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88화 (88/200)

# 88

88. 황금 상자 (3)

보물 던전.

워프 던전을 일컫는 이름 중 하나였다.

헌터들 사이에서 로또 던전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헌팅 한 번으로 헌터계를 떠나도 평생 펑펑 써도 마르지 않을 재력을 갖는다든지, 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3등급 이상의 무기나, 강한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시작된 곳이었다.

“흐흐, 이게 웬 떡이냐!”

김경희는 계속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말이야 로또 던전이라 하지만, 워프 속의 또 다른 워프라고도 하는 곳이다.

왜 ‘또 다른’이 붙냐면, 마나 농도가 짙어지며 등급도 올라감과 동시에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양쪽 볼을 짜악! 소리 나게 때렸다.

“정신 차리자, 김경희! 로또도 좋지만 목숨은 하나라고!”

진중한 얼굴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허전함에 당황했다.

“내 검이……?”

그제야 기억났다.

동굴이 무너질 때 몸 위로 떨어지던 돌을 가르려다 박살 난 사실이.

“악! 내 검! 그게 얼마짜린데!”

머리를 쥐어뜯던 그는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자 크게 심호흡했다.

“지, 진정하자! 진정하자! 어, 어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고!”

정말 이곳이 워프 던전이라면 밖에 있는 헌터들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은 인벤토리를 갖춘 헌터다. 그 덕에 늘 여분의 무기를 준비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김경희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사라졌다 나타난 손엔 헌터 웨어와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빠르게 복장을 정리한 그는 힘차게 외치며 발을 뗐다.

“자, 그럼 가 보실까!”

하지만 그는 몰랐다.

엄청난 함정이 자신을 기다릴 줄은…….

***

도현은 자신 앞에서 애원하는 차 부부에게 고개를 저었다.

“기척이 안 잡히는데…….”

마지막 희망인 도현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자마자 둘은 넋이 나가 버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제대로 터졌다. 다른 헌터들도 심각성을 깨달았다.

정 방법이 없다면 무너진 저 돌덩이들을 다 덜어 내야 할지도 몰랐다.

웅성이는 가운데 프리헌터 김영식이 슬쩍 손을 들었다.

“혹시, 워프 던전은 아닐까요?”

워프 던전?

탄성과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는 헌터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도현이 차 부부를 쳐다보자 둘도 한 박자 늦게 수긍하고 있었다.

차도식이 말했다.

“정말 드물지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처남님이나 헌터 생활이 1년 안 된 분들이면 모를 수 있습니다.”

워프 던전.

누군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무언가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봉인. 즉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를 뜻했다.

도현이 토토를 데려왔던 그곳도 워프 던전에 속했다.

위험한 만큼 보상은 몇십 배나 되는 곳.

헌터들의 로또라 할 만큼.

성공만 하면 헌터를 그만두더라도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으니까.

“몇 번의 사례는 있었습니다. 대개 이렇게 낮은 워프에서 발생하는데, 워프 등급에 비해 던전의 난이도는 무척 높은 편입니다.”

도현은 차도식의 설명을 듣고 바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제브라드에서 들추고 다녔던 던전이구나.’

다시금 페론드와의 추억이 떠오르려 하자 금세 생각을 흩어 버렸다.

갑자기 정준혁이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왠지 모르게 비웃음처럼 들렸다.

“망상도 정도껏 하시죠. 이곳 카프카프 계곡이 워프파크라고 불린 지 벌써 4년입니다.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인데, 그런 아주 기초적인 조사도 안 했겠습니까?”

헌터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김영식의 입가가 살짝 떨리다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저 그런 경우도 있다 보니 말씀드린 겁니다.”

대화는 평범했지만,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정준혁 팀. 공식 랭킹 10위라는 그는 헌터계의 대기업이라는 유니크 헌터 회사 소속 1팀이었다.

그래서일까, 웬만한 헌터들은 자신보다 아래로 생각했다.

특히 대기업 헌터들은 프리헌터를 대놓고 무시했는데, 지금도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자리가 좋지 못했다.

