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16화 (16/66)

16화. 마법 훈련

지옥 같은 하루를 겪은 후 기절하듯 잠들었을 때, 이강우는 오랜만에 꿈속에서 불사황제를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무시무시한 얼굴과 어마어마한 기세를 품은 불사황제 야크센.

그러나 이강우는 더 이상 그를 보고 겁에 질리지 않았다. 몸뚱이는 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겁에 질려 굳어버렸지만, 이강우는 불사황제 앞에서 정신만큼은 주눅이 들지 않고자 했다.

이강우는 두 눈을 부릅뜨며 불사황제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봤다.

그 덕분에 이강우는 불사황제의 눈빛이, 그의 기세가 이제까지 봤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노.

언제나 사납기만 하던 불사황제 야크센의 기세는 분노라는 섬뜩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분노는 무시무시했다. 불사황제의 존재감을 더욱 거대하고, 섬뜩하게 만들었고, 이강우는 결국 다시 한번 불사황제 앞에서 주눅이 들어야 했다. 작아져야 했다.

이강우가 슬쩍, 눈을 피했다.

불사황제가 그런 이강우를 향해 말했다.

“나의 오롯한 힘을 얻을 그릇이여, 세상 모든 것을 먹어 치울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그릇이여, 잊지 마라. 세상 모든 걸 먹어라. 종국에 너를 잡아먹으려는 자들마저 먹어 치우는 포식자가 되어라.”

말과 함께 불사황제가 손을 뻗었다.

이강우는 이를 꽉 물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미간을 뚫고 뇌리에 지워지지 않은 각인을 새길 모양이다.

그러나 불사황제의 손가락은 이강우의 미간이 아닌 명치를 향했다. 명치를 뚫고, 심장에 닿았다. 심장에서 뜨거운 피가 아닌 꽁꽁 얼어붙은 피가 전신으로 펌프질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영혼이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 또렷한 정신 사이로.

“네놈은 불사황제의 그릇이다. 그것을 명심하라. 너는 세상 모든 것을 먹어 치울 수 있는 포식자다. 먹어라. 모든 것을 먹어라. 바츠무, 놈들마저 먹어 치워라.”

불사황제의 말이 깊게 스며들었다.

* * *

“헉.”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이강우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로 달려가자마자 변기에 얼굴을 박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북한 느낌,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을 토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헛구역질을 해도 이강우의 속은 아무것도 토해내지 않았다.

고통만이 차올랐고, 이강우는 구역질을 포기한 채 변기에 걸터앉았다. 지독한 피곤함, 그런데도 결코 잠들 수 없는 처지, 지독한 불면증 환자의 심정이 된 이강우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한 자신의 두 눈덩이 위에 손을 올렸다. 눈을 마사지했다. 마사지를 하다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명치 부근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빌어먹을 새끼, 왜 마지막에 꼭 그런 지랄을 하는 거지?’

얼어붙은 피가 전신으로 퍼지는 느낌.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이 차갑게 식는 느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평생 잊을 수도 없는 느낌.

지독한 악몽이다. 평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트라우마다. 동시에 불사황제는 그 트라우마와 함께 말을 남겼다. 그가 남긴 말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강우의 고민이 시작됐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불사황제.

이강우의 범주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그 무지막지한 존재가 분노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했다.

‘나를 잡아먹으러 온다?’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그건 여러 번 들었으니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불사황제가 경고를 했다는 점이다. 불사황제는 이강우를 잡아먹으러 오는 것들마저 먹어 치우라고 했다.

‘나를 먹어? 몬스터를 말하는 건가?’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면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이강우가 유적 사냥꾼의 길을 걷는 이상, 그는 언제나 먹힐 걱정을 해야 하니까. 유적 안에 그를 먹고 싶어 안달이 난 몬스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바츠무는 또 뭐야? 예전에도 한 번 그 이름을 언급했던 것 같은데?’

그러나 고작 그런 몬스터를 가지고 경고를 하기엔 불사황제의 존재는 너무 강렬하다.

사람보고 닭에게 잡아먹힐 걸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사람은 없다. 분노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미치겠군.’

의문은 언제나 있었다.

불사황제는 왜 이강우, 그에게 그런 권능을 주었으며,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강우가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의문이다. 단지 당장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답이 없어 고민을 뒤로 미뤘을 뿐인데…… 불사황제가 다시 한번 이강우를 뒤흔들었다.

이강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애매모호한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마음 같아서는 불사황제가 진실을 확실하게 토해냈으면 한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불사황제는 이강우가 가늠하거나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이강우는 그저 그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을 뿐이다.

‘그래, 몬스터가 됐건 다른 어떤 대단한 존재가 됐건 아니면 불사황제가 됐건 누군가는 나를 먹어 치우려고 하겠지.’

분명한 건 푸념을 뱉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다.

‘어차피 사지 곱게 땅에 묻힐 생각은 없었어. 장기는 기증하고 유골을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을 각오는 했다. 그러니까 날 죽여서 찜을 해서 먹든, 구이를 해서 먹든 회를 떠서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그 순간 이강우가 변기에서 일어나 거울을 바라봤다.

‘대신에 얌전하게 뒈져 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마라. 날 먹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이강우가 [도서관] 항목을 터치했다.

* * *

이강우는 제이드 플라워 덕분에 비유가 아니라 정말 피똥을 싸는 고생을 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오키나와 미군기지 유적 연구소에서의 나날들은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일단 마력 섭취 기회가 굉장히 많았다. 매일매일 몬스터를 비롯해 유적에서 채집된 연구 샘플들이 들어왔고, 개중 대부분은 연구를 마치면 폐기처분에 들어갔다. 폐기물 저장소에 들어갈 기회를 다시 잡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전에 연구소 직원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마력을 가지고 있는 먹음직한 것들을 도중에 챙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를 통해 어느 정도 짭짤한 마력을 섭취하자, 이강우는 본격적으로 판을 벌였다.

