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36화 (135/200)

# 136

136. 대한 드래곤 (3)

[3등급 워프에 입장하셨습니다.]

“이오르!”

도현은 워프에 들어오기 무섭게 숨어 있는 이오르에게 주먹을 날렸다.

“도, 도현……!”

퍼- 억!

이오르가 다급하게 도현을 불렀지만, 도현은 가차 없었다.

저지른 일이 그저 사고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이 새끼야!”

쾅! 쾅!

“방문자로 왔으면-!”

퍽퍽퍽!

“곱게 밥이나 처먹고 갈 것이지!”

뚜쉬뚜쉬!

“마트를 털다 못해 부숴? 여기가 제브라드야?”

두다다다다!

가차 없는 손속이 잔상만 보일 정도로 빨라졌다.

전 협회장과의 대련장에서 일어났던 그 구타가 다시 펼쳐진 것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주먹질에 열에 아홉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이오르는 드래곤, 그것도 물을 다루는 블루 드래곤이다.

드래곤 자체가 천재지변과도 같은 힘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속성이 더해진다.

이오르의 경우 생명과 보호.

도현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맷집은 신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따라올 자는 없다.

그래서 도현은 이오르가 짜증 났다.

재능도 있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놈이 깡도 있으니, 얼마나 약이 오르겠나.

그래서였을 거다. 도현은 마지막 한 타를 주먹이 아닌 발차기로 지면에 처박아 버렸다.

꽈아아앙!

굉음과 함께 아스팔트 도로가 비스킷처럼 부서지며 패었다.

그 사이로 녹색 액체에 물든 한 건물이 보였다.

15층의 빌딩 옥상에는 9명의 헌터가 있었다.

“뭐야, 헌터가 있었어?”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저 이오르를 따라 들어왔던 것뿐인데, 사실은 그게 헌팅 중인 워프였다니.

‘왠지 워프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싶었더니.’

이오르를 처박은 덕에 바글바글하던 몬스터의 절반이 터져 나갔고, 남은 놈들은 드래곤의 위압감에 부리나케 도망갔다.

그 덕에 몬스터의 위협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멀쩡한 헌터는 없었다.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절반은 다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쾅!

“야, 이씨, 우도현! 손님 대접을 이딴 식으로 하냐?”

승용차 한 대만 한 아스팔트 조각을 옆으로 치우며 일어난 이오르가 씩씩댔다.

그래, 저 깡. 악바리.

싫다. 거울 보는 것 같거든.

도현이 짜증스럽게 빈정댔다.

“누가 손님인데? 아, 오자마자 거하게 사고나 치는 파란 도마뱀 새끼?”

“하, 200년이 지나도 역시 안 변했네. 아니, 더 고약해졌어! 이 꼰대 새끼!”

붉게 물든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잠깐, 그렇게 맞고도 움직인다고?

입에 고인 피를 퉤 뱉은 이오르는 껄렁껄렁하게 히죽거렸다.

“나라고 논 줄 아냐?”

찌푸려진 눈앞에 감정이 실린 주먹이 날아왔다.

“좀 봐줬더니, 이 새끼가.”

기가 찼다.

가볍게 고개를 반대로 젖혀 피하며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반만, 딱 반만 감정을 실어 얼굴을 한 대 쳤다.

꽈아아아앙!

폭발하는 화산처럼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이오르가 빌딩 10채를 뚫고 처박혔다.

쿠르르릉…….

땅이 흔들리며 구멍이 뚫린 건물들이 천천히 무너졌다.

빌딩 옥상에서 불안에 떠는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머리 좀 식히고 있어라, 고등어 새끼.”

혀를 차며 도현은 가볍게 옥상에 착지했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경외와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

“우도현 헌터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넷이 더 허리를 숙였다.

남은 넷은 정신을 잃은 상태.

주변에는 죽은 몬스터 3마리와 목숨을 잃은 헌터 셋이 더 보였다.

그중에 신체 중 한두 개가 없는 이도 있었다.

제일 심한 부상은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3급 헌터였다.

저 정도라면 장례를 치를 몸뚱이만 가지고 귀환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 이 나라는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네.’

상황만 봐도 뻔했다.

정부의 첫 희생양.

