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 워프핵 (1)
도현은 세종시의 3등급 워프를 시작으로, 제일 급하다는 광주 근처까지 총 6개의 워프핵을 가지고 나왔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1시간.
도현이 거실에 나타나자마자 보인 건 토토를 안고 장난치는 아바, 그리고 모르달과 대화 중인 민혁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이 질문을 쏟아부으려고 하자 도현이 먼저 말했다.
“워프 6개. 파괴는 아니고 워프핵만 가지고 나왔어.”
민혁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 줄은 모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바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도현은 확인 사살 하듯 손에 쥔 워프핵을 보여 주었다.
생명력을 가득 품은 듯 선명한 노란색의 수정. 작은 크기 때문에 더 가짜처럼 보였다.
민혁은 도현이 손을 펼치기 무섭게 느껴지는 마나에 감탄했고, 아바는 자신도 모르게 몽롱한 눈으로 수정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이 닿기도 전에 도현이 주먹을 쥐었다.
정신을 차린 아바가 탄식했다.
“안 만지는 게 좋아. 이래 봬도 진짜라 위험하거든.”
모르달은 아바를 향해 쯧쯧, 혀를 차며 도현에게 물었다.
“도련님, 워프핵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심까요?”
“일단 12개 다 모아서 한 달 되는 날 부숴 버릴까 싶은데.”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프 파괴라는 건 워프에 있는 워프핵을 부숴 워프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니까.
민혁이 물었다.
“근데 왜 6개야?”
“지금 요리 학원 가야 하니까.”
정말 단순한 물음에 단순한 대답이었다.
둘을 보고 아바가 헛웃음을 흘렸다.
서둘러 윗옷을 걸친 도현은 민혁이 뭐라 하기 전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갔다 올게.”
“혀, 현아!”
눈 깜빡한 사이 도현이 사라지자 민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수업 또 밀렸다는 걸 알면 난리 날 텐데…….”
움찔한 모르달이 손에 쥔 도현의 휴대폰을 살폈다.
민혁의 말대로 비상 체제 때문에 헌터를 겸업으로 하는 셰프들의 수업은 셰프들의 일정에 따라 조절되어 진행된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휴대폰을 든 모르달이 불안한 듯 물었다.
“도련님 오시면 난리 날 것 같은데, 어쩜까요……?”
민혁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나.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 또 밀렸어!”
사라진 지 채 1분이 안 된 것 같은데, 불쑥 다시 나타난 도현이 짜증을 와락 냈다.
“그러니까… 말해 주려고 했는데.”
도현은 모르달에게 휴대폰을 맡기고 갔다는 걸 깜빡했다.
“어. 들었어.”
가자마자 데스크 직원에게 설명을 들은 그는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거기에 마침 강의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달려오자 도망치듯 나온 도현은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토요일에 몰아서 한대. 하, 이 신 놈들을 정말…….”
일주일 전부터 기대했던 수업이 또다시 연기되었으니 짜증이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신 놈들?’
민혁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리는 도현을 보자 갑자기 전부터 묻고 싶었던 궁금증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차도식 헌터가 왜 처남‘님’이라 부르는지.
협회장이라는 사람이 왜 도현의 눈치를 보는지.
그리고 토토와 모르달이 정말 테이밍 몬스터가 맞는지.
듣도 보도 못한 검에, 감히 상상도 안 될 강한 힘도.
오늘처럼 가끔 이해 안 되는 말을 해 대는 것도.
도현의 겉모습은 근육이 붙은 것만 뺀다면 10대 때 그대로다. 하지만 처음 본 날 얼굴만 비슷한 다른 사람이라 착각했었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으니까.
다른 애들에 비해 사춘기를 무난하게 보냈던 도현은 생긴 것과 다르게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겉으로 꼬였던 게 속에서 꼬여 푹 썩은 늙은이가 된 느낌이랄까?
자신이 좋아하는 꼬리곰탕을 먹으러 간 날도 그랬다.
선물이라며 주던 작은 상자. 그때 근석이를 입에 담을 때 자신이 알던 그 우도현이 맞나 싶었으니까.
