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80화 (80/200)

# 80

80. 터졌다 (3)

도현은 강혁에게 다가가며 농장에서 토토를 불러냄과 동시에 파이어볼을 워프 구멍 안으로 던졌다.

농구공 크기의 파이어볼이 골대에 들어가듯 구멍에 떨어지자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듯 굉음을 내며 몬스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 여기저기 흩어진 헌터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지만, 워프 앞은 강혁의 목소리에 파묻혔다.

“늙은이 부려 먹고 너희들끼리 시시덕대니 좋냐?!”

몬스터 내장과 체액으로 샤워를 한 강혁이 도현을 보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도현은 그런 강혁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삼촌, 조금만 더 버텨요.”

“무슨 소리냐? 안에 들어가서 워프핵 파괴해야지!”

“워프핵이 폭주해서 몬스터를 쏟아 내는 거라서요. 좀 있으면 끝나요.”

환해졌던 강혁의 안색이 단박에 떨떠름해졌다.

이제 좀 쉬나 싶었더니.

“그럼 계양산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냐? 산 아래 헌터들이 넝쿨 때문에 몬스터가 계속 생겨난다고 난리다!”

거기까진 몰랐던 도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그렇다고 산을 날려 버릴 수는 없잖아요.”

강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양손으로 팔뚝을 쓸며 앓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늙어서 그런가, 안 쑤시는 데가 없네. 젊은 네가 좀 처리하면 안 되냐?”

과장되게 말했지만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몬스터를 막아 댔으니, 아무리 2급이라 해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도현은 계속 아픈 연기를 하는 강혁에게 토토를 던졌다.

“토토 빌려줄게요.”

“얘를 어디에 써먹으라고?”

황당해하는 강혁을 무시하고 토토에게 말했다.

“토토, 마음껏 놀아. 커져도 돼.”

맴매 사건 이후 첫 허락이었다.

눈이 똥그래진 토토가 강혁 품에서 벗어나 땅 위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와! 와! 압빠, 채고! 놀쟈, 놀쟈!”

대신 도현은 조건을 걸었다.

“단, 삼촌 말 잘 들어. 아빠 금방 올 거니까.”

“웅! 토토 땀촌 말, 잘 드러! 압빠, 다녀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토가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렸다.

3m의 체격.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의 붉은 원숭이가 가슴을 치며 제자리에서 풀쩍풀쩍 뛰었다.

그때마다 산이 울리며 토토의 꼬리 끝에 붙은 푸른 불꽃이 화륵화륵 불똥을 튀겼다.

입이 쩍 벌어진 강혁이 몸을 돌리는 도현을 다급하게 잡아 세웠다.

“조카야, 어디 가냐?!”

도현은 턱짓으로 하지현과 함께 다섯 헌터를 취조하는 차도식을 가리켰다.

“저 자식! 왔으면 빠릿빠릿하게 앞으로 와야 할 거 아냐?!”

강혁이 소리쳤지만, 토토의 푸른 불똥이 울려 대자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신난 토토가 크허허헝 웃으며 양손에 맺힌 푸른 불덩이를 던져 댔다.

그 소리를 배경음 삼아 도현은 차도식에게 가서 물었다.

“매부, 헌팅 갔던 워프가 어디예요?”

***

도현은 하지현과 차도식이 알려 준 지도 어플을 확인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을 일직선으로 그은 붉은 점선 위로 움직이는 물방울 모양의 아이콘이 자신의 위치를 바로 찍어 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걸 알았으면 고생 안 했을 텐데.”

뭐… 지금이야 차가 있으니 크게 불편한 일이 없지만.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하남의 팔당호 내의 소내섬이었다.

습지로 이루어진 이 섬은,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10분밖에 안 걸리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그런 섬 중앙에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달 조각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반 평 채 안 되는 다각형의 얇은 판 하나.

성인 한 명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무척 작은 크기였다.

달 조각이라 할 수 있는 큰 운석 형태의 워프들이 익숙하던 도현은 이 워프의 생김새가 독특했다.

“여기도 물 천지랬지?”

2주기로 3등급이 된 워프.

도현이 다녀온 인어의 메아리 워프처럼 물이 가득한 워프다.

다른 점이라면 밀림 사이에 바다처럼 넓은 강이라는 것 정도.

“뭐 어차피 워프핵만 부수면 된다 했으니까.”

