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69. 바다의 맛 (2)
아바는 멍하니 식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다이닝룸으로 들어간 그녀는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은 바비큐 꼬치에 당황했고, 10인분은 돼 보이는 라면 솥에 얼이 빠졌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의자에 앉자, 신난 민혁이 빈 그릇과 꼬치를 접시에 담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아바 씨, 이거 드셔 보세요. 현이, 이놈이 요리 초짜라더니 웬만한 셰프 저리 가라네요. 진짜 맛있어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하던 민혁은 빈 그릇에 라면까지 덜어 주었다.
“이건 제 역작인 라면입니다! 맛은… 꼬치 때문에 망했지만, 우리 잘 먹고 아이템이나 주워요.”
주먹을 쥐며 파이팅 자세까지 취하는 모습까지 본 아바는 없던 두통이 일었다.
이 사내만 이러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 옆으로 미친 웃음소리를 흘려 가며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 모르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식탁에 앉아 손뼉 치며 먹는 토토는 어린 몬스터니 이해한다지만…….
‘지금 내가 워프에 들어온 게 맞지?’
워프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도현의 집에 초대를 받은 것인지, 구분이 안 돼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런 마음과 달리 그녀의 시선은 도현을 향했다.
헌팅 리더인 그마저 진지한 얼굴로 꼬치에 집중하고 있자 고민한 자신이 멍청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 리더에, 그 팀원.’
아바는 한숨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손에서 가까운 꼬치를 들어 한입 물었다.
“……!”
적당히 쫄깃하고 부드러운 육질이 씹히자마자 과즙처럼 흘러내리는 육즙에 눈이 부릅떠졌다.
분명 두께만 해도 2cm는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잘 구울 수 있는 걸까?
꽤 공을 들여 구워야 할 텐데, 시간이라고 해 봤자 불과 5분. 아니, 3분도 안 지났는데?!
무수한 물음표가 떠다니는 머릿속에서 허우적대던 아바는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입 안에 녹아 버린 고기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시 그 맛을 느끼고 싶어 꼬치를 봤지만, 노릇하게 구워진 과일을 먹어야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과일을 물고 빼내 씹으니 과일 특유의 아삭 씹히는 질감 뒤로 상큼하면서도 벌꿀처럼 달콤한 맛이 혀를 희롱했다.
‘멜론… 라임? 이런 맛을 내는 과일이 있어?’
그녀의 눈이 커졌지만, 입은 바쁘게 과일을 씹어 대고 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과일이었다. 방금까지 고기에 취해 과일이 아쉬웠다가, 지금은 고기를 생각했던 자신은 어디 가고 이 과일이 무엇인지 미칠 듯이 궁금해하는 자신이 있었다.
‘서, 설마 여기에 매혹 같은 스킬이 걸려 있는 건?!’
아바의 망상이 갈 수 없는 길을 개척하려고 할 때, 민혁이 흐흐흐, 웃으며 말했다.
“아바 씨, 바비큐 꼬치 정말 맛있죠? 이거 이렇게 보여도 워프산 고기와 과일이래요. 빅… 뭐시기……?”
즐겁게 식사하던 도현이 친절히 가르쳐 줬다.
“빅카우엑스랑 빅모랄보어. 과일은 하리오카 열매.”
“음… 그렇다네요. 그냥 큰 소고기, 큰 돼지고기 그런 것 같아요. 하하하.”
“…….”
아바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속이 답답해졌다. 체기가 도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위장만큼은 정직했다. 더 넣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으니까.
‘카우엑스에 모랄보어… 거기다 하리오카 열매.’
100g만 해도 1,000불은 우스운 고기다. ‘빅’이 왜 붙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이상의 등급이라면 10,000불 이상인 건 아닐까.
이젠 상상할 수 없는 액수에 먹어도 되는 건지 불안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그녀는 현실과 양심을 저 멀리 던지고 눈앞의 음식을 노려봤다.
일단은 앞에 놓인 음식을 다 먹고 볼 심산이었다.
그녀가 더는 입에 음식을 밀어 넣지 못할 때쯤 커피 한잔으로 티타임까지 마친 도현이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이제 가 볼까?”
산책이라도 갈 듯한 말투에 두 눈을 깜빡였다.
‘워, 워프 안이었지…….’
식사에 정신이 빠져 이곳이 어딘지 잠시 잊었던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도현이 일어서자 흔적만 남은 식탁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깨끗해진 그릇만 차곡차곡 쌓였다.
그를 선두로 한 줄로 나란히 집을 빠져나가 도착한 곳은 빙판 한쪽의 끄트머리였다.
맛있는 오찬에 신났던 민혁은 바닷물을 보고 굳어 버렸다.
‘이제야 긴장하는 건가?’
아바는 이제 현실로 다가온 헌팅에 긴장한 민혁을 보고 속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 옷 없는데.”
“헌팅 웨어 아니었어요……?”
“어… 이건 그냥 현장 작업복…….”
할 말을 잃었다.
기본에 기본도 지키지 않은 모습에 다시 화가 끓어올랐다.
친절을 보여 줬던 민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아바가 사나운 눈으로 도현에게 따지려는데,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필요 없으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바다에 빠졌다.
아바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차가운 물도 느껴지지 않았고, 쉬고 있는 숨이 막히지도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에 주변을 보니, 자신을 감싼 투명막이 보였다.
“어, 이게 뭐야? 이런 스킬도 있어?”
