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13화 (13/66)

13화. 자격

구오오오!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한 채 바닥에 엎어지는 기생망고거북의 입에서는 구슬픈 울음이 흘러나왔다.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주둥이, 분명 필요할 때는 그 날카로운 부리로 먹잇감을 사정없이, 잔혹하게 찢어먹었을 터인데 그 부리에서 나오는 구슬픈 음색 때문인지 녀석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처량한 구석은 음색만이 아니었다. 컨테이너보다 큰 럭비공 모양의 등껍질 아래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을 비집고 나온 다리 네 개 중 멀쩡한 다리가 없었다. 분쟁지역에 흩뿌려진 지뢰를 밟은 전쟁 난민의 다리처럼, 무참했다. 실제로도 지뢰를 밟아 생긴 상처였다. 안중현이 만들어낸 불지뢰 말이다.

엎어진 탓에 보이진 않았지만 뱃가죽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등껍질만큼 단단한 뱃가죽이지만, 아래에서 솟구치는 불지뢰의 불기둥은 뱃가죽을 녹일 정도로 뜨거웠다.

여러모로 처량한 모습.

그러나 그런 기생망고거북을 향해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녀석도 죽을 때가 되니까 처량한 모습을 하는군.”

“처량한 게 아니라 가증스러운 거겠지. 솔직히 몬스터 중에서도 악질적인 놈이잖아?”

“등에 난 저 기생망고로 다른 몬스터를 노예처럼 다루다가, 결국에는 위장이 기생망고나무로 터져 죽게 만드니…… 처량하기보다는 천벌을 받는 셈이지.”

총꾼들은 총구로 여전히 기생망고거북을 겨눈 채,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기생망고거북을 향한 감정을 한마디씩 토해냈다.

그런 기생망고거북이 보이는 곳, 적당히 거리가 있는 곳에서 기생망고거북을 처치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안중현이 툭 튀어나온 나무뿌리 하나를 의자 삼아 앉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이우희의 물음에 안중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었다. 기생망고거북을 잡기 위해 불지뢰 마법을 연거푸 사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생망고거북을 잡기 전에는 코뿔늑대를 상대로 불지뢰 마법을 사용했다. 4서클 마법사가 3서클 마법을 연거푸 사용했는데 컨디션이 마냥 좋으면 4서클 마법사가 아닌 거다.

그나마 안중현이니까 버티고 있는 거다. 다른 4서클 마법사들은 이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한다. 하기 전에 마력 쇼크로 쓰러질 테니까.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안중현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의외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이우희가 안중현에게 말을 건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안중현은 유적 사냥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정말 죽을 것 같아도 담담한 표정을 짓는다.

리더니까.

안중현이 힘든 기색을 보이면, 더 힘들어지는 건 부하들이다.

사실 안중현도 어지간하면 담담한 기색을 갖추고 싶었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이 끝난 게 아니었다.

“여차하면 마무리는 이우희, 네가 하도록.”

기생망고거북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 여기에 기생망고거북을 도축해줄 이강우가 없었으니까. 그냥 죽여도 무방하지만, 그래도 이강우의 도움을 받아 기생망고거북을 보다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녀석이 가진 가치를 더 확실히 알아낼 수 있다면 나쁠 건 없다.

물론 여차하면 죽인다.

그 역할을 안중현은 이우희에게 줬다. 이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의문을 품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아무리 봐도 안중현의 지금 모습은 평소 유적 사냥을 할 때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해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성취감이라는 놈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습겠지만, 지금 안중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에 다리가 풀린 상황이었다.

‘드디어 자격을 확보했다.’

길드 소속 유적 사냥 파티 다섯 개가 실패한 7등급 유적.

여기에 7등급 몬스터, 기생망고거북과 목각귀신 두 마리가 유적 내에 존재했다. 심지어 유적 타입은 두 몬스터가 가진 은신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정글 타입이었다.

단언컨대 이번 유적은 7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유적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유적이다. 이 유적보다 더 어려운 유적은 6등급 이상의 유적밖에 없다.

그런데 그 유적을 클리어했다.

‘피해자 전무.’

아무런 인명 피해, 재산 피해도 없이.

‘핵심 몬스터 처치에 3일.’

심지어 유적 클리어, 즉 위협적인 몬스터 제거에는 고작 3일이란 시간밖에 소모되지 않았다.

‘4일 안에 출문을 발견하면…… 일주일 안에 클로즈에 성공하는 셈이 되겠군.’

남은 건 유적 사냥의 핵심인 출문을 발견하는 것뿐. 하지만 이미 어려운 몬스터들을 전부 제거한 상황에서 출문 확보는 그냥 시간 싸움일 뿐이다. 힘들 건 하나도 없다.

모든 요소들이 기념비적이라고 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들을 전부 종합한다면?

‘길드 신기록이겠군.’

역대급 기록, 적어도 즈믄나래 길드에서 이 정도 난이도의 7등급 유적 사냥을 일주일 만에 클로즈 한 기록은 없다. 신기록이 맞다. 안중현, 그가 이끄는 유적 사냥 파티가 7등급 유적 사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즈믄나래는 안중현에게 6등급 유적 사냥을 위한 자격을 줄 수밖에 없다.

자격을 준다는 건 의미가 크다. 단순히 6등급 유적에 도전해도 좋다, 이걸 허락해주는 게 아니다. 즈믄나래라는 길드가 안중현의 6등급 유적 사냥 성공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의미다. 물질적인 지원은 물론, 가장 큰 건 6등급 유적 관련 정보가 공개된다. 지금 안중현이 스택 레코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6등급 유적 관련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자격만 획득하면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동시에 5등급 유적 관련 정보도 일부 얻을 수 있다.

현재 최상위권 마법사들이 주력으로 사냥하는 유적 등급이 5등급이다. 5등급 유적 사냥을 통해 5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다수 확보하는 게 4등급 유적 사냥을 위해 꼭 필요한 선행조건이었으니까.

물론 희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이강우와 채유리군.’

