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15화 (15/66)

15화. 보물창고

숨구멍조차 뚫리지 않아 산소 공급기 없이는 숨도 쉴 수 없는 보호장비를 착용한 이강우가 멜트 드래곤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먹어 치웠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녀석의 혓바닥을 밟고, 식도에 몸을 넣었다.

그 광경을 멜트 드래곤 공동연구팀의 연구원들은 이강우의 몸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따로 마련된 모니터룸에서 보고 있었다.

“곧장 들어가는군.”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데?”

곧장 멜트 드래곤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이강우의 모습에 적지 않은 이들이 놀랐다.

“대단하군. 피어가 없진 않을 텐데?”

등급이 높은 몬스터는 죽어도 위엄이 남는다. 특히 드래곤 타입 몬스터는 일명 드래곤 피어라는 것이 있어서, 드래곤 시체에는 어지간한 몬스터가 아니면 접근하지 않을 정도다.

5등급 몬스터인 멜트 드래곤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은 그냥 멀리서 놈을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하물며 그 입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갈 순 있지만, 저렇게 망설임 없이 들어가는 건 굉장히 어렵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 생존본능이 거부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멜트 드래곤의 위장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인류 역사상 이강우가 최초일 것이다. 최소한 공식적으로 남는 기록에서는 이강우가 최초가 맞다.

그래서일까?

-식도에 진입했습니다.

직경 1미터 남짓한 크기의 식도에 이강우가 들어갔을 때, 이제까지 서로의 말꼬투리를 잡기 바쁘던 멜트 드래곤 연구팀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게 흘러갔다.

“생각보다 식도의 신축성과 복원력이 좋군.”

“테스트 결과가 어땠지?”

“사람 손으로 직접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데…….”

서로가 당연하게 합의를 도출하고 있으니까.

최초니까.

소속된 집단의 이익을 연구자의 본능이 앞선 것이다. 여러모로 최초로 남게 될 지금 이 상황을 그저 집단의 이익을, 체면을 대변하기 위해 무의미하게 쓰는 건 연구자의 본능이 용납지 않았다. 무의미한 데이터라도 좋다.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은 게 그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닥터 권, 부탁합니다.”

결국 한 명이 권재용 박사를 향해 아쉬운 소리를 먼저 꺼냈다. 권재용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마이크를 가져갔다.

“이강우, 식도 복원력 테스트다. 왼손 검지로 식도를 있는 힘껏 찔러보도록.”

진짜 연구가 시작됐다.

* * *

멜트 드래곤의 입에서 위장 입구까지 거리, 즉 식도의 길이는 4미터 정도였다. 성인 남자가 오리걸음으로 걸어야 할 정도로 좁은 길이었지만, 4미터 정도를 오리걸음으로 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30초 남짓 고생하면 되는 길.

하지만 이강우는 그 거리를 가는데 거의 10분 가까운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한 번만 더, 깊게 찔러주게.

이유는 다름 아닌 식도의 복원력 테스트 때문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이강우는 그 복원력 테스트란 놈을 백 번 넘게 했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했다. 마치 달에 첫 발자국을 찍은 닐 암스트롱의 심정이 되어, 이강우에게는 그저 손가락 찌르기지만, 인류의 역사에는 길이 남은 첫 손자국…… 뭐 그런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그걸 백 번쯤 하니까 미칠 지경이었다. 숭고한 마음은 주기 싫어도 알아서 개나 주게 됐다.

‘빌어먹을! 이런 건 로봇 시키라고! 가뜩이나 용옥 채취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인간한테 왜 이런 일을 시키는 건데?’

말이 백 번이지, 4미터 거리를 걸어가면서 백 번 찌른다는 건 4센티미터 이동할 때마다 복원력 테스트를 했다는 의미다. 오리걸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복원력 테스트를 한 셈이다. 이강우가 마이크로 쌍욕을 하지 않은 게 대단할 정도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만약 연구원들의 목적이 이강우의 긴장을 풀어주는 거였다면 그들은 성공했다. 혹은 그들의 목적이 이강우를 놀리는 거였다면, 그건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강우는 기어코 멜트 드래곤의 위장에 들어갔다. 식도의 끝에 위치한 좁은 구멍을 준비한 도구로 확대한 후에 그 구멍 안으로 지렁이처럼 몸을 집어넣었다.

이강우가 인류 최초로 멜트 드래곤의 위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끄으으으!”

이강우는 가장 먼저 기지개부터 켰다. 이강우가 기지개를 켜면서 내뱉는 소리,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소리가, 딱히 번역이 필요 없는 만국 공통의 소리가 모니터룸의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응?’

‘어?’

그 기지개 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광경은 전부 녹화 중이다. 이강우의 숨소리마저 초고음질로 녹음 중이다. 더 나아가 지금 찍은 영상은 차후 편집 과정을 거쳐, 세계 각지에 위치한 유적 연구소에 참고 자료, 연구 자료로 보내질 것이다.

그런 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장면에서 기지개 소리라니…… 이강우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연구팀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우드득, 우드득!

이강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굳은 목도 풀고, 어깨도 풀고, 심지어.

“어어, 음음, 크흠. 크으으!”

목도 풀었다.

이쯤 되자 모니터룸에 있는 연구원 중 몇 명은 웃었다.

“대단한 인간이군.”

“멜트 드래곤을 상대로 저 정도 여유라면…… 어지간한 몬스터 상대로 겁먹을 일은 없겠어. 꼭 우리 연구소에 데려오고 싶군.”

“의외로 해체가들 중에서는 겁에 질려서 제 실력을 발휘 못 하는 이들이 있지. 가장 중요한 유적 안에서 활약하는 해체 기술자는 더더욱 적고. 담력도 중요한 요소야.”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인재였군.”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강우의 몸에 달린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주변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강우가 위벽 앞에 섰다. 이강우가 손가락으로 말끔한 위벽과는 달리 볼록하게 튀어나온 위벽의 부위를 만졌다. 신축성 좋던 위벽은 손가락을 찔렀음에도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위벽 너머에 뭔가 있는 모양새.

용옥이다.

이강우가 용옥 앞에 섰고, 그 광경을 보던 모든 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제 시작이군.’

‘5등급 마나스톤은 몇 번 봤지만…… 드래곤 타입의 마나스톤은 보통 마나스톤과는 다르지.’

