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18화 (118/200)

# 118

118. 신의 대리자 (2)

고양이의 하악질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개고생하며 겨우 균형을 맞추고 있었는데! 넌 도대체 뭐야! 집에 돌아왔으면 그렇게 좋아하는 백수 짓이나 할 것이지, 헌터 짓은 왜 하는 건데! 하여간 도움 안 되는 인간 같으니라고!”

너무 많은 말을 내뱉어서일까.

씩씩대는 건지, 헥헥대는 건지 모를 가쁜 숨을 내쉬는 고양이를 다시 본 도현은 상반신을 일으켜 소파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고양이를 주시했다.

“너 혹시 제브라드냐?”

“아니다.”

“하긴, 늙은이 말투는 안 맞지. 그렇다기엔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데?”

동시에 도현의 몸에서 거대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집을 감싸고 있던 투명 막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고양이가 다급하게 폴짝 뛰었다.

“야, 이 자식아! 힘 좀 거두거라! 나다, 사가! 사가나자르!”

도현은 힘을 멈추며 멍청하게 되물었다

“드래곤 로드?”

“그래, 이 미친놈아!”

“그 꼴은 뭐야?”

“현신은 부담되니 최소화한 모습일 뿐이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된 놈이 귀환하고도 그렇게 강한 거냐? 다른 놈들이 눈치챌 뻔하지 않았느냐!”

귀를 젖히며 위협적이게 울었지만 고양이라 그런지 크르르, 가 아닌 에에옹, 하는 울음소리만 나왔다.

사가를 보는 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가, 설명이 많이 필요하겠는데.”

“그래서 왔다. 설마 설마 했지만 이런 깽판이라니.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에잉.”

머리를 도리도리 흔든 사가는 앞다리를 뻗어 기지개를 쭉 켜더니 나른한 몸동작으로 테이블에 배를 깔았다.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더구나.”

골고타 이야기를 짚자 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오히려 탐탁지 않은 건 사가였다.

“결과가 달랐을 것 같으냐? 내 생각에는 이렇게 흘러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불쾌한 건 불쾌한 거다.

사가가 혀를 찼다.

“네놈이 입을 닫은 게 문제야. 아는 게 있었다면 최소한 내가 신경 썼을 거 아니냐.”

“뭣 하러 남한테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어?”

도현은 제브라드에 떨어진 이유를 들은 뒤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사가는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도현은 쓴 입맛에 짧게 혀를 차며 화제를 돌렸다.

“워프 이야기는 뭐야?”

“말 그대로다. 워프가 파괴될 때마다 지구의 마나 농도가 짙어진다.”

“본론만.”

“3등급 이상의 워프 출현이 높아지지. 그리고 각성자의 평균 능력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도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썩 나쁜 일인가?”

“…이런 놈이 검과 마법의 끝을 봤다니. 하아! 도현아,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란다.”

“잔소리는 1절만 해.”

사가는 앞발로 한쪽 눈을 쓸어내렸다. 심각함에 절로 나온 버릇이지만, 마치 고양이 세수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현신. 현신이 가능해지면 어떻게 할 거냐?”

“잘됐네. 안 찾아가도 되고.”

사가가 머리를 흔들었다.

“신들은 멍청하지 않다. 현혹하고 이용하며 쉽게 버리지. 너 혼자서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

도현은 피식 웃었다.

“나, 우도현이야.”

사가가 측은한 눈으로 도현을 바라봤다.

“네 가족은 어쩔 셈이냐? 친우는 어떻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여긴 네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네 집이다. 즉, 지킬 것도, 잃을 것도 많지.”

도현이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해 보라고 해.”

“요행으로 골고타를 처리했다고 기고만장하지 말거라. 그들은 신이 되고 오랜 세월 이 짓거리만 해 왔다.”

도현은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사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봤자 고양이라 눈이 살짝 사나워지는 게 다였다.

“그러게 워프 좀 두면 안 됐었냐? 네놈 복장 긁는 놈이 한두 놈도 아니고. 어차피 재벌 2세인데 돈만 쓰고 살아도 됐지 않느냐?”

도현이 씩 웃었다. 분명 웃는 얼굴이지만 소름 끼치는 차가움에 사가는 삐죽삐죽 서려는 털을 애써 털었다.

