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94화 (94/200)

# 94

94. 술이 부른다 (1)

도현은 집이 식당으로 바뀜과 동시에 방문이 열리자 폭발과 함께 굴러 들어오는 덩어리 네 개에 인상을 찡그렸다.

식당을 1초라도 늦게 불렀더라면….

집 안은 초토화가 됐겠지.

불현듯 마족 햇병아리들이 고장 내고 간 가전제품들이 떠올랐다.

한 달도 안 돼 다시 구매하러 간 덕에 딜러는 최신 기종이라는 마나석 전자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일반 가전에 비해 10배나 더 비쌌지만, 내구성이나 기능은 무척 흡족했다.

적어도 방문자 때문에 고장 날 일이 없겠다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폭발까지는….

이러다 집이고 집기고 전부, 절대 방어를 새겨야 하는 건 아닐까.

“하,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건지…….”

삶의 회의감이 밀려올 때, 뭉게뭉게 피어나는 검은 연기 사이로 짧고 굵은 덩어리들이 기침하며 몸을 움직였다.

“콜록, 콜록, 아이고, 내 화로가! 내 대장간이! 이, 이, 윌도오오오!”

“케엑, 딸꾹! 켁켁! 내 술, 내 수우울! 윌도오오오!”

“컥, 커커컥! 뭐, 뭐야? 자고 있는데 무슨 날벼락이야?!”

세 덩어리, 아니 드워프들은 저마다 괴롭게 몸을 일으켜 음산하게 웃어 대는 윌도에게 다가갔다.

수염과 함께 윌도의 멱살을 잡은 빅마이트가 핏발 선 눈으로 헤헤헤 웃어 대는 윌도를 찢어 죽일 듯 노려봤다.

그 옆에 선 케그가 발을 쾅쾅 굴리며 험악하게 술을 부르짖었다.

헤리퍼슨만이 그런 셋을 보며 혀를 찼다.

“보나 마나 폭발 회로를 심었나 보구만. 윌도가 그러는 게 하루 이틀이야? 그러게 완성되면 부르자고 했잖아. 그런데, 여긴 어디야?”

빅마이트를 달래는 말이었음에도,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에겐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퍼붓는 짓이었다.

“이, 잠만 처잔 놈이! 어디서 훈계질이야! 신성한 대장간이 네놈 집이야?!”

“마이트, 사흘이라고.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했어. 피곤한 게 당연하잖아? 난 그래도 자네를 생각해서 노력한 거라고.”

헤리퍼슨은 울먹거릴 것 같은 눈으로 빅마이트에게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고작 3일이라고! 자넨 드워프 아닌가? 그 몸뚱이는 껍데기야? 드워프란 자고로 대장간에서 혼을 태워 가치를 증명해야지, 피곤하다고? 배고프다고오오?!”

“자넨 사흘만 눈에 보이나?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지가 벌써 20년이네! 자네가 따지지만 않았다면 벌써 우린 시원한 맥주를 마셨을 거야!”

케그는 바닥에 털썩 앉으며 혀를 찼다.

“이놈들아, 어차피 깨진 술병이고 증발해 버린 술이야! 그렇게 따져 댄다고 술이 빚어지나? 그런데, 여긴 어디야?”

“술, 술! 그놈의 술!”

빅마이트는 윌도의 멱살을 신경질적으로 놓았다.

바닥에 널브러지는 윌도와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 헤리퍼슨, 이 모든 상황을 방관하며 술이나 찾는 케그를 훑던 그는, 드워프 최대의 욕을 뱉었다.

“드워프란 자긍심도 없는 난쟁이 똥자루들 같으니라고!”

***

도현은 조리실 입구에서 저들끼리 싸우는 드워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볼링 핀처럼 넘어져 나뒹구는 테이블과 의자로 난장판이 된 홀.

도현의 인내심은 홀이 박살 날 때부터 사라지고 없었지만, 싸우는 드워프들에게 먼저 눈이 갔다.

그가 아는 드워프는 독선적인 대장장이로, 뭔가 만들어 내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미친놈들뿐이었다.

화로에 피운 불은 자신의 영혼이요, 그 영혼의 조각을 떼어 작품을 만드는 데 일생을 쏟는 종족.

그런 종족 특성을 위해 튼튼한 몸과 절대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흔히 말하는 장인이란 혼에 몰빵한 놈들이었다.

그게 도현이 아는 드워프일진대.

‘드워프의 문화가 바뀐 건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 건지, 도현은 혼란이 왔다.

생겨 먹은 건 드워프인데, 한 놈만 빼면 세 놈은 영혼이 잘못 들어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

300년 만의 만남이라지만, 많이 쳐줘도 한 세대가 지났을 뿐인데.

‘대충 오가는 말을 들어 보니 안경 낀 놈이 미친 짓을 한 것 같고.’

현미경 수준으로 보이는 안경. 그것도 드워프 특성상 물안경처럼 생긴 걸 끼고서 헤실헤실 웃어 대는 놈. 눈만 튀어나온 이놈이 폭발을 일으킨 장본인 같았다.

