세상은 야단법석의 수준을 넘어서 혼돈의 도가니가 된다.

실제로 모래시계문 등장 초창기에 4등급 몬스터가 한국에 등장했던 적도 있다.

폭탄방울뱀!

녀석은 3시간 만에 도시 하나를 완벽하게 끝장냈다. 녀석의 꼬리 앞에서 인천 차이나타운이 쑥대밭이 됐다. 그마저도 이미 사태의 심각성이 극한에 다다랐던 당시, 주한미군이 F-22를 비롯해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한 덕분에 도시 하나 날아간 거로 끝낼 수 있었던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도시 단위가 아니라 도 단위의 피해가 생겼을 것이다.

그때의 공포는 지금도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 모를 마법적 가치를, 일반 대중은 딱히 누릴 수도 없는 무언가를 위해 4등급 모래시계문을 그냥 놔둔다는 건 일반인들이 납득할 리 없다.

즉, 보안이 중요한 놈이고 많은 이들이 알아서 좋을 거 하나 없는 놈이다.

그런데 그걸 이강우를 비롯한 이들에게 보여준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보더라도 이렇게 쉽게 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허가는 미리 받아 놨습니다.”

물론 허가를 해줬다니, 할 말은 없었다.

‘허가만 받으면 백악관도 들어갈 수 있지. 허가가 아무한테나 안 나와서 문제지.’

하지만 이렇게 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건가? 하선우의 권력이 어마어마한 건가? 같은 의문은 사라질 리 없다. 그런 이강우의 의문을 하선우는 추가 답변으로 해소해줬다.

“사실 여긴 말이 보물창고지, 보물창고가 아니거든요.”

“보물창고가 아니라고요?”

“보면 압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볼 게 보물창고로 향하는 문인지,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문인지.”

* * *

높이 10미터, 폭 20미터.

거대하기 그지없는 문은 크리스털과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진 듯, 투명했고 동시에 아름다웠다. 아니, 정정해야 할 것 같다. 크리스털이 아닌 다이아몬드로.

그 아름답기 그지없는 재질의 문짝과 문틀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알 수 없는 문양인데, 아우라가 뿜어졌다. 문자 자체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예술작품이었다. 그것도 인간은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

보는 사람 모두가 인간 외적인 존재의 작품임을, 심지어 장님마저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문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가뿐하게 압도했다.

이우희는 물론, 그들을 데려온 하선우와 언제나 위풍당당 마이웨이를 걷던 채유리까지, 모두가 멍하니 모래시계문을 바라봤다. 이강우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제 오른손으로 입 주변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이강우에게 하선우가 질문했다.

“뭔가 이상한 게 있습니까?”

“아뇨, 그냥 문이 저를 보는 것 같아서.”

하선우가 눈썹 한쪽을 올렸다.

“문이 바라본다고요?”

“착각이겠죠. 너무 대단해서 별생각이 다 듭니다. 그보다 저 문, 만질 수는 없습니까?”

“죄송하지만, 이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허가받은 건 눈으로 보는 것뿐입니다. 물론 신청을 한다면, 저 문을 만지는 건 물론 그 안에 뭔가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지요.”

그 말에 이강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그런 기회는 사양입니다.”

사양.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강우의 눈이 모래시계문의 옆에 있는 3개의 시계 중 하나를 확인하는 걸 하선우는 놓치지 않았다.

* * *

안중현이 문 관리센터에 도착했다. 그는 꽤 피곤한 기색으로 등장했다. 최근까지 굉장히 힘든 일을 치른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는 자신의 의무를 뒤로 미루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이우희를 불렀고, 이우희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일어난 모든 것을 보고 받았다.

그중에서 안중현을 가장 놀라게 한 건 이강우 일행이 4등급 모래시계문을 본 사건이었다.

“4등급 모래시계문을 봤다고?”

안중현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우, 녀석이 대체 어떻게…… 아니, 안 될 건 없지만 4등급 모래시계문 관람 같은 게 하루아침에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최소 보름 전에는 신청서를 제출해야 할 텐데…….’

안중현은 하선우의 의중이 궁금했지만, 그런 궁금증을 이 자리에서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좋은 경험을 했겠군.”

짧게 상황을 정리해줬다.

“예.”

“기분은 더럽겠지만.”

기분이 더럽다? 그 말에 이우희가 곧장 질문을 던졌다.

“대장님도 4등급 모래시계문을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4등급 모래시계문을 봤을 때 이우희는 안중현 말대로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안중현도 4등급 모래시계문을 봤다는 의미!

“1년 전에 미국에서 봤지. 블랙 스택이 자리를 마련해줬는데…… 즈믄나래 소속 4서클 이상 마법사들 중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서 보고 왔지.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니까.”

