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적 포식자-10화 (10/66)

10화. 대식가

우툴두툴한 사비석으로 만든 샤워실과 문외한이 봐도 고급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진 소재를 이용해 만든 호텔 화장실은 이강우가 그동안 머물던 원룸과 여관방의 화장실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쓰던 침대보다 호텔 방 화장실이 더 깨끗하고, 쾌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강우는 그런 멋진 화장실에 조금의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처럼 하염없이 거울 속의 자신만을 바라봤다.

물론 정말 신화 속 나르키소스처럼 거울 속 자신을 보고 감탄을 내뱉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이강우가 보는 것은 자신의 얼굴이 아닌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것들이었다.

머릿속에 떠 있는 아홉 개의 고리, 개중 하나가 전등처럼, 단아한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이제야 첫걸음을 뗐군.’

반쪽짜리 마법사라고 부르기에도 뭐했던 이강우가 이제는 명실상부한 1서클 마법사가 됐다.

대단한 일이다. 마법사 재능이 쥐뿔도 없던 인간이, 이 시대의 새로운 귀족계급이라 불리는 마법사가 됐다. 이 자체만으로도 이미 인생역전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만족할 순 없지.’

그러나 이강우는 마법사가 됨과 동시에, 마법사들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간이 됐다.

모든 게 그렇다. 어디든 올라가면, 또 다른 산이 나오는 법이다.

분명 1서클 마법사도 몸값은 대단하다. 하지만 1서클 마법사는 유적 사냥보다는 9등급 마나스톤을 대신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쉽게 비유하면 몸속에 피 대신 석유가 흐르는 거다. 살아 움직이는 마나스톤 같은 역할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1서클 마법사가 유적 사냥을 주도할 수 있는 건 9등급 유적 사냥밖에 없다. 8등급 이상의 유적 사냥을 하는데 1서클 마법사가 주도한다? 그런 일은 없다.

더불어 즈믄나래 길드는 9등급 유적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소 잡는 칼을 급할 때는 닭 잡는데 쓸 수 있지만, 개미 잡는 데 쓰는 일은 결단코 없다.

‘최우선 목표는 일단 3서클이다.’

이강우가 자신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이강우의 손이 시커멓게 꺼져 있는 서클을 스쳐 지나갔다.

이강우가 보다 많은 마력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유적 사냥을 주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유적 사냥 파티의 리더가 될 수 있으면, 몬스터 사체를 어떻게 처리하든 이강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유적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몬스터만이 아니다. 몬스터보다 더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어쨌거나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3서클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생충이 될 생각은 없다. 이강우는 언제나 그랬다. 비루하고, 처절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나름 목숨 내걸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안중현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에 기생해서 주는 것 없이 피만 빨아먹을 생각은 없다.

‘안중현, 당신 목표에 어울려주지. 최선을 다해서.’

그 순간 이강우가 거울의 한구석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그런 이강우의 눈동자에 15,322포인트란 숫자가 반사됐다.

* * *

즈믄나래 소속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꼽으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하선우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즈믄나래를 대표하는 마법사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업체의 모델이며, 간간이 연예계에서도 활동하는 하선우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연예계, 모델업계에서 하선우를 향한 러브콜은 이제 대기표를 뽑을 수조차 없을 정도다. 심지어 마법사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바람잡이 하선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마법사들, 유적 사냥 파티는 하선우와 같이 모래시계문을 닫고 싶다면서 즈믄나래 길드에 수도 없이, 그리고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을 한다.

여기에 어제는 자문단 활동까지 했다. 그냥 가서 조언만 해준 게 아니라, 산을 타면서 무시무시한 7등급 몬스터까지 직접 잡았다. 방송 촬영 스케줄 때문에 방송국으로 달리는 벤틀리 안에 하선우가 반쯤 졸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하선우의 단잠을 깨운 건.

“저기, 이건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화 한 통이었다.

매니저가 휴식을 취하는 하선우를 깨운 후에 스마트폰을 건넸다. 하선우가 반쯤 풀린 눈으로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안중현 씨 전화입니다.”

이윽고 발신자 이름을 듣는 순간, 하선우의 눈꺼풀을 짓누르던 피로감이 사라졌다.

‘드디어 올 게 왔군.’

하선우가 눈빛을 바꿨다.

“예, 선배님.”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뭘 원하지?

거두절미 단도직입.

거침없이, 인사도 없이, 곧장 본론만 말하는 안중현의 그 모습에 하선우 역시 거침없는 대답으로 대응했다.

“호의로 입을 다물어드린다면 받아들이실 리가 없고.”

-피차 빚은 남기지 않는 게 좋겠지.

“그럼 굳이 호의를 내세우지 않고 거래를 요청하겠습니다. 내 밑에 들어온 그 대단하신 공주님 좀 처리해주시죠.”

-뭐?

여기서 안중현이 살짝 놀랐다. 하선우의 거래 내용을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반면 하선우는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술술 말을 이어갔다.

“제가 최근 바빠서 공주님을 데리고 유적 사냥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 대신 공주님 좀 데리고 유적 사냥 좀 시켜주시죠. 우희 가르치듯, 경력 좀 쌓게 해주십시오.”

-그러니까 나보고 채유리를 맡으라고?

“제가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그녀 말고 또 있습니까?”

잠시 통화가 중단됐다.

이 순간 하선우는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중현 선배가 정말 싫어하는 타입이니까…… 뭐, 나 역시 좋아하는 인간은 아니고.’

사실 하선우는 이강우의 비밀을 즈믄나래 본부에 말할 생각이 없었다. 하선우 입장에서는 이강우가 안중현 밑에 있는 게 낫다. 안중현은 다른 건 몰라도 마법사 키우는 재주는 대단하다. 사실 대가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나오면 안중현이 하선우를 의심할 터. 그래서 기꺼이 준비했다.

-입을 다물어주는 대가치고는 꽤 쓰군.

“예, 쉽진 않을 겁니다. 공주님이 괜히 공주님이겠습니까?”

-좋아.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선우는 스마트폰을 다시금 매니저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다시 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제까지처럼 잠들 수는 없었다.

‘그보다 이강우가 중현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건가? 총꾼 출신이 마법사 인정을 받는 걸 포기하고 마법사 밑에, 그것도 중현 선배 밑에 고개를 숙인다? 그걸 납득한다고?’

머릿속에 그려뒀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멍청하거나 아니면 야심이 넘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미이군. 내가 보기에 멍청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인데…….’

* * *

[브론즈북이 개방됩니다.]

이강우는 이제까지 모은 섭취 마력 포인트로 브론즈북 3개를 구매했다.

고민은 없었다.

일단 마법 슬롯이 2개가 됐다. 그 2개를 고작 분석 마법과 마력 부여 마법만으로 채우는 건 아깝다.

또한 이강우는 마력 부여 마법을, 2서클 마법을 쓰면서 지금 자신에게 강력한 마법이 있어도 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질보단 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개방된 3개의 마법.

[‘마력검’ 마법을 획득하셨습니다.]

[‘해독’ 마법을 획득하셨습니다.]

[‘라이트닝 다트’ 마법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것 봐라?’

매우 좋았다.

거울을 바라보던 이강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타이틀만 봐도 좋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거 대박인가? 내가 보기엔 대박인 거 같은데?’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건 라이트닝 다트란 마법이었다.

‘전격계 마법이잖아?’

전격계 마법.

