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60화 (159/200)

# 160

160. 준동 (3)

아야세 하루카는 정신이 멍했다.

‘아니, 이게… 현실이지? 현실 맞지?’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앉은 곳이 의자가 아니었다면 자연스럽게 무릎까지 접어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쟤 왜 저래? 완전 방구석 폐인 여자 보바인데?”

그녀는 이오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움찔했다. 그저 말을 한 건데, 그 어떤 악기로 연주한 것보다 더 아름다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단지 그 속에 내재된 어이없음과 짜증에 몸이 바르르 떨렸다.

거기에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흘러나오는 언어는 한국어…….

‘외국인이 외국어… 아니, 이게 아니……!’

아야세 하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동시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만약 시간을 7일 전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녀는 지체 없이 시간을 돌렸을 거다.

자신의 신 훼르타가 허무하게 죽고 사고가 정지했을 때, 신이란 존재를 아는 단 한 사람 우도현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공식 친위대였던 헌터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한국으로 향했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줄 알았던 우도현의 무감정한 시선에 현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다시 본국에 돌아온 뒤 그녀의 대변인이자 손발이 되어 주었던 회사는 이사들에 의해 찢겨 나갔고, 그녀에게 남은 건 혼자 쓰기 벅찰 정도의 큰 저택과 사용인, 허울만 남은 헌터 아야세 하루카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연락이 왔다.

‘몇 사람 보낼 테니 편의 좀 봐줘.’

우도현이었다.

말투는 부탁에 가까웠지만, 그녀 입장에서 듣기에는 명령과도 같았다.

가타부타 설명은 없었지만,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꼽자면 당연하게도.

‘워프 브레이크겠지…….’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지만 아야세 하루카는 그래도 좋았다.

‘헛물을 들이켜는 걸까?’

괜한 기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그녀는 이미 모든 게 해결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동시에 헌터 집단인 ‘구미(組)’라는 게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그만큼 우도현이란 이름의 가치가 자국의 약 7만 명이란 헌터보다 더 값졌으니까.

‘그의 지인이라면 얼마나 강한 거지?’

연락을 받자마자 우도현의 행적을 조사했고, 그가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저지른 사건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들처럼 이 기회에 자국의 워프가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 최소한 자신의 신 훼르타의 유언도 지킬 테고, 더는 죄의식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죽는다고 해도 괜찮아.’

삶의 의미였다.

신 훼르타를 대변함과 동시에 모시는 ‘무녀’인 그녀다운 생각이었다.

아야세 하루카는 신 훼르타의 축복으로 강해진 헌터였다.

감화라는 능력으로 그녀 아래 헌터들이 모여들었고, 그녀는 수장이 되었다.

그들이 보여 주는 무한한 신뢰와 그녀를 모시며 아랫것을 자처하는 그들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자신이 일구었다기보다 신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니까.

그 사실 중 하나가 그녀의 외로움이었다.

모두가 칭송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처럼 가족처럼 그녀를 대하지 않았으니까.

집에서도, 헌팅을 할 때도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유는 감화라는 매혹과도 같은 능력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생겨난 버프는 그녀가 헌팅에 참여하기만 하면 감화된 헌터들의 능력치를 1.5배나 올려 주었다.

그랬기에 아야세 하루카는 자신의 신 훼르타에게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전부 신의 축복이었고, 반대로 신이 없다면 이 모든 게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불안감은 점점 커져 갔다.

결국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그래도 괜찮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야세 하루카는 변함없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조력자가 생겼다.

그 조력자로 인해 신명이자, 자기 삶의 가치를 이룰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

그래, 워프와 각성자가 없던 그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마음이 홀가분해진 그녀는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첫사랑을 겪는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 듯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이 오길 기다렸다.

밤잠까지 설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들뜬 마음에 막무가내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우도현을 만나러 다짜고짜 한국에 갔다가 퇴짜 맞은 경험으로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그 경험은 그녀의 목표와 비교한다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걸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약속한 당일, 이른 시각에 우도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위치가 어디쯤?’

‘워프 브레이크, 말씀이신가요?’

말을 꺼내자마자 들뜬 마음에 속마음을 내뱉고 자신을 욕했다.

그러면서도 이어질 말이 무엇일지 긴장과 기대로 숨죽였다.

‘아니, 네 집.’

웬 집? 설마 관광?

‘주소 불러.’

당혹감과 의아함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몸은 정직하게 주소를 불렀다.

‘그럼 1시간 뒤에 도착할 거야.’

‘네? 어디로요……?’

‘집 앞.’

약속한 시각, 그 장소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세 사람을 본 그녀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오르다. 이쪽은 마리나스, 세자나스.”

이오르라고 밝힌 사내는 이해의 범주였지만, 한 사람을 둘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은 쌍둥이, 그 둘의 귀는 뾰족했다.

‘에… 엘프라고……?’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익숙한 단어이긴 했다.

정확히는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곳에서.

이것만 해도 충격적인데, 몸을 떠나려는 정신을 잡고 보니 아무렇지 않게 한국말로 떠들어 대는 이오르가 보였다.

그는 무척이나 심플한 사람이었다.

“그, 워프… 몬스터 나오는 구멍.”

“이오르 님, 워프 브레이크입니다.”

진지하게 지적하는 검은 장발의 엘프를 향해 시선을 던지던 이오르는 아야세 하루카에게 통보했다.

“안내해.”

“네, 네?”

“부수면 된다며?”

“아… 그게… 그렇게 간단히…….”

“아 씨, 속 터지겠네. 야, 쌍둥이들, 가자.”

“네, 이오르 님!”

