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섭취 마력 포인트
“만석루(滿席樓)의 오너인 왕지홍.”
이강우의 부탁에 백광현, 그가 소개해준 인물은 만석루라는 중화요리점의 주인, 왕지홍이었다.
“누굽니까?”
이강우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강우가 은퇴를 하기 전에는 인천마법시장에서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이었거나 혹은 1년 만에 입지를 키운 인물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미.
“자네가 은퇴한 후에 인천마법시장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돈을 버는 사람이지.”
왕지홍은 후자였다.
“대단한 사람이네요. 내가 은퇴한 후면…… 1년 만에 이 바닥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뭐로 그리 돈을 번 겁니까?”
“몬스터 고기.”
이 대목에서 이강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했다. 백 노인은 그런 이강우에게 재차 말했다.
“몬스터 도축 사업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지. 그렇게 해서 번 돈과 입지, 인맥을 이용해서 최근 마나스톤 거래 사업에도 손을 대려고 감별사들을 모집하고 있어. 그래서 자네를 소개해주는 거야. 이미 이 바닥에서 마나스톤 사업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경력도, 마법사도 아닌 자네에게 관심조차 가질 리 만무하니까.”
“아니, 마나스톤 사업은 그렇다 치고 몬스터 도축 사업이라니…… 그 몬스터를 먹는다고요? 소, 돼지처럼?”
이강우는 굉장히 혐오스러운 것을 본 듯한 표정을, 그냥 표정을 짓는 것도 아니고 있는 힘껏 지었다.
백광현이 그런 이강우를 보며 반문했다.
“먹어본 적이 있나?”
“있으니 이런 표정을 짓는 거 아니겠습니까? 몬스터 고기는 사람이 먹을 게 못 됩니다.”
이강우가 혀를 내두르며,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총꾼으로 유적 사냥을 시작했을 무렵의 기억이었다.
일단 이강우는 몬스터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먹고 싶어서 먹은 건 아니었다. 유적 사냥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유적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유적 안이 어떤지는 예상할 수 없으니까. 또한 가지고 간 식량에 문제가 생길 경우도 있다. 몬스터와의 전투 도중에 식량을 잃을 수도 있고, 특수한 환경 때문에 식량이 부패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됐건, 유적 사냥 도중에는 외부의 보급을 기대할 수 없고, 그럼 살기 위해서 뭐라도 먹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세상에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몬스터를 잡아서 먹어봤다. 그리고 몬스터를 먹어본 이후로 이강우는 원래 초콜릿을 좋아하긴 했지만 거의 중독자 수준으로, 유적 사냥을 할 때마다 초콜릿을 챙겼다. 결코 몬스터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 몬스터 고기는 그 정도로 최악이었다.
“진짜 그때를 생각만 해도…… 쓰레기 오물을 뭉쳐서 입 안에 넣는 기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거 먹고 탈이 나서 죽을 뻔했습니다. 난 내장이 항문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몬스터 고기는 맛을 떠나 독을 품는 경우가 적잖았다. 배탈이 나서 설사로 하루 이틀 고생하는 건 애교 중의 애교다. 먹고 죽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매달 주기적으로 마법사들 및 길드 관계자들에게 보급되는 몬스터 도감에는 절대 먹지 말아야 하는 몬스터 관련 항목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걸 돈 받고 파는 인간이 있다고요? 아니, 그걸 돈 주고 사는 인간이 있습니까?”
어쨌거나 이강우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
그런 이강우의 반응에 백광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자네가 요식업을 시도했다 망하는 거지.”
“무슨 소리입니까?”
“요즘 시대에 그냥 보기 좋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봤자 통할 리가 있나. 누가 보더라도 새롭게, 신선한 걸 시도해야지.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 몬스터의 특수한 부위는 같은 무게의 캐비어와 같은 값을 치러 준다더군.”
“캐비어요?”
