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91화 (190/200)

# 191

191. 농장 계획 (1)

아바가 등장하자 탄성이 줄을 이었다. 남자 헌터들은 민혁을 부러워했고, 여자 헌터들은 아바를 보며 부러워했다. 각기 다른 사람을 보고 그런 감정을 느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모두가 하지현의 말에 깊이 수긍했다는 것이었다.

오기 전 상황을 몰랐던 아바는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별일 아니야.”

도현의 말에 욱한 하지현이 한마디 하려 했지만, 이어진 도현의 시선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고 예뻐지기 위해 신이 되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도현은 빨리 이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현만 욕심을 낸 거라면 대충 모른 척 무시해도 되겠지만, 그 한마디로 엄마와 아빠, 작은엄마, 그리고 휴가를 즐기러 온 헌터들까지 은근슬쩍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엄마한테도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니까…….’

블랙홀 랜드가 중국인까지 받아들이면서 몇 배나 빠르게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엄마의 능력이 어디까지 받쳐 줄지 모르겠지만, 선택권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정리를 한 번 하긴 해야 했다.

‘어차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니까, 이 정도의 서비스는 해 줘야겠지.’

여기 모인 이들은 앞으로 지구와 농장에서 핵심 멤버로 움직여야 했다. 다른 차원까지 생각하면 차츰 더 인원이 늘어날지 몰라도 줄지는 않을 거고, 그만큼 이 멤버들은 고되고 중요한 업무를 맡아야 할 거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채찍이 아닌 당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현은 말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눈처럼 새하얀 빛무리가 폭죽처럼 터지며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고, 독에 중독당할 일 없고, 다치더라도 웬만한 상처가 빨리 회복되는, 늘 활력이 가득하길 바라는 신의 축복이었다.

“신의 축복?”

“쩌, 쩐다……! 버프 내용 좀 봐!”

“평생?”

“꺄- 내 피부 좀 봐! 완전 애기 피부야!”

“와, 흉터도 사라졌어!”

헌터들의 즐거운 비명에 불만이 가라앉을 무렵, 아바가 잊고 있던 걸 떠올린 듯 외쳤다.

“도현 님, 잠시만요! 안에 있는 헌터들도 불러올게요! 축복 꼭 해 주셔야 해요!”

그 말만 남기고 로타네프의 숨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제야 타이탄 훈련 중에 에놀드와 민혁, 강한을 데리고 나왔다는 걸 떠올린 도현도 얼굴을 굳혔다.

“속에… 설마 이 고래 배 속?”

“여기 모인 헌터 말고 또 헌터가 있었다고?”

그런 의혹의 시선들이 도현에게 몰리자, 불안감을 느낀 에놀드가 도현에게 물었다.

“설마, 훈련 중인 애들… 말 안 한 거야?”

말만 던졌고 알아서 훈련에 들어간 이들이었기에 완전히 잊어버렸던 도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변명처럼 말했다.

“어차피 텔레포트 마법진 있을 테니까…….”

“그거 아직 없는데.”

민혁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해 보려고 했는데, 재우가 5서클이다 보니. 최소 6서클은 돼야 하겠다던데……?”

“…….”

강한이 에놀드와 민혁에게 물었다.

“그러면 헌터들 숙식은?”

평소에는 정해진 시간 안에 훈련을 끝내고 돌아갔기에 에놀드도 몰랐던 탓에 시선이 민혁에게 다시 몰렸다.

“인벤토리나 공간이 새겨진 가방을 들고 다니긴 하던데…….”

이 훈련에 대해 알고 있는 차도식이 물었다.

“포탈! 포탈로 오갈 수 있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에놀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 훈련 기수들은 블랙홀 랜드에서 온 헌터들이라서 제가 이동을 시켰기 때문에…….”

“차라리 재우라도 있었으면 걱정 안 해도 됐을 텐데.”

민혁이 우울하게 탄식했다.

재우는 마법진을 못 그린다는 충격에 제 발로 이오르를 찾아가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상태였다.

나머지 프로페셔널 팀 3명은 최근 땅을 되찾은 나라와 도현이 워프를 없앤 유럽 쪽에 출장 중이었다.

