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97화 (97/200)

# 97

97. 술이 부른다 (4)

윌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토토의 말을 곱씹었다.

맛있는 거야, 지금 차려진 음식과 술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모르달은 전설로만 듣던 제브라드의 심부름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 모르달도 옆에 데리고 있으니 신 한둘쯤이야……. 그런데.

“노리터?”

토토가 눈을 반짝이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노리터 조아! 채고! 노리터 가까? 압빠, 노리터 드어푸! 대?”

도현은 드워프들 머리 위에 뜬 5자리 숫자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1시간쯤. 30분 정도면….’

현실보다 5배나 늦게 흐르는 농장이니 구경 정도는 할 시간이 된다.

그런데 방문자가 농장에 갈 수 있던가?

‘확인 안 해봤구나.’

주민이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방법을 써 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뭐, 해 보면 알겠지.’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꺄우!’ 즐거운 비명을 터트린 토토가 윌도의 손을 잡음과 동시에 허공에 불쑥 뛰어들었다.

다시 튀어나온 토토가 나머지 드워프까지 데리고 사라지자 뜬 메시지창에, 도현은 떨떠름해졌다.

띠링!

방문자가 농장에 입장했습니다.

신의 대리자 자격으로 이를 허용합니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현실 시간 기준, 농장 특성에 따라 조정됩니다.

제한 시간 5시간 남았습니다.

테스트는 성공이지만, 저 신의 대리자라는 말이 무척 거슬린 그였다.

“도련님! 소인도 다녀와도 됨니까요?”

오늘따라 유난히 초롱초롱한 모르달의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역시 이놈은 이렇게 파닥거리고 방정맞게 웃는 게 어울렸다.

도현은 토토를 쓰다듬던 버릇대로 모르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30분. 시간 지켜서 잘 데려와. 난 그동안 준비 좀 할 거니까.”

빳빳하게 얼은 모르달이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쯤, 흰 꼬리가 격하게 꺾이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털북숭이가 되었다.

모두를 농장으로 보내 버린 도현은 인벤토리에서 냉장고 하나를 꺼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냉장실과 냉동실로 나뉜 일반 냉장고였지만, 실상은 마나석으로 가동되는 냉장고였다. 거기에 추가 옵션으로 공간을 새긴 제품으로, 일반 냉장고에 비교하자면 5배나 더 큰 용량을 자랑했다.

그만큼 가격은 이미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됐지만 말이다.

“헌팅 가면 쓰려고 했던 거긴 한데.”

그 때문에 냉장고에 든 내용물은 전부 식재료나 조미료, 장기간 보관 가능한 음식들이었다.

기대만큼 사용한 일은 드물었고, 최근에는 농장에 인어들이 살게 된 뒤로 창고로 전락해 버렸다.

“이대로 두느니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도현은 혼잣말하며 냉장고를 빠르게 비웠다. 그리고 조리실의 냉장고로 가 술들을 모조리 빼냈다.

주방에 두는 유일한 냉장고인 만큼 용량 대부분이 술로 가득했었는데,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1년은 마실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거기에 함께 곁들이기 좋은 마른안주와 냉동식품들을 채우던 도현은 문득 생각이 스쳤다.

“냉동식품은 데워 먹어야 하는데, 냉장… 온장고, 아니 전자레인지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한 몸인 냉장고렌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매장에 갔을 때, 정수기가 붙은 냉장고도 있었으니 말이다.

‘한번 만들어 봐?’ 하는 생각을 하던 그는 빠르게 지웠다.

드워프와 화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종족이니까.

“시간도 없고.”

그래도 나름 매력적이겠다는 실없는 미련을 가지며 마지막으로 드워프들이 탐내던 이중 유리 진공 맥주잔도 넉넉히 넣었다.

시원한 잔에 시원한 술이야말로, 극상 중의 극상 아니겠나.

마지막으로 냉장고를 넣고 뺄 아공간 주머니까지 완성하자 두 펫과 드워프 넷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리고 도현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넷은 약속이라도 한 듯 헛소리를 해 대며 바닥에 엎어져 절을 했다.

“신의 아버지이시여!”

“위대하신 신을 뵙습니다! 딸꾹!”

“강철 드워프 족장, 빅마이트! 대장장이의 혼을 우도현 신님께 바칩니다!”

“토토 님 아빠, 존경! 신 맞음!”