그런데 이강우가 1년 동안 사업으로 번 돈을 후루룩, 말아먹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캐비어 같은 경우에는 30그램짜리가 30만 원 정도 하지. 더 비싼 건 그 곱절인 경우도 있고 말이야.”
“순금이 그램 당 4만 원 정도 하니까…….”
“그마저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지. 그래서 왕지홍이 단숨에 인천마법시장의 거물이 될 수 있었지. 마법 아티팩트는 대량 거래나 안정적인 수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실상 돈벌이에 불과할 뿐이고, 마나스톤은 물량 거래는 꾸준하지만 수요만큼 공급도 많아 시세 가지고 장난치기 힘들고, 몬스터 가죽이나, 비늘 따위는 실상 제대로 된 기술력이 없으면 헐값에 처분할 수밖에 없지만 몬스터 도축 사업은…… 현재는 경쟁자는 없는데, 수요는 있지. 그것도 미식에는 큰돈을 당연하게 쓰는 부자들이. 여러모로 괜찮은 사업이지. 어때? 관심이 있나?”
그 말에 이강우는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미친 새끼, 사업으로 이 꼴이 되고 또 사업을 한다고? 관심 끊어라, 끊어. 넌 사업하고 평생 인연이 없는 팔자야.’
이강우가 그 비싼 돈을 치르고 배운 건, 자신은 사업에 조금도 재능도, 인연도 없다는 사실이다.
“관심은 없고, 그 양반 소개나 해주세요.”
“맨입으로?”
맨입.
그 말에 이강우는 구멍가게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ABC초콜릿을 비롯한 모든 초콜릿을 가져다 계산대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자, 제가 크게 샀습니다. 솔직히 이거 마트 가면 전부 절반 값에 살 수 있는데 여기서 사드리는 겁니다.”
백광현은 그 말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 * *
만석루는 3층짜리 건물 전부를 음식점으로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석루는 만석루란 이름처럼 언제나 자리가 만석이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중화요리점이란 게 허명이 아니었다.
이강우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강우의 얼굴을 본 종업원이 곧장 이강우를 예약 푯말이 붙은 방 안으로 데려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강우의 눈이 스윽, 주변을 훑었다.
‘감시카메라는 석 대쯤 있네. 여기에 방음벽. 이 정도 설비는 건물 올릴 때부터 설계해야 가능한 수준인데, 1년 전에 자리를 잡은 것치고 준비가 꽤 철저한데?’
이강우가 자리에 앉은 후 곧바로 방에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딱히 주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종류의 중화요리, 그것도 저렴한 탕수육이나 짜장면 같은 게 아니라 딱 봐도 해삼, 전복을 아낌없이 쓴 요리들이 푸짐하게 식탁 위를 채웠다.
그러나 이강우는 쉽사리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백광현의 말이 계속 귀에 남았다.
‘설마 몬스터 고기로 만든 요리는 아니겠지?’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등장했다. 코밑을 시커멓게 채운 콧수염과 반쯤 벗겨진 머리가 인상적인 40대 후반 중년 사내였다. 중년 사내의 등장에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년 사내가 방긋 웃으며 악수를 권했고, 이강우가 그 악수를 받았다.
“반갑네. 만석루 주인 왕지홍이라고 하네.”
“이강우라고 합니다.”
“마나스톤 감별사라고?”
“예.”
“마법사는 아닐 테고.”
악수를 한 상태에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마나 서클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나스톤의 진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습니다.”
“듣기로는 감별사 경력이 전혀 없던데…….”
“테스트를 해서 아니다 싶으면 쫓아내시면 됩니다. 아, 그래도 요리값은 좀…… 제가 주문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먹으려고 만든 거니까.”
그제야 둘이 잡은 손을 놓았고, 왕지홍이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왕지홍은 품에서 비단으로 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식탁을 반 바퀴 돌리자, 비단 주머니가 이강우 앞에 섰다. 이강우는 자연스럽게 비단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을 채운 건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검은색 돌멩이 네 개였다.