그때를 떠올리던 안중현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래시계문에 좋은 기억은 없지만…… 유독 4등급 모래시계문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아.’

세상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래시계문을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4등급 모래시계문은 조금 달랐다.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불쾌해질 정도다.

때문에 안중현은 기억에 잠기지 않았다. 굳이 지금 심정에 불쾌함을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굳이 여기서 우리랑 관계도 없을 4등급 모래시계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우리의 표적은 어디까지나 6등급 모래시계문이다. 디데이까지 얼마 안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클로즈 성공률을 1퍼센트라도 높이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그는 곧바로 유적 사냥을 준비하는 우두머리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냥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 * *

9월 30일, 시간은 오후 9시 22분.

‘앞으로…….’

소파에 누운 채 스마트폰 시계를 보고 있던 하선우가 자세를 고쳐, 소파에 바로 앉았다.

‘10시간 후면 시작이군.’

이제부터 10시간 후, 안중현이 자기 경력으로는 최초로 6등급 유적 사냥을 지휘한다.

유적 사냥에 참가한 마법사는 이강우를 포함해서 다섯, 총꾼은 스무 명이 대기 중이며 마법사가 입장하면 이후 총꾼은 넣을 수 있는 숫자 전부를 투입할 것이다.

‘조합은 훌륭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처음은 힘들다. 신고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안중현이 준비한 조합 자체는 조금의 우려도 만들지 않을 정도로 괜찮았다. 만약 안중현의 클로즈 성공 유무에 돈을 걸라면 하선우는 무조건 성공에 돈을 걸 수 있을 정도였다.

‘준비한 카드는 다양하고, 화려하다.’

일단 채유리란 확실한 카드가 있다. 그녀가 작심하고 전투에 돌입하면 6서클 마법사에 버금가는 전투 능력을 보여준다. 그녀가 낀 순간부터 어떻게 보면 안중현의 팀은 6등급 유적이 부족해 보일 정도의 오버 스펙이 됐다.

여기에 안중현. 4서클 마법사인 그는 6등급 유적 사냥을 지휘하는 게 처음이지, 6등급 유적 사냥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심지어 5등급 유적 사냥 경험도 있다. 더불어 그의 리더 능력은 훌륭하다. 만약 그가 5서클 마법사였다면 즈믄나래는 그를 주력으로 팀을 구축했을 것이고, 그 팀 안에 하선우를 부하로 넣었을 것이다.

이우희 역시 실력은 훌륭하고, 무엇보다 안중현의 지휘를 잘 듣는 훌륭한 장기 말이다. 마법사들 중에 고집불통인 인간이 제법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이우희는 리더가 원하는 인재다. 안중현 같은 리더의 손에 쥐여주면 어느 때보다 잘 드는 칼이 된다.

박태중 역시 우수하고, 안중현이 믿을 수 있을 만큼 개념과 기본이 잡힌 마법사다. 센스도 있다. 여기에 박태중은 의외로 다루는 사람이 많지 않은 대지 속성 마법을 쓴다. 대지 속성 마법은 다른 속성 마법보다 메리트가 많지 않아, 습득하는 이들이 적다. 메리트가 없지만, 그게 오히려 다양성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안중현은 일찌감치 박태중에게 눈독을 들이고 그를 자기 밑에 넣어두었다.

대마도사 자질을 가진 채유리를 비롯해서 불, 얼음, 대지 속성을 가진 마법사들이, 다양한 카드가 마련됐다.

여기에.

‘이강우는 조커 이상이 될 수 있어.’

이강우란 숨겨진 마법사까지. 그의 직위는 총꾼이지만, 2서클 마법사, 심지어 대마도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강우는 조커 카드로만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전력이다.

‘이 전력이 실패한다면, 그건 결국 운이 없는 거지.’

만약 안중현이 실패한다면, 그건 그냥 운이 없던 거다. 교통사고 같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하선우는 안중현이 그런 사고를 당할 것 같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하선우는 안중현의 성공을 확신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판단하고, 다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강우에게 부족한 건 경력. 경력만 확실하면 자격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때가 왔으니까.

‘만약 6등급 유적 사냥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다음은 5등급 유적에 도전할 자격을 획득할 테고, 그다음은…… 드디어 오는 거지.’

하선우가 폰을 들었다. 짧은 착신음 후에 목소리가 들렸다. 하선우가 곧장 대답했다.

“마스터,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 * *

모래사장 지하 1층.

6등급 모래시계문을 보관 중인 그곳에 완벽한 무장을 마친 스물다섯 명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등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사장 지하 1층 관리직원들이 그들에게 붙었다.