이강우가 본격적으로 몬스터 요리를 했다. 유적 연구소 내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가, 작심을 하고 몬스터 요리를 만들었다. 몬스터 요리 열풍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몬스터를 먹는 열풍이 일어나면, 폐기물 저장소로 가야 할 것들이 이강우 앞에 올 테니까. 타인에게 몬스터 요리를 해주는 게 아깝긴 했지만 어차피 그런 기회가 아니면 먹을 수조차 없는 걸 아쉬워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동시에 몬스터 요리를 하면서, 기예르모 레시피의 요리법을 실전에서 사용해봤다.

요리법이란 게 상황에 따라서, 요리법을 쓰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뀌는 법이다. 완성된 요리조차 사람 기호에 따라서 소금을 더 넣거나, 덜 넣는 게 요리란 놈 아닌가?

결정적으로 이강우는 기예르모 레시피를 마냥 신뢰할 수가 없었다. 제이드 플라워 같은 걸 마령화와 비슷하다고 대충 표현하는 인간의 레시피를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이강우의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차라리 모든 걸 포기하고 유적 연구소와 제휴를 통해 몬스터 요리 전문점을 차리는 사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마저 할 정도로 결과는 좋았다. 유적 연구소의 연구원들, 군인들, 간부들은 이강우의 요리를 먹기 위해 구매하는 대기표를 돈 받고 거래할 정도였다.

이제 씨는 그만 뿌리고 수확만 하면 되는 상황.

그런데.

“이강우, 아무래도 자네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네.”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나왔다.

“예? 무슨 소리입니까?”

“즈믄나래에서 요청이 왔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네를 본부로 보내주라고.”

“자, 잠깐만요.”

이강우는 기겁했다.

‘아니, 이제야 좀 유적 연구소에서 마력 포인트를 날로 먹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는데…… 뭐? 즈믄나래로 가라고? 가서 할 것도 없는데?’

잠을 줄여가며 몬스터 요리를 연구하고, 몬스터 요리를 만들었다. 돈도 안 받았다. 심지어 좀 더 큰 그림을 위해서, 제대로 뽕을 뽑기 위해 뇌가 터질 기세로 영어공부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길 떠나라고?

“아직 멜트 드래곤 연구는 진행 중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당연히 제가 남아서…….”

“자네가 남으면 나야 좋지만, 즈믄나래에서 자네를 강력하게 요구했네. 그리고 솔직히 자네가 있으면 나쁠 건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네가 멜트 드래곤 연구에 큰 기여를 하긴 힘들지.”

틀린 말은 아니다. 솔직히 요즘은 멜트 드래곤 연구보다는 몬스터 요리를 하는 날이 더 많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건, 결국 멜트 드래곤 연구에 이강우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강우의 능력이 필요한 경우도 많지 않다. 멜트 드래곤의 장기 적출은 끝이 났고, 지금 남은 건 멜트 드래곤의 텅 빈 몸뚱이인데, 적극적인 해체는 없을 것이다. 연구팀은 최대한 멜트 드래곤의 형태를 유지한 상태에서 연구를 하고자 하니까.

때문에 이강우는 고민의 방향을 바꿨다. 즈믄나래가 왜 하필이면 자신을 급하게 요구하는지, 그게 궁금하니까.

‘즈믄나래에서 내가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이런 식으로 강력한 요구를 할 리가 없을 텐데?’

이유는 모르지만, 이강우가 없다고 즈믄나래 길드가 하던 일을 못 하고, 그런 건 아니다. 이강우는 그 정도의 위치가 아니다. 그는 그냥 직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강우를 불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려 블랙 스택이 주도하는 멜트 드래곤 공동 연구에 참가 중인 이강우를 급하게 불렀다.

그렇다는 건?

‘그 정도로 내가 꼭 필요하다는 건가? 설마 채유리가 나 없다고 즈믄나래 길드 마스터를 상대로 투정이라도 부렸나? 공주님 좀 얌전하게 만들라는 이유로 날 부르는 건 아니겠지?’

분명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이강우가 오랜 시간 유적 연구소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는 동안 그를 중심으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그럼 따라야 한다. 지금 이강우가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무엇보다 슬슬 이강우도 본인을 위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언제까지 총꾼이자 몬스터 도축기술자, 채유리 매니저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2서클을 얻기 위해 피똥 싸는 노력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마법사가 되어서, 마법사에 걸맞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다.

‘올해까지만이야. 올해만 지나고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총꾼 이강우가 아니라, 마법사 이강우다.’

* * *

오키나와 미군기지 유적 연구소를 벗어난 후에야 이강우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쓸 수 있었다. 스마트폰에는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건 채유리였다.

채유리는 자신의 칭얼거림을 이강우에게 계속 보냈다. 이강우는 이 모습에 놀라기보다는 소름이 돋았다.

‘생긴 건 귀여운 인형인데, 하는 행동이 처키의 인형에 나오는 처키 수준이야.’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문자는 여동생의 문자였다. 이강우는 침울한 표정으로 여동생의 문자를 읽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어머니는 무탈하게 잘 계시고 있고, 본인도 오빠 덕분에 잘 지내고 있고, 무슨 일은 없는지, 일 있으면 연락하고, 이제 오빠도 장가가면 자리 잡아야 하지 않느냐, 같은 내용들.

