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22화 (122/200)

# 122

122. 프로페셔널 팀 (1)

도현은 오제아가 가져온 두꺼운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훑고 있었다.

블랙홀과의 협력으로 진행되는 통칭 블랙홀 팜 사업.

정기 보고 시간이었다.

“블랙홀 랜드 구축은 70퍼센트 진행되었어요. 예정보다 진척이 무척 빠른 편이에요. 물자나 직원 모집, 교육 부분이 조금 부족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조로워요.”

광역시 하나쯤 되는 거대한 땅.

그 땅의 10분의 1을 개척해 현실 수준 이상의 문명을 만드는 것이 블랙홀 팜의 최소 시작점이었다.

연 단위로 잡아야 할 사업을 2주 안에 완공하고 동시에 손님 받을 준비까지 끝낸다는 보고인데,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했을 내용이다.

거기에 블랙홀 랜드만의 특색까지 갖추는 것이 목표였다.

대대적인 공사로 인어족 2천 명이 투입되고, 블랙홀 본사와 계열사를 통해 비밀 유지 조건으로 일손을 모았다.

그렇게 움직인 인원만 2만에 달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몸을 쓰는 일과 손님 응대를 위한 교육이 전부.

건물을 짓는 일이라든가 상하수도, 전기를 대체할 마법진 등의 대단위 문제에 투입되는 인원은 1퍼센트에 남짓했다.

그런 상황에서 농장 시간으로 2주 만에 70퍼센트를 진행했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속도라 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2, 3일 뒤부터는 조금씩 여행객과 임시 주민을 받아 테스트 운영에 들어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도현이 물었다.

“등록소가 여행사라고?”

“네. 워프 여행사라고 해서, 며칠 전 다녀오셨던 특수 워프 같은 곳을 다루는 여행사예요.”

“더 튈 거 같은데.”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서 헌터들에게 다가가려는 거죠. 현 정부는 블랙홀을 누르려다 오히려 헌터들의 반발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죠. 그리고 헌터 협회가 정부 소속이 되면서 블랙홀과의 협력 관계도 틀어져 버렸어요.”

결국 정부의 헛짓거리로 블랙홀의 위상이 몇 단계나 뛰어올랐지만, 도현이 국내 워프 90퍼센트를 없앴다는 소문이 나돌며 결과가 나오기까지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 건 헌터 캠 영상이었다.

판세기가 헌터 협회장 자리에 오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터트린 것이 도현의 헌팅 영상. 무삭제판 공개였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크로아 바위산 워프의 영상과 바다를 갈랐던 인어의 메아리 워프의 영상이 그 원인이었다.

용종이 된 채근석을 가지고 노는 모습. 노이즈가 심했지만 형태만으로 유추가 가능할 정도였다.

거기에 이어 바다를 가르고 크라켄을 무 썰듯 썰어 버린 가공할 만한 힘.

다행이라면 인어의 메아리 워프의 영상은 공개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정부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말이다.

전 협회장인 강혁이 열일했다며 범죄자 취급을 철회하라는 목소리와 함께, 정말 신이 강림했다면서 우도현교 팬클럽이 가파르게 세를 불렸다.

반대로 원칙주의자들은 법 테두리를 벗어난 건 범죄라며 법의 심판을 강력히 주장했다.

동시에 헌터와 정부의 대립에 기름을 끼얹는 계기가 되었다.

헌터들은 권리와 보장을 요구했고,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통신 매체에서는 정부에 반하는 헌터를 테러 집단에 비유하며 원색적으로 떠들어 댔다.

이렇게 세상은 5년 만에 새로운 진통을 겪고 있었지만, 도현의 주변은 여느 때와 같았다.

도현은 서류를 테이블에 올렸다.

“그러면 1차 여행자들은 언제부터 받지?”

“현실 시간으로 3일 뒤부터 받을 예정이에요. 유명 헌터부터 6급 이하의 각성자와 일반인들까지 300명 정도로 추렸어요. 최상의 서비스와 유람 사이에 헌팅에 대한 정보도 자연스럽게 흘릴 계획이고요.”