“보급품 목록입니다.”

처벅처벅.

서른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동시에 내는 발걸음을 배경음 삼아 대화가 분주하게 오고 갔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해보셨겠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해보십시오.”

“무기를 중점적으로 점검을 할 테니, 자리를 마련해주시오. 그리고 내가 주문한 건?”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식사는 하고 들어가시겠습니까?”

“부탁하오.”

짧은 대화.

이후 검은 마블링이 들어간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모래시계문 앞에 스물다섯 명의 총꾼 그리고 마법사가 섰다.

감상은 없었다.

“모두 무기 점검부터 한다.”

예!

짧은 대답과 함께 총꾼들이 이미 준비된 보급품 상자를 열고, 무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강우 역시 무기 점검조에 포함됐다. 그 역시 직위상으로는 총꾼이었으니까.

‘대단하네.’

이강우는 정말 놀랐다.

‘군인 시절에도 보기 힘든 게 잔뜩 있네.’

보통 총꾼들이 쓰는 무기는 자동소총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드 단위로 올라서야 수류탄을 비롯한 폭약을 쓸 수 있게 된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다. 아니, 상식을 운운하자면 크루 소속 총꾼들에게 소총이 들어가는 걸 놔두는 게 이상한 거다. 실제로 최근에 크루 소속 총꾼들이 총기 난사 사건도 일으켰다.

어쨌거나 그 정도 무장이 일반적인데, 지금 이강우에게는…….

‘기관총에 유탄발사기…… 수류탄은 다 쓰기 힘들 정도로 많네.’

어마어마한 무기가 지급됐다.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화기의 한계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개인이 소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의 무기도 있었다.

‘대부분 새것. 노후화로 걱정할 필요도 없고.’

여기에 대부분 물건들이 생산된 지 얼마 안 된 신품들이었다. 무기에도 수명이 있고, 수명이 다한 무기는 언제든 주인을 엿 먹일 수 있는 폭탄이다. 반대로 신품은…… 두말할 것도 없는 애병이다.

그때 지게차 한 대가 등장했다. 지게차는 큼지막한 상자를 문 옆에 내려놓았다.

‘뭐지?’

갑작스러운 상자의 등장에 모두가 놀랐다. 예고되지 않은 추가 보급품이란 의미.

반면 안중현은 미소를 지었다.

“로비의 성과가 오는군.”

마치 들으라는 듯, 나지막하게 말한 그가 총꾼 두 명에게 손짓을 했다. 총꾼 두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보던 외골격 슈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 위장 색마저 절묘하게 칠해진 신장 3미터짜리 외골격 슈트가 등장했다.

“워머신이잖아?”

대부분의 이들이 그 외골격 슈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거 대당 20억이 넘어가는 건데…….”

유적의 등장과 함께 외골격 슈트 개발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외골격 슈트를 그저 짐 나르는 용도로만 쓰고자 하는 바보는 없었다. 외골격 슈트의 무기화 연구는 애초에 모래시계문 등장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고, 그 결과 나온 게 바로 눈앞에 있는 워머신 시리즈였다.

모래시계문 등장과 함께 유적 관련 군수산업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디록 사의 간판 모델이기도 한 제품이기도 하다. 가격은 20억 원 안팎.

물론 가격은 사실 문제 될 게 없다. 목숨이 걸린 일이고, 마법사의 몸값은 그보다 더 비싸니까.

“가격보단 용케 이걸 받으셨네. 보통은 지급 안 해주는데…….”

문제가 되는 건 워머신의 물량과 관리다. 물량이 많지 않다. 생산량이 많지 않은데, 구매량은 많아서 발주를 부탁하면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국방부도 그리 많은 숫자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워머신은 유적 사냥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래시계문을 뚫고 밖으로 나온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한 병기였다. 그런 병기를 유적 사냥꾼에게 대여해줬는데, 유적 사냥꾼이 사냥 실패로 잃어버린다면? 빌려줄 수는 있지만 그저 필요하다고 해서 빌려줄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안중현이 워머신을 지급받았다.

‘어마어마하네.’

안중현을 봤을 때 그의 안색이 피곤함에 찌들었던 이유를 알게 됐다. 이런 걸 얻으려면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나며 로비를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안중현이 정말 대단한 패를 준비했다. 워머신에 제대로 무기만 장착할 수 있다면, 그 화력은 7등급 몬스터에게도 넘칠 정도로 통한다. 상대가 환수 타입같이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놈만 아니라면 단숨에 벌집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그래도 단순히 수완만으로 가지고 올 수 있는 놈이 아닌데…… 이걸 대여해준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이 정도 무기도 염두에 두어야 할 정도로, 지금 눈앞에 있는 문 너머의 세계가 무시무시하다는 의미다.