걸어 다니는 대기업인 차 부부와 숨만 쉬어도 대한민국의 1년 치 국가 예산을 벌어들이는 블랙홀의 재벌 2세 도현이 있는 자리다.

도현의 눈썹이 휘어졌다.

펍에서 있었던 일은 피곤해서 말없이 덮었지만, 또 소란을 벌이는 이 붕어 대가리를 어찌해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이틀 동안 워프니, 워프 브레이크니 해서 일주일 치 노동을 일시불로 받은 탓에 예민해진 상태인데.

그의 좁쌀만 한 인내심도 이미 가출한 상태였다.

도현은 호수가 된 폭포를 보며 툭 내뱉었다.

“그럼 저길 파 보면 된다는 거네.”

의아한 눈들이 도현을 향한 가운데, 반사적으로 차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처남님. 하지만…….”

“헬 파이어.”

차도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현의 손에 야구공 크기의 붉은 구체가 나타났다.

용암을 연상케 하는 시뻘건 구체를 호수를 겨냥해 투수처럼 던졌다.

푸쉬이이익, 화르르륵!

순식간에 폭포가 끓어오르며 수증기를 뱉어 냈다. 그 수증기까지 꺼지지 않는 불에 다시 타올라 사라졌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폭포가 화염 폭포로 변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무덤처럼 퍼졌던 돌들은 설탕처럼 녹아 껌처럼 바닥에 들러붙었다.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새카맣게 타 버린 돌 사이로 땜빵 같은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파지직, 퍽!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구멍 안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김경희의 기척이 잡혔다.

도현은 픽 웃고는 노골적으로 정준혁을 보며 말했다.

“워프 던전이네. 김경희 헌터도 저기 있고.”

“…….”

정준혁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준혁 뒤로 김영식이 도현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도현은 차 부부에게 말했다.

“가죠.”

그렇게 휴가가 단체 헌팅으로 바뀌어 버렸다.

구멍 안으로 들어온 헌터들은 주변을 훑고 동굴인 것을 알아차렸다.

크기만 해도 웬만한 운동장보다 더 큰 동공. 폭포 아래에 있었음에도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동굴에 퍼진 짙은 마나는 긴장감을 더 고조시켰다.

모두가 도착하자 차도식이 시선을 모았다.

“보다시피 워프 던전입니다. 마나 농도를 봐선 최소 5등급. 거기에 워프 던전 특성에 따라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릅니다. 다행히 인원이 많아 팀을 나누어…….”

모두가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데, 도현이 먼저 동굴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는 당연하게도 도현의 팀인 민혁과 아바가 자석처럼 붙었다.

“처남님!”

놀란 차도식이 설명하던 것도 잊고 바쁘게 도현 뒤를 따르자 하지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는 헌터들에게 말했다.

“우선 출발하죠.”

모두 긴장 가득한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여기저기 훑어보기 바쁜 이들도 있었다.

도현 팀원들이었다.

민혁은 단체 관람이라도 온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아바에게 말했다.

“우와! 아바 씨, 저기 보세요! 저거 박쥐 아녜요?”

“그러네요. 박쥐형 몬스터 같은데, 굉장히 작군요. 거의 일반 박쥐라고 봐질… 어머, 이거 챠티 아냐?”

그녀는 동굴 벽에 핀 꽃을 보자마자 손이 먼저 갔다.

차도식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으며 선두로 걸어가던 도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바 씨, 손대지 마세요. 함정입니다.”

말이 나오기 무섭게 아바는 거리를 벌리며 입맛을 다셨다.

민혁이 궁금증을 못 참고 물었다.

“저게 뭔데요?”

“다이어트 약초요. 차로 마시면 쭉쭉 빠져요.”

설명을 듣자마자 헌터들 사이에서, 특히 여헌터들이 아쉬운 탄성을 질렀다.

다시 몇 걸음 못 걷고 헌터들 사이에서 헌터 하나가 벽을 짚으려는데 손이 닿기도 전에 붕 떠올랐다.

