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 바다의 맛 (5)
이번만큼은 민혁도 질린 얼굴로 도현에게 물었다.
“저거 잡아야 하는 거야?”
“조개 구이랑 매운탕 먹고.”
“저런데 밥이 넘어가?”
“못 먹을 건 뭐야?”
아바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도현은 아바가 짜증 났다.
‘하루 이틀 워프에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
아니면 워프에 모셔진 걸까?
쉽게 동요하고 겁먹은 얼굴로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딱 그 정도.
실제 생사를 넘나들며 성장한 모습이 아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었으니까.
‘미국도 별거 없겠네.’
그때였다. 민혁이 사납게 머리를 긁으며 욕을 지껄인 것은.
“그래, 시체 앞에서 먹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구경이나 할 놈들인데 못 먹을 거 없지.”
도현은 미소 지었다. 이래서 이 녀석이 좋은 거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모르달의 밥을 구경하며 뺏어 먹던 토토가 갑자기 뛰어와 도현의 어깨에 올라타며 물었다.
“압빠! 저거 모야? 무꼬기? 맘마?”
마땅히 정의할 만한 말이 없었던 도현은 며칠 전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먹는 거 아니야, 지지.”
“큽…….”
민혁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지만 도현은 무시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안 어울리는 말이긴 했다.
‘빨리 말을 가르쳐야겠다…….’
한국어를 빨리, 확실히 가르쳐야 할 목적이 생겨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토토에게는 통했는지 눈이 반짝거렸다.
“지지?”
고개를 끄덕이자 토토가 손뼉을 쳤다. 그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눈꼬리를 치켜 올린다.
“무꼬기 나뿐 눈! 압빠한테 화내! 무꼬기 나빠! 토토가 혼내 주께!”
‘혼내?’
설마, 덩치 큰 모습으로 돌아가 인어와 싸우려나 싶었지만.
“끄아아아압!”
갑자기 토토가 기합을 넣었다.
푸화아악!
빳빳하게 펴진 긴 꼬리 끝에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알밤 같은 주먹을 복서처럼 내지르며 외쳤다.
“부꼰노리!”
‘어… 익숙한 단언데……?’
언젠가 한번 들은 적 있는 단언데 막상 떠올리려니 생각이 안 났다.
도현의 미간이 찌푸려졌을 때쯤, 난데없이 하늘에서 푸른 꽃잎이 팔랑이며 떨어졌다.
“꽃잎?”
의아한 아바가 중얼거리며 꽃잎에 손을 대려 하자 민혁이 깜짝 놀라 아바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 잠깐 사이에 가까이 온 꽃잎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헉!”
반경 1m 주변을 집어삼킨 불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하얗게 질린 아바가 몸을 떨었다.
동시에 바다 위에 흩날리던 꽃잎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쾅! 콰광! 펑!
눈을 감고 듣는다면 불꽃놀이를 연상하며 미소를 지을 소리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콰광! 쾅! 펑! 퍼―엉!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발에 인어들의 비명이 묻혔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바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리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두려움이란 한기에 양손으로 몸을 감쌌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어둠이 물러서길 반복하는 바다에는 어김없이 불에 먹히는 인어들이 보였다.
불꽃을 피해 아무리 몸을 틀어도 어느샌가 다른 불꽃이 몸에 떨어졌다.
터진다. 녹아내린다. 타들어 간다.
물속으로 도망치지만, 다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때면 물 위에 타오르는 불꽃의 먹이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도현은 구운 생선 냄새와 단백질이 타는 매캐한 냄새에 미간을 좁히면서도 감탄했다.
‘불카누스의 화신…….’
그저 대장장이라서, 신의 축복을 받고 불을 다루게 됐을 거라 짐작을 했던 그는 신의 화신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대단함을 이런 상황에서 깨닫다니.
그런 도현과 반대로 토토를 바라보는 민혁과 아바의 눈동자엔 두려움과 감탄이 가득했다. 동시에 도현과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저것들 왜 저래?’
민혁은 도현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고, 아바는 입술을 씹었다.
도현은 가볍게 무시하며 바다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토토의 불꽃놀이로 사라지고 없어야 할 인어들은 오히려 더 늘어나 있었다.
도현을 따라 두 사람의 시선이 바다를 향했다.
팅, 티디디딩! 팅, 팅!
펑펑, 터지는 불꽃 소리가 방어막에 부딪히는 인어 소리에 묻힐 정도로 많은 인어가 몰려왔다.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인어들은 빙판에 달려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다를 수놓던 꽃잎이 사라졌다.
긴장한 토토가 빙판에 뛰어내려 경계 어린 울음소리를 뱉었다.
“크르르!”
바짝 치솟은 꼬리가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
도현은 그런 토토를 부드럽게 안아 토닥였다.
아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왜……?”
도현이 답해 줬다.
“살기가 없어.”
그래. 가장 중요한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오히려―
“저거… 우리한테 관심 없는 것 같은데?”
민혁이 덧붙였다.
둘은 동시에 같은 결과를 생각했다.
‘쫓기고 있다.’
“살려 달라 함다요!”
마침 도현 옆으로 후다닥 달려온 모르달이 외침과 동시에.
둥둥둥둥!
꽤 오랜만에 듣는 북소리가 귀를 울렸다.
[인어의 메아리의 지배자 보물을 삼킨 크라켄이 등장합니다!]
진정한 보스 몬스터의 등장이었다.
인어들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도현은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워프를 대표하던 몬스터가 주인이 아니라 다른 몬스터가 주인이 되었던.
“하리오카 과수원.”
