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199. 일상 (3)
디오니소스는 정말 정신없이 꼬치와 맥주를 비웠다.
“세상에……. 지구는 어떤 세상이기에 이런 음식이 있는 거지? 정말 미쳤군.”
소금구이 꼬치를 씹어 대던 송강한은 그런 디오니소스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이 정도로 놀라다니. 시작도 안 한 거야.”
“저, 정말인가?”
송강한은 입안에 퍼지는 육즙을 음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리액션이 좋은 디오니소스를 보고 괜히 뿌듯해졌다. 오랜만의 요리라서 그런지 손이 근질근질해진 도현은 매운 양념이 발린 꼬치를 단숨에 비우며 입가심으로 맥주를 원샷하고 벌떡 일어났다.
“더 맛있는 걸 만들어 주지.”
송강한은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가는 도현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저놈이 요리에 취미를 붙일지 누가 알았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꼬치를 비우는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꼬치를 씹어 꿀꺽 삼킨 그는 디오니소스에게 물었다.
“지구에 처음은 아닐 테고?”
송강한은 디오니소스가 이름을 밝히고 난 뒤부터 쭉 생각했던 부분을 말했다. 묻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디오니소스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 웃었다.
“아직 이야기가 남아 있나?”
“지어낸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뭐 지금 보면 썩 그런 것 같진 않아서.”
디오니소스는 다시 맥주를 비우고 탄성을 내지르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황당한 이야기이긴 하지. 꽤 시간이 지났을 텐데도 충격적인가 보군.”
“그건 그렇지. 사람들이 말하길 인류 최초의 막장 스토리라던가?”
“막장?”
“최소한 인간은 부모와 자식 간에 잠자리를 갖지 않지. 그건 형제도 마찬가지고.”
“하하, 하긴 그럴 만하지. 사실은 말이야-”
매운 꼬치를 쥔 그는 고기 한 덩이를 물어 씹었다. 불을 입에 넣고 씹은 듯 화끈한 열감이 오르며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를 이어 오는 달콤한 맛에 온몸이 노곤노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거기에 씹으면 씹을수록 터지는 육즙과 고기의 향이 감칠맛을 더했다. 희롱이라 해도 될 정도의 감정과 맛의 향연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았다.
입가심으로 다시 맥주를 원샷한 디오니소스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송강한을 보며 무슨 말을 했었는지 떠올렸다. 음식 때문에 상황까지 잊다니. 실소가 절로 나왔다.
“내 차원의 왕, 제우스가 만든 이야기야.”
“이유를 모르겠는데?”
“이미 많은 이야기가 퍼진 상태였거든. 거기서 살아남을 이야기가 필요했던 거지.”
송강한은 정말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왜?”
“당연한 거 아닌가? 신이란 건 피조물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신이라 할 수 있으니까. 그때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차원이기도 했고.”
“하하…….”
“그래서 누가 들어도 강하게 기억될 이야기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의 시작을 흩트렸어. 그래야 함께 거론될 거고, 사실일지 거짓일지 혼동될 테니까.”
송강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치곤 너무 급작스럽게 사라진 거 아닌가?”
“휴가가 끝났거든.”
어이없게 쳐다보자 디오니소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마침 주방에서 고소한 향이 풍겼다. 도현이 세숫대야를 연상케 하는 그릇 3개와 수저, 반찬을 허공에 띄운 채 거실로 왔다.
송강한은 거실을 가득 채우는 음식 냄새에 반색했다.
“이거, 라면 아냐? 캬, 진짜 오랜만에 먹네.”
디오니소스가 군침을 꼴깍 삼키며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라면?”
꼬치가 한쪽으로 치워지고 라면이 담긴 그릇과 수저, 반찬이 놓였다. 예전 같았다면 대충 반찬 통을 내려놨겠지만, 오늘은 반찬을 개인별로 내어 왔다. 송강한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디오니소스는 그 상황을 쭉 지켜보다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자신의 식기만 달랐기 때문이다.
