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17화 (17/66)

17화. 제주 문 관리센터

100평을 훌쩍 넘기는 넓은 회의장, 그 회의장 안은 수백 개의 의자들이 반듯하게 열을 맞춘 채 늘어져 있었지만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개성마저 독특하기 그지없어, 사람도 얼마 없는데 분위기를 더 어수선하고 난잡하게 만들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이들의 면면은 참 가지각색이었다. 남장을 한 것처럼 정장을 입은 여인,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채 제 몸매를 마음껏 뽐내는 여인, 멋지게 꾸미고 등장한 연예인 뺨치는 패션의 사내, 할리데이비슨에 어울릴 법한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노인까지.

어디에서도 공통점을 찾기 힘든 자들.

하지만 이들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무리보다 확고하기 그지없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법사!

그것도 그냥 마법사가 아닌, 대한민국 마법청으로부터 마법사 인증을 받은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었다. 대한민국 마법계를 떠받치는 기둥이며, 마법계를 이끌어갈 정말 대단하신 분들인 셈.

그러나 막상 그들의 행동은 그렇게 대단하신 명성과 지위와 배경에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이야, 연예인께서 마법사들 모이는 자리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

“마법사 자격으로 온 겁니다.”

“마법사? 여기 5서클 이상 마법사만 오는 자리일 텐데?”

“제가 여기 오는 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김재범 씨?”

“연예인답게 뻔뻔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부끄러운 말을 하면서도 얼굴색 한번 안 변하는군. 내가 그쪽 수준이라면,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감히 마법사의 마도 꺼내지 않을 텐데 말이야.”

이 둘.

대한민국 마법사들 중 가장 유명한 마법사, 바람잡이 하선우와 독 마법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최고라고 평가받는 독술사 김재범의 관계는 유독 심했다.

과연 이 둘에게 대한민국 마법계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 건가, 하는 우려가 생길 정도.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기 둘이 싸우려면 괜히 지랄 말고 주먹으로 싸워. 아니면 나가서 싸우거나.”

“두 놈 다 비열하게 독 쓰는 놈들인데, 마법사 운운하면서 지랄하는 거 보면 개그가 따로 없다니까.”

주변 마법사들은 그 둘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불난 집 집주인 앞에서 불난 집 불길을 가지고 마시멜로를 굽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휘유!

이윽고 터진 휘파람 소리는 그야말로 그 둘 사이에 끼얹는 휘발유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길이 폭발하는 일은 없었다.

끼익!

회의실 문이 열리고, 몸에 착 달라붙는 정장과 굵직한 뿔테 안경, 2 대 8 가르마를 한 거대한 체격의 사내가 등장했다. 사내는 매서운 눈빛으로 김재범과 하선우를 한 번 바라본 후 곧바로 회의실 단상을 향해 걸었다.

분위기가 진정됐다. 지금 등장한 사내 역시 범상치 않은 내력의 소유자인 건 분명했다.

단상 앞에선 그 사내는 안경을 한 번 고쳐 쓴 뒤에 입을 열었다.

“바쁘신 와중에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최근 발견된 4등급 모래시계문에 대한 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 *

안중현이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자각한 건, 이강우의 3일 차 훈련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정확히는 훈련이 아니고 테스트였다. 안중현은 이강우의 가능성을 좀 더 확인해보기 위해 다양한 테스트를 했다. 첫날에 그의 마나 서클 개수와 회복력을 가늠하고, 둘째 날에는 그에게 적합한 속성이 무엇인지 테스트했고, 셋째 날에는 그가 어떤 타입의 마법에 강점을 보이고, 약점을 보이는지도 알아봤다.

3일에 걸친 테스트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채점자 기준에서 수능 만점이 나오면 어떤 기분인지 이제 알겠군. 감탄보다 의심이 먼저 되는군.’

이강우는 모든 테스트에서 완벽한 점수, 만점이나 다름없는 점수를 보였다는 점이었다.

처음 수능 문제를 풀었는데 전 과목 만점이 나온 것과 비슷했다.

솔직히 놀라움보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안중현, 자신이 채점을 잘못한 건 아닌지, 시험을 치른 쪽이 부정행위를 한 건 아닌지…… 하물며 이강우는 유능한 총꾼이지만, 마법과는 오랜 세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사내 아닌가?

무엇보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너무 대단해.’

마법을 쓰는 건 어렵지 않다. 아티팩트가 있고, 그 아티팩트를 발동시킬 마력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모든 마법을 자유자재로, 완벽하게 쓸 수 있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내가 테스트를 잘못했거나…….’

결국 답은 둘 중 하나다.

이번 테스트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이강우가 채유리…… 아니, 칠성문의 대마도사에 버금가는 자질을 가졌거나.’

이강우가 알고 보니 무시무시한 재능의 소유자였다거나.

“후우!”

안중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쓸만한 사냥개일 것 같아서 데리고 왔는데…… 내가 감히 다룰 수 없는 괴물일지도 모르겠군.’

분명한 건, 지금 안중현은 이강우가 괴물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구분할 능력이 없다.

아니, 지금 안중현은 자신이 뭘 실수했는지 모른다. 만약 그의 실수에 의해 결과가 잘못 나온 것이라면, 안중현이 다시 이강우를 테스트했을 때 똑같은 실수가 나올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을 대신해 이강우를 가늠해줄 새로운 채점자가. 이강우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가 가진 가치를 밖으로 떠벌리지 않아 줄 사람이, 자신만큼의 안목과 경험을 가진 자가.

지금 상황에서 그런 자는 딱 한 명이다.

‘결국 또다시 하선우에게 빚을 지게 생겼군.’

하선우.

안중현이 그에게 연락을 했다.