5등급 유적 사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건,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5등급 유적 그리고 5등급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고, 멜트 드래곤의 경우에는 공식 사냥 횟수가 3번에 불과하다.

물론 비공식적인 기록이 있을 수도 있으니, 실질적인 사냥 횟수는 그보다 많겠지만 공식적으로 멜트 드래곤을 제대로 연구한 결과는 없다. 아주 단편적이고, 기본적인 결과, 연구라고 하기도 뭐한 그저 정보 몇 개만 있을 뿐이다.

멜트 드래곤의 용옥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멜트 드래곤을 잡은 유적 사냥꾼은 연구 같은 건 도외시한 채 마나스톤을 그냥 뜯어냈다. 위벽의 손상 없이 용옥을 채취하는 방법 같은 걸 그들이 고려했을 리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위벽에 최대한 손상을 주지 않는 선에서 용옥을 제거해야 한다.

물론 정말 손상 없이 용옥을 채취하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오늘 이곳에서 이강우가 용옥을 채취하는 방법이 차후 멜트 드래곤의 용옥 채취 방법의 스탠다드가 되거나 혹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사실 결과가 나쁘다고 이강우가 욕먹을 건 없다. 그를 고른 건 이번 연구를 책임지는 연구팀이다. 말은 나오겠지만, 이강우가 실수를 해서 위벽에 큼지막한 칼자국을 만들어도 이강우가 차후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일은 없다.

‘실패하면 지랄을 할 텐데.’

그렇다고 실패해서 좋다는 건 아니다.

때문에 이강우는 당연히 부담감을 느꼈다. 문제가 생길 경우의 두려움은 물론 과연 어떻게 해야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그것조차 가늠되지 않았으니까. 합격점이 몇 점인지도 모르고, 그저 어렵기만 한 시험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앞선 10분간의 개고생이 이강우의 머릿속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결국 내가 여기서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리 없지.’

바둑 9급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평생 둬본 적 없는 수는 떠올리지 못한다.

지금도 마찬가지.

모르는데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좋지도 않은 머리 굴려봤자, 남는 건 두통뿐이다.

권재용 박사가 한 말도 떠올랐다. 그는 이강우가 운과 감과 재능을 전부 가진 천재라고 했다.

‘나답게 하면 돼.’

이강우는 간단하게 상황을 바라봤다. 자신이 해야 하는 건, 그냥 살덩어리 아래 감추어진 성인 남자 주먹 크기의 탐스러운 돌멩이를 하나 꺼내는 것, 대신에 상처는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 그뿐이다.

‘회를 뜬다는 생각으로.’

이강우가 몸을 돌렸고, 곧바로 위장에 준비되어 있던 해체 도구들 중 하나를 들었다. 물결 모양처럼 S자 형태를 갖춘 단검, 칸자르 나이프였다.

그냥 나이프가 아니었다. 4서클 커팅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 아티팩트였다. 더불어 칸자르 나이프의 칼자루 끄트머리에는 마나스톤 하나가 박혀 있었다. 어지간한 7등급 이하 몬스터는 그냥 가져만 대도 가죽과 살점이 갈기갈기 찢기는 강력한 마법 무기다. 가격도 어지간한 부자의 욕심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정도로 엄청 비싼 무기다.

멜트 드래곤의 비늘은 자르지 못하더라도, 위벽 정도는 아차! 하는 순간 단숨에 잘라버릴 것이다.

‘분석.’

이윽고 이강우가 분석 마법을 썼다. 분석 마법을 쓰자 멜트 드래곤의 위장 속에 존재하는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와우!’

일단 당장 보이는 마력의 양이 상당했다. 위벽 전체를 마력으로 만들어진 실로 휘감은 듯했다.

그런 마력의 흐름은 지금 이강우가 바라보고 있는 곳, 용옥을 향해 모여 있었다.

마력의 응집.

그 응집 위로 보이는 숫자.

[35,993/55,000]

꿀꺽!

이강우가 침을 삼켰다.

‘최대 5만…….’

어마어마한 수치다. 5만 포인트는 이강우가 이제까지 섭취했던 마력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았으니까.

꿀꺽, 이강우가 재차 침을 삼켰다. 침이 계속 고였다. 긴장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의미도 있었다.

‘기예르모 레시피에는 드래곤의 마나스톤이 저마다 독특한 맛이 있어서 진짜 최고의 별미라고 했었는데…….’

군침.

우습게도 이강우는 지금 이 순간 드래곤의 마나스톤을 보고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미치겠군.’

이강우 스스로도 지금 상황이 우스웠다. 이 세상천지에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경우가 있을까? 우스운 만큼 몸에서 긴장이 풀렸다.

‘아서라, 이강우. 군침 맨날 흘려 봤자 그림의 떡이다. 그림의 떡. 여기서는 피부 조각 하나도 가지고 못 나가.’

그 덕분이었다.

‘그래, 어차피 못 먹는데 아무래도 좋아. 그냥 빨리 작업 끝내고 가서 기예르모 레시피나 정리해야지.’

이강우, 그가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둘렀다.

* * *

모니터룸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두가 이강우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조금씩 긁어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는데…….’

‘단순하게 보면 어려울 건 없지. 하지만 구리를 가공하는 것과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건 전혀 다른 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결국 쓸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결국 배짱 싸움. 어떤 방법이든, 자신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 순간 이강우가 작업에 나섰다.

툭툭!

이강우의 손이 마나스톤이 있는 부위, 매끈한 멜트 드래곤의 위장에서 툭, 튀어나온 부위를 두드렸다.

촉진.

손으로 대충 마나스톤의 위치를 가늠한 이강우는 거침없이 칼로 마나스톤이 묻힌 위벽을 그었다.

“헉!”

“뭐야?”

모두가 놀랐다. 이강우의 행동은 너무 재빨랐고, 갑작스러웠으니까.

그러나 그런 그들의 의중을 알 리 없는 이강우는 곧바로 자신이 낸 상처에 다른 도구를 이용해 바람을 주입했고, 바람은 구멍이 난 상처 위벽을 풍선처럼 살짝 부풀렸다. 그 후에 이강우는 마나스톤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뾱! 하고 마나스톤이 이강우가 만든 구멍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작업 끝났습니다.

그 과정을 본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 * *

처음 권재용이 이강우를 데리고 왔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이강우를 탐탁지 않은 눈으로 봤다.