그저 농장만 열면 처리될 거라고 가볍게 생각한 게 문제일까…….

도현은 손가락을 튕겼다.

인사를 먼저 했던 헌터부터 시작해 팔다리를 잃은 헌터까지 모두 말끔히 나았다.

“나… 나았어……?”

“대건이 팔이… 팔이, 으흑……! 대건아!”

울음바다가 된 옥상에서 무심히 있던 도현은 처음 자신에게 인사를 했던 헌터를 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 헌터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숨어서 목숨만 부지하다 우도현 님께서 구출… 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깨어 있던 넷에 막 정신을 차린 이들까지, 모두가 같은 행동을 했다.

도현은 한숨처럼 숨을 내뱉으며 허공에 몸을 띄웠다.

“보호막 둘러 두었습니다. 출구가 생기면 바로 나가세요.”

계속해서 감사의 인사를 하는 헌터들을 외면하고 이오르가 묻힌 건물로 향했다.

벌써 일어나도 일어났을 놈이 너무 잠잠하다.

미친놈이 날뛰지 않고 조용하다는 건 제대로 사고를 치고 있다는 거겠지.

그래서 도현은 살짝 불안해졌다.

‘워프 안인데 사고를 쳐 봤자 얼마나 친다고.’

애써 무시한 도현은 이오르가 박혔던 건물의 잔해를 들췄다.

건물이 갑작스럽게 무너진 탓일까, 수북이 쌓인 콘크리트들은 지하까지 덮치지는 않았……?

도현의 눈이 커졌다.

지하 2층까지 뻥 뚫린 공간에는 녹색 핏자국과 그 앞에 노란 달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출구였다.

한 방 먹인 게 보스 몬스터에게 초특급 배송을 해 버린 것.

도현은 이마를 짚으며 옥상에 두고 온 헌터들을 데리고 워프를 나왔다.

그 과정에서 역시 금방 끝낼 줄 알았다며 대단하신 분이라는 칭송이 따랐지만, 도현의 머리는 이미 이오르로 지끈거렸다.

이놈을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대체 또 어떤 사고를 치고 있을지.

그냥 보내 버릴 순…….

“어……?”

워프에서 같이 나온 헌터 하나가 소리를 냈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는데.

“당장 그 손을 놓으십시오!”

영어와 한국어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각성자로 구성된 경호원 100명이 바리케이드처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안에는 겁에 질린 두 사람과 노란 대갈통의 손에 목이 잡힌 늙은 한국인이 보였다.

“이오르?”

노란 대갈통이 움찔했다.

겁에 질린 두 사람의 말이 신음처럼 들렸다.

“가, 각하…….”

순간 도현의 눈빛이 변했다.

쩌저저적!

도현을 중심으로 바닥이 갈라지며 주변 건물들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전부가 느낀 공포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지만, 그 외에 다친 곳은 없었다.

도현이 씹듯이 낮게 말했다.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이오르는 다급하게 뒤돌아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야, 야! 그런 거 아냐! 이놈이 이상해서 보려는데 이것들이 방해하잖아!”

“이상하다고?”

대통령이?

도현은 뿌리던 기운을 거두고 이오르 옆으로 갔다.

이오르는 손에 쥐고 있던 고태환을 놓았다.

“우… 우도현 헌터…….”

도현이 이오르 옆으로 다가가자 고태환이 바닥을 기며 짓눌린 목소리로 도현을 찾았다.

새파래진 안색을 따라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지만, 도현은 고태환의 몸을 감싼 가는 실들을 볼 수 있었다.

거미줄처럼 쭉쭉 뻗은 그 실의 끝 대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중 몇 가닥은 주변의 경호원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연결을 강하게 만드는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손목시계를 중심으로 진하게 물결치는 마나의 파도.

웃음이 났다.

능력 증폭이 걸린 마나석.

‘두 단계쯤.’

대통령은 헌터로 치자면 4급 블루이니,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도 있을 거다.

‘누가 강혁 아저씨를 그렇게 만들었나 싶었더니, 친히 제 발로 찾아와 줬네.’

도현은 이오르를 치하했다.

“마냥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네.”

“나 드래곤이야. 뭐 하러 말을 지어내?”