마나스톤이다.
일단 이강우는 그중의 하나를 꺼냈다.
“이건 가짜군요.”
왕지홍이 눈빛으로 가짜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그리 물었다.
“마나스톤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블링이 없습니다.”
마나스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돌멩이 속과 겉을 가득 채운 마블링이다. 나머지 세 개는 전부 마블링이 있었다. 이강우는 작은 조약돌 크기의 마나스톤 3개를 바라보며 눈에 힘을 줬다.
‘분석.’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캐스팅을 외치자, 이강우의 눈에 묘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냥 보면 알 수 없지만, 이강우의 눈을 뚫어지게 보면 느낄 수 있는 일렁거림이 피어올랐다.
그 일렁거림과 함께 이강우의 시야가 바뀌었다. 마치 구글 글라스 같은 제품을 착용한 것처럼, 현실 위에 텍스트가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증강현실이 구현됐다.
동시에 세 개의 마나스톤 중 두 개의 마나스톤 위로 숫자가 보였다.
‘오케이! 통하는구나!’
하나는 아예 숫자가 표시되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숫자가 표시되지 않은 건 마력을 조금도 품지 못한 가짜라는 의미다.
나머지 둘은 숫자가 있었다. 하나는 [221/221]이라는 숫자를 품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44/220]이라는 숫자를 품고 있었다. 상황을 봤을 때 뒤의 숫자는 본래 가지고 있던 마력의 양이고, 앞의 숫자는 현재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인 모양.
하나는 마력이 꽉 찬 상태고, 다른 하나는 마력이 1/5밖에 남지 않은 놈이다.
‘이거구나.’
그리고 이 수치를 보는 순간 이강우는 섭취 마력 포인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거다.
이런 마나스톤을 섭취하면 마력 포인트가 오르고, 그럼 [도서관]에서 원하는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설마 그냥 돌멩이를 처먹어야 하나? 소화는 되려나?’
아주 잠깐, 돌멩이가 위장에 쌓여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모습이 이강우의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이강우는 그 상상을 무시했다.
“일단 이건 가짜입니다.”
“어떻게 확신하나?”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나 서클도 없으면서 마력을 느낀다?”
“이래 봬도 총꾼으로 3년 동안 유적 사냥을 백 번 넘게 치른 몸입니다. 몬스터도 꽤 잡아 봤고, 마나스톤을 채취하기 위해 몬스터를 해체해 본 횟수도 천 번을 가뿐하게 넘어갑니다.”
왕지홍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일단 당장은 믿어주는 수밖에.
“나머지 두 개는? 둘 다 마나스톤인가?”
“둘 다 마나스톤인데, 굳이 구분하자면 이게 진짜고, 이게 가짜입니다. 크기는 같아도 이쪽 마나스톤은 마력의 양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근거는?”
“감입니다.”
여전히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왕지홍은 그 불친절한 설명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감치고는 꽤 정확하군. 사실 최근 마나스톤 암시장에서 감별사들 골치를 아프게 만드는 게 지금 자네가 고른 이놈이지. 마력을 품고 있는데, 그 양이 적은 것들. 속칭 빼내기를 한 놈들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어. 그런데 용케 이놈을 구별해내는군.”
마나스톤의 핵심은 그 안에 든 마력의 질과 양이다. 진짜 마나스톤이라도 그 안에 든 양이 적으면 의미가 없다. 그걸 구별할 줄 알아야 감별사랍시고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감별사 보수는 알고 있나?”
“감정한 마나스톤 판매가의 5퍼센트 아닙니까?”
“경력조차 없는 초짜의 경우에는 3.5퍼센트부터 시작이지.”
이강우가 짧게 눈살을 찌푸리며 슬슬 수수료 협상을 나서기 위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자네 혹시 내 사업에 동참할 생각 없나? 만약 내 사업에 동참해준다면, 수수료를 6퍼센트로 잡아줄 수도 있네.”