공격 마법의 꽃이다. 많은 마법사들은 화염계 마법을 선호하지만, 순수한 위력 면에서는 전격계 마법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전격계 마법이 걸린 마법 아티팩트는 희귀하기 때문에 비슷한 등급의 공격 마법 아티팩트보다 곱절이나 비싸게 거래된다.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마법이 그렇지만, 전격계 마법은 다루는 게 힘들다. 바람 속성 마법보다 다루기 힘든 편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제대로 된 공격 마법을 얻게 됐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라이트닝 다트]

-3서클 마법.

-지정된 포인트에 작은 크기의 번개 화살을 날립니다. 포인트 지정은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와우.’

심지어 3서클 마법.

‘이거 너무 좋아서 쓰질 못하겠는데?’

3서클 마법이다. 이강우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2서클 마법인 마력 부여만 해도 이강우는 20초 정도 쓰면 그 자리에서 마력 쇼크에 빠진다. 물론 그때는 마나 서클이 반쪽짜리였고 지금은 멀쩡한 하나를 가지고 있으니,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나중에 쓸 무기를 진즉에 얻은 셈이군.’

결국 미래에 쓸 무기다.

어쨌거나 5천 포인트짜리 브론즈북에서 얻을 수 있는 마법치고는 정말 좋아 보인다.

아니, 가격으로 따지면 이루 말할 수 없다. 3서클 마법, 그것도 전격계 마법이 걸린 마법 아티팩트의 거래가를 생각하면…… 이강우는 지금 자신이 평생 모은 것보다 비싼 놈을 썩은 내가 나는 꽃 하나 먹은 거로 얻은 셈이다.

‘자, 다음 마법은…….’

심지어 이것 하나가 전부가 아니다.

[마력검]

-2서클 마법.

-마력을 통해 날카로운 검을 만듭니다. 시전자의 마나 서클 개수에 따라 위력이 달라집니다.

[해독]

-1서클 마법.

-대상에 걸린 독을 해독합니다. 시전자의 마나 서클 개수가 많을수록 보다 강한 독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마법의 보다 자세한 설명을 보는 순간, 이강우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걸렸다.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

‘요리기술이네.’

마력검, 딱 봐도 이강우가 가진 도축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는 놈이다.

해독, 이강우가 먹을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를 획기적으로 늘려 줄 수 있는 마법이다.

분명하다. 이강우가 이 두 가지 마법을 전투에서 쓰는 일보다 도축하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쓰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요리기술이란 표현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가지 마법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

‘내 입장에서는 베스트 시나리오군.’

안중현이 이강우에게 원하는 건 그의 생존 능력과 몬스터 도축 능력, 총꾼 능력이다. 그런데 지금 얻은 이 마법은 이강우의 생존 능력과 도축 능력을 한 단계 높여줄 것이다.

못 먹는 것도 이강우의 손을 거치면 먹을 수 있는 게 된다.

대단한 일이다.

대단한 일이기에, 마치 우연이 아니라, 운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게 묘한 미소를 지은 이유다.

‘불사황제, 마치 당신이 확률을 조작해준 느낌이군.’

이강우의 불만을 들은 건지, 아니면 이강우가 빨리 강해져야 자신의 숙원을 풀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이강우의 운이 오늘 최고조에 도달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불사황제만이 알 것이다. 이강우가 아무리 고민하고, 고뇌한다고 해도 진실은 모른다.

때문에 이강우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당신도 내가 하루빨리 살이 뒤룩뒤룩 쪄야 삶아 먹든, 구워 먹든 할 수 있겠지.’

그 말을 끝으로 이강우가 거울에서 눈을 치웠다.

이제는 출근을 해야 할 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는 길에 로또 5천 원어치만 사야지.’

물론 출근길은 평소와 다를 것 같았다.

* * *

이강우는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으로 즈믄나래 본부 빌딩의 정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현 씨 안녕하세요?”

“예, 이강우 씨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곧장 안내데스크 직원과 친하게 인사를 나누고, 경비원들과도 가벼운 묵례로 인사를 마친 이강우의 모습은, 즈믄나래 본부 빌딩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보여준 그 우스꽝스럽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후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곧장 지하 3층을 누른 이강우는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강우의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는 초콜릿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초콜릿은 평소 먹던 저렴한 ABC초콜릿이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금박지에 쌓인 적당한 크기의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초콜릿 중 가격이 제법 나오는 녀석, 페레로란 회사가 만든 로쉐란 이름을 가진 초콜릿이다.

이강우는 그 초콜릿의 포장지를 벗긴 후에 입에 넣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초콜릿과 함께 어우러지는 잘게 조각난 헤이즐넛의 맛은 절대 하나만 먹을 수 없는 마력을 품고 있었다. 이강우는 연달아 두 개를 더 꺼내 먹었다. 다람쥐가 호두를 까먹는 솜씨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잽싸게. 입 안이 순식간에 초콜릿 향으로 가득 찼다.

‘그래, 이거지.’

초콜릿 좋아하는 사람치고 이 초콜릿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강우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먹는 이 맛있는 초콜릿 앞에서 이강우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근심과 걱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근심과 걱정 대신 로또 1등에 당첨됐을 때 뭘 할까, 같은 정말 쓸모없는 상상을 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응?’

사람 한 명이 이강우의 눈앞에 등장했다.

‘외국인?’

금발에 백인, 신장은 150센티미터, 아담한 체격을 가진 그녀는 끝내준다는 표현보다는 인형 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정말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강우는 그런 여인을 짧게 훑어봤고, 곧바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십니다.”

지하 3층은 이강우의 사무실이 아니다. 유적과 관련된 자료들이 모여 있는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누군가 이강우보다 먼저 와있다고 해서 놀랄 건 없다. 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 짧게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면 될 일이다.

헤어지면 될 일인데…….

‘어?’

이강우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지 않았다. 탑승하기는커녕 고개를 돌려 이강우를 바라봤다.

탁!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곧바로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도 그녀는 여전히 이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이강우도 촉을 느낄 수밖에.

‘뭐야? 날 보는 거야?’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여인이 이강우에게 관심을 가졌다.

‘뭐지?’

이강우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관심이다. 적어도 그녀가 이강우에게 한눈에 반해서 그런 시선을, 관심을 가질 리는 없으니까. 이강우는 그 정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안다.

‘싸한데?’

무엇보다 여긴 즈믄나래 길드 본부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마법사들, 심지어 한국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자들이 오늘 먹을 점심으로 근처 설렁탕집을 갈지, 아니면 날도 더운데 그냥 중국집에서 오랜만에 탕수육과 짜장면을 시켜서 먹을지, 머리를 맞댄 채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곳 아닌가?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금발의 백인 미녀가 실력 좋지만 성격 괴팍한 마법사라고 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는 곳이다.

‘무시하자.’

뭔가 촉을 느낀 이강우가 그녀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시선이 뒤통수를 바늘처럼 찔렀지만 무덤덤한 척,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척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처벅처벅!

그녀는 아예 그런 이강우를 따라왔다. 적막함 속에서 발걸음 소리는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피할 순 없다. 이곳에서 추격전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이강우가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리자마자 점잖게 질문을 건넸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이강우에게 여인은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저도 초콜릿 좀 주세요.”

* * *

-부탁한다.

이우희는 안중현과의 통화를 마치는 순간 짙은 피로감에 목덜미가 딱딱하게 굳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그녀는 푸념을 마음에서 되새김질하지 않고,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뱉었다.