슬슬 나이가 차기 시작한 이강우 나이의 사내라면 모두가 듣는 소소한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 소소함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이강우는 소소함을 소소함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었다.

이강우는 한숨을 삼켰다.

‘마법사로 정식 인증만 받으면 돼. 그럼 적어도 지금과는 삶이 달라지겠지.’

그렇게 이강우가 한숨을 삼키며 다른 문자를 확인했다. 그다음 문자는 다름 아니라 스팸 문자였다. 특별할 것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스팸 문자. 그러나 번호는 평범한 번호가 아니었다.

‘1221.’

스팸 문자의 뒷번호.

‘백 노인이 왜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지?’

그 번호는 다름 아니라 백광현이 연락을 줄 때 쓰는 번호였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거야?’

왠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 * *

한국에 도착한 이강우는 곧바로 안중현과 통화를 했다.

-6등급 유적 사냥 일정이 잡혔다. 10월 1일이다.

이강우는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올 일.

“꽤 빠르네요?”

단지 그 일이 빨리 왔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그동안 뭘 했는지는 묻지 않겠다. 하지만 네가 말한 것처럼 빠르다. 때문에 일정이 빠듯하다.

이강우는 옅게 웃었다. 보스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모를 리 없다.

“알겠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괜히 사고 치지 않겠습니다.”

정신 차리고 사냥을 준비하라는 의미다.

흔히 무리의 리더가 중요한 일 앞두고 부하 직원에게 따끔하게 배는 한 마디, 딱 그 정도다.

-네가 열심히 해야 하는 건 혼자 할 수 있는 준비가 아니다.

‘응?’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전부가 아닌 모양이다. 안중현은 딱히 뜸을 들이지 않은 채 곧장 말했다.

-이제부터 마법 훈련을 한다.

안중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듣던 이강우의 표정은 담담할 수가 없었다. 이강우는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채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공항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정식 마법사로 인정받은 건 아니다. 약속한 대로, 그건 나중으로 미루겠다. 하지만 이번 6등급 유적 사냥이 끝나면 내가 직접 널 마법사로 인증토록 해주겠다.

“아, 그렇습니까?”

너무 당황했는지, 대답하는 이강우의 목소리에는 감정은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일단 이번 유적 사냥을 앞두고 마법청 훈련소가 아니라, 내가 직접 네 마법 훈련을 돕도록 하겠다.

이강우는 안중현의 말을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이니까. 안중현 밑에서는 적어도 대놓고 마법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안중현과의 거래 내용이 마법사인 걸 감추는 것 아니었던가?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안중현 입장에서는 마법사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강우란 마법사를 그냥 잉여자원으로 놔두긴 싫을 터. 더군다나 그에게 이번 6등급 유적 사냥은 앞서 진행된 7등급 유적 사냥보다 더 중요하다. 7등급 유적 사냥은 어디까지나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이고, 이번 6등급 유적 사냥은 자격증을 가지고 치르는 첫 실전이다.

메이저리그 입단 테스트를 받는 것과 메이저리그를 뛰는 것, 뭐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비교할 필요가 없다.

“마법 훈련이면…… 마법 아티팩트도 지급 받습니까?”

간신히 상황을 이해한 이강우가 용케 질문을 던졌다.

-정식 지급은 아니지만, 우리 파티가 사용 중인 걸 필요에 따라 네가 쓰게 될 거다.

“그렇군요.”

-마법 훈련은 생각보다 어렵다. 시간이 촉박하니, 최대한 주변이 정리되면, 보낸 주소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고, 이강우는 다시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봤다.

갑작스러운 상황.

그러나 이강운은 단언할 수 있었다.

‘드디어 호기가 오는구나.’

이건 제대로 된 기회라고.

제대로 된 기회가 왔다고.

그러니까…….

‘호랑이 등에 타기 전에 주변부터 깔끔하게 정리해야지.’

안중현의 말대로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깔끔하게. 이강우는 스마트폰을 들고, 스팸 문자가 온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 * *

동네 꼬마들조차 찾지 않을 만큼 허름한 구멍가게의 문을 이강우가 열고 들어갔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안경을 쓴 채 카운터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심히 만지고 있는 백광현의 모습이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이강우는 첫 인사 대신 질문부터 했다.

백광현은 여전히 스마트폰만 바라본 채, 이강우를 향해 시선 한 점 주지 않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짜라시를 보고 있네.”

예상외의 단어에 이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주식이라도 하십니까?”

“꼭 주식 하는 사람만 찌라시를 보라는 법은 없지.”

“그거 믿을 만한 이야기도 아니잖습니까?”

“진실만이 정보는 아닐세. 거짓말이란 건 언제나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드는 법이니까.”

굉장히 심오한 이야기가 시작될 분위기.

그러나 이강우는 그런 심오한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기에 잽싸게 주제를 바꿨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 말고, 제가 관심 가질 만한 특별한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크루 소속 총꾼 다섯 명이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켰다는군. 민간인 피해는 없고 곧바로 제압됐지만 그들을 고용한 마법사가 살해당했어. 물론 찌라시 내용일세. 진위는 모르지.”

백광현이 툭, 던진 말에 이강우가 혀를 내둘렀다. 툭 나온 말치고는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였다.

“크루들이 뒤집어지겠네요. 이러니까 자격도 없는 애들이 총꾼이랍시고 몰래 총 받아가 유적 사냥하는 걸 막아야 한다니까요. 우리나라가 총기 휴대 합법 국가도 아니고, 범죄자들에게 총을 맡기는 격이라니, 이거 원 세상 무서워서 돌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이강우의 말에 백광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강우가 그런 말을 뱉는 건 코미디다. 이강우, 본인이 몇 년 전…… 아니, 올해 초만 하더라도 이강우는 범죄자인 주제에 크루 소속 무허가 총꾼으로 총을 들고 유적 사냥에 나섰다.

