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127. 여행 (3)
붉은 줄 완장, 3급 그린 등급의 공안 헌터가 검을 빼 들고 나와 도현을 겨냥하며 소리쳤다.
“살인자 우도현! 너를 국제 헌터법 위반, 대국법 위반으로 체포한다!”
재우는 극도의 불안감에 손톱을 씹었다. 다리도 달달 떨리며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어, 어, 어떻게 하지……?’
텔레포터는 은어로 헌터 택시라고 부른다. 텔레포트 스킬만 갖고 있기에 헌팅에서는 쓸모없고, 열차나 비행기처럼 먼 거리를 갈 수 없으니 계륵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텔레포터들은 헌터라면 당연하게 마주해야 할 기본적인 생리에 대해 전혀 몰랐다.
특히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죽여야만 하는 공포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아니, 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겪을 헌터는 없다고……. 사, 사람을…….’
이곳은 워프가 아니다. 현실이었다. 그것도 다른 나라의 땅.
재우는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저 중국 헌터보다 맞은편에 앉은 도현이 더 무서우면서도 든든했다.
‘무슨… 이런 개 같은 마음이…….’
자아 분열이라도 난 것처럼 모순적인 마음이 대립했다.
뜬금없는 번뇌에 속으로 비명을 질러 대는 재우와 달리 도현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밥 먹기 더럽게 힘드네.”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검을 빼 든 헌터가 도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스걱!
칼질 한 방에 테이블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무너졌다.
재우는 히익! 경기 일으키듯 일어나, 의자 뒤 벽에 등을 붙이고 벌벌 떨었다.
동시에 커헉! 소리가 나며 달려든 헌터가 제자리로 날아갔다.
주먹을 든 도현이 씹듯 내뱉었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도현이 사라졌다. 그리고 공안 헌터들 사이에서 듣기만 해도 괜스레 몸이 쿡쿡 쑤시는 비명이 돌림노래처럼 울려 퍼졌다.
퍽! 케헥! 퍼버벅! 끄어억!
찰진 타격음이 들릴 때마다 헌터들이 포탄처럼 날았다.
“하, 합공이다!”
“하앗!”
퍼버버벅!
몇 명이 공격해도, 무서워 도망을 쳐도 전부 도현에게 닿기도 전에 휘둘러진 주먹에 사방으로 튕겼다.
원샷원킬!
벽에 박혀 기절하거나, 유리창을 뚫고 튕겨 나가는 헌터도 있었다.
도현의 움직임을 좇을 수 없던 재우의 눈에는 그저 헌터들이 달려들었다가 날아가는, 몸 개그를 보여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눈을 몇 번 깜빡였을 뿐인데, 볼링 핀처럼 쓰러진 공안 헌터들 사이에 홀로 선 도현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게 신의 모습…….’
침을 꿀꺽 삼킨 재우는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렸다.
그때 첫 타를 맞고 뻗었던 붉은 선 완장의 헌터가 새우처럼 말았던 몸을 억지로 펴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우도현!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 넌 이제 어떤 땅이든 밟지… 커헉!”
도현의 발아래 달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헌터의 머리가 새카맣게 썩어 들어가더니 연기로 화해 사라져 버렸다.
옷가지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남았다.
그나마 정신을 잃지 않은 헌터들 사이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현이 다시 움직였다. 끊고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복을 입은 이들 중 절반이 옷만 남긴 채 사라졌다.
“괴… 괴물!”
“사, 살인자!”
두려움에 주춤주춤 물러나는 헌터들을 심드렁하게 보던 도현은 파란 줄 두 개가 그어진 완장의 헌터에게 말했다.
“저것들이 인간이야?”
“히, 히익!”
몸을 누르는 압박감에 헌터는 입을 뻥긋거릴 수 없었다.
“검은 연기를 뿜는 게 인간이냐고.”
“제, 젠장……. 무, 무슨 말…….”
도현은 일방적으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이 나라의 법을 지키고 시민들을 보호하는 경찰이라면, 지금 이 짓거리가 옳은지부터 생각해.”
그러고선 멀뚱히 서 있는 재우 옆 사내에게 말했다.
“밥은 주냐?”
기척을 읽지 못하는 재우는 놀라 거리를 벌렸지만, 사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탄식했다.
“대체 뭐라는지……. 하, 너 뭐 하는 놈이야?”
“밥은 주냐고.”
언어의 벽에 답답함을 느끼던 사내의 시선이 재우에게 향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던 재우는 눈을 굴리다, 왼 손바닥에 손가락을 모아 쿡 찍어 입에 대는 시늉을 했다.
“라, 라이스…….”
이해한 사내 입술이 비틀리자 재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내가 말했다.
“…이래서는 무슨 얘기를 하겠어.”
그때 조리실에서 손을 든 얼굴 하나가 삐죽 올라왔다.
“저… 통역 필요하시면 저, 저는 어떠십니까……?”
자신이 주펑이라 밝힌 그는 25살의 사내였다.
전문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여행 가이드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사내, 주티엔용은 주펑을 데려가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도현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안 내키면 서로 갈 길 가자고 하십니다.”
주펑이 도현의 말을 날것 그대로 주티엔용에게 전했다.
주티엔용의 눈이 도현에게 꽂혔다. 웬만한 사람들은 절로 입을 닫게 할 시선이었지만, 도현은 심드렁한 얼굴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주티엔용은 짧게 숨을 토하고는 주펑을 향해 낮게 경고했다.
“지금부터 넌 본 것도, 들은 것도 없는 거야.”
주펑은 어색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최근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 도현을 직접 보자마자 팬심에 흥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하긴 했지만…….
‘주, 죽는 건 아니겠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주티엔용은 몸을 돌려 조리실로 향했다. 벌써 창밖에 모여든 구경꾼을 의식해서다.