이번 유적 사냥으로 즈믄나래는 안중현에게 자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자격은 주지 않을 것이다.

조건부 자격.

채유리, 그녀를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문제는 안중현, 본인이 채유리를 지휘하지 못한다는 것. 채유리를 다룰 수 있는 건 이강우뿐이다.

결국 이강우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떡밥 하나를 던졌다. 이강우, 그에게 기생망고를 부작용 없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줬다. 더 나아가서 그에게 그 방법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기생망고 처리법은 극비.’

기생망고에 대한 정보는 길드 중에서도 일류 길드 정도만이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기생망고를 부작용 없이 섭취할 수 있는 처리방법은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다. 기생망고가 가진 가치가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기생망고 처리법이 대중화되면, 기생망고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기생망고 거래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거래에 제약을 걸 수 있다. 기생망고의 도움을 받으면 마법사가 연거푸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니까.

유적 사냥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런 정보를 이강우에게 알려 준다는 것, 두 가지 의도가 있다.

하나는 이강우에게 약점을 만들 생각이었다. 언제든 안중현이 이강우와 같이 죽을 수 있는 여지를 말이다.

두 번째는 증명이었다. 안중현은 단순히 돈 따위로 사람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다룰 뿐이다. 진짜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요소를, 돈은 물론 그 외의 가치를 보여 줘야 한다.

안중현은 이강우에게 그걸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강우, 나를 따르면 대우는 절대 섭섭하지 않을 거다.’

이제 안중현에게 있어 이강우는 절대 놓을 수 없는 핵심 파트너나 다름없었다.

* * *

사냥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으로 가득 찬 자신의 몸에 휴식을 줬다.

그러나 이강우는 그들처럼 쉴 수 없었다. 그에게는 몬스터 도축이란 중요한 역할이 남아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도축은 언제나 그렇듯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일단 이강우는 가장 먼저 기생망고거북부터 도축을 했다. 채유리와 싸웠던 박쥐뱀을 도축하려고 했지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기에 도축을 포기했다. 도축을 한다고 해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기생망고거북의 도축은 쉽지 않았다.

자라를 손질하는 것처럼 등껍질과 살점이 이어지는 사이, 칼질이 가능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나마 뱃가죽이 자를 만했지만,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그놈을 뒤집을 방법이 없었다.

그런 기생망고거북을 도축하기 위해 이강우가 쓴 방법은 다름 아니라 껍질 깨기였다.

일단 기생망고거북의 사지와 목을 잘랐다. 잘라낸 부위는 따로 보관했고, 절단면에서 나오는 기생망고거북의 피도 따로 모았다.

‘얘는 피가 진짜배기네.’

분석 마법을 통해 기생망고거북의 피에 상당량의 마력이 있다는 걸 파악했기에 한 조치였다.

물론 그런 이강우의 행동에 이야기를 들은 안중현이 의문을 제기했다.

“기생망고거북의 피? 검증되지도 않은 걸 무슨 이유로 모으는 거지?”

몬스터 요리는 지금도 연구 중인 분야다. 때문에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도 되지 않은 것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안중현의 머릿속에 기생망고거북 요리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기생망고거북에 대해 알 리 없는 이강우가 고기도 아니고 피를 모은다고 했으니, 의심이 갈 수밖에.

이 부분에 대해서 이강우는 정말 남자라면 믿을 수밖에 없는 명분을 내세웠다.

“자라 피가 정력에 그렇게 좋다는데, 기생망고거북 피도 비슷할지 모르잖습니까?”

근거는 없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남자인 안중현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렇게 기생망고거북의 피를 모았다. 물론 피를 당장 먹는 건 불가능했다.

‘이걸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강우 입장에서는 버리는 것보단 일단 모아두는 게 나으니까 모으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기생망고거북의 피를 벌컥벌컥 마실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이강우는 그 문제는 뒤로 미뤄두었다. 지금은 무조건 먹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먹을 가치가 있는 것들, 마력이 있는 것들을 모아두는 게 우선이었다.

기생망고거북 도축을 끝낸 이강우는 곧바로 박쥐뱀 도축에 들어갔다. 채유리가 아닌 이우희가 잡은 녀석으로 상태가 괜찮았다.

박쥐뱀 도축은 기생망고거북 도축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몰래 쓰면 들키지 않겠지.’

특수하게 제작된 도축 도구를 쓰면서 이강우는 간간이 마력검 마법을 사용했다. 덕분에 박쥐뱀 도축은 기생망고거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일단 머리를 베어냈고 머리는 곧바로 다른 총꾼에게 건네줬다. 사실 몬스터 도축이 아니라면, 박쥐뱀은 머리만 가지고 가면 된다. 마나스톤은 물론 독니를 비롯해 가죽까지, 박쥐뱀의 몸뚱이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위는 머리에 집중되어 있었고, 어지간한 총꾼들은 박쥐뱀의 머리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굳이 이강우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강우는 머리를 자르고, 네 장의 날개도 자른 후에 곧바로 껍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박쥐뱀의 피는 훌륭한 자양강장제지.’

스텍 레코드에 따르면 박쥐뱀의 피는 자양강장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독!

박쥐뱀의 피에는 독기가 있다. 박쥐뱀의 독니에서 나오는 독에 비해서는 가소로운 수준이지만, 이 독기를 제거하지 않은 채 많은 양의 독을 마실 경우에는 목숨이 위험하다고 한다.

물론 독이니까, 해독 마법을 쓰면 무리 없이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이강우는 해독 마법을 쓰는 대신 일찌감치 머릿속에 생각해두었던 방법을 써먹었다.

‘코뿔늑대의 코뿔이 가진 해독 효과가 통할까?’

잡은 코뿔늑대의 숫자가 꽤 됐다. 당연히 확보한 코뿔의 숫자도 상당했다. 그런 코뿔늑대의 코뿔을 갈아 만든 가루를 박쥐뱀의 피에 넣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스텍 레코드에도 그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강우는 곧바로 시도를 했다.