“요즘 일진이 왜 이렇지?”

유적 사냥에서는 불꽃꼬리에게 죽을 뻔하고, 어제는 자문단에 포함되어 계획에도 없는 고생을 했다.

그리고 지금.

‘공주님을 대체 왜 우리 팀에 집어넣은 거야?’

이제까지 고민만큼이나 골치 아픈 사람을 모시게 됐다.

‘공주님 담당은 하선우, 걔였잖아?’

공주님, 당연히 별명이다.

본명은 채유리.

탐스러운 금발 머리칼에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쭉 살아온 정말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더불어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런 예쁘장한 외모 속에 있는 마법사 재능은 무시무시했다.

처음 즈믄나래가 그녀를 스카우트했을 때 그녀는 고작 2서클의 마나 서클만을 개방한 마법사였지만, 6개월 만에 5서클까지 개방하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장이 빠른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케이스에 포함된 마법사들은 전부 6서클 이상의 마나 서클을 가진 마법사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마법을 쓰는 재능도 뛰어났다. 특히 여러 가지 속성 마법을 무리 없이 쓸 수 있었다. 마법 속성이 뭐든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천부적인 재능. 마법을 이용한 전투 센스도 발군이었다. 즈믄나래가…… 아니, 세계 3대 길드 중 한 곳인 블랙 스택이 발굴한 마법사 중 최고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재목을 채유리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 외모까지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쁘다. 몸매가 꽤 섭섭한 것만 빼면.

이런 채유리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즈믄나래가 몰래 키우는 특급 유망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게 없듯이, 그녀에게도 나름 치명적인 문제점이 존재했다.

바로 성격.

‘난 사람 다루는 재주는 없는데 어떻게 하지?’

성격이 나쁘다기보다는 괴팍하다.

남의 말보다는 자기 의견이 더 중요하다.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거나, 원치 않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

문제의 시발점은 채유리가 딱히 즈믄나래가 길드가 좋아서, 혹은 즈믄나래 길드를 통해 부와 명예 따위를 손에 넣기 위해 즈믄나래 길드에 들어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길드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몬스터 사냥이나, 모래시계문 클로즈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당연히 방출이다.

즉, 채유리는 그냥 놔두면 자격 미달로 길드 방출을 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딱히 그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다. 즈믄나래 길드 입장에서도 그런 식으로 채유리를 잃는 건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그녀에게만 특혜를 줄 순 없다. 즈믄나래가 채유리만 있는 길드도 아닐뿐더러, 즈믄나래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 스택에는 세계적인 마법사들이 속해 있다. 그런데 채유리에게만 특혜를 준다? 득보다 실이 많다.

여기서 즈믄나래는 마법사 한 명과 거래를 했다. 그 마법사에게 채유리의 케어를, 일종의 매니저 역할을 맡게 했다.

그 마법사가 바로 하선우였고, 지금 그 하선우 역할을 이우희가 하게 됐다.

‘난 못 해.’

이우희는 솔직히 채유리를 모실 자신이 없었다. 하선우는 그나마 채유리와 비슷한 대우, 실력, 능력이 있으니까 그녀와 맞먹고 그녀를 케어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우희는? 자격, 실력, 능력 전부 채유리보다 부족하다. 이우희에게 채유리는 케어 대상이 아니라, 모셔야 하는 상전이다.

‘유적 사냥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까칠한 상관을 모시라니, 난 못 해. 절대 못 해!’

못 해먹겠다!

……라는 소리는 안타깝게도 그저 그녀의 목구멍에서 맴돌 뿐이었다. 이우희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탑승했고, 지하 3층 버튼을 눌렀다.

까라는데, 까는 수밖에.

그렇게 이우희가 불만과 각오로 가득 찬 표정을 억누른 채 지하 3층에 도착했을 때.

“그거 아세요? 사내 카페에 초코 셰이크 주문할 때 초코 아이스크림을 하나 넣은 다음에 그 위에 다시 초코 시럽을 뿌리고, 초콜릿 칩으로 마무리를 하면 말입니다, 그야말로 환상의 초콜릿을 체험할 수 있죠. 그렇다고 그걸 그냥 먹으면 안 됩니다. 요즘 같은 여름이면 밖에 나와서 딱 10분만 놔두면 셰이크와 아이스크림이 적당히 녹는데, 그때 빨대가 아니라 물 마시듯 마시면…… 내가 나중에 돈 좀 모으면 이 근처에 그 메뉴만 전문적으로 파는 카페를 차릴 겁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아니지, 사업은 좀 그렇군요.”

이우희의 눈에 보이는 건, 지하 3층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초코셰이크가 가득 찬 큼지막한 플라스틱 컵을 손에 쥔 채 이야기를 나누는 이강우와 채유리의 모습이었다.

* * *

“예?”

채유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이강우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니까 채유리 씨가 5서클 마법사라는 겁니까?”

“예.”

여기서 이강우는 놀란 표정을 유지한 채 재차 질문했다.

“이우희 씨보다 언니고?”

“예.”

이강우가 더 경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우리랑 같이 활동하는 겁니까? 5서클 마법사면 6등급 이상 유적에 투입되어야죠. 설마 다음 우리 사냥 타깃이 6등급 유적입니까?”

“그건…….”

이우희는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주려다가 이내 꾹, 말을 삼켰다.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지.’

일일이 설명해 주기에는 그녀 본인도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이강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다. 하선우와 안중현이 갑자기 대화를 할 원인은 지금 당장 이강우밖에 없으니까.

그게 이유였다.

“이유는 나도 잘 몰라요.”

지금 상황에서 이강우에게 상황을 떠넘기는 이유.

“어쨌거나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니까, 조심해서 모셔요.”

모셔요?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저 짐 덩어리를 내가 들고 다니라고?’

이우희에게 들은 설명, 그리고 몇 분에 불과하지만 채유리를 직접 상대해보면서 느낀 건, 채유리는 다루기 쉬운 부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짜고짜 초면인 사람에게 초콜릿 좀 달라고 하는 것부터가 비정상이다.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수다나 떨 만한 소재지, 초콜릿 좋아하시는 걸 보니 내가 그분을 모셔야겠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의 근거가 될 순 없다.

하물며 그냥 비정상인 사람이 아니고, 비정상인 5서클 마법사다. 그런 마법사를 모셔라?

못 할 건 없다.

‘내가 보모도 아니고.’

하지만 공짜로 그런 일을 해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연히 이강우는 난색을 보였다.

“그게, 아무리 그래도 제가 모실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5서클 마법사 아닙니까? 그것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재능을 가진 5서클 마법사. 그런 5서클 마법사를 모시는데 벤츠 정도는 나와야지, 마티즈가 모신다고 나서면 무례죠.”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까지 채유리를 하선우가 담당한 것도, 하선우 정도 되는 자격과 배경을 가진 사람이 나서야 그녀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상 총꾼에 불과한 이강우가 채유리를 모신다는 건, 마음을 떠나 능력적으로 불가능하다. 못해도 이우희. 그녀 정도 되는 사람이 붙어야 구색을 갖출 수 있다.

그때 이우희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꺼낸 건 다름 아니라 카드였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물씬 드는 카드였다.

“즈믄나래 법인카드예요. 채유리 씨를 모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이걸로 처리하세요.”

법인카드!

