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138. 7명의 신 (2)
다음 날 오전, 도현은 부모님 회사인 블랙홀을 찾았다.
일본에서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헌터 아야세 하루카 때문이었다.
테이블 하나를 두고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미팅실.
헌터 협회에서 만나는 게 맞겠지만, 국내는 정부와 헌터 협회의 일로 어수선한 상태였기에 그나마 적합한 장소를 고른 것이 블랙홀 회사였다.
그저 음료를 마시는 소리만 이따금 들리는 미팅실.
아야세 하루카는 함께 온 팀원들을 물리고 홀로 도현과 마주 보고 있었다.
인사를 주고받은 뒤 어색함과 낯가림에 벌써 두 잔째 음료를 들이켜는 그녀를 보고 지루했던 도현이 먼저 물었다.
“용건은?”
그 한마디에 아야세 하루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리, 리갈루스를 어떻게 죽인 거죠……?”
소심한 목소리지만 유창한 한국어였다. 놀랄 법도 했지만, 도현은 덤덤했다.
“날 심문하러 바다 건너왔어?”
“그게 아니라… 하아, 죄송해요……. 요즘 너무 충격이 커서 예민해졌네요…….”
“그래서 용건은?”
몇 번이나 혀로 입술을 적시던 그녀는 힘겹게 말했다.
“난 신 훼르타를 모시는 무녀 아야세 하루카입니다.”
도현은 계속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시던 신이 사라졌어요……. 아니, 살해당했어요.”
‘이거 그놈인 것 같은데.’
도현은 불현듯 퀘스트가 떠올랐다.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멸이라 표시됐던 부분.
아니나 다를까, 귀에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들렸다.
“살해?”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타고 눈물이 톡 떨어졌다.
“우 헌터님이 리갈루스를 죽인 그날, 내 신을 다른 신이 먹었… 어요…….”
자신의 재능을 먼저 알아보고 접근했던 신 훼르타.
처음에는 동네 꼬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척 작고 귀여운 외모를 가진 사내아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전투가 아닌 보조. 그것도 신뢰를 얻어 세력을 가지는 그런 힘이었을 뿐.
부끄러운 능력이었지만, 아야세 하루카는 자신의 신을 위해 노력했다.
세력이 커지자 능력치를 올려 주는 버프 능력도 생겨났다.
그때부터 그녀는 훼르타를 맹신했다. 꿈만 같았던 시간이 무너진 건 괴상망측하게 생긴 외눈박이 때문이었다.
마나석으로 도배된 공간. 정신 지배의 영향으로 몸은 움직일 수 없었고, 자신을 구하러 왔던 훼르타는 외눈박이가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상황을 두 눈을 뜬 채 봤어야 했던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정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그녀의 기반이 흔들렸다.
신이 사라지자 힘은 약해졌고, 그 탓에 함께해 온 팀원들의 신뢰는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버프 능력도 말끔히 사라지자, 그녀 주변의 헌터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훼르타가 남겼던 마지막 말을 도현에게 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겸사겸사 자신을 잘 이해해 주리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서.
대충 들은 도현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래서?”
“네……?”
울먹이던 아야세 하루카는 멍하니 도현을 봤다.
“고작 하소연 때문에 날 불렀다는 거냐고.”
“고작? 아니, 하소연 아니에요! 당신이 강한 건 알아요. 대리자죠? 하, 하지만 신을 모시는 같은 신자니까 당연한……!”
“무슨 개소리야?”
“훼르타 님이…….”
“착각하지 마. 난 그놈들이 설쳐 대는 꼴이 보기 싫어서 잡으러 다니는 것뿐이야.”
제브라드의 시간 축 때문에 가뜩이나 정신 사나워 죽겠구만.
짜증 가득한 도현을 보던 아야세 하루카는 남은 희망마저 잃은 듯 눈빛이 죽어 버렸다.
한참이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힘없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한국을 방문한 건 훼르타 님이 남긴 말씀을 전하려고 온 거예요…….”
“유언?”
“일본을 부탁한다고…….”
“그건 그쪽 일이지.”
도현은 리갈루스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뭔가 부탁한다고 했었는데.
‘그게 중국인가?’
중국은 비휴단과 소림이 알아서 정리할 거니 신경 쓸 건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 여성과 더는 나눌 말이 없었던 도현은 여기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저 수확이라고 해 봤자 그 외눈박이가 한 놈을 먹어 치웠다는 내용밖에.