‘멍청한 생각이 멋진 요리를 만드는 법이지.’

요리사는 뭐든 해봐야 한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요리는 천 번 실패해도 한 번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면 성공이니까.

아니, 솔직히 이건 요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실험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디 한번…….”

이강우는 박쥐뱀의 피를 소주잔의 절반 정도 채운 후에 곧바로 코뿔 가루를 티스푼으로 반 스푼 정도 넣었다. 붉은 핏덩이에 짙은 회색빛의 코뿔 가루가 섞였다.

‘어쭈?’

그러자 재미난 반응이 일어났다.

붉은색의 박쥐뱀 피가 반투명하게 변했다. 예상외의 반응에 이강우의 눈빛이 빛났다.

‘이것 봐라?’

이강우가 눈빛을 빛내면서 소주잔에 혀를 살짝 담갔다. 사실 소주잔 반 컵 정도 양이면 해독하지 않고 그냥 먹어도 건장한 성인 남자에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배 좀 아프고, 열 좀 나고…… 그 정도다. 혹여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강우 본인이 가진 해독 마법을 쓰거나 아니면 코뿔 가루를 가루약 먹듯 입에 털어 넣어도 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일단 독이 있다고 하면 겁부터 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살짝 맛만 봤다.

그리고 그 맛.

“크!”

썼다.

그런데 그 쓴맛은 고약한 쓴맛이 아니었다. 혀에 닿는 순간 쓴맛과 함께 묘한 풍미가 느껴졌다. 쓴맛을 경험한 혀가 보잘것없던 단맛을 더 강렬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거 고량주 느낌 나는데?’

술맛과 비슷했다.

이 순간 이강우가 소주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코뿔 가루를 섞은 박쥐뱀의 피를 입에 넣었다. 쓴맛이 혀를 자극하면서, 혀가 더욱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꿀꺽!

이윽고 박쥐뱀의 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기분 좋은 열기가 목구멍을 어루만지고, 가슴 속이 따스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캬!”

절로 탄성이 나오는 이 맛.

동시에.

[6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마력 섭취를 알리는 알림도 떴다. 이 작은 양이 6포인트라면, 2리터짜리 페트병 가득 채운 피를 먹으면 마력 포인트가 꽤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강우에게 지금 당장 마력 포인트 섭취는 중요치 않았다. 이강우는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었다. 초콜릿이 어울리는 안주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당장 먹을 수 있는 게 초콜릿밖에 없었다.

그리고 초콜릿을 입에 넣자.

‘그래, 이거지.’

쓴맛과 개운함으로 한껏 민감해진 혀와 코가 초콜릿이 가진 단맛과 풍미를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평소 초콜릿을 먹었을 때는 절대 알지 못했던 단맛과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이게 술의 매력이다. 그 자체의 맛이 아니라, 다른 요리를 보다 맛있게 해주는 매력!

‘안주가…… 그래, 고기를 구워서 같이 먹으면 딱 좋겠네.’

이강우의 머릿속에는 고기가 떠올랐다. 이건 무조건 안주와 함께 먹어야 한다. 특히 고기! 적당한 기름기를 가진 고기를 먹은 후에 박쥐뱀 피 한 잔으로 입 안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다시 씁쓸함이 남아있는 입 안에 고기 한 점을 넣으면…….

‘그래, 구울 거면…… 숯불이 제격이지.’

하물며 그냥 팬에 구운 고기가 아니라 숯불에 구운 고기라면?

“가만, 그게 숯불이 되려나?”

그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 숯덩이가 되어버린 목각귀신이 떠올랐다.

* * *

최단 시간 내에 유적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7등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 출문 탐색 및 잔당 처리에 나선다.”

7등급 몬스터에 비해서 잔챙이 취급을 받을 뿐이지, 9등급이나 8등급 몬스터도 괴물이다. 환수 타입 같은 경우는 베테랑 총꾼이 얼마가 모여도 어찌할 수 없다.

방심은 곧 죽음.

그런 상황 속에서 이강우가 제대로 판을 벌였다.

“오늘 요리는 숯불입니다.”

다른 총꾼들이 유적 탐색을 위해 정글 곳곳에 날린 드론이 찍는 영상을 눈알이 빠지도록 보고, 보급품 정리 및 몬스터 사냥을 위해 무기를 점검하고 있을 때, 이강우는 수 시간 동안 요리 준비만 했다. 만약 이강우가 보통 총꾼이었다면 진즉에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 유적에서 요리 준비에만 수 시간을 사용하는 경우는 절대 없으니까.

그런 이강우가 그 수 시간의 준비 끝에 내놓은 요리는 다름 아니라 숯불!

습하고 더운 정글에서 숯불 요리라니, 절로 목젖에 땀이 맺힐 듯한 소리였지만 의외로 싫은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숯불이라,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솔직히 이런 날씨에는 차라리 숯불구이와 소주 한 잔이 제격이지.’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조리법 중 하나가 숯불구이다. 한국에서는 어지간한 건 죄다 숯불에 굽는다. 소, 돼지, 닭, 해산물까지…… 오죽하면 숯불 향을 위해서 목초액을 사용할까?

더군다나 이강우는 꽤 그럴싸한 걸 준비했다. 마치 철판 요리 전문점처럼 이강우 본인이 가져온 여러 장의 석쇠를 일렬로 쫙 깔아 놓았다. 본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구워서 제공할 생각.

그리고 그런 이강우의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현실에서의 광경이 아니라 요리 만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당연히 경계를 서는 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았다. 채유리는 이강우 바로 앞에 앉았다. 젓가락까지 들고 있는 그녀는 이강우가 고기를 굽는 순간 곧바로 젓가락으로 날름 먹을 속셈이었다.

그때 이우희가 의문을 가졌다.

“숯이 있었나요?”

요리도구는 이강우가 직접 가져왔다. 채유리의 입맛을 최대한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하지만 숯은 가져오지 않았다.