대단한 놈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순간 이강우는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아니, 내가 법인카드 가져 봤자 횡령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즈믄나래 길드의 법인카드라면 한도가 무제한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놈이겠지만 그뿐이다. 이강우가 그 법인카드를 사적인 용도로 썼다가는 아마 횡령죄로 하루 만에 쇠고랑 차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강우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다. 좀 더 피부에 오는 것, 좀 더 현실적인 게 필요하다.

“이런 거 줘도 못 합니다. 전 매일 인천에서 여기까지 출퇴근으로만 4시간을 넘게 씁니다. 시간상 누군가를 옆에서 실시간으로 모시고, 그런 게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전 자가용도 없습니다.”

그 말에 이우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근처에 오피스텔 잡고, 법인 차 타고 다니시면 되겠네요. 제가 처리해 드리죠.”

단호한 그 말에 이강우가 난색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오예.’

물론 표정만 그렇게 지었을 뿐이다.

* * *

즈믄나래 길드 본부에 자가용을 끌고 출근하는 직원들 대부분은 코엑스 주차장을 이용한다. 즈믄나래 길드가 클로즈에 성공한 모래시계문을 한국 정부에 기부하고, 그 모래시계문 중 일부가 코엑스에 무상으로 제공되는 과정에서, 코엑스는 즈믄나래 직원들에게 코엑스 주차장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특혜를 준 것이다.

때문에 코엑스 주차장에는 주차장이 아니라, 자동차 모터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코너가 있다. 즈믄나래에 소속된 일반 직원이 아니라,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액 연봉을 받는 마법사들의 애마가 자리 잡은 곳이다. 각 자동차 회사들이 가진 최고가 라인업 차량 모델을 직접 보고 싶으면 코엑스 주차장을 찾아오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지금, 이강우는 과연 그 소문대로 억 소리 나는 스포츠카 무리 앞에 서 있었다.

세 대의 차가 있었다.

서 있는 이강우를 기준으로 가장 왼쪽에 위치한 차는 남자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붉은색 경주마 페라리 458 모델이었고,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차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노란색 몸뚱이를 가졌지만, 세상 그 누구도 감히 유치하다 말할 수 없는 람보르기니 아벤타토르 모델이었다.

그 사이에 수줍게 주차된 아우디 A8 모델이 이강우가 앞으로 타게 될 차량이었다.

‘미치겠네.’

처음에 법인 차를 마음대로 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차 키를 받았을 때, 차 키에 동그라미 4개가 사이좋게 엮여있는 걸 봤을 때 이강우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심지어 보험료를 비롯한 유류비 등 자동차 유지에 필요한 모든 걸 즈믄나래가 처리해준다니, 과연 이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그래서 왔다.

업무시간이지만, 어차피 할 일도 없는지라 이강우는 잽싸게 평생 타 보지도 못한 비싼 차를 끌고 강남 드라이브를 해볼 속셈으로 이곳, 코엑스 주차장까지 왔다.

왔는데…….

‘여기서 어떻게 차를 빼?’

좌 페라리, 우 람보르기니.

그 사이에 끼인 아우디는 이강우의 눈에 폭탄처럼 보였다. 차를 빼내다가 옆 차에 기스라도 낸다면? 더군다나 이강우는 운전을 하지 않은 지 꽤 됐다. 운전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주제에 이 중소형 아파트값에 버금가는 자동차 사이에서 차를 빼낼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밤에 오자.’

결국 이강우는 가볍게 드라이브라도 해보려고 했던 마음을 자동차 키와 함께 주머니에 꾹 넣었다.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강우의 스마트폰이 수신음을 격렬하게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강우가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이강우 씨, 지금 빌딩 지하 1층으로 가세요.

즈믄나래에서 온 연락. 내용은 정말 갑작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꽃등도마뱀이 도착했습니다.

이어진 설명을 듣는 순간, 이강우는 곧장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강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곧장 가겠습니다. 10분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뇨, 여기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연구소에 있으니까, 그곳으로 곧장 가시면 됩니다. 아, 이우희 마법사님이 채유리 마법사님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강우가 고개를 돌려 주차된 차를 바라봤다. 이강우의 표정이 굳었다.

“거기 버스 타고 갈 수는 없습니까?”

굳은 표정 사이로 저도 모르게 속내가 나왔다.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곧장 가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을 때 이강우의 입에서 정말 긴 한숨이 나왔다.

‘어휴.’

* * *

이강우가 차를 끌고 즈믄나래 본부 빌딩 앞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여성이 잽싸게 차에 탔다. 앞 좌석에는 이우희가 탔고, 뒷좌석에는 채유리가 탔다. 더불어 채유리와 이우희는 초코 셰이크가 가득 든 큼지막한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었다.

이강우가 곁눈질로 내용물을 보자마자 곧바로 반응했다.

“이우희 씨도 그거 좋아하시나 봅니다? 그거 보통 사람은 달아서 먹기 힘들 텐데.”

“내 게 아니야.”

이우희가 스윽, 눈치를 줬다. 이우희가 마실 게 아니라 채유리 거라는 의미였다.

이강우가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칼로리양이 상당한데, 3개나 먹으면…….”

이우희는 대답 대신 채유리가 보지 못하도록,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펼쳤다. 세 개째가 아니라, 다섯 개째란 의미. 이강우가 백미러를 통해 열심히 초코 셰이크를 쪽쪽 빨아 먹고 있는 채유리의 모습을 봤다.

‘체격은 저렇게 작은데, 어마어마하게 먹네.’

그때 이번에는 이우희가 이강우에게 질문을 했다.

“그건 그렇고, 얼굴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었어요?”

이강우는 대답 대신 표정을 굳혔다. 아직도 조금 전에 차를 빼낼 때 콩닥거리던 심장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어야지. 무조건 없어야 해.’

이윽고 이강우가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세종시에 위치한 즈믄나래의 사설 유적 연구소였다. 유적 연구소란 말 그대로 유적에서 얻은 것들을 연구하는 장소다. 몬스터는 물론 유적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물을 비롯한 마법 아티팩트와 모래시계문까지!

더불어 블랙 스택은 이런 연구소 설립을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즈믄나래 창설 당시에도 즈믄나래 빌딩보다 먼저 세운 게 세종시에 위치한 즈믄나래 유적 연구소였다. 이런 연구소 덕분에 블랙 스택은 스택 레코드란 훌륭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었다.

‘근데 왜 날 부른 거지?’

그렇기에 이강우는 왜 그런 곳에서, 전문가가 넘치는 곳에서 자신을 불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7등급 몬스터의 사체가 귀한 자료인 건 맞지만, 그것과 이강우를 부르는 것, 둘 사이에 연결점은 없지 않은가? 물론 이강우가 꽃등도마뱀을 해체하긴 했지만, 반대로 그게 이강우의 역할 전부였다.

이강우는 도축을 하면서 가죽도 전부 벗겼고, 마나스톤도 채취했으며, 내장도 제거했다. 제거한 내장은 이미 준비되었던 특수한 비닐봉지에 넣고 아이스박스에 보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강우가 그 이상 무언가를 해야 할 일거리는 없었다.

‘추가 수당도 안 주는 일인데, 괜히 골치 아파지면 곤란한데.’

물론 그런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즈믄나래 본부에서 가라고 하는데, 내가 왜요? 라고 물어볼 정도로 눈치도 없고 정신도 없었다면 이제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래, 말단인데 까라면 까야지.’

