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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의 자취방-131화 (130/200)

# 131

131. 리갈루스 (1)

껍데기만 남은 워프들로 한국을 압박하며 우도현 헌터 욕을 해 대던 중국은 베이징에 나타난 워프로 기쁨과 걱정의 탄성을 내질렀다.

한국에서 벌어졌던 쓰레기통 워프에 이어 2세대 워프가 출현한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금색의 보름달이라는 것일까.

빠르게 움직인 공안 헌터들은 이 워프들이 2세대 워프임과 동시에 1등급이라는 것까지 확정 보도했다.

동서남북으로 하나씩 나타난 워프들도 무서웠지만, 문제는 베이징의 중심, 중난하이 중해에 나타난 워프였다.

중난하이의 중해는 약 1세기 전부터 주석들이 국무를 수행하는 중앙정치국이 있는 곳으로, 중국의 심장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불길함과 불안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아지는 가운데, 주변 시의 공안 헌터들이 베이징으로 계속 몰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모를 이변을 대비해 워프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모인 수가 10만.

말만 들어도 기가 질릴 만한 수였다.

중난하이 동쪽의 자금성, 그 중심의 태화전 지붕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도현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시선으로 중난하이를 보고 있었다.

“슬슬 가 볼까.”

그의 몸이 지붕에서 사라지고 나타난 곳은 중난하이 중해 호숫가였다.

“우도현 헌터?”

“살인자다!”

“혼자 왔다고?”

중난하이 중해. 호수 테두리를 따라 두꺼운 벽을 형성한 공안 헌터들이 혼자 나타난 도현을 보고 비웃었다.

아무리 중국을 휘젓고 다닌 장본인이라 해도, 그 많은 워프를 손댔다면 분명히 조력자들이 있을 텐데 혼자 나타날 줄이야.

함정으로 의심하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도현을 보자마자 살기를 쏘아 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묵직한 발소리가 지진처럼 땅을 울렸다. 그와 함께 돌림노래처럼 우도현을 부르짖는 공안 헌터가 해일처럼 몰려옴에도 긴장감이란 눈곱만치도 없는 도현은 호수 너머 자광각을 눈에 담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제대로 찾아왔긴 한데.”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거기에는 자신을 향해 벌 떼처럼 몰려오는 헌터가 보였다. 그 수를 대충 헤아려도 5만이다.

그의 눈에 귀찮음과 짜증이 서렸다.

뭣 하러 이런 수고를 들였는지.

도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길 위에 뿌려진 돌이랄까. 밟고 걸어가기엔 맛 간 놈보다 정상적인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맛 간 놈은 천 명 남짓.

톈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까, 이젠 대놓고 사람을 앞세운다.

“우도혀어어언!”

“이 살인자!”

순식간에 도현을 에워싼 헌터들이 앞 다투어 무기를 휘둘렀다.

마법과 원거리 스킬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기가 찼다.

“하, 수준 낮은 짓은.”

한 명의 적에게 몰려들어 봤자 공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이다.

그런데 머리 위로 이런 공격을 떨어트리는 건 초보자도 안 하는 실수다.

아니면 다른 걸 노리는 건지도.

“어떤 새끼가 마법 썼어?”

“도, 도망가!”

도현은 별수 없이 손을 휘저어 마법을 없애며 헌터들을 날렸다.

그리고 뛰어올라 헌터들의 머리를 징검다리 밟듯 넘었다.

헌터들 사이에서 뒤늦게 들이미는 무기들이 물결처럼 이어졌다.

퍽!

한 헌터의 머리가 터졌다.

동시에 그 몸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자, 주변의 헌터들이 움찔했다.

소문과 영상으로만 봤던 일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도현은 빠르게 옮겨 다녔다. 폭죽 소리가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사라진 수만 341명.

문제가 생겼다.

이전처럼 사라질 줄 알았던 검은 연기는 수백 갈래로 나뉘어 주변 헌터들의 몸에 들어갔다.

“크아아악!”

“크으으으읍!”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헌터들이 고장 난 인형처럼 뚝 멈추더니 주변 헌터들을 베며 도현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 저거 바이위 아냐?”

서로 안면 있는 헌터들이 당황해서 이름을 외쳤다.

“저, 저우웨이? 크억!”