어떻게 보면 역사적일 수도 있는 멜트 드래곤 연구에 검증되지 않는 이를 조수랍시고 대동하는 건 누가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더욱이 다른 이들 역시 보다 확실한 연구를 위해 여러 명의 조수를 데리고 온 건 사실이지만 회의실까지 대동하는 이는 드물었고, 혹여 회의실에 조수를 대동하고 오더라도, 말만 조수지 나름 이 분야, 유적 연구 분야에서는 석학이라 부를 만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강우는 첫 등장부터 임팩트 있는 결과를 내놓더니, 멜트 드래곤의 몸에서 순식간에, 거리낌 없이, 망설임 없이 용옥을 채취했다. 과감하면서도 깔끔한 솜씨였다. 이강우는 최소한의 절개와 조치만으로 간단하게, 너무 간단하게 채취에 성공했다.

분명하다.

이제부터 이강우가 쓴 방법이, 멜트 드래곤의 위장에서 용옥을 채취하는 기술의 시작점이자 기준점이 될 것이다.

물론 과연 앞으로 멜트 드래곤의 위장 속에 직접 들어가서 용옥을 채취하려는 인간이 얼마나 더 나올까, 하는 건 미지수지만.

어쨌거나 그 일을 기점으로 이강우는 인정을 받았고, 인정을 받으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이제는 일일이 지나다니면서 자기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되지도 않는 영어를 지껄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권재용 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강우를 지하 연구소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건 포이즌 키트인데, 전부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이 키트를 이용해서 독의 유무를 가늠할 수 있지. 더불어 횟수는 많지 않지만 해독 마법 사용이 가능한 아티팩트가 포함되어 있지. 덕분에 이 키트 하나 가격이 억이 넘는다네.”

‘그냥 아티팩트 빼고 보급하면 안 되나? 이런 거 진즉에 줬으면 독이 있는지 없는지 머리 쥐어뜯으면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이건 급송 냉동 키트. 중요 연구재료는 실온에서 망가지도록 놔두지 말고 세포가 파괴되더라도 좋으니 얼리게. 내가 리스트를 줄 텐데, 그 리스트에 냉동 요망이라고 포함된 건 잡는 즉시 급속 냉동하게.”

‘여기에 얼려서 팥빙수 해 먹으면…… 이거 있었으면 기생망고로 주스가 아니라 망고 빙수를 해먹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유적 연구소에는 몬스터 연구는 물론, 유적에서 필요한 물건을 개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권재용은 이제 자신의 정보원이 되어 최전선에서 정보를 모아줄 이강우를 오키나와 미군기지 유적 연구소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정보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가르쳐줬다.

물론 모든 장소를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곳은 출입 금지 지역입니다.”

“저기 화장실 좀 쓰면 안 됩니까?”

“저쪽 화장실을 써주십시오.”

몇몇 장소는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데 이상하리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아니, 멀쩡한 화장실 놔두고 왜 다른 곳 가라는 거야? 화장실에 대단하신 분이라도 있나?’

지금도 그랬다. 화장실 표시가 있어서 가려니까 갑자기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무장 군인이 나오더니, 접근을 거부했다.

화장실 입장을 거부당하는 것만큼 세상에서 짜증 나는 일도 없지만, 어쩌겠는가? 무장군인이 무장한 채로, 총을 든 채로 이강우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데, 그 앞에서 감히 깽판을 부릴 수는 없다.

다행히도 이강우는 그 이유를 나중에 권재용을 통해서 알게 됐다.

“비밀 연구실이네. 겉보기에는 화장실이나 안 쓰는 창고처럼 꾸며두고 연구를 하지.”

“애초에 여기 연구소 자체가 비밀 연구소인데, 또 비밀 연구실이 있습니까? 대체 무슨 연구를 하는 겁니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대충 예상하면…… 미국 정부의 유적 관련 3대 프로젝트 중 일부겠지.”

권재용이 기분이 좋은지 이강우가 묻지도 않은 정보를 술술 알아서 토해냈다.

“3대 프로젝트는 뭡니까?”

“포탈, 현자의 돌 프로젝트, 프리. 이게 미국 정부는 물론 중국 정부를 비롯해 세계열강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연구 중인 3대 프로젝트지.”

“예?”

어마어마한 걸 들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강우가 멍한 표정을, 멍청한 반응을 보였다.

권재용은 옅게 웃었다.

“여하튼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서 좋을 거 없는 프로젝트지. 예를 들면…… 기생망고 양식 프로젝트 같은 건 현자의 돌 프로젝트에 속해 있지. 그런데 기생망고 양식이란 게…… 기생망고 씨앗을 가져다가 몬스터에게 억지로 먹이고, 기생망고가 자라나길 기다리면서 몬스터가 괴성을 내지르는 광경을 매일매일 풀 HD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거거든. 그게 공개되어서 좋을 건 없겠지?”

섬뜩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강우는 그래도 됩니까? 같은 멍청한 소리는 지껄이지 않았다. 몬스터를 썰어 먹는 이강우가 할 말은 아니니까.

그때 이강우의 눈에 물건을 운반하는 운반차 한 대가 들어왔다. 이강우가 권재용을 벽 쪽으로 가볍게 밀었다. 권재용도 운반차를 발견하고 벽에 등을 붙였다. 무언가가 가득 담긴 상자를 운반하던 운전수는 그 둘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차가 여러 대 다니는데, 저건 뭡니까?”

이강우는 이참에 모르는 거, 그동안 궁금했던 것 전부를 질문하기로 했다. 오늘이 기회인 듯싶었으니까.

“쓰레기 운반차. 몬스터나 유적에서 가지고 온 것들을 연구하고 남은 것들을 버려야지.”

폐기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강우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를 해도 음식물 쓰레기가 남는 법. 하루가 멀다 하고 연구용 몬스터가 오는데, 당연히 그만큼 쓰레기도 나올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

‘응?’

그 순간 이강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가만?’

아주 거대한 번개가.

‘가만!’

* * *

이강우가 유적 연구소에 들어온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한 달 동안 멜트 드래곤 연구는 생각보다 진전이 없었다. 특히 이강우가 가장 관심이 있는 멜트 드래곤 비늘의 강도, 내구성 테스트 같은…… 멜트 드래곤을 사냥할 때 큰 도움이 될 연구는 계획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멜트 드래곤을 맛보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겠어.’