이강우는 말없이 세종시를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 * *

세종시에 위치한 즈믄나래 유적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이강우를 기다리고 있던 건, 호리호리한 체격에 큼지막한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대머리 사내였다.

사내는 이강우를 보자마자 말했다.

“그쪽이 이강우?”

“예.”

“옥갑산에서 잡은 꽃등도마뱀을 해체한 게 당신인가?”

“예.”

“잘 왔군.”

그 순간 사내는 곧장 이강우를 데리고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강우가 가장 먼저 살핀 건 이우희의 눈치였다. 이우희는 그런 이강우에게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무조건 저 사람 말을 따라!

‘이 인간이 누구지?’

아무래도 지금 이강우를 다짜고짜 데리고 가는 대머리 사내가 가진 내력이 범상치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사내를 따라 이동한 곳은 왕지홍의 만석루 지하에 위치한 것과 비슷한 방이었다. 크기는 그것보다 훨씬 컸다. 만석루 지하와 비교한 건, 비슷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도축장이다.’

몬스터를 도축하기 위해 만든 공간. 설비를 떠나서 몬스터를 수도 없이 도축했을 경우 남는 묘한 비린내가 그 공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 촉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이미 꽃등도마뱀 두 마리가 시체 상태로 이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이곳의 역할을 파악하는 건 문외한에게도 충분히 가능했다.

‘내가 잡은 게 아니네?’

특이사항은 꽃등도마뱀 두 마리의 상태가 멀쩡하다는 것. 잡은 지 얼마 안 된 놈들, 등에 피어난 꽃과 마나스톤 제거만 마친 놈들이었다.

이강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시체가 덩그러니 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기본적인 처리는 끝난 놈이라니? 그런 놈을 도축기술자인 이강우 앞에 보여주는 이유는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안 좋은 느낌은.

“이강우, 자네 실력이 최고였어. 그러니까 기왕 하는 거, 여기 있는 놈들도 해체해주게.”

적중했다.

* * *

이우희는 유적 연구소에서 이강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큰 의심을 하진 않았다. 유적 연구소는 언제나 필요할 때마다 사람을 부른다. 마법사들도 자주 부른다. 새로운 아티팩트가 발견됐는데 테스트를 하고 싶다, 그러면 가서 해주는 게 보통이다.

단지 이강우를 부른 게 권재용 박사라는 사실은 예상외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냥 부른 게 아니었다. 상황을 보니, 권재용 박사가 개인적으로 몬스터 해체를 위해 이강우를 불렀다.

‘이강우의 실력이 그 정도인가?’

권재용 박사, 몬스터 연구 부분에서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석학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그만한 대우를 받는다. 즈믄나래의 세종 유적 연구소에 상주하는 전문가들은 권재용 박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고급인력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 특권 중의 특권이다. 그리고 어지간한 고급 전문 인력은 세종 유적 연구소에 상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재용 박사가 이강우를 굳이 불렀다는 건, 이강우의 실력을 대신할 자가 유적 연구소에 없다는 이야기다.

‘안 선배가 탐낼 만하네.’

반면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이강우는 속에서 불만만 곱씹었다.

‘이러다가는 나중에 몬스터 요리해달라고 출장뷔페 요리사 신세 되겠네. 젠장, 서러워서라도 빨리 마력 처먹고 3서클 마법사가 되어야지.’

그런 불만과는 다르게 이강우는 꽃등도마뱀 한 마리를 잽싸게 해체하기 시작했다.

꽃등도마뱀의 거대한 몸뚱이를 온전하게 해체하는 작업은 꽤 시간을 요구했지만, 처음 해체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작업이 끝났다. 그 과정을 보던 권재용 박사는 감탄했다.

“실력이 정말 좋은데? 누구 밑에서 배웠나?”

“천영수, 그분 밑에서 배웠습니다.”

“오! 제대로 배웠군. 그럼 이번에는 이 칼을 이용해서 한번 해체를 해보게.”

그 말과 함께 권재용 박사가 건네준 칼은 이강우가 사용한 칼과 다르게 칼자루 끝에 성인 남자 주먹 크기의 구슬이 달려 있었다. 구슬은 무게감도 제법 있었다.

칼자루에 무게가 실리면 당연히 칼을 다루는 게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 칼을 쥐는 순간, 이강우는 불만을 품지 않았다.

‘이 칼, 마법 무기네?’

이강우가 권재용 박사를 한 번 바라본 후, 곧바로 두 번째 꽃등도마뱀을 해체했다.

이번에는 작업 속도가 앞선 첫 번째 작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빨랐다.

‘와우!’

이강우가 쥔 칼 덕분이었다. 그 칼은 정말 너무나도 쉽게 꽃등도마뱀의 몸뚱이를 잘라냈다. 이강우는 두부를 자르듯 꽃등도마뱀을 해체했다. 작업이 너무 수월해서 이강우 본인이 놀랐을 정도.

‘이거면 해체가 아니라, 그냥 이 칼로 꽃등도마뱀을 잡을 수도 있겠는데?’

권재용 박사는 그런 이강우의 도축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했고, 손에는 직접 타이머도 쥐고 있었다.

이윽고 이강우가 해체 작업을 마치고 칼을 돌려주며, 반문했다.

“이거 대체 뭡니까?”

“눈치챘듯이 마법 무기일세.”

“몇 서클…….”

“4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썼지.”

이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4서클 마법 아티팩트라고?’

4서클 마법 아티팩트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더 놀라운 건 4서클 마법 아티팩트 마법사가 아니라 정제된 마력으로 쓰기 위해서는 6등급 마나스톤이 필요하다.

조금 전 이강우가 쓴 마력을 석유처럼 값을 매긴다면, 수천만 원 혹은 억이 넘을 수도 있다.

이강우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

반면 권재용은 그런 이강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실력이 정말 좋군. 다음에도 부르면 와주게. 앞으로 6등급 이상 몬스터 해체 작업은 자네에게 맡길 테니까.”

* * *

“그렇게 대단한 양반이었습니까?”

이우희로부터 권재용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강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이우희는 그런 이강우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권재용 박사한테 인정받아서 나쁠 건 없어요. 더군다나 권재용 박사 말대로 6등급 이상 몬스터 해체 작업에 투입된다는 건, 여러모로 대단한 일이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몬스터 등급이 높아질수록 해체 작업은 어려워진다. 동시에 몬스터 사체의 가치도 가파르게 오른다.

그렇기에 그 작업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황금을 다루듯 다뤄야 한다. 몬스터 해체 자체에 억 소리 나는 돈이 투입되는 이유다. 그런 작업에 참가한다는 건 금전적인 일을 떠나서 대체하기 힘든 실력자로 인정받는 일이다.

물론 이강우는 다른 의미로 지금 상황을 반겼다.

‘6등급 이상 몬스터를 해체할 수 있는 기회라니…… 진짜 로또에 당첨되려나?’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이강우가 강해질 여지도 많아진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인연을 얻게 된 것이다.

‘요즘 운이 좋아.’

어제도 그렇고, 연달아 운수가 터지는 게 정말 로또에 당첨될 만한 운이 온 것 같았다.

그때 이제까지 말없이 상황을 보고만 있었던 채유리가 입을 열었다.

“밥은 언제 먹죠?”

그 말에 이우희는 굳은 표정을 지었고, 이강우는 반사적으로 자신이 해체한 꽃등도마뱀을 바라봤다.

