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81. FAIL
도현은 네 사람이 워프에서 나가자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수면의 거친 물살 때문에 물속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더니 무척이나 잔잔해 멈춘 세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대신 물이 흙탕물에 가까워 시야가 좁았다. 그리고 물에 떠다니는 부유물 덩어리가 흐린 물을 더 흐리게 만들었다.
‘몬스터 살점인가? 뼈? 내장도 있는데?’
도현은 헌팅 중에 생겨난 현상이라 추측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양이 계속 늘어갔다.
워프 1주기의 네임드나 2주기의 보스 몬스터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워프 내 몬스터 수의 절반 이상만 처리하면 되기에 남은 몬스터가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는 것.
몬스터의 온전한 내장과 반쯤 뜯긴 사체가 떠내려가자 도현은 바로 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탁했던 물이 점점 맑아졌다. 반대로 떠다니는 부유물은 덩어리가 커졌다.
그 이유는 저 물속 중앙의 한 사람 때문이었다.
몸길이가 10m씩 되는 키리카를 손에 집히는 대로 입에 밀어 넣고 있는 뚱보 아저씨.
어느 타이어 회사 캐릭터처럼 생긴 몸뚱이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도현이 짜증스럽게 뱉었다.
“너 같은 것도 신이라고?”
“웁?! 힉, 쿨럭, 쿨럭!”
키리카를 열심히 씹으며 맛을 음미하던 마데아크는 불쑥 나타난 도현을 보고 기겁했다.
사레에 들려 컥컥대며 기침하더니 진정되자마자 한 행동은 인사였다.
“아, 안녕!”
도현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빤히 보니 히익, 헛바람을 들이켜며 몸을 뒤로 내뺐다.
중2병에 충만한 용 새끼의 첫인상이 강렬했던 도현은 극과 극인 이놈이 적응이 안 되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신했다.
저놈 겁먹었다.
‘차라리 잘됐어.’
깔끔하게 처리해 버리고 머릿수를 줄이는 게 낫겠다 싶었던 도현이 손을 들자 마데아크는 진저리치듯 양손과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 아니야! 난 그냥 먹으러 왔다고!”
“……뭐?”
황당함에 기가 찼다.
“여기 물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사라진다니까 아쉽잖아! 그러니까… 나, 나 간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변은 저놈이 먹다 남은 몬스터의 잔해만 둥둥 떠다녔다.
“하… 뭐 저런 게 신이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도현은 헛웃음만 났다.
“그런데 저놈들, 제집 드나들 듯 워프에 드나드네.”
그저 좀 더 편히 움직이는 공간이 워프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다.
워프가 터지는 걸 겪고 나니 신경을 안 쓸 수 없고.
“아, 그냥 보이는 족족 없애 버려야지.”
머릿속이 괜히 복잡해지자 생각을 털어 내던 도현은 자신 앞을 유유히 헤엄쳐 지나가는 키리카를 보고 방금 도망간 뚱보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맛있나…?”
***
도현이 계양산에 돌아온 건 한밤중이 되어서였다.
이상한 먹보 신에게 낚여 키리카를 먹은 도현은 그 맛에 반해 당장 농장에 자리를 만들고 남은 키리카를 집어넣었다.
토토가 수집 취미에 열 올리는 걸 이해 못 했던 그가 같은 행동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곧 사라질 워프, 맛있는 식재료는 보존해야 했다.
그렇게 이전 작업을 마치고 온 계양산은 의외로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도련님, 오셨슴까욧!”
“현아! 워프는 잘 정리하고 왔어?”
정상에 착지하자마자 모르달과 민혁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인 도현은 터진 워프 근처에만 남은 넝쿨과 나무 들을 정리하는 헌터들을 보고 딱히 할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토토가 어디 갔지?’
집에 갈 생각으로 토토의 기척을 찾으려는데 워프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긴장한 채 워프의 구멍을 바라보는데, 토토가 자신의 몸만큼이나 굵은 줄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오는 게 아닌가.
“압빠! 이 꼿 보스 몽스터!”
모습을 드러낸 넝쿨 끝엔 사람 하나는 누워도 될 정도로 큰 장미꽃 하나가 있었는데, 무지개를 꽃으로 만든 듯한 모습이었다.
아름다움보단 위협을 먼저 느낄 꽃잎이 마치 입처럼 펴졌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그건 왜?”