도현이 그를 불렀다.
“야, 번역기 챙겨.”
홱 돌려진 얼굴은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일 모습이었다.
“네 거지, 내 거냐.”
이를 으득 씹은 주티엔용은 주펑에게 눈짓했다.
“통역산데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주티엔용의 뒤를 따르며 주펑이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도현은 아직 벽 앞에 선 재우를 보며 저만치 간 두 사람을 향해 턱짓했다.
가게를 벗어난 주티엔용은 다짜고짜 주펑의 뒷덜미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체격이 두 배나 큰 주펑이 끌려가는 모습은 아이러니했다.
좁은 골목을 다 꿰고 있듯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두 사람에게 끌려가는 주펑과 재우만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순식간에 변하는 골목길에 벌어지는 입을 양손으로 막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느 골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기묘한 느낌에 의아해하던 도현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도심에서 벗어난 건지 눈앞에 주거지가 펼쳐졌다.
주티엔용은 멈춘 도현을 무시하고 더 속도를 붙여, 담을 넘어 집과 집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뭐, 실력이라도 보겠다는 건가?
도현은 픽 웃으며 걸음을 멈췄다. 손에 잡힌 재우에게 한마디 했다.
“눈 감아.”
의아해하던 재우는 눈앞에 불쑥 다가온 거대한 초록색 몬스터에 두 눈을 부릅떴다.
‘오, 오, 오, 오우거? 워프도 아닌데?’
“어어억! 크흡!”
재우가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퍼덕거렸다.
도현은 멀어지는 주티엔용을 보기만 했다.
왼쪽으로 빠졌다가 오른쪽으로 휘어 푹 꺼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중간중간 담을 넘기도 하며, 이상한 개구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것 봐라?’
블링크로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 하는 듯 빨리 움직이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 기척을 숨기고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마법으로 치자면 환상 마법 일루전쯤.’
그렇다 해도 오감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환상은 무척 재미난 장치였다.
그러길 30분쯤 흘렀을까.
환영이 가만히 서 있던 주티엔용에게 겹쳐지며 드디어 실체가 걷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옛 중국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회색의 높은 돌담 앞이었다.
주티엔용은 기절한 주펑을 손수레처럼 질질 끈 채 도현을 돌아보며 감탄했다.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어.”
중국어였지만 표정만 봐도 의미를 이해한 도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드디어 자유를 얻은 재우는 지칠 대로 지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수분을 훔치고 있었다.
주티엔용은 높은 돌담을 따라 걷더니 갑자기 돌담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헉!”
벽을 박을 줄 알았는데, 그대로 통과하며 사라졌다.
재우가 놀란 사이 도현도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버렸다. 주저하던 재우는 눈을 질끈 감고 돌진하듯 뛰어 들어갔다.
철퍼덕!
“얽!”
발끝에 딱딱한 게 걸린다 싶더니 차가운 돌바닥이 격하게 인사했다.
까진 턱과 무릎이 쓰라렸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 슬쩍 눈을 떴다. 오른쪽에 못마땅한 얼굴의 도현과, 왼쪽으로 기절한 주펑과 주티엔용을 제외하고 세 사람이 보였다.
주티엔용의 반걸음 앞에 선 사내와 청초한 여인, 그리고 할아버지 한 분.
“일어나.”
도현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에 재우는 벌떡 일어났다.
손으로 옷을 털고 사람들을 보니, 주티엔용 앞에 서 있던 사내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왕호우더.”
자신만큼 큰 키지만 근육으로 다부진 몸이 오랫동안 수련을 해 온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황금색의 치파오를 입은 청초한 여인이 반짝이는 눈에 장난기를 담아 한 손을 흔들었다.
“리찌리인.”
그녀의 옆, 뒷짐을 진 채 허허 웃는 할아버지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샤오지예.”
고개를 끄덕인 도현이 짧게 대답했다.
“우도현.”
그러자 모든 시선이 재우를 향했다.
“이, 이재우… 입니다.”
***
소개가 끝나자마자 이어진 건 식사였다.
직사각형 식탁에 세 사람씩 마주 보고 앉았다.
샤오지예는 할머니, 쇼쇼와 음식을 준비해 식탁에 놓았고, 모두 식탁에 한둘씩 놓이는 음식만 쳐다볼 뿐이었다.
“아, 아, 이런 분위기는 별론데.”
리찌리인이 좀이 쑤신 듯 몸을 비틀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반짝이며 도현에게 물었다.
“밀입국이라며, 왜 왔어?”
도현 양쪽에 앉은 재우와 정신을 차린 주펑이 동시에 도현을 봤다.
“여행.”
“…….”
리찌리인은 당황해 되물었지만, 두 사내의 눈초리는 썩 좋지 못했다.
주티엔용은 도현을 노려봤다.
“검은 연기.”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었다. 뜨끈한 공깃밥과 음식을 보니 참기 힘들어서다.
눈을 부릅뜬 왕호우더가 식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주티엔용 님이 말하지 않았나!”
도현의 젓가락이 닿기도 전에 그릇들이 엎어졌다.
리찌리인은 짧게 비명을 지르며 왕호우더를 째려봤다.
재우는 하얗게 질려 버렸다.
조금 전 가게에 난입한 제복의 헌터들을 팰 때도 그랬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손가락만 튕기면 될 일을 직접 나선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예상이 끝나기 무섭게 왕호우더의 몸이 날아 반대편 끝 벽에 처박혔다.
콰- 앙!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도현이 처음으로 살기를 내뿜었다.
“죽, 는다.”
다급하게 주방에서 나온 노부부. 그리고 식당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두 사람은 젓가락을 든 채 인상을 찌푸린 도현을 황당하게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