왕지홍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6퍼센트? 진짜?’
이강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열리며, 여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종업원이 들고 온 음식은 중화요리점에 어울리지 않는 스테이크였다.
정말 큼지막한 고깃덩이.
그런 고깃덩이 위로 보이는 건…….
‘응?’
[101]이란 숫자였다.
* * *
왕지홍은 자세한 사업 이야기에 앞서 마련된 스테이크 맛을 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강우은 그런 왕지홍의 말에 쉽사리 스테이크를 향해 손을 내밀지 못했다.
‘이거…….’
스테이크 위로 보이는 숫자, 마나스톤에서 보던 숫자와 똑같다. 그렇다는 건 이 스테이크가 마력을 품었다는 의미다. 소, 돼지는 마력을 품지 못한다. 마력을 품는 건 몬스터 그리고 마법사뿐이다. 물론 이 스테이크가 마법사의 몸에서 나온 스테이크일 리는 없다.
‘몬스터 고기다.’
그럼 답은 몬스터!
당연히 이강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과거 몬스터 고기를 먹고 구역질을 하고, 배탈이 나 설사까지 했던 기억이었다.
‘때깔은 뭐 그때랑은 차원이 다르지만.’
물론 외형적으로 봤을 때 지금 마련된 스테이큰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과거 유적에서 먹을 게 정말 없어서 보기에 소처럼 생긴 9등급 몬스터, 삼뿔황소를 대충 해체해서 불에 바짝 구워 먹었을 때의 광경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때 그 식감, 끈적거리는 썩은 오물을 입에 억지로 넣는 식감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강우가 망설이는 건 당연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
왕지홍이 그런 이강우의 망설임에 의문을 가지는 것 역시 당연했다. 누가 보더라도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인데 먹기를 주저하다니.
‘설마 몬스터 고기란 걸 아는 건가?’
왕지홍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순간.
“젓가락으로 먹기 좀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이강우가 정말 능숙하게 거짓말로 상황을 넘어갔다. 왕지홍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짧게 생각했다.
‘하긴, 눈으로 보고 몬스터 고기인지 구별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걱정하지 말게.”
이윽고 왕지홍이 젓가락을 들어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가볍게 찢었다.
푹!
정말 가볍게.
마치 젓가락으로 푸딩을 자르듯, 두부를 자르듯, 잘라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육즙을 가득 품은 육질이 부드럽게 찢기는 모습은 이제까지 이강우가 먹은 스테이크들과는 존재감…… 아니, 개념 자체가 달랐다.
그 모습을 본 이강우가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두부를 먹듯 젓가락으로 필요한 만큼만 잘라낸 후에 그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 첫맛.
몬스터 고기가 입에 들어오는 순간 느껴진 첫맛.
‘부드럽다.’
가장 먼저 느낀 느낌은 보이는 그대로의 부드러움이었다. 씹는다기보다는 녹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굉장히 진해.’
그 부드러움 속에는 어지간한 스테이크보다 두 배 이상 강렬한 고기 특유의 진한 맛이 꽉 차 있었다. 그 진한 고기 맛 속에서 느껴지는 짙은 달콤함과 감칠맛은 이강우가 이제껏 먹어본 그 어떤 맛보다 인상적이었다. 통상적인 고기의 맛이 아니었다. 맛을 떠나서 세상 어느 가게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맛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기를 삼키는 순간.
[43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마나 서클이 활성화됩니다.]
알림이 떴다.
‘이거…….’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 계산기가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한편 왕지홍은 그런 이강우를 보며 만족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비싼 돈을 주고 먹어도 아쉽지 않은 맛 아닌가?”
이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강우가 눈빛으로 이 고기의 정체를 물었다.
“고기의 정체는 사업 비밀이니 알려줄 수 없네. 물론 자네도 눈치를 챘겠지만 일반 소나 돼지고기가 아닐세. 몬스터 고기. 하지만 이 정도라면 내 사업의 가능성은 인정할 터.”
