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불사황제의 권능
붉은 도포, 거대한 짐승의 비늘 가죽을 잘라 만든 듯 강렬하면서도 섬뜩한 핏빛 기운을 품고 있는 도포를 입고 있는 사내는 괴상한 얼굴이었다. 오른쪽 눈은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왼쪽 눈은 검은 소용돌이를 눈동자에 집어넣은 듯 눈알이 쉴 새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빨은 짐승을 떠올릴 정도로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괴물.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는 괴물이 분명했다. 이제까지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에서 만났던 그 어떤 몬스터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포와 위엄과 재앙을 온몸에 가득 채운 괴물이었다.
그 괴물 앞에서 이강우는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공포에 젖은 다리를 후들거리는 것도, 주저앉는 것도, 비명을 내지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그 괴물도 알고 있는 듯, 괴물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지은 채 이강우의 이마를 제 오른손 검지로 눌렀다. 그러자 손가락은 마치 젖은 종잇장을 뚫듯 이강우의 피부를 뚫고, 두개골도 뚫고, 뇌에 닿았다.
상상만으로도 영혼이 나갈 것만 같은 그 느낌 속에서 이강우는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었다.
그때 그 괴물이, 아직 정신이 남아있는 이강우를 향해 말했다.
“나의 권능을 오롯이 계승할 그릇이여, 네 방식대로 내 힘을 담아주도록 하겠다.”
* * *
-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사한 거야? 유적은? 클로즈 했어?
자신의 원룸 화장실 변기를 의자 삼아 걸터앉아있던 이강우는 제 오른쪽 귀에 닿은 스마트폰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에 왼쪽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찌를 듯한 두통.
그 두통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건, 오늘 자신이 꾼 꿈과 조금 전 자신이 겪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최우석이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했다.
-강우야 문제 있어? 경찰 불러줘?
“아니, 무슨 경찰입니까? 쇠고랑 찰 일 있어요?”
하지만 경찰이란 단어에는 이강우가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최우석이 짧은 한숨,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경찰이란 말에 즉각 반응이 나오는 걸 보니까 정신이 나가거나 그러진 않은 모양이네.
총꾼들 대부분은 경찰과 친하지 않았다. 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총꾼들은 당장 경찰에게 잡혀가도 이상할 게 없는 처지다.
일단 대한민국에서 총기 휴대는 불법이다. 여기에 정부 허가를 받지 않은 유적 탐사 역시 불법이며, 유적에서 나온 것들, 몬스터 사체와 마나스톤, 아티팩트 거래도 불법이다.
단지 정부가 모든 모래시계문과 몬스터를 처리할 수 없고, 크루들이 그런 모래시계문과 몬스터 처리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만큼 정부와 검경이 총꾼이나, 크루들을 당장 때려잡기보다는 주시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고 있을 뿐. 만약 당장 경찰이 총꾼들을 잡으려고 한다면 과연 어떤 죄목으로 잡아야 할지 그게 가장 큰 고민이 될 정도다. 실제로도 총꾼들이 사고라도 치면, 벌집 쑤시듯 총꾼, 크루, 암시장을 들쑤시는 식으로 경고를 보낸다.
이강우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유적 사냥을 백 번 넘게 성공한 총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이미 이강우의 이름은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그런 그가 경찰을 찾아간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당장 경찰에게 잡힐까 봐 어머니 병문안도 못 가는 게 이강우의 현실적인 처지다.
어쨌거나 경찰이란 단어가 이강우의 빠진 얼을 되돌려줬다.
-유적 사냥은?
최우석이 담담한 음색으로 말했다.
이강우는 짧게 고민한 뒤
“……성공했습니다.”
거짓말을 시작했다.
-성공? 그런데 왜 아무도 연락이…….
“저랑 마법사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박준영이란 양반하고 저만 클로즈해서 나왔어요.”
클로즈.
유적을 클리어했단 말이다. 클리어가 아닌 클로즈란 표현을 쓰는 건, 유적에 있는 나오는 문, 출문을 열면 모래시계문의 모래시계가 작동을 멈추고 평범한 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다, 그래서 총꾼과 마법사들은 클로즈란 표현을 주로 쓴다.
-총꾼 여섯이 다 죽었어?
‘실제는 나 빼고 전부지만…….’
“박준영, 그 인간 완전 초짜였어요. 그 인간이 사고 치는 바람에 총꾼들 희생이 컸습니다.”