“거기에 일반인이 각성하는 모습까지 나오면 끝나겠네.”

대한민국에 새로 나타난 워프는 기쁨과 동시에 그림의 떡이었다.

이전 3등급 워프도 버거워했는데 이제는 3등급부터 1등급의 워프가 나타났으니, 헌팅하러 갔다 헌팅을 당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된 거다.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살 순 없으니 해외 워프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있었지만, 4급 이상의 헌터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것도 수익의 절반이라는 막대한 수수료까지 부담하면서.

채 10개가 되지 않는 6, 7등급의 워프만 박 터지다 못해 몬스터의 씨가 마를 정도였다.

결국 대한민국의 국민 대부분이 실직자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블랙홀 팜의 등장은 무척이나 공교롭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치 죄인이 죄를 시인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것도 잠시지.’

도현의 생각만이 아닌, 블랙홀에서도 예상한 확실한 결과였다.

일반인이 각성자가 될 수 있다면.

각성자가 헌터가 될 수 있다면.

헌터도 더 강해져 급수를 올릴 수 있다면.

입 뻥긋거리는 시간에 몬스터 한 마리를 더 잡는 게 이득일 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만 고립되겠지.

“참, 주인님, 농장에서 이게 발견됐어요.”

오제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테이블에 놓은 건 주먹 크기의 노란색 돌이었다.

형태나 크기는 다르지만 익숙한 마나의 기운.

오랜만에 도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나석? 농장에서 나왔다고?”

“네. 색은 워프 등급과 같았어요. 노란색, 3등급 마나석은 5등급 워프핵을 심은 필드의 몬스터들이 일정 확률로 떨어뜨려요. 마나석의 색깔은 빨간색에서 파란색까지만 나오더군요.”

도현은 마나석을 쥐어 살짝 기운을 밀어 넣었다. 순수하고 농밀한 마나가 느껴졌다. 현실에 흔히 사용되는 마나석이 찌꺼기 덩어리로 보일 지경이었다.

“농장에 마나석 광산 워프핵을 심었을 땐 반응이 없더니. 오히려 잘됐어. 블랙홀 팜이 빠르게 자리를 잡겠는데?”

보고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음에도 오제아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기 보고만으로도 흐른 2시간. 현실과 농장의 시간이 5배나 차이 나니 일분일초가 아쉬울 텐데?

계속 머뭇거리는 모습에 도현이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인데?”

“토토 님이요. 이대로 괜찮으신 거죠?”

예상외의 질문에 도현도 멈칫했다. 아니, 외면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모르달이 가출한 지 3일.

당장에라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찾을 수가 없었다.

모르달의 기운은 신성력. 그걸 끊은 건 도현이었다.

신성력을 쓸 수 없게 된 모르달의 재산은 몸뚱이밖에 없다. 그 몸뚱이를 써 봤자 알 턱이 있나.

다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허가를 해 두었다 해도 느껴지는 건 눈곱만치도 없었다.

‘어쩌면 신성력을 버린 건 아닐까……?’

에놀드처럼 말이다.

도현은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말했다.

“놔둬. 그래도 아프면 안 되니까 신경 좀 써 주고. 바쁜데 이만 가 봐.”

“네… 그럼 다음 정기 보고 때 뵐게요.”

그녀가 사라지고 거실은 적막해졌다.

도현은 멍하니 천장을 봤다.

모르달을 언제든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도현은 일이 이렇게 꼬일 줄 몰랐다.

‘압빠? 모루달 차잣써?’

기대와 기쁨으로 밝아지는 얼굴에 멈칫했다.

사실대로 말할지, 둘러대고 찾을지.

성격대로라면 일말의 고민 없이 둘러대고 말았을 거다. 그런데 그 말이 목구멍에서 걸려 버렸다.

상처받아 집을 뛰쳐나가던 모르달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토토에게 솔직하게 말한 뒤였다.

