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12화 (12/66)

12화. 기생망고거북

즈믄나래 세종 유적 연구소.

유적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것들을 연구하는 이 연구소에서는 어떤 소란이 일어나거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건 이상한 날이 아니었다.

오늘도 그랬다.

두 개의 프로펠러를 가진 헬기, 치누크는 묵직한 것을 매단 채 세종 유적 연구소에 마련된 공터 위에서 천천히 착지하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치누크 헬기가 묵직한 것을 땅바닥에 무사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작업을 돕는 중이었다.

권재용 박사는 그 광경을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권재용 박사의 눈빛이 묘했다.

‘드디어 놈을 해부해 보는군. 보기 힘든 놈이라 이제까지 연구 자료조차 구하기도 힘들었는데 통째로 구하게 되다니.’

권재용 박사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호기심을 넘어, 탐욕으로 가득 찬 눈빛.

이윽고 치누크 헬기가 가지고 온 묵직한 놈이 바닥에 닿고, 녀석과 치누크 헬기를 잇는 선들이 제거되기 시작하는 순간, 그 광경을 보고만 있던 권재용 박사가 걸음을 내디뎠다. 프로펠러의 거친 바람이 권재용 박사의 걸음을 방해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때, 아직도 열심히 프로펠러를 움직이며 약 10미터 높이에서 여전히 비행 중인 치누크 헬기에서 한 사내가 땅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결코 낮지 않은 높이에서 도약한 사내는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바닥에 몸을 구르는 것도 없이 마치 작은 담벼락에서 뛰어내린 것처럼 사뿐한 모습을 보여줬다.

180센티미터의 신장, 듬직한 체격에 붉게 염색한 덥수룩한 머리에 동그란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권재용 박사를 향해 반가움 가득한 감정이 담긴 손을 흔들었다.

거센 바람 속에서 그 둘이 만났다. 가벼운 악수가 이루어졌다.

“권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이네. 그보다 자네는 볼 때마다 머리 색이 달라지는군.”

“예, 괜찮죠? 저번보다 이번이 나은 것 같습니다.”

“하선우가 떠오를 정도로 염색이 잘 됐네.”

하선우란 말에 사내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권 박사님은 정말 언제나 그 녀석하고 저를 비교하시는군요. 기분 나쁘게 말입니다.”

“하선우랑 비교되는 걸 가지고 기분 나빠하는 건 아마 전 세계를 뒤져도 자네밖에 없을 걸세.”

“제가 그 녀석보다 실력이 좋으니까요. 불쾌할 만하지요.”

“아무렴.”

그렇게 선글라스를 벗자마자 보이는 큰 눈망울을 가진 사내의 이름은 김재범.

“독술사 김재범의 실력을 내가 모를 리 만무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5서클 마법사 중 한 명이며, 독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그 명성이 세계에 자자할 정도의 실력자다.

별명은 독술사.

지금 치누크 헬기를 통해 유적 연구소로 운송된 몬스터를 잡은 장본인이었다.

권재용 박사가 김재범의 등 뒤로 시야를 옮겼다. 사실 지금 권재용 박사는 김재범과 대화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김재범과의 대화는 그저 구색을 위한 대화일 뿐, 그는 김재범이 잡아 온 것에만 관심이 넘쳐 났다.

그런 권재용 박사의 심중을 모를 리 없는 김재범은 여전하시군,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어깨를 으쓱했다.

“용케 잡았군.”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잡으려고 없는 마력 쥐어짜 내면서…… 진짜 제대로 고생했습니다. 7등급 몬스터를 잡는 데 그렇게 치열하게 마법을 써본 건 마법사 1년 차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권 박사님, 이번 은혜 꼭 잊지 마십시오.”

“잊지 않겠네.”

이윽고 몬스터를 덮고 있던 여러 장의 천과 비닐들이 제거되기 시작했고, 헬기 역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가뿐한 몸체를 가진 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프로펠러가 내뿜던 바람이 사라지고, 그 아래로 권재용 박사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은 몬스터가 정체를 드러냈다.

몸길이 약 8미터의 거대한 거북이는 등껍질의 색이 마블링처럼, 여러 색이 난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그 등껍질 색이 아니라, 갈라진 등껍질 사이사이에 자라난 나무 열 그루와 그 나무에 매달린 열매였다. 그 나무에는 성인 남자 손바닥 크기의 붉은 반점이 가득한 초록 과일 여러 개가 매달려 있었다. 과일의 모습은 망고와 흡사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기생망고거북.

“기생망고거북…… 칠성문에서 이놈에 대한 자료를 얻으려고 그 개고생을 했는데도 조금도 얻지 못했던 게 기억나는군.”

현재 유적 연구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놈이었다.

* * *

“기생망고거북?”

유적 사냥 경력만큼은 어디 가서 자랑해도 될 만큼 그 경력이 적지 않은 이강우지만, 안중현의 설명을 듣는 순간 그는 의문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제스처를 취했다.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놈입니까?”

처음 듣는 이름이었으니까.

“희귀종으로, 정식 명칭이 도감에 수록된 건 2년 전. 은신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희귀한 놈으로 도감 등록이 늦은 케이스지.”

이강우는 납득했다.

‘2년 전에 이름을 올렸으면 내가 모를 수밖에.’

2년 전이면 이강우가 사업 준비를 앞두고 총꾼 은퇴를 준비할 무렵이다. 그때 등장한 몬스터를 이강우가 알 리 없다. 하물며 7등급 몬스터 아닌가? 크루 소속 총꾼과 접점을 가질 수 있을 만한 대상이 아니다.

“어떤 놈입니까?”

“연구가 한참 진행 중인 놈이지.”

연구가 한참 진행 중이란 건, 이용가치가 높다는 의미이고, 그건 곧 돈이 되는 놈이라는 의미다.

“녀석 몸에 망고가 열리는데 그게 맛이 끝내주나 보죠? 이름에 망고가 들어가는 걸 보니까?”

이강우가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을 던졌다. 물론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고, 그냥 던진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안중현이 옅게 웃었다.

“대충 맞았군.”

이강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입니까?”

“이름 그대로 녀석은 거북이인데, 등에는 기생망고나무가 자란다네.”

“꽃등도마뱀도 그렇고, 요즘 7등급 몬스터들은 등에 식물 키우는 게 유행인가 봅니다.”

“꽃등도마뱀의 꽃은 의미가 없지만, 기생망고는 다르지. 기생망고에는 마력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으니까.”

헉!

마력 증가, 그 단어 앞에서 이강우의 심장 박동이 삐끗!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먹으면 마력이 증가한다, 그건 불사황제의 능력을 얻은 이강우에게만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언제나 그렇듯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마력이 늘어납니까? 마나 서클 개수가?”

“그건 당연히 아니네. 굳이 표현하면 보조 배터리 같은 개념이랄까? 배터리 용량을 늘려 주는 건 아니지만, 부족한 배터리는 채워줄 수 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연구 중이란 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의미다.

어쨌거나 연구 가치는 넘친다.

‘어마어마한 돈이 되겠어.’

그리고 확실히 돈 냄새도 풀풀 풍겼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 씨앗.”

