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158. 준동 (1)
시리아에 홀로 남은 차도식이 키메라로 산을 쌓는 동안, 북한 땅을 밟은 헌터들은 멍하니 한 사람을 봤다.
“크하하하, 이게 다냐, 이 키메라들아!”
머리털인지 갈기인지 구분 안 되는 은색 물결이 넘실거릴 때마다 주위로 검은 피보라가 자욱하다 못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그럼에도 본능밖에 남지 않은 몬스터들은 차례를 기다리는 폐기물처럼 계속해서 강혁에게 달려들었다.
“이, 인간인가……?”
헌팅도 잊은 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길 헌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몬스터 처치, 아니 몇 배나 업그레이드해 갈아 마시는 믹서가 되어 돌아온 강혁은 예전에도 헌터들 사이에서 알아줬지만, 지금은…….
“몬스터가 불쌍할 정도라니…….”
그는 흠칫했다. 자신의 입이 멋대로 나불댄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헌터였다.
‘그러니까, 이재우 헌터였나?’
1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헌터들을, 단 한 번도 온 적 없었던 이 북한 땅에 사진 한 장으로만 본 그 위치로 텔레포트를 시킨 무시무시한 텔레포터.
‘우 헌터님께 일대일 훈련을 받았다더니.’
애초에 공격에 특화된 헌터가 텔레포터를 훈련했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결과는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벤치에 앉아 통기타를 뜯으며 허밍으로 노래하는 사내와 바짝 붙어 앉아 눈을 감고 그 음을 음미하고 있는 여성.
이 셋을 합쳐 프로페셔널 팀이라고 소개를 받긴 했는데.
‘피크닉이라도 온 줄 알겠지.’
평온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의 헌팅은 저 한참 앞에서 몬스터를 갈아 대며 박장대소를 하는 전 헌터 협회장에 뒤처지지 않을 강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있는지 30미터 거리 밖은 이미 쌓이다 못해 담이 된 몬스터의 사체로 가득했으니까.
베짱이처럼 노래를 불러 대는 프로페셔널 팀의 팀장, 서재현 헌터는 게임의 토템처럼 버프를 유지 중이었고, 그 버프를 받은 이정현 헌터의 고양이가 배회할 때마다 주변의 몬스터가 픽픽 쓰러졌다.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론 그랬다.
“으, 몬스터 냄새는 정말 적응 안 돼.”
이정현 헌터가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자, 서재현 헌터의 노래가 록으로 바뀌었다.
‘어? 통기타에서 어떻게 록이?’
그러더니.
쿠화아아악!
그녀의 검은 고양이의 발길이 닿은 몬스터마다 불길이 치솟으며 재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눈으로 봤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어, 조심하세요!”
텔레포터 이재우 헌터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기 무섭게 박길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척에 소름이 돋았다.
‘옆구리를 내주는 수밖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몸을 앞으로 굴렸다.
느껴져야 할 고통 대신 절로 어깨가 떨리는 소리가 울렸다.
콰드드드득!
뼈째 갈리는 음산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손가락을 까딱이는 이재우 텔레포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엔 허공에 뜬 채 저며지는 몬스터가 있었다.
괴리감까지 느껴지는 모습.
“테, 텔레포터가…….”
“아, 이거요? 텔레포트 기술인데, 점점 공간을 줄여 제자리에 이동시키는 거예요. 음, 피라미드 같은?”
하하하, 멋쩍게 웃으며 빈손으로 뒤통수를 쓸어내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하겠지만 하나는 알겠다.
‘이, 이 팀은 미쳤어……!’
그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긴 몬스터 브레이크로 몬스터의 땅이 된 북한이다.
거기에 핵까지 터지며 키메라가 만들어졌고, 조금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새로운 몬스터와의 만남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전선 이탈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과도 같았다.
크르륵-
박길은 뒤통수를 뜨끈하게 데우는 입김과 악취에 현실을 인지하기보다 속이 먼저 매스꺼웠다.