총꾼의 가장 큰 역할은 마법사 보호다. 만약 마법사가 사고를 치면, 마법사가 아니라 총꾼이 죽는다. 총꾼이 전멸하고 마법사만 살아서 유적 클로즈에 성공하는 건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래서 의뢰인은?
떄문에 최우석도 깊게 들어가진 않았다.
“총꾼들 때문에 자기가 죽을 뻔했다면서, 클로즈 하자마자 클로즈 보너스는 없다고 지랄발광을 한 뒤에 사라지더군요.”
-뭐? 진짜야?
“아마 마법 아티팩트를 구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출문을 발견하자마자 열고 나오자고 했거든요. 그 마법사 양반은 좀 더 수색해서 아티팩트를 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티팩트 구한다고 제 몫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왔죠.”
-꽝이었군.
“아마 수색을 하면 아티팩트 한두 개 정도는 구할 순 있었을 것 같은데…… 총꾼 여섯이 죽고 총꾼 하나랑 초짜 마법사 한 명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먼저 뒈지는 건 나뿐인데. 제가 봤을 때는 빠지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술술, 이강우의 입에서는 마치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는 듯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 거짓말 실력이 이강우가 살아남은 비결 중 하나이기도 했다. 흔히들 이강우의 경력을 보면,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군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를 보면 이강우만큼 얼굴색이 다양한 인간도 없다. 필요하다면 마법사 앞에서 간과 쓸개도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이다. 이 정도 거짓말을 꾸미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새끼 블랙리스트에 올려야겠네. 박준영이라고 했지?
최우석은 그런 이강우의 말에 확실하게 속은 듯, 격렬하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퍽이나.’
그러나 이강우는 최우석의 반응에 실소를 지었다.
‘어차피 죽은 새끼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뭐해?’
일단 박준영은 죽었다. 죽은 이가 오를 수 있는 리스트는 사망자 리스트나 실종자 리스트밖에 없다.
혹여 살아있다고 해도 고작 총꾼을 파견해서 얻는 수수료로 먹고사는 소규모 인력업체인 핏볼 크루가 3서클 마법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린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린 애가 난 코카콜라보다 펩시콜라가 좋아, 코카콜라 안 먹을래, 하고 지껄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는 거다.’
이강우는 일단 상황을 여기서 정리하고자 했다.
“어쨌든…… 일이 그렇게 됐으니까 당분간 잠수 타겠습니다. 전화 못 받아도 그러려니 하세요.”
-알았다. 그런데 클로즈 보너스를 못 받았는데 어떻게 하냐? 괜찮겠어? 돈 급하다며?
돈!
그 말에 이강우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가족이 떠올랐다.
급하게 수술비는 마련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 입원비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괜찮아요. 급한 불은 껐어요.”
-내가 돈을 빌려줄 순 없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너 같은 실력 좋은 총꾼을 원하는 곳은 많으니까.
“예.”
통화가 꺼진 순간 이강우는 스마트폰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자신의 콧대와 미간을 주물렀다.
우습게도 이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그 괴물도, 박준영이란 마법사도,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위로 보이는 그 기괴한 것도 아닌 오직 돈이란 단어였다.
‘빌어먹을 돈만 있으면 그런 수술 받을 필요도 없었는데.’
거듭된 수술과 병원 생활 때문에 미라처럼 말라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술을 견디기도 힘든 몸. 그런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주는 여동생 역시 어머니에게 간을 기증하는 바람에 몸이 좋지 못하다. 한때는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아 유럽으로 유학도 가려고 했던 여동생이 퉁퉁 부어버린 손가락으로 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있다.
‘빌어먹을 돈.’
돈만 있으면 그런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당장 돈만 있으면 병원 신세도 필요 없다. 힐링 마법, 리커버리 마법, 큐어 마법…… 회복 마법만 쓰면 된다. 실제로 인류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불꽃 구슬을 만드는 마법이나, 얼음 화살 따위를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치료 계열 마법이었다.
물론 저렴하진 않다. 괜히 마법사와 아티팩트의 값이 기본 억 단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어머니랑 여동생의 신세를 당장 바꿀 만한 마법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10억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마법 치료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니까.