“뭐, 곧 올라올 테니 보면 알겠지.”

도현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임혜정과 우대성이 쯧쯧 혀를 찼다.

“저러다 인심 잃어 봐야 정신 차리지.”

“아들아, 갑질하다 골로 간다. 있을 때 잘해.”

오히려 차도식이 크게 움찔했다. 하지현은 그런 차도식과 뚱한 도현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헌터들은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런 큰 세계의 주인이자, 헌터들의 정점이라는 우도현도 부모님 앞에서는 자신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리고 그때, 로타네프의 배 속에 들어갔던 아바가 8명의 헌터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걱정했던 것 이상으로 헌터들은 좀비가 되어 있었다. 씻지 못했거나 옷을 못 갈아입은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아바의 권속이 된 맷 딜런만 쌩쌩했다.

답을 묻는 시선이 아바에게 몰리자 맷 딜런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정당한 대련으로 식사를 했을 뿐입니다.”

언어는 영어였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어로 들렸다.

제브라드 차원이 농장과 동화되면서부터 언어의 장벽이 사라진 걸 처음 알게 된 헌터들은 놀랐지만, 이미 알고 있는 김경희는 한 단어에 꽂혔다.

“식사?”

아바가 간단하게 답했다.

“피요.”

“설마 그 피?”

에놀드가 되묻자 아바가 고개를 끄덕였고.

흠칫!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자, 자기는 안 먹잖아?”

민혁이 당황했고, 아바는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맷 딜런에게 눈을 흘겼다.

“아직 약해 빠져서.”

불편한 헛기침이 여기저기 울려 퍼졌다. 특히 헌터들은 저 외국인이 얼마나 강한지 피부를 찌르는 힘에 감탄까지 흘리고 있었으니까.

도현은 차원 담당팀과 차 부부, 자신의 부모님과 작은엄마에게 차례로 시선을 두며 말했다.

“다들 알아서 휴가 즐기고, 여기 모인 이들은 잠시 회의 좀 하죠.”

“처남님, 회의에 조금 늦어도 되겠습니까?”

“왜 그러세요, 매부?”

“으음, 사실 헌터들을 데려온 이유가 타이탄 훈련을 좀 할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타이탄을 분석할 수 있으면 생산도 해 보려고 했고요.”

그 말에 김경희가 눈에 보일 정도로 경기를 일으켰다.

“아니, 형님! 휴가라고요, 휴가! 직장인도 쉬는 날은 휴대폰도 꺼두는 판국에 훈련이라니요? 난 못해요! 아니, 안 해! 절대 안 해!”

그건 주말 없는 직장인의 처절한 절규 같았다.

안쓰러운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이번 원정 헌팅 때도 모두가 고생했지만, 그 배로 고생한 게 모두를 이끌었던 김경희였으니까.

그 고생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차도식도 금방이라도 터지려는 하지현의 서늘한 시선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도현은 차도식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김경희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음, 찌롱이는 이해보단 매부의 탈선(?)만 잡히면 잠잠해질 테고.

어쩔 수 없나.

도현은 조용히 차도식에게 생각을 보냈다.

-쉴 때는 쉬게 두세요. 아까 봤잖아요. 인심에 갑질이라고 탈탈 터시던 거.

김경희를 보고 인상을 쓰고 있던 차도식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회의 끝나고 저랑 마계 가시죠. 꽤 재미있을 거예요.

차도식은 낮게 한숨을 쉬더니 미안한 얼굴로 김경희한테 말했다.

“희야, 내 생각이 짧았다. 그래, 휴가는 쉬어야 휴가지. 편히 쉬고 있어.”

어른처럼 씨익 웃어 주고 등을 돌려 불만 가득한 하지현을 챙겼다.

그렇게 먼저 휴양지의 펜션으로 들어가는 차 부부 뒤로 한숨을 내쉬는 헌터들을 본 도현은 방금 타이탄 훈련지에서 올라온 헌터 7명과 맷 딜런에게도 축복을 내려 주었고, 그러자 좀비 같았던 모습은 금세 건강하게 돌아왔다.

