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112. ㈜Black hole Farm (1)
대한민국의 푸른 심장. 청와대.
그곳은 평소와 다르게 무척이나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가 흘렀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경제부 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방부 장관, 그리고 한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과 부장이라 불리는 부협회장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오늘 정오쯤, 국내 최대 굴지의 워프인 드리아스의 농경지 워프에 안개가 끼며 접근할 수 없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마나석 워프와 양대 산맥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워프다.
그렇기에 특수 전담반을 편성해 직접 관리하는 워프인데… 2시간 동안 이어진 안개가 사라지기 무섭게 확인한 워프 세계는 텅 비어 있었다.
그저 남은 것이라고는 끝을 알 수 없는 황무지밖에.
다급함에 연구 목적으로 남겨 둔 묘목을 심어 봤다지만 이전처럼 줄기가 솟고 가지를 뻗어 잎이 생기기는커녕 고약한 악취와 함께 생생하던 묘목이 힘을 잃고 축 처졌다.
뿌리가 썩어 버린 것이다.
당황한 사이 국내 대표 생산 워프 10곳에도 안개가 끼었고, 안개가 사라진 후엔 전부 황무지만 남았다.
대통령, 고태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그와 함께 자리한 네 사람도 그저 한숨만 뱉을 뿐이었다.
고민환 부총리가 미간을 좁히며 헌터 협회장 강혁의 말을 되새기듯 중얼거렸다.
“이 모든 일이 일개 헌터의 짓이라니…….”
정확히는 팀의 짓이지만, 팀원이라 해 봤자 3, 4급 블루 등급의 헌터 두 사람이 끼었을 뿐이다.
더 추가해 봤자 5등급이라는 테이밍 몬스터 2마리까지.
머릿수만 맞춘 한 팀.
국방부장관 김춘식이 푸들푸들 턱살을 떨며 씹듯 내뱉었다.
“역시 빌런 채근석이 사라졌을 때 잡아들여야 했습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강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국방부장관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뭐라고요? 아직도 그 빌런을 옹호하는 겁니까? 협회장님께선 작금의 이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으신가 봅니다?”
“빌런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유일한 1급 헌터입니다.”
“누가 1급을 승낙한 겁니까? 협회장 단독으로요? 허, 헌터 협회도 이제 별 볼 일 없나 봅니다. 재앙을 물리친 헌터가 아닌, 재앙을 가져온 헌터가 1급이라니.”
“세상이 바뀐 그날부터 5년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헌터입니다. 돌아온 지 1년 남짓. 아직 세상에 적응하기도 빠듯했을 겁니다. 그러니…….”
국방부장관 김춘식은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섰다.
“협회장! 말이 되는 소릴 하시오! 행방불명 5년? 그런 놈에게 헌터 테스트를 허락한 게 말이 되오? 그 시간 동안 워프에 갇혀 있었다 하지 않았소! 그런 정신병자에게 헌터 자격증을 준 것도 모자라 1급이라니! 비상만 걸리지 않았다면 당신부터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어!”
대통령, 고태환이 엄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장관, 그만하게!”
“각하, 처음부터 협회에 권한을 주면 안 됐습니다. 아니, 헌터 협회 설립 자체를 인정해 주면 안 됐단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빌어먹을 일…….”
“그만하라 하지 않았나!”
김춘식은 억지로 입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고태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런 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된 건 매우 유감입니다. 하지만 대책은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입을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환 부총리가 입을 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내 수출과 생산의 70퍼센트를 차지하던 워프 모두가 사라진 겁니다. 대처할 워프는 5등급 10개가 있지만 모두 가동해 봤자 최대 30퍼센트만 복구될 뿐, 사실상 대한민국은 힘을 잃은 것과 마찬가집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 70퍼센트가 각성자다. 그들의 능률은 7급 기준으로 일반인의 5배.
그런 인력이 투입되어도 3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니.