휩쓸린 헌터들의 비명이 사방으로 퍼졌다. 추수당하는 볏짚처럼 파편이 이리저리 날렸다.

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혀를 찼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혼란과 죽음,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않는 살육.

저렇게 생명이 꺼지고 남는 건 마이너스적인 마나.

확실했다. 여기 헌터들은 제물이다.

도현은 픽 웃었다.

“네놈만 경력자인 줄 알아?”

파리를 내쫓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헌터들이 뭉텅이로 하늘을 날았다. 종착지는 중난하이 중해 양옆의 북해와 남해였다.

갑작스럽게 텅 비어 버린 중해 호수 앞. 거기에는 1,700명 정도의 헌터가 당황한 듯 두리번거렸다.

퍼지더니 많이도 늘었다.

뭐 어쨌든.

이대로 띄워서-

착즙을 내 버릴까.

그런 고민을 하던 사이.

“하아압!”

놈들이 기합을 내지르자 모습이 변했다. 시대를 착각한 게 아닌가 싶은 검은 갑옷이 즐비했다.

‘아, 워프 던전.’

그놈이구나. 그런 작은 감탄을 하는데 웃긴 일이 벌어졌다.

서로 달려들어 찰흙처럼 뭉치더니 하나가 되었다. 3미터쯤의 은색 갑옷이 장검을 들고 도현을 노려봤다.

겉보기는 그저 검은색에서 은색으로 바뀐 것밖에 없지만,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은 헌터 급수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어중이떠중이라 해도 일단 헌터란 건가.”

4, 5급이 대부분이었던 헌터. 물량 공세에는 답이 없다더니.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용하던 은색 갑옷이 붉은 눈이 번뜩임과 동시에 사라졌다.

카앙! 와자자작!

은색의 장검이 도현의 머리 위에 떨어지자마자 터졌고, 갑옷은 찌그러진 캔이 되어 총알처럼 튕겨 나갔다.

그대로 호수를 가르고 워프에 닿더니,

파자자자작! 펑!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붉은 스파크가 튀더니 마지막엔 터져 사라졌다.

도현은 눈을 끔뻑였다.

“저것들은 워프에 못 들어가나?”

쫄따구를 떠나 헌터였으니 그대로 워프에 들어갈 줄 알았더니.

“뭐, 정리는 됐고. 신 놈 면상이나 보러 가 볼까.”

입가에 시원한 웃음이 걸렸다.

최근 여기저기 스트레스 받을 일만 많았던 탓에 쌓인 게 많았다.

걱정 없이, 뒤탈 없이 풀 곳이 생긴 거다.

거기에 신 놈이잖아.

신, 신, 신, 그놈의 신!

“그냥 여기 있다고 광고한 건 네놈이니까 억울해하지 말라고.”

도현은 가볍게 지면을 박찼다. 그놈이 있는 건물을 향해 발을 내디디려 할 때, 건물이 먼저 터져 나가며 리갈루스가 나왔다.

“우리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지? 만나서 반가워, 우도현.”

우박처럼 떨어지는 건물 잔해 사이로 웃는 붉은 머리의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손에 쥐어진 은빛 머리카락의 여자.

어떻게 된 건지 몸은 생채기로 엉망이었다.

도현은 눈썹을 찡그렸다.

“뭐야?”

“아, 넌 모르는구나. 소개하지. 난 8성의 타오르는 황금 군주 리갈루스다. 이 여자는 이제 막 신이 된 린 아니사. 곧 내게 모든 걸 바칠 여자지.”

차가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린 아니사를 보며 그가 입맛을 다셨다.

도현은 고개를 삐딱하게 젖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사가, 지키고 있으랬더니 자진 인질이야?”

린 아니사, 아니 사가가 뚱하게 말했다.

“다 네놈 때문 아니냐.”

“나?”

“그래, 이놈아! 워프 퍼 주라며?”

“아하, 할 일 다 했으면 집에 가면 되지, 잡혔어? 사가도 늙었네.”

“야, 이 미친놈아! 이놈이 쉬운 놈인 줄 알아? 지구로 치면 세 개는 처먹은 놈이야, 이놈이!”

리갈루스는 도현과 사가를 번갈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린 아니사, 설마 저 인간이 네놈 대리자인가?”

그그그그!