안중현은 이강우가 땅굴쥐의 위장에서 채취한 씨앗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생망고는 놀라운 효능을 가지고 있지만, 아낌없이 주는 약초 같은 놈은 아니었다.

만약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효과만 누릴 수 있는 놈이었다면, 기생망고라는 섬뜩한 이름 대신 엔젤망고 같이 보기만 해도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기생망고 안에는 씨앗이 있네. 망고처럼 크진 않지만. 문제는 이 씨앗을 먹게 되면 소화가 되기는커녕 위장에 뿌리를 내린다는 점일세.”

위장에 씨앗이 뿌리를 내린다.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지.”

뒷말을 붙이는 대신 안중현은 제 손으로 제 가슴팍을, 속을 툭툭 두드렸다.

위장 속에서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자라난다면…… 그다음의 결과물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먹지만, 어느 순간에는 위장을 가득 채운 기생나무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게 되네. 문제는 과일 자체에 중독성마저 강한 탓에 한번 먹게 되면 계속 먹게 된다는 점. 그래서 기생망고거북을 처음 발견한 칠생문에서는 아귀과(餓鬼果)란 별칭을 붙였지. 아귀의 과일. 칠성문 애들의 작명 센스가 조악한 건 사실이지만, 딱 어울리는 이름이지. 어쨌거나 기생망고를 한번 먹은 몬스터는 이 과일을 계속 먹게 되고 계속 먹기 위해서는…….”

“마약 중독자가 마약 판매상 앞에서 애걸복걸 좀 싸게 팔아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처럼 되겠죠.”

“잘 아는군. 기생망고를 먹은 녀석은 기생망고거북을 주인처럼 섬기게 되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환각 효과도 있다고 하더군.”

환각, 중독 그리고 부작용까지.

두말할 것 없는 마약이다.

“그럼 이제 그 대단하신 마약왕을 잡으면 되겠군요.”

중요한 설명은 다 들었다.

그리고 이강우는 금방 상황을 정리했다.

딱 봐도 기생망고거북의 가치는 상당하다. 연구 가치도 충분하다. 마법 아티팩트 수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당연히 잡아야 한다. 유적 사냥을 위해선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다. 그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익을 내야 한다. 그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녀석은 잡지 않는다.”

안중현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자네가 말한 대로 이 유적은 위험해. 다섯 파티가 전멸한 유적. 분명 개중 몇몇 파티는 진실에 접근했겠지. 이류든, 삼류든 길드는 분명 길드이니까. 길드에서 7등급 유적에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수준 이하의 어중이떠중이를 보내진 않았겠지.”

잡지 않는다?

이강우가 안중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도 전멸을 했다는 건, 위험 요소가 그저 기생망고거북 한 마리가 아니라는 의미.”

이강우의 조언은 안중현에게 제대로 영향을 줬다. 이제까지 상황에 따라 머릿속에서 저울질을 하며 목적을 바꾸던 안중현은 이강우의 조언을 듣는 순간 확실하게 목적을 세웠다.

이번 유적 사냥의 핵심은 모래시계문을 닫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유적 사냥은 이익보다는 즈믄나래에 안중현의 유적 사냥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발판이다.

모래시계문을 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익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이익을 위해 무리한 사냥을 나설 필요는 없다.

잡을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기생망고거북을 잡고 싶은 생각은 안중현의 머릿속, 구석에도 없었다.

더불어 안중현은 본인이 말한 대로 위험 요소가 더 있다고 생각했다.

“기생망고거북은 특수한 능력을 가졌고 영리한 놈이지만 전투 능력 자체는 뛰어난 편이 아니야. 대신에 은신 능력이 매우 뛰어난 편. 굳이 분류하면 전투가 아닌 보조에 특화된 놈이다. 그런데 이곳 유적에 온 파티가 보급품조차 제대로 써먹기 전에 전멸했다?”

목적을 확실하게 정한 안중현은 중요한 사실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필시 기생망고거북의 종(從)이 된 몬스터 중에 강력한 놈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 7등급 유적에 7등급 몬스터가 하나란 보장은 없지.”

기생망고거북의 전투 능력은 떨어진다. 그렇다면 필시 녀석의 기생망고에 중독되어 전투력을 대신해주는 놈이 있을 것이다.

그 두 가지가 합쳐져서 다섯 개의 파티를 잡아먹은 무시무시한 유적이 등장한 것이다.

안중현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기생망고는 앞서 말했듯이 씨를 통째로 먹으면 위장이 가득 차서 다른 걸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되지. 반대로 기생망고만 계속 먹게 되고, 씨앗은 위장에 쌓이고…… 그러다가 기생망고조차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때 몬스터는 폭발한다.”

유적이 등장한 지 시간이 제법 지났다. 기생망고에 중독된 놈들은 중독 중기를 넘어, 말기에 도달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중독자의 끝은 파멸이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절대 혼자 파멸하지 않을 것이다.

“영리한 기생망고거북은 폭발하기 직전인 몬스터를 자폭시키기 위해 우리 쪽에 보낼 터.”

수성(守成).

안중현은 지금 이 상황에서 유적 사냥 파티가 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를 파악했다.

그 말을 들은 이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운 결단이군.’

마법사가 이득을 포기하고 집단의 안전을, 생존을 택해줬다. 이득을 위해 이루어지는 유적 사냥에서는 보기 힘든 결과. 안중현의 능력이 새삼스러워졌다.

그는 분명 리더의 자질이 있다. 옆에서 그에게 무조건적인 예스를 외치는 예스맨이 아니라, 쓴 말도 아끼지 않을 실력자가 있다면 그는 더더욱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강우는 안중현의 선택에 감사했다.

동시에 묘한 아쉬움이 가슴 속을 채웠다.

‘그래도 마력 회복이라니…… 분명 과일이 마력을 품고 있다는 건데, 과연 어느 정도일까?’

탐욕.

그건 인간이라면 결코 버릴 수 없는 욕망이었으니까.

* * *

안중현은 일상에서 자세한 설명보다는 묵묵부답,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진 꿈도 크지만, 그 꿈을 떠벌리는 타입도 아니다.

하지만 유적 사냥에 있어서는 속내를 숨기는 타입이 아니다. 귀한 정보라고 해도 유적 사냥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아낌없이 털어놓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당연한 이야기를 실천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유적에 대한 정보는 곧 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유적은 여전히 미지와 신비로 가득 찬 세계다. 황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어도, 그 가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때문에 모래시계문을 닫기 위해선 실력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게 블랙 스택이 스택 레코드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는 이유이자, 블랙 스택이 세계 3대 길드 중에서도 최고라고 평가받는 근거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기생망고거북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비싸다. 희귀종에 누가 보더라도 연구 가치가 넘치는 놈이니까. 이 녀석에 대한 연구 자료는 직접 구해야지, 어디서 구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현은 기생망고거북이 이번 유적의 키포인트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에 대한 정보를, 모든 정보는 아니더라도 이강우에게 말해준 만큼의 정보는 모두 풀어놓았다.

그건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었다.

진심의 전달.