그런 그가 지금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본인은 이제 무허가 총꾼이 아니라 번듯한 길드 소속 총꾼이란 걸 자랑하는 거다.

“그보다 요즘 어떤가? 일은 할 만한가?”

“좋습니다. 역시 일류 길드는 총꾼도 대접이 다르더군요. 복지혜택이 어마어마합니다. 더군다나 사원증 목에 걸고 돌아다니면 주변에서 보는 눈이 다르더군요.”

“그동안 문제는 없었나?”

“제 직업상 문제가 있었으면 여기 이렇게 두 다리 멀쩡하게 올 수가 있겠습니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그제야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백광현이 이강우에게 시선을 줬다. 백광현의 눈빛을 본 이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 신상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눈빛이 딱 그런 느낌인데. 그러고 보니 대체 왜 절 부른 겁니까?”

“오히려 내가 반대로 묻고 싶네. 일류 길드에 들어갔으면 딱히 문제 생길 여지가 없을 텐데 왜 다른 집단이 자네의 뒷조사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내 정보망에 걸리는 일이 생기는지.”

이강우의 표정이 굳었다.

백광현, 그가 처음에 문자를 보냈을 때, 스팸을 빙자한 신호를 보냈을 때 불안한 느낌이 들긴 했다. 적어도 백광현이 좋은 이유로 이강우를 부를 가능성은 높지 않을 테니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그래서 문제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백광현을 잽싸게 찾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이강우의 예상보다 좀 더 심각한 모양이다.

“자네 뒤를 캐려는 세력이 있어.”

재차 그 부분을 강조해주는 백광현.

“경찰청이나, 검찰…… 그런 무시무시한 곳은 아니겠죠?”

지금 이강우의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크루 소속 총꾼으로 지냈던 경력이다.

말이 총꾼이지, 길드가 아닌 크루 소속 총꾼은 경찰이나 검찰 입장에서 적당한 증거만 확보하면 언제든 내킬 때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래서 백광현을 통해 신분 세탁을 했지만……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는 법 아닌가?

“그러면 오히려 뻔해서 좋겠지. 더불어 경찰에 걸릴 정도로 내 작업 수완이 허접했다면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고.”

다행히도 공권력은 아닌 모양이다. 이강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은팔찌를 차고 점퍼를 뒤집어쓴 채 끌려갈 일은 없을 듯했다.

“그럼 어디입니까?”

“그걸 모르겠네.”

“몰라요?”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야. 어지간한 곳이면 내 정보력으로 상대를 파악했을 터. 그리고 내가 알아서 처리했을 걸세.”

백광현도 알아낼 수 없는 단체라면…….

“대충 의심 가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너무 많아서 문제지. 내가 무슨 대단한 국가정보단체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속일 만한 집단은 얼마든지 있네. 하지만 적어도 어중이떠중이들의 수작에 넘어갈 정도로 능력이 없진 않네.”

상대가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는 소리다.

“솔직하게 말해서 전 조용히 즈믄나래에서 제 몫만 했습니다. 누구 눈총 살 짓은 안 했어요.”

이강우는 나름 억울했다.

당장 자신이 큼지막한 사고를 쳤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강우는 최근 정말 조용히 잘 지냈다. 사고를 쳐도 유적에서 쳤지, 밖에서 친 적은 없었다. 누구 돈을 떼어먹은 적도 없고, 사람을 해친 적도 없다. 심지어 과속 한 번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세력이 이강우를 노린다?

“꼭 잘못을 했다고 상대가 찾는 건 아니지. 보통 이 바닥에서 사람을 찾을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네. 하나는 상대에게서 받아낼 게 있어서, 다른 하나는 상대에게 원하는 게 있어서.”

“제가 필요해서 찾는다, 이겁니까?”

그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설마.’

최근 남들 앞에서 사고 친 적은 없지만 가진 재주를 있는 힘껏 발휘했던 적이 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유적 연구소 말이다.

‘에이, 그렇게 따지면 거기 있던 이들이 소속된 집단에서 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더불어 오키나와 미군기지 유적 연구소에 있는 직원 대부분은 미국 정부 소속이고, 공동연구를 위해 참가한 이존, 블랙 스택, 칠성문의 관계자가 간간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그들의 배후세력이 이강우에게 관심이 생겨서 뒷조사를 했다면, 세계 3대 길드가 이강우의 뒷조사를 했다는 거다. 어지간한 마법사나 그런 특별취급을 받을 수 있다. 고작 이강우가 받을 만한 취급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렴.’

그런 이강우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본 백광현이 뭔가 낌새를 느낀 듯 질문을 던졌다.

“대충 짐작이 되는 곳은 있는 모양이군.”

“아뇨, 없습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즈믄나래에서 받는 돈이 섭섭할 리 없으니 요금은 할부로도 납부할 수 있게 해주지.”

“정말 없습니다. 전 깨끗합니다.”

이강우가 재차 부정을 했으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인 법. 백광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진짜 없다니까요. 왜 사람 말을 안 믿습니까?”

“난 안 믿는다고 말한 적 없네.”

“표정하고 눈빛이 그렇게 노골적인데, 그게 대답이죠.”

“……어쨌거나 내게 그런 말을 해봤자 의미 없네. 자네가 설득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어쨌거나 조심하게.”

“조심할 만한 일입니까?”

“이 이상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자네 말고는 아무도 안 사는 초콜릿을 자네가 나갈 때 위로 선물 대신 줄 수 있는 것,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의 전부네.”