“호당이! 집! 피됴하데!”
‘빨리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
뭔가 계속 부족한 단어에 의미를 추측해야 하니 대화가 힘들다.
곧장 농장에 다녀오겠다는 토토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넝쿨까지 사라지자 산 정상 근처에 남았던 워프의 잔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두가 감탄하며 기뻐하는 사이 워프 구멍에서 나온 강혁 삼촌이 땅바닥에 조각난 돌덩어리를 던졌다.
파괴된 워프핵이었다.
“이 시간 이후로 긴급 경보는 해제한다! 모두 고생 많았다!”
우아아아! 수고하셨습니다!
워프가 터진 후 7시간 만이었다.
***
오랜만에 부지런 떨었던 도현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기운이 쭉 빠졌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
자동으로 소파에 드러누우며 꿈틀댔다.
이번 달 워프 할당도 다 했고, 학교도 갈 필요 없으니까, 집에 콕 틀어박혀 밀린 먹방이나 보며 놀아야지!
놀 거다! 놀고, 먹고, 자고!
침대든, 소파든.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
흐뭇한 미소를 짓던 도현은 황당해하는 모르달의 잔소리에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도련님, 무슨 말씀이심까요? 모레 헌팅 가셔야 함다요!”
‘저걸 정말 죽여, 살려?’
뜨거운 눈초리를 느낀 모르달은 괜히 주방으로 가 야식에 가까운 늦은 저녁 준비를 하면서 투덜거렸다.
“오늘 일 때문에 난리가 났슴다요. 워프가 터질 줄 누가 알았겠슴까요?”
“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늘 일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전 세계가 워프에 대해 경각심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2주기 워프를 방치하다시피 한 나라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헌터가 부족한 나라들은 워프 파괴를 위해 국제 헌터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비상 체제에 들어간다고 했슴다요.”
“하.”
주 차장의 말에 넘어가 헌터 자격증을 따는 게 아니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
이건 코 꿰인 정도가 아니라, 제 발로 진창에 잠수한 꼴이다.
‘잠수 탈까?’
진심에 진심을 담아 고민하던 도현은 귀에 이명이 들리자 눈을 번쩍 떴다.
삐이――!
현재 방문 가능자 수: 8
일주일 스코어: FFF
단 한 명의 방문자도 받지 않았습니다.
페널티 1단계가 적용됩니다.
“……뭐야?”
눈앞에 뜬 붉은 창.
도현은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01분.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이라고…?”
“도련님, 왜 그러심까요?”
눈을 끔뻑이며 돌아보는 모르달을 마지막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시련의 동굴로 이동합니다]
도현은 눈을 깜빡였다.
달빛 정도의 희미한 빛이 감도는 동굴. 몸을 누이면 가득 찰 좁은 공간이었다.
페널티 1단계를 시작합니다.
3일 동안 주어진 쑥과 마늘 먹어야 시련이 종료됩니다.
일일 쑥과 마늘 먹기(일일 0/3)
남은 일수: 3일
쑥…? 마늘…? 3일?
“하하…….”
메시지창의 글을 몇 번이고 읽던 도현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무슨 단군 신화의 웅…남이야?
이게 페널티?
이런 개짓거리를 해 댈 사람, 아니 신은 제브라드밖에 없다.
“XX!”
도현은 동굴 벽을 주먹으로 쳤다.
퍽!
“……?!”
부서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야 할 동굴이 멀쩡했다. 대신,
“윽!”
화끈거리는 통증에 손을 보니 벌겋게 달아올라 퉁퉁 붓기 시작했다.
“통증이라고?”
손짓 하나에 산과 바다를 가르는 내가?
천족, 마족 할 것 없이 목숨까지 앗을 수 있는 내가?
그런 그를 비웃듯 메시지창이 다시 떴다.
[항거할 수 없는 격이 온몸을 짓누릅니다!]
[시련의 동굴에서는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의 몸이 됩니다.]
이어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쑥과 마늘이 가득 든 대나무 채반이 동굴 바닥에 떨어졌다.
한 아름은 될 솥단지 크기의 채반에 가득 담긴 쑥과 마늘.
도현의 눈동자가 당황과 분노로 흔들렸다.
“……내가 이런 걸 먹을 줄 알아?”
씹듯이 내뱉던 도현은 익숙하게 허공에 손을 찔렀다.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낼 생각이었지만, 손은 그저 허공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하…….”