어차피 도현은 알아도, 알지 못해도 크게 상관없는 소식이었다.
괜히 사가한테 묻지도 못하고.
차라리 사가에게 남은 신이 누군지, 뭐 하는 놈인지 묻는 게 더 유익하다.
“그럼.”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급했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 도현을 막고 무릎을 꿇었다.
“뭐 하는 짓이야?”
“하, 한국처럼 일본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정신, 지배! 도, 도와주세요,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러곤 엎드려 ‘워프를 전부 가져도 좋으니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도현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리며 나왔다.
***
“왔느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집에는 사가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사가가 테이블로 뛰어들자 도현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더니 있네.”
“보자고 했던 그 아이는?”
집으로 오는 길에 아빠가 전화했었다.
연결되자마자 쏟아지는 잔소리에 끊어 버리자, 다시 전화가 와서 자신이 가고 난 뒷이야기를 해 주었다.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그녀를 함께 왔던 헌터들이 데려갔다고.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물어도 울기만 했단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한 거라는데,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니 아빠도 잘했다는 대답과 한번 블랙홀 랜드에 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보고 일본을 정리해 달래.”
사가가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 꼬맹이도 당했나 보구나.”
“알고 있었어?”
“그래.”
“애초에 그럴 거였다면 왜 하필 지구야?”
“둘 다 욕심이 났겠지. 너도 격이란 걸 갖게 됐으니 알지 않느냐.”
도현은 말없이 사가만 바라보았다.
“왜 그러냐?”
“외눈박이. 어떤 놈이야?”
“그저 그런 신 중 하나다.”
“잘못된 정보 같은데.”
“그래, 리갈루스를 보니 그런 것 같더구나. 내가 아는 건 그놈은 머리를 쓰는 놈이라는 거다.”
“그것뿐?”
“능력 증폭도 있는 것 같았다. 어제 네가 한 건 했던 대통령 백치 사건도 그중 하나였지.”
도현은 턱을 괴었다.
“진창 싸움이 되겠는데……. 이놈 말고 사투리 쓰던 도깨비 놈이랑 먹보 아저씨는 누구야?”
“…만난 게냐?”
“워프 터진 날.”
만났던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사가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느리게 입을 뗐다.
“도깨비는 휘, 먹보는 마데아크다.”
띠링, 띠링! 알림 메시지가 연달아 울렸다.
[지구를 꿀꺽하려는 신을 찾아라!]
신 골고타(마룡) 처치
신 린 아니사(몬스터 맘) 테이밍
신 리갈루스(황금 군주) 처치
신 훼르타 소멸
신 휘(도깨비)
신 마데아크(식도락 유희)
신 ????
보상:미정
퀘스트가 완료될 줄 알았더니, 마지막 한 놈 외눈박이 휴레가크가 갱신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야 하는 조건이 있나 본데.
이름도 알겠다, 곧 만날 테니 미련 없이 창을 끄며 어떤 놈을 먼저 쳐 버릴지 물으려는데 사가가 먼저 말했다.
“두 놈은 놔둬라.”
“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휘는 지구의 신이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지금의 격으로는 지구를 감당할 수 없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첫 페널티 때. 격을 따지더니… 이거 격 자체가 신의 종특이었나 본데.
말을 듣고 나니 처리하려던 마음이 싹 가셨다. 아니, 더 큰 짜증이 몰려왔다.
얼마나 방관했으면 저런 놈들을 처리 못해서 지구를 쥐고 흔들게 놔두는 거야?
늘 사고 치던 입장에서 내키지도 않는 수습을 해야 하니 더 짜증이 났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좀 패 버리면 안 될까.
“다 네 업보다, 이놈아. 그러게 작작 하라 하지 않았느냐.”
제브라드에서 쳤던 깽판을 나무라는 모습이었다.
그야 내 세상도, 내가 원해서 갔던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거 아냐?
도현의 속마음은 그랬지만, 사가가 보기엔 도현의 말은 힘만 센 치기 어린 아이의 징징거림으로 들렸다.
그런 도현이 지구에 돌아왔고, 환경이 지구가 되자 제브라드에서 저질렀던 사건마다 신 제브라드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씩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뿐.
