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23화 (123/200)

# 123

123. 프로페셔널 팀 (2)

차도식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은빛 작은 털 뭉치. 목에 걸린 검은 목줄이 도드라진 고양이는 꼬리를 한껏 치켜든 채 도도하게 걸어 도현 옆에 식빵 자세로 앉았다.

도현이 짜증을 담아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런 건 말 안 했잖아.”

“안 묻지 않았느냐.”

콧방귀를 흥, 뀌며 고개를 돌리는 사가. 도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 요즘 키리카가 팍팍 준다던데 다이어트 좀 할까?”

“크흠! 예전에 딱해서 도와준 것뿐이다.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그럼 저건 뭔데.”

도현이 강혁을 향해 턱짓했다.

“정신 붕괴군. 인간의 자아가 가라앉아 짐승의 본능이 드러난 거지.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 걸 테고.”

“알아듣게 설명해.”

“이런 거다.”

사가는 몸을 일으켜 강혁에게 다가갔다. 복슬복슬한 꼬리로 강혁의 가슴을 툭 치니 푸르스름한 영체 하나가 튀어나왔다.

“개?”

차도식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진돗개와 비슷한 외형이지만, 털이 더 북슬북슬했고 주둥이가 둥글면서 두툼했다.

영체는 사가를 보자마자 뭐가 즐거운지 꼬리를 흔들며 사가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워프에 인간과 함께 휘말린 짐승이지. 주인을 구하기 위해 몬스터를 상대하다 죽었다.”

“그 충격으로 각성했다고?”

“아니. 각성한 건 짐승이다.”

“짐승?”

도현이 눈을 부라렸다.

“흠흠, 나도 처음 한 일이니까 실수는 할 수 있지 않느냐. 여튼, 그 자리에서 못 벗어나는 인간이나 짐승이 딱해 도와줬다.”

“골고타처럼 한 건가?”

“그런 저급한 방법은 쓰지 않는다. 마나석… 심장이라고 해야겠군. 그걸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금 도와줬을 뿐이지. 그나저나 아직 짐승의 의지가 남아 있는 것은 의외구나. 뭐, 이놈의 의지가 없었다면 인간은 벌써 죽었겠지만 말이다.”

바닥에 배를 뒤집고 누운 영체, 개의 배를 앞발로 쓸어 주던 사가가 손을 떼자 영체는 강혁의 몸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사가의 말을 곱씹던 도현이 중얼거렸다.

“짐승이라 마나석을 품은 건가?”

“쯧쯧, 짐승이 아니라 마나를 다루는 모두 마나석을 갖고 있다. 특히 인간이 품은 마나석은 정신 계열 쪽에서 더 큰 효과를 가진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상황이 절로 머리에 그러져서다.

“정신 붕괴도 그 마나석 때문이겠네.”

“그럴 게다. 하지만 추출이 쉽지 않아. 3급 이상의 헌터쯤 돼야 쓸 만하지. 거기에 질병이나 상태 이상에 걸려서는 안 되고, 일회성이라 효율도 좋지 않다.”

“그래도 그 한 번으로 헌터 협회를 삼킨다면 할 만하지.”

“인간의 욕심의 잣대이니 그건 내가 뭐라 할 부분이 아니구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차도식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의심했던 정부 짓이 맞다는 확인 사살을 해 버렸으니 말이다.

치솟는 살심과 욕을 꾹꾹 누르던 차도식은 늑대 모습의 강혁을 보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 협회장님은 이대로 정신을 못 차리시는 겁니까?”

사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다만, 회복할 수 있는 환경 정도는 조성해 줄 수 있겠구나. 도현아.”

“왜?”

“농장에 데려가야 한다.”

“수락하지 않으면 못 데려가.”

“정신만 있으면 되느냐?”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가가 앞발로 강혁을 툭 쳤다. 그러자 북슬북슬한 털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하더니 몸집이 작아지며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인간이 아닌 제브라드의 묘족과 닮은 모습이었다.

1미터가 조금 넘는 키, 치렁치렁한 산발의 은빛 머리카락, 정수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반쯤 접힌 개의 귀.

그나마 귀와 특이한 머리카락 색을 제외하면 사람의 모습이긴 했다.

“혀, 협회장님이…….”

정신을 놓은 것처럼 중얼거리는 차도식과 달리 도현은 탄식했다.

“견족이라고 불러 줘야 하나?”

“시답잖은 헛소리는 그만하고 가자. 나도 바쁘다.”

도현이 픽 웃었다.

“엄마 집무실에서 빈둥대면서 무슨.”

“커흠흠! 그게 내가 할 일 아니냐!”

“둘 좀 부탁해.”

아이가 된 강혁의 주민 수락을 도우며 말을 툭 던졌다.

“넌 가지 않을 게냐?”

“어. 모래사장에서 가래떡 찾아야 돼.”