* * *

4일 차 훈련은 없었다. 안중현은 잠시 볼 일이 있다면서 이강우에게 휴식을 줬다. 3일 내내 마나 서클을 쥐어짜 내며 한계까지 마법을 써야 했던 이강우 입장에서는 고마운 휴식일이었다.

그러나 그 휴식일을 그냥 보내기엔 이강우의 눈치도 보통 눈치는 아니었다.

이강우도 나름 촉을 느꼈다.

‘설마 내게 이런 재능이 있었을 줄이야.’

처음 보는 문제인데 술술 풀렸다. 안중현이 지시하는 대로 모든 것을 소화했다. 심지어 안중현이 준비한 네 가지 마법 속성들, 불과 얼음 그리고 바람과 땅 마법을 전부 완벽하게 발동시켰다. 각기 다른 두 가지 속성의 마법을 동시에 쓰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강우도 자각한다. 자신이 보통 마법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마법사는 재능이 전부다. 재능만 검증되면, 마법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채유리를 보면 된다. 그녀는 좀 과하게 표현하면 사회 부적응자…… 아니, 그냥 민폐녀다. 그런데 그녀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서 공주님 대접을 받는다. 다른 곳도 아닌 즈믄나래라는 대단한 곳이 그녀를 모시지 못해 안달이 날 지경이다.

‘공주…… 아니, 왕자님 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나름 마이웨이가 가능해진다, 이건데…….’

그게 현실이다. 재능 있는 마법사에게 길드는 충분한 대우를 해준다. 그렇다면 굳이 이강우가 자기 재능을 감출 필요는 없다. 재능을 감춘다고 해서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재능을 드러내면, 득을 보면 봤지 손해 볼 건 없다.

‘진짜 제대로 된 무기 하나는 얻었군.’

결정적으로 이강우는 안중현 밑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다. 이강우의 궁극적인 목적은 안중현처럼 유적 사냥의 우두머리가 되는 거다. 유적 사냥에서는 리더가 곧 법이니까.

‘당장 쓰긴 좀 그렇지만…….’

물론 지금 당장 김칫국을 마실 필요는 없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재능은 도망가지 않으니까.

그저.

‘그래도 뭘 어떻게 해야 베스트 시나리오가 나올까?’

유비무환.

나중을 대비할 뿐이다.

* * *

하선우는 천재다. 그는 인지도를 떠나서, 실력 하나만으로도 어느 나라를 가서라도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하선우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만큼의 재능을 가진 이가 있다.

채유리.

그녀는 재능 넘치는 마법사들 대여섯 명을 한데 섞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런 그녀처럼 모든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재능, 올라운더 재능을 가진 자들을 마법사들 세계에서는 대마도사의 재능이라고 부른다. 칠성문의 7서클 마법사, 챠이 수의 별명을 따서 만든 표현이다.

‘이강우에게 대마도사의 자질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이강우가 그런 대마도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안중현이 한 말을 들어보면 명명백백하다. 안중현은 본인이 실수를 했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하선우에게 조언을 요청했지만, 하선우가 봤을 때 안중현 정도의 안목과 경력을 가진 이가 실수를 했을 리는 없다.

‘대마도사의 최대강점은…… 복수의 마법사용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서포터는 물론 기반만 마련되면 의법사 역할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거지.’

더불어 대마도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그런 어마어마한, 거창하다 못해 오만하게 느껴지는 별명을 붙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2서클이라는 건데…….’

물론 이강우의 마나 서클은 현재 2개에 불과하다. 자질이 있어도 마나 서클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면 의미는 없다. 그저 낮은 등급의 던전에서 대마도사 놀이를 할 뿐.

하지만 만약 이강우의 마나 서클이 더 늘어난다면?

‘채유리의 성장 속도를 가늠하면, 이강우 역시 급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니 문제라고 하기도 뭐하지.’

이 순간 하선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제 그가 참석했던 4등급 모래시계문 토론회였다.

4등급 모래시계문은 클로즈 할 수 있는 실력자가 극히 제한적이다. 또한 클로즈를 하려고 해도, 리스크가 크다. 실패할 경우 5서클 이상의 마법사 다수와 수십 개의 마법 아티팩트를 잃으니까.

때문에 토론회를 가진다. 토론회를 통해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마법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근거로 클로즈를 시도할지 아니면 그냥 모래시계문을 파괴할지 결정을 내린다.

그와는 별도로 4등급 모래시계문이 등장할 경우 클로즈 신청자를 받는다. 일단 신청자가 누구인지 마법청 입장에서는 파악해야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니까.

하선우는 거기에 신청서를 냈다.

‘대한민국에서 4등급 유적 사냥 기회는 이번이 거의 1년 만이지.’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 찾아다녔다. 4등급 유적에서 충분히 제 몸 정도는 챙길 수 있는 도축 기술자를 말이다.

후보는 많았다.

그런데 지금 그 후보 중에 지금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당선 확정이라고 해도 될 법한 이가 등장했다.

하선우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이제 남은 건 안 선배 손에서 이강우를 어떻게 빼 오느냐, 그 건데…….’

하선우는 애초에 이강우를 자기 손에 넣을 속셈으로, 그가 안중현 밑에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이제까지 안중현의 계획을 눈감아주는 건 물론 물밑에서 지원도 해줬다.

안중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다. 그를 속였고, 이제 뒤통수를 칠 준비마저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숙원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처럼, 하선우 역시 같은 행동을 할 뿐이다. 욕먹을 각오는 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하선우가 그렇게 검은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 * *

“정글, 오키나와, 한국, 제주도.”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손에 쥔 채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던 이강우는 최근 자신의 일정을 떠올리며 입꼬리 한쪽을 올렸다.

‘예전에는 비행기 한번 타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뭐 부산 갈 때도 비행기를 타게 생겼네.’