제브라드에 처음 떨어진, 그날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느낌.
파도처럼 밀려오는 박탈감과 상실감에 입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의 눈은 분노를 넘어 살기로 가득 찼다.
도현은 쑥과 마늘이 담긴 채반을 노려보다 동굴 벽에 다가갔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힘껏 벽을 쳤다.
퍽! 퍽! 퍽!
주먹이 터지고 뼈가 드러나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근성 때문일까, 점점 동굴 벽에 금이 생겨났다.
돌 부스러기가 흩날릴수록 도현의 속이 끓어올랐지만, 굳어지는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철퍽, 철퍽, 우드득!
얼마나 쳤을까, 손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싶더니 뼈가 부러지며 손목 아래가 덜렁거렸다.
쩌적!
마침 잘게 퍼진 실금이 동굴 벽을 먹어 치우며 큰 균열을 만들었다.
도현은 무미건조한 시선을 균열에 두며 몸무게를 실어 발길질을 시작했다.
“헉, 헉, 헉!”
온몸은 이미 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로 가득했다.
손과 발도 만신창이가 되어 달려 있을 뿐.
그래도 성과라면 균열이 간 동굴 벽 아래에 머리 크기의 돌덩이들이 떨어져 있었다.
무릎 꿇은 채 무너진 벽을 보던 도현은 쓸 수 없는 손발 대신 팔뚝으로 돌을 들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한계를 넘겨 버린 몸은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못했다.
감기다시피 뜬 눈도, 흐릿해지는 시야도. 무엇 하나 움직여 주는 게 없었다.
“씨… X…….”
결국 도현은 돌덩이 위에 쓰러졌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멀쩡한 몸과 멀쩡한 동굴. 그리고 갓 수확한 듯 싱싱한 쑥과 마늘이 담긴 채반이 동굴에 놓여 있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마나 지났지?”
도현은 벽에 등을 기대며 한 손으로 눈을 덮었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악으로 깡으로 동굴 벽을 부순 횟수만 100번.
거기에 기절했던 시간까지 하면 석 달은 넘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도현의 시선이 채반으로 향했다.
쑥과 마늘.
생각만 해도 이가 갈려 이젠 굶어 죽어 볼까 싶었지만, 보나 마나 헛짓거리가 되겠지.
도현은 감정을 꾹 눌러 참았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느니, 빨리 나가는 게 낫다.
3일이 뭐라고.
잊고 있었다.
자신이 약자였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그때와 비하면 이 정도는 우습다.
고생의 시간보다 힘에 취해 보낸 시간이 더 길었던 탓일까.
“개구리도 한때는 올챙이였지.”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며 투털거리던 도현은 홀가분해졌다.
고작 쑥과 마늘이다.
요리 재료를 맛본다 생각하면 될 일이다.
물론 이 짓을 꾸민 제브라드에게는 꼭 이자에 복리 이자까지 쳐서 갚아 주는 건 당연하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갑자기 위가 요동쳤다.
인어의 이주와 워프가 터진 그 날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불쾌감만 주던 쑥과 마늘의 진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달콤했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쑥을 향해 손을 뻗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와삭와삭.
씁쓸한 맛과 씹을 때마다 한약재 같은 특유의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웃기게도 그 맛이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었다. 달콤하기까지 했다.
“이젠 혀까지 미쳐 버렸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 피식 웃던 도현은 상큼하면서 깔끔한 뒷맛에 진한 여운을 느꼈다.
‘……좋다.’
무뚝뚝한 얼굴에 긍정이 피어났을 때쯤, 이미 손은 채반의 마늘을 움켜쥐고 있었다.
다행히 껍질이 벗겨져 상앗빛 속살의 실한 마늘이었다.
엄지 한 마디 크기의 굵은 마늘을 쳐다보던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입에 털어 넣었다.
톡 쏘는 알싸한 맛과 과육을 씹는 듯, 식감이 마늘을 먹는 건지, 사과를 씹는 건지 헛갈릴 정도다.
맵다. 혓바닥을 괴롭히는 아린 맛에 자극된 침샘에 갈증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렇게 꿀꺽 삼킨 뒷맛은, 쑥과 또 다른 향과 함께 미약한 단맛에 입맛을 다셨다.
식감 때문일까, 소량의 단맛 때문일까.
어쨌든 거부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채반에 눈이 갔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