‘이번엔 정말 죽을지도…….’
정신을 빼놓으면 안 되는데, 몇 주 동안 이어진 파업과 아슬아슬한 턱걸이로 신입 딱지만 겨우 뗀 헌터라서일까. 머리로는 알지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아직 없다고 봐야 했다.
‘내, 내가 왜 왔었지……?’
실전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과 쪼들리는 생활 때문이긴 한데.
‘아, 맞다…….’
이 헌팅에 참여만 해도 블랙홀 랜드 한 달 여행권이 무료로 지급된다고 했었다.
목숨 귀한 줄 모르는 신입의 패기였달까.
촤아아악!
물을 뿌리는 소리가 귀를 스치며 뒤통수부터 발뒤꿈치까지 미지근한 액체가 쏟아졌다.
코를 찌르는 악취보다 뒤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다.
박길이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뒤로 돌려 확인하니, 얼굴엔 표정이 없었지만 잔뜩 불만이 서린 눈을 한 곰 같은 사내가 보였다.
‘비, 빌런 킹!’
이름은 테이스라고 밝혔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빌런 킹 채근석.
“쯧, 그냥 통째로 날려 버리지, 무슨 이 땅을 쓸 거라고.”
어차피 몬스터 피에 전 땅은 썩어 버릴 뿐,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한다며 투덜대는 그를 멍한 눈동자로 보고 있자,
“뭘 봐? 그 두 눈깔 뽑아 줄까?”
그러면서 시뻘건 검을 어깨에 걸치고 휙 가 버렸다.
‘씨바, 졸라 멋있다……!’
몇 걸음 못 가 다시 검을 휘둘러 댔지만, 그 검은 요사스럽게 붉기만 했다.
그 주변으로 빌런계의 네임드라는 네임드가 다 모여 학살을 벌이면서도, 놀러라도 온 듯 계속해서 빌런 킹에게 말을 붙여 댔다.
‘여기… 워프 브레이크 터진 거 맞지?’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계속 착각이 들었다.
“박길 이 새끼! 너 죽고 싶어?”
“여, 영식이 혀어엉… 크웁!”
허겁지겁 달려온 프리 1팀 팀장 김영식이 박길을 보자마자 그의 복부에 주먹을 갈겼다.
“혀어엉? 혀어어엉? 이 새끼야! 인성이 데려다 놓고 오는 동안 내가 P팀 안에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왜 여기서 정신 빼놓고 있는 건데! 자살하러 왔어?”
박길은 배를 움켜쥔 채 앓기만 했다.
김영식은 이마를 짚더니, 박길의 멱살을 쥐어 얼굴을 맞댔다.
살기에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박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4급 블루인 인성이도 한 방에 옆구리 잡아 뜯긴 거 봤냐, 못 봤냐? 이 초짜 새끼, 그래도 빌어먹고 살라고 여행 티켓이라도 건지랬더니. 하, 넌 안 되겠다. 최후방 가서 택시 타고 집에 가!”
박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헌터 중에서도 날고 긴다는 헌터들로도 부족해 빌런까지 협상을 맺고 왔는데, 숨죽이고 피해 있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피지컬에 혼이 나가 제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박길! 팬 미팅 현장 왔냐? 여긴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라고!’
이를 으득 씹었다.
기준 미달인 자신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데려온 김영식을 봐서라도 이러면 안 된다.
“티, 팀장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두 번 다시 헛짓거리 안 하겠습니다!”
오히려 더 짙어진 살기가 숨통을 조여 왔다.
그때, 하늘에서 하지현이 떨어지더니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탐지 수색 가능한 헌터 어딨어요?”
자신을 찾는 소리에 박길은 시뻘게진 얼굴로 다시 김영식을 불렀다.
“티… 임장님…….”
“또 넋 빼놓고 있으면 내가 널 몬스터 밥으로 던져 버린다. 빨리 가!”