“사가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시가는 괜히 창밖을 보며 다시 헛기침했다.

드래곤 사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자애롭고 현명한 드래곤 로드인 사가이지만, 그런 그의 아들은 드래곤 중에서도 망나니라 부르는 이오르였으니까.

잠깐?

“사가, 신이라 했지?”

“그래.”

“내가 귀환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브라드에 있었잖아?”

“그랬지.”

단답에 도현은 살짝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며 물었다.

“지구가 바뀐 건 5년 전이야.”

“시간은… 일단 역행했다.”

일단?

“그럼 다음 로드는?”

“없다.”

“뭐?”

그때, 허공이 갈라지며 토토를 안은 모르달이 불쑥 나옴과 동시에 사가의 말이 튀어나왔다.

“신이 없으니까.”

모르달은 안고 있던 토토를 거실 바닥에 떨어트렸다.

“아, 젠장…….”

도현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찧은 엉덩이를 쓱쓱 문지르며 일어난 토토가 굳은 모르달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모루달?”

“도, 도련님, 무슨… 말임까요?”

혼란이 가득한 모르달의 시선이 도현을 향했다.

도현은 지끈거리기까지 하는 머리에 인상을 찌푸리다 눈을 동그랗게 뜬 사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쟤 몰라?’

‘그럼 알겠어?’

왜 고양이가 식은땀을 뻘뻘 흘려 대는 것 같을까.

눈으로 대화가 이어진 그사이, 피식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달의 헛웃음이었다.

“하, 하하… 지구에 대해 이야기 중이셨슴까요? 지구야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럴 수 있슴다요. 아! 그래서 이 신님이 오신 검까요? 지구를 담당하게 된 신님이심까요? 소인, 제브라드 님을 모시는 거대 흰족제비족 모르달이라고 함다요! 만능 일꾼에, 이런 귀여운 외모에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살짝 넋이 나간 눈동자와 과장되게 횡설수설하는 입.

도현은 손바닥 끝으로 이마를 문지르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달.”

“예, 도련님! 아, 이야기 중이신데 소인이 눈치가 없었슴다요. 헤헤, 시원한 음료를 내오겠슴다요!”

“모르달.”

“왜 자꾸 부르심까요, 도련님?”

“미안하다.”

모르달은 오류 난 로봇처럼 잠깐 멈췄다 배를 잡고 웃어 댔다.

“푸하하하! 도련님, 무슨 말씀이심까요? 소인이 할 일 아님까요! 후딱 음료 내오겠슴다요!”

뒤돌아 도도도 뛰어가려는 모르달을 도현이 다시 잡았다.

“제브라드가 사라졌어.”

“에이, 도련님, 농담 마심쇼.”

모르달이 한 손을 펼쳤다. 작게 우웅, 하는 소리가 나며 빛을 발하는 은빛 구슬 하나가 떠올랐다.

“보심쑈, 이렇게 신성력을 쓸 수 있는데 무슨 말씀이심까요?”

도현은 시야에 뜬 메시지창을 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

“신성력 사용 허가 거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르달의 손 위에서 빛을 발하던 은빛 구슬이 전등 스위치를 끄듯 팟, 하고 사라졌다.

“도, 도련님……?”

지켜보고 있던 사가가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모르달, 이미 알지 않느냐.”

흔들리는 푸른 눈동자가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착각이 들었다.

“무, 무, 무슨 말씀이심까요, 고양이 신님? 제, 제브라드 님께서 사라지실 리 없지 않슴까요? 신이… 신이 사라질… 리가 없지 않슴까요…….”

억지로 웃는 입가로 맺히지 못한 눈물이 흘러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토토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한 채 모르달의 다리를 안고 얼굴을 비볐다.

“모루달, 모루달 울지 마! 모루달 울면 토토 슬퍼!”

모르달은 말없이 자신만 보는 도현과 한숨만 푹푹 내쉬며 창밖을 보는 사가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떨궜다.

실은 며칠 전부터 속으로 몇백 번이고 몇천 번이고 제브라드를 불렀다.

대답이 없음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직 끊어지지 않은, 얇은 실 같은 신성력 때문이었다.

