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 비상 체제 (3)
비상 체제 첫날.
대한민국 전체가 숨죽이며 긴장했던 것과 달리, 워프 파괴는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단 하루 만에 5등급 워프 129개 중 1/3인 39개가 파괴되었고, 4등급 워프 74개 중 10개가 파괴되었다.
580만 명이라는 헌터 수에 비해 파괴된 워프 개수가 적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국내 의식주와 무역을 워프에 의존하는 탓에 헌팅으로 끝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워프들은 한 달이란 시간을 들여 2주기를 맞이한 다음 판단하기로 보류된 상태였다.
그리고 제일 이목이 쏠렸던 3등급 워프는 안타깝게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도현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받친 채 소파에 모로 누워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토토가 튼 TV의 먹방 예능 재방송. 봤던 기억이 얼핏 났지만, 다른 채널로 돌리진 않았다.
현재 어느 방송사든 비상 체제에 관한 이야기나 떠들어 대고 있을 테니까.
도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왼손에 들린 노란색 수정 6개를 한 손으로 저글링을 해 댔다.
그저 한 번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원을 그리며 손에 되돌아오는 6개의 수정에, 그가 앉은 소파 앞. 세로로 놓인 3인 소파에 앉은 민혁과 아바가 감탄과 한숨을 번갈아 내뱉었다.
도현이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없네.”
아바가 뚱하니 말했다.
“아직 하루밖에 안 됐으니 그렇겠죠.”
하루 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던 민혁이 갑자기 감탄했다.
“오오, 그리버 실시간 검색어에 떴어. 우도현 헌터, 3등급 워프 헌팅 헌터, 1위, 2위인데? 음, 3위는 2등급 워프… 헐, 한라산에 2등급 워프가 있었어?!”
아바가 슬그머니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마를 찡그렸다.
아바가 말했다.
“워프 헌팅 헌터 비공개 아니었어요?”
“그러게, 기사에 워프랑 헌터 이름 다 떴는데? 그래서 현이가 검색어에 뜬 거구나.”
도현은 두 사람의 말에 대꾸 없이 손에 쥔 수정만 만지작거렸다.
모르달이 고개를 저었다.
“참, 도련님도 대단하심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슴까요? 워프핵만 가지고 나온다니.”
모르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혁과 아바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시작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던 그 시각, 차를 마시며 뉴스를 시청할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마지막 한 모금을 후룩 마신 도현이 툭 내뱉었다.
“분명 빨리 끝내면 또 일거리를 주겠지.”
매니저 전용 태블릿을 보던 모르달이 수긍했다.
“그렇슴다요. 비상 체제로 2주기 워프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1주기를 넘긴 워프 대부분은 헌팅이 안 된 상태임다요.”
“뭐? 왜?”
모르달이 눈을 끔뻑였다.
“헌터들이 약함다요. 1주기 워프들은 2, 3등급이 많아 차 도령과 지현 아씨에게 의존했었슴다요.”
도현의 얼굴이 찡그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도현을 따라 모르달도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며 태블릿에 빨려 들어갈 듯 훑었다.
“역시, 이름난 헌터 회사들은 유지 확률이 높은 워프에 헌팅만 하는 중임다요. 파괴 처분 난 워프는 중소 헌터 회사에 분배됐고, 까다롭고 악질적인 곳은 프리헌터 팀에 배정됐슴다요. 세상에, 5급 5팀이 4등급 워프 헌팅?! 그것도 프리헌터 팀임다요! 하, 이거 누가 짠 건지, 진짜 너무한 것 같슴다요!”
씩씩대던 모르달은 더는 보기 싫었는지 태블릿을 다시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도련님, 따지러 가야 하는 거 아님까요?! 도련님이 가만히 있으니 다들 가만히로 보지 않슴까욧! 어제 워프 던전에서도 그랬슴다욧!”
도현은 심드렁했다. 힘든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다들 눈이 있으면 따지겠지.”
“아님다요, 헌터들에게는 담당 워프 안내 문자 통보만 함다요.”
그의 의아한 시선이 모르달을 향했다.
“무슨 말이야?”