도현이 피식 웃었다.
“젓가락은 처음 볼 거 아냐?”
그렇긴 했다. 하지만 수긍하고 싶지는 않았다.
신이 자존심이 있지.
이런 데서 세울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게 라면이라는 음식이라고?”
송강한은 이미 그릇째 들고 흡입하는 중이었다.
풍기는 냄새와 그 소리가 어우러져 무척 자극적이었다.
도현도 라면을 한입 크게 우물거리며 푹 익은 총각김치를 한 입 와작 깨물었다. 시큰한 신맛에 아삭아삭한 식감까지. 진한 라면 국물에 면발이 어우러지니 그 어떤 요리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카우엑스 고기를 듬뿍 넣은 곰탕 국물이니까.
둘은 그렇게 라면에 심취해 디오니소스의 말을 듣지 못했다. 딱히 대답할 말이 아니기도 했고.
몸이 달아오른 디오니소스는 라면 그릇을 왼손에, 포크를 오른손에 들어 면발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
모두 그릇을 비우기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맛있게 먹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테이블 위에는 후식인 과일이 올라왔고 디오니소스는 소파에 늘어져 불룩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있을 줄이야. 내가 술의 신인 게 처음으로 후회되는군.”
비슷한 자세로 소파 하나를 차지한 송강한은 낄낄 웃었다.
“후회까지야. 함께 즐기면 되지.”
“후후,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들게 했던 귀여운 영물이 있었지.”
혼자 정상인 도현은 상큼한 사과를 씹으며 물었다.
“영물?”
“버려질 걸 알고 데려가려 했지만, 퇴짜 맞았어. 영물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강하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건 그렇고.”
디오니소스가 도현을 빤히 보며 요구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해 주겠나?”
“전부?”
“그게 좋겠군.”
분위기가 자못 진지해졌다. 도현은 오랜만에 기억을 더듬었다. 지구의 시간으로 5개월, 농장의 시간으로 2년 하고도 1개월.
신이 된 뒤로 시간에 연연해 뭔가 변하거나 잊어버리는 건 아니지만,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체감상 10년은 흐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할까.
“그러니까-”
살짝 운을 뗐을 때,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조용한 거실이 시끌벅적해졌다.
“아빠! 토토 왓써! 배고파! 우리 이오르 삼촌한테 가자!”
“도련님, 소인도 왔슴다요! 식사… 앗, 손님이 계셨슴까요?”
“아저씨, 저 왔어요.”
토토와 모르달, 그리고 붉은색의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순간 디오니소스가 딱딱하게 굳었다.
도현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토토와 모르달을 쓰다듬어 준 뒤, 어색하게 소파 뒤에 선 여자를 향해 물었다.
“오늘은 좀 어때?”
“재미있었어요.”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협회에 앉아서 헌터들 뒤치다꺼리하는 게?”
“뒤치다꺼리라뇨. 이런저런 얘기 들으면 얼마나 재밌는데요.”
“뭐… 질리면 말해. 일은 많으니까.”
“네, 그럴게요.”
“다른 건 없고?”
그녀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송강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학교 영상이 떴어요.”
그제야 강의실 소동이 기억난 도현은 입맛을 다셨다.
“팬클럽?”
“그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고 도식이 삼촌이…….”
“알았어. 나중에 갈 거라고 전해 줘.”
“네.”
“오늘은 토토랑 모르달 데리고 저녁 좀 같이 먹어. 손님 때문에.”
“네.”
토토가 도현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칭얼댔다.
“아빠, 가치 가자아! 오늘 이오르 삼촌이 마싯는 거 해 준댓써!”
“손님 있잖아. 맛있게 먹고 와서 이야기해 줘. 다음에 같이 가서 먹자.”
“히잉, 그래두…….”
등을 토닥이며 말해도 떨어질 생각이 없자 모르달이 아공간에서 쿠폰을 꺼내 들었다.