도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동굴 벽에 붙지 마세요. 벽에서 화살 나와요.”

긴장했던 헌터들은 굳은 얼굴로 도현의 뒤통수를 귀신 보듯 봤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여기 뛰어넘어야 합니다. 음, 5m 정도.”

긴장감 없는 말에 설마… 하며 뛰어넘었지만, 한 헌터가 헛디디며 반 발자국 밀렸을 뿐이었다.

콰르르르!

갑자기 길이 무너지며 끝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이걸 어떻게 안 거지……?

이번이 세 번째. 다들 ‘설마….’ 하며 다시 걸었다.

“머리 조심하세요.”

뜬금없는 말에 화들짝 놀란 헌터가 천장을 바라봤다. 머리 크기의 거미가 얼굴에 떨어지자 그 헌터는 비명을 지르며 진저리 쳤다.

투두두두두둑!

장대비처럼 쏟아진 거미 수만 근 200마리.

모두가 긴장 가득한 상태로 무기를 쥐었지만, 거미들은 꿈적하지 않았다.

전부 사체들이었다.

“…….”

헌터들은 그저 긴장감 없이 걸어가는 도현의 뒤통수를 넋을 놓고 보았다.

첫 갈림길이 나왔다.

총 세 개.

이제 어떻게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맨 오른쪽 동굴로 들어갔다.

차도식이 의아해서 물었다.

“처남님, 이 길 맞습니까……?”

“춥고, 뜨거운 것보단 낫죠.”

동굴 바닥이 늪이었다. 비위가 상할 정도로 악취가 났다. 늪에서 드문드문 공기 방울이 터졌는데, 그게 악취의 원인이었다.

다들 처음으로 다른 길로 가자며 의견을 냈지만, 도현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그럼 3,000도와 영하 200도. 골라요.”

3,000도와 영하 200도.

3천도. 제아무리 헌터라 해도 들어서자마자 재도 남김없이 타들어 가 버릴 거다.

영하 200도. 숨을 들이켜자마자 급속 냉동 인간이 되지 않을까…?

의미를 이해한 헌터들은 그 자리에 박힌 말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해진 동굴에 도현의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만 울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주는 늪이 순간 돌처럼 굳으며 평탄한 길이 되어 버렸다.

악취는 그대로였지만, 이 정도의 편의라면 도현에게 감사의 절이라도 올려야 할 판이었다.

그때부터 모두가 도현의 말이라면 군말 없이 따르게 되었다.

길은 더할 나위 없이 순탄했다.

헌터들은 워프 던전에 깊게 들어갈수록 도현이 두려우면서도 존경스러워 절로 감탄이 나왔다.

혹시 투시 스킬로 보는 걸까?

그게 아니면 예지 스킬이라도 있는 건?

그것도 아니라면, 차도식의 말대로 신……?

도현 팀을 제외하고 머리를 팽팽하게 굴려 대는 통에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한참 만에 말을 꺼낸 건 하지현이었다.

“싸가지, 너 혹시 능력 중에 맵핑이라도 있는 거야?”

“맵핑? 설마 게임에서 사용하는 지도?”

“응.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니까…….”

어처구니없는 말임에도 헌터들은 약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상상보단 차라리 맵핑이란 스킬이 정상 같았으니까.

도현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씁쓸해 보였다.

“그냥, 지겹게 다녔거든.”

앞뒤 자른 말이었지만, 차 부부는 문득 예전에 도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차원에서의 500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믿기 힘들었던 그 말이, 갑자기 훅 하고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차 부부와 달리 헌터들에게 도현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도현이 행방불명된 그 시간 동안 워프를 떠돌아다녔다는 소문.

차라리 누군가 수긍이라도 한다면 덜 답답했을 텐데, 약속이라도 한 듯 도현 주변의 모두가 입을 닫자 그들은 더 혼란스러웠다.

그때, 도현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쉼터네요. 쉴 겸 밥 먹죠.”

밥? ……이 상황에서?

황당할지 몰라도, 도현은 쉼터가 목적이었다. 인어 워프에서 일이 터진 뒤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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