그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 문 관리센터에 온 둘째 날, 4등급 모래시계문을 보기 위해 모래사장을 방문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유적 사냥에 나선 파티가 6등급 모래시계문 클로즈에 성공했다. 그러나 상황이 긴박했고, 하선우는 이강우 일행을 이끌고 자리를 피했다.

징크스 때문이었다. 소위 부정을 탄다는 이유로, 유적 사냥을 앞두고는 상갓집조차 가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물며 유적 사냥 도중에 사망자가 나오는 걸 보는 건…… 경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때문에 더더욱 경험해서 좋을 것 없었다.

하지만 제한된 장소에서 지내다 보면 전부 귀에 들어오는 법.

‘5서클 마법사를 포함해 열다섯 명이 입장했고, 마법사 두 명을 포함해 총꾼 여섯 사망.’

그 파티는 열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유적 사냥 중 8명이 죽었다. 절반을 넘는 사망률.

그걸 과연 클로즈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물며 5서클 마법사가 주도한 유적 사냥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

‘지옥문이군.’

이강우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 걸 가지고 인류의 영광이니 미래니…… 정말 별 개소리가 다 나온단 말이야. 아무리 봐도 이건 그냥 지옥으로 가는 문인데.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핵전쟁이거나 혹은 모래시계문 때문일 거야.’

한숨은 거기까지였다.

이강우가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리고 각오를 다졌다.

‘그래도 잘하면 이번에도 마력 포인트를 좀 챙길 수 있겠지.’

* * *

어둠이 걷히고, 유적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우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봤다. 은은한 빛이 천장을 비추고 있었고, 덕분에 천장까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천장까지의 높이가 상당했다. 10미터 혹은 그 이상. 그리고 아래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벽이 그 천장에 닿아 있었다.

‘젠장.’

상황을 파악한 이강우가 쓴소리를 머금었다.

“운이 나쁘군.”

안중현은 제 속마음을 말로 뱉었다. 어지간해서는 부정한 평가를 말로 뱉지 않는 그가 유적 입장 초입부터 그런 말을 뱉었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는 의미일 터.

이우희도 한마디 뱉었다.

“미로네요.”

미로.

벽으로 가득 찬 세계, 유적 사냥꾼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계다.

“첫 6등급 유적 타입이 미로라니, 아무래도 유적이 날 상대로 제대로 신고식을 치러주고 싶은 모양이야.”

안중현이 말과 함께 이강우에게 신호를 줬고, 이강우는 곧바로 초크를 꺼내, 벽면에 X1이라는 문자를 크게 썼다.

‘미로 타입이라니, 귀찮게 됐어.’

문자를 쓰면서, 이강우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로 타입의 유적은 유적 사냥꾼들이 싫어하는 타입 중 하나다. 유적 사냥꾼에게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많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전투의 제약이다. 미로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는 일단 기본적으로 벽으로 주변이 막힌 채 이루어지는 제한된 전투다. 좌우 이동이 불가능하고, 표적을 포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에 도주도 어렵고, 엄폐물도 찾기 힘들다.

두 번째 문제점은 보급이다. 미로에서 베이스캠프를 마련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쿠쿠쿠!

“그나마 얌전한 놈이기를 바랐는데, 그 기도마저 통하지 않는 모양이군.”

때때로 시간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미로가 등장하니까. 그런 미로의 경우에는 베이스캠프를 마련해봤자 소용이 없다. 베이스캠프를 통째로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단 주변 안전을 확보하고, 보급품을 이동시키고,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출문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전투가 진행될 경우 보급품을 잃을 리스크가 커지고, 이동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미로 타입의 유적을 두고 투정만 부릴 수는 없다. 그리고 미로 타입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아니다.

“패치를 붙여야겠군.”

안중현의 말에 모두가 주머니에서 스티커를 꺼내 자신의 귀밑에 붙이기 시작했다. 위치발신장치다. 미로같이 어느 때보다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유적에선 필수품이다.

모두가 위치발신장치를 붙였고, 총꾼 한 명이 특수하게 제작된 태블릿 PC를 통해 위치발신장치의 상태를 점검했다. 확인을 마친 총꾼이 안중현에게 눈빛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안중현이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자의적 판단에 따른 행동은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행동은 내 허락 하에 이루어진다.”

분명한 건, 이런 제약과 리스크가 많은 곳일수록 지휘관의 능력과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등급 유적 사냥은 안중현, 그의 능력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그럼 유적 사냥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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