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24화 (124/200)

# 124

124. 프로페셔널 팀 (3)

도현은 진미경을 만난 뒤 모르달을 찾았다.

하늘을 날았다가 거리를 걸었다가.

혹시나 싶어 부서진 길이나 부서진 집을 찾아봤지만, 정부 때문에 날카로워진 헌터나 각성자가 저지른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남 땅끝마을까지 다녀온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기도 전체를 훑으며 헌터 협회를 지나던 도현은 협회 건물에서 나오는 차도식을 발견하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매부?”

“처남님! 그렇지 않아도 처남님께 어떻게 연락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듯한 차도식 뒤로 세 사람이 보였다.

시선을 느낀 차도식이 주위를 슬쩍 살피더니 도현에게 귓속말을 했다.

“함께 농장에 갈 수 있겠습니까?”

저들이 누구이기에?

의아해하는 걸 알아챘는지 작게 ‘그, 전에 말씀하셨던 전속 팀입니다.’란 말이 이어졌다.

시간은 벌써 해가 지고 밤 9시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낼까…….’

하루 만에 모르달을 찾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도현은 4명과 함께 농장 공터, 자신의 집인 목조 주택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거실에 모였고, 자연스럽게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우 헌터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프로페셔널 팀 팀장 서재현입니다.”

살짝 고개 숙이며 싱긋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젠틀해 보이는 사내였다. 그 옆으로 여인이 두 손을 배에 모아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우도현 헌터님! 헌팅 보고 팀… 아니, 프로페셔널 팀 팀원 이정현입니다. 실제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 팬입니다!”

어깨에 살짝 닿을 듯 말 듯 한 펌 단발과 초롱초롱하게 떠진 눈이 고집 있어 보였지만, 나름 당차 보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맨 마지막에 선 사내로 향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스물넷의 건장한 사나이, 이재우라 합니다! 마, 만나 뵙게 되어 가, 감사… 아니 기쁩니다!”

키는 도현보다 조금 컸다. 190센티미터쯤. 덩치도 큰 편이었는데, 순박한 외모로 보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기보단 왠지 끌려온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인상은 좋았다.

도현은 3명을 데려온 차도식을 바라봤다.

“3명이 끝인가요?”

“예, 처남님. 시간을 두고 더 차출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현이 불씨를 붙였지만, 그걸 키운 건 정부였다.

오히려 도현의 깽판 덕에 정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며 헌터들의 곪았던 불만이 터져 버렸다.

정부도 어느 정도의 반발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전면전을 선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몬스터를 상대하는 헌터들이 그저 각성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거다.

그 덕에 블랙홀 팜 사업도 편하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물론 블랙홀이 여러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있다지만,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헌터들의 공식 입장 발표에 경찰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질 새우 신세가 되었다.

이대로 정부를 밀어 대청소까지 끝낸다면 딱 좋은데.

괜히 입맛이 다셔졌다.

아무튼.

“그건 차차 생각해요. 계획은요?”

프로페셔널 팀. 줄여서 P팀의 서 팀장은 이미 아는 듯 혼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르는 두 사람의 시선이 차도식을 향했다.

차도식은 그게 신호가 된 듯 진지하게 말했다.

“훈련, 오직 훈련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좋은 훈련장도 생겼지 않습니까. 강한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헌팅과 육체 단련! 그리고 대련을 통해…….”

중간중간 밥값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자니 탄식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도현은 차도식을 무시하고 셋에게 물었다.

“능력이 어떻게 되죠?”

“올라운더입니다.”

서 팀장이 담백하게 말했다. 뒤를 이어 이재우가 버벅대며 대답했다.

“테, 텔레포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정현은 한숨을 쉬며 세상 포기한 듯 자신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배를 깔고 앉아서 늘어지게 하품했다.

“정령 마루예요.”

-안녕?

“마, 마루다! 진짜 보여!”

“마루가 보이는군요?”

“음, 농장이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는 이재우와 놀란 건지 감상인지 모를 말을 하는 서 팀장, 그리고 정령이 보이는 현상을 분석하는 차도식.

그런 셋과 달리 도현은 작게 감탄했다.

‘역시 능력 하나는 좋은데.’

협회장이 편협한 시야의 독불장군이라 해도 그 자리에 거저 앉은 게 아니었다.

도현은 이제 하루가 시작되는 농장 시간과 동떨어진 물음을 던졌다.

“저녁은요?”

차도식이 대답했다.

“아직입니다. 훈련 중이던 세 사람을 억지로 데리고 나왔었습니다.”

마침 농장이고 하니 같이 먹는 것도 괜찮겠지. 대화도 하고 말이다.