또한 어마어마한 마력 덩어리인 멜트 드래곤을 어찌할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이강우는 필요할 때마다 멜트 드래곤의 몸뚱이에 들어가 해체 작업을 했지만, 일을 마치고 나오면 언제나 몸수색을 받았다. 멜트 드래곤이란 귀중한 연구 샘플 유출을 막기 위해서 보안을 위한 조치였고, 멜트 드래곤과 접촉한 모든 이들이 그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이강우는 결국 멜트 드래곤을 통해 마력을 섭취하려던 머릿속 시나리오를 폐기했다.

그림의 떡보다는 그냥 싼 맛에라도 먹을 수 있는 불량식품이 더 나은 법 아닌가?

이강우가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 * *

오키나와 미군기지 유적 연구소에는 곳곳에 휴게실이 있다. 그리고 휴게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 원두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인 거의 모든 종류의 카페인 음료가 마련되어 있었다. 연구원들이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연구소가 마련해놓은 배려였다. 때문에 연구소 직원들은 휴게실이란 표현보다는 카페인 충전소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카페인 충전소에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멜트 드래곤 연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망한 거지. 그건 연구 샘플이라고! 갈기갈기 찢고 해체해야 하는 건데, 아직 장기 적출도 다 안 끝났잖아? 이게 무슨 연구야?”

“맞아. 그렇게 다룰 거면 그냥 차라리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을 하는 게 낫지.”

“기증한다고 하면, 루브르 박물관도 자연사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해서 기증해달라고 할 텐데.”

연구소 연구원들의 최근 핫이슈는 당연히 멜트 드래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그 주제에 대해서 연구원들은 대부분 불만을 품었다. 눈앞에 유적의 비밀을, 5등급 몬스터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는 노릇.

이윽고 주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주제로 이어졌다.

“그보다 엣지리 실력은 진짜 끝내주더군.”

“해체 매뉴얼하고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몬스터를 해체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기존의 해체 매뉴얼보다 엣지리의 매뉴얼이 나은 것 같아.”

엣지리.

이상하기 그지없는 이 별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이강우였다.

최근까지 이강우는 연구소 곳곳을 다니며 여러 연구원과 두루 친분을 쌓고 있었다. 영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연구소 관계자들 대부분이 이강우에게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특히 모두가 멜트 드래곤을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 망설임 없이 멜트 드래곤의 위장으로 들어가 단숨에 용옥을 채취한 사건은 지지부진한 멜트 드래곤 공동연구팀의 행보에 짜증을 품던 직원들에게 스프라이트 같은 사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강우가 접근하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강우의 수준에 맞춰서 대화를 해줬다. 이강우가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 노력해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강우의 실력을 직접 본 연구원들은 이강우의 가치를 알기 시작했다.

“즈믄나래 소속이지?”

“즈믄나래라면 블랙 스택 소속이군.”

“아쉽다. 이곳 소속이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일선에서 뛰는 총꾼이라더군.”

“맙소사, 그럼 유적 안에 직접 들어간단 말이야? 마법사도 아닌데?”

“엄청나군. 그럼 유적에서 막 잡은 몬스터를 거의 산 채로 해체한다는 거 아니야?”

“닥터 권이 괜히 특급 조수라고 데려온 게 아니네. 데려올 만했어.”

언제나 연구재료 부족으로 고민하는 유적 연구소의 고민을 해결해줄 인재!

자연스럽게 이강우와 친분을 맺으려는 이들이 늘어났고, 결정적으로 이강우에게 자신의 연구 샘플인 몬스터 해체를 부탁하는 이들도 생겼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이곳 연구소 정식 소속이 아닌 이강우에게 샘플 해체를 맡긴다는 건, 그만큼 이강우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강우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이강우는 거의 공짜로 일을 해줬다. 추가 수당을 지급해줄 필요도 없었다. 수당 대신에 도축하고 남은 몬스터 고기의 일부를 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몬스터 고기를 가져가는 이유 역시 문제 될 건 없었다. 이강우는 몬스터 고기를 가져가는 이유를 먹기 위해서라고 말했고, 그 말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엣지리의 몬스터 요리 실력도 대단하다던데?”

“누가 그래?”

“말콤 소위가 말해주더군. 이강우가 만들어준 몬스터 요리를 먹었는데 대단했다고. 몬스터 요리가 그렇게 맛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고.”

“군인들에게 요리를 만들어준 거야?”

“군인 짬밥을 부러워하는 날이 올 줄이야.”

몬스터 섭취는 일반인들에게는 끔찍한 이야기지만, 유적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끔찍하기는커녕 유적 사냥의 패러다임을 바꿔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물며 유적 연구소는 유적 사냥의 트렌드를 제공하는 곳이다. 여기서 연구원들이 내놓은 결과물이 유적 사냥꾼들을 거쳐 트렌드가 된다. 당연히 몬스터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리가 없다. 연구원들 중에 몬스터 고기를 한 번도 안 먹은 인간은 있어도, 한 번밖에 안 먹은 인간은 없다.

“볼수록 탐나는 인재야.”

그렇게 이강우의 인지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그런 이강우가 작은 소란을 일으켰다.

* * *

헉헉!

거친 숨소리를 쉴 새 없이 내뱉으며 한 사내가 달리고 있었다.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사내의 얼굴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마라톤 선수와 흡사했다. 부정적이기 그지없는 감정이, 암울한 감정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내의 정체는 이강우, 그는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은 채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연구소 곳곳에 배치된 무장군인이 막았다. 다행히도 이강우의 최근 활발한 활동 덕분에 그의 얼굴을 알고 있던 무장군인은 경고 없는 사격 대신 조심스럽게 사정을 물었다.

이강우는 그들에게 어눌한 영어로 말했다.

“잃어버렸습니다. 내 반지. 포터의 연구실로 가는 중입니다.”

그저 단순히 비싼 반지를 잃어버렸다고는 볼 수 없는 안색.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군인은 이강우가 잃어버린 게 보통 물건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강우의 표정은 말없이도 상대방을 납득시키는 호소력이 있었다.

군인은 여기서 융통성을 발휘했다. 무전을 통해 이강우가 보다 빨리 포터 연구원의 연구실로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고, 덕분에 이강우는 이후 아무런 제지 없이 포터 연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포터 연구실의 문 앞에 도달한 이강우는 잠시 숨을 돌렸다. 잠시 숨을 돌린 뒤 문고리를 돌렸다. 살짝 돌린 후에.

쾅!

거칠게 문을 열었다.

“헉!”