백광현과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 * *

이강우가 차를 끌고 향하는 곳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위치한 합천호였다. 합천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 합천호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멋진 광경을 제공하는 곳으로, 자동차 여행자와 낚시꾼들 그리고 자전거 라이더 등, 자연을 무대 삼는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장소였다.

그런 멋진 광경을 배경 삼아 1억이 넘는 비싼 외제 차의 가속페달을 신나게 밟으면서 도로를 질주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남자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들 만큼 멋진 일일 터.

그러나 운전대를 잡은 이강우의 표정 어디에도 즐거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내 목을 이런 식으로 조르게 될 줄이야.’

백광현은 이강우에게 나름 경고를 해줬다. 어떤 대단한 집단이 네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처신을 잘 하라고.

고마운 일이었다. 백광현이 이강우에게 그렇게 해줄 의무 같은 건 없지 않은가? 백광현 덕분에 적어도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한 번쯤은 의심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충 이야기를 조합하면 스카우트 제의도 올 수 있다는 건데…….’

사실 어떻게 보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강우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그에게 좋은 조건이 포함된 스카우트 제의가 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강우는 즈믄나래와 어디까지나 계약 관계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얼마든지 다른 곳에 갈 수 있다.

안중현과의 비밀 거래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밀 거래다. 법적으로 이강우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순간 즈믄나래를 떠나 다른 길드에 들어가도 이상한 건 없다.

하물며 이강우는 총꾼 아닌가? 마법사도 아니고 총꾼이니, 길드 이동은 더 쉽다.

그렇게 보면 이제까지 마법사인 걸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

……같은 건 정말 위험한 판단이다.

이강우가 봤을 때 즈믄나래는 번듯한 길드지만, 짙은 그림자 역시 가지고 있었다.

‘즈믄나래는 아주 시커먼 곳이야.’

당장 왕지홍 같은 존재만 해도 그렇다. 즈믄나래는 뒤로 몇 가지 수작을 부리고 있다.

그런 즈믄나래가 이강우를 그냥 놔둔다?

그럴 리는 결단코 없다.

이 바닥은 자기가 가지지 못하면 남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바닥이다. 더군다나 사람 한둘, 그것도 총꾼 한 명 정도 제거하는 건…… 일도 아닐 터.

‘몬스터만 적으로 둬도 살기 힘든 팔자인데, 길드까지 적으로 두는 건 그냥 자살행위지.’

이게 고민이 이유고, 불쾌함의 이유이며, 초조함의 이유다.

그래도 이강우는 여기서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이 터지고 나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강우에게 양쪽 제안을 듣고 저울질 같은 걸 할 기회는 없다. 즈믄나래를 떠날 거면 진즉에 작업을 해두고, 그게 아니면 그냥 즈믄나래에 충성을 바친다는 마음으로 간 쓸개를 보여주며 재롱을 떨어야 한다.

그리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말 자신에게 엄청난 세력이 호의적인 관심을 가진 건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이강우가 몸을 담고 있는 즈믄나래를 배신할 준비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다.

‘즈믄나래를 택해야지.’

어쩔 수 없다.

즈믄나래가 당장은 이강우가 그나마 믿고 잡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동아줄이다.

‘젠장.’

그러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동아줄을 잡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 리 만무.

무엇보다 이강우는 그냥 자신의 운명이 부평초처럼 주변 상황 따라 맞춰가는 게 이제는 너무 싫었다. 아니, 그런 삶이 마음에 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내가 불사황제의 힘만, 그가 보여준 그 권능의 일부라도 얻는다면…….’

부우우우!

그 순간 자동차가 이강우의 심정을 대신 말해주듯 거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 *

제대로 된 도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20여 분 정도 달린 후에야 이강우는 안중현이 보내준 주소의 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번듯한 전원주택 한 채가 외로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곳에 전원주택이라…… 공사비는 얼마쯤 나오려나?’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한 전원주택은 운치가 넘쳤지만, 이강우는 그런 운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윽고 이강우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가 온 걸 알고 있는지 초인종 따위를 누르지 않았음에도 전원주택 안에서 안중현이 알아서 나왔다.

7등급 유적 사냥 이후 몇 달 만에, 오랜만에 만난 그 둘은 곧바로 악수부터 했다.

“용케 잘 찾아왔군.”

“귀한 가르침 받는 자리인데, 어떻게든 찾아와야죠.”

마법 훈련을 받는 날.

이강우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될 기회다.

“어차피 우리 사이에 겉치레는 필요 없을 테니, 당장 간단한 테스트부터 시작하지.”

안중현은 곧바로 이강우를 데리고 전원주택 옆에 위치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라기보다는 그저 사람이 지나간 흔적만 어렴풋이 남은 길을 따라 산을 어느 정도 오르자, 이것저것 사람 흔적이 역력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모양을 한 표지판, 산처럼 쌓인 모래주머니…….

‘예비군 훈련장 같네.’

대한민국 남아라면 모두가 좋아할 리가 없는 예비군 훈련장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마법 훈련은 원래 이런 곳에서 합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강우도 알고 있다.

대한민국 마법사들은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법청이 관리하는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돈을 때려 부은 게 티가 날 정도로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훈련소에서, 훈련소라기보다는 호텔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면서 일정 시간 마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이수한다. 그 과정을 이수해야 정식으로 마법사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말이 이수지, 상당수 이들이 예비군 훈련받듯 받는다. 굳이 힘든 훈련, 잘 받는다고 추가 수당이 주어지거나 하는 것도 아닌 훈련에 열중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박준영 같은 마법사가 등장하는 거다. 3서클 마법사에다가 마법청 휘하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음에도 유적 사냥의 기본조차 모르는 쓰레기 같은 놈이 나온다.

