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70화 (70/200)

# 70

70. 바다의 맛 (3)

조개가 가까워질수록 진동과 함께 바다의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시야가 탁해졌다.

도현은 처음에 무엇인지 몰라 인상을 찌푸렸지만, 조개인 것을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좋은 음식이 제 발로 찾아오다니.

오찬을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모르달이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짓을 했네.”

“압빠, 이거 모야? 엄청 커어!”

토토가 도현의 어깨에서 폴짝폴짝 깨방정을 떨었다.

도현은 곧 자신을 덮칠 대왕조개에 먼저 다가가 껍질이 맞물리는 곳에 주먹을 갖다 댔다.

툭.

와작, 하는 소리와 함께 기왓장처럼 깨진 껍질 사이로 냉큼 튀어나온 모르달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르르륵, 부르르륵!

양팔과 다리로 안은 푸른빛의 구체. 그걸 도현에게 보이며 득의양양한 얼굴로 헤죽 웃는 모습이, 칭찬을 바라는 얼굴이었다.

‘진주?’

영롱한 푸른빛을 뿜어내긴 했지만 생긴 건 영락없는 진주였다.

‘모르달이 브리핑 때 했던 말이 있으니…….’

틀림없이 진주다.

다만 그 크기가 머릿속에 든 진주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한 손에 받아 든 도현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르달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툭 쳐 줬다.

부그르를!

‘칭찬받았슴다욧!’ 하고 외치는 모습에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더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프로펠러처럼 흔들어 대는 꼬리가 산통을 깼다.

‘조개를 빙판에… 빙판 크기를 늘려야 하나?’

이렇게 큰 놈들이 많을 줄은 생각 못 한 도현은 빙판의 크기를 좀 더 조절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분명 둘이 건지러 간 생선도 평범한 크기는 아니니까.’

그 수도 대략 200마리 정도.

생각을 정리한 도현은 손가락을 튕겨 빙판을 10배로 키웠다.

1,000평에 달하던 빙판이 10,000평이 되었다. 워프가 아닌 현실이었다면 아파트 6동이 들어설 만큼 거대한 땅덩어리였다.

빙판이 만들어지자마자 도현은 대왕조개를 잡고 빙판이 있을 위치로 던졌다. 크게 넓혔으니 아마 어디든 떨어지겠지.

부글부글부글.

그러는 동안 모르달은 도현을 향해 열심히 뭐라 말했다. 밖이라면 바로 들릴 말이 물속이라 전혀 들리지 않는다.

불편하지만 모르달만 이렇게 둔 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조잘거리는 저 입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표정이나 손짓, 발짓이, 가서 조개를 더 구해 오겠다는 것이었다.

도현은 잠깐 고민했다. 푸른빛을 내는 진주. 이 워프만의 특산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마나를 품고 있었어.’

마나석과 비교할 수 없지만, 바다 특유의 기운이 함께 섞여 있었다.

이걸 잘 정제해 조합한다면 꽤 좋은 아이템이 탄생할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엄마의 스네일 상품.

‘음… 많이 구해 달라면 곤란한데.’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대량 생산은 밑에 깔고 가야 할 거다.

“압빠! 예뻐! 이고 모야? 도올? 아닌데, 마나도 품고 잇써! 토토 예쁜 거 조아! 갓꼬 싯퍼.”

“아하.”

농장. 거기에 두면 딱이다.

‘이러다 농장에 다 모아 두겠네.’

워프 수집 전시회도 아니고.

실없는 생각을 하던 도현은 토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래, 토토 하고 싶은 대로 해.”

“정말? 압빠 최고!”

신난 토토가 도현을 끌어안고 뽀뽀를 해 대다 어깨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압빠, 가따 오께!”

토토는 말만 남기고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도현에게서 떨어지자마자 공기 방울을 둘렀으니 숨 쉬는 데 불편함은 없을 거다.

그래도 살짝 걱정이 들었다.

아빠의 마음이란 게 이런 걸까?

‘뭐… 정 안 되면 본모습으로 돌아가겠지.’

도현은 스네일 워프에서 보았던 토토의 청년기의 모습을 떠올리고 픽 웃었다.

“아무튼, 다시 보물찾기나 해 볼까?”

모르달이 앞발 하나를 번쩍 들었다. 자신도 돕겠다는 제스처였다.

도현은 그런 모르달이 의아했다.

“토토 따라 안 가고?”

입을 벌리자 다시 생겨난 공기 방울이 모르달의 얼굴을 가렸지만 대충 의미는 이해됐다. 도현을 돕겠다는 것이다.