오늘 일정이 끝나고, 이제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포터는 박살이 날 듯 열리는 문, 그 문 너머로 이강우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강우의 표정은 몇십 분 전 봤던 표정과 전혀 달랐다. 웃으면서 헤어질 때와는 달리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포터가 곧바로 질문했고 이강우는 자신의 왼손 약지를 오른손 검지로 가리키며 마이 링, 마이 링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정말 세상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반지? 반지를 잃어버렸어?”

“몬스터.”

이강우가 몬스터라고 말하자, 포터는 쯧! 짧게 혀를 찼다.

오늘 이강우는 포터의 연구를 도왔다. 포터의 연구 샘플로 도착한 몬스터를 해체해줬다.

당시 분위기는 좋았다. 이강우는 해체 과정을 하나하나, 부족한 영어 능력을 가졌음에도 최선을 다해 설명해줬고 작업이 끝났을 때 포터는 개인 연락처를 주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몬스터 해체 과정에서 이강우가 반지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그거 폐기물로 처리해서 버렸는데…….”

버렸다.

그 단어를 이해한 듯, 이강우가 곧바로 말했다.

“귀중한 반지. 아버지 유품.”

유품.

그 말에 포터의 얼굴이 더 굳었다. 그때 포터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버렸는데 소각 처분은 안 했겠지.”

이윽고 포터가 자신의 생각을 쉽게 풀어서 말했다. 버렸다. 하지만 소각은 안 했다. 직원을 보내겠다. 최대한 간단한 단어, 어린아이도 이해할 법한 단어를 사용했다.

그 말을 이해한 듯 이강우가 곧장 대답했다.

“내가 직접 나서서, 폐기물 저장소로 가서 찾겠습니다.”

그 순간 이강우의 입에서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능숙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이제까지 어눌했던 영어 실력이 연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혹은 지금 행동이 연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포터는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걸 의심할 때도, 그럴 정신머리도 없었다.

그는 이강우의 말만 곱씹었다.

‘폐기물 저장소에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나?’

폐기물 저장소에 버려지는 건 쓰레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위험한 구역이기도 하고, 보안 문제도 있다. 어쨌거나 뭐가 됐건 지금 포터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직원한테 물어볼게. 기다려봐.”

친해진 이강우를 위해 상황을 알아봐 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 * *

총꾼으로 지내다 보면 없던 취미도 생긴다. 특히 한자리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를 가지게 된다. 음악, 영화 감상 같은 취미가 대표적이다.

이강우의 경우에는 영화다. 그는 원래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총꾼이 된 이후에는 유적 사냥을 할 때도 그렇고, 유적 사냥을 하지 않을 때도 그렇고 언제나 영화를 봤다. 까놓고 말해서 영화 감상 말고 다른 걸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됐다.

그런 취미를 가진 이강우는 유주얼 서스펙트란 영화를 네 번이나 봤다. 그리고 그때 본 영화가 지금 이강우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강우는 연구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소각을 앞둔 폐기물을 모아두는 폐기물 저장소에 도착하고, 직원이 잠시 밖으로 나가는 사이, 그때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강우의 입가에 미소가 그어지기 시작했다.

연기.

이강우의 연기력은 그때 본 영화 덕분이었다.

“어휴, 냄새.”

이강우는 1천 평 남짓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박스와 나무 상자, 비닐로 된 봉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입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음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40인의 도적들이 보물을 쟁여 둔 비밀 창고 앞에서 열려라 참깨를 외치는 맛이 이런 맛이었겠군.’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 사람을 만나고 하는 대화 하나하나를 시나리오로 만들었고,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행했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강우는 고개를 들고 후흡!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악취가 코끝을 찌를 듯했지만 이강우는 조금의 불쾌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보물창고 냄새치고 좀 그렇지만…….’

불쾌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분석!’

마법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숫자의 향연 앞에서 과연 어찌 불쾌함을 느낄 수 있을까?

* * *

분석 마법을 쓰자 이강우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숫자는 엄청 많았다. 그 숫자를 전부 합치면 10만 포인트는 가뿐하게 넘을 듯했다. 만약 여기 있는 걸 전부 먹어치운다면, 이강우는 2서클 확보는 물론 3서클까지 개방할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한 기회!

하지만…….

‘과유불급.’

이강우는 여기서 괜한 과욕으로 스스로를 망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보물창고에 들어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보물창고에서 무엇을 얻어가느냐, 그게 중요한 거지.

일단 냉정하게 생각해서, 여기 있는 것들은 무게만 하더라도 수십 톤을 가뿐하게 넘어간다. 그걸 먹는다? 10년 내내 먹어도 먹을 수 없다.

그리고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먹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강우가 여기 있는 걸 다 처먹는다면, 이강우는 곧바로 멜트 드래곤 옆방으로 옮겨져서 멜트 드래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중요한 건 선택과 집중.

이강우는 커트라인을 분명하게 정했다.

‘마력이 많더라도 부피가 큰 건 제외.’

배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마력이 많아도, 괜히 먹었다가 더 가치 있는 걸 못 먹으면 그거야말로 진짜 배 아픈 일이다.

‘소지는 하지 않는다.’

또한 여기서 뭔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유적 연구소에서 물건 관리는 철저하다. 버리는 물건은 버려져야 한다. 버려야 하는 물건이 버려지지 않은 채 돌아다니면, 문제는 커진다.

만약 여기서 이강우가 멋대로 무언가를 가지고 나가다가 들키면 그냥 반성문 쓰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또한 이곳에서는 몸수색이 일상처럼 이루어진다.

즉, 무언가를 찾는 순간 여기서 직접 먹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해서, 이강우는 평소라면 없어서 못 먹었을 것들도 조건에 부합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포기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뒤졌다. 세 시간 동안 쓰레기더미를 뒤졌다. 자신의 몸뚱이가 쓰레기가 되어가는 걸 차츰 실감하게 될 무렵.

이강우가 대박을 찾은 건 그 무렵이었다.

‘이거?’

봉투 하나를 뜯으니, 꽃이 가득 차 있었다. 꽃은 저마다 소소한 마력을 품고 있었는데, 개중에 하나가 어마어마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그냥 마력이 아니었다.

[11,999/13,500]

1만 2천 포인트!

‘그래, 이게 로또지.’

아득한 수치다.

이강우는 조심스럽게 다른 꽃들 사이에 묻힌 그 꽃을 꺼냈다. 꽃은 마치 포도처럼, 옥처럼 보이는 작은 구슬들이 모여 성인 주먹 크기의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 순간.