멱살 쥔 손을 놓으며 김영식이 박길의 가슴을 팡 밀었다.
“콜록! 가, 감사합니다!”
폴더처럼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한 박길은 자신의 앞까지 온 하지현에게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현 헌터… 우아악!”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박길의 몸이 그녀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상에서 몬스터와 전투 중인 헌터들이 알록달록 점이 되어 빠르게 지나쳤다.
어지러운 시야에 치미는 구역질을 참는데, 하지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핵폭발로 산이 뒤집혔어요. 그 안에 워프가 묻혔는지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나오는데 바위 때문에 헌팅이 쉽지 않아요.”
하지현 헌터의 알려진 능력은 대부분 범위기다.
화력도 끝내줘 대전차지뢰라는 감탄 섞인 별칭도 있지만, 그걸 입 밖에 냈다가 통구이가 되어 실려 간 헌터가 한둘이 아니었다.
어쨌든 수없이 밀려오는 몬스터를 처리하기에 좋은 능력임은 틀림없으나 장애물이 있다면 효율은 반감될 수밖에.
그런 그녀를 돕게 된 박길은 조금 전 트롤 짓도 잊고 부푼 마음으로 물었다.
“옙!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포인트요.”
“포인트요……?”
얼떨떨하게 되묻자 그녀가 매혹적이면서도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묻힌 워프를 꺼내려면 다시 산을 날려야죠.”
‘여, 역시 대전차지뢰…….’
돋는 소름보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무거운 살기에 애써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보게 된 곳은 전방.
박길의 두 눈이 커졌다.
검은 바위가 산맥처럼 이어진 거대한 산이 있었다.
그 주변 허공에도 바위가 둥둥 떠다녔는데, 그 모습이 마치 투하 준비 중인 폭탄 같았다.
그 잠깐 사이 가까워진 시야에 폭탄의 생김새가 확실히 시야에 잡혔다.
‘아, 아니, 저건 바위가 아니야!’
음울하게 짙은 회색의 도마뱀이었다. 돌을 대충 깎은 듯한 거칠고 우둘투둘한 피부, 그 등짝에 붙은 한 쌍의 박쥐 날개까지.
“요, 용?”
“드레이크예요!”
“마, 망했다…….”
차라리 팀장님 말대로 집에 갈걸…….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시간을 되돌릴 순 없었다.
쓰린 속을 달래던 박길은 자신의 몸이 허공에 정지하는 걸 느꼈다.
하지현이 말했다.
“좀 더 다가가야 하나요?”
“아니요. 이 정도 거리면 괜찮습니다.”
지상에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저 바위산을 한눈에 담아야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천천히 내뱉는 숨에 따라 10개의 손가락에서 마나가 실처럼 빠져나갔다. 0.01밀리미터도 안 될 가느다란 마나가 그물처럼 얽히며 눈앞의 산을 덮쳤다.
예민한 드레이크들이 낮게 울음을 토하며 이쪽을 바라봤다.
“제가 막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그녀의 단단한 목소리와 함께 몸을 누르던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박길은 입을 꾹 다물며 집중했다.
‘왜… 이렇게 깊어! 무슨 백두산이야?’
낮은 욕지거리가 목을 타고 올라왔지만 입술을 씹으며 참아 냈다.
벌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마나에 식은땀이 턱을 타고 떨어졌지만, 유일한 자신의 쓰임새였다.
헌터라면 죽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은 확실하게 해내야 했다.
이젠 턱까지 달달 떨렸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피 빠진 정육점 고기가 됐겠지.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마나 그물에 찌릿하고 반발력이 튀었다.
‘찾았다!’
하지만 금세 얼굴은 흙빛이 되어 버렸다.
그 색이 새빨간 형광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어요?”
살짝 짜증이 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박길이 외쳤다.
“찾았습니다! 방향은 현재 위치에서 북동쪽! 지면 바로 위! 크기는 가로 50미터, 세로 100미터! 1등급 워프입니다! 형광색을 띠는 걸 봐서 핵에너지를 흡수한 듯합니다!”
