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19화 (119/200)

# 119

119. 신의 대리자 (3)

사가가 털을 쭈뼛 세우며 놀라 되물었다.

“지, 지금 나보고 네놈의 펫이 되라는 거냐!”

“못할 건 뭔데? 여태 한 말은 거짓말이야? 아니면 신이라서?”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자 오히려 말문이 막힌 건 사가였다.

“신이 어떻게 펫이 되느냐? 차라리 신언, 그래, 신언의 맹세를 하면 되지 않느냐!”

“다 알면서 그러지 말자고.”

언어의 맹세.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맹세지만, 여기에 허점이 없진 않다.

진실에 거짓을 섞을 순 없다는 게 전제지만, 반대로 두루뭉술하게 진실의 몇 가지를 뺄 순 있다.

물론 너무 많이 빼면 맹세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는 한다.

그래서 도현이 내민 조건은 자신의 펫이 되는 것.

“신은 강한 힘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격이란 말이다! 그런 격을 가진 신에게 펫? 이 미친놈아, 말이 되는 소릴 하거라! 하아…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젠장!”

도현은 속으로 작게 탄성을 내지르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연기가 아니고 정말 사가라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욕을 한 거니까.

‘우선은 슬쩍 해 볼까?’

신뢰 때문이라면 이쯤에서 끝내도 되겠지만, 도현은 정말 펫으로 등록이 가능하다면 해 볼 생각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반려동물… 아니, 반려 몬스터를 바랐다. 물론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닌 은연중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예전이었다면 그저 넘기고 말겠지만, 홧김에 저지른 일로 엄마, 아빠에게 피해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니 고양이 신이 펫이라면 든든하지.’

거기에 워프에 민감한 걸 보니 워프에 관련된 능력이 있을지도.

뭐, 정말 사가인지 아닌지 믿음도 안 가고 말이다.

그렇게 도현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펫창을 띄웠다.

토토의 성장으로 확인한 이후 처음 여는 창이었지만, 크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엄지 크기의 토토와 모르달 캐릭터가 왼쪽부터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빈칸 2개. 두꺼운 십자 모양 하나를 터치하자 등록할 펫 리스트창에 눈앞의 익숙한 고양이가 떴다. 다른 이름으로.

“린 아니사?”

사가가 2배로 복슬복슬해져 테이블에서 펄쩍 뛰었다.

“나, 난 아니다!”

“그래?”

도현은 사가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등록했다.

파지지직!

펫창과 사가 사이에 푸른 스파크가 생겨나더니 중심에 스파크 덩어리가 맺혔다.

토토나 모르달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흥미롭게 보던 도현은 그 스파크 덩어리가 금세 모형을 띠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은빛의 납작한 펜던트가 달린 검은 목줄.

당황한 사가가 바둥거렸지만,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목줄이 사가 목에 꼭 맞게 매였다.

띠링!

[격이 높은 몬스터를 테이밍하셨습니다!]

[특수 퀘스트, ‘지구를 꿀꺽하려는 신을 찾아라!’에 ‘린 아니사’가 추가됩니다!]

[격이 한층 더 깊어집니다!]

[친밀도가 20퍼센트 이하입니다! 주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습니다. 친밀도를 올려 주세요!]

[기존의 이름을 수정하시겠습니까?]

“신이라서 그런가, 많이 다르네.”

못 보던 알림들이 많았다.

특히 친밀도라는 것.

토토와 모르달에게는 안 떴나 싶었는데 토토는 100퍼센트, 모르달은 40퍼센트로 나타났다. 왜 이렇게 적은가 했더니 좀 전의 폭탄선언으로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조용히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괜히 입맛이 썼다.

테이블에 검은 목줄을 한 채 뻗어서 격이라 중얼대는 사가를 보다 상세창을 켰다.

[펫]린 아니사 (이름 수정하기)

몬스터의 왕, 유일(God).

자신보다 강한 격을 가진 우도현(현재 주인)에게 종속되었습니다.

친밀도 20퍼센트(최대 100퍼센트)

-목줄 버프:친밀도를 빠르게 상승시킵니다. 친밀도 하락을 막아 줍니다.

능력치(상세 보기+)

[낮은 친밀도로 상세 정보를 출력할 수 없습니다.]

[--- 조건 1 달성으로 린 아니사의 상태창을 확인합니다!]