이는 최악의 상황을 겨우 모면할 뿐, 뒷걸음질 한 번이면 절벽에서의 추락만 남을 뿐이다.
‘…이미 추락 중일지도 모르지.’
고태환이 마른세수를 했다.
“힘을 잃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일자리겠군요.”
“예, 각하. 워프가 생겨나고 워프로 생계를 유지했었으니까요.”
“실업자가 얼마나 됩니까?”
“80퍼센트로 예상됩니다.”
엇박자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고민환이 설명을 이었다.
“국내 생산 워프 260곳 중 주요 워프를 포함해 70곳이 기능을 잃었습니다. 만약 예상처럼 흘러간다면 워프로 생계를 유지했던 국민들은 모두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김춘식이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성급하게 최악을 염려한 것 아닙니까?”
“이런 일일수록 최악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하는 가운데,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고민환의 비서였다.
“크, 큰일 났습니다! 현재 시각으로 국내 2, 3, 4, 5등급 워프가 전부 황무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첫 워프가 황무지로 변하고 6시간 만의 참사였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흠칫 놀란 비서가 조용히 회의실을 나간 뒤, 김춘식은 입만 벙끗거리다 기가 찬 탄식과 함께 등받이에 털썩 몸을 기댔다.
강혁이 입술을 씹었다.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테이블 아래의 주먹 쥔 손은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 옆, 한마디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만 보던 부장 판세기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분위기만 봐도 금빛 동아줄이던 헌터 협회가 썩은 동아줄로 바뀔 상황이란 걸 깨달은 거다.
한참 말이 없던 대통형, 고태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 시간부로 헌터 협회는 단독, 협력 체제가 아닌 국가 산하로 편입합니다. 오직 국가만 관리, 변경 권한을 가지며 모든 헌터는 국가의 법 아래 귀속됨을 알립니다.”
헌터 협회 부장 판세기가 벌떡 일어났다.
“가, 각하! 아직 워프가 남아 있습니다! 비상 체제도 끝나지 않았고요! 헌터들의 반발 또한 심각할 것으로 초래됩니다!”
고태환의 눈이 판세기로 향했다. 비웃음이 담겼다.
“대한민국을, 이 고태환을 바보로 아시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국민의 70퍼센트는 각성자다.
즉, 어디든 각성자는 흔하다.
그리고 그들 중에 마나를 다루는 이들도 꽤 있다.
미약하다더라도 말이다.
“그, 아니, 무슨?”
고태환이 마나를 불어 넣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손목의 고급스러운 시계가 빛을 발하며 회의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김춘식이 비릿하게 웃으며 강혁을 쳐다봤다.
“우선은 당신들이 모범을 보여야겠소. 국가의 번견으로 말이오.”
판세기가 회의실을 어지럽게 채우는 문양과 그 사이로 붉게 물드는 주먹만 한 마나석을 보며 넋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주종 마법진…….”
시전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마법. 제일 골칫덩이인 정신 계열 능력이었다.
그나마 정신 계열 능력자들이 6급 이하로 점점 사라지면서 최근 2년 사이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범죄라는 건 더 은밀해지고 치밀해지기 마련이다.
정신 계열 능력의 단점은 시전자보다 강한 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강한 사람의 정신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나, 같은 정신 계열 각성자가 최소 3배 이상 필요했다.
‘하지만 저렇게 큰 마나석이라면…….’
문제는 마나석이었다.
국내에서 발견된 마나석 워프.
그걸 범죄 집단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이렇게 쓸 줄이야……!
그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가늘고 길게. 이 자리만 지키다 정년 퇴임 해 온후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놈의 우도현……!’
하루 종일 씹어 댄 것만 몇천 번은 되었지만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강혁의 눈이 은빛으로 물들었다.
***
계획한 일을 모두 끝낸 도현은 집으로 이동했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두 사람을 강제로 회복시킨 뒤, 토토와 모르달을 불러 차를 타고 움직였다.