그래, 거기도 그랬다. 둠고블린이 주식으로 삼던 하리오카 나무가 1주기를 맞이하면서 몬스터로 변한 워프.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바다가 요동쳤다.
쿠르르르릉!
맑은 밤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와 번쩍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츄아아악!
물을 뚫고 굵은 기둥 하나가 방어막을 내려쳤다.
꽈과과과광!
“꺄아아악!”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서 몸을 웅크린 아바와 그런 그녀를 보호하듯 곁에 서 있던 민혁은 방어막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지진이 난 듯 심하게 흔들리는 방어막 위로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다리에 달린 빨판이 보였다.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체동물의 표피.
번들대는 피부를 타고 이어지는 바닷물이 방어막을 타고 바다로 돌아갔다.
쿠르르릉, 번쩍!
하늘을 쪼갤 듯 내려치는 번개와 함께 번쩍이는 불빛이 순간 작열하는 태양처럼 세상을 밝혔다.
그 찰나, 바다에 우뚝 솟은 또렷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도현의 품에 안겨 있던 토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너?”
목이 빠질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문어. 아니, 크라켄이었다.
도현은 몬스터의 위용에 감탄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다는 롯트타워에 맞먹는 크기.
민혁과 아바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 댈 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크라켄이 모든 걸 압살할 존재감을 뿜어 댔다.
크롸롸롸―
세상이 흔들렸다. 잔잔했던 바다는 잔뜩 흐트러트린 흙탕물처럼 갈 길을 잃고 뒤섞였다 파헤쳐지길 반복했다.
파도가 높게 일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10년 전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에 맞먹었다.
바다의 왕이라는 인어마저 파도 앞에서는 개미 떼에 불과했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 힘든 현실에 아바는 빙판에 털썩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저걸… 어떻게 죽여……?”
2주기에 들어서 3등급이 된 워프 인어의 메아리.
이 워프는 그전까지만 해도 5등급의 흔한 워프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최근 2주기의 워프 통계대로 워프를 지배하는 몬스터들의 왕이 보스 몬스터로 나온다든가, 워프에 들어오자마자 첫인사를 했던 고래였다면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라켄이라니.
‘이… 이건 악몽이야!’
그녀는 부릅떠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넋을 잃은 아바 앞으로 크라켄이 만들어 낸 파도가 빙판을 삼킬 듯 크게 몰아쳤다.
츄아아악!
방어막을 때리고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 사이로 화살처럼 다리 하나가 날아왔다.
쿠구구궁!
민혁의 떨리는 눈동자가 방어막을 쥐어 비트는 크라켄의 다리를 향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휘청거리는 빙판에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신 차려, 김민혁! 너까지 병신처럼 손 놓고 있을 거야?’
민혁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워프 경험이 있는 그녀조차 정신을 놓을 정도라니.
‘이게 몬스터. 몬스터의 왕…….’
5년을 굴러먹은 헌터도 죽음만 기다렸을 그런 몬스터.
민혁은 이를 악물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줬다.
“크, 흐흐흐. 씨발, 보스 몬스터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정신이 고장이 난 걸까, 그는 덜덜 떨면서도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면 차라리 크게 한 방 먹여 줘야지.
민혁은 독기 가득한 시선으로 크라켄을 응시했다.
크라켄에게서 피어오르는 살기가 피부를 찌르다 못해 뼈가 아렸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전신을 때렸다.
그는 아바 앞에 섰다.
그리고 크라켄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따끔따끔. 사소할 정도의 작은 고통이었지만, 머릿속은 얼음을 때려 박은 듯 차갑게 식어 갔다.
천천히 숨을 뱉어 내며 눈을 부릅떴다.
도현이 데려간 협회에서, 협회장과의 개싸움에서 배운 첫 스킬.
‘모든 힘을 주먹에 집중한다.’
후우웅!
주먹에 빛이 모여들었다. 반딧불 같은 아주 작은 불빛은 점점, 진한 빛을 띠었다.
응축되는 마나가, 그 마나로 인한 소용돌이의 기류가 민혁의 주먹을 감싸기 시작했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그의 옷과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민혁은 몸속에서 가속하는 마나로 시야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눈이 크라켄을 주시했다.
파도에 휩쓸리는 인어를 마구잡이로 씹어 먹는 놈의 눈이 보였다.
진갈색빛의 테두리 안에서 형광 녹색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에 들어찬 난폭한 살기에 몸이 찢기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민혁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아 있다는 그 감정이, 그렇게 되고 싶었던 헌터가 되어 몬스터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미친 듯이 즐거웠다.
1km의 먼 거리임에도 자신의 키는 훌쩍 넘는 크라켄의 눈알이 확대된 듯 시야를 가득 채웠다.
민혁은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었었다.
“저렇게 큰 표적 하나 못 맞히면 등신이지.”
얼마나 큰 힘이 응축된 건지 모르겠지만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모았다.
움푹 꺼진 빙판과 비명을 지르는 뼈마디에도 그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그 덕일까, 주먹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은 빛을 발했다.
쿠우우웅.
한창 인어와 드잡이질하던 크라켄이 인어를 내팽개치고 빙판을 향해 다가왔다.
‘조금만 더 와라.’
민혁은 자세를 낮췄다. 싸움의 기술이니, 자세니, 그런 건 몰랐다.
그저 자신이 목표로 한 그곳만 때릴 수 있으면, 그거로 만족했다.
크라켄의 몸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1초도 되지 않아 방어막 앞 수면이 출렁였다.
‘지금!’
주먹을 뻗었다.
거인의 일격!
파아아앙!
일순간 태양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