“기생망고는 쉽게 말하면 마약이다. 마약 중독자들에게 영원한 건 없다. 필시 놈들은 한계에 도달했을 거다. 기다리고, 막고, 버티면 우리가 승리한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그게 통하니까 여기 있던 이들 대부분이 안중현의 계획에, 시도에 군말 없이 목숨을 걸어줄 수 있는 것이다. 안중현은 여러모로 리더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더불어 이 진심은 자기주장 강하고 제멋대로에 비협조적이기 그지없는 채유리에게도 통했다. 코뿔늑대 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간간이 칭얼거리던 그녀는, 안중현이 기생망고거북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계획을 말하는 동안 조금의 방해도, 딴지도 걸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안중현의 브리핑이 끝나는 순간 곧바로 이강우를 찾아와 물었다.

“기생망고란 거 달아? 맛있어?”

망고, 단맛으로 유명한 과일이다. 단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망고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물며 그냥 망고도 아니고, 몬스터가 서로 먹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날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망고라고 하지 않은가? 물론 죽을 만큼 맛있다는 건 아니지만…… 단맛에 대해서는 이강우의 단맛 사랑조차 애교로 보일 정도로 기형적인 사랑을 보내는 채유리에게는 다른 그 무엇보다 기생망고의 맛이 궁금한 게 당연지사.

그나마 그 질문을 안중현에게 하지 않은 건, 안중현의 진심이 통했다는 증거다.

“저도 먹어 본 적 없어서 모릅니다.”

물론 이강우가 기생망고 맛 같은 걸 알 리 만무하다. 기생망고거북에 대한 이야기도 오늘, 조금 전 처음 들었다.

아니, 만약 이강우가 기생망고를 먹었다면 지금 이렇게 사지 멀쩡한 모습으로 있진 못했을 것이다.

“그럼 땅굴쥐는?”

여기서 채유리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채 화두를 바꿨다.

“그건 맛있어?”

채유리가 이번 유적 사냥에 참가한 가장 큰 이유는 몬스터 고기를 이용한 이강우의 요리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잡는 모든 종류의 몬스터를 맛보고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기회가 없었다. 유적에 입장한 이후 몬스터 요리를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잡은 코뿔늑대는 박쥐뱀의 낌새를 알기 위해 미끼로 썼다. 해독 능력이 있는 코뿔늑대의 코뿔 정도만 쟁여 뒀고 잘라낸 고깃덩이는 그대로 버렸다.

물론 먹으려면 먹을 순 있지만, 식량이 충분한 상황에서 맛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미끼로 써먹는 과정에서 변질됐을 가능성이 높은 코뿔늑대고기를 먹기 위해 괜한 수고와 고역을 치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다음에 잡은 두 번째 몬스터가 땅굴쥐다. 그녀는 그 땅굴쥐 고기라도 먹고 싶은 모양이다.

‘생긴 건 홍차랑 케이크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은데…… 식성은 그냥 몬스터네.’

이강우는 속으로 실소를 지었다. 정말 고기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거대한 쥐를, 맛본 적도 없는 쥐의 고기를 먹고 싶어 하다니? 대단한 식탐이다.

‘불사황제의 권능이 채유리에게 갔으면 어마어마한 괴물이 탄생했겠구먼. 채유리는 맛만 있다면 몬스터를 산 채로 뜯어먹고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땅굴쥐 고기 역시 먹을 수는 없었다.

“지뢰에 폭사 당한 놈입니다. 상태가……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방혈 작업이나 내장 제거 작업도 하지 못했고요.”

제아무리 맛있는 소나 돼지도 그냥 잡아다 이렇다 할 조치 없이 불에 구우면 맛없다. 어떤 고기든 사람이 맛있게 먹으려면 도축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몬스터 고기는 더더욱 도축 과정이 중요하다. 그 사실을 나름 요리 좀 해본 이강우도 천 노인에게 도축을 배운 후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잡은 땅굴쥐는 폭사 당한 놈이다. 폭발 때문에 몸이 두 동강이 났다. 그 상태에서 피를 빼고, 내장을 제거하는 작업이 아닌 해부 작업부터 했다. 물론 어떻게든 조미료를 쓰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요리를 하면 먹을 수 있는 놈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럴 바엔 그냥 다른 요리를 먹는 게 낫다.

채유리는 이런 이강우의 대답에 말없이, 자신의 보석 같은 눈망울로 이강우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배부르게 해준다면서 왜 그러지 못하느냐? 하는 느낌의 서운함. 이강우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서운함이다.

‘내가 평생 배부르게 해줄게, 하면서 프러포즈를 한 것도 아닌데…… 미칠 노릇이군.’

이강우가 그 눈빛을 외면하며 말을 돌렸다.

“……초콜릿 다 드셨습니까?”

“강우가 해준 요리를 먹고 싶어.”

강우가 해준 요리.

아름다운 여인이 해준 그 친근하기 그지없는 표현, 정상적인 남자라면 가슴이 사르르 녹을 만한 표현이었지만 이강우는 가슴이 녹기는커녕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몬스터 잡아, 몬스터 썰어, 해부해, 연구해, 요리해…… 내 돈으로 하루 종일 인터넷 뒤지면서 초콜릿 제품까지 사다 줘…….’

채유리를 위해 해준 게 정말 많다. 이쯤 되면 집사가 아니라 보모 수준이다.

‘어떻게든 뽑아 먹는다.’

하지만 반대로 채유리의 이강우 의존도가 높을수록 이강우의 영향력도 커진다.

그 무렵 근처에서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이우희가 관심이 생겼는지, 한마디 말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강우 씨는 요리를 참 잘하시던데, 전에 요리사를 하셨나요?”

이강우의 요리 솜씨는 도축 솜씨 이상으로 훌륭했다. 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도 상당했다. 한식, 중식, 양식, 일식…… 주문하면 어지간한 건 뚝딱 만들었다. 그러나 이강우의 경력 어디에도 본격적으로 요리를 했었던 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대체 그 요리 실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

“어머니가 요리 좀 하셨습니다. 그냥 하신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하셨죠. 기능장 자격증에도 도전하셨을 정도니까요. 떨어지시긴 했지만.”

말을 하던 이강우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머니가 지금 내 꼴을 보면 다리몽둥이를 분지르려고 하시겠지.’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모습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심지어 그 기억조차도 아련한 기억이다. 총꾼으로 지낼 때는 반은 범죄자나 다름없는 신분이라 찾아가기 힘들었고, 사업이 망한 이후에도 감히 어머니와 여동생 얼굴 볼 자신이 없어서 찾아갈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번듯한 직장을 얻었지만…… 애초에 이강우가 유적 사냥으로 돈을 버는 걸, 그 돈으로 자기 삶을 연명하는 걸 원치 않던 분이다. 이강우가 길드에 소속된 걸 알면, 그게 무수히 많은 이들이 취직하고 싶어 하는 즈믄나래 길드라고 해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안 좋은 몸에서 없던 힘을 쥐어짜 내서라도 사랑의 매를 휘두르실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보고, 맛보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게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제가 요식업 관련 사업을 하다 망한 적이 있어서…….”

요리를 볼 줄 알고 할 줄 아는 재주가 있었다. 아니, 그런 재주가 있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총꾼으로 번 돈 전부를 투자한 사업이 요식업이었다.

“사업이요?”