“워프 배정 상황을 볼 수 있는 건 2급 헌터와 대기업 헌터 회사들만 볼 수 있음죠. 소인도 블랙홀의 헌터 매니지먼트 소속 아이디가 있어 볼 수 있는 것임다요.”
이것 봐라?
도현은 턱을 쓸었다.
세상은 달라도 굴러가는 꼴은 같다고.
기뻐해야 할지, 뒤엎어야 할지 잠깐 고민이 들었지만 관뒀다.
귀찮으니까.
집에 돌아온 건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지, 교통정리를 위해서가 아니잖아?
뭐, 계속 귀찮게 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아무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궁금했던 게 아니다.
그는 그저 워프도 빨리 처리하고 한 달이란 시간의 휴가를 즐기고 싶었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워프핵만 가지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듯 모르달이 바로 답했다.
“워프핵은 아공간. 아니지,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않슴다요. 당연히 워프 밖으로도 가지고 나올 수 없슴다요. 파괴된 건 가능함다요.”
도현이 씩 웃었다.
“그야, 해 봐야지. 3등급 워프 위치 좀 뽑아 봐.”
“지방으로 다 퍼져 있어서 뽑고 뭐고 할 것도 없슴다요. 파괴 순번도 나오긴 했슴다만, 광주에 하나가 도심 가까이 있는 것 정도임다요.”
아공간에서 태블릿을 다시 꺼낸 모르달이 국내 전체 지도를 줄여 3등급 워프 위치를 전부 표시해 보여 주었다.
그중 광주광역시 시청 근처 영산강 부근에 표시된 걸 제외하면 모르달의 말대로 전국구로 순례하듯 돌아야 할 판이었다.
“세종을 중심으로 위쪽은 청정하네.”
바쁜 일정에 지방으로 갈 수 없었던 건 이해하지만 항의가 꽤 있었을 법한데, 비상 체제 때문인지 의외로 조용한 편이었다.
잡음이라면 헌터들의 불만 정도.
“일단은 가 봐야지.”
빨리 끝낼 생각이다. 그래야 오후에 요리 학원에 갈 수 있으니까.
아니면 요리 학원을 다녀와서 저녁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모르달이 워프 위치를 휴대폰에 저장하면서 물었다.
“광주 먼저 감니까요?”
“제일 가까운 게 세종시니까 거기 먼저 갈 거야.”
“가는 데만 2시간 정도 걸림다요. 아직 김 도령과 아바 아씨께 연락 안 드렸으니 오셔서 가려면 적어도 3시간은 걸릴 검다요.”
“아니.”
두 사람에게 연락을 넣으려던 모르달이 도현을 쳐다봤다.
“혼자 다녀올 거야.”
“날아서 말임까요?”
도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뭣 하러. 텔레포트 쓰면 되지.”
요리 수업까지 4시간. 6개는 정리할 생각이었던 도현에게는 이동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하지만 텔레포트라는 건 좌표를 알 거나, 가 본 적 있는 곳이어야 했다.
헌터 중에서도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긴 했지만, 좌표가 만들어진 위치는 대개 도심 근처가 다였다.
3등급 워프들이 줄지어 있는 곳은 산이나 호수, 바다 근처였기에 좌표로 이동해도 다시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날아가는 등의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렇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모르달은 얼굴을 찡그릴 뿐이었다.
도현이 그 의미를 아는 듯 픽 웃었다.
“잘 봐.”
그가 힘을 끌어 올렸다.
거칠고 포악한 힘이 아닌, 부드럽게 감싸며 빠르고 넓게 감싸기 시작했다.
집을 넘어 동네 일대까지 퍼지는 데 0.1초. 알아챘다고 생각했던 사이 수도권을 지나 수천 배로 넓어졌다.
모르달이 입을 쩍 벌렸다.
2초. 도현의 힘이 대한민국을 스캔했다.
예전, 도현의 펫이 된 날.
자신의 몸에 제브라드를 강림시켜 지구를 훑었던 신의 힘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제브라드 님, 이건 강한 게 아니라 신급을 넘어섰슴다욧!’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소름에 짧은 앞발로 벅벅 긁듯 쓸어내리기 바빴다.
그러든 말든, 도현이 말했다.
“다녀올게. 둘한텐 집으로 오라 그래. 저녁이라도 같이 먹게.”