이강우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몬스터 고기라는 게 구하는 게 쉽지 않네.”
“그냥 잡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당장 유적 들어가면 많아서 처치 곤란인 게 몬스터인데.”
“자동소총으로 총알 세례를 퍼붓고 마법으로 난도질을 하는 게 도축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아…….”
이강우가 실소를 머금었다.
“하물며 당장 마나스톤만 구하기 위해 제멋대로 해체된 몬스터 사체는 부패도 빠르게 진행되네. 그 해체라는 것도 전문적인 기능사가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자가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
이강우는 왕지홍의 의중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사업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유적 사냥에서 몬스터를 해치우고, 값이 되는 부위를 즉석에서 도출해올 실력자가 필요하다, 이겁니까?”
“이해가 빠르군. 몬스터 고기를 즉석에서 도축해올 전문적인 실력자가 필요하네. 그것도 많이. 지금 우리 상황이 꽤 안 좋거든.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지.”
“마법사는…….”
그 순간 이강우는 자신이 뱉으려던 말에 스스로가 웃고 말았다.
“마법사들이 굳이 몬스터 고기를 도축해서 팔 생각은 하지 않겠군요.”
“최소 수억 원에 거래되는 아티팩트가 목적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 돈 이삼백만은 돈 취급도 안 하는 마법사들이 고깃값 때문에 우리 제안을 받을 리가 없지.”
마법사가 도축업자가 될 일은 없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자기가 인류보다 진화한 인류쯤으로 여기는 자들이니까. 몬스터 도축 같은 걸 제안하면, 감히 내게 그런 제안을 해? 하고 두 눈을 부라릴 것이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총꾼이다.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는 총꾼이라면 좋은 공급자가 될 것이다.
문제는…….
“문제는 요즘 총꾼들 수준이 굉장히 낮다는 점이네. 몬스터 도축이란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고, 아무래도 노하우도 중요한 만큼 내 입장에서는 경력과 신용이 있는 자가 필요한데…… 요즘 총꾼 애들은 대부분 양아치나 다름없지. 차를 사고 싶어서, 몬스터를 잡고 싶어서, 신기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이력서에 독특한 경력 좀 넣고 싶어서 돈 삼사백 받고 유적 사냥에 나서는 양아치들.”
“마지막 사례는 좀 슬프군요. 취업하려고 총꾼을 하다니.”
“뭐, 어찌 됐건 내 입장에서는 자네가 마나스톤 감별사 역할을 해주는 것보단 내 사업을 도와줬으면 하네. 자네 경력을 보는 순간 정말 적격자가 왔다고 생각했으니.”
그 순간.
“죄송합니다.”
이강우가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왕지홍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생각보다 단칼에 거절하는군.”
“매력적인 제안입니다만, 결국 유적에 들어가는 일 아닙니까? 돈이 궁한 처지이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왕지홍은 옅게 웃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군. 보통은 그냥 돈에 눈이 멀어 저울질을 하는데…… 이게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에서 살아남은 비결이군.’
“이해하네.”
왕지홍이 그 말을 기점으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럼 수수료는 3.5퍼센트로 하겠네.”
“석 달 동안 일하면서 마나스톤 감별에 실수가 없다면, 5퍼센트로 수수료를 올려주십시오.”
“석 달이라…… 좋아.”
왕지홍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방 밖에 있던 종업원이 계약서 두 장을 꺼냈다. 왕지홍이 부른 것도 아닌데 잽싸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지금 이 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실시간으로 감시된다는 의미.
이강우는 그런 사실을 제 머릿속에만 둔 채 왕지홍이 마련한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읽고 마지막에 사인도 했다.
그 둘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일어나면서.
“남은 건 마저 먹겠습니다.”
스테이크의 남은 조각을 잽싸게 손으로 집어 먹었다. 쪽쪽, 손에 묻은 양념도 깔끔하게 빨아 먹었다.