9월 15일.

일반인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날이지만, 이강우에게 있어서는 D-15로 기록되는 날이었다.

그렇다.

이제 보름 후면 안중현과 함께 6등급 유적 사냥에 나선다. 그 유적 사냥을 위해 제주도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보다 문 관리센터라니…… 2년 전만 하더라도 그곳을 이런 식으로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사람 인생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이군.’

목적지는 다름 아닌 제주도에 자리 잡은 모래시계문 관리센터다.

모래시계문 관리센터.

마법청 휘하 시설인 그곳은 이름 그대로 모래시계문을 관리한다. 정확히는 7등급 이상의 모래시계문을 관리한다. 대한민국 영토에서 나오는 모래시계문은 법적으로 전부 한국 정부의 소유고, 그 문을 관리하는 기구가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단순히 문만 관리하는 곳은 아니다.

7등급 모래시계문의 경우에는 길드가 유적 사냥 계획서를 제출하면 길드에 제공해준다.

단, 6등급 이상의 모래시계문은 문 관리센터에 한번 들어오면 클로즈 되기 전까지는 절대 반출되지 않는다. 즉, 6등급 이상의 유적 사냥을 위해선 제주 문 관리센터에 가야 한다. 동시에 제주 문 관리센터는 제주해군기지 내부에 위치해 있다.

‘소문에 따르면, 가져갈 수만 있으면 전차도 대여해준다고 했지?’

당연히 6등급 유적 사냥에는 단순히 소총이나 지뢰, 수류탄이나 적당한 수준의 폭약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저 지원만 잘해주려고 만들어진 기구는 아니다. 본질은 길드가 6등급 이상의 유적 사냥을 마치고 가지고 나오는 것들을 빼돌리는 걸 막는 거다. 모래시계문 클로즈를 마치고, 출문을 통해 나오는 순간 곧바로 MRI 검사를 비롯한 모든 검사를 받는다. 해부만 당하지 않을 뿐, 본인도 모르는 질병까지 찾아낸다.

당연히 아티팩트를 숨긴다거나, 습득한 마나스톤 개수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어쨌거나 크루 소속 총꾼들에게는 머나먼 세계의 이야기다. 크루 소속 총꾼들의 경우에는 7등급 유적은 그나마 발이라도 담글 기회가 아주 드물게 생기지만, 6등급 유적은 그냥 기회 자체가 없다. 가고 싶어 하는 경우도 얼마 없다. 6등급 유적이 뭐가 좋다고 들어가겠는가?

지금 이강우 심정도 그랬다.

‘클로즈에 성공하면 대박, 운 좋으면 어마어마한 마력 섭취도 가능하겠지만…… 재수 없으면 전멸.’

싱숭생숭.

보다 많은 마력을 섭취할 수 있는 기회이지만, 그만큼 위기도 커졌다.

동시에 이강우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요소는 하나 더 있었다.

‘그보다 결국 답은 안 줬네.’

안중현.

그는 이강우가 가진 재능에 대해서 확답을 주지 않았다. 테스트를 하루 더 한 뒤에, 안중현은 이강우에게 역할만 줬다. 이강우는 유적에서 버프 마법을 써주고, 유사시 전투에서 마법을 쓰는 서포트 역할을 맡게 됐으며, 그와 관련된 마법 훈련만 받았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거기서 제가 정말 천재입니까? 라고 질문할 정도로 이강우는 정신 나간 놈이 아니었다.

그 상태로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꿍꿍이가 뭔지 알아야 나도 대응을 할 텐데.’

안중현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 리는 만무.

이강우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뿐이지.’

한숨을 내뱉으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래 나름 쓸만한 조커는 한 장 확보했으니까, 날 믿어야지.’

실버북에서 나온 마법, 버닝 마나.

그게 이강우가 믿는 조커였다.

* * *

비즈니스석에 탑승한 이강우는 스마트폰의 모드를 비행기 모드로 바꾼 후에 주머니 안에 넣었다. 동시에 작은 손거울 하나를 꺼냈다. 요즘 화장하는 남자가 늘어난다지만,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강우는 주변 시선은 개의치 않은 채 작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자신의 머리 위가 거울에 비치도록 거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윽고 머리 위에 반짝이는 고리 두 개가 보였다. 이강우의 입가에 미소가 깊게 그어졌다.

‘이것만 봐도 배가 부르군.’

2서클 마법사.

심지어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가 거울 속에 있었다.

‘포인트도 2만 포인트 넘게 남았고.’

기분 좋은 소식은 더 있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유적 연구소에서 5만 포인트가 넘는 마력을 섭취했다. 사용 가능한 섭취 마력 포인트는 6만 포인트에 근접했고, 이강우는 3만 포인트를 소모해 실버북 하나를 구매했다.

사실 실버북에서 얻는 마법이 당장 자신의 전력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은 없었다. 그저 궁금했다. 과연 실버북에서는 어떤 종류의 마법이 나올지, 그걸 알고 싶었다.

그렇게 구매한 실버북에서 나온 마법은 1서클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강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대박도 얻었고.’

이강우는 거울 속을 터치했다. 그리고는 마법 목록에서 새롭게 생성된 여섯 번째 마법을 바라봤다.

‘버닝 마나.’

[버닝 마나]

-1서클 마법.

-사용자의 마나를 태워 일시적으로 마법 능력을 강화합니다.

도핑 마법.

이번에 이강우가 얻은 마법의 특징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자신의 마력을 가솔린처럼 태워서 마법 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한다.

‘지금 내게는 최고의 마법이지.’

당연히 이강우는 이 마법을 보는 순간 이 마법의 가치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곧바로 실험도 했다.