“훈련 장소가 허접해서 미안하군.”

이강우가 한 말의 의미를 모를 안중현이 아니다.

“그래도 훈련은 훈련이니, 제대로 하지.”

안중현은 말과 함께 가지고 온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세 개의 상자가 있었다. 안중현은 그 상자의 표면을 터치했다. 키패드가 떴고, 암호를 넣자 잠금장치가 풀렸다. 상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은으로 만들어진 팔찌였다.

동시에 안중현은 본인이 착용하고 있던 팔찌를 벗었다. 이강우가 눈빛을 반짝였다. 안중현의 팔찌는 1서클 마법, 불똥이 걸린 마법 아티팩트였다.

“둘 중 뭘 먼저 착용하고 싶나?”

“은팔찌는 좀 그렇군요. 은팔찌 말고 다른 걸 착용하겠습니다.”

“은팔찌를 싫어하다니, 켕기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살아생전 교통법규조차 어긴 적이 없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입니다.”

안중현은 대답 대신 팔찌를 건네줬다. 이강우가 곧바로 팔찌를 제 손에 채웠다.

“마력을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나?”

“대충 느낌은 압니다. 마법을 써본 적은 없지만.”

“현재 마나 서클 개수는? 가늠할 수 있나?”

“두 개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제 마나 서클은 두 개인 겁니까?”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오히려 그 이하인데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리고 지금은 그걸 확인하는 자리이고.”

이강우는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마나 서클 개수를 안다. 거울만 보면 머리에 또렷하게 보이는 서클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이강우는 마법에 대해서는 초보자 수준조차 되지 못하는 문외한 연기를 해야 한다.

연기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 이강우다. 안중현이 이강우의 연기력을 꿰뚫어 보는 일은 없었다.

“마법 아티팩트 사용법은 굉장히 간단하네. 필요한 만큼의 마력을 주입하면 되지.”

“너무 간단하군요.”

“비유를 하자면, 페트병에 든 물을 컵에 적정량을 따른다고 생각하면 되네.”

“그게 전부입니까?”

설명을 들으니, 이보다 간단한 일이 없다. 5살짜리 어린애도 컵에 우유 정도는 따라 마실 줄 안다.

“근데 손을 쓰면 안 되네.”

“예?”

안중현이 이강우의 반문에 씨익 웃었다. 정말로 말처럼 간단한 일이라면, 이 세상에 유능하지 않은 마법사는 없는 법!

놀라는 이강우를 향해 안중현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군말 말고 일단 해보라는 의미.

그 순간 이강우가 자세를 잡았다. 한 방향을 향해 팔찌를 찬 오른손을 겨눈 채, 손가락을 튕겼다.

안중현, 그처럼.

그러자.

화륵!

불똥이 튀었다.

‘음!’

동시에 안중현의 안색이 바뀌었다.

‘이 녀석…….’

* * *

마법사들은 흔히 두 부류로 나뉜다.

마법을 쓰는 게 어려운 부류와 숨을 쉬는 것처럼 대수로울 게 없는 부류.

‘어려울 건 없어.’

이강우는 후자였다.

그가 마법을 사용한 횟수가 많진 않지만, 힘들지언정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비유를 하면 이강우에게 마법은 세밀한 작업을 요구하는 공예가 아닌, 그저 무거운 짐을 드는 중노동이었다.

하물며 불똥 마법은 이강우에게 친숙한 마법이었다. 안중현, 그가 불똥 마법을 사용하는 걸 질리도록 봤다.

보통은 봐도 모른다. 특히 불똥 마법은 생각보다 다루는 게 어려운 마법이다.

‘이런 느낌이었지.’

그러나 이강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안중현과 똑같은 자세를 취했고.

딱!

안중현이 마법을 쓸 때 보여주는 특유의 제스처를, 손가락도 튕겼다.

그러자.

팟!

불똥은 이강우가 원하는 위치, 사람이 그려진 표지판 앞에서 튀었다. 그 모습을 본 안중현은 잠깐 여운을 가진 뒤, 이강우에게 추가 주문을 했다.

“내 지시대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중현이 손가락으로 이강우의 등 뒤에 위치한 과녁을 가리켰다. 이강우가 잽싸게 등을 돌리며, 마치 서부의 총잡이처럼 과녁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고, 손가락을 튕겼다.

팟!

그러자 과녁의 정중앙, 그 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불똥의 등장에 과녁에는 그을림이 생겼다.

“한 칸 위.”

안중현은 곧바로 추가 지시를 내렸고, 이강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강우는 굳은 표정으로 과녁의 정중앙을 겨누고 있던 손가락을 한 칸 위로 올렸다. 팟!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고, 불똥은 과녁 정중앙보다 한 칸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대충 알겠군.’

이 순간 이강우는 안중현의 비유를, 마법을 쓰는 게 컵에 물을 따른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연달아 마법을 쓸 때 필요한 건, 정확한 계량.’

손을 대지 않고 컵에 물을 따른다? 당연히 제대로 따를 수 없다. 부족하거나 혹은 컵을 넘칠 만큼 물을 따르게 된다.

부족하면 마법이 발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넘치면? 물통의 물이 줄어들고, 다음 물컵을 채울 수가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물통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게 되고, 이렇게 생긴 공백은 전투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물통이 크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적절한 계량이 핵심이다.

물론 이마저도 한계가 있다. 이강우는 1서클 마법을 연달아 세 번 쓰는 순간, 한계에 도달했다. 물통이, 마나 서클이 비어버렸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표정이 굳은 건 그 때문이다.

