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79화 (79/200)

# 79

79. 터졌다 (2)

거대한 붉은 호랑이를 본 토토가 흥분해서 외쳤다.

“호당이 이뻐! 노리터! 너을 꼬야!”

인어의 메아리 워프에서도 그러더니. 토토는 부쩍 수집 욕구가 폭발했다.

그리 어려운 요구는 아니었다. 어차피 농장엔 산도 숲도 있으니, 이런 놈 하나쯤 뛰어다닌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어차피 들어줄 생각으로 내려온 것이기도 했으니.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신에 인어들이나 하리오카 숲은 안 돼.”

“응, 압빠! 압빠 채고얏!”

도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멀리 떨어져 있던 앞발이 날아와 달라붙으며 원상 복구되었다.

쪼개져 덜렁거리던 턱과 이도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난 호라타스는 도현을 혀로 핥았다.

낼―?

밤톨 같은 토토의 손이 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커거거겅?

당황한 호라타스에게 토토가 엄하게 말했다.

“안대! 지지, 호당아, 노리터 가쟈!”

호라타스의 혀를 쥔 토토가 도현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사라지자, 허둥대던 호라타스의 몸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 상황을 쭉 지켜보고 있던 헌터 셋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을 굴려 대화를 나누더니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도현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어디 가?”

셋은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몸을 빳빳이 세운 채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이배성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우, 우 헌터님. 안녕하십니까! 소문으로만 듣던 헌터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돌아선 도현은 말없이 심드렁한 시선으로 셋을 볼 뿐이었다.

잠깐 눈치를 살피던 이배성이 목을 가다듬고 손을 비비며 간사하게 말했다.

“큼, 헤헤. 저희는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목격했을 뿐입죠. 보다시피 저희들이 4, 5급밖에 안 돼서 말입니다요. 마침 우 헌터님이 나타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역시 소문대로 대단하십니다! 헤헤 그, 그럼… 가 봐도 되겠… 우와악!”

횡설수설하는 하나와 눈치만 보던 두 사람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이어서 나무에 박혀 기절한 둘까지 챙긴 도현이 말했다.

“이야기는 가서.”

이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벗어나려 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눈동자를 굴리는 것뿐이었다.

둥실 뜬 상태에서 빠르게 주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수록 셋의 눈동자는 지진이 난 듯 떨렸다.

구멍이 뻥 뚫린 채 까맣게 변한 워프가 자신들을 반겼다.

***

150평, 높이 30m의 달 조각.

선명한 초록빛을 발했던 큰 송곳니 호라탄 워프는 현재 테러라도 당한 듯 중앙에 구멍이 뚫린 채 빛을 잃고 검게 변해 있었다.

덤프트럭 두 대는 들어갈 구멍에서는 성인 몸통만큼 굵은 푸른 넝쿨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몬스터를 토해 내는 중이었다.

마치 판타지 전쟁 영화에서 물밀듯 밀려오는 이종족들의 모습이랄까.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지만, 계양산에 흩어져 몬스터를 없애는 헌터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필사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급하게 모여든 100여 명의 헌터들 이후, 계속해서 헌터들이 충원됐지만, 산 정상 워프에서 뻗어 나온 넝쿨이 산을 뒤덮으며 생겨나는 몬스터들 때문에 진척은 거의 없었다.

대치만 벌써 2시간째.

1차 방어선으로 50%가 넘는 몬스터를 강혁과 하지현이 막고, 그 뒤를 이어 5대 헌터 회사인 유니크 1팀 정준혁 팀장과 4명의 팀원이 2차 방어선을 맡아 쏟아지는 몬스터를 기계처럼 처리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물량 앞에 정준혁은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방패를 세우고 오른손에 든 스파이크를 본능적으로 휘둘렀다.

빠르게 쌓이는 피로에 인상을 찌푸릴 법도 했지만, 그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캬가가가각!

방패가 땅을 긁으며 몬스터를 때렸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적게는 열, 많게는 50마리의 몬스터가 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빠져나간 몬스터는 그의 팀원인 암살자와 마법사, 궁수 2명이 처리했고, 흩어진 몬스터들은 산으로 퍼지며 3~5차 방어선을 맡은 헌터가 처리하는 상황이었다.