낮게 깔린 그의 음성에 주변의 대기가 진동했다.

도현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대리자란 말에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제브라드가 떠올라서다.

“진짜, 신이란 놈들은……. 후, 사가는 일단 보내고.”

“하, 쉽게 줄……?”

손에 쥐고 있던 린 아니사가 사라졌다. 그녀는 도현의 등 뒤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어, 어떻게 한 게냐?”

엉망진창으로 터진 얼굴로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보호 본능을 일으킬 만큼 안쓰러웠지만, 도현은 심드렁했다.

“펫은 온오프 되거든.”

“온… 오프?”

“알 필요 없어. 몸도 엉망인데 돌아가서 쉬어.”

도현이 손을 내저었다. 사가는 입술을 앙다물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저놈, 쉬운 놈이 아니야.”

픽 웃음이 났다.

“그럼 나는?”

저를 놔두고 말이 길어져서일까.

“이것들이 이 몸을 가지고 놀아?”

리갈루스의 눈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진동하던 대기가 한순간에 폭발하며 잡초를 뽑듯 대지에서 뽑힌 건물들이 도현을 향해 떨어졌다.

콰과과과과!

치즈 케이크에 압사당하는 개미처럼 온갖 건물이 동시다발적으로 엎치고 덮치며 주변은 분진과 유리 조각, 철근이 덜렁거리는 콘크리트 잔해로 인해 잿빛이 되었을 때,

푸화악!

공기가 터져 나가며 대기가 맑아졌다.

잠깐의 정적.

짜증 섞인 도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뭐 이런 조잡한 놈이 다 있어?”

“조잡? 하하.”

가볍게 웃던 리갈루스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우웅, 진동이 울리더니 화려한 문양과 보석이 치장된 금색 장검이 나타났다.

손잡이를 움켜쥔 그는 검 끝을 도현에게 겨누며 스산하게 말했다.

“고작 흉내만 낸 골고타를 쓰러뜨렸다고 기고만장한 꼴이 가관이구나.”

리갈루스의 검이 허공을 그었다. 느리면서도 묵직한 그 선이 끝나기도 전에 놀란 사가가 가만히 있는 도현을 붙잡고 멀리 피했다.

“무슨 짓이야?”

그렇게 내뱉은 도현이 멈칫했다. 떠 있던 그 자리가 와자작 깨져 나가며 금빛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사가가 말했다.

“공간째 부숴 버리는 능력이다. 저건 막을 수 없어! 닿아서도 안 된다!”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안일하게 생각한 자신의 실수였으니까.

일렁이던 금빛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구멍이라도 난 듯 검게 칠해진 채 되돌아오지 않았다.

리갈루스가 웃었다.

“감이 좋다니까.”

그리고 도현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여인에게 목숨을 구걸하다니. 사내로서 수치군.”

도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 어? 이놈아, 무슨 짓……!”

그러고는 아직 옆에 붙은 사가의 뒷덜미를 잡고 농장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목을 좌우로 풀며 주먹을 쥐었다.

“이, 악물어라.”

픽, 조소가 들렸다. 동시에 검과 주먹이 부딪쳤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시공간을 뛰어넘듯 음속으로 날아간 리갈루스가 자금성을 뚫고 그 너머 몇몇 높은 건물을 부수면서 멈췄다.

“오, 좀 막네?”

예상대로라면 바다까지 날아갔을 텐데.

“버러지 같은 인간 새끼가!”

도현의 머리 위로 나타난 리갈루스가 검을 내려찍으며 울부짖었다.

“이런 흉기는 좀 치우고.”

검 끝을 검지로 튕겼다.

짜자작, 껍질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한 뼘 길이만큼 균열이 거미줄처럼 그어졌다. 황금색을 뿜던 검날이 균열로 뒤덮인 부분만 회색으로 물들었다.

이대로 검날을 잡아 부러뜨리려 했던 도현은 감쪽같이 사라진 검에 리갈루스를 봤다.

저 멀리 거리를 둔 그의 손엔 검은 어디 가고 자수정 하나가 들려 있었다.

“워프만 빨리 터졌어도 이런 약한 몸뚱이는 아니었을 텐데.”

도현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그건 또 뭐야?”

리갈루스가 음산하게 웃었다.

“제대로 상대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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