“별거 아닙니다. 인기 있는 음식점은 인기가 많을수록 임대료가 올라가거든요. 그래서 그런 요리사들을 모아서 적당한 곳에 가게를 모아서 맛집 거리 같은 걸 만드는 거죠.”

요리 보는 안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설프게 주식이니, 뭐니 이런 곳에 투자하는 것보단 그래도 깜냥이 통하는 요식업을 상대로 투자를 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잘 안됐나 보네요.”

이우희의 말에 이강우는 서글픈 미소를 지은 채 어깨만 으쓱했다. 그 사업이 잘됐으면 여기 있을 일도 없다. 멋진 차를 끌고 가로수길 커피숍에서 애인하고 수다나 떨고 있었겠지.

어쨌거나 그 과정에서 좀 더 본격적으로 요리를 알아봤다. 그래도 나름 전 재산을 투자하는 일인데 깜냥만 믿고 덤볐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물론 현실은 냉혹했다. 도중에 계약문제를 비롯해 법적인 절차, 먹튀…… 이런저런 문제 등으로 첫 삽을 뜰 때부터 잡음이 들리더니 결국 망했다. 쫄딱 망했다. 이강우가 목숨을 베팅해서 번 돈 전부가 제대로 수익을 내기도 전에 날아갔다.

‘그때 그냥 눈 딱 감고 모은 돈 전부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내 명의로 차렸다면, 보증금, 권리금 정도는 건질 수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떠올려서 기분 좋을 것 하나 없는 기억들. 때문에 이강우는 여기까지만 과거를 곱씹었다.

“여하튼 요리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이강우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 그들의 대화가 잠시 멈췄을 때, 마치 그들의 대화가 멈추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으로 비행 몬스터가 접근 중입니다.”

소란이 터졌다.

“몬스터의 정체는…… 박쥐뱀입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됐다.

* * *

코뿔늑대의 사체를, 탐스러운 육질의 고깃덩이를 봤음에도 발길을 돌렸던 박쥐뱀 암수 두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유적 사냥꾼들의 베이스캠프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놈들을 파악한 안중현이 곧바로 상황을 지휘했다.

“사격 준비.”

처음 놈들을 봤을 때는 낌새를 가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공을 취하지 않았다.

“이우희, 네가 처리해라.”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놈들을 상대로 정체를 감출 필요는 없다.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럼 결국 답은 전면전뿐. 이미 싸우기 위한 준비는 갖추고 있었다.

두 명의 총꾼이 저격용 라이플을 든 채 우거진 수풀 사이로 보이는 빛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나머지 총꾼들 역시 총으로 하늘을 겨누었다. 박쥐뱀이 사격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놈들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속셈이었다.

그사이 이우희가 숨을 고르며,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박쥐뱀과 전투가 이루어지기 직전.

“전방 300미터 앞에서 의문의 몬스터 등장!”

속보가 다시 한번 터졌다.

“300미터?”

그 속보를 듣는 순간 안중현의 머릿속에 물음표와 동시에 그림 하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이 근처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비롯해 경보장치들을 설치했다. 그런데 전방 300미터에 몬스터가 등장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환수 타입?’

그럴 수 있다. 유적이니까. 환수 타입 같은 몬스터들 중 일부는 감시 장비에 걸리지 않는다. 당장 꽃등도마뱀만 하더라도 한번 놓치면 잡기 위해서 온갖 수고를 해야 한다. 첨단 장비가 통하지 않는 놈은 분명 있다. 그래서 안중현은 장비를 맹신하지 않는다. 지금 같은 상황 앞에서 혼란에 빠지지도 않는다.

‘아니, 환수 타입이 아니야.’

하지만 반대로 그 정도로 뛰어난 은신 능력이 있는 놈이라면 300미터가 아니라 지척에서 발견됐을 것이다.

300미터라는 개념.

이걸 분명하게 해석해야 한다.

“땅굴쥐인가?”

땅굴쥐.

놈이 땅굴을 팠고, 그 굴을 통해 몬스터 몇 마리가 이동하며 베이스캠프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힌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든 생각할 수 있는 땅굴 전술이지만, 몬스터가 이걸 생각했다는 건…….

‘소름이 끼칠 정도군.’

기생망고거북, 무시무시할 정도로 영리한 놈이다.

그렇다고 감탄사를 뱉으며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안중현이 쯧! 짧게 혀를 찼다.

“땅굴쥐 별명이 쥐뢰였나?”

쥐뢰.

땅속에 지뢰 같은 함정을 만든다고 해서, 땅굴쥐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별명이다.

“진짜 지뢰가 뭔지 보여주지.”

불지뢰 마법을 주력 마법으로 쓰는 안중현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별명은 아니다.

안중현이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브이! 모양을 만들자 두 명의 총꾼이 안중현 앞에 섰다. 앞서서 달려오는 대여섯 마리의 몬스터를 안중현이 해치울 모양.

“무리한 전투는 삼갈 것. 이번 전쟁은 버티면 승리한다.”

사냥이 아닌 전쟁이 시작됐다.

* * *

빠른 속도로 베이스캠프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던 박쥐뱀들이 고도를 낮췄다.

정글,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지붕처럼 머리 위를 가렸지만 사격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낮게 오는 적을 노릴 수 있을 만한 적당한 포인트, 굵직한 나무가 베이스캠프 내에 포탑처럼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고 해도, 이 정도 여건도 없는 곳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바보는 없다.

그 나무 위에서 저격수가 된 총꾼은 스코프 너머로 박쥐뱀을 바라봤다.

‘후우.’

박쥐뱀과의 거리가 시시각각 좁혀지기 시작했고, 총꾼의 호흡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길어지고, 작아지더니, 종국에는 멈췄다.

픕!

그렇게 호흡이 멈춘 순간, 길쭉한 총신을 가진 라이플이 짤막하게 소리를 내뱉었다.

묘한 소리…… 마치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소리였지만, 그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탄환은 절대 우스꽝스럽지 않았다. 탄환은 바람을 거침없이 가르며, 단숨에 박쥐뱀의 날개에 구멍을 뚫었다. 그 상태로 박쥐뱀이 힘차게 날갯짓을 하자, 비막에 뚫린 구멍은 더욱 커졌다. 곧게 허공을 가르던 박쥐뱀의 몸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날개에 생긴 이상을 파악한 박쥐뱀이 입을 벌렸다.

촤앗!

벌린 입에서 독액이 터져 나왔다. 분노의 표현. 그러나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보여주는 박쥐뱀의 분노는 총꾼에게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했다. 또 다른 총꾼이 숨을 멈춘 채 방아쇠를 당겼고, 탄환은 휘청거리는 박쥐뱀의 다른 날개에 구멍을 만들었다.

거기서 두 마리의 박쥐뱀은 갈라섰다.

한 마리는 이미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날개를 접은 채 빠르게 하강했고, 다른 한 놈은 더 높이 비상했다.

스코프를 통해 그 모습을 보던 총꾼들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렇게 움직이는 놈들을 저격용 라이플의 총구로 쫓는 건 무의미하다. 이제는 저격수가 아닌 본연의 임무로 돌아올 때.

“한 마리 격추. 한 마리만 격추했다.”

짤막한 말을 남긴 총꾼들은 자동소총으로 바꾸며, 조만간 있을 새로운 전투를 준비했다.

