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82화 (181/200)

# 182

182. 시험 (1)

농장 중심부에 도착하자마자 아바는 먼저 가 보겠다는 말과 함께 맷 딜런을 쥐고 사라졌다.

도현은 농장을 보고 넋을 잃은 송강한을 데리고 세계수 옆 자신의 집에 들어갔다.

“어? 아빠다! 아빠아-!”

“엥? 도련님, 벌써 오심까요? 설마, 깽판 치고 외눈박이를 벌써 족치셨, 쿠엑?”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먼저 나가 버렸다.

바닥에 처박혔던 모르달은 벌떡 일어나 헤헤, 웃었다. 도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다리에 달라붙은 토토를 떼 꼭 안아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어 모르달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둘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이야기 좀 할 거니까, 나가서 놀아.”

“웅, 아빠! 세게수 재밋써! 세게수, 놀께!”

“도련님, 음료라도 내어 올깜쑈?”

“아니, 알아서 먹을 테니까 나가 봐.”

겨우 둘을 보내고서야 도현과 송강한은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아, 이제 좀 살겠네.”

옷가지처럼 소파에 널브러진 도현을 보던 송강한은 변함없는 친우의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멍하니 천장을 보던 도현은 시선을 돌려 송강한에게 물었다.

“어디 있었어?”

“너처럼 차원 여행?”

“제브라드가 그러든?”

“제브라드?”

“치에샤.”

“아, 뭐 대충.”

제브라드가 그렇게 입 싼 놈인가 생각하던 도현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인벤토리에서 캔 맥주를 꺼내 송강한에게 던지고 제 캔의 뚜껑을 땄다.

치- 익!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캔을 다 비우고서야 대화를 이었다.

“너랑 이렇게 마시는 거 참 오랜만이다. 진짜 맛 좋네.”

흐뭇하게 웃는 송강한을 보며 도현이 픽 웃었다.

“실없긴.”

“실없다니. 야, 내가 이렇게 너랑 같이 한잔하려고 15년이나 걸려서 돌아왔어, 인마!”

“오래도 있었네. 안 지겹든?”

거실의 큰 창밖을 보며 평행 차원의 기억을 떠올리던 송강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죽어라 개고생만 하다가 왔다.”

“어디였기에?”

“평행 차원의 지구.”

도현이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런 곳도 있어?”

“어. 너도 희한한 세상에 있다가 온 거 아니냐? 뭘 새삼스럽게 놀라?”

“하긴……. 그럼 신 놈들은? 다 죽였어?”

“10년. 딱 10년 걸렸지. 그리고 뒷정리한다고 5년이나 또 발목 잡혔어. 이럴 줄 알았으면 잡자마자 그냥 튀는 건데!”

“오지라퍼 송강한이 무슨.”

둘은 다시 낄낄 웃었다. 송강한이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 신은 하나였다.”

“하나?”

“휴레가크 하나였다고. 그리고 상황도 거기랑 여긴 완전히 달랐어. 아무래도 네가 변수인 것 같다.”

“흠, 내가 변수라……. 뭐, 그럴지도.”

“알고 있어?”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지. 이 뭣 같은 상황을 설계한 ‘분’께 직접 들은 이야기이니까.”

“어어? 제대로 말해 봐!”

인벤토리에서 다시 캔 맥주를 꺼낸 도현은 예전, 헌터들과 부모님을 모시고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이 짓도 몇 번 했다고 익숙해진 탓인지 알아서 적당히 걸러 이야기를 하자 30분이 채 안 걸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몇 번이고 다시 묻고 대답하느라 시간이 다 갔을 테지만, 머리 하나는 비상하다고 할 정도로 좋은 송강한은 정말 빠르게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하… 진짜 그년의 머리카락을 자를 게 아니라 목을 잘랐어야 했는데.”

“왠지 머리가 짧더라니.”

“이 멍청한 도행아! 내가 아주 속이 터진다, 터져!”

성격은 더러운데 무디긴 또 더럽게 무딘 도현을 비꼬다 송강한이 붙인 별명이었다.

길 도(道)에 행할 행(行). 스님처럼 ‘길을 닦는다’라는 뜻을 부여하긴 했지만, 실은 ‘도행’이라 부르면 뭔가 맹하고 멍청해 보이는 도현의 행동과 맞아떨어진 이유가 컸다.

이번엔 도현의 입가가 씁쓸해졌다.

“그래도 나 몰라라 하는 것보단 낫잖아. 고생했다니까 안쓰럽더라.”

“미쳤군, 미쳤어. 500년 썩더니 정말 도를 닦았어. 너 등선 언제 하냐? 등선 못하는 게 이상하다!”

“등선?”

“신 말이야, 신! 그 정도 도를 닦았으면…….”

“이미 신인데?”

도현이 히죽 웃었다. 송강한이 잠깐 돌이 되었다 돌아오며 고개를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설마 여기……?”