그 외 술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놈과 불평만 늘어놓는 놈. 마지막으로 도현의 기준에 드워프라 할 수 있는 놈까지.

‘대체 이것들을 어쩌라고?’

생각만 해도 한숨이 먼저 나왔다.

‘제브라드, 너만 잠수 타면 끝이라 이거지?’

오만 가지의 욕이 끓어오를 때, 싸움의 절정에 다다른 드워프 사이에서 웬만해선 나올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드워프란 자긍심도 없는 난쟁이 똥자루들 같으니라고!”

정적이 흘렀다.

도현은 고민도, 짜증도 잊고 감탄했다.

망치를 뺏고 일족에서 쫓아낼 때나 쓰는 말이었으니까.

‘이제 살아남은 한 놈만 보내 버리면 되나?’

나름 상황이 편하게 흘러간다 싶었는데, 함께 구경하던 토토가 물었다.

“압빠, 저거 머야?”

가끔 궁금증을 가지고 물어보긴 했지만,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관심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모르달이 알려 주었다.

“드워프라는 종족임다요.”

“드어푸?”

“오직 만드는 것에 미친 종족임다요. 그러고 보니, 토토 님과 같은 신님을 모시는 이들이기도 함다요.”

토토의 눈이 반짝였다.

“부카누스 아찌?”

진정한 부모라 할 수 있는 신이 어쩌다 아저씨가 됐는지. 어쨌든 토토가 무척 기뻐하는 게 보였다.

“인사! 인사! 할래!”

“토, 토토 니임?!”

잡으려는 모르달보다 토토가 한발 빨랐다.

“안뇽! 토토! 토토도 만드는 거 조아! 뚝떼기, 냄비! 그릇! 잘 만드러! 드어푸, 잘 만드러?”

바늘로 찌를 듯한 살기가 감도는 그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촐랑댔다. 살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게 엊그젠데, 저렇게 보니 철없는 애였다.

토토의 출현으로 금방이라도 살점이 튀고 피가 낭자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뭐… 큰일이야 나겠냐마는.’

그들의 대화는 혼을 태우는 것에서 혼을 태우는 것으로 끝나니까.

하지만 도현이 간과한 게 있었다.

“허어억!”

“딸꾹, 커허허헉!”

“부, 불카누스의 화신!”

드워프 셋은 가슴을 부여잡고 헐떡이더니 토토를 향해 절을 올렸다.

“웅?”

그들 중심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토토만이 그 의미를 모를 뿐이었다.

넋이 나간 듯 웃기만 하던 윌도는 조리실에 있는 도현과 모르달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

까드드득, 까드드득!

도현은 조리실에서 키리카의 비늘을 긁어내고 있었다.

평균 몸길이 10m인 놈들보단 작은 놈으로, 새끼도, 성년도 아닌 딱 중간쯤인 5m짜리.

그마저도 너무 큰 탓에 3등분으로 나누어 작업에 들어갔다.

따다다당!

우윳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이 긁어낼 때마다 사방으로 튀며 날린 독침처럼 조리실 여기저기에 박혔다.

보조로 조리실에 남은 모르달은 비늘이 튈 때마다 몸을 이리저리 날리며 피해 보지만, 열에 아홉은 몸을 때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따다다닥!

때마침 튄 비늘이 좀 전에 튀었던 비늘에 맞고 중심을 잃은 모르달에게 다시 날아왔다.

“악! 욱! 에엑! 도련니이이임!”

연타로 같은 자리에 수십 번 꽂히며 떨어지는 비늘을 참다못한 모르달이 작업에 열중한 도현 앞에서 씩씩댔다.

세 덩이 중 하나. 그중 배 부분을 다듬던 도현이 손에 쥔 시겔로를 멈추며 모르달을 봤다.

“비늘이 왜 소인에게만 쏟아지는 검니까욧?!”

“뭐가?”

도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은 그저 맛있는 뱃살의 맛을 보여 주기 위해 키리카를 다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시선이 손에 쥔 시겔로로 향했다.

키리카를 농장에서 키워서 그런지, 튼튼하고 강해졌다. 그 덕에 아끼는 사시미칼을 3개나 부러뜨려 먹고, 어쩔 수 없이 꺼낸 시겔로였다.

평소라면 생각도 안 했겠지만, 힘을 전부 되찾았으니 사용하는 데 부담은 없었다.

그 의미로 그런 적 없다는 듯 시겔로는 얌전했다.

아니, 사고는 아니더라도 장난 정도는 칠지도.

키릿!

인정하듯 시겔로에 작은 스파크가 생겼다 사라졌다.

그 소리가 마치 키득대는 것 같았다.

모르달이 바르르 떨었다.

“바, 방금 웃었슴까요?! 속도, 생긴 것도 시커먼 검 주제에, 신의 심부름꾼인 모르달을 비웃었슴까욧?!”