버닝 마나를 사용할 경우 이강우의 마법 능력은 향상했고, 그 수준은 이강우가 가진 유일한 3서클 마법인 라이트닝 다트를 세 번 연달아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능력 강화 효과가 엄청났다.

물론 조건과 페널티도 있었다.

일단 지속시간은 5분에 불과했다. 5분 동안 마법을 쓰지 않아도 페널티는 적용되고, 5분 동안 주어진 마력을 전부 쓰면 당연히 곧바로 페널티가 시작된다.

페널티는 딜레이 상태였다. 일정 시간 동안 마법을 전혀 쓰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2서클 마법사인 이강우의 경우에는 버닝 마나를 통한 페널티 시간은 2시간 11분이었다.

여기까지가 이강우가 알아낸 정보다.

‘이제까지 얻은 마법이 노멀 등급이라면, 이건 레어 등급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니, 그 이상.’

메리트와 리스크, 페널티를 저울질했을 경우 버닝 마나는 정말 메리트가 압도적인 마법이다.

더군다나 이강우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 마법이 지금 당장이 아닌 먼 미래에 더 가치를 발휘하리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이야 3서클 마법을 쓰니 마니 하지만 이강우가 4서클 혹은 5서클 마법사가 됐을 때 버닝 마나의 가치는?

‘그래, 나도 필살기 하나쯤은 있어야지. 마력 부여로 총 몇 번 쓰고 기절하는 건 필살기가 아니지.’

그냥 단순히 강력하기만 한 패를 가지고 조커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순간적이지만, 확실하게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카드가 조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닝 마나는 정말 가장 조커다운 마법이었다. 버닝 마나의 등장으로 이강우가 마법사로 할 수 있는 가짓수가 대폭 늘어났다.

‘카드는 점차 알차게 구성되고 있는데…….’

물론 이렇게 되면 아쉬워지는 건 하나다.

‘결국 돌고 돌면 마나 서클이 문제란 말이야. 아, 멜트 드래곤 같은 거 한 마리 해치우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데.’

그 순간, 멜트 드래곤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던 이강우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야?’

갑작스러운 반응이다.

이강우를 그렇게 반응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니라 냄새였다.

킁킁!

이강우가 코를 들썩였다. 그러자 이강우가 좀 더 자세히 자신을 자극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무슨 냄새야?’

냄새가 난다. 불쾌하거나 유쾌한 냄새는 아니었다. 향수 냄새나, 사람 몸의 체향, 음식 냄새같이 일반적으로 맡을 수 있는 종류의 냄새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냄새를 맡는 순간 이강우의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이강우가 놀란 이유였다.

이강우가 곧바로 냄새의 근원지를 눈으로 좇았다. 눈이 멈춘 곳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듬직한 체격, 붉게 염색한 머리, 딱 봐도 명품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선글라스.

이강우는 그 사내를 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킁킁.

고개를 갸웃하며 재차 냄새를 맡아봤다. 냄새를 더 들이마시자, 허기가 더 강해졌다.

꼬르륵!

이제는 입이 아니라 배가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강우는 지금 자신이 미친 게 아닌지 의심했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이런 반응이 나오면 당연하다.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지금 이강우는 왠지 본 적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 사내에게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냄새를 맡으면서 군침을 흘리고 허기를 느끼고 있다.

그런 이강우의 시선이 너무 노골적인 탓인지, 적발 사내가 이강우의 시선을 느낀 듯, 이강우를 바라봤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사내의 눈빛을 보긴 힘들었지만…… 연예인이 갑작스러운 팬의 사인 공세에 귀찮은 표정을 짓는 느낌, 사내는 그런 느낌을 온몸으로 풍기고 있습니다.

이내 사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개인적인 업무 때문에 온 거라서, 사인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이강우는 상대가 연예인이라고 생각했다. 연예인이니까, 어디서 한 번 스쳐 지나가듯 본 모양이다.

“아, 죄송합니다.”

이강우가 곧장 사내에게서 시선을 뗐다. 시선을 떼고, 두 눈을 감으면서 이강우는 입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이강우가 이를 꽉 물었다.

‘불사황제, 이 새끼가 내 심장을 찌르면서 내 몸에 이상한 일이 생긴 거 아니야?’

아무래도 이강우의 몸에 무슨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 * *

이강우가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를 반긴 건 그냥 입 다물고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예쁘기 그지없는 인형 같은 아가씨, 채유리였다.

그녀는 이강우를 보자마자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선글라스를 쓴 채 머리를 더 짧게 커트한 이우희가 있었다. 둘 모두 시원스러운 복장으로 누가 봐도 제주도에 관광을 온 관광객 차림이었다.

이강우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

이우희의 대답은 짧았다. 이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나한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모양이군. 뭐, 당연한 건가?’

이강우는 이우희를 이해했다. 사실 이우희 입장에서 이강우는 정말 대하기 힘든 상대다. 단순히 즈믄나래 내에서의 직급으로 보면 마법사와 총꾼이니 이강우가 그녀의 아랫사람인데, 이강우는 일부러 마법사인 걸 감추고 있고 이우희는 그걸 알고 있다.

동시에 이강우는 채유리의 매니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호가호위, 호랑이를 등에 업은 여우는 늑대가 어찌하지 못하는 법이다. 당연히 이우희 입장에서는 이강우를 아랫사람으로 대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윗사람으로 대하는 것도 애매하다.

물론 이우희가 이강우를 향해 무언의 항의, 그 비슷한 행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강우가 유적 연구소에 끌려가 있는 동안 채유리의 시중을 그녀가 전부 들었기 때문이다.

이강우는 그런 이우희를 바라본 이후, 곧바로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채유리에게 건네줬다. 언제나 주머니 곳곳에 초콜릿을 채워 넣는 그는 채유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마법사나 다름없을 것이다. 채유리는 잽싸게 초콜릿을 받았다.