입으로는 친구라는데, 섬찟할 정도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인도에 굴러다니는 전단지가 더 감정이 있어 보일 정도.
나이를 먹었다고 해 봤자 아직 26살인 녀석이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나?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묻지도 못하고 안 굴러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유추하는 것도 성미에 안 맞았다.
자신이 가진 거라곤 잘난 얼굴과 낙천적인 성격이라지만, 까놓고 말하면 단순하고 멍청하다. 그저 할 줄 아는 건 여자 후리기뿐인 10대의 과거밖에 없으니까.
아무리 자신이 단세포라 해도 도현이 저렇게 대놓고 보여 주는데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모른 척하는 것도 이젠 한계였다.
‘협회장님과 도식이 형, 지현이도 다 아는 것 같았어.’
솔직히 부대낀 생활만 치자면 중·고딩 6년인데, 그 정도면 자신도 알 자격이…
‘있지! 왜 없어! 씨, 나만 빼놓고!’
자신도 모르게 뱉는 숨을 따라 민혁의 입이 삐죽 튀어나와 버렸다.
도현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너 왜 그래?”
한때는 도현을 보고 표정을 못 숨긴다고 놀렸었는데,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 아니랄까 봐.
조금 전 투덜거렸던 민혁은 킥, 웃으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냥 속 시원하게 물어보자.’
“현아, 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5년간 무슨 일이 있었냐?”
순간 아바는 기겁했다.
‘아니,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렇게 튀어 버리지?’
궁금하긴 했다. 매번 의미심장한 말을 할 때도 있었고, 뜬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으니까.
특히 미국은 1년 전까지만 해도 1급 헌터가 있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헌터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노아 이선의 헌팅 영상도 빼놓지 않고 봤었다.
처음 각성하고 모두가 모였을 때 딱 한 번 보기도 했지만… 도현에 비한다면…….
‘일반인으로 보이지 않을까……?’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빙판을 만들고, 인벤토리에서 집이 튀어나오고, 크라켄이라는, 1등급 워프의 보스 몬스터로 봐도 무방한 그런 놈을 요리하듯 다듬고.
심지어 바다도 갈랐다.
다시 생각해도 등이 서늘해지는 강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바는 긴장감으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자신이 스파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 정말 숨길 일이라면 입을 닫겠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도현이 가볍게 말했다.
“아, 얘기 안 해 줬었지. 다른 차원에 떨어졌다가 돌아왔어.”
“다른… 차원? 워프?”
“뭐, 비슷해.”
민혁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맨몸으로 다른 차원에 떨어졌다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온갖 고생은 다 하고 살아 돌아온 게 아닌가.
5년……. 도현이 강한 것도, 성격이 그렇게 변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니지, 이 정도인 게 다행이야.’
세상이 바뀌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군인이나 경찰, 의사, 간호사, 소방관 등 헌신하는 사람들이나 위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들이 겪는 장애라 생각했지만, 현재 PTSD를 제일 많이 겪는 이들은 헌터다.
늘 헌팅으로 인해 생사의 경계를 오가니까.
한 해에 헌터 라이센스를 따는 사람들이 50명이라 치면, 그중 3분의 1은 헌터를 그만둔다. 충격 때문이다.
나머지 3분의 2에서 70퍼센트는 죽거나 장애를 가지고 그만둔다.
남은 10명은 헌터 생활을 이어 가지만, 유명세를 탄 이들은 드물다.
가끔 TV에 나오는 헌터들을 볼 때면 뭔가 단정하기 힘든 미묘한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이들과 비교하자면, 도현은 정말 신이 도왔다고 봐도 될 정도로 조금 꼬인 게 전부였다.
‘신이라…….’
그러고 보니 차도식 헌터가 어느 헌터 잡지에서 그런 말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도현이 신이라고.
그만큼 너무 강하니까 비교 대상이 없어서 그렇게 표현했다며 다들 ‘강하다’는 말에 초점을 두었지만, 감추어진 진실을 알고 생각해 보니 팔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도식이 형은 현이의 본모습을 본 게 아닐까……?’