그 외에도 집을 살 돈도 필요했고, 먹고살 돈도 부족했으며, 스포츠카는 아니더라도 타고 다닐 법한 번듯한 차도 필요했다. 경찰들에게 잡힐 게 무서워서 어머니 병문안조차 가지 못하는 처지도 돈만 있다면 바꿀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불사황제 야크센…….”
돈만 있으면, 힘만 있으면, 마법사만 될 수 있다면, 마법을 쓸 수만 있다면…….
“권능, 그릇…….”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목숨 따윈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실제로 이제까지 돈을 위해 목숨을 베팅해오지 않았던가?
‘설마 내가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이강우가 변기에서 일어나, 다시금 화장실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 위에 달린 아홉 개의 고리를 바라보는 이강우의 눈빛은 마치 꿈에서 본 붉은 도포의 사내처럼 기괴한 빛을 품고 있었다.
* * *
이강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이 그로부터, 스스로를 불사황제 야크센이라고 소개한 붉은 도포를 입은 해골 혹은 꿈속의 괴물 같은 사내로부터 들은 말을 어떻게든 선명하게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세상의 모든 마법을 먹어 치워 스스로를 살찌워라. 그리하면 네 몸의 살점을 양분 삼아 자라난 나의 권능들이 너의 충실한 종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이강우는 그가 한 몇 가지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권능을 오롯이 계승할 그릇이여, 네 방식대로 내 힘을 담아주도록 하겠다.”
이강우는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머리 위에 아홉 개의 고리를 가진 자신을 향해 불사황제 야크센이 했던 말을 뱉었다. 이강우의 눈이 거울 주변을 훑었다. 거울 곳곳에 있는 초록빛 문자들을 바라봤다.
‘이 거울은 일종의 나만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겠지.’
대충 상황은 이해가 됐다.
불사황제 야크센이란 어마어마한 괴물,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 그런 그가 이강우의 몸속에 들어왔다. 혹은 그가 자신의 힘을 이강우에게 줬다.
이유?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자, 복수…….’
불사황제가 남긴 말을 더듬으면, 아마도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복수일 가능성이 크다.
즉, 본인이 당장 복수를 할 수 없는 처지이니, 이강우를 통해 복수를 대신하겠다는 것.
‘그런 괴물 같은 존재의 적이라니, 어떤 괴물이기에?’
타인의 복수를 대행해주는 것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섬뜩하고, 어려운 일은 없다. 수지타산 맞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강우에게 중요한 건, 그 괴물이 가진 힘을, 필시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을 자신이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강우는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채우는 공포심과 우려, 걱정이란 감정을 지금 이 순간은 무시했다.
‘내 방식대로라면…… 내가 이해하기 쉬운 구조로 해줬다는 의미이겠지.’
이 부분에서 불사황제는 배려를 해줬다.
“게임 시스템이라, 이거지?”
게임.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모두가 아는 시스템.
지금 불사황제 야크센이 이강우를 위해 만든 시스템은 그 게임 시스템과 흡사했다.
덕분에 이해가 어렵진 않았다.
“머리 위에 있는 아홉 개의 고리는 9서클.”
머리 위에 있는 고리는 게임 캐릭터 머리 위에 레벨이 있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 외에 이강우가 볼 수 있는 항목은 세 가지가 있었다.
[능력치], [도서관], [마법].
‘능력치는 봤고.’
능력치는 확인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의문이 생기는 건 섭취 마력 포인트란 놈이었다.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그 섭취 마력 포인트와 불사황제 야크센이 한 말을 섞으면?
“뭔가를 먹으면…… 마법 아티팩트나 마나스톤 따위를 먹으면 경험치처럼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정황상 이강우의 예상이 맞을 것이다.
‘설마 몬스터를 먹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 그 거대한 몬스터의 살점을 잘라내 먹는 상상을 한 이강우의 얼굴색이 굳었다.
몬스터를 먹어야 레벨업이라니…… 먹으라면 못 먹을 건 없겠는데 몸집이 전차만 한 크기의 몬스터를 전부 먹는 건 솔직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겠지.’
이강우는 애써 자신의 상상을 외면했다. 그런 이강우의 눈이 [마법] 항목을 향했을 때, 잠시 머릿속을 채웠던 끔찍한 상상은 사라진 듯 이강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 * *
솨아아!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 소리와 함께 이강우가 분주하게 자신의 화장실 거울을 닦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을 터치스크린 삼아서 온종일 만졌다. 당연히 거울에는 손때가 가득했고, 그걸 닦고 있었다.