사실 숯불 요리는 유적에서 해서는 안 된다. 냄새가 너무 심하게 몸에 남는다. 탈취제를 써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먹으려고 하면 못 할 건 없지만,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숯불 요리를 먹을 필요는 없다.

그나마 지금이니까, 가장 위협적인 몬스터들을 제거한 지금이니까 먹을 수 있는 요리. 그래서 숯불 요리에 대해서 이우희는 딱히 의문을 제기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숯불의 정체가 궁금할 뿐.

“목각귀신의 사체입니다.”

“예?”

이우희가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이강우가 부채처럼 접은 종이를 부채질하며 숯불의 불을 높였다. 그러자 숯의 향이, 목각귀신의 향이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윽했다.

강렬하거나 독특하진 않았다. 그냥 숯불의 향기. 그런데 일반 숯불의 향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

동시에 깨끗했다.

‘어? 왜 이렇게 좋아?’

‘이거 연기 맞아?’

숯불 향도 결국 연기다. 연기를 많이 마시는데, 유쾌한 기분이 드는 경우는 없다. 많이 마시면 머리도 아프다.

그런데 지금 숯불 향은 그게 아니었다. 목각귀신의 몸뚱이가 활활 타면서 내는 향은 가슴 가득히 들이마셔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오히려 가슴 속이 시원해질 정도였다. 마치 원시림에 온 것 같은 맑은 공기의 시원함이 가슴을 채웠다.

기괴한 일.

연기를 마시는데 오히려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 부분은 이강우도 놀랐던 부분이다.

일단 이강우는 숯덩이가 되어버린 목각귀신의 사체를 가져다가 조금 불을 피워봤다. 안중현의 말에 따르면 목각귀신은 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법이니까. 그래서 연기를 피웠는데, 그 향이 신기했고, 이렇다 할 부작용도 없었다. 이후 안중현에게 허락을 받았다.

“고기는 세 종류입니다. 코뿔늑대, 박쥐뱀, 기생망고거북. 코뿔늑대는 일반적으로 도축했습니다. 여기 있는 건 안심과 등심입니다. 박쥐뱀 고기는 질기기 때문에 얇게 썰었습니다. 박쥐뱀의 경우 하나는 그냥 양념 없이 굽고, 다른 하나는 장어 소스를 발라 구울 겁니다. 마지막으로 기생망고거북의 부위는 다리 살입니다.”

이런 와중에 이강우가 요리를 설명하며, 석쇠 위에 고기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숯불과 고기가 부딪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때 채유리가 이강우 근처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뭐야?”

“박쥐뱀 피입니다.”

“피?”

“설명 대신 한 잔씩 해보시죠?”

그 말에 모두가 난색을 보였다.

박쥐뱀의 피에 자양강장 효과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동시에 독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박쥐뱀의 피를 마신다?

“코뿔늑대의 코뿔을 섞어 독기를 제거했습니다. 먹어도 몸에 문제는 없습니다.”

그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은 안중현을 향했다. 결국 허락은 안중현이 해줘야 한다. 안중현 허락 없이 그저 이강우 말만 믿고 검증되지 않은 독을 마실 수는 없다.

그때 안중현이 나섰다. 안중현이 투명한 물통에 든 박쥐뱀의 피를 종이 소주잔에 따랐다.

“색이 묘하군.”

이강우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박쥐뱀 피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안중현은 그런 박쥐뱀의 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쭈욱, 입 안에 박쥐뱀의 피를 넣고 가볍게 맛을 본 후, 꿀꺽! 삼켰다. 쯧! 안중현의 입에서 짧게 혀 차는 소리가 나왔다.

“쓰군.”

쓰다는 말에 이강우가 옅게 웃었다.

“괜찮지 않습니까?”

“안주가 있다면 나쁠 건 없겠군.”

그 말을 들은 몇몇 이들은 박쥐뱀 피의 맛이 어떤 맛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성인 중에 소주 맛을 모르는 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먹으면 취하지 않나?”

“취기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겠죠.”

“먹으면 몸이 좋아지는 술…… 알코올이 없을 테니 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재미난 걸 만들었군.”

말과 함께 자신의 앞에 놓인 숯불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있는 힘껏 들이마신 안중현이 고개를 묘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상이겠지만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군.”

자양강장 효과가 있는 박쥐뱀 피와 들이마시면 가슴이 깨끗해지는 목각귀신 숯으로 만든 숯불 요리.

그야말로 건강식이다.

그때 이강우 앞에 있던 채유리가 어느새 소주잔에 박쥐뱀 피를 넣고 들이마셨다. 박쥐뱀 피의 쓴맛에 채유리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살짝 벌렸다. 어린아이가 쓴 약을 먹을 때의 표정. 하지만 곧바로 눈을 뜬 채유리의 눈빛에는 실망감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빨리 고기 줘.”

아무래도 그녀는 술맛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 * *

만찬이 시작됐다.

이강우가 준비한 세 가지 종류의 고기는 제각각 맛이 특이했다.

코뿔늑대 고기는 맛 자체는 돼지고기와 비슷했지만 육질이 일반 돼지고기보다 거칠었고, 육즙은 훨씬 더 많이 나왔다. 양념 없이 숯불에 구운 후에 소금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이 독특했다. 감칠맛이 넘치고, 꿀맛 같다기보다는 경험에 남을 만한 독특한 맛이었다.

박쥐뱀 고기는 별미였다. 고기가 질긴데, 그 질긴 느낌이 복어회를 떠올리게 했다. 괜찮은 식감이었고, 씹을수록 박쥐뱀 특유의 풍미가 흘러나왔다. 결정적으로 이강우가 사용한 장어 소스와 궁합이 아주 좋았다. 달짝지근한 장어 소스와 숯불 그리고 쫄깃한 박쥐뱀의 맛이 섞이자, 어디서도 먹어 보기 힘든 별미가 나왔다.

“이 장어 소스는 어떻게 만든 건가?”