충격을 받은 토토는 바로 농장에 들어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만나 보려 해도 피하기 일쑤였다.

주변에 물어 들은 말로는 2주째 잠도 안 자고 블랙홀 랜드 건설에 미친 듯이 매달리고 있다고.

‘쯧, 이래서 주변에 뭘 두기 싫었는데.’

특히 어린애들은 더 싫었다. 순수한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든 것이 그 아이가 걸어가는 길이 되어 버리니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밑바닥까지 순수하게 받아들인 아이가 자신을 존경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 정말 구역질 나는 경험이었다.

이 내가 뭐라고. 내 까짓 게 뭐라고.

실패한 삶, 제멋대로인 삶, 나 하나 좋자고 모든 건 무시하는 쓰레기의 삶인데.

‘압빠… 하, 하났어……? 미안, 재숑해요…….’

드워프 방문자들이 시겔로를 보여 달라며 들러붙었을 때.

몇 겹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하며 다 포기해 버릴까 싶었던 그때.

모두가 두려워하며 도망치기 바쁜 와중에 오직 토토만이 다가왔던 그날.

얼굴에 닿은 알밤만 한 그 작은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무섭고 두렵지만 도망칠 곳도, 의지할 곳도 없이 오직 자신이 전부인 토토. 아니, 아들.

‘압빠!’

그래… 아빠, 아빠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정이 아닌, 아버지라는 책임과 사랑이란 끈끈한 유대감이었다.

도현은 손바닥으로 눈을 문지르며 습관처럼 말했다.

“모르달, 냉장고에 맥주 하나…….”

멈칫한 도현은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낮이지만 여름에 접어들며 시작된 장마로 창밖은 흐렸다. 덩달아 어둑한 집이, 고요하다 못해 답답한 적막감이 가슴을 휑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TV의 먹방을 보며 뒹굴거리는 토토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세상사를 훑으며 주절주절 떠드는 모르달, 그리고 그 소음이 짜증스러우면서도 어느새 자장가 삼아 잤던 자신이 있었는데.

고작 한 달이란 시간밖에 안 됐는데.

이젠 혼자 있는 게 어색할 정도다.

“입은 가벼워 잘도 나불거리더니… 다리는 짧아서 그런지 오는 데 되게 오래 걸리네.”

한참이나 거실 바닥을 보고 있던 도현은 소파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마중이라도 가 볼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겠지만, 낭창낭창한 흰 가래떡은 그래도 좀 보이지 않을까.

나갈 준비를 하려던 도현은 현관문 앞으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익숙한 기운에 한숨을 내쉬며 손을 튕겼다.

“어, 어!”

벌컥 열리는 문에 늦게 뻗어진 다리가 중심을 잃었다. 빠르게 몸을 바로 잡으며 도현을 찾은 시선은 기쁨과 죄송함이 교차했다.

“처남님!”

차도식이었다.

등에는 정신을 잃은 덩치 큰 늑대가 짐짝처럼 덜렁거렸다.

“일단 들어오세요.”

얼마나 다급했던 건지 차도식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허겁지겁 들어왔다.

현관문이 자동으로 닫히자마자 밖이 시끄러워졌다.

잔뜩 긴장한 차도식이 눈을 좌우로 굴렸다.

도현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으니 협회장님은 여기 눕혀요.”

차도식은 조심스럽게 강혁을 눕혔다. 북슬북슬한 은빛 털 뭉치가 낮게 거실 바닥을 울리며 떨어졌다.

몸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정신만 잃은 상태였는데, 그렇다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나?

복도에 울리던 소리가 잠잠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차도식이 강혁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봤다.

“협회장님이 저에게 오신 건 어젯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모습이었는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뭐가요?”

“말도 어눌하고… 정말 짐승 같다고 해야 할지……. 린아사? 아리아? 이 말만 계속 중얼거리다 기절한 뒤로 이 상태입니다.”

모르달을 찾으러 가는 건 아무래도 미뤄야 할 것 같다.

도현은 인상을 좁혔다. 그리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사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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