“보나 마나 차원 이동해 볼 거라고 들쑤시고 다녀서겠지.”

도현은 뜨끔한 이오르를 무시하고 고태환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무, 무슨 말인가?”

“정신 지배. 말 잘 듣는 개로 만들면 좋습니까?”

그 한마디에 모두가 한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한국 헌터 협회를 정부 산하로 개편한 일.

주변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아무리 미친개라지만, 협회장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 오히려 판세기가 그랬다면 모를까! 협회 사람들 중에 누가 모르겠어?”

헌터들은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과열된 분위기는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대통령이라는 저 인간을 잘게 다져 버릴 듯했다.

겁에 질려 말 못하던 국방부장관 김춘식과 부총리 고민환이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허, 헛소리다! 우도현, 각하께 무슨 망발이냐!”

“저 보십시오! 정신병 정도가 아니라 망상에 빠진 놈이 아니오? 저런 놈한테 헌터랍시고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기다니! 각하, 빨리 잡아들여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합니다!”

고태환 대통령은 주변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신만 바라보는 도현의 눈동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무저갱 같았으니까.

오히려 자신이 빨려 들어가 갈가리 찢길 것 같은 공포만이 가득했다.

“으… 으……!”

눈치 빠른 부총리 고민환이 주변을 둘러싼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미친놈을 빨리 잡지 않고 뭐 하는 짓인가? 각하께서 위험하시다!”

하지만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굴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현은 실소했다.

대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기에 이렇게 허술하게 나오시는 건지.

기가 차서 웃고 있으니 이오르가 선심 쓰듯 말했다.

“이 몸이 해 줄까?”

“됐어.”

도현은 모두에게 보이도록 손을 높이 들었다.

“좀 따끔할 겁니다.”

엄지와 중지가 비틀리며 맑은 소리가 울렸다.

딱!

동시에 고태환의 손목시계가 터졌다.

“으아아아악!”

“각하!”

“각하!”

고태환이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구르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김춘식과 고민환이 후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달려갔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히힛.”

고태환이 멍하니 하늘을 보며 웃었다.

“각하! 정신 차리십시오!”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고민환과 달리, 김춘식은 고태환의 어깨를 잡고 흔들다 도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저자가 각하를 공격했다! 빌런! 빌런 우도현을 잡아라! 어서- 엇!”

당장에라도 움직일 줄 알았던 경호원들은 이미 바닥에 쓰러진 채 일제히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 지배? 대통령이?”

“하, 이 나라 어쩌면 좋냐……?”

시위를 벌였던 헌터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제야 목숨의 위협을 느낀 김춘식과 고민환이 멍하니 도현을 봤다.

이 자리에서 명령권을 가진 건 그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도현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

의아해하는 소리에 이오르가 슬쩍 보곤 휴대폰을 빼앗아 빨려 들어갈 듯 액정을 훑었다.

<30분 후 지석환 셰프님 요리 강의가 있습니다. 우 헌터님, 오실 거죠?

-다 맛나 요리 학원 김민아 직원->

이오르가 눈을 부릅뜨고 도현에게 물었다.

“요리 학원? 설마 요리를 가르치는 그런 아카데미?”

“뭐, 그렇지.”

“천하의 우도현이?”

“그거 무슨 뜻이냐?”

싸늘한 눈초리에 이오르가 살짝 꼬리를 내렸다.

“아니, 네가 아카데미라니까 안 어울려서?”

“그냥 몬스터 요리도 하는 셰프라서 수강 신청한 것뿐이야. 이래저래 한 번도 못 들었지만.”

다시 생각하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중국에 가기 전 만났던 지석환 셰프는 언제든 도현이 원하면 따로 일대일 강의를 해 주기로 했었다.

물론 몬스터 재료 수급이라는 거래가 있긴 했지만.

‘이참에 잠깐 쉬면서 요리 좀 배워야지.’

이번엔 기필코 배우리라!

다짐하던 도현은 이오르를 빨리 보내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오르가 빨랐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도현의 목에 매달려 소리쳤다.

“요리 학원 가자! 도현 씨♡.”

퍼억!

도현은 이오르의 입에서 ‘내가 미친 파란 도마뱀입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주먹을 계속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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