도착한 곳은 블랙홀. 엄마, 임혜정의 사무실에 갈 생각이었지만 다른 곳으로 불려 갔고, 거기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회사 임원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중앙에 사각 구멍이 뚫린 둥근 테이블. 얼추 머릿수만 꼽아도 50명은 될 법했다.
들어서기 무섭게 엄마의 한마디가 도현을 멈춰 세웠다.
“네가 한 일이니?”
협회장에게 했던 말이 있으니 엄마, 아빠가 모를 수가 없지.
TV나 온라인으로도 엄청나게 떠들고 있을 테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이유도 그 때문일 거다.
어차피 밝힐 문제이기도 했고, 이후로 엄마가 아닌 회사와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았기에 회의실로 왔다.
도현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탄성과 함께 회의실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졌다.
말이 되냐는 쪽과 분노하는 쪽, 그리고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쪽.
“그게 말이……!”
답답함에 울분을 토하는 아빠, 우대성은 임혜정의 만류에 말을 멈췄다.
임혜정이 가라앉은 눈으로 도현을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니?”
도현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회의실 앞, 화이트보드가 걸린 벽 옆, 사회자가 쓸 법한 탁자 위에 걸터앉았다.
다양한 감정을 담은 시선들이 창처럼 꽂혀 따라 움직였지만,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스네일.”
……?
“스네일 워프가 사라진 건 모두 알고 계시겠죠. 그런데 어떻게 스네일 가공 제품들이 나오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한 임원이 대답했다.
“사내 연구실에서 배양에 성공한 거 아닙니까? 오히려 더 질 좋은 몬스터로요.”
모두 잠깐 어수선해졌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봐서 그렇게 둘러댄 듯했다.
도현이 즉각 말했다.
“아닙니다. 서식지가 따로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 헌터가 헌팅했던 워프는 이미 파괴됐을 텐데요!”
웅성웅성,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도현은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빼 머리 위로 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도현이 손을 내리며 대답했다.
“워프가 아닌 서식지라 했습니다. 그 서식지는 내 능력인 농장입니다. 허락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죠. 그리고.”
도현이 임혜정을 바라봤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따라 임혜정에게 꽂혔다.
“임혜정 대표이사님이 협력자로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이, 임 대표님! 저, 정말입니까!”
“여… 여보?”
임원에 이어 아빠마저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당황할 법도 한데, 엄만 그저 담담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도현은 피식 웃었다.
저 표정, 저 담력 전부 자신과 같지 않나.
마치 더 해 보라는 듯 도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네.’
도현은 엄마를 이웃으로 등록한 후 어떤 기능이 있는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것을 지금에 와서 언급한 이유는,
“모든 분들이 궁금해하는 건 누구나 오갈 수 있느냐는 것이겠죠. 예, 가능합니다. 단지 임 대표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도현은 쐐기를 박았다.
“빈 깡통이 된 국내의 워프 전부가 농장에 있습니다. 그것도 몇 배나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결국 회의실의 모두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떠들어 댔다.
회의실 앞까지 달려 나와 질문하는 직원도, 혼자 만세를 부르짖으며 중얼거리는 직원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전부 들떠 있었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블랙홀, 워프 마켓 1위를 넘어 새롭게 비상할 때라는 걸.
한참 동안 이어질 것 같던 어수선한 분위기는 10분도 안 되어 잠잠해졌다.
도현의 파격적인 발언으로 새로운 사업 확장에 대한 회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질의응답으로 이어진 회의는 4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저 간간이 농장에 대한 질문이 날아오면 민혁과 아바가 상세하게 설명하며 예시를 농장에서 가져와 보였다.
처음에는 질겁하던 임원진들은 곧 눈에 불을 켰고, 더 세부적인 조항을 작성하기 위해 엄청난 질문을 쏟아 냈다.
그 덕에 민혁과 아바에 이어 토토와 모르달까지 오가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