도현이 직접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인어 워프처럼 신이 나타나 무슨 헛짓거리를 한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정말, 만약에 신 놈이 나타나 휘젓고 있다면 신 놈과의 2차전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벌써 나와도 나왔을 텐데, 아직 워프 안에 있는 건가?”

사실 워프핵은 워프와 동급의 헌터만 부술 수 있었다.

도현이야, 헌터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 없으니 몰랐던 것이고, 반대로 차도식은 도현이 나서자 당연히 알고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핵을 부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었지만, 도현은 그저 멀쩡한 워프에 궁금증 반, 짜증 반이었다.

헌터들이 왜 안 나왔는지.

굳이 이 워프를 헌팅했어야 할 이유가 뭔지.

혹시 남은 4명의 헌터가 아직 워프에 있는 이유가 저번 크로아 워프처럼 신 놈의 제물이 된 건 아닌지.

그런 상황이라면 신 놈을 만났을 때 승산이 얼마나 될지.

“아하, 어쨌든 들어가 봐야지.”

[3등급 워프, 키리카의 산란장에 입장하셨습니다]

도현은 익숙해진 알림을 흘려들으며 바뀐 주변을 훑었다. 차도식의 팀을 찾기 위해서다.

“출입구 근처라고 했는데.”

다른 워프들처럼 나무들이 빽빽한 숲이 펼쳐졌다. 다른 점은 나무의 기둥의 1/3이 뿌리였다.

그 뿌리가 땅 위로 1m 넘게 드러나 있다는 것 정도였다.

나무들의 표피는 반들반들했다. 전체가 흰색이란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그런 나무들이 수두룩하게 이어지더니 절벽처럼 끊어지며 출렁대는 수면이 보였다.

저곳이 키리카라는 물고기 몬스터의 서식지이자 산란장이었다.

도현은 강으로 다가갔다. 강 반대편에 4명의 인기척이 느껴져서다.

김경희는 강렬하게 초록빛을 내는 돌덩이를 향해 마나를 불어 넣은 검을 힘껏 내려쳤다.

카앙!

돌덩이와 검 사이에 불꽃이 튀며 검이 크게 튕겼다.

두께 30cm 철벽도 두부처럼 가를 힘이었지만, 이 돌덩이는 무슨 미스릴이라도 되는 걸까.

김경희는 씩씩대며 울분을 토했다.

“XX, 이걸 어떻게 깨란 말이야?!”

근처 나무뿌리에 아무렇게나 앉은 채빈이 한숨을 푹 쉬며 짜증스럽게 한 소리 했다.

“그만할 때 안 됐냐. 벌써 100번째라고.”

“야, 이거 못 깨면 우리 못 나가잖아! 못 깨면 또 몬스터 젠하고!”

김경희가 시뻘게진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댔지만 채빈은 해탈한 채 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어쩌겠냐. 갑자기 팀장님도 사라진 판국에. 다시 와야지.”

“아, 씨!”

김경희가 울분에 못 이겨 바닥의 흙을 발로 찼다.

그런 둘을 돌부리에 걸터앉아 멍하니 보던 진기찬이 중얼거렸다.

“하아, 팀장님은 어디로 사라지신 걸까….”

그 옆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있는 박성한이 기가 찬 듯 말했다.

“말이 되냐? 사람이 뿅! 하고 사라진다니. 사라질 거면 차라리 딱 1초만 더 있다가 사라지지.”

셋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난 김경희가 소리 질렀다.

“너희들 그러고도 피닉스 팀원이야?! 팀장님이나 바라보고 박수만 치는 쩌리 새끼들이냐고?! 이거라도 깨고 나가야 할 말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고오오!”

후려치는 말에도 둘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채빈이 띠껍게 김경희를 노려봤다.

“말이 심하다? 우리가 노력 안 한 것도 아니잖아? 내 대거는 이가 다 나갔다고.”

그러면서 속상한 듯 검집을 쓸어내렸다. 김경희가 헛기침했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보니 눈이 뒤집혀 너무 많이 까 내렸다.

박성한이 가슴에 포갠 손 하나를 들어 저었다.

“어. 난 못해. 4급 레드 쩌리가 3등급 워프핵을 어떻게 깨냐. 더군다나 여긴 2주기라고.”

진기찬이 하늘을 멍하게 보며 중얼거렸다.