칭찬의 힘인가?

‘뭐, 가끔은 나쁘지 않겠지.’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한눈팔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

***

바다가 70%인 만큼 그 크기는 광활했다. 2주기가 되면서 3등급으로 변이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래 크기일까?

‘예전 하리오카 워프에서도 그랬었지.’

토토가 태어났던 워프. 그곳도 끝없이 펼쳐진 수해였다.

그래서일까… 5년 동안 탐사가 끊이지 않았다지만, 밝혀진 범위는 고작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곳에서도 건질 게 있을까?’

도현의 눈에 호기심이 서렸다.

토토가 태어난 유적 같은 게 없을 거라곤 말 못 하니까.

그리고 2주기의 워프다.

고작 4등급이었던 1주기 워프의 먹이 사슬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6등급이었던 스네일 워프처럼 2주기로 4등급이 된 워프는 생태계가 바뀌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인어의 메아리 워프는 어떻게 될까?

“흐음.”

흥미가 생겼다. 어떻게 변하든 도현에게는 유희거리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신기하지 않나.

“어쨌든, 오늘은 훑어보기만.”

물속까지 내리쬐는 햇빛이 약해진 게 느껴졌다.

워프에 들어오자마자 먹는다고 시간을 보낸 탓에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밤중 탐사는 무리겠지.’

두 사람을 두고 혼자 돌아다녀도 되지만, 굳이 첫날부터 부지런 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저녁도 먹어야지.’

빙판에 차곡차곡 쌓이는 생선이 느껴졌다. 거기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용을 뿜어내는 조개도 있었다.

도현이 입 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서둘러야겠다.”

도현은 살짝 진지해졌다.

모르달을 던졌던 위치가 이곳에서 5km였으니, 그다음부터 둘러보면 된다.

‘겨우 5km…….’라는 생각이 든 도현은 그 마음을 모른 채 옆에서 빵긋빵긋 웃어 대는 모르달이 살짝 짜증 났다.

도현이 발로 물을 찼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500m를 훅 가로질렀다.

부랴부랴 모르달이 긴 꼬리를 이용해 열심히 따라붙었다.

“못 따라오면 버리고 간다.”

도현은 모르달에게 통보하며 제트기처럼 날아갔다.

바다는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봤던 것처럼 무척이나 조용했다.

모르달이 만났던 물고기 떼 같은 것도 마주치지 않았고 아바를 삼키려 했던 그 큰 고래도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

애초 없었던 것처럼.

오직 화려함만 가득한 빈집을 구경하는 듯했다.

아니, 화려함만 가득한 바닷속이 의아했다.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잠들어 있다?’

“그럴 수도 있겠어.”

무의식적으로 모든 생물이 밝은 시간에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도현은 생각을 전환했다.

여긴 제브라드도, 지구도 아니니까.

조개도 그랬다. 상식으로 생각하면 그저 크다고만 생각했겠지만, 여긴 엄연히 워프다.

먼지 같은 미생물조차 몬스터로 분류되는 세계.

그런 세계에서 거대한 몸집을 어떻게 유지하겠나.

조용했던 이유도 잠들어 있었다면 이해가 됐다.

거기까지 생각한 도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밤에 전쟁이겠는데?”

도현이 빙판에 올라서자마자 큰 소리와 뾰족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저, 저기 깨어났어요!”

“네, 갑니다!”

“꺅! 조, 조개가 물고기를 먹었……!”

집에서 조금 떨어진 빙판에 이리저리 널브러진 생선이 펄떡대면 아바가 위치를 알려 주고, 민혁이 기절시켰다.

100마리가 넘어가니 그 작업으로 정신이 없는데, 해가 져서 그런지 잠잠했던 조개가 입을 벌리더니 근처의 물고기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콰득, 콰득, 콰드득!

물고기를 통째 삼킨 조개가 들썩이며 흉흉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마자 껍질 사이로 붉은 핏물을 주룩 흘렀다.

충격받은 두 사람이 멍하니 보는데 혓바닥 같은 속살이 나와 그 피까지 싹싹 닦아 먹는다.

다시 쩍 벌어진 껍질이 주변의 물고기를 덥석 먹으려고 하는데, 먼저 정신을 차린 민혁이 닫히는 껍질을 온몸으로 막았다.

“으그그그! 아바 씨, 물고기 빼요! 빨리!”

왜 저러나 싶었더니, 생선을 사수하려는 행동이었다.

도현인 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허둥대며 생선을 빼내던 아바와 도현의 시선이 마주쳤다.