꿀꺽, 침을 삼킨 민혁이 오늘따라 유난히 들러붙은 듯한 입술을 힘겹게 떼며 말하려고 할 때였다.
“압빠! 토토, 노란 거 갓고 싯퍼! 노란 거!”
아바의 무릎에 앉아 있던 토토가 도현의 팔에 풀쩍 뛰어오르더니 눈을 반짝이며 도현의 손가락을 펴려고 안간힘을 썼다.
워프핵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모르달이 토토를 말렸다.
“토토 님! 불쾌한 물건임다요. 만졌다가 다칠 수도 있슴다요!”
“시러! 노란 거 줘어어! 토토 꺼얏!”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포기했을 텐데, 오늘따라 욕심을 부리는 게 이상했다.
이렇게 매달리니 마음이 약해지려 했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도현과 모르달이 딱 잘랐다.
“안 돼. 지지야.”
“토토 님, 절대 안 됨다욧!”
토토에게 위험하다기보단 무슨 사고를 칠지 예상이 되지 않아서다.
“지지 아냐! 이쁜 건 지지 아냣! 모루달, 미버! 압빠, 미버!”
도현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울먹이는 토토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그렁그렁한 눈물을 담은 눈동자는 아직 욕심으로 가득했다.
문득 궁금해진 도현이 물었다.
“뭐하려고?”
“노리터, 이쁜 거 만드려구…….”
“아.”
도현과 민혁이 동시에 탄식했다
도현은 농장에서 워프핵을 테스트해 볼 생각이 들었고, 민혁은 놀이터라는 말에 그곳이 어딘지 묻고 싶어서였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왜?”
다시 똑같이 물었다.
“푸후후훗!”
이번엔 크게 웃음이 터진 아바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둘의 얼굴이 아바를 향했다. 왜 웃냐는 의미였지만 표정만은 달랐다.
도현은 짜증이 밴 시선이었고, 민혁은 그저 눈을 깜빡였다.
“그냥, 두 사람 친구구나 싶어서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처음 본 날은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를 떠올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둘이 친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바는 마침 생긴 의문을 풀고 싶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놀이터가 뭐죠?”
인어 워프에 들어갔을 때도, 워프 던전에 갔을 때도, 그리고 오늘도 도현이 오기 전 토토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왔던 그 놀이터.
토토가 설명을 해 주긴 했지만, 아직 한국어 학습이 부족한 탓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르달에게 물어봤자 말 못한다며 고개를 저을 뿐.
아무렇지 않게 예전 이야기를 해 주는 지금이 기회였다.
도현은 손에 든 토토를 어깨에 올리고, 노래를 불러 대는 워프핵 하나를 쥐여 주었다.
어떻게 할 건지 호기심이 들어서다.
그러자 언제 떼를 부렸냐는 듯 헤, 하고 웃으며 워프핵을 볼을 비비는 토토의 모습에 아바는 입술을 꾹 씹었다.
이 자리에 도현이 없었더라면 충동을 못 이기고 토토를 와락 안아 볼을 비볐을 테다.
그사이 잠깐 고민하던 도현이 말했다.
“뭐, 말보단 직접 보는 게 낫겠지.”
도현이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툭툭 치기 시작했다.
저번 인어 워프에서 인어들을 어디론가 보내기 전에 하던 행동이었다.
그때 돋았던 소름을 잊지 못한 아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국 헌터 협회장 와이어트 콜튼.’
헌터 양성 프로젝트를 실행하던 그날, 미국 헌터 협회장도 도현과 같은 행동을 했었다.
그땐 저 모습이 그저 깊게 생각에 잠긴 거라 생각했었는데.
뭔가 일반적인 헌터와는 다른 능력을 가졌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에 이채가 서렸을 무렵, 갑작스럽게 눈앞에 익숙한 창이, 하지만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떴다.
[농장(도현읍) 주민이 되었습니다. 농장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농장?”
민혁과 아바가 동시에 중얼거리는데, 도현이 제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확인 누르고 와.”
“…….”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보고 ‘예.’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