“그럼 둘러보고 있어요. 재료 좀 구해 올게요.”

차도식이 협회장을 데려와도 되냐고 묻는 말에 좋을 대로 하라고 말한 도현은 정신 감응으로 오제아에게 토토의 상태를 물었다.

‘토토 님은 광산… 화산 지대에 계세요. 건물은 완공되었고, 인테리어로 사용할 예술품들을 조각하고 계실 거예요.’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 도현은 온 김에 토토와 대화를 해 볼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화산 지대에 왔다.

방문자로 왔던 꼬마 엘프들에게 줄 후룰루타의 열매를 따러 갔던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때만 해도 화산을 뛰어다니는 크로아와 계곡처럼 흐르는 용암에 몸을 담근 아홀로틀이 수두룩했었는데, 어찌 된 건지 오늘은 화산 주변이 아닌 끄트머리에 단체로 피신해 있었다.

화산 근처에 가자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용암보다 더 뜨거운 고열이 화산을 뒤덮고 있었다. 오죽하면 분출한 용암마저 스프처럼 끓고 있을까.

그 고열의 중심지는 화산 중앙의 유난히 큰 동굴이었다.

땅! 따당! 땅!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 슬쩍 다가가니 깊지 않은 동굴 안에 성체의 토토가 왼손으로 물체를 쥐고 망치로 두들기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 내는 건 토토 몸 전체를 둘러싼 푸른 불꽃이었다.

도현은 입구에서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긴장이라고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이게 뭐라고 이러는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고민을 여기서 하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1분 넘게 마음이 갈팡질팡하는데, 망치질을 멈춘 토토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도현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들어오시게.」

토토가 아니다. 누구지?

커졌던 눈이 가늘어졌다.

적? 신 놈들? 여긴 농장인데?

「그리 무섭게 보시지 말게. 그저 이 아이에게 대장장이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을 뿐이니.」

평소와 달리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카누스. 그가 강림한 상태였다.

아무리 긴장했어도 그렇지, 저걸 알아보지 못했다니.

복잡한 감정이 요동치며 불쾌감이 치솟았지만, 꾹꾹 눌러 담은 도현은 성큼성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늦게 온 거 아닌가? 아비로서 무책임하구먼.」

떠드는 말은 질책이었지만, 입가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이 괴상해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하려고 하자, 불카누스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잘 왔네. 자식을 키운다는 게 쉽지 않지?」

뭐야, 이 늙은이는?

얼굴에 속마음이 다 쓰여 있다는 말을 자주 듣긴 했지만, 이건 달랐다. 마치 전라로 모든 게 다 까발려지는 느낌이다.

「이번 일로 충격이 컸어. 형이라 생각했던 모르달이 그렇게 나가 버렸고, 아비는 방관했지.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네. 서로의 입장이 달랐을 뿐, 단지 이 어린 화신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는 게지.」

도현도 그게 고민이었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렸다. 돌원숭이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토토의 행동들은 많이 쳐줘 봤자 4살 아이였다.

「그래서 고맙네.」

“뭐?”

도현의 표정은 지금 속마음과 정확히 일치했다.

지금 장난해?

불카누스는 그런 도현을 기특한 손자 보듯 따뜻한 눈으로 봤다.

「이 아이가 진심으로 고민이란 걸 하게 됐네. 튼튼한 집과 따뜻함, 그리고 안락함은 좋은 환경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게 만들기도 하지.」

온실 속의 화초란 말인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서로 떨어졌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같구먼. 자네도 토토도 깨달은 게 있으니 말일세. 그럼 자리는 마련됐으니 당사자끼리 대화해 보시게.」

도현은 당황했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당장 빠져 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불카누스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클클, 그리 당황하지 마시게. 무엇이든 정답이란 건 없지 않겠는가. 그저 부딪치고 깨지고 넓혀 가는 게지.」

참, 우리가 나눈 대화는 토토도 지켜보고 있었네.

마지막으로 놀리듯 덧붙이던 불카누스는 동굴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아, 젠장…….

도현은 낯이 뜨거워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축축하게 젖은 초록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복잡했던 머리가 뚝, 하고 사고를 멈췄다.

최대 고민이었던 마음의 준비고 타이밍이고 다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토토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났다. 얼굴 근육이,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리고 양팔을 벌렸다.

“토토야.”

“아빠!”

순식간에 작아진 토토가 껑충 뛰어 도현의 품에 쏙 안겼다.

가슴에 묻은 얼굴을 비비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렸는데, 들을 수 있는 단어는 아빠와 모르달이 다였다.

도현은 그저 그런 토토의 등을 쓸었다 토닥였다 하는 게 전부였다.