왼쪽에는 부모님, 오른쪽에는 작은엄마, 뒤쪽에는 아바와 차원 담당팀을 거느리고 펜션을 향해 걸었다.

“아들, 로타네프 배 속에 뭐가 있는 거니?”

“아빠도 궁금하다. 타이탄이라던데, 정말 그 로봇 같은 그런 거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 오는 임혜정과 우대성의 얼굴을 보자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같이 눈이 초롱초롱했으니까. 물론 말은 없었지만 하미인도 비슷한 눈으로 귀를 열고 있었다.

“응. 안 그래도 휴가 끝나면 보여 주려고 했어.”

“아들, 그러면 생산 가능한 거야? 여기저기 적용하면 정말 편할 것 같은데.”

임혜정은 로봇이라는 말에 머리가 팽팽 돌아가더니 벌써 상용화하여 블랙홀 랜드의 모습을 새로 그려 낸 듯했다.

그에 비해 우대성은 그저 순수하게 타이탄의 존재에 대해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지켜보기만 하던 하미인이 말했다.

“아무래도 농장 쪽은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까 타이탄이라는 로봇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인력 동원 안 해도 되고… 힘쓰는 일도 부담 없이 시키고. 음, 프로그램 입력이 되니?”

도현 대신 에놀드가 그 말에 대답했다.

“그런 부분이라면 타이탄보다는 골렘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골렘?”

거기까지 들은 도현은 인어족을 떠올렸다.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음에도 도현을 위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현재 블랙홀 랜드를 도우며 농장까지 돌보고 있었다.

차원이 동화되고 커지면서 다양한 인종이 농장에 자리 잡았지만, 역시나 농장의 인력은 인어족이 전부였다.

‘농장부터 손봐야겠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농장 세계에 숨어 사는 다른 이종족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바로 이해되었다.

도현이 생각에 빠진 사이, 에놀드가 골렘이 무엇인지 설명하면 아흐라나가 옆에서 설명을 보충했다.

경청하는 아바와 송강한,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은 귀를 열고 있는 민혁과 임혜정과 우대성, 하미인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계획을 짜고 있었다.

도현은 조용히 8명을 지켜보았다. 한편으로는 어색하면서도 모두가 발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생각보다 보기 좋았다.

“결론은 만들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거군. 마법이 그렇게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도 시간만 들이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지 우대성의 눈빛은 더욱더 반짝였다.

에놀드가 말했다.

“그 부분은 헤나지그 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마법 공학자들을 양성하는 데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하실 겁니다.”

송강한도 의욕에 차올랐다.

“나도 마법 공부를 해 봐야겠어. 접목하면 재밌는 걸 꽤 만들 수 있겠는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분위기가 돌자, 도현은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우선은 시간이 걸리니까, 농장에서 놀고 있는 이들을 굴려도 되지 않겠어?”

“놀고 있는 이들?”

농장의 책임자 위치에 있는 하미인이 관심을 가졌다.

“인어족처럼 지성체들이 있어요. 시간도 흘렀으니 농장에 적응은 했을 테고, 밥값은 해야죠.”

눈치 빠른 에놀드가 물었다.

“묘족?”

“말고도 흩어진 드워프도 있고,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자는 드래곤들도.”

“…드래곤?”

농장에 넘어오자마자 구경할 시간도 없이 일에 쫓긴 송강한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아는 게 나오자 민혁이 드디어 말할 기회를 얻었다.

“아, 강한이는 아직 못 봤구나? 다음에 같이 가자. 이오르 님 소개시켜 줄게.”

“아, 말 나온 김에 다 불러야겠다.”

가볍게 시작하려 했던 도현은 불러야 할 이들이 더 된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말없이 불러들여 한 소리 하겠지만, 나중에 따로 모으는 것보단 한 번에 끝내는 게 낫겠다는 귀찮음이 가득한 생각 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펜션 앞에 도착한 8명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동시에 도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곧 빛무리가 사람 형상을 만들어 내며 눈에 익은 이들을 뱉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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