표정이 이상해진 도현의 시선이 토토와 모르달을 향했다.

“노리터, 조태! 하피, 무지개꽃, 화산, 키리카! 인어! 다 조태!”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데?

도현의 얼굴이 더 구겨지려던 차에 모르달이 가슴을 펴며 토토의 말을 해석했다.

“화산에 광맥이 있었슴다요. 하리오카 나무의 질이 좋았고, 타이탄 레인보우의 수액은 마감재로 쓰기 좋담다요. 키리카 서식지 바닥에 작지만 다이아몬드도 발견되었슴다요.”

그걸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돌아봤다고?

거기에 뜬금없는 광맥이나, 다이아몬드가 왜 물 밑에서 발견됐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대장장이에게는 천국…….”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워프 넷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을 뿌리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갑자기 몰려오는 피로에 빨리 이것들을 보내 버리고 쉬고 싶었다.

냉장고가 든 주머니를 던지려는데, 빅마이트가 먼저 물었다.

“신님! 신의 아버지이시여! 시, 시, 시겔로 좀 보여 주십시오오오!”

도현의 시선이 당연하게 모르달로 향했다.

모르달은 가슴을 더 부풀리며 방정맞게 웃었다.

“캬캬캭, 키리카를 봤다가 이야기가 나왔슴다요! 근데, 도련님. 그 시커먼 놈이 그렇게 대단한 검니까요? 드워프들 말로는 불카누스… 도, 도련니이이이임?!”

도현은 모르달의 머리를 채어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저 방정맞은 입. 왜 끝에 가서 말썽일까.

갑자기 깊은 빡침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방문자고 뭐고 간에 다 때려 치워 버릴까?’

제브라드가 잠수를 탔든 안 탔든 간에, 애초에 떠밀려 하게 된 일 아닌가.

마침 우연찮게 요리에 관심 갖게 된 것이고, 그러다 지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신 놈들까지 알게 됐을 뿐이다.

“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이러는 건지.”

온갖 짜증이 밀려옴과 동시에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지금 이 마음이라면 남은 여섯의 신과 맞붙어 같이 죽자고 할 만큼.

어차피 살 만큼 살았으니까.

예전보다 더 정정하게 잘 사는 부모님도 봤고, 찌롱이도 잘 지내니까.

자신이 생각했던 평범한 삶은 아니더라도, 잘 사니까 된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 속에 먹혀 버릴 때쯤, 도현의 볼에 작은 손이 닿았다.

“압빠…. 하, 하났어……? 미안, 재숑해요…….”

오돌오돌, 그 떨림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정신이 맑아지며 난장판이 된 주변이 보였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살기와 힘을 방출해 버렸나 보다.

그 여파로 식당 내부는 쩍쩍 갈라졌고, 테이블, 의자 할 것 없이 파편만 남아 있었다.

그 사이로 엉망이 된 드워프들이 정신을 잃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하… 이래서 제브라드가 싫어.’

다시 짜증이 치솟으려 하는데, 볼에 닿은 작은 손이 흠칫 놀랐다.

도현은 멍하니 자신을 보는 붉은 원숭이를 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초록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면서도 도현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어째서?’

도망가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 생각을 읽은 듯 토토가 안기듯 양팔을 얼굴에 두른 채 얼굴을 비벼 왔다.

“압빠, 재숑해요, 미안해요, 잘못해써요…….”

“아…….”

아빠.

그래, 아빠다.

이 녀석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숨을 수 있는 곳은 자신이었다.

“하아…….”

도현은 크게 천천히 심호흡하며 무심결에 방출한 기운을 흩쳤다.

아직도 불안에 떠는 토토를 끌어안아 다독였다.

“토토, 많이 놀랐지? 아빠 화 안 났어. 미안해.”

그 말이 기폭제가 되어 토토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토토를 쓸어내리며 한 손을 휘저었다.

식당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상처투성이인 드워프들까지 치료하자, 마침 창밖에서 낑낑대며 올라온 모르달이 머리를 삐죽 내밀었다.

도현의 눈치를 살피려다 시선이 마주쳤다.

“이놈들 좀 깨워.”

“예, 예옙! 소, 소인이 감다욧!”

후다닥 달려온 모르달이 꼬리를 휘두르자 눈을 번쩍 뜨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툭.

도현은 빅마이트에게 손바닥만 한 짙은 갈색 가죽 주머니를 던졌다.