* * *

이강우가 꽃등도마뱀을 먹겠다고 했을 때, 권재용 박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음대로 먹게. 전부를 먹으면 안 되지만, 까놓고 저 거대한 놈을 세 명이서 다 먹는 건 불가능할 테니,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먹게.”

이강우는 놀랐다.

9등급 몬스터도 아니고 7등급 몬스터를 먹고 싶은 만큼 썰어 먹으라니? 한편으로는 권재용 박사의 권력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가진 권력이 연구가 끝난 7등급 몬스터 정도는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란 의미이니까.

“참고로 꽃등도마뱀은 열을 가할수록 단맛이 강해지네.”

단맛?

이강우가 눈빛을 빛냈다. 이강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단맛 아니었던가?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오늘 못해도 천 포인트는 먹어 치우자!’

마력 포인트를 섭취할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라면 단맛이 아니라 쓴맛이라고 해도 억지로 먹어야 한다.

‘자, 그럼 알짜배기를 골라보자고.’

이강우는 곧바로 분석 마법을 통해 마력이 집중된 부위를 파악했다.

‘이것 봐라?’

꽃등도마뱀은 등 쪽, 등심 부분에 마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소로 따지면 안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위, 등과 꼬리 그 사이에 위치한 주먹 크기의 살덩어리는 무려 2천 포인트 가까운 마력을 품고 있었다. 두 마리를 잡았으니, 무려 4천 포인트짜리 고기를 구한 셈.

이강우는 생각 없이 곧바로 마력 포인트가 높은 그 부위들을 잽싸게 썰어냈다. 이래저래 욕심을 부리다 보니, 그 양이 상당했다. 연구소에 마련된 주방, 그 주방의 선반 위에 고기를 올려놓았을 때,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우희가 한마디 했다.

“이걸 다 먹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요?”

“남으면 싸 가면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강우가 봐도 좀 과했다.

‘맛이 괜찮으면…… 이번 기회에 고기 좀 싸 들고 여동생하고 어머니 좀 드려야지. 좋아하실 거야.’

3명이 먹기에는 과한 정도가 아니라, 먹는 게 불가능한 양이었다.

“자, 그럼 가볍게 구워 먹어 봅시다.”

말과 함께 이강우는 가장 기본적인 구이 요리부터 만들었다. 프라이팬에 적당한 크기로 썬 꽃등도마뱀의 살점을 올렸다. 지글지글, 꽃등도마뱀 등심이 묘한 꽃향기를 내기 시작했다. 꽃등도마뱀의 등에서 자라난 꽃, 그 꽃향기에 등심이 물든 모양이다.

고기 굽는 냄새가 아니라, 은은한 향기가 나는 건 여러모로 신기했다. 이우희도 표정을 풀었다.

“냄새가 신기하네요.”

“일단 미디엄으로 구워보겠습니다.”

이윽고 이강우가 접시 위에 꽃등도마뱀 등심 스테이크를 올렸다. 스테이크 세 접시가 모습을 드러냈고, 곧바로 시식이 시작됐다. 스테이크는 굉장히 부드러웠다. 포크와 나이프가 아니라 젓가락으로도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반면 기름기는 없었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고기의 육질, 그러나 텁텁하거나 질긴 느낌은 전혀 없이 씹는 순간 부스러지는 고기에서 나오는 육즙은…….

‘달다.’

달콤함이었다.

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아니라, 순수한 단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독특한 느낌의 단맛, 풍미를 가진 단맛이었다. 설탕의 느낌이 아니라, 초콜릿 느낌, 고급스러운 단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이 향, 좋아.’

여기에 은은한 꽃향기는 단맛을 고급스러운 수준을 넘어서 우아하게 만들어줬다.

혀는 단맛에 취하고, 숨을 쉬는 순간 입 안을 채운 은은한 꽃향기, 굳이 비교하면 바닐라 향과 비슷한 향이 코를 취하게 만들었다.

꿀꺽!

세 명이 동시에 고기를 삼켰다. 세 명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눈이 튀어나올 만큼 맛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스크림 수준으로 부드러웠지만, 고기답게 육질이 살아있었고, 때문에 씹어야 했다. 단맛과 바닐라 향이 나는 스테이크의 식감을 가진 요리, 이 표현을 들으면 모두가 질색부터 할 것이다.

하지만 꽃등도마뱀의 단맛은 단순한 단맛이 아니었다. 초콜릿처럼 혹은 커피처럼, 특유의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은 건 그 풍미 때문이었다. 살아생전 처음 느끼는 새로운 종류의 단맛. 맛있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 새로운 경험 자체가 그들의 식욕을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스테이크를 먹어치우자마자 이강우가 두 번째 요리를 만들었을 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식회가 시작됐다.

* * *

이강우가 만든 두 번째 요리는 다름 아니라 튀김이었다. 이강우는 탕수육을 만들듯, 등심을 준비한 튀김가루에 묻힌 후에 튀겼다.

소스는 없었지만, 굳이 필요하진 않았다. 요리방법이 튀김이었고 생김새가 탕수육과 비슷했을 뿐, 그 요리는 탕수육이나 튀김과는 근본 자체가 달랐으니까.

튀김을 씹는 순간 그 안에 가득 찬 고급스러운 단맛이 터져 나오면서 고소한 튀김과 어우러졌다. 고소함과 달콤함, 어찌 보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맛의 조합이었지만 꽃등도마뱀의 우아한 단맛은 튀김의 고소함과 느끼함을 가뿐하게 포용했다.

특히 톡톡! 씹을 때마다 터지듯 나오는 단맛, 그 식감이 굉장했다. 메인 요리가 아니라 정말 멋진 디저트 요리를 먹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더 먹죠?”

이제까지 말수 적던 채유리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지은 채, 이강우를 재촉했다.

“더요?”

“스테이크, 이번에는 좀 더 바짝 구워 주세요.”

그 말에 이강우는 이우희를 바라봤다. 이우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튀김으로 이미 녹아웃을 당한 그녀는 더 먹고 싶었지만, 배 속에 고기가 더 들어갈 구석이 없었다.

이강우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신 후에 주문대로 곧바로 스테이크를 구웠다. 바짝 익은 꽃등도마뱀 등심 스테이크는 접시를 꽉 채울 정도로 양이 상당했다. 일부러 크게 구웠다. 먹다 남길 정도로, 괜히 조금 만들었다가 추가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그런데 채유리는 그 큼지막한 스테이크를 칼질 네 번으로, 다섯 조각으로 만든 후에 그것을 입에 넣었다. 작은 입에 큼지막한 고깃덩이가 들어가자 그녀의 볼이 해바라기 씨를 잔뜩 먹은 햄스터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그 상태로 쉬지 않고 다섯 조각의 스테이크를 다 먹었다. 스테이크 하나를 비우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맙소사.’

자기 몫은 반도 먹지 못한 이강우가 놀란 표정으로 채유리를 바라봤고, 채유리는 그런 이강우를 향해 말했다.

“이거 삶아 먹으면 어떨까요?”

이 순간 이강우의 포식자 본능이 소리쳤다.

‘이 인간하고 같이 유적 사냥을 했다간 유적에서 내가 먹을 게 없을 것 같아.’

어마어마한 강적이 등장했다고.