[58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눈앞에 알림이 떴고, 이강우는 그 알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맛이 좋네요. 정말.”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에 몸을 실은 이강우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오른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누가 보더라도 피로에 지쳐 몸조차 겨누지 못하는 서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강우는 지금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
‘진짜 좋은 기회가 왔어!’
너무나도 들뜬 기색을 이런 식으로라도 감추지 않으면 변태로 오인당할 것 같아서, 그래서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이강우는 작금의 상황에 만족했다.
‘일단 분석 마법…… 드디어 사람다운 일자리를 얻겠네.’
가장 큰 수확은 역시 분석 마법이다. 분석 마법으로 마나스톤을 감별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목돈은 힘들어도 당분간 수입은 안정되겠지.’
마나스톤 감별능력은 돈이 된다.
보통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마나스톤은 9등급에서 8등급 사이다. 더불어 시세는 공식 시세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비싸다. 때문에 암시장에서 마나스톤의 거래량은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니다. 정말 정당하게 마나스톤이 필요한 경우라면 암시장에서 거래할 필요가 없으니까. 암시장에서 마나스톤을 거래하는 건 마나스톤에서 추출한 마력을 합법적이지 못한 일에 써먹기 위해서다.
어쨌거나 암시장에서 보통 크기의 9등급 마나스톤 하나를 감정하는 것에 대한 5퍼센트 수수료는 20~30만 정도다. 당장은 3.5퍼센트를 받으니까 액수가 줄어들겠지만, 한 달에 10~20개 정도만 감정해도 먹고살 돈 걱정은 필요 없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바다.
‘몬스터 도축 사업이라…….’
예상외 수입은 다름 아니라 몬스터 도축 사업.
‘정말 맛있었어. 아니, 정말 처음 보는 맛이었어.’
몬스터 고기가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맛을 떠나서 기존의 고기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맛을, 그것도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즐길 수밖에 없는 맛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하다.
‘그건 진짜 돈이 돼.’
이강우가 사업에 재능이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몬스터 도축 사업은 어마어마한 돈이 되는 사업이다.
‘백 노인이 왜 나보고 사업하는 재주가 없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되네.’
더군다나 몬스터 도축 사업은 남들은 그냥 버리는 걸 가져다가 돈을 만드는 사업이다. 보통 몬스터를 잡고 나면 가장 먼저 마나스톤을 채취한 다음 몬스터에 따라 비늘이나, 뼈, 가죽 정도만을 벗겨다 판다. 몬스터 고기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고기는 아무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플러스알파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고, 블루오션이다.
그리고 마지막 소득.
‘몬스터 고기를 먹어도 섭취 마력 포인트가 오른다.’
처음에는 마나스톤만으로 섭취 마력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몬스터 고기를 먹는 것으로 섭취 마력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사실 마나스톤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적으로 거래되는 마나스톤은 사용 용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사용 용도가 집에서 삶아 먹으려고…… 이러면 구치소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감금될 것이다. 여기에 총꾼으로 3년 동안 뛰면서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강우는 범법자다. 돈이 있어도 마나스톤 구매가 불가능하다.
암시장에서 사는 건 더더욱 힘들다. 물량도 생각만큼 많지 않고, 결정적으로 비싸다.
그러나 몬스터 사체는 다르다.
먹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만, 그래도 마나스톤을 먹는 것보다는 낫다.
결정적으로 유적 사냥 도중 잡은 몬스터를 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의심받지 않고 마력을 섭취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그래서 왕지홍의 제안을 거절했다.
정말 하고 싶으니까.
‘굳이 내가 안달이 났다는 걸 상대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지. 결국 이 바닥은 궁한 자가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법이니까.’
좀 더 좋은 조건과 대우를 받기 위해서, 좀 더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래서 뜸을 들였다.
‘그보다 왕지홍, 그 양반은 대체 몬스터 도축 방법을 어디서 구한 거지? 자체적으로 구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