“아까 말했던 술 창고야. 술을 빚는 데 쓰진 못해도, 보관은 가능해.”

냉장고와 냉동고의 차이도 대충 설명하기 무섭게 허공에 문이 나타나며 열렸다.

“시, 신님……! 이런 귀한 보물을 주시다니! 크흐흑!”

넷은 감격한 듯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보고 싶지 않았던 도현은 열린 문 사이로 하나씩 발로 차 넣어 버렸다.

“드어푸! 잘 가!”

아쉬운지 처음으로 토토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토토의 배웅에 울컥한 드워프들이 뭐라 꽥꽥 소리를 질러 댔지만, 듣기 싫었던 그는 빠르게 문을 닫아 버렸다.

빅마이트(드워프)

354/남

강철 일족 족장 → 드워프 왕국 2대 왕, 우도현교 세 번째 대신관.

능력치(상세 보기 +)

특이 사항

1. 이종족 최초 우도현교의 대신관이 됩니다.

2. 최초로 우도현교의 신상을 설계, 제작합니다.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가 감격해 축복이 내립니다! 주(酒)신 디오니소스가 감탄하며 축복을 내립니다! [신상 미리 보기]

3.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의 축복을 받습니다!

케그(드워프)

335/남

강철 일족 → 드워프 10대 장인, 술의 명장

능력치(상세 보기 +)

특이 사항

1. 제브라드에 다양한 술을 전파합니다. 주(酒)신 디오니소스의 축복을 받습니다.

2. 빚지 못하는 술이 없습니다.

3. 최초로 우도현교의 신상을 제작합니다.

4.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의 축복을 받습니다!

5. 우도현교 명예 신도가 됩니다.

헤리퍼슨(드워프)

335/남

강철 일족 → 드워프 10대 장인

능력치(상세 보기 +)

특이 사항

1. 최초로 우도현교의 신상을 제작합니다.

2.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의 축복을 받습니다!

3. 만드는 것만큼 잠을 좋아하는 헤리퍼슨은 잠을 위해 장인 10계명을 창시합니다.

4. 우도현교 명예 신도가 됩니다.

윌도(드워프)

340/남

강철 일족 마법회로 전문가 → 아티팩터 장인, 드워프 10대 장인, 제6 마탑(실용마법학파) 부마스터

능력치(상세 보기 +)

특이 사항

1. 최초로 우도현교 신상을 제작합니다.

2.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의 축복을 받습니다!

3. 드워프 최초로 아티팩터 전문가가 됩니다.

4. 제6 마탑 부마스터, 실용마법학파에 몸을 담습니다.

5. 이종족 최초 우도현교 주교가 됩니다.

커넥팅이 완료되었습니다!

도현은 허공에 뜬 메시지창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신상……?”

드워프들을 깨운 뒤 도현의 눈치만 보고 있던 모르달이 귀를 쫑긋거렸다.

“역시 도련님이심다요! 드워프들이 도련님과 토토 님의 모습을 담은 신상을 만든다 했슴다욧! 그래서 소인이… 중얼중얼.”

신나서 주절주절 떠들어 대는 모르달을 무시하며 도현은 빅마이트의 상태창, 신상 미리 보기를 터치했다.

순간 상태창이 꺼지고 허공에 3D 형태의 동상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멀뚱히 보고 있던 토토가 눈을 반짝였다.

“꺄아― 압빠! 이거 머야? 압빠, 토토 잇써!”

“우오오오옷! 쩌, 쩔어 줌다욧! 이것이 신상임까욧?!”

자신과 토토를 빼다 박은 황금 동상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토토가 양손을 펼치고 하늘을 보고 있었고 주변으로 불꽃들이 실시간으로 터졌다. 아마도 이게 불카누스의 축복인 듯.

여기까지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손에 들린―

마침 동상을 한참 바라보던 모르달이 감탄했다.

“이야, 물이 계속 샘솟는 것 같은데… 이 유리잔 방금 먹었던 맥주잔 아님까요? 캬, 시겔로도 설명만 해 줬는데 이렇게나 잘 만들다니 대단함다욧! 역시 장인은 다릅… 쿠웩! 악! 도련… 쿱! 니임……!”

도현은 말없이 모르달을 지근지근 밟았다.

한참 동안.

토토가 잠 온다며 칭얼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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