정준혁이 낮게 한숨을 뱉으며 뒤에서 떨어질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완성입니다!”

피로에 찌든 하지현의 외침이 뾰족하게 울렸다.

순간 그의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동시에 무기를 공간에 넣고 자신의 몸집만 한 방패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마나를 끌어모았다.

은빛이 뿜어졌다. 방패 위로 은색의 투명한 방패가 생겨났다.

1차 방어선을 맡았던 강혁이 몸을 빼자,

“실드 어택!”

발로 힘껏 땅을 박차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몬스터를 향해 돌진했다.

퍼버버벅! 콰앙아앙―!

***

피처럼 붉은 장갑 한 쌍을 낀 하지현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양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겹쳐졌다 풀어진다. 1초에 수십 번의 수인이 맺혔다. 그에 따라서 그녀 주위로 진하게 모여든 마나가 그녀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흩었다.

점점 붉은빛을 띠는 마나 기류가 선명한 진홍빛으로 변했을 때 그녀는 마지막 수인을 맺음과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진홍빛으로 물든 진고동색의 눈동자가 워프를 뚫을 기세로 노려보며 외쳤다.

“완성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준혁의 방패 앞에 은빛 방패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몬스터를 압살하는 현장을 확인한 그녀는 워프를 씹어 먹을 듯 외쳤다.

“겁화여 타올라라! 살점은 불사르고 뼈는 한 줌의 재로, 영혼까지 집어삼켜라!”

그녀를 중심으로 수십 가닥의 붉은 불길이 퍼져 나가며 얽히고설켜 문양을 만들어 냈다.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질주하는 붉은 선이 몬스터들을 스쳤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새카맣게 탄 몬스터는 부는 바람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지옥도가 펼쳐진 현장에서 사인을 주고받은 헌터들은 끝없이 퍼져 나가는 불길의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곧이어 워프 앞까지 도착한 불길은 워프를 타고 터진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앙! 쿠아아아앙!

산을 뒤집을 정도의 굉음이 울리며 구멍에서 시작된 불기둥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하아… 하아……!”

하지현은 모든 마나를 쏟아부은 역작을 멍하니 쳐다보다 몸을 휘청이며 털썩 주저앉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왼쪽 팔목에 착용한 은빛 팔찌를 오른손으로 붙잡고 외쳤다.

“……오빠!”

은빛 팔찌가 하얗게 빛나자마자 차도식이 뚝! 하고 그녀 앞에 나타났다.

하지현은 기쁨과 미안함, 슬픔이 뒤섞인 눈으로 차도식을 바라봤다.

차도식은 헌팅의 종점인 워프핵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분명 초록색으로 빛나는 돌이었을진대, 하지현으로 모습이 바뀌자 질겁하며 대검을 소환 해제했다.

“지, 지현아?”

하지현은 왈칵 올라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웃었다. 그러곤 당황하는 차도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미안해, 오빠… 워프가 터졌어. 끝없이 몬스터가 쏟아지는데 워프로 들어갈 수 없었어. ……워프핵을 파괴해야 하는데, 삼촌이랑 둘이서는… 그, 래서 오빠를 불렀어… 정, 말, 정말… 미안해!”

차도식은 금세 차분해졌다.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확인하자 무슨 말인지 이해되었다.

달 조각은 주먹을 한 대 맞은 것처럼 중심이 터져 있었고, 주변의 숲은 워프 속 세상처럼 거대한 넝쿨과 기이한 나무로 가득했다. 멀리 산 저 아래에는 익숙한 주거지가 보였다.

워프 세상과 현실이 합쳐진 듯한 느낌.

정말로 현실에 몬스터가 나온 것이었다.

차도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다 자신 앞에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뚝뚝 눈물만 흘려 대는 그녀를 보자 목이 막혔다.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잡았는지 검어야 할 헌터 웨어는 짙은 녹색으로 절어 있었다.

이리저리 찢기고 갈려 뜯어진 부분은 붉은 피와 딱지로 가득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도식은 다짜고짜 하지현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버석거리는 옅은 소리와 함께 장갑에 말라붙은 몬스터 체액이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장갑을 꼈음에도 마주 잡은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그리고 경련하듯 바들바들 떨어 대는 손에 결국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차도식은 하지현을 끌어당겨 숨 막힐 듯 꽉 안았다.