* * *

“위? 아래?”

채유리의 물음에 이우희는 곧장 대답했다.

“제가 아래를 맡죠.”

역할분담은 그 짧은 대화로 끝이 났고, 채유리는 곧바로 이강우를 향해 눈빛으로 사인을 줬다.

보조하라는 내용의 눈빛. 이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유적 사냥에서 이강우는 채유리 전담 총꾼이다. 이강우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다. 유적에서는 강한 마법사 옆에 있어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강우가 마법사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강우가 해야 하는 건, 앞으로 치러질 목숨 건 전투에 집중하는 것.

‘그보다 박쥐뱀은 살이 굉장히 질긴데…… 복어처럼 얇게 썰어서 샤부샤부로 해 먹어볼까?’

그러나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으로 박쥐뱀의 요리방법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아이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나도 미쳐 가는구나.’

이강우는 그렇게 조금씩 포식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울창한 나무들이 장애물처럼 가득 차 있는 정글을 다섯 마리의 코뿔늑대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거침없는 질주였고 거친 질주이기도 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코뿔늑대들의 돌진은 때때로 나무에 부딪혔고, 개중에는 달리다가 자빠지는 놈들도 있을 정도였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마법을 준비하던 안중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하나, 둘…….’

타이밍을 가늠했다.

‘셋.’

그리고 셋, 그 숫자가 입 안을 맴도는 순간 질주하던 코뿔늑대의 발치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푸홧!

솟구치는 불기둥은 코뿔늑대의 뱃가죽과 등가죽에 시원한 구멍을 만들어줬다.

코뿔늑대는 단말마도 내뱉지 못한 채 바닥에 너부러졌다.

“후우.”

안중현이 짧게 숨을 골랐다.

힘든 건 아니었다. 4서클 마법사가 3서클 마법을 쓰는데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면, 그건 4서클 마법사가 아닌 거다.

또한 마법이란 건 사용자가 컨트롤할 수 있다. 꼭 100의 마력을 요구한다고 해서 100의 마력을 넣을 필요가 없다. 상황에 따라서 위력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그 조절은 숙련자만 가능하지만…… 안중현에게 숙련의 정도를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닐 터.

투투투!

그러는 사이, 안중현과 함께 온 총꾼 두 명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방아쇠를 당겼다. 놈들의 몸뚱이에 탄두를 박아 넣는 그들은 금방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그들은 지금 흘리는 땀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이놈들 뭐야?’

열심히 한다.

그러나 코뿔늑대는 그런 총꾼들의 노력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았다. 총꾼들을 무시한 채 그저 올곧게 자기 갈 길만 가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쉽게 경험하기 힘들다. 몬스터들은 본능에 충실하니까. 자기를 자극하는 게 있으면 그것부터 노린다.

안중현 역시 이런 코뿔늑대의 행동에 짧게 혀를 찼다.

‘기생망고가 몬스터의 본질을 바꿔 버리는군.’

지금 경우는 여러모로 특이한 경우다.

일단 코뿔늑대는 무리를 지어 움직이지도 않고, 저돌적인 놈이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돌진하는 놈은 아니다. 심지어 거듭된 자극과 도발,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기생망고, 그 기괴한 놈이 코뿔늑대의 근본을 바꿔 버렸다.

‘그런 걸 연구하다니…… 마약도 약으로 쓴다지만, 거 참…….’

기생망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떠올랐다. 그다지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때문에 안중현은 사적인 생각은 거기서 접었다.

‘분석해라.’

안중현이 해야 하는 건 이 모든 요소들을 조합해서 무리를 지휘하기 위해 필요한 방향성과 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왜 돌진이지?’

지금 코뿔늑대는 자기 의지가 없다. 놈들의 움직임은 기생망고거북의 의도나 다름없다.

‘땅에서 돌진. 하늘 위에서 박쥐뱀.’

지상, 공중.

두 곳에서 동시에 공격을 시도했다.

그 이유? 어려울 건 없다.

‘시선 분산과 전력 분산.’

분산이다.

지금 공성전으로 따지면, 코뿔늑대는 충차가 되어 성벽을 향해 돌진하는 격이고, 박쥐뱀은 투석기가 던진 돌이다. 심지어 날아오는 방향조차 똑같다. 한쪽으로만 쳐들어오고 있고, 그쪽에 집중하고 있다.

‘한쪽만 친다.’

성동(聲東), 유난히 더 소란스럽게 일을 꾀하고 있다. 은밀하게 하고자 했다면 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역시 노림수가 있다는 의미.

때문에 한쪽이 시끄러워지면, 그 반대쪽을 의심해야 한다.

격서(擊西), 조용한 곳에서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은 위력이 약하더라도 치명적인 결과를 만드니까.

하물며 약한 위력의 공격이 아닌 전력을 다한 회심의 공격이라면?

‘내가 돌아가서 뭔가 하는 건 무의미하지.’

그렇다고 여기서 그 노림수를 상대하기 위해 안중현이 다가오는 코뿔늑대를 놔두고 본진으로 돌아가는 건 악수 중의 악수다. 그럼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냥과 다르게 전쟁은 상대의 수를 알면서도 역수나 묘수가 아니라 맞수를 줘야 할 때가 있다. 결정적으로 이런 경우의 수 역시 안중현은 염두에 두었다. 염두에 두었고,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직접 나온 것이다.

‘기생망고거북, 아무리 영리한 몬스터라고 해도 놈이 준비한 조커가 즈믄나래의 공주님보다 강할 순 없지.’

채유리.

그 어떤 체스 말보다 강한 여왕이 지금 본진을 지키고 있다.

‘코뿔늑대를 먹고 싶다고 이강우에게 칭얼거리는 그녀를 위해서 한 마리는 멀쩡하게 잡아야겠군.’

안중현은 그런 그녀의 마음에 들을 적당한 선물을 들고 가면 된다.

* * *

하늘 높이 날아오른 박쥐뱀은 그 상태에서 날개를 접었다. 날개를 접고, 바닥을 향해 몸을 똑바로 편 채 추락했다. 그 모습은 마치 미사일처럼 보는 이를 아득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흥.”

하지만 채유리는 오히려 그 박쥐뱀을 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옆에서 추락하는 박쥐뱀을 바라보는 이강우는 채유리가 조소와 함께 뀐 콧방귀를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포식자가 따로 없군.’

채유리는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전투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무조건 장점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무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르지만, 그게 하룻강아지가 범을 이긴다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하지만 지금처럼 전력이 압도적으로 한쪽이 우세한 상황에서, 채유리가 유리한 상황에서 그녀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박쥐뱀에게 이번 전투가 액션 장르가 아닌 쏘우를 떠올리게 하는 공포, 고어 장르가 된다는 의미였다.

채유리가 검을 들었다. 평범한 외형을 가진 단검, 하지만 마력을 주입하면 마력검 마법이 발동하는 아티팩트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자신의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녀의 검이 마력을 머금으며 푸르스름한 기운을 흘리기 시작했다.

번뜩이기 시작한 마력검은 독으로 번들거리는 박쥐뱀의 독니보다 무서워 보였다.