거울을 닦는 와중에도 거울 속 이강우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검은 고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고리를 바라보며 이강우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대충은 알겠어.’
이강우가 거울과 씨름을 하면서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능력치] 항목은 말 그대로 능력치다.
[도서관] 항목은 게임으로 따지면 아이템 상점 같은 개념이다.
[마법] 항목은 게임으로 스킬 설정창 같은 개념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도서관] 항목을 활성화하면 거울 안의 풍경이 도서관으로 바뀌고, 개중에서 이강우는 다섯 가지 책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된다.
다섯 가지 책은 색으로 구분을 할 수 있었다.
가장 저렴한 책은 구리색 커버를 가진 책으로 브론즈북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격은 5천 포인트였다. 이 포인트는 예상대로 섭취 마력 포인트를 의미했다. 그다음 책은 은색 커버, 실버북으로 3만 포인트였고, 그 위에 순차적으로 골드북 10만 포인트, 플래티넘북 50만 포인트가 존재했다. 나머지 책은 당연히 다이아몬드북이겠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검붉은 커버를 가진 책이 그 위에 존재했다. 그것뿐이다. 그 책은 구매를 시도했으나 자격이 부족하다는 말만 뜰 뿐, 그 외에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더불어 어떤 마법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마법을 특정해서 구매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현질 유도하는 장사치 수완을 발휘할 필요는 없는데…… 그냥 퍼주면 안 되나?’
어쨌거나 그렇게 [도서관]에서 구매를 한 마법은 [마법] 항목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
[마법] 항목을 활성화하면, 아홉 개의 슬롯이 뜨고 그 아래에 습득한 마법 목록이 정리됐다.
현재 이강우가 볼 수 있는 아홉 개의 슬롯 중 여덟 개는 자물쇠 모양이 존재했다. 문외한이 봐도 잠금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현재 사용 가능한 슬롯은 1개에 불과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마법 목록 중 원하는 마법을 손가락으로 이용해서 드래그인을 하면 끝!
‘아티팩트 역할이겠지.’
슬롯에 넣은 마법은 언제든 사용 가능한 상태, 즉 슬롯에 마법을 넣으면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착용한 상태가 되는 셈이다. 또한 슬롯에 마법을 집어넣으면 일정 시간 동안 다른 마법으로 교체하는 게 불가능했다.
더불어 현재 이강우는 1개의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슬롯에 집어넣은 마법은 다름 아니라 [분석].
[분석]
-1서클 마법.
-마법 사용 시, 일정 시간 동안 주변에 존재하는 마력을 탐지하고, 마력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 단, 마력의 양이 너무 높거나 특수한 능력을 통해 마력을 숨긴 대상의 마력은 감지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다.
어떻게 이 마법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뭐, 내 지금 처지 자체를 생각하면 뭐든 주기만 하면 고맙다고 해야 할 팔자지.’
확실한 건, 지금 이강우에게는 1서클짜리 공격 마법보다는 차라리 보조 마법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이강우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백 번 넘는 유적 사냥 속에서 마법에 대해서는 일반인은 물론 초짜 마법사들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마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공격 마법, 방어 마법, 보조 마법.
똑같은 1서클 마법이라도 대체로 공격 마법이 보다 많은 마력을 요구하고, 반대로 보조 마법이 가장 적은 마력을 요구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보조 마법에 속하는 치료 마법 계열은 어지간한 공격 마법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을 요구한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이강우에게 필요한 건, 강력한 공격 마법이 아니다.
‘일단 최우선 과제는 1서클 확보.’
1서클 마법사가 되는 게 최우선 과제고, 그 과제를 위해서는 쓰지도 못할 공격 마법보다는 [분석] 마법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분석] 마법을 이용하면 당장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뭐든 돈이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마법도, 마나스톤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마법의 시대 아닌가?
뽀드득!
이강우가 깨끗해진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의 자신을, 머리 위에 검은 고리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바라봤다.
“불사황제.”
그 거울 속에 이강우의 낯빛은 퀭했지만.
‘그래, 네놈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
눈빛만큼은 섬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 * *
-엄마 수술은 잘 됐어. 너무 걱정하지 마. 나머지는 내가 잘할게.
“너는?”
-나?
“검진받으라고 말했잖아.”
-아, 그거…… 날짜 잡았어.
“언제?”
