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21화 (121/200)

# 121

121. 가출 (2)

살짝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실은 답답해서 나왔어. 어제 워프 때문에 엄마, 아빠도 난리 났거든. 두 분 다 헌터셔.”

워프란 말이 나오자마자 모르달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수리에서 쪽 소리가 났다. 놀란 귀가 파르르 떨렸다.

작은 웃음이 들리며 말이 이어졌다.

“밤새 뉴스 속보가 끊이질 않았어. 그리고 아침 첫 뉴스부터 폭탄선언이 이어지더라구. 헌터 협회가 정부 소속이 된다나? 그리고 워프가 그렇게 된 게 우도현 헌터 짓이라나? 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사람이 아니라 무슨 신이라도 된대?”

심장을 콕콕 찌르는 말에 모르달은 움찔움찔 떨었다.

일을 저지른 주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그 주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펫이라니.

새삼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모르달은 제브라드가 더 그리웠다.

그사이 김진아의 투덜거림은 계속되었다.

“뭐… 차도식 헌터가 우상이라며 우도현교… 팬 카페를 만들긴 했지만. 아무튼 그 푼수 협회장 아저씨까지 범죄자라니. 그냥 이 나라가 미친 것 같아. 하아… 엄마, 아빠는 뉴스 보자마자 나가 버렸어. 청와대도 뚫고 들어갈 기세던데…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니겠지? 그냥 나도 확 쳐들어갈 걸 그랬나.”

“무, 무슨 소릴 하심까요! 진아 아씨는 아직 어림다요! 학생 아님까요! 학생은 학교에 가야 함다요!”

생각지도 않은 잔소리에 김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꺄르륵 웃었다.

“에헤헤, 모르달이 나한테 잔소리라니. 으으, 왜 이렇게 달콤하지? 아, 근데 나 이래 봬도 각성 4급이란 말씀! 아직 미성년자라서 헌터는 못하지만, 민증만 나오면 바로 헌터가 될 거라구! 아… 혹시 워프가 사라져서 헌터도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다시 침울해지는 목소리에 모르달이 짧은 팔로 김진아의 팔뚝을 토닥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녀가 침울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님다요. 곧 블랙홀에서 큰 발표가 있을 검다요. 워프보다 더 큰 세상에서 헌팅하심 됨다요.”

“응? 블랙홀에서? 앗! 맞아. 블랙홀도 뉴스에 나오던데, 괜찮은 거야? 우도현 헌터도 구속이니 뭐니 했어. 아, 큰일인데…….”

그녀는 손톱을 깨물며 발을 동동 굴렸다.

“구속이 뭠까요?”

“경찰한테 잡혀가는 거. 심하면 회사도 사라지는… 음, 사라지지는 않겠구나. 세계적인 워프 마켓인데. 아니, 그러면 대표가 갈아 치워지려나?”

혼잣말이 잔뜩 이어졌다. 전부를 이해하기에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도현과 도현의 부모님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가, 가야 함…….’

김진아의 품에서 벗어나려 들었던 모르달의 앞발이 멈칫했다.

자신은 집을 뛰쳐나왔다.

다리를 붙잡고 펑펑 우는 토토까지 떨어뜨려 놓고.

홧김이라지만 도현에게 실망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던 제브라드마저…….

‘소인은 어떡해야 함까요……?’

맥이 탁 풀렸다.

그때 김진아가 모르달을 안은 채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모르달은 내가 구하겠어! 우리 집에 가자!”

“예에에에?”

모르달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녀는 모르달을 껴안은 채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다시 한적해진 한강 수면 위로 지름 3미터의 작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그 달은 주황색이었다.

***

바삭바삭!

아바는 주먹만 한 닭튀김 하나를 포크로 찍어 크게 한입 베어 먹었다.

바삭거리는 튀김옷이 깔끔한 기름과 함께 고소하게 씹히며 뜨끈한 속살이 느껴졌다.

탱글탱글한 살이 육즙을 뱉어 내며 입안에서 춤을 추었다.

‘아아, 황홀한 맛이야!’

자의 겸 타의 겸 어쩔 수 없이 퍽퍽한 가슴살만 먹던 때가 떠오르자 괜히 눈물이 났다.

도현의 팀이 되고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식사였다.

헌팅을 시작하면 대부분 건식 형태의 식사로 때운다.

맛은 배제된, 오로지 영양소와 고칼로리만 추구한 음식.