* * *

꽃등도마뱀의 안심은 여러모로 별미였다. 열을 가할수록, 단맛이 강해지는 고기…… 사실 진한 단맛과 스테이크, 튀김은 그리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지만 꽃등도마뱀의 단맛은 커피처럼 우아한 풍미를 가진 단맛이었기에, 스테이크나 튀김으로 해 먹어도 맛이 괜찮았다. 괜찮다기보다는 신비했다. 과연 이런 단맛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젓가락과 포크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단맛이란 게 배고플 때는 천상의 맛이지만, 배가 차면 억지로 먹여도 먹기 힘든 맛이기도 하다.

이미 꽃등도마뱀 튀김에서 녹아웃을 당한 이우희는 탄산음료를 마시기 위해 연구소 내 자판기를 찾아 떠났다. 주방을 나서면서 이우희는 스마트폰으로 안중현과 통화를 했다.

-이런 식으로 일이 풀릴 줄이야.

상황을 보고 받은 안중현의 목소리에는 놀란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안겨줬던 채유리의 약점이 단 것, 먹을 것이었을 줄이야?

-몬스터 고기라…….

더군다나 몬스터 고기에 관심을 가지는 건 좋은 구실이었다. 채유리를 유적 사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만들어줄 좋은 구실.

-괜찮은 그림이 그려지겠군. 그보다 채유리의 관리를 이강우에게 전부 떠넘길 생각인가?

말끝에는 묘한 질책이 섞여 있었다. 안중현은 채유리의 매니지먼트를 이우희에게 맡겼다. 안중현 소유였던 법인카드를 그녀에게 맡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니, 이우희는 자기 임무를 잽싸게 이강우에게 떠넘겼다. 물론 정황상 그게 정답이었다. 이강우가 멋모르고 던진 돌직구가 채유리의 기호에 연달아 스트라이크로 꽂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즈믄나래의 공주님을 이강우에게만 맡길 순 없는 노릇. 안중현이 한 말은 이우희에게 괜히 이강우에게 짐 덩어리 떠넘기고 발 뺄 생각하지 말고, 이강우랑 같이 채유리의 매니저가 되라는 의미였다.

“아뇨. 제가 옆에서 도와야죠.”

이우희가 그런 안중현의 의중을 읽고 곧바로 대답했다. 안중현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그는 대화 주제를 바꿨다.

-다음 달에 유적 사냥에 나선다.

유적 사냥.

길드 소속 마법사의 진정한 임무가 언급되는 순간 이우희도 표정을 바꿨다.

“7등급입니까?”

-아쉽게도.

아쉽다.

보통 마법사들은 하지 않는 말이었다. 6등급 유적은 어지간한 마법사들에게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무대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유적 사냥을 끝으로, 올해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6등급 유적 사냥에 도전한다.

하지만 안중현은 오히려 그 지옥으로 가는 것을 간절히 바라듯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이우희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 * *

권재용 박사는 영상을 쉴 새 없이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역시.”

영상 속에는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꽃등도마뱀과 그 꽃등도마뱀을 해체하는 이강우의 모습이 있었다.

‘천 영감 기술이 아니야.’

권재용 박사가 출력한 이강우의 프로필 내역을 다시 한번 봤다.

전직 군인 출신이고, 모래시계문 등장과 함께 굵직한 임무에 투입됐으며, 곧바로 은퇴하자마자 하이에나 크루 소속 총꾼이 되어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에 성공했다. 이후 왕지홍의 눈에 띄어, 몬스터 도축기술자 천영수 밑에서 도축기술을 배웠고, 안중현과의 유적 사냥에 합류하여 좋은 결과를 내놓으며 즈믄나래 소속 총꾼이 됐다.

여기까지가 이강우에 대한 프로필이고, 의심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권재용 박사는 단언할 수 있었다.

‘천 영감에게 배운 게 아니면 누구에게 배운 거지?’

이강우가 천영수, 그에게 도축의 기본은 배운 게 맞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본만 배웠을 뿐이다. 지금 이강우가 보여주는 실력은 천영수의 실력과 전혀 달랐다.

천영수를 잘 알고 있는 권재용 박사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천영수는 왕지홍 밑에서 8등급 이하 몬스터나 썰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원래 블랙 스택 휘하 몬스터 연구소 출신으로, 7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을 해부하는 과정을 지휘하던 사람이었다. 현재 스택 레코드에 등록된 몬스터 도축 방법, 마나스톤 채집 방법 등의 매뉴얼을 작성하는 데 천영수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블랙 스택에 소속된 도축기술자들 중 거의 모든 이들이 천영수의 방식대로 도축을 한다. 그런데 영상 속 이강우의 꽃등도마뱀 도축 방법은 천영수의 방법과는 달랐다.

도축이란 건 도축기술자의 목적과 성향에 따라서 그 방법이 천차만별로 바뀐다. 각 나라의 도축 방법으로 각 나라의 식문화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오리지널.’

그런데 이강우의 방법은 그만의 방법이다. 스택 레코드에도 등록되지 않은 방법이다.

대단한 일.

그러나 더 놀라운 건 이강우가 도축기술자가 된 건 채 1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니, 반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자신만을 위한 도축 방법을 이룩했다? 그냥 소, 돼지를 도축하는 것도 아니고 몸길이 8미터가 넘어가는 거대 몬스터를 도축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단지.

‘본능적으로 몬스터의 약점을 파악하는 재능이라…… 포식자가 먹잇감을 상대할 때 보여주는 재능인데 말이야.’

특별한 일일 뿐.

‘포식자의 재능이라…… 재미있는 녀석이 등장했군.’

이 바닥에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모래시계문의 등장도 그렇고, 몬스터의 등장도 그렇고, 마법사란 존재도 그렇고, 모든 게 이미 평범함을 넘어 비범하기 그지없는 일들이다. 보다 특별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물론 이것을 그냥 특별하다고 여긴다면, 권재용이 박사라고 불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모래시계문 등장 이후 5년…… 이 정도면 슬슬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나겠지.’

특별한 무언가의 등장은 언제나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내 예상으로라면 변화의 끝은 세상의 파멸인데 말이야.’

그리고 그것을 미리 짐작해서 그에 따른 답을 내놓는 것, 그게 바로 권재용 박사 같은 자가 해야 하는 일이다.

* * *

삼성동에 위치한 24평 남짓한 오피스텔, 월세가 10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그곳에 마련된 침대 위에서 이강우가 눈을 떴다.

이강우는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고, 변기 커버를 올리고 아침 행사를 진행하며 반쯤 풀린 눈으로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이강우의 머리 위에는 마나 서클 하나가 반짝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마나 서클을 바라보던 이강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 그동안 편하게 지냈지. 옥갑산에서 그 개고생을 했던 것만 빼면.’

채유리와 만난 이후 이강우의 일상은 특별한 게 없었다. 채유리의 매니저가 되어, 그녀가 어디를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다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밥 먹여주고, 필요할 때마다 초콜릿과 달달한 음료를 사고, 자신 있게 법인카드를 긁는 나날들. 그런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스택 레코드를 보고 공부를 했다.

더불어 간간이 세종시에 위치한 즈믄나래 유적 연구소로 내려가 권재용을 도왔고, 그 과정에서 짭짤하게 마력도 섭취했다. 저번에 꽃등도마뱀을 도축하면서 얻은 꽃등도마뱀의 안심을 비롯해서, 최근까지 섭취한 마력포인트가 6천 포인트가 넘어갔다. 이강우 입장에서는 정말 입만 벌리고 있는데 감이 입 안으로 떨어지는 격.