-다음…… 아니, 다다음 주. 다다음 주에 종합검진 받을 거야. 큰 문제는 없겠지. 나 아직 20대 초반이야. 내가 무슨 문제가 있겠어? 분명 멀쩡하게 나올 거야.
여동생과 통화를 하던 이강우는 여동생의 너무 뻔하고, 수준 낮은 거짓말 앞에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꼭 검진받아. 돈 부족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저 넘어갈 뿐이었다.
애써 거짓말에 속아줄 뿐이었다.
-응,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마.
“필요하면 문자라도 남겨. 전화는 자주 못 하겠지만 문자는 수시로 확인할 테니까.”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마.
“무리는 무슨.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처지인데. 끊는다.”
통화가 끝나는 순간 이강우는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열불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꽉 물어야 했다. 이런 비루한 처지 앞에서 담담해지는 게 쉽지는 않았다.
결국 이강우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언제나 그렇듯,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었다. 최근 들어 먹는 초콜릿 양이 꽤 늘었는지, 주머니를 가득 채웠던 초콜릿은 하나밖에 없었다.
‘난 몬스터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면, 당뇨로 죽을 거야.’
푸념을 뱉으며 이강우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이강우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인천이었다.
* * *
5년 전, 정확히는 2015년 4월 5일. 그 날 인천 차이나타운은 고작 하루 만에 풍비박산이 났다.
이강우는 그 날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다. 4등급 몬스터 폭탄방울뱀이 3시간 만에 차이나타운을 쓸어버렸고,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수도권 병력 중 상당 병력을 인천으로 집중시켰다. 덕분에 이강우는 남들은 동영상으로도 보기 힘든 4급 몬스터 폭탄방울뱀의 위엄을 고작 100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두 눈으로 아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놈의 꼬리에 달린 폭탄이 건물과 부딪칠 때마다 폭발하는 광경은 소름이 끼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강우는 참으로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몬스터에 따른 피해와 혼란이 가장 컸던 2015년 무렵, 굵직한 몬스터와의 전쟁에 참가한 주제에 이제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운이 좋긴 개뿔.’
덜컥덜컥, 거친 소리를 내는 전철 안에서 과거를 떠올리던 이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보다 오랜만이네. 인천은 1년 만이지?’
어쨌거나 인천 차이나타운은 폭탄방울뱀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 이후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됐을 때 복구사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복구사업 과정에서 차이나타운에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인천마법시장.
정확히 말하면 마법을 거래한다기보다는 유적과 관련된 것들…… 몬스터의 사체나 마나스톤, 아티팩트, 모래시계문 따위들이 거래되는 곳이었고 적잖은 크루가 자리를 잡고 있어 인력시장 역할도 했다.
이 시장이 인천에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 인접한 인천항의 존재 때문이었다.
현재의 중국은 세계적인 마법대국이었다. 보통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이가 5만 명 중 1명꼴로 등장한다. 그 수치를 중국 인구 13억 명에 대입하면, 중국은 2만 6천 명의 마법사를 보유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세계 3대 길드 중 한 곳인 칠성문(七星門)의 존재를 비롯해, 중국 정부는 모래시계문과 관련된 모든 것을 국가 주요 사업으로 지정한 뒤 국가 차원에서 유적 사냥 및 마법사 육성, 아티팩트 확보, 마법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중국과 인접한 인천에 시장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차이나타운 재건사업은 그런 시장을 만들기에 좋은 기회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장사를 하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몬스터 사체, 모래시계문, 마법 아티팩트, 마나스톤 등은 허가를 받지 않으면 국외반출 및 거래가 불가능한 품목들이다. 그런 걸 대놓고 사고파는 건 그냥 감옥에서 먹는 밥맛이 그립다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는 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중국음식점 같은 가게 안에 정체를 감춘 채 장사를 하는 이들이 있다.
이강우가 방문한 곳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구멍가게. 급하게 담배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찾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가게였다.
드르륵!
이강우가 그 구멍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입구 근처에 위치한 계산대에 앉아 있는 노인이 이강우를 바라봤다. 백발에 두꺼운 렌즈를 품은 안경을 쓴 노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울 정도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노인이 이강우를 보는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년 전에 은퇴했다는 놈이 여긴 왜 와?”
노인은 이강우를 알고 있었다. 이강우는 그런 노인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오고 싶어 옵니까? 살다 보니 빌어먹을 일이 많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쯧쯧, 번 돈 다 날렸구먼.”