‘설마…… 기예르모 레시피에 나온 제이드 플라워인가?’

이강우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분명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강우의 촉이,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게 마령화에 버금가는 대박이라고.

‘기예르모는 마령화가 제이드 플라워랑 비슷하다고 말했어. 그건 기예르모가 제이드 플라워를 먹었고, 무탈했다는 의미.’

여기서 다시 한번 기예르모 레시피의 도움을 받았다. 제이드 플라워에 독이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있더라도 이강우에게 문제 될 건 없다. 이강우에게는 부족하나마 2서클 해독 마법이 있으니까. 이미 거울을 통해 마법 슬롯에 해독 마법을 넣었다.

그럼 남은 건? 먹는 것뿐!

‘오케이.’

“잘 먹겠습니다.”

이강우는 제이드 플라워의 구슬 하나를 떼서 입에 넣었다. 사탕처럼 입 안에서 굴렸고, 살짝 깨물어봤다. 그러자 제이드 플라워가 캡슐처럼 터졌다.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왔다.

‘헉.’

그 순간 이강우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강우가 입을 벌렸으나,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목이, 식도가, 가슴이 타버려서 소리를 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

제이드 플라워의 맛은…….

‘씨발 좃나 맵잖아!’

지독할 정도로 매운맛이었다.

* * *

[이강우]

-마력: 2서클 개발 중(43% 완료)

-보유 마법: 5개

-마법 슬롯: 2개

-섭취 마력: 22,120포인트

작은 손거울 속에 초록빛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강우의 눈에 그 글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강우는 그 글자 틈 사이에 위치한 자신의 입술만을 바라봤다.

‘명란젓 두 덩이가 갑자기 생겼군.’

이강우의 입술은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강우는 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슬그머니 만졌다.

‘으으!’

만지는 순간 아릿한 통증이 전심을 두드렸다. 이강우는 너무 아파서, 쓴웃음을 짓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그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마령화…… 그거 먹고 투정을 부린 내가 나쁜 놈이었어.’

제이드 플라워.

겉모양은 작은 옥구슬을 뭉쳐 만든 포도와 비슷하다. 그래서 먹으면 포도처럼 상큼한 느낌이 날 것 같이 생겼다.

그런데 그 속에 악마가 있었다. 정말 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독하고, 사악한 놈이 그 구슬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맵다? 차라리 맵다는 맛을 느낄 수 있으면 고마운 수준이다. 원래 매운맛 자체가 맛이 아닌 통증이지만, 제이드 플라워의 매운맛은 그 수준을 초월했다.

‘미친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강우도 나름 매운 것 좀 먹어봤지만 그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걸 먹느니, 쥐똥고추를 캡사이신 소스에 찍어 먹는 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

‘기예르모 이 새끼 대체 뭐 하는 새끼야?’

오죽하면 애꿎은 기예르모에 대한 분노가 차오를 정도다. 아주 근거 없는 분노는 아니었다.

‘이게 마령화랑 비슷하다고?’

기예르모 레시피의 내용에 따르면, 기예르모는 마령화의 전체적인 느낌이 제이드 플라워와 비슷하다고 했다.

이강우는 당연히 그가 말하는 비슷함이 효능 혹은 맛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마령화와 비교될 만한 놈이니 분명 맛은 없을 것이다. 마령화 수준으로 썩은 맛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나름 각오하고 작은 알 하나만 떼어서 입에 넣었고, 조심히 씹었는데…….

‘기예르모 미친 새끼. 이런 건 경고를 해주라고! 이모티콘 낙서할 시간이 있으면 이런 걸 적으라고!’

여하튼 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더 미치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한 번 맛을 본 이후 구슬이 알알이 박힌 제이드 플라워를 바라보는 이강우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분석 마법을 통해 제이드 플라워 위에 보이는 1만이 넘어가는 마력 포인트 역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젠장.’

하나 먹고 죽을 뻔했는데, 아직 그런 걸 스무 알 정도 더 먹어야 하는 상황.

물론 이강우는 차마 이것을 주둥이로 씹을 자신이 없었다. 이미 한 번 씹은 것만으로도 입술이 터질 기세인데, 이걸 전부 씹어 먹었다가는 아마 입술파열로 인한 과다출혈이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죽음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남은 건 하나.

‘……버텨줄까?’

전부 그냥 삼키는 것. 그냥 위장으로 집어넣는 거다.

하지만 이마저도 걱정이 됐다. 과연 이 폭탄이나 다름없는 것들을 위장에 전부 집어넣으면 위장이 무사할까? 불꽃꼬리도 거뜬히 소화한 위장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확신보단 우려가 더 컸다.

그러나 이강우에게 고민을 위해 주어진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답은 둘 중 하나다.

먹느냐, 마느냐.

‘1만 포인트.’

이강우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위장아 미안해.’

그때 이강우는 몰랐다. 자신이 사과해야 하는 대상이 위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 * *

제이드 플라워를 먹은 이후 이강우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하나, 제이드 플라워는 훌륭한 무기로 쓰일 수 있다. 만약 몬스터에게 제이드 플라워를 먹인다면, 어지간한 마법을 먹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사실 둘, 이강우의 위장은 제이드 플라워도 소화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이강우가 치른 대가는 쓰린 속을 부여잡은 채 십여 분 동안 쓰레기더미나 다름없는 폐기물 저장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었다.

폐기물 저장소 관리직원이 잠깐 볼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게 천만다행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관리직원이 이강우를 제대로 의심했을 테니까.

그렇게 위장에 용암을 부어 넣은 듯한 지독한 통증이 잦아든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난 이강우, 그의 눈 속에서 사라졌던 초점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초점이 돌아왔을 때, 이강우의 눈에는 서슬 퍼런 독기가 어려 있었다.

‘오냐.’

지옥을 경험한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빌어먹을 것도 먹었는데 이제 못 먹을 게 뭐가 있어? 뭐든 나오기만 해라. 아주 제대로 씹어 먹어줄 테니까.’

독기 어린 눈으로 이강우는 다시 한번 분석 마법을 사용했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이강우에게 신이 보답이라도 해주려는 듯, 다시 한번 강력한 마력의 흐름과 강렬한 숫자의 모임이 보였다.