그게 아니라면 힘든 헌팅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입맛이 고급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헌팅이란 말이 나오면 뭘 먹을지 기대부터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 말 다 한 거 아니겠나.

특히 찍어 먹는 소스는 치킨에 왜 반반 메뉴가 있는지 완벽하게 깨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일반 치킨이 이렇게 맛있지는 않을 거야. 이 치킨이 몬스터니까 더 맛있는 거겠지.’

몬스터 요리의 맛을 깨달은 아바는 자신의 보금자리가 된 농장의 이름이 왜 농장인지도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입 베어 물던 그녀는 이 사이로 단단한 포크가 씹히자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조금만 더 넋을 놓고 있었으면 포크까지 씹어 먹을 뻔했다.

아바는 다시 치킨 한 덩어리를 쿡 찔러 들고서는 식사 삼매경인 두 사람과, 평소와 달리 조금 우울해 보이는 토토를 눈에 담았다.

그저 임무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성공해서 돌아갈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뭐랄까…….

그 성공은 잊을 정도로 더 성공적인 현재였다.

‘후회는 없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결정을 내린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 귀환 명령 떨어졌어요.”

두 볼 빵빵하게 우물대며 고개를 끄덕이는 도현과 달리 민혁은 기침을 했다.

“도, 돌아가신다고요……?”

사레들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달리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아바는 목이 멨지만 헛기침으로 풀며 쾌활하게 덧붙였다.

“어쨌든 미국 시민이고, 미국 소속이니까요.”

‘실은 정리할 일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을 보니 확실하게 끝낸 뒤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입을 뻐끔거리던 민혁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한동안 못 보겠네요…….”

반대로 도현은 심드렁했다.

“농장에서 보면 되지, 뭐.”

“아아! 농장! 농장에서 보면 되겠네요!”

언제 침울했냐는 듯 신나서 방방 뜨는 민혁의 모습에 결국 아바는 웃어 버렸다.

“아니, 농장을 잊고 있었던 거예요?”

“아뇨! 아뇨! 티, 팀으로 헌팅을 못 간다 생각하니… 하하핫!”

“뭐, 그건 어쩔 수 없네요.”

치킨을 우물거리며 둘의 과장된 대화를 지켜보던 도현만 아바의 씁쓸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민혁은 결심한 듯 진지하게 아바에게 말했다.

“아바 씨, 연락처 좀 주십시오!”

“국제전화 하려구요? 받을 수 있을지…….”

한국만큼이나 바쁜 미국 헌터들의 생리를 몰랐던 민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메, 메신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

“답장이 좀 늦겠지만 꼭 확인할게요.”

“가, 감사해요. 꼭! 메신저 할게요!”

누가 봤으면 대대로 물려줄 가보라도 받은 줄 알 법한 모습이다.

‘청춘이구나.’

도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문제는 민혁의 오해였다.

민혁은 아바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고 있었다.

‘나에게 접근하기 위해 자신을 이용했다고만 생각하는 거지.’

반대로 아바는 민혁을 이용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민혁에게 거리를 둔다고 하지만…….

‘저게 거리를 두는 건지 모르겠네.’

닮지 않은 듯 닮은 두 사람.

삽질 하나만큼은 닮았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이거 내가 엮어 줘야 하나?’

졸지에 다리가 되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아바가 탄성을 내뱉었다.

“워, 워프가 나타났어요!”

놀란 민혁이 아바의 휴대폰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진 속 워프는 국내의 달 조각 형태의 워프와 달랐다.

온전한 보름달에 선명한 주황색을 띠고 있었다. 거기에 크기는 3미터에서 5미터.

반투명한 것이 특징이며, 어느 방향에서 보든 정면만 보인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쭉 읽은 민혁과 아바가 도현을 쳐다봤다.

“말했잖아, 곧 잠잠해질 테니까 걱정 말라고.”

민혁이 먼저 읽은 탓에 늦게 기사를 다 읽은 아바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전부 53개… 28개가 3등급이래요. 20개가 2등급 워프고요. 5개는 1등급……. 이렇게 되면 한국은…….”

현재 국내 3급 헌터 수는 한 손가락에 꼽히는 걸 생각한다면 헌팅은 고사하고 자살하러 간다고 봐도 될 정도로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 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도현과 사가의 합작이란 걸 아무도 몰랐다.

도현은 다시 포크로 치킨 한 덩어리를 찔러 우물거렸다.

“잠깐 진통은 있겠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그보다 언제 가는데?”

민혁의 시선이 화살처럼 아바에게 꽂혔다.