[--- 조건 1 달성으로 린 아니사의 잠재력을 확인합니다!]

[펫]린 아니사

몬스터의 왕, 유일(God).

제브라드 태생의 골드 드래곤.(드래곤 로드 사가나자르)

신 제브라드의 도움으로 신격에 올랐습니다.

가장 뜻 깊었던 유희, 린 아니사의 모습입니다.

자신보다 강한 격을 가진 우도현(현재 주인)에게 종속되었습니다.

능력치(상세 보기+)

특성

-모든 몬스터의 어버이로, 수족처럼 부릴 수 있습니다.

-몬스터를 창조, 육성, 진화, 변이가 가능합니다.

-워프를 창조, 성장, 파괴가 가능합니다.

잠재력(진척도 10퍼센트)

잠재력 개방 시 불사(God), 정화(God) 습득 가능.

잊어먹고 있던 ‘--- 조건 1’이 발동하면서 숨겨진 정보까지 떴지만, 도현의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설명이었다.

‘제브라드의 도움으로… 신격에 올랐다?’

끙끙대며 몸을 일으킨 사가가 복잡한 얼굴로 먼저 말했다.

“네놈은 정말… 인간이 맞느냐? 신보다 격이 높은 인간… 하아.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자리를 옮길 필요는 없겠지. 그래, 궁금한 건 제브라드 님인 것이냐?”

“어.”

“제브라드 님은…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어느 차원이든 행성이든. 지구에서는 네가 했던 가상현실 게임의 절대 깨지 못하는 퀘스트에 조건을 걸어 뒀었지.”

“적임자란 게 뭐야? 본론만 말해.”

“…적임자는 네가 제브라드 님께 들었던 대로 신이다. 하지만 넌 거부했지. 생각도 못한 선택이었다. 그 뒷일은 네가 저지른 깽판과 차원 귀환이었고.”

도현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문제는, 네가 차원 귀환했을 때였다.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신들이 내기를 시작했다는 것이지. 내기가 시작된 차원은 멸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슨 개소리야? 내가 가만둘 것 같아?”

사가가 흥, 하고 웃었지만 금세 침울해졌다.

“네 말대로 넌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네놈도 막지 못했다. 그것이 제브라드 님이 보셨던 미래였다.”

뭐라고? 이 내가?

무쇠 배트로 뒤통수를 거세게 맞은 듯 도현은 얼얼하다 못해 정신이 멍멍해졌다.

“이해가 안 되겠지. 나 또한 정확히는 모른다. 제브라드 님이 모든 걸 말씀해 주신 게 아니니까. 어쨌든 네가 돌아간 이후 제브라드 님이 나에게 찾아오셨다.”

사가는 식빵 자세로 앉아 꼬리로 자신의 몸을 둘렀다.

“도와 달라 하셨지. 자신의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제브라드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자신의 과오?”

술술 내뱉던 사가는 도현이 되묻자 순간 말을 멈추고 도현을 쳐다봤다.

“들어도 괜찮겠느냐?”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다시 워프를 들쑤시고 다니지 않겠다고 약속하거라.”

묘한 기시감이 가슴을 쿡 찔렀다. 듣지 말라고, 들으면 후회한다고. 그럼에도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제브라드에 오면서 남은 흔적 때문이었다.”

“그게 과오?”

사가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본래 지구는 신들의 놀잇감이 아니었다. 태양계라는 거대한 방어막이 막고 있기에 이런 이변이 일어날 차원도 아니었다.”

‘그 말은 역시 제브라드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거잖아?’

도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려 하자 사가가 타일렀다.

“끝까지 들어라. 제브라드 님은 바로잡고자 과거와 미래를 살피셨고, 그게 지금의 현재다.”

“…….”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현재의 끝도 어떻게 될지는……. 어쨌든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으니 난 믿고 움직일 뿐이니라. 그리고 그 여파가 제브라드 세계에도 미쳤을 거다.”

사가는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닫았다. 도현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성정상 벌써 들고 일어나도 일어났을 텐데, 예상과 달리 생각에 잠긴 듯 조용했다.

긴 침묵은 도현의 한숨으로 깨졌다.

“하아… 결론은 나한테 다 떠넘기고 잠수 탄 거잖아?”

“무슨 말이냐?”

“신의 대리자.”