여기에 하나 더.

“이러지 말고 기껏 제주도 왔는데 공항에서 시간 보내지 말고 가는 길에 식사나 합시다. 흑돼지 어때요?”

이강우는 채유리의 마음에 쏙 드는 말만 했다.

“좋아.”

이러니 이강우가 채유리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거다.

무표정했던 채유리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이우희는 그걸 보며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마 채유리의 칭얼거림을 대신 소화해줄 이강우의 등장이 고맙긴 한 모양.

“제가 운전하죠.”

그렇게 안중현 파티의 마법사들이 모였다.

* * *

“67만 5천 원 나왔습니다.”

계산금액을 알려주는 아르바이트생은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나올 수 없는 금액이 나온 탓이었다.

그러나 계산금액을 통보받은 이강우는 딱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카드를 내밀었다.

“일시불로 해주세요. 아.”

그때 이강우가 뭔가 떠오른 듯 카드를 다시 자기 앞으로 가져오더니.

“깜빡할 뻔했네. 사장님!”

이강우가 사장님을 부르자, 가게 주인이 잽싸게 이강우 앞에 왔다. 가게 주인은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 불가한 이강우 일행을 이미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강우가 부르자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잘 먹었습니다. 너무 잘 먹어서 그런데, 혹시 목살하고 오겹살 고기만 따로 포장 가능할까요?”

“물론 됩니다. 어느 정도로…….”

“10근씩 주세요.”

“예?”

“이렇게 넉넉히 사는데 특수부위 좀…… 장사하시는 분이니까 잘 넣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자, 그럼 그거 포함해서 계산 부탁드립니다.”

말과 함께 사장은 속칭 포스기라 불리는 계산 장치의 계산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아니, 3명이 와서 60만 원어치를 먹다니……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먹긴 먹은 건가? 남긴 건 없는데? 마법도 아니고…….’

손님 3명이 왔다. 한 명은 외국인으로 보였지만 제주도는 나름 국제적 관광지 아닌가?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세 명이 먹은 고기가…… 어마어마했다. 나름 가격이 있는 고깃집이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3명은 10명이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양을 먹어 치웠다.

‘10근? 총 20근을 또 사?’

심지어 여기에 추가 주문까지. 고기가 맛있다고 한두 근 정도 고기를 추가 주문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10근씩 주문하는 경우는 또 처음이다.

어쨌거나 계산을 마치니,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액수가 나왔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나름 그럴싸한 와인을 걸친 풀코스 요리를 3명이 제대로 먹으면 나올 법한 액수지, 제주도 흑돼지를 먹고 나올 만한 액수는 아니었다.

반면 이강우는 간만에 남이 해준 음식으로 든든해진 배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 고기도 별미지만,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법인카드로 먹는 고기네. 아주 꿀맛이야, 꿀맛.’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고기도 풍족하게 산 후에야 목적지인 제주 모래시계문 관리센터로 향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배가 든든해진 채유리는 정말 순한 양처럼 행동했고, 이우희는 조용히 운전대만 잡았고, 이강우 역시 괜히 분위기 쇄신을 한답시고 썰렁한 개그를 지껄일 만큼 멍청하고 눈치 없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하지만 모두가 만족한 채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며 목적지를 향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문 관리센터와 거리가 좁혀지자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발점은 도로 가장자리에 총을 든 군인들에게 검문검색을 받는 순간이었다. 검문검색은 한두 번이 아니라 거듭 반복됐다. 이강우 일행이 문 관리센터에 도달하기까지 거친 검문검색은 다섯 번이었다. 검색이 반복될 때마다 이강우의 경각심도 커졌다.

그리고 문 관리센터에 도착했을 때, 삼엄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깨끗하고 정갈함을 자랑하는 큼지막한 건축물이 이강우 일행을 반겼다. 그 건물을 보는 순간 이강우는 감탄사보다는 위압감을 느꼈다.

‘여기가 대한민국 유적 사냥의 심장이구나.’

* * *

이강우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건 안중현이 아니라 하선우였다.

안중현이 일이 생겨 자리를 비우는 동안, 그의 부탁으로 하선우가 문 관리센터를 소개해주기로 한 것이다.

문 관리센터에 대해서 사실상 이우희나 이강우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으니까. 문 관리센터에 마법사나 총꾼, 길드 관계자가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경우는 6등급 이상의 유적 사냥에 나설 때 정도뿐인데 이우희나 이강우와는 먼 이야기 아닌가?

채유리야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방문할 목적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녀가 그 정도로 목적성이 확실한 인물이었다면 이제까지 그녀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반면 문 관리센터의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하선우는 문 관리센터 직원들만큼 잘 알고 있었다.

“여긴 대한민국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무기 지원만 말하는 게 아니라, 법무부, 국세청, 특허청에 금융위, 금감원. 심지어 병무청 관계자도 항시 상주하고 있어서 예비군 관련 업무도 처리 가능하죠.”

문 관리센터.

대한민국 유적 사냥의 핵심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는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역량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여기선 허튼수작을 부리면 저렇게 됩니다.”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건물 내 곳곳에 설치된 표어 문구를 가리켰다.

[No warning 無警告].

경고는 없다.

쉽게 말해서 소란을 피우면 손들어! 같은 말 대신 그냥 빵야빵야 하겠다는 의미다.

‘그래야지.’