이강우는 이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

‘여기서 한 번 더 무리하면 곧바로 쇼크가 오는 거군.’

무리하면 몹쓸 꼴을 다시 한번 경험할 것이다. 안중현 역시 낌새를 눈치챈 듯 이강우를 향해 말했다.

“여력은?”

“없습니다.”

“2서클이군.”

곧바로 안중현은 마음속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1서클 마법을 연달아 3번 사용했다면, 최소 2서클 마법사다. 1서클 마법사는 절대 그런 식으로 마법을 쓸 수 없으니까. 반대로 3서클이라면, 최소 다섯 번 정도는 1서클 마법을 연달아 쓸 수 있다.

더불어 시간을 가늠하는 건 회복력을 알기 위해서였다. 만약 이강우가 20초 내에 1서클 마법을 쓸 수 있는 여력을 되찾는다면, 이강우의 회복력은 괴물급이라고 해도 된다.

그렇게 침묵 속에 시간이 흘렀고, 이강우가 입을 열었다.

“지시를.”

여력이 생겼다는 신호.

“과녁 뒤.”

어려운 주문이 나왔다.

보이지 않고, 본 적도 없는 곳을 타깃으로 삼고 마법을 사용해라!

그 말에 이강우는 미간을 찌푸린 뒤 천천히 숨을 고르고, 간신히 차오른 마력을 팔찌에 주입했다.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팟!

과녁 뒤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 모습을 본 안중현이 옅게 미소를 머금었다.

‘13초.’

이걸로 확실해졌다.

‘괴물이군.’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가진 괴물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다.

* * *

이강우는 하루 내내 불똥 마법만 썼다.

“오늘은 용량을 알아내는 게 목적이다. 기절하기 전까지 테스트는 끝나지 않는다.”

산중이라 해는 일찍 가라앉았고, 밤중에 접어든 후에도 테스트는 계속됐다. 테스트가 끝났을 때 이강우는 부들부들 전신을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중현이 그런 이강우를 향해 말했다.

“기절할 때까지라고 했는데?”

그 말에 이강우는 바닥에 드러누우며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 두 눈깔도 뒤집었다.

안중현이 실소를 머금었다.

“대단한 연기력이군. 테스트는 여기까지다.”

그제야 이강우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첫날이라서 힘든 겁니까, 아니면 아직 시작도 안 한 겁니까?”

이강우의 진심 가득한 질문에 안중현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이강우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힘들어 죽겠다.’

솔직히 앞으로 훈련 내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강우는 지금 그냥 지쳐 쓰러져 잠들기를 소원했다.

그런 이강우에게 안중현은 기습적인 질문을 했다.

“어떤 마법사가 되고 싶지?”

마법사의 종류는 많다. 다루는 마법의 스타일, 마법의 속성, 마법의 형태에 따라서, 심지어 본인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보통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공방(攻防), 전투와 관련된 마법을 쓰는 전투 타입.

대상의 능력을 강화해주거나 약화해주는 서포트 타입.

마지막으로 치료 마법을 주력으로 쓰는 치료 타입.

“역시 닥터죠.”

그리고 이런 마법사 중에서 가장 대우가 좋고, 돈도 잘 벌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건 치료 마법사들이었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보통은 의법사라고 불린다.

애초에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회적 대우와 지위가 높다. 그런데 여기에 마법사란, 그야말로 하늘이 선택하는 재주가 더해진다면? 심지어 보통 의사들은 감히 하지도 못하는 일을 마법의 도움으로 가뿐하게 해낼 수 있다면?

그 대우와 몸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말도 나올 정도다. 마법사가 되면 집이 바뀌지만, 의법사가 되면 집안이 바뀐다!

물론 아무나 의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법은 유능하나, 만능은 아니다. 그냥 상처가 난 사람에게 힐링 마법을 쓴다고 해서 치료가 되는 건 아니다. 수술을 할 때 단계를 밟듯이…… 예를 들어 절단된 신체를 붙일 때 그냥 접착제로 붙이는 게 아니라 혈관, 뼈, 근육 등 단계적으로 봉합을 하는 것처럼, 치료 마법도 그렇게 해야지 보다 확실한 치료가, 보다 높은 성공률의 치료가 가능하다.

특히 작금에 이르러서는 순수한 치료 마법만으로 치료를 하는 경우는 없다. 의료 수술과 마법 그리고 유적에서 가지고 나온 특수한 약품을 이용한 수술이 대세다. 여기에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아직 연구 도중이긴 하지만, 장기가 없는 환자의 장기를 완전히 새롭게 재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파잔하고 햄빗, 고른다면 둘 중 어디를 고르겠나?”

그리고 이런 마법의학을 이끄는 집단이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파잔과 세계적인 의료기구제조사인 햄빗이다.

두 집단은 마법의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막대한 자본력과 인맥을 이용해 전 세계의 치료 마법 아티팩트와 재능 있는 마법사들을 흡수했고, 이후 마법의료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말이 양분이지, 각자 독점적 지위를 발휘하고 있고, 당연히 마법의료시술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통 사람들은 전 재산을 털어도 치료를 받을 수 없을 지경이다. 심지어 돈이 있어도 예약 대기가 밀려 마법의료시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두 기업의 행동을 어마어마한 행패로 규정하고 국제적인 공조 하에 그들의 행패에 제약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디든 받아만 준다면 기꺼이 가야죠.”

“언제든 즈믄나래를 배신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로군.”

“솔직히 의법사가 되면 목숨이 위협받을 일은 절대 없으니까요.”