그저 도현은 거슬리는 것들을 빨리 처리하고 편히 쉬고 싶었다.
그런 의도로 물은 것이지만 오히려 잔소리가 되어 돌아오니, 도현을 열 받게 만들 목적이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가는 도현에게 쓴소리할 작정으로 마음을 다잡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현아, 네 눈엔 신들이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처럼 보였겠지. 거슬려서 잡았을 게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고, 점점 더 방바닥을 어지럽힌 게야. 아차 싶었을 땐 이미 집 안이 온통 벌레 소굴이었다는 걸 깨달은 게지.”
도현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그걸 알고서 헌터들을 키우는 것 같다만,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박살 낸 건 미숙한 행동이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불만 가득한 얼굴이 붉게 일그러졌다. 도현은 억울함과 함께 분노가 치솟았다.
늘 그랬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진 것만 해야 했다.
당연하게 반항심이 생겼다. 하기 싫은 것만 잔뜩 했으니 한 번쯤은 풀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학업과 부족한 용돈. 결국, 학업에 신경 쓰기로 하며 가상현실 게임기를 보상으로 얻었다.
그렇게 숨이 트이나 싶었다.
무미건조했던 삶이 선명해지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쯤, 삶을 빼앗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세상이었다. 죽기 싫었으니 발버둥 쳐야 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 주는 친우를 사귈 수 있었다.
도현은 그 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생애 그 무엇보다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일군 모든 것을 또 빼앗겼다.
신 제브라드에게.
그러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 오게 된 진실을 들었다.
거부했지만 남은 건 지독하게 곪은 상처와 고립밖에 없었다.
운명. 그게 운명의 굴레라고.
그렇게 당했는데, 내가 원한 게 아닌데, 왜 지금 또 강요당해야 하는 거지?
사가가 덤덤히 말했다.
“부모님, 친구, 가족.”
“사가.”
“네가 지킨다 했다. 그래, 어쨌든 지켰지. 하지만 실상은 어떠냐? 중국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아느냐? 한국은?”
“그래서…….”
“너의 주변, 모든 인간들은 네 뒷수습에 눈코 뜰 새가 없다. 특히 네 부모님은 어떠냐? 단 한 번이라도 너에게 걱정을 비친 적 있느냐?”
“…….”
“넌 세월만 보낸 어린아이다. 힘만 세고 시야도 편협해.”
도현은 잔뜩 굳은 얼굴로 사가를 노려봤다.
“빗대자면 격이란 건 이런 것이다. 아무리 격을 쌓는다 한들, 그걸 제대로 사용하려면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게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주변을 좀 훑어보거라.”
진정되면 강혁에게 가 보란 말을 남기고 사가는 농장이 아닌 어디론가 훌쩍 가 버렸다.
“하아.”
도현은 깍지 낀 손에 이마를 댔다.
방금까지 끓어오르던 분노와 짜증은 짜게 식어 버렸다.
그래, 인정한다.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떠밀려서 했으니까. 그랬으니까 내 탓이 아니라고, 더 막 나갔고 더 막 대했다.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에 책임이란 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깨달을 거라고. 그래서 모두가 방관했지만, 허점이 있었다.
너무 강하다는 것.
신 제브라드가 나서지 않는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제브라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조차 앓아누우며 신에게 도현에게 단죄를 바랐지만 방관했다.
모두가 방관했다. 엮이지만 않는다면 피해 볼 일이 없다는 삶의 지혜를 깨달은 거다.
그렇게 외면당했던 도현은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어 외면했을 뿐.
그래서 사가가 힘만 센 어린아이라고 꼬집어 말한 것이었다.
제브라드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세상이 이렇게 변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이 바로잡아 줬을 부분이었겠지만.
이미 그 시간을 건너뛰고 성인이 된 자식에게 쉽게 입을 댈 수 없었다. 더군다나 사고로 인해 잃었다고 생각했던 자식이 살아 돌아왔으니까.
어쩌면 너무 변한 자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 중일지도…….
오히려 부모님보다 더 오랜 시간 지켜본 건 사가였다. 그랬기에 대놓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사가밖에 없었다.
도현은 고개를 들어 멍하니 창밖을 봤다. 조금 덥다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장마도 지나고 찌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주변을 좀 훑어보랬지.
우선은 사가가 말한 대로 강혁 삼촌한테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