이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숨을 깊게 내쉬었지만, 그것마저도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차도식은 평소처럼 다정하고 장난기가 다분한 말투로 조곤조곤 말했다.

“괜찮아. 걱정 마. 워프는 정리했고, 워프핵을 깨던 중이었어.”

“끅, 끄읍!”

그녀는 미안함과 안도감에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채 1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잠잠해진 구멍에서 수백의 기척과 함께 묵직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긴장한 두 사람의 시선이 워프를 향했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차도식은 먼저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는 하지현을 부축했다. 그녀를 이 자리에 두고 자신만 가려 했지만,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하지현이 그의 손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함께 한 걸음 내디뎠을 때, 그들의 등 뒤 나무가 터져 나가며 불쑥, 한 사람이 나타났다.

도현이었다.

도현이 구멍 난 워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네.”

“싸, 싸가지?!”

“처남님?!”

두 사람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가 이내 생기가 돌며 부드럽게 풀어졌다.

도현이 있으면 이까짓 일쯤은.

하지현이 물었다.

“헌팅은…?”

“나오자마자 바로 온 거야. 기자들이 알려 주더라. 그보다 불기둥은 찌롱이 네 작품이야?”

“으, 응… 안에 워프핵을 파괴해야 하는데, 몬스터가 너무 쏟아져서…….”

넝쿨과 함께 다시 쏟아지는 몬스터를 본 도현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워프 안에 저렇게 많은 몬스터가 있다고?”

하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도현이 간단하게 결론을 지었다.

“폭주네. 워프핵치곤 마나가 너무 약하다 싶었어.”

“그, 그게 느껴지십니까?”

도현은 당황해 묻는 차도식을 보며 워프 앞에서 소식을 떠들어 대던 기자의 말을 떠올렸다.

‘계양산 일대가 워프 속 세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현재 하 헌터와 헌터 협회장님도 가셨는데….’

매부가 있단 말은 못 들었는데?

그랬다면 이 상황은 벌써 정리가 끝났어야 했다.

도현의 눈이 두 사람의 팔찌에 닿았다. 은빛이 탈색된 듯 하얗게 변해 있었다.

‘썼구나.’

시선을 알아챈 하지현이 ‘이럴 줄 알았으면 쓰지 말걸…….’ 하며 미소 지었다. 후회보단 소심한 투정 같았다.

“매부, 헌팅은요?”

차도식이 하지현을 의식해 더 밝게 말했다.

“팀원들은 괜찮습니다. 워프핵만 남은 상태이긴 하지만….”

뒤에 이어진 ‘정리하고 가더라도 문제없을 겁니다.’라는 말이 더 신경 쓰였다.

인어의 메아리 워프에서 만난 도깨비 때문이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탓일까, 차도식이 도현의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처남님이 오셨으니, 제가 다시 가서 워프핵만 부수고 오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갈게요.”

찝찝함에 결국 도현이 움직이기로 했다.

도현의 마음을 모르는 차도식은 눈을 빛내며 ‘역시 처남님……!’이라 중얼거렸다.

도현은 그런 차도식을 무시하고 워프를 확인했다.

10m의 거리를 두고 열심히 클로를 휘두르며 몬스터를 처리하는 강혁 삼촌이 보였다.

계속 졸라 대서 대충 아무거나 던져 줬는데, 주길 잘한 것 같다.

“이 새끼들아! 뒤에서 노가리 까면 좋냐?! 어?!”

강혁은 손과 발을 바삐 움직이면서도 꽥꽥 소리를 질렀다.

아직 팔팔하구만.

도현은 픽 웃으며 들고 온 헌터 다섯을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3급 둘, 찌끄레기 셋. 처리 좀 해 주세요. 삼촌한테 가 볼게요.”

의아해하던 둘의 눈이 다섯 헌터에게 닿았다. 도현이 말한 찌끄레기는 모르겠지만, 기절한 남녀는 낯이 익었다. 4급에서도 꽤 유명한 헌터다.

‘그런데 3급이라고?’

똑같은 생각을 한 두 사람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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