“예! 이오르 님!”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사용인들을 불러 다짜고짜 3명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울며불며 정신을 놓고 사정사정했다.

단 한 번도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생소한 모습을 보이자 집 안은 발칵 뒤집혔다.

이상 행동의 이유는 직감 때문이었다.

‘뭔가 불길해…….’

척추를 타고 뼛속까지 퍼지는 서늘한 오한. 거기서 오는 극도의 불안감.

무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녀의 직감은 정확했다.

며칠째 TV에서 심각하게 다루는 워프 브레이크 생방송에서 손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면에 송출되는 워프 브레이크. 그녀도 아는 곳이었다. 집에서 불과 5킬로미터 거리밖에 되지 않은 곳이니까.

대피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몬스터가 향한 방향이 정반대라서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토했고, 토해 내는 중인 3등급 워프.

피난민과 피해에,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한 의견이 오가는 뉴스의 화면이 워프를 비췄다.

기자의 목소리까지 찢는 헬기 프로펠러 소리에 미간을 살짝 좁혔지만 눈을 뗄 순 없었다.

혹시나 몬스터가 방향을 바꾸어 이쪽으로 달려온다면 대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화면에 낯익은 미국인이 불쑥 튀어나왔다.

마치 허공을 평지처럼 딛고 선 그는 무한정 몬스터를 쏟아 내는 워프를 빤히 보더니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쩌정!

‘쩌정?’

‘유리 깨지는 소리가 왜?’라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워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화면을 가득 채운 녹색 체액과 터진 고깃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웁!’

절로 헛구역질이 일었다.

겨우 붙든 이성 덕에 입을 막고 얼굴을 돌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거실은 그녀의 토사물로 한바탕 난리가 났겠지.

그런 그녀의 심정과 달리 TV에서는 유창한 한국어가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오? 되네? 크하하하, 봤냐? 우도현? 너만 할 줄 알았지? 이 이오르 님도 할 줄 안다고!』

본능적으로 돌아간 고개가 결과를 확인했다.

입을 틀어막은 손에서 시작된 떨림이 몸 전체로 퍼졌다.

망상에서의 느꼈던 기대감은 온데간데없이 공포가 먼저 느껴졌다.

“저… 저게 우도현의 지인……?”

사람… 아니, 헌터다.

들어 본 적 없는 헌터지만, 귀가 따갑도록 들은 우도현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감탄이 아닌 공포가 먼저 느껴지는 걸까?

마치 짐승의 날것처럼……?

상식적으로 그럴 수…….

아야세 하루카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감쪽같이 사라진 그들은 15분 만에 카메라에 잡혔다.

그녀의 집에서 50킬로미터쯤 떨어진 또 다른 워프 브레이크 앞.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멀미가 일 정도로 흔들리는 화면으로 인해 카메라가 힘겹게 그들을 쫓는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도착하기 전에 그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렇게 20개의 워프 브레이크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데 단 30분.

워프 브레이크가 사라지고 온통 초록색으로 점철된 대지에 서 있는 이오르의 뒷모습이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이오르 님! 기, 기다려 주십시오! 잠깐이면 됩니다!』

죽기 살기로 뛰었는지 기자의 목소리는 듣는 이도 숨이 차오르게 만들었지만, 끊기지는 않았다.

직업 정신에 감탄하기도 전에, 뒤로 돌아서는 이오르의 모습이 화면 가득 잡혔다.

그 간단한 동작에 아야세 하루카는 탄성을 내질렀다.

연예인도 씹어 먹을 비주얼. 그러나 와락 찌푸린 얼굴과 함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그녀의 거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왜 이렇게 느려 터졌어? 딴 놈 잡아다 물어보려니까, 개미 한 마리도 없잖아!』

당연한 거 아닌가……? 터진 워프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데. 더군다나 이 지역은 막을 수 없어 폐쇄 결정이 난 곳이었다.

기자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들어간 걸 텐데.

당황한 기자가 ‘하, 한국어?’라며 중얼거리다 어설프게 영어를 입에 담지만, 이오르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연출한 것도 아니고, 조잡한 휴대폰 카메라임에도 그것은 귀공자의 미소였다.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아니 예술의 경지.

그 모습에 그녀는 방금 전의 황당함도 잊고 멍하니 이오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이 있어야지. 왜 사람이 없…….

이어서 나오는 말에 그녀는 현재 이 방송이 무슨 방송인지조차 잊을 뻔했다.

『야, 이 나라에도 라면 있다며? 우도현 그 새끼가 라면? 라멘? 암튼, 그거 어디 파냐?』

‘뭐… 라멘……?’

거친 숨소리는 간간이 들렸지만 기자는 말이 없었다.

TV를 쳐다보던 그녀도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직업 정신이 투철한 기자라 해도 저 말에 바로 대답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보다 기자를 기다렸던 이유가 고작 라멘 가게를 묻기 위해서라니?

그녀처럼 TV를 보던 시청자도 순간 프로그램을 잘못 튼 줄 알겠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관광객 붙잡고 인터뷰하는 거로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으니까.

너무나도.

“아… 아…….”

그녀는 TV에 고정한 얼굴을 양손을 들어 덮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현재 TV를 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라도 몰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소파에 던졌다.

그리고 파고들어갈 곳도 없는 소파에 깊숙이, 깊숙이 몸을 숨겼다.

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극도로 피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창피해…….’

너무나도 창피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나.

상식까지 파괴한 이 헌팅이 그저 워밍업에 지나지 않을 줄은.

소파 등받이를 발로 투닥투닥 차던 그녀는 5분도 채 안 돼, 집으로 다시 온 이오르에게 잡혀 근처 라멘 가게를 찾아 헤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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