그리고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였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모래시계문 입장을 앞두고 무장을 마친 유적 사냥 파티가 그 자리에서 난동을 부린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런 무장 군인보다 무시무시한 마법사가, 심지어 3서클 이하의 그저 그런 마법사가 아닌 5서클 이상의 마법사도 방문하는 이곳에서 마법사가 수작을 부리는 걸 그냥 보고만 있다가 사고가 터지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결정적으로 이곳에서 보관 중인 건 모래시계문만이 아니다. 6등급 이상의 유적에서 가지고 온 마법 아티팩트, 마나스톤을 비롯한 몬스터와 관련된 무수히 가치 있는 것들이 보관 중이다.

보물에는 언제나 보물을 탐내는 하이에나가 모이는 법. 문제가 터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까 꼭 지정된 지역 내에서만 행동하세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바바리코트 같은 거 입고 다니지 마세요. 왜 이런 경고를 하냐면, 예전에 누가 바바리코트는 자기 아이덴티티라고 하면서 입고 다니면서 행패를 부린 경우가 있거든요. 심지어 바바리코트 안에 몬스터도 잡을 수 있는 극독을 가지고 다녔는데…… 마법사도 능력 이전에 인성 검사를 해야 한다니까요.”

뒤쪽으로 갈수록 하선우의 말은 설명이라기보다는 푸념의 느낌이 강했다.

본인도 그 사실을 인지했는지 하선우가 말을 멈추고 대화 주제를 바꿨다.

“물론 이런 것보다는 결국 궁금한 건 두 가지겠죠. 모래시계문을 먼저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무기고를 먼저 보시겠습니까?”

하선우의 물음에 이강우가 이우희와 채유리를 바라봤다. 채유리는 이 대화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10미터 앞에 위치한 자판기에만 꽂혀 있었다.

이우희는 이강우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우가 원하는 걸 고르라는 의미.

결정권이 이강우에게 넘어왔다.

이강우는 곧장 대답했다.

“여기 마트는 없습니까? 마트부터 가고 싶은데.”

* * *

“어마어마하네.”

제주 문 관리센터는 많은 이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동시에 상주한다. 보안 유지를 위해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다.

더군다나 머무는 이들은 나름 각 조직에서 엘리트 대우를 받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상주해야 하는 곳에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면, 그들이 여기 와서 일을 할 리가 없다.

이런 이유로 제주 문 관리센터에는 크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건…… 심지어 백화점에서나 취급할 법한 수입제품과 일반인들이 그냥 마시기에는 가격대가 부담스러운 와인까지 판매하는 마트가 있었다.

쇼핑카트를 밀며 마트의 곳곳, 마트를 채우고 있는 상품들을 보며 이강우는 여러모로 감탄했다.

‘사는 세계가 다른 느낌이야.’

올해 초만 하더라도 이강우의 처지는 밑바닥이었다. 이런 멋진 장소에서, 솔직히 대형 할인마트에서 파는 상품에 비하면 비싸다고 할 수밖에 없는 물건을 살만한 여유는 없었다. 밥 먹을 돈조차 마땅치 않아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 좋아하는 초콜릿도 살 때마다 돈 걱정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돈 때문에 시궁창이라 생각했던 세상 밑바닥에 몸을 담갔다.

그런데 이제는 돈 걱정 없이, 가격이 어떻건 간에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쇼핑카트에 담을 수 있는 처지가 됐다.

상전벽해.

‘내 인생사 대단하다.’

그렇게 이강우가 쇼핑카트 하나를 밀면서 여러 감정에 취해 사색이 빠질 때, 채유리는 다른 쇼핑카트를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그녀는 최단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양의 과자를 쇼핑카트 안에 채워 넣는 걸 역사적 임무로 생각한 듯 움직였다. 마트 곳곳을 파고들며 먹을 걸 가져오는 그녀의 모습은 산을 뛰어다니며 열심히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와 비슷했다.

한편 사색에 잠긴 이강우 뒤에는 이우희와 하선우가 나란히 걸으면서 동창답게 서로 마음 편히 말을 놓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넌 여기 왜 온 거야?”

“업무 때문에 왔지.”

“업무? 길드?”

“그럼 설마 연예계 일을 여기서 할까?”

“유적 사냥? 몇 등급? 5등급? 설마 4등급?”

“글쎄, 아무리 너라도 보안이 중요한 유적 사냥을 내 멋대로 알려줄 순 없잖아? 그보다 최근까지 공주님 시중을 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때? 할 만했어?”

채유리의 언급에 이우희가 채유리의 낌새를 한 번 살폈다. 채유리는 과자를 가지러 다른 곳으로 휙 사라지고 없었다. 그걸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짧은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스트레스받는 게 가장 짜증 났어. 갑자기 사라져서 본부에 긴급연락을 취하고 찾으러 다니는데,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사 오는 걸 보면…… 뭔가 잘못된 건 없는데 괜히 나만 열 내고 속앓이를 하는 느낌.”

그 말에 이미 채유리를 관리해본 적이 있는 하선우는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공주님을 관리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지.”

채유리는 괴짜다. 그녀는 적어도 사회 구성원에 어울릴 만한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에 아주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정도로 무시무시한 폭탄은 아니다. 정말 그랬다면, 그는 얼마든지 세상을 혼돈에 빠뜨리고, 파괴할 수 있다.

당장 그녀가 여의도로 가서 국회의사당이든, 방송국 건물이든 아니면 그냥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든, 타깃 하나를 잡고 청뢰 마법을 쓰면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힐 테니까.

그런데도 그녀는 정말 어마어마한 폭탄 취급을 받고 있다. 채유리 입장에서는 주변의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진 않을 것이다. 들 리가 없다. 자신을 무슨 괴물 보듯 보고 취급하는데 마음에 든다면 채유리가 정말 이상한 인간이란 의미다.

그런 그 둘의 대화를 듣던 이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채유리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응?’