5명의 식사는 토토와 도현의 부모님, 오제아, 고양이 사가, 견족이 된 강혁, 그리고 급하게 부른 하지현까지 해서 총 12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도현이 생각했던 건 민혁과 아바에게 했던 자신의 이야기와 지구가 이렇게 된 이유였다.

어쨌든 최소한의 인원이 이 자리에 모인 거다.

“그런데 협회장은 왜?”

도현이 딱히 반갑지 않게 사가에게 물으니,

“저렇게 보여도 보고, 듣고, 생각은 하고 있을 게다.”

집에서 봤을 때만 해도 정신이 가라앉았다더니.

그래서 매부가 헌터 협회에 간 건가?

그렇게 상황을 유추할 때 아빠, 우대성이 헛기침을 했다.

“도현아, 아빠 친구다.”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예의는 지켰으면 하나 보다.

말인지, 똥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하는 말일까.

도현은 답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식사와 겸할 생각이었다.

요리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빠르게 마법을 썼다. 주방 허공에 워프산 재료가 둥둥 떠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씻기고, 털고, 자르고, 재우고, 데치고, 삶고, 볶고, 튀기고.

도현의 손짓에 따라 다양한 요리법이 동시에 펼쳐졌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모두가 감탄하는 가운데 사가만이 미친놈 보듯 도현을 보며 혀를 찼다.

말이 쉽지, 저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법식만 해도 수백여 가지.

5천 살 먹은 드래곤도 따라 하기 힘든 난이도였다.

그런데 그걸 고작 요리에 사용하다니.

속으론 욕을 해 댔지만, 고소하게 퍼지는 음식 냄새에 군침이 고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0분이란 짧은 시간에 많은 요리가 거실의 큰 테이블에 차려졌다.

이때까지 도현이 만들어 먹어 본 요리들로 가득했는데, 모두가 감탄하며 수저를 들었다.

도현도 천천히 먹으며 모두를 부른 이유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같은 말을 세 번째 반복해서일까, 도현은 이전과 달리 핵심만 짚으며 빠르게 이야기를 넘겼다.

제일 공을 들여 설명한 건 지구의 변화와 그 이유였다. 신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많은 이야기가 나온 탓에 프로페셔널 팀과 도현의 부모님, 차 부부는 충격과 혼란 사이에서 한참이나 생각 잠겨 있었다.

이후 대비에 관한 이야기는 각자의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자리를 갖기로 하고 식사를 끝냈다.

자리에 남은 건 도현과 프로페셔널 팀, 차 부부, 협회장 강혁이었다.

농장에서 훈련을 진행할 생각이었기에 남은 하루 정도는 마지막 휴식으로 각자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는 엄마, 임혜정이 슬쩍 도현을 불렀다.

“아들, 잘 먹었어. 요리 꽤 하던데?”

“어, 그래……?”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리 배운 거야? 학원 가서?”

“아니. 그냥 먹고 싶어서 인터넷 보고 만든 거야.”

“오- 의외네. 그런데 엄만 그럴 줄 알고 있었지.”

“무슨 말이야?”

엄마가 이런 화법을 쓸 때마다 불안했다.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안 된다. 그리고 그 끝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가정식, 그러니까 집 밥이면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만들어 먹으면 돼. 하지만 오늘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요리의 조화와 상성을 따져야 하지 않을까? 정말 요리가 하고 싶다면.”

조화와 상성?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에 임혜정은 조금 더 풀어서 말했다.

“치킨과 샐러드는 좋았어. 그런데 그 음식이 수육과 어울릴까? 꼬치는? 전부 살펴보면 식사보단 술에 어울리는 안주 같았거든.”

“아아…….”

그제야 도현은 식사라는 게 무엇인지 감이 잡혔다.

예전에 엄마가 만들어 준 밑반찬에 김치찜과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은 그날이 떠올랐다.

그런 한 상. 어울림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임혜정은 씩 웃더니 도현의 볼을 잡아 늘렸다.

“그러니까 학원 등록해서 정식적으로 배워 봐. 조화나 상성 말고도 플레이팅도 다양하고, 재료에 따른 요리법도 무궁무진하니까.”

“응. 학원은 등록해 뒀어.”

“그래? 수업은 어땠는데?”

“아직. 셰프가 헌터라서. 토요일에 첫 수업 겸 몰아서 하기로 했어.”

눈을 깜빡이던 임혜정은 웃음이 터져 버렸다.

“아들, 오늘이 토요일이야. 아니, 현실은 밤 10시를 넘겼을 테니 이미 수업은 끝났겠네.”

“어… 어!”

그렇게 이튿날, 지옥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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