“어.”

송강한은 도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야, 이 미친놈아! 할 짓이 없어 신이 되냐? 차라리 깽판을 쳐! 깽판을 치라고오-!”

한참 킬킬 웃던 도현은 송강한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자 다시 말했다.

“외눈박이만 정리하면 돼. 그럼 이 짓도 끝이야.”

“설마… 신도 그만둘 수 있어?”

“대충. 그건 그렇고.”

장난스럽게 빛나던 도현의 눈에 불이 번쩍였다.

“외눈박이 떴을 때 추적해 봤어?”

“당연하지. 내가 누구냐? 이미 평행 차원…….”

“본론만 하자, 본론만.”

“아, 새끼. 진짜 본론성애자도 아니고. 아무튼 그년이 말한 거기가 맞더라.”

“어디?”

“라스베이거스.”

“오- 좀 하는데? 참고 받아 주길 잘했네.”

도현이 엄지를 치켜드는데 송강한은 얼굴을 작게 찌푸렸다.

“그런데 뭔가 좀 찜찜해.”

“왜?”

“착착 들어맞는다고 할까. 퍼즐처럼? 블록 쌓기처럼? 좀 전에 대통령 일도 그랬잖아.”

농장을 넘어오기 전 겪은 일이 떠오르자 도현도 인상이 찌푸려졌다.

“됐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지. 대가리 내밀 건더기라도 있을 테니까.”

“도현아, 그놈은 그렇게 쉽게 머리 들이밀지 않는 놈이야. 자기가 이겼다는 확신이 있거나, 정말 안전하다고 생각이 들어야 나타날 놈이라고.”

“그럼 그렇게 믿게 만들면 되겠네.”

간단하게 결론을 내 버리자 송강한이 반색했다.

“어떻게?”

도현이 송강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군사, 부탁한다.”

“어……? 어어어?”

***

도현은 다시 제 목을 잡고 털려는 송강한을 잡아 로타네프의 배 속으로 텔레포트했다.

“어? 빨리 왔네?”

대련을 빙자해 타이탄을 구타하던 에놀드가 도현을 반겼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헌터들이 널브러졌던 몸을 발딱 일으켜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우도현 님!”

“어서 오십시오, 우도현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도현 님!”

주변엔 뚜껑이 열린 타이탄이 즐비했다. 처음 봤을 때의 매끈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깡통이라 해도 될 만큼 찌그러진 게 훈련이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에놀드는 도현이 끌고 온 송강한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내 X알친구. 쓸 만해. 외눈박이를 뽑아낼 군사지.”

“오호~”

에놀드의 눈이 모처럼 반짝였다. 씩 웃은 도현이 덧붙였다.

“그리고 강해.”

“얼마나?”

“일단 너보단.”

“오호!”

에놀드의 눈이 번쩍였다. 주먹을 꼬나 쥐는 모습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송강한은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에놀드에게 가 손을 내밀었다.

“송강한이라 합니다.”

“에놀드 아드노타입니다. 도현의 친구이면서 우도현교 두 번째 대신관을 맡고 있습니다.”

순간 송강한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큽, 아, 죄송. 진짜 신교 이름이… 푸큽……! 친구의 친구는 친구 아니겠습니까, 친구끼리 말 편하게 합시다.”

“오, 시원해서 좋네. 근데 신교 우습게 보면 너 다친다?”

에놀드가 송강한을 빤히 봤다. 송강한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웃었다.

“안 그래도 도현이 다 해 먹어서 몸이 찌뿌듯했었는데.”

그때, 허둥지둥 타이탄에서 내려온 민혁이 양팔을 벌리고 송강한을 향해 달려왔다.

“송강한! 너 이 자식! 살아 있었냐? 살아 있었으면 당장 왔어야지!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야아-!”

“어. 민혁아, 좀 이따 인사하자. 한판 뛰고.”

“어……? 야, 너 다쳐! 에놀드 진짜 세다고!”

“나도 안 지거든?”

당황한 민혁은 지켜보고만 있는 도현에게 말했다.

“도현아, 좀 말려 봐!”

“왜?”

“어? 왜… 라니?”

차마 개쪽 당할까 봐서 그런다고는 못했다.

에놀드가 도현에게 물었다.

“신성 마나 써도 되지?”

“어, 맘껏.”

우도현교가 정식으로 신교가 되고 신성 마나가 너무 강해진 이후로 에놀드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건 이오르밖에 없었다.

그런 이오르도 에놀드와 대련하고 나면 삭신이 쑤신다며 기피하자 겨우 욕구를 채운다는 게 지금의 타이탄 훈련 정도였다.

그런 욕구 불만인 상태에서 상대자를 만났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나.

송강한도 가만있지 않았다.

“쓸 수 있는 건 다 써 봐. 나도 안 봐준다고.”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쉬던 헌터들도 눈을 빛냈다. 보기 드문 강자들의 싸움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될 거다.