정말 평온하고,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그 일상이 어제부로 끝이 났다.

유적 사냥이 잡혔다.

‘7등급.’

유적 사냥 계획서가 이강우 앞에 도착했고, 곧바로 안중현의 밑에 있는 마법사들과 총꾼들이 즈믄나래 본부 빌딩에 위치한 회의실로 호출됐고, 그곳에서 안중현은 유적 사냥 브리핑을 했다.

7등급 유적 사냥이었다. 그러나 그냥 사냥이 아니었다. 사냥 실패횟수가 다섯 번에 이르는 놈이었다. 문제는 그 사냥 실패횟수 중 두 번은 크루가 아닌 길드의 실패였다.

길드는 길드다. 일류, 이류, 삼류…… 등급이 있다고 해도 길드와 크루는 분명 레벨이 다르다. 당연히 길드가 사냥에 실패했다는 건, 단순한 7등급 유적이 아니라는 의미.

‘난이도는 꽤 높아.’

쉬운 의뢰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4서클 마법사인 안중현을 중심으로 구성된 파티가 맡을 수 있는 유적 등급은 7등급이 한계다. 6등급 이상의 유적 사냥을 위해선 5서클 마법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실패 확률이 너무 높아진다.

그렇다는 건, 이번 7등급 유적 사냥은 안중현이 맡을 수 있는 유적 사냥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유적 사냥이었다.

‘도전권을 얻으려는 속셈이지.’

안중현의 속셈은 안다. 본인이 이강우에게 속셈을 밝혔다.

그는 6등급 이상의 유적 사냥을 원한다. 그냥 마법사 중 한 명으로 참가하는 게 아니라, 유적 사냥을 주도하는 파티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그런 그에게 이번 일은 자격시험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정도 유적 사냥도 거뜬히 해낸다! 그러니 내 실력을 인정하고, 6등급 유적 사냥에 대한 지휘권을 달라!

‘채유리가 변수란 말이야.’

여기에 하나 더, 이번 유적 사냥에는 채유리가 참가한다.

그녀가 이강우에게 말해줬다. 몬스터 고기를 먹고 싶어서 유적 사냥에 참가했으니, 지금까지처럼 잘 부탁한다고.

‘진짜 별의별 마법사가 다 있다니까.’

채유리에 대한 소문은 들을 만큼 들었다. 정말 자기가 납득할 이유가 아니면 유적 사냥에 나서지 않는 실력 좋은 마법사. 그런 그녀가 이번 유적 사냥에 참가한다? 안중현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 채유리를 데리고 유적 사냥에 성공한다면, 안중현의 리더십에 대한 즈믄나래의 평가가 더 높아질 건 분명하다.

동시에 채유리 같은 실력자의 합류는 이강우에게도 나름 긍정적인 신호다.

‘내가 먹을 것도 없는데…….’

문제는 채유리가 이강우에게 있어 어마어마한 경쟁자라는 것. 그녀의 위장은 이강우마저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정말 그 작은 몸에 과연 그 많은 음식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혹시 위장을 늘려 주는 마법이나 혹은 목구멍에 워프 마법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물론 그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장난에 가까운 생각이다.

이강우는 이런 상황을, 채유리와의 인연과 만남을 장난으로, 그저 코미디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고 넘길 정도로 그렇게 착한 인간도 아니고,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는 어수룩한 인간도 아니다. 강한 힘을 가진 인간도 아니고, 여유가 넘치는 인간도 아니고, 배경이 든든한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든 최선을 다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인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강우는 그저 채유리를 옆에서 돕는 도우미 역할만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기회는 기회.’

채유리는 이강우에게 찾아온 정말 큰 기회다. 그녀 덕분에 즈믄나래 본부 빌딩 근처에 좋은 오피스텔을 공짜로 쓰고 있다. 관리비는 이강우 몫이지만, 월세를 내주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여기에 1억이 넘는 차도 마음껏 타고 있다. 알아보니 보험도 잘 들어서 사고 나도 문제 될 게 없단다. 물론 법인 차로 사고 내면 그 직원이 어떤 꼴이 될지는…… 상상만으로도 속이 쓰리지만.

그러나 정말 큰 건, 즈믄나래 길드에서 다루기 힘들다고 평가받던 채유리가 이강우를 따라 움직이며, 결국에는 유적 사냥에도 본인 의지로 참가했다는 의미다.

5서클 마법사의 매니저가 됐다는 것,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권력이다.

‘그래, 최선을 다해 먹여주지.’

이강우가 채유리의 매니저가 된다면, 채유리를 원하는 자들은 모두가 이강우와 딜을 해야 할 테니까.

* * *

파주에 위치한 창고 하나, 즈믄나래 길드가 유적 사냥을 위해 마련해둔 그 창고 안이 분주했다. 유적 사냥을 앞두고 총꾼들이 무기를 비롯한 보급품을 정리했다.

그곳에서 채유리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중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을 걸어 봤다.

하지만 채유리는 그저 담담하게 대답만 할 뿐, 안중현의 말에 무성의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니, 무성의함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람 성격이 괴팍할 수도 있고, 지랄 맞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채유리는 정말 성의가 없어서 안중현에게 그런 반응을 보인 게 아니었다.

무관심.

채유리는 진심으로 안중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안중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기색, 기질, 음색…… 안중현은 솔직히 이 정도까지 누군가에게 무관심한 대우를 받은 게 처음이었다.

불놀이꾼, 4서클 마법사이며 굵직한 모래시계문 클로즈에 참가한 그는 하선우만큼은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 모두가 인정해주는 실력자이며, 베테랑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번 유적 사냥을 지휘하는 리더다.

그런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소문대로 정말 다루기 힘들군.’

다른 의미로 다루기 힘들다. 이런 채유리를 이제까지 큰 잡음 없이 모시고 다닌 이강우가 새삼스러울 정도.

그래서 궁금했다.

“이강우, 그는 왜 이렇게 늦는 거지?”

그 이강우가 왜 늦는 걸까? 이강우는 특별한 이유 없이 약속 시각에 늦는 타입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안중현이 이미 한 번 이강우를 제대로 혼냈을 것이다. 지금 이강우가 늦는 상황에서 화를 내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동안 이강우가 약속 시각을 잘 준수했기 때문이다.

이우희는 안중현의 말에 곧장 대답했다.

“문자를 받았는데 주문한 게 늦게 도착해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주문?”

그 순간, 양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이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우가 등장하자, 이제까지 모든 것에 무관심한 눈빛을 품고 있던 채유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큼지막한, 세탁기 정도는 가뿐하게 들어갈 법한 박스를 수레로 끌고 들어오는 이강우에게 다가갔다. 이우희와 안중현도 이강우의 등장에, 그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파티의 주역이 될 마법사 세 명…… 아니,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넷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안중현이었다.

“늦은 이유는?”

그 말에 이강우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허리를 깊게 숙였다. 깔끔하게 용서부터 구했다.

그 후에 변명을, 이유를 보여줬다.

이강우가 종이 박스를 뜯었다. 그러자 그곳에서는 온갖 종류의 초콜릿 제품들이 보물처럼 흘러나왔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초콜릿 제품을 가지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그 말에 채유리의 눈빛이 반짝였고, 이강우가 회심의 눈빛을 품었다.

‘대식가를 다루는 방법은 결국 물량이지.’

이게 이강우, 그가 준비한 발버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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