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25화 (125/200)

# 125

125. 여행 (1)

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슬슬 준비하고 가야겠네.”

어제까지만 해도 휴대폰을 짐짝 취급했던 도현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어제 잊고 넘겨 버렸던 요리 학원 수업 때문이었다.

그렇게 벼르던 요리 수업을 허망하게 보내 버렸으니.

‘평소였다면 모르달이 확인하고 챙겨 줬을 텐데…….’

모르달이 펫이 된 후 엄마, 아빠의 전화 담당은 자연스럽게 모르달이 되었다.

더는 전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함께 휴대폰은 머릿속에서 잊혔다.

거기에 헌팅으로 정신없다 보니 인벤토리에 처박아 두고 까먹기 일쑤였고, 모르달이 매니저가 되고서는 비서 역할까지 하자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어머, 마나석 휴대폰 쓰는 거 아니었니? 하긴… 전화가 꺼져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엄마의 말에 마나석을 배터리로 쓰는 휴대폰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마나석 고유의 파장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워프에서도 터진다고.

그래서 헌터 전용이라지만 누구나 돈만 있으면 쓸 수 있다고.

얇고, 심플하고, 가벼운 사각 라운딩 외형.

비싼 만큼 실존하는 웬만한 기술은 다 들어간 슈퍼컴퓨터였다. 그리고 충전도 필요 없었다.

단점을 꼽자면 휴대폰을 끌 수 있다는 것 정도.

‘자, 여분 기계. 이거 최신 기종이다? 칩만 빼서 넣으면 돼.’

‘웬 여분 기계야?’

‘헌팅 하다 보면 쉽게 부서지거든.’

‘헌팅? 혹시 농장에서?’

‘아니, 나한텐 일이 헌팅이지. 가끔 혈압 오르면 힘 조절이 잘 안 되거든.’

어쨌든 도현은 모르달의 빈자리를 깨달을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게 새로 켠 휴대폰에 쌓인 문자를 확인하던 도현은 어제 온 문자 중 요리 학원 셰프, 지석환 셰프에게서 온 문자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우도현 헌터님. 요리 수업을 맡은 지석환 셰프입니다. 상황이… 따로 한번 뵙고 싶은데, 시간 되십니까?]

도현은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요리 수업만 손꼽은 이유는 지석환 셰프가 몬스터를 재료로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도현은 바닥에 대자로 뻗어 헉헉대는 이재우에게 말했다.

“숨 돌렸으면 그만 일어나.”

“헥, 헥, 형… 또 해요?”

해가 뜨자마자 훈련이 시작되었다. 차도식과 하지현이 P팀 훈련을 맡으려고 했었는데 도현이 재우를 빼 왔다.

텔레포터에 대한 호기심 반, 궁금증 반이었다.

하지만.

“최대 거리요? 14킬로미터… 대충 서울 시청에서 광명 시청까지 가능합니다!”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는 재우를 어이없다는 듯 봤다.

“고작 그 정도밖에 못 간다고?”

“예? 정말 빠른 헌터도 20분은 걸리는 거리인데요? 계양산 워프 브레이크 때도 제가 다 옮겼다고요!”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지만, 도현이라면 날아서 1분이면 갈 거리다.

워프 브레이크가 다시 일어난다면 그 시간도 아쉬운 게 맞긴 한데…….

“잠깐, 광명보다 계양산이 더 멀지 않나?”

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중간에 한 번 포인트 찍고 넘어가죠. 다른 텔레포터라면 5번은…….”

도현은 한숨을 내뱉으며 재우를 잡고 텔레포트를 썼다.

농장에서 바다까지.

모래사장에 털썩 앉은 재우는 하얗게 질려 도현에게 물었다.

“테, 텔레포터이십니까?”

도현이 대답 없이 빤히 보고 있으니 알아서 입을 닫았다. 재우는 깊게 생각에 잠기더니 한참 뒤 다시 물었다.

“거… 거리가 얼마나 되죠?”

“서울에서 부산까지.”

히익!

“그 3배쯤.”

딸꾹!

“텔레포터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갈 수 있어야지.”

도현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리자, 딸꾹질하던 재우는 눈에서 땀이 흘렀다.