오직 민혁만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도현 옆에 가서 털썩 주저앉은 민혁은 세상사 득도한 노인처럼 허허, 웃었다.

“음, 둘이 그냥 부딪치면 로타네프가 아플 테니 강화 좀 시켜야겠네.”

도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로타네프의 배 속이 반짝였다가 제 색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도현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잘 놀아. 난 할 일 있어서 가 볼게.”

“어? 어디 가?”

“그래, 나중에 보자!”

“저녁에 한잔하자!”

차례대로 민혁과 송강한, 에놀드의 인사를 받고 도현은 사라졌다.

푸른 물만 넘실대는 바다 한복판. 허공을 딛고 선 도현은 바다를 보고 말했다.

“아흐라나 있어?”

「지배자를 뵙습니다.」

바다에 있을 줄 알았던 아흐라나는 도현의 예상을 깨고 하늘에서 얼굴을 쑥 내밀었다.

동양 판타지에서 잘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용처럼 푸른 비늘과 머리에는 가지처럼 뻗은 2개의 뿔이 신비한 힘을 은은하게 뿜어 댔고, 길게 뻗은 수염이 무척 장엄하게 보였다.

여의주가 없는 게 아쉬울 줄이야.

물론 몸집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날개도 달려 있긴 했다.

그 옵션 대신 여의주를 물고 있었다면 완벽(?)했을 거라는 생각에 도현은 입맛을 쩝 다셨다.

「저는 맛이 없습니다만.」

콧김을 푸훅, 뿜으며 웃는 게 농담이라고 한 것 같았지만, 도현은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아흐라나가 말을 돌렸다.

「지배자이시여,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별건 아니고, 저번에도 그렇고 이야기 좀 할까 싶어서.”

여유가 있어도, 없어도 아흐라나를 만날 일이 없다시피 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도현은 미국 둘러보기가 예상보다 빨리 끝나자 이참에 작정하고 왔다.

「타시죠.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도현은 아흐라나의 뿔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아흐라나는 물결치듯 구름 사이를 누비며 빠르게 날기 시작했다.

마치 뿌연 안개의 바다를 헤엄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저 먼 곳에는 산봉우리가 희미하게 보이며 절로 탄성이 흐르는 묘한 경치를 만들어 냈다.

‘어? 아흐라나가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몬스터 토벌 때 타고 다녀도 되겠는데?’

언제까지 톱 헌터들만 움직일 순 없었다. 그 아래 2순위든, 3순위든 이동 수단이 필요한 상태. 아흐라나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안전 하나만큼은 완벽할 거다.

그 생각을 읽은 듯 아흐라나가 낮게 진동했다.

「지배자이시여, 저는 이 세계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제브라드 차원 애들만 그런 게 아니라?”

「저도 이 세계에 뿌리를 내린 나무와 같습니다.」

“아하.”

그사이 구름이 멀어졌다. 바다와 같은 새파란 하늘 위로 오를수록 아래, 농장 세상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지도 못했네.”

그랬다. 딱히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농장은 도현에게 있어 필요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종합 인벤토리 확장 개념 정도였을까?

이대로 더 날아오른다면 우주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을 때, 빠르게 가까워지는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곳입니다.」

도현이 착지하자마자 아흐라나의 몸이 작아지더니 청록색의 짧은 머리를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사람이라 하기엔 2개의 뿔이 그대로 남아 영물이 사람 모습을 한 느낌이었다.

“그런 모습을 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농장으로 오지 그랬어?”

할 이야기가 있었다면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던 도현이었다.

아흐라나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앞장섰다.

큰 섬은 아니었다. 일반 성인이 걸어도 20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갈 거리. 잔디로만 이루어진 섬 중앙에 옹달샘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이 세상의 중심, 그리고 신의 안배입니다.”

“신의 안배?”

도현의 인상이 구겨졌다.

농장의 시작은 그저 제브라드가 던져 준 보상의 개념이었다. 제브라드도 그저 포상이라고만 했는데.

무슨 일을 얼마나 했기에 차원이 포상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제브라드도 농장이 차원일 줄은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

뒤통수를 벅벅 긁던 도현은 아흐라나에게 물었다.

“이야기하려고 온 것 같진 않고, 여기 온 이유는?”

아흐라나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도현을 응시했다.

“지배자이시여, 당신은 진정한 신이 되실 생각이 있습니까?”

“진정한 신?”

농장이라는 이 차원의 주인은 엄연히 도현이다. 보상을 받은 이후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인데, 갑자기 이렇게 언급한다는 건?

“제가 당신을 신이 아닌 ‘지배자’라 부르지 않습니까?”

“다르다?”

아흐라나는 옹달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은 정해지지 않은 차원. 무(無)에서 시작되었으며 유(有)가 창조된 세계를 이루는 근간.”

어… 이거……?

도현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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