돈 소리에 이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소문이 벌써 인천까지 왔습니까?”
“정말 제대로 은퇴한 총꾼 놈이면 장난으로라도 인천에 오지 않는데, 소문은 무슨 소문. 딱 보면 척이지. 그래서 왜 왔어?”
“마나스톤 요즘 시세가 어떻게 됩니까?”
마나스톤.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노인, 백광현은 손바닥을 펼치면서 말했다.
“돈부터 꺼내.”
“마나스톤 살 돈이 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습니다. 살 생각은 없고 시세나 좀 알려고 왔습니다.”
“그걸 왜 여기 와서 물어?”
“좀 부탁합시다. 나도 여기에 많이 팔아줬잖아요? 3년 단골이 1년 안 왔다고 이러지 맙시다.”
쯧!
3년 단골이란 말에 백광현이 짧게 혀를 찬 후 대답해줬다.
“9등급은 3백만, 8등급은 1천만이다. 7등급은 그냥 모르는 게 약. 물론 이 시세는 길드 시세고, 암시장에서는 2배는 잡고.”
시세를 듣는 순간 이번에는 이강우가 혀를 찼다.
“총꾼 몸값은 반타작이 났는데, 마나스톤 가격은 어떻게 된 게 1년 동안 떨어진 게 없네요. 이제 총꾼 한 명보다 9등급 마나스톤이 더 비싼 거 아닙니까?”
“사람이 몬스터보다 많으니까 당연한 거지.”
몬스터만도 못한 사람 목숨.
참으로 서글픈 소리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아무리 학교 도덕 시간에 사람 목숨은 천금보다 귀하다고 가르쳐도, 현실에서는 천금이 더 귀한 대우를 받는다.
“그보다 시세가 여전한 거 보니까 마나스톤 가지고 사기 치는 새끼들도 여전하겠네요.”
“요즘 들어 유독 심해. 전국에 있는 모든 사기꾼이 다른 사기는 관심도 없고 마나스톤으로 사기를 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야.”
마나스톤.
몬스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광석의 가치는 현재 금과 비슷하다. 단순히 값을 말함이 아니다. 마나스톤은 경제적 가치는 물론 정치적 가치마저 가지고 있다.
때문에 마나스톤은 비싸게 거래되고, 활발하게 거래된다.
문제는 이 마나스톤이란 놈이 보통 사람들은 진위를 가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단 마나스톤의 진위를 가장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마법사를 통해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 몸값이 보통 몸값인가? 또한 마법사라고 해서 마나스톤을 무조건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9등급과 8등급 마나스톤의 차이를 구분하는 건 별개의 능력이다.
그리고 사기라는 게 사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사기다. 마법사가 진짜라고 판정한 놈을 도중에 가짜로 바꿔치기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마법사가 나서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요즘 감별사 몸값이 얼마입니까?”
“감별사? 왜? 너 감별사 하게?”
이 바닥에서 마나스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감별사의 몸값은 제법 비싸다.
“총꾼 짓보다는 더 낫지 않습니까?”
“너 설마 마나 서클을 얻은 거냐? 개방했어?”
놀라는 백광현의 물음에 이강우가 손을 저었다.
“그랬으면 여기 왔겠습니까? 당장 정부에 마법사 인증 요청하고, 공무원 됐지.”
더불어 마나스톤을 구분하는 능력은 꼭 마나 서클이 있어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마나 서클이 없어도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촉을 가진 자들이 없진 않으니까.
애초에 불법거래가 이루어지는 암시장이다. 정말 제대로 된 능력과 배경을 가진 자보다는 어중이떠중이들, 검증되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결과만 낼 수 있으면, 경력이고 실력이고 배경이고 전부 나발이 되는 바닥이다.
“그럼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무슨 방법이라기보다는 유적 사냥 한 백 번쯤 하니까 감이 오더라고요.”
그 말에 백광현이 두꺼운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자, 굉장히 날카로운 눈매가, 섬뜩한 눈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구멍가게를 간신히 운영하던 초라한 노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놈이 이강우니까 받아준다. 다른 놈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네놈 이마에 구멍을 뚫었을 거야.”
이마에 구멍을 뚫는다…… 그 말을 들은 이강우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이마를 툭툭 쳤다.
“예, 그러시겠죠. 제 이마가 뚫기 좋게 생기긴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