그 모습이 처량해 더는 닦달하지 않았다. 대신,

“텔레포트, 하루에 얼마나 쓸 수 있지?”

“10명을 최대 거리로 10번 가능합니다.”

“그럼 너 혼자면 100번?”

“아뇨. 30번까진…….”

너무 비효율적인데.

“그, 그래도 많이 발전한 거예요! 처음에는 고작 혼자서 3킬로미터 거리를 가는 게 다였으니까요…….”

그땐 한 번밖에 안 되는 것도 모르고 갔다가 차비가 없어서 걸어가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요…….

기가 찼다.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아니면 헌터들이 너무 수준이 낮은 걸까.

“어쨌든 사용할수록 늘어난다는 거지?”

도현의 결론과 달리 재우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급수만 올라가면 더 멀리, 횟수도 늘더라구요.”

“급수?”

“헌터 급수요. 3급까지는 강하면 높은 급수를 따는데, 그게 마나통 크기와 같거든요.”

정말 게임 용어를 사용하네.

사가가 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했다더니.

익숙하면서 보편화 된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간간이 사용되는 은어 중에 게임 용어가 많았다.

‘마나 크기라…….’

도현은 재우를 슬쩍 훑었다.

4급 그린쯤.

‘매부랑 동급이 되면 얼마나 가능하려나?’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20번은 할 수 있어야 그나마 쓸 만할 텐데.

마나통을 개선하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이었다.

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오랜만에 아이템을 꺼냈다.

두꺼운 검은 링에 납작한 삼각뿔 형태의 푸른 사파이어가 달린 피어싱이었다.

“이거 껴.”

“이거 피어싱 아니에요?”

“끼라니까?”

“귀 안 뚫었… 크악!”

도현이 강제로 귀를 뚫어 버렸다.

퉁퉁 부은 귀를 만지지는 못하고 벌벌 떨던 재우는 통증이 훅 가심과 동시에 마나가 커지자 눈도 덩달아 커졌다.

떨리는 손으로 피어싱을 터치해 아이템을 확인했다.

엠통(유일)

초보 딱지 뗀 거 축하한다!

6서클 마법사 우도현에게.

p.s 근데 엠통이 뭔 뜻이냐?

<이오르>

마나 확장

정신력:100

옵션:마나 확장은 정신력에 비례.

“6… 6서클… 초보?”

덜덜덜.

귀신 보듯 바라보는 시선에 도현이 인상을 팍 썼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채는 게 능력만 받쳐 주면 꽤 쓸 만한데.

언제 키워 쓸지. 입맛을 다시던 도현은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시작하자.”

“예?”

“훈련.”

그렇게 5시간을 굴러 농장과 바다를 수백 번 왕복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농장까지 가는 것도 죽을 것 같던 게, 계속 종용하는 도현이 무서워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움직였다.

여기가 어딘지, 얼마나 반복했는지.

마나야 진즉에 바닥나 허덕이는 건 익숙해졌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곡소리를 내도 훈련은 강행되었다.

진짜 한 번만 더 하면 마나홀이 깨질 것 같은데, 그러면 이미 누려 온 모든 걸 잃을 텐데도 묘하게 사람을 긁는 목소리에 악이 받쳤다.

그 결과가 5시간째 텔레포트를 한 거다.

중간에 짧게짧게 휴식이 있긴 있었다지만… 이게 가능한가?

‘정신력…….’

어떻게든 버텨 낸 정신력. 이게 해답인가?

재우는 손으로 피어싱을 만지작거렸다.

피어싱과 공명한 마나홀은 본래 자신이 아는 크기에서 10배쯤 커진 상태.

계산상 그 크기로는 10번 왕복도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능했다.

‘거리 개념이 아닌 걸까……?’

재우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각성 초기, 그가 먼저 생각한 건 여행이었다.

어려운 생활에 10대를 아르바이트와 학업으로 보내야 했던 그의 삶에 여행은 사치 중의 사치였다.

10년도 넘은 컴퓨터로 가고 싶었던 지방의 유명 관광지나 도시, 마을을 알아보며 보게 된 사진이 있었다.