“후후후, 토토 님, 이게 보이심까요?”
“앗! 아이스크림!”
“지금 빨리 가지 않으면 아이스크림 가게가 문 닫을지도 모름다요!”
“안 대! 안 대! 빨리 가자, 모르달! 아빠! 가따 오께!”
도현은 애정이 듬뿍 담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래. 과식해서 체하지 말고.”
“응응!”
“도련님, 다녀오겠슴다요!”
“아저씨, 가 볼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
그렇게 폭풍이 지나가고, 잠깐 시끄러웠던 탓인지 거실에 내려앉은 적막감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송강한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이해도 못하겠고.”
도현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디오니소스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침음했다.
“어떻게 모르달과 제브라드가 여기 있는 거지?”
“모르달은 이전에 방문자로 받았지. 제브라드는 영혼만 남았어. 기억이 전혀 없지.”
도현은 제브라드와의 마지막 전투를 회상했다.
그녀가 사라지며 남겼던 붉은 보석. 농장에 돌아와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게 지금의 박새롬이라는 여자 인간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능력도 공감이라는 것 하나밖에.
대신 지구의 헌터 협회에서 헌터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담을 한 헌터들은 직업병이라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극복해 냈다.
입소문이 돌면서 각국의 헌터들이 몰려오게 되었고, 요즘에는 정말 심각한 이들이 아니면 그날 선착순으로만 상담한다고.
이야기를 들은 디오니소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신의 왕이 될지도 모른다던 그녀의 말로라기엔 참으로 허무하군…….”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 거겠지.”
디오니소스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도현이 물었다.
“얘기 안 듣고 가려고?”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편할 대로.”
“좀 둘러보다 가도 될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만 안 치면 괜찮아.”
“고맙군. 다음에 또 오지.”
씩 웃은 디오니소스는 그렇게 사라졌다.
송강한이 천장을 보며 탄식했다.
“저대로 둬도 괜찮냐?”
“뭐가?”
“뻔하잖아. 그년 보러 가는 거.”
“짝사랑이라도 했나 보지.”
“참, 너도 대단하다. 아니, 그냥 속이 없다, 없어.”
도현은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썼다.
말을 말아야지, 라고 중얼거리던 송강한은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에놀드와 민혁이 반쯤 뜬 눈으로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에놀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주먹으로 꾹꾹 눌러 대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뭔 일 있었냐? 술을 마신 것 같은데 기억이 없어.”
민혁은 소파 팔걸이에 널린 오징어처럼 늘어져 중얼거렸다.
“소… 속이 안 좋아……. 해, 해장…….”
송강한이 혀를 찼다.
“드라마에서 왜 엄마들이 아들 등짝을 때리는지 알겠다.”
도현이 몸을 일으켰다.
“재료는 남았으니까, 칼칼한 라면 괜찮지?”
둘은 반색했다. 그 모습이 퀭해 좀비 같아 보였지만 말이다.
에놀드가 외쳤다.
“엄마, 콩나물 팍팍 넣어서!”
민혁이 덩달아 덧붙였다.
“청양 고추도 팍팍!”
도현이 눈을 번뜩였다.
“이것들이? 먹고 죽어 봐라.”
아침에 학교 가기 전 따 놨던 ‘초죽음 콩고추’를 한 움큼 쥐어 사골 육수에 때려 넣었다.
에놀드와 민혁은 극찬하며 라면을 먹었고, 밥까지 말아 먹고 정신을 번쩍 차렸지만, 위를 쥐어짜는 고통 속에 3일간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오니소스의 ‘다음에 오지.’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신 디오니소스의 건의를 동반자 최초의 탄생이 수용합니다!]
[‘방문자 II’가 시작됩니다!]
[차원의 왕들과 친목을 다져 보세요!]
[어마어마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현은 농장에서 진행된 팬 미팅 중 눈앞에 뜬 시스템 창을 보고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일이 신밍아웃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