그때 추락하던 박쥐뱀이 날개를 펼쳤다. 지상과 약 30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날개를 펼치자, 낙하산을 펼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났다. 박쥐뱀의 낙하속도가 급감속했다.

동시에 박쥐뱀이 입을 벌렸고, 독니 네 개를 전부 드러냈다. 그 독니에서 반투명한 액체들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독액들이 이슬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소량이 피부에만 닿아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독액.

그러나 이미 총꾼들은, 마법사들은 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총꾼들은 더운 정글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옷을 벗지 않았고, 그들은 후드티처럼 모자마저 뒤집어썼다. 이 정도 독에 대한 대처를 안 했을 리 없다. 박쥐뱀이 있다는 사실도 진즉에 파악하지 않았던가?

채유리에게는 더더욱 소용없는 짓이었다.

파직파직!

그녀의 몸 주변에는 어느새 발동된 라이트닝 실드가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라이트닝 실드 위로 떨어진 독액은 그대로 증발했다.

그 광경을, 나름 자신이 준비한 회심의 공격에 그 누구도 영향을 받지 않은 광경을 바라보는 박쥐뱀은 잠시 동안 아무런 행동 없이 날개만을 펄럭였다.

투투투!

그런 박쥐뱀을 봐줄 유적 사냥꾼들이 아니다. 사방에서 총성이 터지며, 발사된 탄환들이 박쥐뱀의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표적은 날개였고, 사방에서 발사된 탄환은 박쥐뱀의 날개에 수십 개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개중에는 이강우가 만든 구멍도 있었다.

규칙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던 이강우는 박쥐뱀의 날개에 구멍이 생기는 순간 눈동자를 굴렸다.

‘이게 전부일 리 없어.’

이강우 역시 현재 전체적인 전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다.

안중현이 코뿔늑대와 전투를 치르는 상황 역시 보고받았고, 받는 순간 안중현과 똑같은 의심을 했다.

‘고작 이걸로 승부를 보는 건 승부수가 아니라 자충수지.’

코뿔늑대, 박쥐뱀.

강한 몬스터지만, 지금 유적에 들어온 유적 사냥꾼을 압도할 전력은 절대 아니다. 좀 과장하면, 마법사 없이 총꾼들만으로도 피해를 감수하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력이 그저 간을 보기 위한 전력……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길 만한 전력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기생망고거북은 영리한 놈이니 이만한 투자를 하면 이익을 볼 자신이, 확신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당연히 그 확신을 하게 해주는 카드가 도처에 있을 것이다.

‘어디냐?’

말과 함께 이강우는 진즉에 사용한 분석 마법을 이용해 주변을 훑었다. 마력의 반응이 보이긴 했다. 박쥐뱀의 머리 위에는 [1,553/2,012]라는 숫자가 보였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숫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마력의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그 외의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은신 능력인가?’

분석 마법은 마력의 흔적과 마력의 수치를 알려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력을 가진 모든 생명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마법은 아니다. 은신 능력같이 자신을 숨길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경우에는 분석 마법으로도 볼 수 없다.

그 순간 박쥐뱀이 바닥에 추락했다. 바닥에 추락한 박쥐뱀은 날개를 접고 거칠게 몸을 움직이며 입을 크게 벌린 채 연달아 독을 발사했다. 총꾼들이 독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뒤로 걸음을 물렸다.

반면 라이트닝 실드로 독을 몸에 닿기도 전에 태워버리는 채유리는 박쥐뱀을 향해 달려갔다.

이 순간 이강우는 박쥐뱀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바닥에 떨어졌고, 상대가 채유리인 이상 박쥐뱀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가진 독과 피 전부를 뽑힌 후에 가죽은 지갑, 샌드백, 구두가 되고, 살점은 이강우의 손을 통해 얇게 썰려 채유리의 배 속에 들어갈 운명이다.

‘분명 온다.’

오히려 지금이 호기다. 이강우가 기생망고거북이라면, 이번 유적 사냥 파티가 가진 최고의 카드인 채유리가 박쥐뱀을 잡으려는 순간을 역으로 노릴 것이다.

‘분명 온…….’

그때 이강우의 눈에 이제껏 보이지 않던 마력의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도처에 깔린 나무, 그 나무 중 한 그루의 머리 위로 숫자가 표시됐다.

[7,321/8,300]!

‘……젠장!’

“목각귀신이다!”

등장한 몬스터는 7등급 몬스터, 목각귀신이었다.

* * *

목각귀신.

7등급이며 어떠한 나무로도 위장이 가능한 특수한 능력을 가진 몬스터로, 진짜 모습은 봉두난발에 고목(枯木)으로 만들어진 가진 괴물 원숭이다.

나무로 변장을 한 상태에서 귀신처럼 등장하고, 생김새 역시 귀신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섬뜩했기에 목각귀신이란 이름이 붙었다.

강한 몬스터다. 순수한 전투 능력만 놓고 보면 7등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외형은 비쩍 곯은 고목을 떠올리게 하지만, 기다란 두 팔의 힘은 상당해서 사람의 사지(四肢) 정도는 가뿐하게 뽑아낼 수 있다. 또한 채찍처럼 휘두른 팔에 맞으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여기에 앞서 말했듯이 나무로 위장하는 변장 능력은 절대 구분할 수 없다. 정글 같은 곳에서 목각귀신은 악몽이다. 정글에서 목각귀신은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한다.

그런 목각귀신이 등장하는 낌새를 느낀 건 이강우가 유일했다. 당연히 이강우가 목각귀신의 등장을 알리기 위해 놈의 이름을 부르짖었을 때 그 말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최소 반 박자 늦은 반응.

그래도 그 반응이, 반 박자 늦은 반응이 채유리의 목숨을 구했다.

이강우가 목각귀신의 등장을 알리는 순간, 채유리는 독을 내뿜던 박쥐뱀의 몸에 잽싸게 올라탄 후, 녀석의 머리 뒤로 이동해 통조림을 따듯, 마력검 마법이 걸린 검으로 박쥐뱀의 목을 따고 있었다.

서걱서걱, 섬뜩한 소리가 두꺼운 박쥐뱀의 목을 절반쯤 잘라냈을 무렵, 채유리가 이강우의 외침에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친 건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2미터 신장의 봉두난발을 한 괴물 원숭이였다.

괴물 원숭이를 보는 순간, 그녀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박쥐뱀의 몸뚱이를 발판 삼아 도약했다. 헤이스트 마법이 걸린 그녀의 몸은 스프링처럼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콰앙!

단숨에 거리를 좁힌 목각귀신이 채찍처럼 휘두른 팔이 박쥐뱀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터진 굉음은 무시무시했고, 목각귀신이 휘두른 팔에 맞고 날아간 박쥐뱀의 몸뚱이가 10여 미터를 날아간 후에 우거진 나무기둥 두어 개를 쪼개고 바닥에 너부러진 광경은 무시무시하다는 표현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구사일생.

만약 이강우의 외침이 없었다면 채유리의 반응은 반 박자가 아닌 한 박자 혹은 그 이상 늦었을 테고, 채유리의 몸뚱이는 박쥐뱀과 함께 바닥에 너부러진 시체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상황 하나가 지나갔다.

그다음 상황을 이끈 건 이강우였다.

투투투투!