이강우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숫자를 향해 걸었다. 3미터 높이로 쌓인 하얀색 비닐봉지 산, 이강우는 그 산을 올랐고, 마력이 집중된 비닐봉지를 주변에서 주운 못을 이용해 찢었다. 봉투를 찢는 순간, 꽃향기가 흘러나왔다. 여러 꽃의 향기가 뒤섞이고, 썩으면서 나는 향은 꽤 역겨웠다.

‘어?’

하지만 이강우는 그런 꽃향기에 눈살을 찌푸릴 여유조차 없었다. 독기로 어렸던 이강우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초가 되는 순간.

‘설마…….’

이강우가 조심스럽게 꽃 무리를 헤쳤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건…….

“……진짜 씨발.”

두 번째 제이드 플라워.

이강우에게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다.

* * *

[1,550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2서클이 개방됩니다.]

[새로운 마법 슬롯이 추가됐습니다.]

2서클 개방!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룩했다.

그러나 이강우는 환호에 차며 양손을 머리 위로 드는 행위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알림을 바라보는 이강우는 어제보다 더 탱탱하게 부어오른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야 목표달성.’

이강우는 폐기물 저장소에서 이틀을 보냈다.

첫날에 아버지 유품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한 뒤, 아버지 유품을 한 번 더 찾아보겠다면서 다음 날 한 번 더 찾아왔다.

이 역시 계획의 일부였다. 이틀에 걸쳐 조사를 하는 것. 더불어 입술이 부풀어 오른 건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뻥을 쳤다. 폐기물 관리소 관리직원은 그런 이강우의 설명에 유품이 아니라 의사를 먼저 찾아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이강우는 혼신의 눈빛 연기력으로 적당히 상황을 넘겼다.

그렇게 이틀 동안 이강우는 무려 47,223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섭취할 수 있었다. 불사황제의 권능을 얻은 이후 이제까지 먹은 포인트보다 많은 포인트를 고작 이틀 만에 먹어 치운 것이다.

물론 그게 가능했던 건 첫날 발견한 두 송이의 제이드 플라워 덕분이었다. 2주 연속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어려운 기적,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적이 2서클 개방을 가능케 했다. 실제로 제이드 플라워 두 송이로 섭취한 마력 포인트만 2만 5천 포인트로 폐기물 저장소에서 섭취한 전체 마력 포인트의 절반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강우는 그 사실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해 줄 수가 없었다.

‘어제…… 뭘 좀 먹으니까 또 반응이 오네. 젠장, 어제 그렇게 쌌는데 아직도 나오다니…….’

사실 대단한 일이다.

막말로 제이드 플라워가 마령화와 같은 효과를 가질 가능성, 그런 제이드 플라워가 두 송이나 연구소 폐기물 저장소에, 그것도 일정 시간마다 폐기물이 소각되는 상황에서 동 시간대에 있을 확률, 그걸 이강우가 용케 발견할 확률, 이런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확률로는 가늠할 수 없다. 기적이란 단어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일.

결과물도 대단하다.

2서클 마법사!

다른 것도 아니고 2서클 마법사가 됐고, 여기에 현재 사용 가능한 마력 포인트가 5만 포인트를 넘어간다. 실버북을 구매하고도 포인트가 넉넉히 남는 상황이다.

만약 보통 때의 이강우였다면 지나가는 무장군인을 붙잡고 탱고를 한판 췄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건, 후유증 때문이었다.

위장은 제이드 플라워를 소화했지만, 안타깝게도 대장은 제이드 플라워를 버티지 못했다. 제이드 플라워를 먹은 그날 밤 이강우는 영혼이 항문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체험을 했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있었다.

이강우는 꾸루룩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이를 꽉 물었다. 덕분에 폐기물 저장소 탐사 이틀째인 오늘이 제이드 플라워 두 송이를 먹은 어제보다 더 지옥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정말 인생을 살면서 쌓아온 모든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탐색을 했다.

여기에 어제와는 다르게 폐기물 저장소를 관리하는 직원이 이강우에게 같이 찾아주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도움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 결국 그런 그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당장 절규를 내뱉고 싶어 하는 배를 부여잡고, 몬스터의 고기나 내장, 꽃 따위, 심지어 상태가 변질된 듯 역한 냄새마저 나는 것을 억지로 먹어 치우는 건…… 이강우는 그저 2서클 마법사만 되자, 그 일념 하나로 버텼다.

‘그래, 이제 나가자.’

그 인내도 이제 그것도 끝이다.

이강우는 곧장 폐기물 저장소를 나갔다. 직원이 그런 이강우를 불렀지만, 못 들은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당연히 목적지는 화장실이었다.

‘버텨라. 버텨.’

이강우가 다시 한번 신을 찾았다.

* * *

고급스럽다는 표현을 넘어서 사치스럽다는 표현을 써야 할 법한 한식당. 일반적인 건물이 아닌, 오랜 세월의 흐름이 어린 한옥집 안에 위치한 한식당은 보통 사람은 예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운영되는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 안중현과 이우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상관하고만 있는 게 편할 리 만무한 이우희는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시간만 보냈고, 안중현 역시 마련된 한방차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가만히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드르륵!

방문이 열리며,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가 등장했다. 사내는 등장하자마자 짧게 인사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등장한 이는 다름 아니라 하선우였다.

“요즘 바쁜가 보군.”

“저도 언제까지 연예계 활동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슬슬 사냥을 준비해야죠.”

말과 함께 안중현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그는 짝짝, 박수를 딱 두 번 쳤다.

“자격 얻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원하셨던 걸 이제야 얻으셨군요. 더불어 신기록 축하드립니다. 7등급 유적 사냥 중에는 역대급 수준이더군요.”

안중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반쪽짜리 자격증이지. 채유리가 내 파티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위에서 6등급 유적 사냥을 허락할 일은 없을 테니까. 온갖 이유로 유적 사냥 계획안을 반려하겠지.”

“그래도 그게 어디입니까? 반대로 안 선배가 공주님만 잘 다루실 수 있으시다면, 6등급 유적 사냥도 문제없을 겁니다.”

“그게 안 되니까 문제지. 지금 그녀를 다루는 것조차 외주로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강우 말이군요.”

그 무렵 다시금 문이 열리며 요리가 들어왔다. 잠시 멈춘 대화는 식사와 함께 다시 시작됐다.

“그보다 이강우의 마나 서클이 추가로 개방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까?”

“확인할 여유가 없었네. 유적 사냥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블랙 에이전트가 데리고 갔으니.”