“깊이는요? 포인트는?”
박길은 검지로 위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정면에서 75미터, 포인트는… 워프를 감싼 바위입니다. 워프 절반 크기의 바위 3개가 180도 간격으로 꽂혀 있고, 그 위로 3개의 바위가 지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에서 치익, 하는 무전 소리가 들렸다.
“들었죠? 아저씨? 가능해요?”
-그래! 걱정 말고 다 날려 버려!
한층 더 높아진 강혁의 목소리가 끊기자 무전기를 허리춤에 꽂은 하지현은 박길을 보고 싱긋 웃었다.
“수고했어요. 뒷일은 저에게 맡기고 내려가서 쉬어요.”
환한 웃음에 정신을 못 차리는 박길의 몸이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하지현은 익숙하게 수인을 맺었다. 농장에서나 느꼈을 진한 농도의 마나가 그녀를 두고 거칠게 빙빙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남편, 차도식과 함께였다면 이 정도 문제는 문제도 아니었을 텐데.
‘앓는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
힘에 부쳐도 할 때는 해야 한다.
그녀는 빠르게 엇갈렸다 모으며 꼬아지는 손가락 아래 손바닥을 덮은 붉은 장갑을 내려다봤다.
도현이 아무렇지 않게 던져 줬던 드래곤 가죽으로 만든 장갑.
평소 덕을 톡톡히 보고 있지만, 오늘은 정말 온 힘을 다 쏟아야 한다.
수인이 복잡하게 얽힐수록 장갑은 은은하게 붉은빛을 발했다.
“이대로 워프까지 다 날려 버리면 이 짓도 끝일 텐데.”
어쩔 수 없다. 채근석, 아니 이제는 테이스라는 그놈에게 헌터 안전과 위험 몬스터 처리를 맡기며 자신과 아저씨는 워프를 정리하기로 했으니까.
“후, 마지막이야. 힘내자고!”
하지현은 양손을 깍지 껴 검지와 엄지로 총 모양을 만들어 냈다.
그 손을 들어 왼쪽만 뜬 눈앞에 올렸다.
“BANG!”
가볍다 못해 장난스럽게 나온 목소리와 달리, 붉은 마나는 순식간에 긴 꼬리를 그리며 날아갔다.
크롸롸롸!
지켜보기만 하던 드레이크 일부가 마나를 쫓아 앞발과 꼬리를 날렸지만, 마나는 살아 있는 듯 곡예를 하며 바위산에 가까워졌다.
쿠오오오오-!
바위산에 닿기 직전, 제일 몸집이 큰 드레이크가 몸을 던졌다. 그러자마자 붉은 마나가 다섯 갈래로 나뉘며 박길이 가리켰던 곳에 정확히 꽂혔다.
콰과과과광!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의 굉음과 함께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의 지진이 일었다.
동시에 잘게 쪼개진 바위들이 사방으로 튀며 자욱한 먼지와 함께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이 광경을 턱이 빠질 듯 입을 쩍 벌리고 보던 박길은 날쌔게 다가온 강혁이 목덜미를 잡아채자 깜짝 놀라 버둥거렸다.
“우와아악! 저, 전 협회장님?”
“하하하, 박길이라고 했지? 5급 그린 헌터 박길!”
“예, 옙!”
“너 프로페셔널 팀 어떠냐?”
‘내가 미쳤다고 그 팀에 들어가?’
절대, 네버를 외치던 박길은 이어진 강혁의 말에 미친놈이 되기로 했다.
“총책임자는 도현이고, 블랙홀 랜드는 프리패스다. 주민은 당연하고 필요한 건 전부 무상 지급! 월급도 따로야!”
“하겠습니다! 아니, 합니다! 해요오옷!”
그렇게 도현도 자신이 총책임자인지 모르는 프로페셔널 팀에 신입 하나가 새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