가야 된다는 생각에 중요한 날짜를 빼먹었다.

두 사람의 시선에 살짝 얼굴이 붉어진 아바가 작게 말했다.

“내일 아침 10시 비행기예요.”

“배웅하러 갈게.”

“배웅요……?”

“당연하죠! 우린 한 팀이잖아요!”

잠깐 아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그녀는 웃었다.

“고마워요…….”

눈꼬리에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

오제아는 개척자의 땅, 가칭 블랙홀 랜드의 임혜정 대표 집무실에 앉아 왼손엔 서류를, 오른손에는 차를 들고 홀짝이고 있었다.

새벽 내도록 한 일은 블랙홀 본사의 모든 자료를 이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자신의 주인, 도현은 은빛 털 고양이를 임혜정에게 던진 뒤 다시 사라졌다.

짓누르는 피로에 기뻐할 여력도 없던 임혜정은 그 고양이를 오제아에게 맡기고 우대성과 함께 눈을 붙이러 간 상태였다.

이후로 조용한 집무실엔 펄럭이는 종이 소리만 기계적으로 들리길 몇 시간째.

1시간 전, 다시 돌아온 뒤로 책상 한쪽을 차지한 사가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오제아에게 물었다.

“아이야, 넌 대체 그놈과 무슨 관계냐?”

오제아는 익숙하게 무시하고 손에 쥔 서류를 읽어 갔다. 아침에 마지막으로 회사에 갔던 임혜정이 추려 온 임직원들의 블랙홀 랜드 사업 계획서였다.

두서없이 아이디어에 첨부된 설명이 다인 서류였지만, 나름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 요소들만 체크하고 손에 든 찻잔을 기울였다.

상큼하면서도 진한 꽃향기가 매혹적인 찻물을 기대했지만, 잔은 이미 비어 있었다.

따뜻한 물을 채우려 손가락을 튕기는데 고양이가 탄식했다.

“어째 그놈과 하는 짓이 저렇게 같을꼬. 혹시 이거냐?”

두툼한 앞발을 내밀어 발톱 하나가 툭 삐져나온 발가락을 내보였다.

오제아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불쾌감이 들어 미간을 찡그렸다. 더불어 이 돼지 같은 고양이의 호감은 마이너스이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갔다.

‘주인님은 저런 걸 왜 주고 가셨는지.’

당장에라도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었지만 주인의 어머니, 임혜정 대표님의 펫이라며 옆에 두라고 하셨다.

펫. 테이밍 몬스터. 하지만,

“늙은이처럼 말하는 고양이가 평범한 몬스터일 리 없지.”

“어허, 말하는 싸가지도 어찌 저렇게 빼다 박았누. 그보다 아이야, 배가 고프구나. 어디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없느냐?”

책상 위를 대굴대굴 구르며 네 발을 허공에 허우적대는 꼴이 태평하다 못해 무료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제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짜작!

손에 쥔 찻잔이 기운을 못 버티고 금이 가 버렸다.

사가가 혀를 찼다.

“뭔… 기운이 이렇게 흉폭하느냐? 그놈처럼 너도 인내심이 좁쌀이냐?”

그녀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흠칫한 사가가 몸을 내빼려고 했지만, 오제아가 한발 빨랐다.

그녀의 손에 목덜미가 잡힌 사가는 불쾌감을 담아 낮게 냐아아- 울었다.

“아이고, 아이고! 늙은이를 이렇게 핍박하면 되느냐! 그놈은 왜 이 몸을 여기 두고 간 건지. 에잉!”

투덜대든 말든 오제아는 책상 맞은편 창가로 갔다.

활짝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창밖으론 끝없는 숲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5층짜리 이 건물 아래, 숲의 경계에 원 형태의 포탈이 보였다. 테두리를 따라 환한 빛이 인상적인 포탈. 도현의 농장을 오갈 수 있는 문이었다.

오제아는 그 포탈에 시선을 한 번 던진 뒤 사가를 보고 싱긋 웃었다.

“싱싱한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그럼 먹어야지.”

“뭐, 뭐냐아아악!”

주저 없이 사가를 던졌다. 종착지는 포털 넘어 도현의 농장이었다.

“후, 다시 시작해 볼까.”

가볍게 손을 털며 책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금 간 잔을 보며 혀를 찼다.

“토토 님이 빨리 오셔야 할 텐데.”

차는 좋았지만 아무래도 인간들이 사용하는 잔은 너무 약해서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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