너무나도 멋진 절경에 자신도 모르게 가고 싶다는 말을 중얼거렸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키보드에 얼굴을 박고 기절했다가 눈을 뜬 거였다.

그땐 기절했다는 사실보다 코피에 절어 키보드가 붉게 물든 게 충격적이었다.

이후 재우는 두 번 다시 절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몸이라도 아프면 아슬아슬한 생계가 일순간에 무너져 버리니까.

‘근데 내가 왜 옛 생각을 하고 있었지?’

“뭐 해? 가자니까?”

머리를 벅벅 긁던 재우는 도현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젠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긴장해 버릴 정도였다.

괜히 재현 형 말에 넘어가서는…….

월급도, 복지도, 생전 들어 본 적 없는 대우에 눈이 뒤집혔다는 게 맞다.

몸을 일으키자 머리에서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런데 그게 왜 눈에서 떨어진 것 같을까.

울적해진 재우는 힘없는 목소리로 도현에게 물었다.

“형, 그런데 어디 가요?”

“너 좋아하는 음식 있어?”

“다 잘 먹습니다. 특히 워프산 음식은 없어서 못 먹죠!”

그 때문에 늘 통장이 텅장이 되는 건 재우만의 비밀이었다.

맛있으면 0칼로리니까!

훈련이 고돼서인지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위가 크게 울부짖었다.

마치 항의하는 것 같았다.

기다려라. 이 엉아가 맛난 놈으로 채워 주마!

군침을 꿀꺽 삼키던 재우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헤, 근데 뭐 먹으러 가요? 다 같이 가죠? 전화해 볼까요?”

“아니, 둘만.”

“예에?”

재우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왜, 둘이?

설마 스카우트 제의?

재현 형에 이어 도현 형까지?

텔레포터 특성상 큰 쓸모가 없는 탓에 팀보단 프리 헌터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수입은 들쭉날쭉하고, 이미 좋은 걸 맛본 몸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총체적 난국에 프로페셔널 팀의 제의가 들어왔다.

덥석 물긴 했지만, 또다시 제의가 이어질 줄은!

크,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재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내가 줏대가 있어야지. 처음 나를 구제해 준 건 어쨌든 프로페셔널 팀이었으니까.’

남아일언중천금!

재우는 도현을 진지하게 보며 힘 있게 말했다.

“도현 형,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자랑스러운 프로페셔널 팀의 팀원입니다!”

도현은 눈썹 한쪽을 찡그렸다.

“뭐야? 훈련하러 간다니까.”

도현은 하얗다 못해 영혼이 빠져나간 재우를 질질 끌고 집으로 갔다.

***

도현과 재우가 간 곳은 한 달 전 찌롱이의 결혼식이 있었던 리마스서울호텔이었다.

텔레포트로 한 번에 호텔의 50층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재우는 탄식했다.

“여긴 변한 게 없네요.”

“와 봤어?”

“예. 도식이 형님이랑 지현이 누나 결혼식 때요.”

“너도?”

“당연하죠! 저 이래 봬도 꽤 유명한……. 형은 사람이 아니니까 제외하고요.”

“뭐?”

“신이잖아요. 그 정도 능력이면 인간이라 하는 게 매너가 아닌 듯. 아무튼 여기 레스토랑 음식 진짜 맛있는데. 하필 그날 땜빵이 떴는데 따따불 불러서 맛만 보고 간 게 진짜 아쉬웠거든요.”

도현은 어이가 없어 웃다가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다시 와서 먹으면 되지.”

“아… 여기 얼마나 비싼데요. 그리고 텔레포터들은 능력이 그렇게 필요한 게 아니라서 프리 헌터 취급이라고요. 그것도 서러운데, 하필 워프산 요리 맛을 알아서는… 크흑!”

“배 터지게 먹어 둬.”

도현은 어깨를 토닥이며 같이 걸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리고 3시간 뒤.

두 사람은 시끌벅적한 도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웁, 우웨에에엑!”

도착하자마자 벽을 붙잡고 연신 속을 비워 대는 재우와 그런 재우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도현.

둘은 그렇게 중국, 텐진에 도착했다.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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