한 명은 소스에 대해 질문을 했고, 이강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마트에서 샀는데요?”

여기에 기생망고거북의 다리 살은 족발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곳곳에 젤라틴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젤라틴의 감칠맛이 상당했다. 고기를 씹는 순간 감칠맛으로 가득 찬 폭탄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모든 요리에 박쥐뱀 피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크! 쓴 게 좋군.”

“이게 술이 아니라니, 맛은 딱 소주인데 말이야.”

“먹어도 취하기는커녕 정신이 또렷해지네.”

입 안이 기름기로 가득 차고, 어수선해졌다 싶을 때 박쥐뱀 피로 입 안을 한 번 개운하게 만들고, 그 후에 다시 고기를 먹으면 고기 본연의 맛을 제대로, 계속 즐길 수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으니, 그 누구도 질리지 않았다.

결국 식사는 모두의 배가 터지기 직전에야 멈췄다.

반면 이강우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는 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고기를 구워 주느라 쉴 새 없이 석쇠 주변을 움직였다.

“식사 안 하세요?”

이우희가 그런 이강우를 향해 질문을 던졌지만, 이강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요리사는 원래 손님하고 같이 식사 안 합니다.”

장인정신이 묻어나오는 대답.

그런 이강우의 행동에 식사를 하던 모두가 존경의 눈빛으로 이강우를 바라봤다.

‘대단하군.’

‘정말 좋은 동료를 얻었어.’

안중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제대로 됐군.’

안중현은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희생적이고 요리 솜씨도 좋은 이강우에게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감탄했다.

물론 정말로 이강우가 헌신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본심은 말과 달랐다.

‘마력 포인트는 있으나 마나 한 것들을 먹어서 뭐해?’

이강우, 그가 요리 준비에 오랜 시간을 들이고 지금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요리를 해주는 건 정말 요리사 정신이, 장인정신이 넘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강우는 몬스터 도축을 하면서, 당연히 분석 마법을 이용해 마력이 집중된 부위를 따로 도축했다. 따로 도축하고 숨겨두었다. 그 후에 계획을 세웠다.

요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자신이 하고, 마력이 없는 부위로 다른 이들 배를 가득 채워준 후에 이강우가 혼자 식사를 한다면? 마력이 잔뜩 있는 알짜배기 부위를 자신만 먹는다면?

당연히 그 누구도 이강우에게 뭘 먹고 있냐고, 같이 먹자고 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만사가 귀찮아질뿐더러,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내내 고생한 이강우의 밥을 훔쳐 먹는 건 도리가 아니니까.

결과적으로 이강우는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은 채 마력 섭취를 마칠 수 있는 셈이다.

이게 이강우의 본심이었다.

‘그 정도 득 볼 게 아니면, 내가 이 개고생을 할 이유가 없지.’

그런 시나리오가 있으니까 지금 이 불판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는 거다. 그게 아니면 돈도 안 되는 짓을 이강우가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몰래 숨겨둔 고기들을 먹으면…… 최소한 6천 포인트는 확보할 수 있겠군.’

그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는 기생망고가 떠올랐다. 기생망고가 떠오르자, 이강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보다 기생망고 하나에 5백 포인트라니…… 어지간한 9등급 마나스톤보다 마력이 많잖아?’

기생망고거북이의 등에 달린 기생망고나무에서 채취한 기생망고 숫자는 팔십여 개.

놀라운 건 기생망고 하나에 무려 5백 포인트에 다다르는 마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9등급 마나스톤보다 마력이 많다. 심지어 그런 게 팔십여 개나 있다.

‘전부 먹으면 4만 포인트…….’

그것만 다 먹어도 이강우는 2서클 개방을 완료할 수 있을 터.

물론 그 기생망고를 이강우가 전부 먹는 건 불가능했다. 몇 개 정도 먹을 수 있겠지만, 그것뿐이다. 기생망고는 연구목적으로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 채 길드에 보내야 한다.

‘저게 로또지.’

하지만 만약 이강우가 안중현으로부터 기생망고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차후 유적 사냥에서 기생망고거북을 발견한다면? 기생망고거북 하나를 잡는 거로 어마어마한 양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강우가 식사를 마치고 다른 총꾼과 이야기를 하던 안중현을 바라봤다.

‘떡밥을 던졌는데, 입질을 해? 말아?’

안중현은 기생망고 처리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했었다.

당연히 숨은 속뜻이 있다. 안중현은 비밀 공유를 원했다. 극비인 정보를 말해줄 테니, 너도 그에 해당하는 비밀을 말해라. 그 비밀 공유를 통해 결속력을 만들 속셈이었다.

즉, 안중현이 내민 떡밥을 물면 코가 꿰인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간 보는 게 우스운 거지.’

물론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 * *

하선우가 즈믄나래 본부 빌딩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그를 반긴 건 익숙한 얼굴이었다.

“권 박사님?”

“하선우 군, 오랜만이군.”

유적 연구소에 있어야 할 권재용 박사가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하선우는 일단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필요는 없었다. 하선우와 권재용의 목적지는 똑같았으니까.

곧바로 대화가 시작됐다.

“즈믄나래 본부에는 오랜만에 오시네요. 무슨 일이십니까?”

“별건 아니고, 저번에 옥갑산에 등장했던 꽃등도마뱀의 이상행동에 대한 단서가 발견된 것 같아서 말일세.”

“단서요?”

“가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이니까 말해주긴 그렇고…… 결과만 놓고 말하면 꽃등도마뱀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서 녀석의 목적지 및 이동 경로를 예측했고, 그 범위 내에서 모래시계문 하나를 발견했네.”

“보통 문은 아닌 모양이군요.”

권재용은 말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권재용은 자기 오른손의 엄지를 접었다.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네 개만 폈다. 하선우의 눈빛이 잠시 동안 반짝였다.

‘4등급.’

이 순간 하선우는 담담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4등급 모래시계문 발견은…… 두 번째로군.’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그 어마어마한 사건이 앞서서 일어난 비정상적인 사건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하선우는 단언할 수 있었다. 4등급 모래시계문이 등장한 이상, 이번 일은 어떤 식으로든 태풍이 될 것이라고.