어쨌든 뭘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마치 편의점이라도 다녀오는 듯한 투로 말한 도현의 모습은 전등을 끈 것처럼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건 세종 일반 산업 단지 근처의 천태산이었다.
컨테이너만 한 노란색 달 조각. 5년 전에 떨어진 조각이라 그럴까, 움푹 파인 땅과 부러진 나무들, 그리고 흘러내린 토사가 황량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지만 도현의 눈은 달 조각에 고정되어 있었다.
조용한 산 정상. 그 아래쪽으로 절의 모습을 한 건물이 보였다.
느껴지는 기척으로는 둘. 겉모습은 절이지만 현재는 워프 관리실로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노란 달 조각, 아니 3등급 워프 앞에 선 도현은 현재 모습을 숨긴 상태였다.
워프 관리실에 신고하고 들어갈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혹시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를 기자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3등급 아홀로틀 더미에 입장하셨습니다.]
이름이 특이했다.
궁금증이 생기기도 전에 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깊지 않은 물들이 보였다.
하늘과 숲이 맞닿는 저 시야 끝까지 이어지는 늪지대.
그리고 그 일대를 가득 메운 악어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악어가 맞긴 하나?’
생긴 건 비슷했지만, 미끈한 피부와 지느러미처럼 보이는 꼬리. 그리고 얼굴 양옆으로 뻗은 뿔. 잎이 무성한 침엽수 가지를 3개씩 꽂은 듯한 모습이었다.
색도 다양했다. 흰색, 붉은색, 회색. 한때 일본에서 귀엽게 생겨 화제를 모았던 도롱뇽, 우파루파와 닮았다.
다만 크기가 4m씩 되는 게 그마나 몬스터의 모습 같달까.
쿠와아악! 케르르륵!
정신없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이유 없이 주변의 동족을 공격하고 죽였다.
몸집이 작은 것들은 큰 놈들에게 한 끼 식사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하늘 높이에서 보고 있으니 우글우글하는 바퀴벌레 떼라 해도 믿을 정도.
더미라는 이름이 이해가 갔다.
“워프핵이 어디 있으려나?”
대개 워프핵은 숨겨져 있는 게 정설이었다.
땅속이나 숲, 동굴, 물속이든.
몬스터의 서식지에 따라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몬스터는 먹이로 인식하여 먹어 버린다.
1주기 때는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지만 2주기가 되면 공식처럼 나타나는 현상.
왜냐하면, 2주기에 들어서면 워프핵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뭐 토토를 찾았을 때처럼 해 보면 되겠지.”
제일 강한 기운을 찾는 것.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정답이기도 했다.
그리고 도현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도현은 빠르게 하늘을 날았다.
수없이 펼쳐진 몬스터들이 늪지와 함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더니, 순식간에 물만 가득한 늪지가 나타났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늪지 중앙, 천 년은 살았을 법한 거대한 나무 앞에 착지해, 망설임 없이 큰 줄기에 손을 찔렀다 뺐다.
후우우웅!
손에 딸려 나온 한 팔 크기의 수정이 전구처럼 노란빛을 뿜어 댔다.
한 번 만에 워프핵을 찾은 그는 기쁘기는커녕 떨떠름했다.
4급에서 봤던 워프핵에 비해 두 배나 컸기 때문이다.
“너무 큰데, 줄여 볼까.”
육각형의 수정 끝과 끝을 양손으로 잡음과 동시에 누르며 힘을 가했다.
괴로운 듯 더 강한 빛을 내던 워프핵은 점점 크기를 줄여 가더니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져 버렸다.
“딱 좋네.”
크기가 컸을 때 레몬색에 가까웠다면 압축되듯 작아진 워프핵은 선명하고 진한 샛노란색을 띠었다.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그린 도현은 워프의 입구가 있던 방향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나가 볼까.”
온전한 워프핵은 워프를 나올 수 없다던 그 말은 생각과 달리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었다.
그가 워프핵을 쥐고 입구이자 출구를 통과할 때, 몸을 잡는 느낌의 가벼운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쩌저정!
[워프의 근원, 워프핵이 사라집니다!]
[워프의 활동이 정지됩니다.]
[워프의 성장이 멈춥니다.]
그대로 통과해 현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