이강우는 사격 자세를 취한 채 박쥐뱀을 단숨에 날려버린 목각귀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총성과 빗발치는 총알 앞에서 목각귀신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녀석은 마치 날파리를 마주한 사람처럼, 팔을 휘두르며 날파리를 쫓았다. 사람 몸뚱이라면 이미 벌집이 됐었어야 할 총의 위력이 녀석에게는 날파리 수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강우는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탄창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쐈고, 탄창이 바닥을 드러내면 잽싸게 탄창을 교환한 뒤에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시선을 끌어야 해. 채유리가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게 최우선이다.’

마법사가 위기에 빠지면 도와주는 것. 그게 총꾼의 역할이었고, 이강우는 지금 그 역할에 충실했다.

거듭된 사격으로 목각귀신의 시선을 빼앗았고, 녀석을 귀찮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이강우의 행동과 연거푸 터지는 총성, 날파리를 쫓듯 팔을 흔들며 짜증을 부리는 목각귀신의 모습에 나머지 총꾼들이 정신을 차렸다. 여기 모인 총꾼들 중 이강우보다 경력이 아주 부족하다고 할 만한 자는 없다. 다들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작금의 상황이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몸이 알아서 반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했고, 경험을 쌓았다.

포메이션을 형성하기 위해 시간을 쓸 필요도 없었다. 앞서서 박쥐뱀의 몸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쥐뱀을 중심으로 원형을 유지한 채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이미 포위망을 형성한 상황에서 목각귀신이 알아서 그 포위망 안으로 들어온 상황이다.

자세를 잡고.

철컥!

사격만 하면 된다.

투투투!

쉴 새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

투투투투!

사방에서 총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수준을 넘어 쏟아지는 탄환 세례 속에서 목각귀신은 두 팔로 얼굴을, 몸을 가렸다. 치명적인 위력은 없지만, 온몸을 바늘처럼 콕콕 찌르는 총알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그러나 그뿐이었다.

지금 총꾼들이 할 수 있는 건 목각귀신의 시선을 끄는 게 전부였다. 이대로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목각귀신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벌떼들을 벌집째로 부수고자 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목각귀신을 상대할 수 있는 공주님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다른 총꾼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을 때 이강우는 총을 놓고 채유리를 향해 이동했다.

급한 상황, 판단이 아닌 본능적인 반응밖에 할 수 없었던 그녀는 박쥐뱀을 밟고 도약한 이후 제대로 착지조차 하지 못한 탓에 온몸이 흙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하얀 피부, 탐스러운 금발 머리칼은 정말 아까울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눈빛 역시 동공에 초점이 제대로 맺히지 않은 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강우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자마자 이강우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오른팔로 그녀의 등을, 왼팔로 그녀의 다리를 들었다.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속셈이었다. 이번 유적 사냥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총꾼 전부가 죽더라도 그녀가 살면 출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강우가 채유리를 안는 순간, 채유리 역시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역력했던 당혹감은 사라지고, 강렬한 적의와 살의가 대신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반쯤 풀린 눈,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는 무심한 눈동자가 당장에라도 적의 목줄을 물어뜯을 살쾡이의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변했다.

“내려줘.”

채유리가 이강우에게 말했고, 이강우는 대답했다.

“내가 누군 줄 압니까? 제 이름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장난으로 한 소리…… 같은 건 당연히 아니다. 이강우는 진심으로 채유리의 정신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했다. 조금 전 상황은 보통 사람이면 반쯤 정신이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눈앞에서 귀신을 본 것과 다름없는 상황 아닌가?

“이강우.”

채유리는 그런 이강우의 질문에 곧장 대답했고, 이강우는 자신의 품에 안긴 채유리의 눈빛을 보자마자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이게 제정신이군.’

어쩌면 지금 이 눈빛이 채유리의 진면목일지도 모른다. 이강우가 채유리를 만난 이후 이렇게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표정과 눈빛을 보인 건, 그녀에게 산더미 같은 초콜릿 제품을 선물해 줬을 때 이후 처음이니까.

이강우가 그녀를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순간 채유리는 목각귀신을 바라봤다. 봉두난발의 괴물원숭이는 거듭된 총꾼들의 벌떼 공격에 더 이상 반응조차 보이지 않은 채 몸을 웅크리고, 제 팔로 몸을 가린 채 때를 가늠했다.

놈을 향해 사격을 하는 총꾼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흘릴 만큼 많이 흘린 땀, 그러나 지금 흐르는 모든 땀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목각귀신은 폭발 직전의 벌집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터진다. 어떻게든 터진다. 그리고 놈이 터지면, 총꾼 중 누군가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에 질려 도망치거나 그러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더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채유리를 따라 목각귀신을 바라보던 이강우 역시 등골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다섯 파티가 전멸할 만하군.’

7등급 몬스터 두 마리가 동시에 나오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7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전투 능력과 은신 능력을 갖춘 목각귀신과 몬스터 무리를 조종할 수 이 있는 능력을 가진 기생망고거북의 조합은…… 7등급 유적 안에서 조합될 수 있는 몬스터 조합 중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놈이 정글로 들어가서 모습을 감추기 전에 최대한 빨리 처치해야 해.’

더군다나 이제 시작이다.

여기서 목각귀신은 여차하면 뒤로 몸을 뺀다. 보통 때의 놈이라면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뒤로 도망칠 리 없겠지만, 녀석이 기생망고를 먹었다면? 기생망고를 먹고 지금 기생망고거북의 영향을 받는다면?

놈이 정글 속에서 모습을 감춘 채 게릴라전을 시작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지금이 적기.

‘지금 처치하지 않으면 우리 쪽 피해가 커진다.’

지금 잡아야 한다. 나중을 기약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목각귀신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채유리뿐이다.

이강우가 채유리에게 고개를 돌렸고, 채유리 역시 이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나 잘 챙겨줘.”

그때 채유리가 짧은 말과 함께 옷 안에 감추고 있었던 목걸이를 꺼냈다. 어린아이 손바닥 크기의 푸른빛 보석이 매달린 목걸이였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꺼내는 순간, 채유리의 몸에서 이강우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강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뭐, 뭐야?’

분석 마법을 얻은 이후 처음 보는 광경.

극한까지 응축됐던 마력이 폭발하는 광경!

‘설마?’

이강우가 기겁하는 순간.

쩌저적!

하늘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빛으로 가득했던 하늘 위에서 푸른색 번개 하나가 목각귀신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5서클 마법, 청뢰(靑雷)가 발동됐다.

* * *

청뢰.

5서클 마법으로, 이 마법이 걸린 마법 아티팩트가 즈믄나래의 손에 들어온 건 예전에 진행한 5등급 유적 사냥에 성공했을 때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5등급 유적 사냥에 성공했던 그때를 말함이다.

5서클 마법 아티팩트면, 사실 사적인 집단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5서클 마법 청뢰가 걸린 아티팩트는 한국 정부의 소유였다. 대신에 한국 정부는 계약에 따라 청뢰 마법 아티팩트를 즈믄나래에 대여해주고 있었다.