우우웅!

그때 하선우의 스마트폰이 진동음을 짧게 토해냈다. 문자가 도착한 모양이다.

“실례하겠습니다.”

하선우가 짧게 양해를 구한 뒤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 내용을 본 하선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7등급 유적 사냥을 일주일 만에 클로즈에 성공했다? 안 선배가 드디어 자격을 획득했군.’

갑작스러운 태풍 그리고 그 태풍을 향하는 길에 등장한 새로운 경쟁자.

‘안 선배도 대단해. 자기 꿈을 위해 목숨 걸고 기어코 자격을 획득하다니.’

하선우의 마음속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하선우의 마음속에.

“아, 김재범 군이 자네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한번 꼭 자네를 찾아간다고 하니, 준비하고 있게.”

“……정말 유쾌하지 못한 소식이군요.”

권재용 박사가 정말 유쾌하지 못한 돌멩이를 던졌다.

* * *

[이강우]

-마력: 2서클 개발 중(11% 완료)

-보유 마법: 5개

-마법 슬롯: 2개

-섭취 마력: 7,322포인트

이강우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작은 손거울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머리 위 마나 서클이 좀 더 밝아졌네.’

말과 함께 이강우는 거울을 든 반대쪽 손, 왼손으로 자신의 명치 부근을 쓰다듬었다. 평소보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아랫배가 왼손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이강우는 그 부분을 가볍게 툭, 쳤다.

“꺼억!”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이강우의 입에서 시원한 트림 한 방이 터져 나왔다.

후우! 이강우는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총꾼이 되면, 굶어 죽거나 몬스터에게 잡아먹혀 죽거나,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해 죽거나…… 사인(死因)은 셋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과식으로 죽는 경우도 추가해야겠군.’

이강우는 모든 이들에게 요리를 해준 후 따로 식사를 했다. 계획했던 바였고, 계획대로 이강우의 외로운 식사에 간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기회를 살려 이강우는 전부 먹었다. 괜히 아껴 먹거나 나눠 먹으려다 나중에 다른 사람 입에 들어갈 바에는 그냥 그 자리에서,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 다 먹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먹기 위해 몰래 숨겨둔 것들, 박쥐뱀의 꼬릿살과 코뿔늑대의 목살 그리고 기생망고거북의 내장까지. 마력 포인트가 유독 많이 집중된 부분만을 골라서 먹어 치웠다.

처음에는 맛있었다.

하지만 먹는 것도 수준을 넘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이 되는 법.

‘불사황제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을 만든 거야? 그냥 레벨업 하듯이 능력치 오르면 안 되나? 얘는 내가 강해지길 원하는 거야, 아님 내가 배 터져 죽기를 원하는 거야?’

정말 억지로 먹었다. 먹으면서 불사황제에 대한 분노가 절로 생길 정도로!

어쨌거나 그렇게 억지로 먹은 마력 포인트가 무려 5천 포인트! 브론즈북 한 권을 벌었다. 여기에 마나 서클도 좀 더 활성화됐다. 짧은 유적 사냥치고 소득은 넘칠 만큼 많았다.

“꺼억…….”

단지 속이 매우, 굉장히, 심각할 정도로 더부룩할 뿐.

‘다음에 들어올 때는 소화제랑 탄산음료를 꼭 챙겨와야겠어. 그보다 소화 잘 되는 몬스터 없나?’

한편 이번 유적 사냥에서 배가 터질 만큼 포식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정보가 필요해.’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정보라는 것.

맛은 아무래도 좋다. 최소한 먹고 탈이 나는지, 안 나는지 정보가 필요했다.

‘해독 마법을 항상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8등급이나 9등급 몬스터는 괜찮다. 이 등급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스택 레코드를 통해 확보했으니까. 스택 레코드가 아니더라도, 이강우는 나름 베테랑 총꾼으로 경력이 제법 된다. 8, 9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며 이강우가 몸으로 모은 지식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7등급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7등급 몬스터에 대해서 이강우가 가진 지식은 지식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수준이다. 애초에 이강우는 그동안 7등급 몬스터를 피해 왔으니까.

심지어 7등급 유적 관련 지식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택 레코드에 어떻게 접근이 안 되나?’

새로운 과제가 생긴 순간이었다.

* * *

“기생망고 처리법에 대해서 알려주지.”

이강우의 배가 슬슬 꺼질 무렵, 안중현이 이강우를 외진 곳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중현은 이강우와 거래를 시작했다.

‘왔다.’

이강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왜 지금 와서 그런 걸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진즉에 가르쳐주시지.”

안중현은 그 말에 웃었다.

“이강우, 자네가 눈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네. 내가 돌을 던지면, 왜 던지는지 예상을 할 만한 눈치는 있지.”

그 웃음을 끝으로 안중현이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자네 예상은 어떤가? 내가 왜 지금 여기서 기생망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나?”

“그야 저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으시기 때문이겠죠. 기생망고에 대한 정보는 나름 비밀일 테니…… 비밀을 공유하는 것만큼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데 좋은 건 없죠.”

“역시 자네는 머리가 좋아.”

“감사합니다. 사실 어릴 때는 진짜 공부를 못해서, 공부는 물론 머리 쓰는 거로는 답이 없을 것 같아서 군대에 말뚝을 박았거든요.”

이강우가 씨익 웃었고, 안중현은 입꼬리를 한쪽만 올렸다. 유쾌한 분위기가 그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안중현이 그 바람을 틈타 대화 주제를 바꿨다.

“앞서가는 자들의 가장 큰 힘이 무엇인 줄 아나?”

갑작스러운 질문.

이강우는 짧게 고민하고 대답했다.

“돈 아닙니까?”

이강우의 대답이 예상외의 대답이었는지 안중현이 곧장 말을 잇지 못한 채 이강우를 지그시 바라봤다.