“아, 배고프다. 나가서 먹으려고 점심도 걸렀는데….”

김경희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팀장님은 왜 이딴 놈들을 뽑은 겁니까?!’

1년 전까지만 해도 김경희는 일반인이었다. 각성자 인구 3천만 시대에 사람 취급 받기 힘든 일반인.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사무직이었고, 그것도 단순 경리 같은 사무 보조 정도에 그쳤다.

그런 그에게 빛이자 우상은 차도식 헌터였다. 강하고 잘생기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까지.

닮고 싶었다.

김경희는 결심하자마자 무작정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죽을 것 같았지만 오직 동경의 마음으로 버텼다.

삐쩍 마른 몸은 점점 근육이 차올랐고, 그 때문인지 소심했던 성격은 점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든 게 차도식 헌터의 덕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차도식 헌터에게 본격적으로 빠져든 건.

그가 헌팅한 워프와 몬스터를 외우기 시작하며 몇 월, 며칠, 몇 시, 어떤 복장으로 누구와 어디의, 어떤 워프를 갔는지 모든 것을 달달 외웠다.

누가 봤다면 그 노력을 공부에 쏟았으면 미국의 워프 전문 하번드 대학도 가지 않겠냐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차도식의 모든 걸 파며 김경희는 자신감을 얻었다. 회사에서는 그런 김경희에게 헌터 박사란 별명이 붙었지만, 딱히 친하게 지내는 직원은 없었다.

그나마 나누는 대화마저도 업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자신에겐 차도식 헌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탕비실에서 들은 뒷담화 충격적이었다.

‘저가 차 헌터라도 된대? 웬 꼴값이야 꼴값이. 일반인 주제에.’

영업 팀 최 과장의 주절거림이었다.

그는 그래도 각성자였으니까. 그것도 5급이라는. 회식에서 얼큰하게 취하면 나오는 레퍼토리 중 첫 번째가 ‘내가 이래 봬도 당장에 헌팅 뛸 수 있어! 헌터라고, 최 헌터! 푸하하하!’였다.

그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일반인 김경희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그리고 그날 각성과 동시에 헌터가 되었다.

4급 블루 헌터 김경희.

사표를 던지고 나오면서 4급이라 쓰인 짙은 파란색의 헌터증을 최 과장 눈앞에 들이대는 것으로 복수하고 진정한 목표를 찾았다.

자신의 빛이자 우상인 차도식 헌터를 보좌하겠다는 목표 말이다.

‘그래서 1년 동안 개고생하면서 이 자리에 섰는데!’

저렇게 의욕 없는 놈들과 같은 급이란 게 치욕적이었다.

김경희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다시 검을 쥐었다.

“흐음.”

도현은 강 끝에 서서 4명의 헌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팀원이 궁금하기도 했고, 국내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헌팅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다.

뭐, 목숨은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

그렇다 해서 희생하지 않는 헌터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헌터들이 소극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거기에 비하면 저 4명은 양호했다. 그저 혼자 펄펄 끓어오르는 저놈이 유독 튀는 것일 뿐.

도현은 저 열혈 헌터를 보자 묘하게 차도식이 떠올랐다.

“뭐, 팀에 저런 사람 하나 정돈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던 도현의 눈에 작정한 열혈 사내가 들어왔다.

양손에 침을 뱉어 검을 그러쥐고 심호흡했다.

칼끝이 워프핵을 툭툭 건들다 내려치기 위해 머리 위로 들었을 때, 도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검날에 워프핵이 닿았다.

콰자작! 퍽!

“헉!”

“뭐, 뭐야?”

“부쉈어?”

“뭐? 부숴?”

검을 들고 부서진 워프핵에서 눈을 못 떼는 김경희 주변으로 세 사람이 몰렸다.

초록빛을 내던 워프핵이 말 그대로 박살 나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하, 이게 어떻게 부서지냐?”

“저놈 팀장님 광신도인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진기찬과 박성한이 혀를 내둘렀다.

아직도 넋이 나간 김경희를 본 채빈은 피식 웃으며 김경희의 등을 팡 쳤다.

“김경희, 3급 축하한다!”

“희야, 축하한다.”

“축하해.”

“아…….”

정신 차린 김경희는 진심 어린 축하에 현실로 돌아왔다.

‘3급…? 3급이라고?!’

“으아아아!”

그는 세 명이 말리기까지 만세를 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