더불어 의법사의 최대 장점은 안정성이다.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고, 어마어마한 연봉과 사회적 지위에 결정적으로 몬스터와 싸울 이유가 없다.

길드 소속 마법사나 공무원 마법사는 몬스터 사냥에 동원된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게 하도록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의법사는 동원되더라도 후방에서 의료지원이지, 최전선에서 싸우는 일은 없다.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파잔을 고르겠습니다. 파잔에 입사한 마법사는 가족들도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니까요.”

더불어 이강우에게는 지위, 명예, 권력, 돈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가족이란 소중한 이유가.

“그럼 한번 기회가 되면 도전해 보게.”

안중현의 말에 이강우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의대 입학보다 힘들고, 모든 과정이 영어로 치러지는 시험에 도전하기엔 머릿속에 든 게 너무 부족하더군요.”

그리고 설명 그대로, 의법사는 대단한 대우를 받는 만큼, 되는 것도 어렵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햄빗과 파잔의 직무적성검사에 응시하지만, 1년에 2번 치러지는 그 테스트를 통과하는 사람은 백 명을 넘지 못한다. 두 개의 기업, 네 번의 시험을 통해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만이 선발된다는 건, 한 번의 시험에서 고작 20명 안팎의 사람만이 합격한다는 의미다.

일단 사람 목숨을 다루는 자격을 가늠하는 시험이기에 전문적이고 어렵다. 의사 수준의 의학적 지식을 요구한다.

여기에 마법적인 능력도 필요하다. 일단 최소한 2서클 이상. 그마저도 2서클 마법사는 페널티를 받는다. 페널티를 받지 않는 최소한의 조건은 3서클이고, 4서클부터는 가산점을 받는 식이다.

치료 마법에 대한 재능 테스트도 당연히 거쳐야 하고, 어느 지역, 어느 국가의 병원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국제적인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능력은 조건에도 끼지 않을 정도로 필수였다.

솔직히 이강우가 거기 들어갈 두뇌적 역량이 있었으면 애초에 직업군인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갔겠지.

“그럼 치료 쪽은 포기. 남은 건 서포트와 전투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뭘 고르겠나?”

“그러지 말고 대장님이 추천해 주시죠? 제가 어떤 마법사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지금 이 대화의 목적은 이강우의 방향성을 잡기 위함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보통 마법사가 유적 사냥에서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반년 이상의 훈련과 반년 이상의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하물며 다음 사냥 대상은 6등급 유적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강우는 다양한 장르의 마법을 습득하기보다는 그가 단시간 내에 확실하게 제 몫을 할 수 있는 장르를 정하고, 그것만을 습득해야 한다.

“가위손을 알고 있나?”

안중현이 새로운 단어를 꺼냈다.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 열 명을 꼽으라면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인데.”

“사실 난 자네에게 가위손을 롤모델로 추천하려고 했네.”

가위손.

당연히 별명이고, 이름은 버튼이다.

조니 뎁이 출연한 영화, 가위손에 나오는 주인공, 에드워드 시즈핸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주인공이다. 일단 그는 조니 뎁처럼 잘 생기지 않았고, 작중 영화 주인공처럼 손가락 대신 큼지막한 가위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가위손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가 맨손으로 몬스터를 자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다.

맨손으로 몬스터를 자르고, 가른다. 팔다리를 자르고, 배를 가르고, 장기를 잘라내고…… 단순히 마법이니까, 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정말 마법 외적으로 초월적인 무언가를 가진 사내다.

덕분에 전적도 화려하다. 이존 소속인 그는 이존의 굵직한 유적 사냥에 언제나 이름을 올렸다.

그런 그를 이강우가 롤모델로 삼는다?

이상할 건 없다. 몬스터 자르는 재주는 이강우도 어디 가서 꿇릴 것 없으니까.

“살아있는 몬스터에 달라붙어 싸우는 건 좀…… 전 오래 살고 싶습니다.”

물론 이강우 본인은 그런 전투를 하고 싶지 않다.

죽은 몬스터를 도축하는 건 말 그대로 죽었으니까 하는 거다. 산 채로 몬스터를 잘라 죽여라?

사양이다.

그냥 멀리서 안전하게 강력한 마법을 쓰는 게 이강우가 추구하는 목표다.

다행히도 안중현 역시 이강우를 오늘 테스트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걱정 말게. 오늘 자네를 테스트해보니 자네는 아마도 좌표 마법에 재주가 있는 것 같으니까.”

좌표 마법.

지정된 지점에 마법을 구현시키는 종류의 마법을 말함이다. 안중현의 특기이기도 하다. 안중현이 쓰는 불지뢰, 불똥 마법 역시 좌표 마법이다.

의외로 쓰기 힘든 타입의 마법이다. 거리감은 물론, 마법에 대한 높은 수준의 컨트롤 능력이 요구되니까. 야구로 따지면 제구가 뛰어난 투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강우는 안중현도 놀랄 정도로 좌표 마법에 대한 우수한 능력을 보여줬다.

다른 재능을 테스트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이강우가 보여준 걸 생각하면 좌표 마법을 주력 스타일로 삼아도 충분할 정도다. 아니, 좀 과장하면 이강우가 안중현을 대신해 당장 유적에서 불똥 마법을 써도 될 정도로,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이강우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

“내일은 속성 테스트를 하겠네. 그 후 결과를 종합해서, 자네에게 어울리는 커리큘럼을 알려주지.”

여기에 속성 테스트만 맞추면, 앞으로 이강우가 어떤 마법사가 되어야 하는지, 견적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안중현은 몰랐다.

이강우, 그가 불사황제가 선택한 그릇이라는 사실을, 그가 가진 재능이 어느 수준의 재능인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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