방금, 도현의 한마디로 그 끈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눈물로 울렁이는 시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토토가 보였다.

초록색 눈동자가 슬픔으로 떨고 있었다.

모르달은 애써 펴지지 않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토토를 떼어냈다.

“모루달……?”

토토의 얼굴에 불안이 서렸다.

모르달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뒷걸음질 쳤다.

“토토 님… 죄송함다요…….”

모르달은 뒤돌아 옥상으로 뛰기 시작했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며 유리가 흩날렸다. 뒤를 이어 진동이 느껴질 만큼 묵직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전기가 잠깐 꺼졌다 켜졌다.

한밤중 소동으로 인해 주변 건물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며 어수선해졌다.

“모루달! 모루달! 압빠, 모루달! 모루달이! 흐아아아앙!”

당황한 토토가 풀쩍 뛰어와 도현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도현은 묵묵히 등을 토닥여 주며 모르달이 나간 옥상을 바라보기만 했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이렇게 터트리고 싶지 않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이 일의 원인 제공자인 사가는 오히려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내 결계를 뚫고 들어올 수가 있는 거냐! 그리고 저놈한테 왜 말 안 한 게야!”

도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로드가 허접한 신이라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참 고맙네. 이렇게 친히 오셔서 신이 죽었다는 신탁까지 해 주시고.”

“아니… 그게 아니라…….”

호칭이 바뀐 걸 보고 단단히 화가 났음을 알았다.

딱 한 번 이오르 때문에 부딪쳤을 때 저렇게 불렀던 적이 있으니까.

바로 축객령이 떨어졌다.

“본론만 말하고 꺼지지?”

사가는 몸을 일으켜 테이블에 앉았다. 내려다보는 도현의 시선을 슬쩍 확인하고 눈을 깔았다.

“하아… 이런 부탁은 염치없는…….”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찌르는 듯한 살기에 부르르 떨던 사가가 힘겹게 말했다.

“제브라드… 신 제브라드를 찾아주었으면 한다.”

“죽었다면서.”

“없어졌다 했지, 죽었다고 안 했어!”

“그게 그거지.”

도현이 피식,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데 내가 왜? 신이 되신 로드가 하시지.”

“할 수 없다.”

“그럼 지구에서 헛짓은 가능하고?”

“…….”

“지금 내가 이렇게 상대하는 것도 한때는 로드라서라는 걸.”

‘알지?’라고 묻는 서늘한 눈에 서린 힘에 몸서리치던 사가는 한편으론 저렇게 화를 내는 도현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상황이 썩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 버렸다.

‘그래도 출신 행성에서만큼은 깽판을 안 칠 줄 알았더니.’

사가는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바라봤다. 조금 전 모르달의 소동으로 출동한 경찰에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속만큼이나 어수선했다.

마음을 다잡은 사가는 힘겹게 입을 뗐다.

“아무도 듣지도, 간섭하지도 못할 곳이 있느냐? 물론 결계도 안 된다. 막 소란으로 의심하고 있을 게다.”

도현은 짜증스럽게 사가를 쳐다봤다. 굉장히 미안해하는 표정에 입맛이 썼다.

제브라드에서 그나마 이래저래 챙겨 줬던 아버지 같은 존재였으니까.

결계도 안 되고, 간섭도 못할 곳이라.

딱 하나. 농장밖에 더 있나.

하지만.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아무리 드래곤 로드가 맞다 해도 정말로 본인인지, 그 기억을 가진 다른 존재일지 어떻게 믿겠냐는 거다.

‘워프는…….’

처음 대면한 건 워프였으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조건에 적합하지 않다.

지구의 어떤 곳보다 워프가 신들의 간섭이 더 좋은 공간이란 걸 알았으니까.

크로아 워프의 경우, 워프 변이 중 워프핵이 사라지면서 불완전해진 특수한 상황이었던 거다.

이래저래 재고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사가가 클클 웃었다.

“변했구나, 도현아.”

“무슨 개소리를.”

“예전의 너는 의심 자체를 하지 않았지 않느냐. 할 필요가 없었다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고양이라니.

‘가만, 고양이?’

도현의 인상이 구겨졌지만 금방 펴지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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