그런 이강우의 눈에 재미난 놈이 쏙 들어왔다. 쇼핑카트를 밀던 이강우가 통조림이 가득 찬 선반 앞에 섰다. 이강우가 곧바로 통조림 하나를 집었다.

“그건 뭐죠?”

이우희가 질문을 했고, 이강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수르스트뢰밍이라고,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수르스트뢰밍.

“냄새가 최악이라는 생선 말인가요?”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아는 청어 통조림으로 세계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예, 무기로 쓸 수 있는 놈이죠. 원래 이건 비행기 운반이 안 되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거의 안 파는데…… 설마 이런 마트에서 이런 놈을 구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서는 접하는 게 쉽지 않다. 일단 비행편으로 운송이 불가능하다. 폭발 위험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배를 이용해 운송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이걸 사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개인이 이걸 가지고 오려고 멀리 해외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는 일도 없다.

때문에 이강우도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먹으려고요?”

이우희의 이어진 질문에 이강우는 끄응, 신음을 흘렸다.

‘미치지 않은 이상 이걸 먹고 싶을 리가 있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강우는 굳이 이런 악독하기 그지없는 음식을 위장에 넣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이런 게 있다는 게 신기해서 손을 댔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앞으로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순 없지만.’

제이드 플라워를 먹으면서, 이강우는 자신의 현실을 깨달았다.

유적에는 맛있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최고의 별미도 있지만, 최악의 맛도 있다.

보통 이들은 기호에 따라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이강우는 최악의 맛이라도 마력이 있다면 먹어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서 음식을 가리지 않는 착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마트에 들린 것도 그런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맛있게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 먹는 걸 먹게 만드는 기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쉽게 말하면 지금 이강우가 집어 든 수르스트뢰밍 같은 걸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조미료 따위가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수르스트뢰밍은 괜찮은 시험재료가 될 것이다.

‘이걸로 한번 요리해봐?’

남은 시간은 보름. 요리 연구할 시간은 충분하다. 이강우가 수르스트뢰밍 전부를, 그래 봐야 5캔 밖에 없지만 그 전부를 쇼핑카트에 집어넣었다.

그때.

“어, 잠깐! 잠깐!”

누군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큰 소리와 함께 헐레벌떡 달려오기 시작했다.

곧장 이강우 앞에 다가온 사내는 말했다.

“거기 그거 수르스트뢰밍 말입…….”

붉은 머리칼,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이마에 걸친 채 초롱초롱하고 큼지막한 눈망울을 가진 사내는 말을 하려다 이강우 뒤에 있는 하선우를 보면서 말을 멈췄다. 표정을 구겼다. 하선우도 표정을 구겼다.

이 순간 모든 이들이 약속한 것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 새끼가 왜 여기에?’

김재범과 하선우는 서로를 보며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행동을 했고.

‘독술사가 왜 여기에?’

김재범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우희는 그의 등장 자체에 놀랐으며.

‘뭐여?’

이강우는 거듭된 이 우연의 현장에 놀랐다. 모두가 문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이강우였다.

“할 말씀이라도?”

이강우의 말에 김재범이 곧장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그게 지금 구매하신 제품이 사실 제가 여기 마트에 구매 요청을 해서 들여온 제품인데, 그러니까…….”

당황해서 그런지 말이 꼬였다.

그 모습을 보던 하선우가 실소를 머금었다. 언제나 강한 모습, 과감한 모습을, 허세라고 해도 될 법한 모습을 보여 왔던 김재범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하선우의 실소에 김재범이 발끈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거지?”

“어제 읽은 책 구절이 떠올라서 웃었습니다.”

“여기 있는 걸 보면 네놈도 신청서를 냈었군. 신청서를 낸 주제에 토론회에서 그런 소리를 지껄인 건가? 이대로는 전부 들어가 봤자 절반은 죽을 테니 꿈도 꾸지 말라고?”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갑자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독술사와 바람잡이, 앙숙 둘이 붙었으니 일어나는 마땅한 화학 작용이었다.

‘아, 안 돼!’

이 둘 사이를 알고 있는 이우희는 식겁했다. 하선우는 성격이 유순하고, 얌전한, 그야말로 신사다. 하지만 그런 그가 유독 평상심을 잃는 상대가 바로 김재범이다.

그리고 김재범은 만인이 인정하는 거친 사나이다. 세간에서는 김재범이 다루는 독 중에 가장 강한 독은 김재범이란 인간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떻게 하지?’

이우희가 긴장했고, 영문은 모르지만 낌새를 느낀 이강우도 긴장을 했다.

그런 넷 사이의 긴장감을 삽시간에 뭉갠 건.

“저리 비켜.”

과자를 한 아름 품에 안은 채 김재범의 등 뒤에서 등장한 채유리였다. 그녀의 등장에 김재범은 화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가 채유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을 바꿨다.

‘채유리? 왜?’

채유리는 여러모로 상대하기 힘들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5서클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차원이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재능이 전부인 바닥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쉽게 말해서 김재범은 하선우를 때려잡을 자신은 있어도 채유리를 상대할 자신은 없었을뿐더러, 채유리는 여차하면 김재범을 죽일 기세로 덤벼들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의 등장에 김재범이 자리를 살짝 옆으로, 채유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줬다. 그 순간 그와 하선우가 나누던 긴장감은 소멸했다. 원래 팽팽했던 끈은 한번 놓이면 아무리 어떻게 해도 처음 당겼을 때만큼 팽팽해지지 않는 법이다.

결국 김재범이 상황의 여의치 않음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린 채 자리를 피했다.

자리를 피하면서.

“다 먹지 마십시오!”

이강우를 향해 짧게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이강우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군침이다.

‘거참…… 내 침샘에 누가 저주라도 걸었나? 왜 저 인간만 보면 군침이 돌지?’