도현의 눈썹이 위아래로 휘었다.

“모르달.”

조용해질 줄 알았던 모르달이 버럭 화를 냈다.

“왜 소인에게만 그러는 검니까요? 이 시커먼 검이 먼저 한 검니다요!”

단 한 번도 대들지 않았던 모르달이었다.

그래서 더 치솟은 짜증은 시겔로에게 향했다.

모르달이야 입만 나불대지 않으면 사고 칠 일도 없었으니, 전적으로 시겔로가 문제다.

여태 친 사고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시겔로, 예전에 참 재밌었는데 말이야.”

키릿―?

“그 꼴. 볼만했지? 추억을 되살려 또 해 볼까?”

도현이 사악하게 웃었다.

――! ――!

놀람, 당황을 보이던 시겔로가 부르르 떨더니 기척이 사라졌다.

얌전히 있기로 타협을 본 거다.

눈이 동그래진 모르달이 시겔로와 도현을 번갈아 봤다.

도현은 멈췄던 키리카 손질을 이었다.

비늘 벗기기가 빠르게 끝나자 내장을 빼 텅 빈 배와 등 사이를 칼끝으로 가볍게 그었다.

돼지 뼈도 울고 갈 만큼 굵고 튼튼한 척추뼈가 시리도록 하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뼈를 시작점으로 살점을 들고 아래쪽, 배가 있는 방향으로 포 뜨듯 떠냈다.

먼저 준비해 둔 두껍게 깔아 둔 키친타월에 올려 두고 다시 남은 살점을 위쪽, 등뼈가 있는 방향으로 포를 떠 두 번째 키친타월에 올렸다.

맨 처음 내장을 터지지 않게 빼내서 그런지, 살점은 우윳빛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총 네 덩이. 폭만 해도 한 뼘 반에 두께는 손가락 세 개는 붙여야 할 만큼 두툼했다.

살은 분명 생선인데, 웬만한 소, 돼지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비주얼.

모르달이 침을 꿀꺽 삼키며 흥분해서 주절댔다.

“오오오! 너, 너무 맛있어 보임다욧! 인어 워프에서 먹었던 생선보다 더 빛깔이 쥑임다욧! 먹어도 됨니까욧?!”

“조금만 더 기다려.”

새롭게 꺼낸 키친 타올을 두껍게 뽑아 살덩이 위에 올리고 꾹꾹 눌렀다.

살점 사이에 숨어 있던 수분이 올라오며 키친 타올이 축축해졌다.

그러길 세 번, 마지막으로 키친 타올을 올리며 손바닥에 냉기 마법을 담았다.

그렇지 않아도 탱글탱글한 살점이 활어처럼 퍼덕거렸다.

기대에 차 있던 모르달의 눈이 반짝이다 못해 레이저라도 나올 기세였다.

도현은 뱃살 한 덩이와 등살 한 덩이의 껍질을 벗겨 내고 약간 두툼하게 한입 크기로 썰기 시작했다.

시겔로가 한 점, 한 점 만들어 낼 때마다 투명한 살점이 조리실의 조명에 반짝였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르달의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도현은 토토표 푸른 잿빛 도자기 접시를 꺼냈다.

인어 워프에서 먹었던 회 맛에 반해 돌아오자마자 부리나케 만든 거라는데, 색이 차분하면서도 고급진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는 기다란 사각 접시에 나뭇결무늬 박판지를 깔고 키리카 손질 전 만들어 두었던 무채를 소복이 얹었다.

그 위로 두툼한 키리카 회를 먹기 좋게 펼쳐 올렸다.

도현은 수분을 빼고 남겨 둔 뱃살 한 덩이와 등살 한 덩이를 뒤집어 껍질 위에 손을 올렸다.

화염 마법을 담아 한 번 훑자 물결무늬의 흰 은빛 비늘이 살짝 쪼그라들며 역으로 휘었다.

미약하게 고소한 향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으으윽! 도련니이임… 어, 언제 완성임까요?!”

모르달이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늘 살랑거리던 꼬리는 고양이의 꼬리처럼 바짝 서 허공을 찔러 댔다.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라 도현은 픽 웃었다.

“참아. 이제 먹기 좋게 썰기만 하면 돼.”

“끄으으윽!”

모르달이 빳빳한 제 꼬리를 잡고 털을 뽑듯 움켜쥐었다.

도현이 빠르게 손을 놀렸다.

불과 10분도 안 되어 썰어 낸 회가 접시 위에 예쁘게 담겼다.

토토가 만든 접시인 만큼, 하나하나가 1m에 달했지만, 회를 세 줄로 깔았음에도 열 접시나 되었다.

일인 일 접시.

그러고도 세 접시가 남으니 참 바람직했다.

완성된 접시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뭐라도 장식을 해 볼까 고민하는데, 꼬리 끝을 잘근잘근 씹어 대던 모르달이 벌떡 일어나 몸을 날렸다.

“아아악! 더는 못 참겠슴다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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