이강우는 자신의 눈빛을 통해 조금 전 뱉은 말이 진심임을 재차 강조했다. 부가설명도 해줬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인간치고 돈 없는 인간은 없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도 잘 나가는 인간들은 죄다 부자였지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논리다. 안중현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진리.

“……그래, 돈도 중요하지. 그런 돈만큼 중요한 게 바로 정보지. 특히 우리들처럼 미지를 상대하는 자들에게 정보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지. 그 정보를 자네에게 주겠네. 스택 레코드에 등록된 7등급 유적 관련 정보 전부를 넘겨주지.”

파격이다.

즈믄나래는 물론 대부분의 길드는 유적과 관련된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관리한다. 당연히 정보 유출에 민감하다. 정보 유출자는 그저 감봉 정도의 징계로 끝나지 않는다.

하물며 유적 관련 데이터베이스로는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스택 레코드의 정보 유출은…… 좀 과장하면,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쓴 요원이 와서 정보 유출자를 제거할 수도 있을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안중현이 이강우에게 주겠다고 한다. 만약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면 이강우는 물론 안중현도 무사하지 못한다.

즉,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둘은 운명공동체가 되는 셈이다.

‘칼자루가 나한테 왔군.’

이런 제안을 안중현이 먼저 한다는 건 안중현 스스로가 아쉬운 입장이라는 걸 밝히는 꼴이다.

거래는 아쉬운 쪽이 무조건 손해를 본다. 이 상황에서 이강우는 안중현에게 추가적인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다. 어지간한 제안이라면 받아들일 테니까.

‘찔러 보자.’

여기서 이강우는 안중현이 가진 권리 중 하나를, 그가 손에 쥐고 있지만 막상 그는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권리를 얻고 싶었다.

“원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그 단어에 안중현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적에서 사냥한 몬스터의 도축 및 요리를 비롯한 몬스터 사체 처리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싶습니다.”

안중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강우가 뭘 요구하는지 그것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나스톤과 몬스터에게 가치 있는 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 그 전부에 대한 권리를 달라고 하는 거다.

안중현에게 쓸모없는 권리다. 안중현은 몬스터를 도축할 수도, 요리로 만들 수도 없으니까.

“이유가 뭐지?”

그러나 그런 걸 얻어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

“돈을 벌고 싶습니다.”

이강우는 이번에도 돈을 언급하며, 연거푸 돈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확실히 돈이 아쉬운 입장이긴 하지.’

안중현은 그런 이강우를 나무라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았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이강우에 대한 조사를 했고, 안중현이 알게 된 이강우에게는 돈에 집착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으니까.

“돈을 번다?”

단지 방법이 궁금할 뿐.

과연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걸까? 몬스터 고기를 팔아서? 장담컨대 이강우는 몬스터 고기를 팔아서 돈을 벌기 힘들 것이다. 그에게는 유통망이 없으니까.

더불어 몬스터 고기를 들고 출문 밖으로 나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부피가 너무 크다.

“몬스터 요리법을 팔 겁니다. 제가 요식업 쪽에 투자를 해봐서 아는데, 이건 분명 돈이 될 겁니다. 더군다나 제 고객은 세계적으로 돈이 넘치는 유적 사냥꾼들과 길드. 1년 후에 제가 대장님보다 많이 벌 겁니다.”

이강우는 약간 장난기 섞은 말투로 말했지만, 그 내용 자체는 장난이 아니었다.

“흠…….”

‘확실히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분명 이강우가 말한 건 돈이 될 것이다. 블랙 스택만 하더라도 필요한 정보는 얼마든지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한다. 몬스터 공략법의 가격은 어마어마하다.

몬스터 요리법? 분명 수요는 있다. 어쨌거나 몬스터 도축은 이제 유적 사냥의 트렌드가 될 테니까.

아니, 이미 트렌드가 됐다. 지금 어지간한 길드는 몬스터 도축을 통한 식량 확보를 주요 과제로 삼고, 시도 중이다.

“그럼 몬스터를 잡아다 요리 연구 재료로 써먹겠다, 이건가?”

“유적 사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재미있군.”

안중현의 그 말.

이강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예스!’

이강우가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거지!’

이제부터 이강우는 괜히 눈치 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몬스터를 도축해 얻는 고기를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됐다. 환호성이 절로 나올 수밖에.

물론 그 환호성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 기생망고 처리법에 대해서 말해주겠다.”

그런 이강우의 심중을 알 리 없는 안중현은 곧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이 대목에서 이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기생망고 처리법을 지금 당장 알아야 합니까?”

기생망고 처리법을 알려주니 고맙긴 하다. 바라던 정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굳이 가르쳐 줄 필요가 있을까? 그 의문에 안중현이 명확한 대답을 해줬다.

“그야 채유리, 그녀가 곧바로 기생망고를 먹어 보고 싶다고 칭얼거릴 테니까.”

“아…….”

“그녀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지. 기왕이면 이번 기회에 그녀에게 빚을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안중현의 안목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 *

안중현의 예상대로 채유리는 곧바로 이강우를 찾아와 보석 같은 눈망울을 빛내며 말했다.

“기생망고 먹을 수 없을까?”

그 말에 이강우는 그건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안중현 대장님이 허락해 줄 리 없습니다, 온갖 이유를 들먹이며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이강우의 근거를 반박할 수 없었던 채유리는 일단 한 번은 그냥 넘어갔지만, 어마어마한 식탐을 가진 그녀가 고작 한 번 시도로 포기할 리 만무, 그녀는 재차 이강우에게 기생망고를 먹고 싶다고 말했고, 결국 이강우는 그녀에게 제안을 했다.

“좋습니다. 몰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공짜는 아닙니다. 이거 저한테 빚진 겁니다.”

빚을 졌다.

이강우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거래를 제안했고 채유리는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후 이강우는 안중현과 계획한 대로 기생망고를 몰래 훔쳤다. 그 후에 요리를 했다.

기생망고 요리법은 간단했다.