“어디로…… 같은 질문은 무의미하겠군요. 블랙 에이전트들이 자기들 행사를 마법사에게 말해줄 리가 없죠.”

“오히려 자네라면 알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빌려 묻고 싶었는데 자네도 모르나 보군.”

“블랙 에이전트는 블랙 스택 소속이니까요. 즈믄나래의 일개 마법사 나부랭이인 제가 감히 그들 행사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 것치고 요즘 벌리는 일이 많더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4등급 유적 사냥 파티 모집에 신청서를 냈다고?”

“예의상 냈습니다. 설마 제가 선별되겠습니까? 쟁쟁한 마법사들이 달라붙을 텐데. 그보다 혹시 이강우의 정체가 드러난 거 아닙니까? 그가 마법사란 사실이…….”

말을 하던 하선우가 슬며시 이우희를 바라봤다. 이우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이강우가 마법사라는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꽃등도마뱀 사냥에 참가했던 다섯뿐이다.

만약 하선우와 그가 함께 한 최측근 총꾼 두 명이 정보 유출자가 아니라면 나머지 의심 상대는 이우희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우희가 정보를 유출했을 리 없다.

“이강우가 탐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지. 저번에 유적 연구소에서도 불렀으니…… 그러고 보니 권 박사가 불렀지.”

“지금도 그렇지만 이강우가 마법사로 재능을 발휘하면…… 만약이지만 3서클 이상을 개방한다면 이강우의 위치는 꽤 독보적으로 변할 겁니다.”

주제가 자연스럽게 이강우로 넘어갔고, 안중현은 그 주제의 전환을 받아들였다.

“그런가?”

“몬스터 도축 기술은 약간만 응용하면 정말 섬뜩한 사냥기술이 될 테니까요.”

“가위손 버튼을 말하는 건가?”

“가위손 버튼…… 대단한 마법사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몬스터를 해체하는 건 이강우가 그보다 낫다고 봅니다.”

“대단한 칭찬이군.”

말과 함께 안중현이 술과 함께 나온 인삼주를 스스로 술잔에 따른 후에 짧게 마셨다.

“달리 말하면 내가 이강우를 마음대로 손에 쥘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의미이군.”

하선우가 곧바로 인삼주가 든 병을 들고 비어있는 안중현의 술잔에 따르며 말했다.

“마나 서클의 추가 개방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 얼마간은 문제없겠지만…… 아니, 솔직히 말하면 6등급 유적 사냥을 시작하면 어떤 식으로든 들킬 겁니다. 7등급 유적 사냥은 모든 게 파티장 재량으로 가능하지만 6등급 유적 사냥은 그게 안 되니까요.”

“그가 마나 서클을 추가적으로 개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적어도 보는 것과는 다르게 속에는 섬뜩한 야수 한 마리는 키우고 있습니다.”

야수.

그 말에 안중현과 이우희가 이강우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솔직히 이강우는 야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이우희는 하선우가 괜한 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했고, 안중현은 만약 하선우의 안목이 사실이라면 이강우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무서운 놈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내 소관 밖의 일이군. 그때 가면 나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그럼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요즘 6등급 유적 사냥 트렌드를 좀 말해주게.”

이 자리.

과거에 하선우가 안중현을 상대로 밥 한 끼 사달라고 했던 것 때문에 마련된 자리가 아니었다.

안중현, 그는 6등급 유적 사냥을 앞두고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가진 하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이강우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외전 같은 이야기다.

“7등급하고 다를 건 없습니다. 결국 본질은 간단합니다. 보다 강한 몬스터가 있을 뿐이죠.”

“그래도 그 바닥 트렌드가 있을 텐데?”

“요즘 트렌드는…… 역시 독이겠죠.”

독.

그 말에 안중현은 고개를 갸웃했고, 하선우는 말을 이어갔다.

“초창기 유적 사냥 트렌드는 안 선배 마법처럼 화염계 마법이 대세였지만, 요즘 대세는 저주 마법과 독 마법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6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마법사의 육체 능력은 너무 나약합니다. 마법을 쓰기도 전에 몬스터에게 당하는 경우도 많으니, 저주 마법이나 독 마법으로 잡으려는 놈의 능력을 어느 정도 반감시켜야 계산이 가능해지죠.”

“독이라…….”

“몇 달 전에 독술사가 기생망고거북을 거의 산 채로 잡으면서 갑자기 대세가 됐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그냥 독 마법을 쓴다고 해도 쉽게 안 먹힐 텐데? 6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먹히는 독 마법이라면 최소 3서클 이상…….”

“원래 독 마법은 비주류였는데, 최근 트렌드가 된 건 몬스터 독을 이용한 덕분입니다. 몬스터 독을 베이스로 삼고, 독 마법으로 블렌딩을 하면 더욱 좋죠.”

유적 사냥은 나날이 발전한다. 유적 사냥을 위한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무기가 나오니까.

“독이라…… 어디 제품이 좋나?”

“멜빗 사 제품이 좋긴 합니다. 독술사 녀석도 거기 제품만 쓰니까…… 인간적으로는 이상한 놈이지만, 그 까칠한 녀석이 멜빗 사 제품만 쓰는 것만 보더라도 검증은 된 거죠. 그리고 당연히 아시겠지만 버퍼가 필요할 겁니다. 맨몸으로 6등급 몬스터와 싸우는 건…… 위험하죠.”

“이우희가 버퍼 역할을 맡을 예정이네.”

그 말에 하선우가 이우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우희가 말입니까?”

“문제라도 있나?”

“없습니다. 그래도 버퍼 마법이면…….”

하선우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아니다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어깨만 으쓱했다. 안중현은 그가 하려던 말이 뭔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선우는 괜히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게 싫은지 대화 주제를 바꿨다.

“6등급 유적 사냥은 언제 가실 겁니까?”

“10월 1일.”

“생각보다 일찍 잡혔군요.”

“6등급 모래시계문 클로즈 경력이 생기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번 기회가 올 테니까. 그나마 최고의 전력을 이끌 수 있을 때 움직여야지.”

말과 함께 안중현이 재차 인삼주를 들이켰고, 하선우가 다시금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런데 굳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6등급 유적 사냥에 도전하시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그 질문에 안중현이 쓰게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에 4등급 유적 사냥 파티에 신청서를 제출하는 마법사가 할 법한 질문은 아니군.”

하선우가 밝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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