“뭐, 뭣? 그게 진짜냐?”

사가는 앞발로 머리, 양쪽 귀를 잡고 크윽, 신음을 흘렸다.

“어쩌면… 제브라드 님은 이미 영면에 드셨을지도 모르겠구나…….”

“뭐……?”

제브라드가 죽었다고……?

***

아침이 밝음과 동시에 대한민국은 새로운 격변을 맞이했다.

비정부 기구 단체였던 한국 헌터 협회가 정부로 소속된다는 소식이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헌터들의 불만이 튀어나올 만한데, 부협회장이었던 판세기가 협회장으로 승격했다는 거다.

그러면 협회장이었던 강혁은?

정부와 헌터 협회의 간담회에서 대통령 살인미수로 도망쳤다. 거기에 비자금 조성, 헌터 부당 대우, 인맥을 통한 헌터증 증여라는 죄목을 붙여 현상 수배 뉴스가 매시간 송출되었다.

그리고 전 협회장 강혁을 거든 블랙홀의 대표 우대성과 인맥 헌터증 사건의 장본인이자 국내 모든 워프를 이렇게 만든 도현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빈껍데기만 남은 워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연달아 일어난 사건은 국민들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분노로 말이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각성자와 헌터가 시위를 벌이고, 무력 다툼으로 인한 사건, 사고까지 이어지며 마치 세상이 변한 그날로 돌아간 듯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민혁은 쉼 없이 떠들어 대는 휴대폰 동영상을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피로에 절어 기절했던 민혁은 꼭두새벽부터 깨운 엄마가 뉴스를 보여 줬고, 놀라 도현의 집에 쳐들어온 것이다.

물론 꽤 얼굴이 팔린 탓에 집에서 뛰쳐나갔다 되돌아와 농장을 통해 온 것이긴 하지만.

민혁은 농장에서 도현의 집으로 넘어오자마자 난장판이 된 거실을 보고 놀랐다. 혹시나 먼저 쳐들어온 경찰들을 다 처리해 버린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갈가리 부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전한 건 도현이 앉은 소파 하나였는데, 그의 품에 안긴 채 잠든 토토를 보호하기 위해 온전할 수 있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모르달이라도 있었으면 물어봤을 텐데…….’

혹시나 농장에 있나 싶어 가 봤지만 모르달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한숨을 푹 내쉬던 민혁은 몇 시간째 석상처럼 앉아만 있는 도현에게 참지 못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우도현!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이러다 경찰이라도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50번 넘게 한 말이다.

좋게 타이르듯, 걱정스럽게 했던 말이지만 역시나 묵묵부답.

이 정도면 개 무시로 보는 게 맞았다.

극약 처방으로 한 대 치려고 손을 들던 민혁은 도현의 품에 안긴 채 잠들었던 토토가 낮게 끙끙대자 화들짝 놀랐다.

“모루달… 모루달… 가지……. 핫! 모루달? 모루달? 흐아아아앙!”

눈을 뜨자마자 펑펑 우는 토토.

민혁은 그제야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제야 한숨처럼 숨을 내뱉으며 도현은 토토의 등을 토닥였다.

토토가 도현의 어깨에 올라타 얼굴을 부여잡고 말했다.

“압빠, 압빠, 모루달 어디 갓써? 모루달, 모루달 보고 시퍼! 압빠, 모루달 찾아져! 흐아아앙!”

“곧 올 거야. 기다리자.”

“아니, 아니, 지금! 모루달 보고 시퍼! 압빠하아앙!”

잔뜩 가라앉은 도현의 목소리가 영 힘이 없었다.

화를 내려던 민혁은 힘이 빠졌다.

한편으론 너무 괘씸했다.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은 민혁이 짜증을 냈다.

“너 진짜 말 안 할 거냐? 너한테 난 그 정도도 못 돼?”

“미안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

얼굴을 잡고 비비적대는 토토를 다시 품에 안은 도현은 천장을 보고 한숨을 뱉었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민혁은 착잡해졌다.

우도현이 저럴 정도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자신에게 얼마나 말해 줄지 알 것 같아서였다.

민혁은 더 캐묻지 않기로 하고 말했다.

“집 좀 어떻게 해 봐. 이게 무슨 꼴이야?”

말없이 손가락을 튕기자 모든 게 제 위치로 돌아갔다.

그리고 도현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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