사가가 동그랗게 뜬 눈을 살짝 휘었다.

“조언 좀 해 주랴?”

“조언?”

“믿어라.”

갸우뚱한 도현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무슨 약을…….”

짜증을 뱉던 도현은 이 대화가 데자뷰처럼 익숙함을 느꼈다.

“그럼 간다.”

기억을 곱씹는 동안 사가가 도현의 다리에 몸을 스치며 걷더니 견족이 된 강혁과 함께 사라졌다.

아직 남아 있던 차도식이 도현을 불렀다.

“처남님…….”

“아, 주민 등록 안 했네요. 잠시만요.”

불쑥 앞에 나타난 수락창을 보던 차도식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처남님께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하지만 신자가 신의 행적을 이해할 순 없겠지요.”

차도식의 오해였다.

묻지 않아 말하지 않았을 뿐. 떠들지 않는 도현의 성격도 한몫했다.

그리고 크로아 워프 이후로 따로 팀을 꾸렸으니 잊어 먹는 건 당연했다.

‘두 사람에게도 알려 줘야겠네.’

생각해 보면 차도식과의 인연은 참 묘했다.

뜬금없는 찌롱이의 결혼식에서 신랑으로 처음 본 사내.

성격이 이상하게 꼬이긴 했지만, 사람마다 그런 부분은 하나씩 갖고 있으니 그러려니 했었다.

어차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엄마의 굴림으로 일주일간 헌터 매니저를 하게 되었고, 그때 한 팀이 된 게 찌롱이와 매부였다.

이상하게 계속 부딪치게 되며 인간성의 끝을 보고 든 생각은 매부의 인생도 자신만큼이나 기구하달까.

이 사내 앞엔 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이 가득했으니까.

그런데도 저렇게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제브라드의 영웅 연대기의 주인공이 무척 어울릴 것 같은 사내.

실제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현은 차도식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웃긴 건 이런 사내와 단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거다.

의도치 않게 오해가 쌓이고, 그중 하나인 우도현교 팬 카페를 만든 장본이 되었지만…….

부부의 연을 맺은 찌롱이의 불만을 제외하면 헌터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 이미지로 자리를 잡은 그였다.

‘사춘기 아들 두 놈만 정리되면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지.’

결론을 내린 도현은 차도식을 빨리 농장에 보내고 나가 보려 했다.

하지만 차도식이 먼저 선수 쳤다.

“조심하십시오. 정부가 중국과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중국? 여기서 그게 왜 나와?

어이없어 하는 도현과 달리 차도식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새로 나타난 워프 헌팅을 위해 중국에서 헌터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워프 던전에서 사라졌던 헌터 6명입니다.”

“그 멍청한 놈들이요?”

흥미가 생겼다.

“말이 안 되는 건 그 6명이 중국으로 귀화했다는 겁니다. 하나같이 국가가 자신들을 버렸다며, 가장 큰 책임으로 방관한 처남님을 들먹였습니다.”

“그래요?”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거기 있었던 헌터가 한둘입니까?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말이 많은데, 문제는 정부가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하는 겁니다.”

“재밌네요.”

“이틀 전 일입니다. 처남님께서 휴대폰을 꺼 두셔서 모르셨겠지만… 오늘 보니 찾아오지 않은 이유도 알겠네요.”

말을 마친 차도식이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바닥을 향한 눈에는 분노와 수치심이 뒤섞여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은 차도식은 억지로 얼굴을 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시는 방향이 어딘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음… 나가 봐야 알 것 같은데요.”

가출한 둘째 아들을 찾으러 간다고 하기엔 좀 웃겼다.

곰곰이 생각하던 차도식이 입을 뗐다.

“그럼 한강 쪽으로는 가지 마십시오. 2세대 워프… 그러니까 새로 생긴 워프 명칭입니다. 아무튼 30분 뒤에 한강에 새로 생긴 워프 헌팅식이 있을 겁니다. 중국으로 귀화한 6명이 헌팅할 헌터들이고요.”

헌팅식. 말 그대로 헌팅 잘하라고 배웅해 주는 보여 주기식 퍼포먼스다.

‘이거… 정말 가지 말란 소리인가?’

차도식의 눈은 시종일관 진심만 담겨 있었다. 반대로 도현의 입가엔 즐거운 웃음이 담겼다.

같이 가자면 당장에라도 나서겠지만, 협회장의 상태에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모습.

그러니 말이라도 해 주는 거겠지.

도현은 빈말이라도 건넸다.

“알겠어요. 어서 가 보세요.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도현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가려는 차도식을 불러 세웠다.

“매부.”

“왜 그러십니까, 처남님?”

폭포 가르기라고 입을 떼려던 도현은 다른 단어를 골랐다.

“밥값이요. 워프 파크.”

기억 더듬기로 흐리멍덩하던 차도식의 눈이 커지며 얼굴까지 빨개졌다.