그런 청뢰 마법 아티팩트를 즈믄나래가 채유리에게 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청뢰 마법은 5서클 마법 중에서도 보다 많은 마력을 요구하는 마법이었다. 5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제대로 쓰기에는 쉽지 않은 마법이었고, 떨어지는 청뢰를 정확히 표적에 명중시키는 것 역시 마법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했다. 현재 즈믄나래에 소속된 5서클 마법사 중 청뢰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마법사는 채유리를 포함해도 몇 없었다.

두 번째는 낙인이었다. 대한민국에 청뢰 마법 아티팩트는 현재 하나밖에 없다. 또한 이 마법 아티팩트는 한국 정부 소유고, 한국 정부는 즈믄나래에게만 청뢰 마법 아티팩트를 대여해주고 있다. 채유리가 청뢰 마법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는 이상 그녀는 무조건 즈믄나래 소속이다. 다른 그 누구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 수 없다.

그런 청뢰 마법을 채유리가 사용했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5서클 마법이 바로 지척에서,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맙소사.’

대단한 광경이었다.

마치 도끼로 내려찍은 듯, 반으로 완벽하게 쪼개진 채 새카맣게 타 숯덩이가 되어버린 목각귀신의 사체를 바라보는 이강우의 입은 도무지 다물어지지 않았다.

‘5서클 마법…….’

5서클 마법을 본 게 처음은 아니었다. 지척의 거리는 아니지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5서클 마법이 발동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유튜브를 통하면 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지척에서 몬스터가 5서클 마법 앞에서 그야말로 사그라지는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단하군.’

이 순간 이강우의 가슴 속에서는 묘한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감탄이 아닌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래, 이거지.’

이런 힘을 가지고 싶다.

고작 한 번의 손짓으로,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없는 괴물을 처량하고 초라한 존재로 만들고 싶다.

‘이게 마법이지.’

이강우는 힘에 대한 욕망으로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 너무 뜨거워서 이강우는 온몸이 그 열기에 녹을 것만 같았다.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이강우의 고통을 잊게 해준 건, 이우희의 보고였다.

-기생망고거북 발견, 추적하겠습니다!

* * *

청뢰가 떨어지는 순간 이우희와 안중현은 기겁했다.

‘청뢰잖아?’

‘갑자기 엄청난 마법이 나왔군.’

5서클 마법은 그들도 보기 쉬운 마법이 아니었을뿐더러, 7등급 유적에서 5서클 마법이 사용된다는 건 그리 좋은 케이스가 아니었으니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써도 이상할 건 없지만, 괜히 과하게 힘을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기겁을 한 건 그 둘만이 아니었다. 5서클 마법의 등장은 다른 괴물도 기겁하게 만들었다.

기생망고거북.

이제까지 정글 속에서 귀신보다 더 귀신같이, 목각귀신조차 가소로울 정도로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감추고 있던 녀석은 하늘에서 푸른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기겁했다.

그 낌새를 이우희가 운 좋게 발견했다.

“기생망고거북 발견! 추적하겠습니다!”

그녀는 말과 함께 얼핏, 보인 기생망고거북을 잡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기생망고거북은 그런 이우희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등껍질 사이로 나온 네 개의 다리를 열심히 놀렸다. 그 발걸음은 거북이치고는 빨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거북이치고 빠를 뿐, 쏜살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몬스터들에 비교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기생망고거북의 약점이었다. 기동력의 부재. 기동력이 없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들키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은신 능력이 생긴 것이다. 또한 정글이라는 공간은 기생망고거북에게 은신처는 되었지만, 도주로가 되어주진 못했다. 덩치가 작지 않은 기생망고거북에게 나무로 가득한 공간을 바람처럼 질주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이우희가 새총으로 날린 얼음덩어리가 기생망고거북의 몸뚱이에 닿으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유적 사냥이 끄트머리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 * *

기생망고거북은 발견하는 게 어려울 뿐,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이번 전쟁은 목각귀신이 잡히는 순간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각귀신이 잡히는 순간, 쌍방이 치고받던 전쟁은 일방적으로 쫓고 쫓기는 사냥으로 바뀌었다.

‘이제 위협적인 몬스터는 없다. 남은 몬스터들은 8등급 이하. 그마저도 지금 낌새가 없는 걸 보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있었다면, 기생망고거북이 병력에 동원했을 테니까.’

안중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우희와 합류했다. 그녀를 도와 기생망고거북을 잡고자 했다. 원래 목적은 기생망고거북 사냥이 아닌 출문 확보였지만, 이미 목각귀신이란 가장 큰 위험물을 제거한 상황에서 사냥감이 알아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주저하거나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채유리의 상태였다.

청뢰 마법을 쓴 그녀는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마력 쇼크와는 조금 달랐다. 마력 쇼크였다면 저혈당 쇼크와 비슷한 증상을 보여야 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냥 컨디션이 정말 안 좋을 때의 느낌, 몇몇 사람들이 비만 오면 축 늘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강우는 그런 그녀 옆에 붙어서, 그녀의 입 안으로 초콜릿을 잘게 조각내 먹여줬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초콜릿을 먹여주며, 마이크를 통해 안중현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했다.

-딜레이다.

“딜레이?”

-4서클 이상의 마법은 사용되는 마력량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갑작스러운 마력 공백에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걸 딜레이라고 한다.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다. 시간이 흐르고 마력이 다시 차면 나아질 거다. 여차하면 기생망고를 먹여서…….

“기생망고? 그거 중독성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먹으면 안 된다고…….”

-처리방법이 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강우의 눈매가 게슴츠레 변했다.

‘이 인간 대체 뭘 숨기는 거야?’

기생망고는 씨앗을 제거하더라도 중독성 때문에 그냥 먹어서는 안 된다고, 안중현이 직접 말해줬다.

그런데 지금 그 기생망고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물론 있을 순 있다. 단지 그때는 해주지 않은 말을, 그냥 먹지 말라고 한 주제에 왜 이제 와서는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채유리에게 먹이면 된다고 말하는 걸까?

이강우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질문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본인이 의도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질문해봤자 진실을 말해줄 이유가 없지.’

“예, 그럼 사냥 잘하십시오. 전 여기서 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강우, 채유리 목숨은 네 손에 달렸다. 무조건 그녀를 지켜라.

그렇게 대화가 끝났을 때 이강우는 고개를 돌려 반으로 쪼개진 목각귀신을 바라봤다.

‘저기서 뭐든 얻어야 해. 7등급 몬스터를 잡고 아무런 소득도 없으면 그건 좀…….’

툭툭!

그런 이강우의 몸을 채유리가 가볍게 건드렸다. 이강우가 잽싸게 고개를 돌려 채유리를 바라봤다. 초콜릿 씹을 힘도 없는지 초콜릿을 그냥 입에 넣은 채 입을 꽉 다문 그녀가 두 개의 눈동자를 한 방향으로 굴렸다. 이강우가 그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 방향에는…….

‘미치겠군.’

목각귀신의 팔에 맞고 날아간 박쥐뱀의 사체가 있었다.

‘아주 대단해. 진짜 대단해! 얘랑 결혼하는 놈은 아마 평생이 고달플 거다. 평생이!’

이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뱀고기라…… 벼락 맞은 나무를 씹는 것보단 저게 낫겠죠.”

몸이 안 좋은 마법사를 몸보신시켜 줄 때가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