“늦었어요!”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아무래도 몸으로 때우는 포지션이 아닌 탓에 이런 일이 고되고 황당했나 보다.

“그냥 건져 두라고만 했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한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마도 민혁의 행동에 생각할 여유도 없이 동조했다는 게 떠올렸나 보다.

그때 딱! 하는 소리가 바다를 울렸다. 거세게 닫히는 조개껍질에서 빠져나온 민혁이 상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왔어? 물고기들이 얼마나 신선한지 정신없었어.”

한숨처럼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는 모습은 하루 일과를 마친 현장 직원 같았다.

“그냥 건져만 놓으라니까.”

“다시 물에 들어가 버리면 아깝잖아.”

그러면서 ‘딱히 할 일도 없고.’라며 프흐흐 웃는다. 그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아바만이 자괴감에 어깨가 처졌다.

도현은 그런 둘에게 물속에서 봤던 상황을 말해 줬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쪽은, 역시나 워프 경험이 있는 아바였다.

“계획은요?”

도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눈초리가 매서워진 아바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여긴 안전한 거죠?”

“워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평소로 돌아왔다.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민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러니까, 밤에 다시 물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야?”

“아니. 오늘은 해산물 구이 먹어야지. 정 가야 하면 혼자 다녀올 거야. 혹시 모르니 토토랑 모르달은 두고.”

민혁의 미덥지 않은 시선이 도현 옆의 모르달로 향했다.

모르달은 얼굴을 어디까지 치켜들고,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가슴을 부풀렸다.

그 뒤로 크고 굵은 꼬리가 살랑살랑 춤춘다.

괜히 없던 정도 뚝뚝 떨어졌다.

민혁은 생각했다.

‘현이가 왜 구박하는지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민혁 옆, 아바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붉은 원숭이는 어디 갔어요?”

도현의 어깨에 있어야 할 토토가 없는 게 궁금했나 보다.

“놀러. 알아서 올 거야.”

“아직 어린 몬스터잖아요? 게다가 밤이 되면…….”

이번엔 그녀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딱히 이뻐한다거나 말을 나눈 건 아닐 텐데.

‘여자들은 다 그런가?’

토토가 이쁨받는다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솔직히 모르달만 빼면 여기서 토토를 이길 사람은 없었다.

‘늘 작은 모습으로 있어서 그런 걸지도.’

딱히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던 도현은 화제를 돌렸다.

“곧 있으면 어두워지니까, 빨리 시작하자.”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도현은 손을 크게 한 번 까딱였다.

촤아아아!

바다에서 커다란 덩어리가 불쑥 떠오르더니 빙판 위에 뿌려졌다.

동시에 와르르 떨어지기 시작한 해산물들이 빙판 위에서 퍼덕거렸다.

민혁과 아바가 고심하며 관리했던 돔의 10배는 될 법한 양이었다.

더는 안 놀랄 거라 다짐했던 아바도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설마 이걸 다……?”

마음속으로 ‘제발’을 외쳤지만 도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맞는데.”

그녀는 다른 의미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렇게 충격에 빠진 그녀를 구해 준 건 다름 아닌 민혁이었다.

“현아, 어떤 작업? 물고기 다듬을 거야? 전부?”

“보기만 해.”

밝아지는 아바를 보며 도현은 생각했다.

참, 스파이에 안 어울린다고.

도현은 팔을 걷었다.

남아서 구경하겠다는 둘을 두고 먼저 손에 잡은 건 조개의 식량이 될 뻔한 물고기였다.

[손질 시스템을 이용하시겠습니까?]

“오.”

도축만 될 줄 알았던 시스템이 알아서 손질까지 맡아 준다니 나쁘지 않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3m의 돔 한 마리가 허공에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분해되어 크로아 탕을 해 먹었을 때 사용했던 대야에 담겼다.

거기까지 지켜본 두 사람의 눈은 흡사 귀신이라도 본 듯 커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퀘스트가 반응했다.

식재료를 수급하라!(반복 퀘스트)

식재료 수급 30/1,000

식재료 도감 완성(초급) 1/30

‘나쁘지 않네.’

워낙 몸집이 큰 물고기들이라 그런지 한 마리만 해체해도 나오는 부위와 부속이 꽤 많았다.

사람들의 눈으로는 그저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시스템에 스캔 된 이상 아주 세세하게 부위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돔 세 마리를 더 손질한 뒤 침을 흘리며 보고 있는 모르달을 불렀다.

“모르달.”

“옙, 도련님! 소인, 부르셨슴까요!”

오늘 칭찬 좀 해 줬다고 되게 빠릿빠릿하다.

“스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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