“예, 예? 그, 예… 밥값, 이요…….”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강해지기’의 빛을 그때 살짝 확인했던 도현은 붉은 보석이 박힌 손등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심장 그놈 썩 나쁘지 않아요. 멍청해서 그렇지. 대화 잘 해 봐요.”

순간 붉은 보석이 살짝 떨린 것 같았지만, 도현은 그저 보석을 보며 씩 웃기만 했다.

“역시… 모르실 리 없지요. 예! 밥값, 꼭 해 보이겠습니다!”

다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 차도식은 허공을 손가락으로 누름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도현은 한강 하늘 위에서 워프 주변에 몰린 사람들을 바라봤다.

“우우! 짱깨 앞잡이들은 물러가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누가 헌팅 해 달래? XXX들! 중국으로 꺼져 버려!”

“한국 헌터들에게는 헌팅 금지령 내리더니 짱깨 앞잡이나 데려와? 너희들이 그러고도 대한민국 정부냐!”

플래카드와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보였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십시오!”

그 앞에 울타리가 되어 막는 경찰들이 있었다.

“여기는 한강, 2세대 3등급 워프 앞입니다!”

그리고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현재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 기자와 리포터들.

그런 흉흉한 분위기와 달리 주황색의 보름달, 2세대 3등급 워프 앞까지 이어 놓은 임시 가교 위는 축제의 현장 같았다.

다섯 헌터를 이끄는 대표가 된 정준혁이 헌터 협회장이 된 판세기와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연신 허리를 굽히는 판세기는 간신처럼 허허 웃으며 비위를 맞추기 바빴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고향이었던 한국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지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뻔뻔하게 말하는 정준혁의 모습에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거리가 있어도 대부분이 각성자다 보니 TV를 보듯 눈앞에 적나라하게 보이겠지.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저러고만 있지?’

벌써 10분 넘게 저러고 있었다.

혹시 몰려든 사람들의 화를 돋우는 건가 싶었는데, 마침 승합차 한 대가 들어와 문이 열리고 10명의 사람이 우수수 내렸다.

진미경 박사가 이끄는 워프 연구소 팀이었다.

검은 바지에 흰색의 연구원 가운을 걸친 그녀는 두 달 전에 봤을 때와 딱히 다르지 않았다.

‘다크써클은 좀 가셨지만 화가 많이 났는데?’

실시간으로 어떤 상황인지 알려 주는 농성이 그 이유가 아닐까.

워프 연구자 입장에서 2세대 워프 첫 헌팅은 떨칠 수 없는 유혹과도 같을 거다.

워프 조사와 탐사를 하려면 안정적인 헌팅이 가능한 헌터들과 함께하는 건 필수.

하필 그게 국내에서 중국으로 귀화해 버린 헌터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겠지.

그녀의 짜증 가득한 걸음이 정준혁 앞에서 멈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 박사님.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군요.”

느긋함이 밴 웃음과 함께 내민 그의 손을 빤히 보던 진미경은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3급 블랙이시라고요?”

“예. 부족하지만 제가 황룡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황룡 팀원들은 3급 레드고요.”

그녀의 시선이 팀원들을 훑었다. 말없이 서 있는 5명은 그런 진미경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짝다리를 짚은 채 팔짱을 끼고 있던 박효진이 휘파람을 불자 뭐가 웃긴지 남은 넷이 깔깔 웃어 댔다.

“무례하게 무슨 짓입니까?”

진미경 뒤로 늦게 다가온 남자 연구원, 차성원이 소리치자 언제 웃었냐는 듯 웃음이 뚝 끊겼다. 무표정한 시선들이 사내에게 꽂혔다.

“허… 허어억!”

상급 헌터의 시선이 몰리자 그는 뒷걸음질 치며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진미경이 연구원 앞을 막았다.

“계속해 보시죠. 오늘, 없던 일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제야 정준혁이 손을 휘휘 저었다.

“팀원들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조금 예민해서 그렇습니다. 이만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장비를 챙겨야 합니다. 10분 뒤에 출발하죠.”

진미경은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져 덜덜 떠는 남자 연구원, 차성원을 부축했다.

그 뒤로 연구원들이 운반용 카트에 장비를 싣고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밝은 오렌지 빛깔 머리의 연구원, 오세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박사님, 차 대리 괜찮은가요?”

“대기하고 있어. 차에 데려다 놓고 올게.”

“아, 아닙니다, 박사님! 저도……!”

진미경은 차성원의 말을 무시한 채 걸었다. 차성원은 힘이 풀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지만, 진미경의 힘에 질질 끌려가기만 했다.

차에 도착한 그녀가 슬라이딩 도어를 열었다 잠깐 움찔하며 몸을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정말 기쁘게 웃었다.

“오랜만인데, 우도현?”

맨 뒷좌석, 꼰 다리를 앞좌석에 올린 채 팔베개한 도현이 진미경을 마주 보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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