아무래도 김재범, 그와의 인연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 * *

마트에서 장을 본 뒤 하선우는 이제부터 안중현 파티가 머물게 될 숙소로 그들을 안내해줬다. 숙소에 들어온 네 명은 과할 정도로 많은 양의 안주를 앞에 두고 맥주를 한 캔씩 땄다.

“이제 한숨 돌리네요.”

“안 선배는 내일모레 올 테니까, 내일은 늦잠 자도 됩니다. 그러니 제대로 마셔봅시다.”

공항에서부터 문 관리센터까지 그리고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휴식 없이 보낸 시간이 제법 길었고, 이미 해가 꺼진 상황에서 맥주 한 잔보다 좋은 피로회복제는 없을 터.

더군다나 이렇게 모인 네 명은 여러모로 서로에게 드러낼 비밀이 적은 관계였다.

“안 선배 훈련은 어땠습니까?”

“군대 시절 떠올라서 아주 기분 좋았습니다. 아주.”

“안 선배가 원래 한때는 마법청에서 교관이었습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마법사들이 말을 안 들어서 때려쳤죠.”

일단 이강우가 마법사란 걸 다 알고 있다. 채유리는 모르지만, 그녀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강우가 마법사란 사실 자체에 별 관심이 없을 터. 마법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강우 본인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자리였다.

이강우는 이 자리를 빌려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총꾼은 절대 알 수 없는 마법사의 세계에 대한 것부터,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까지. 추가적으로 평상시에는 나누기 힘든 민감한 질문까지.

물론 맨입으로, 그냥 땅콩이나 까먹으면서 원하는 바를 이룰 생각은 없었다. 이강우는 소시지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냈다. 고추장을 넣은 매콤한 볶음과 케첩과 양파를 넣어 만든 새콤달콤한 볶음 그리고 결정타는 반은 삶고, 반은 팬에 구운 클래식한 소시지까지.

“정말 요리를 잘하시는군요.”

요리를 본 하선우는 진심으로 감탄했고, 이우희와 채유리는 감탄사보다 일단 포크로 찍어 먹었다.

“다음에 유적에 들어가면 몬스터 창자로 소시지 한번 만들어볼까, 합니다.”

“꼭 한번 같이 유적 사냥을 해보고 싶군요.”

“저야 영광이죠.”

이강우가 만든 소시지 요리는 완벽했다. 매운 소시지 요리는 시원한 맥주를 불렀고, 새콤달콤한 소시지 야채 볶음도 맥주를 불렀다. 절묘하게 삶아지며 이빨을 기분 좋게 튕겨내는 소시지와 구워서 풍미가 진해진 소시지는 두말할 것도 없는 맥주 사냥꾼이었다.

이 요리를 앞에 두고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게 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누가 봐도 술은커녕 평생 물 대신 홍차만 마셨을 것 같던 채유리마저 꿀꺽꿀꺽 맥주를 들이부었다.

아무리 맥주라고 해도 많이 마시면 취기가 도는 법. 이우희도, 하선우도 마신 맥주 캔의 숫자가 서너 개를 넘기기 시작했고, 그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풀린 게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야 이강우는 진짜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예전부터 궁금한 건데, 마법사는 마법 아티팩트가 있어야 마법을 쓸 수 있는 겁니까?”

이강우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이강우, 본인은 마법 아티팩트가 없어도 마법을 쓸 수 있다. 불사황제의 권능 덕분이지만, 어쨌거나 마법이란 건 마법 아티팩트 없이도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의미.

또한 마법 아티팩트는 제약이 너무 많다. 구하기도 힘들고, 잃어버리면 이보다 난감한 일도 없으며, 파손의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어디에서도 쉽게 할 수 없었다. 특히 마법사에게 총꾼 자격으로 이런 질문은 감히 할 수가 없었다.

이강우의 그 질문에 하선우가 대답을 해줬다.

“인간이 그저 주는 밥만으로 만족하는 동물이라면 우리는 여기와 소시지와 맥주가 아니라, 사냥해서 얻은 덜 익은 고기를 씹고 있었겠죠.”

약간 취기가 오른 탓인가?

대답은 술술 나왔지만, 직설적이기보다는 은유적이었다.

“가능한 겁니까?”

“사실 이 주제는 대놓고 할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특히 유적 연구소나 그쪽 계통 사람에게 물어보면 안색을 굳히고 모른다, 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럼…….”

“반대로 어차피 비밀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뻔한 이야기니까 해드리죠. 전 세계 국가들은 국가적 사활을 걸고 모래시계문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그중에서도 결과만 나온다면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연구가 크게 세 가지 있습니다.”

세 가지.

‘3대 프로젝트가 이건가?’

권재용에게 들었던 그 프로젝트들을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그중 하나가 이강우 씨가 물어본 것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겁니다. 일명 프리 프로젝트, 속칭 프리젝트라고 불리는 연구죠. 마법 아티팩트 없이 마법을 쓰는 것, 유전자 구조를 분석하듯 마법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죠. 모든 국가가 비밀리에 진행하지만, 일반 사람들도 당연히 생각할 법한 일이죠.”

“그래서 결과가 나왔습니까?”

결과.

그 말에 하선우는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그는 술을 마시면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숨기는 타입인 모양이다.

그때 이우희가 하선우에게 질문했다.

“여기 왜 온 거야?”

이우희, 그녀 역시 술기운이 차오른 틈을 타 하선우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잽싸게 나온 그녀의 질문에 이강우는 다음 질문을, 맥주 한 모금과 함께 꿀꺽 삼켰다.

하선우는 이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내일 모래시계문을 보러 가야 하니까, 내일 그 이유를 보여주지.”

하선우의 시선이 곧바로 이강우를 향했다.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혹은 좋은 목표가 될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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