‘중독성이 구라라니…….’

그냥 하면 된다.

문제가 되는 씨앗만 확실하게 제거가 되면 어떻게 먹어도 무방하다. 중독성 같은 건 없었다.

‘길드 놈들 아주 독하네. 이런 걸 가지고 구라를 치다니.’

중독성이 있다는 게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괜히 다른 이들이 쉽게 먹지 못하도록, 기생망고의 가치를 아는 소수의 사람들이 거짓 정보를 퍼뜨린 것이다.

거짓 정보는 생각보다 잘 먹혔다. 이미 위험이 넘치는 유적에서 굳이 독이 있는지 없는지, 자기 몸으로 증명해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요리는 어려울 게 없었다.

‘껍질을 벗기고…….’

껍질을 벗기자 드러나는 부드러운 빨간 과육에 박힌 작은 씨앗을 제거하면 처리는 끝.

여기서 이강우는 한 스푼 정도 되는 양을 맛보기란 명분 하에 가볍게 입에 넣었다.

[95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했습니다.]

그저 한 스푼…… 물론 맛보기랍시고 좀 많은 한 스푼이었지만, 그래도 간의 기별조차 가지 않는 양을 퍼먹었을 뿐인데 100포인트 가까운 마력을 섭취했다.

맛도 인상적이었다.

“음…….”

달다. 투박한 단맛이 아니라, 과일 특유의 산뜻한 단맛이다.

‘너무 달아.’

문제는 단맛이 너무 강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꿀을 먹는 느낌. 단맛이 목에 넘어가는 게 아니라 입 안에서 끈적끈적하게 남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이런 걸 요리하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물 좀 섞으면 되겠네. 비율은…… 8 대 2 정도면 될 테고.’

원래 싱거우면 더 넣고, 짜면 물 넣으면 된다. 그게 요리의 진리다.

순식간에 기생망고 주스가 완성됐고, 이강우는 곧바로 채유리에게 기생망고 주스를 건네줬다. 채유리가 눈빛을 반짝이며 받았다.

여기서 이강우는 짧게 떡밥을 던졌다.

“자, 100퍼센트 기생망고로만 만든 주스입니다.”

‘물 섞은 만큼 남은 건 내 몫.’

이강우, 이제 그의 특명은 어떻게든 채유리의 배를 많이 채우는 것이 됐다.

* * *

출문을 발견한 건 모래시계문에 입장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안중현은 출문을 통해 나가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리더인 안중현은 유적에 남아야 했다. 그래도 일단 사람을 밖으로 보낼 필요는 있었다. 일주일 만에 유적 클로즈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려야 하니까.

그 역할은 이우희의 몫이 됐다.

“들 수 있겠나?”

“문제없어요.”

이우희는 외골격 로봇의 도움을 받아 가장 중요한 물품들, 기생망고와 확보한 마나스톤을 가득 채운 상자를 들고 출문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출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이강우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젠장, 몇 개 더 훔쳐 먹을걸…….’

그동안 기생망고를 세 개 정도 먹었다. 채유리가 먹고 싶다는 것을 명분 삼아 안중현으로부터 받아냈고, 채유리에게는 물을 듬뿍 섞은 망고주스를 줬다. 만약 기간이 좀 더 길었다면 더 많은 기생망고를 몰래 섭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아쉽다.

‘끄응…… 남은 시간 동안 대박 하나 더 안 터지려나? 마령화 같은 거 발견하면 끝내줄 텐데.’

이제 슬슬 마력 섭취하는 재미를 알게 된 이강우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제 배를 쓰다듬었다.

푸념은 거기까지였다.

“이제부터는 몬스터 잔당을 처리하고 아티팩트를 찾는 데 주력한다.”

아직 할 일은 남아있었으니까.

* * *

한 달.

이우희가 출문 밖으로 나가고 한 달이 지난 후에 안중현 파티는 유적 사냥을 마치고 귀환했다.

소득은 적지 않았다. 3서클 아티팩트를 무려 3개나 발견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앞서서 유적 사냥을 위해 들어온 파티의 아티팩트도 확보했다. 그렇게 해서 유적에서 확보한 마법 아티팩트가 무려 11개였다.

여러 면에서 가장 완벽한 7등급 유적 사냥이었다.

출문은 나온 안중현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며칠간은 술에 잔뜩 취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안중현에게 취할 시간은 없었다.

‘음.’

출문을 통해 나오는 순간, 안중현의 눈에 출문 근처에 의자를 놓은 채 책을 보고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금발 머리칼의 사내가 들어왔으니까. 보자마자 안중현은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검은 정장 사내 역시 안중현을 발견하고, 책을 덮은 후 안중현에게 다가왔다. 둘은 짧은 악수를 나누며 대화를 시작했다.

“블랙 에이전트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미스터 안, 당신은 블랙 스택의 귀한 인력입니다. 당신의 능력에 어울리는 직급이 나서야지요.”

블랙 에이전트란 이름을 가진 사내는 곧바로 품에서 작은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카드 표면에는 금빛의 알 수 없는 문양이 가득했다. 그 카드를 보는 안중현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미스터 안, 이제부터 당신은 스택 레코드 6등급 유적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에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조건부로 5등급 유적과 관련된 일부 정보에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카드를 받은 안중현이 숨을 멈췄다.

‘드디어.’

안중현이 그렇게 바라던 것이 손에 들어왔다. 이거 하나를 얻기 위해서 이제까지 많은 고생을 치렀는데…… 이런 식으로 손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운이 좋았다.

솔직히 이 모든 건 안중현의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채유리 그리고 이강우, 그 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 아래에서 협조를 해준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로또 1등 당첨보다 더 맛보기 힘든 운이다

“고맙…….”

이윽고 안중현이 블랙 에이전트에게 인사를 하려는 순간, 블랙 에이전트는 안중현이 아닌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블랙 에이전트의 시선 끝에 있는 건.

‘뭐야?’

곁눈질로 상황을 살피던 이강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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