탐색하는 그녀와 달리 민혁은 이미 개헤엄을 치며 바다를 누비고 있었다. 그 앞으로 같은 막에 싸인 도현과 투명한 막 없이 바다에 허우적대는 모르달이 보였다.
“부르르륵, 부글!”
모르달이 도현에게 다가가 항의하는데, 입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에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표정으로 짐작하자면, 왜 자신은 막이 없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
그녀도 왜 차별하는지 의아했지만, 조금 전까지 이어졌던 식사 시간의 모습을 보니 그런 관심도 뚝 떨어져 버렸다.
‘어차피 난 괜찮으니까.’
나 아니면 돼, 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던 아바는 도현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토토야, 아빠가 낚시 가르쳐 줄게.”
‘낚시?’
도현의 빈손에 낚싯대가 나타났다. 1m쯤 되어 보이는 나무 막대에 굵은 밧줄 하나가 매여 있었다.
그는 아직도 막을 두들기며 항의하는 모르달을 향해 막대를 휘둘렀다.
“어……?”
줄이 춤추듯 움직이더니 모르달 머리에 꽂혔다. 당황한 모르달이 줄을 잡고 뜯었지만,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압빠, 모르달 머리! 줄! 박혓써!”
놀랐지만 재미난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낚싯대와 모르달을 보는 토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은 도현은 팔을 뒤로 젖혔다가 휙, 앞으로 털었다.
허우적대는 모르달의 몸이 바다를 가르며 질주했다.
“부르르륵! 부르르륵!”
“어, 어! 모루달! 나라!”
아바는 모르달의 아련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이 일었다.
도현은 씩 웃으며 토토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응, 미끼야. 몬스터에게 신성력은 아주 좋은 미끼거든.”
“우와―! 모르달 머싯써!”
토토가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모르달이 있던 자리에는 몇 개 남지 않은 물방울만 터져 사라졌다.
그저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민혁과 아바만이 모르달이 사라진 방향을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모르달은 머리에 꽂힌 줄을 뽑으려고 용을 썼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도, 뜯기지도 않았다.
‘주, 줄이 왜 안 잡힘까요옷?!’
씩씩대던 모르달은 앞쪽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기척에 화들짝 놀랐다.
한 놈 한 놈 크기만 해도 3m는 될 것 같은 물고기.
낯이 익은 생김새였다. 그러니까, 분명―
‘TV 낚시 예능에서 봤슴다요!’
정말 낚시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낚시를 제외하면 쉬지 않고 열심히 떠들어 대는 것뿐인데, 정신 차리면 프로그램은 끝난 뒤였다.
그 프로그램의 미션이었지만 안타깝게 실패했던 ‘돔’이 떼를 지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허억!’
모르달은 줄을 잡으려던 손을 앞으로 뻗으며 허우적거렸다.
퍼버버버벅!
물고기들은 몸집에 비해 너무 작은 모르달을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혀 왔다.
‘으아악! 따, 따갑슴다욧!’
지느러미의 가시가 스치고, 찌르고 갈 때마다 고통받는 건 모르달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모르달과 부딪힌 물고기들이 튕겨 나가며 배를 뒤집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르달은 짧은 앞발로 몸 이곳저곳을 문지르며 낑낑댔다.
‘여긴 어딤까요?’
물고기 떼로 겨우 멈춘 몸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쩍쩍 갈라진 지면으로 갑작스럽게 깊어지는 바다와 바닷속 절벽, 그 위를 장식한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해초류가 물 깊숙이 내리쬐는 햇살에 영롱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살랑살랑 바닷물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해초의 모습은 마치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하는 듯했다.
모르달은 방금 물고기 떼도 잊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꼬리를 움직였다.
금세 수영에 익숙해지자 물고기 못지않은 속도도 낼 수 있었다.
몸에 스치는 말미잘들이 움츠러들었다. 말랑말랑한 감촉에 헤벌쭉 웃은 모르달은 신이 나 이곳저곳에 손대며 놀다 반짝이는 푸른빛에 눈이 갔다.
언젠가 냉장고에서 봤던 멜론이라는 열매만큼 큰 돌이 시리도록 맑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오오, 너무 예쁨다요.’
그 신비로운 빛에 취한 모르달이 다가갔다. 좀 전에 봤던 촉수가 늘어진 말미잘과 달리 푹신한 바닥 위에 올려진 모습은, 고급 융 위에 전시해 둔 세기의 보석 같았다.
‘아아, 역시 도련님은 이걸 찾으셔서 소인을 보낸 검니다요!’
입까지 벌려 가며 웃던 모르달이 냉큼 앞발로 푸른 돌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조용하던 바닷속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빠르고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텁!
의미 모를 소리와 함께 세상이 깜깜해졌다.
‘……?!’
눈 뜨고 당한 모르달은 몰랐지만, 모르달을 먹이처럼 삼켜 버린 것은 5m를 훌쩍 넘기는 대왕조개였다.
도현은 낚싯대가 잘게 떨리는 걸 느끼자마자 이젠 개구리헤엄을 치며 노는 민혁에게 말했다.
“수면 위로 올라가서 생선 좀 날라.”
“생선?”
“어.”
“어디로?”
“빙판에.”
“오케이!”
드디어 할 일이 생겨서일까, 열의에 가득 찬 민혁이 발을 굴렸다.
콰드득!
민혁의 발아래, 바닷속 장관을 거대한 발로 짓이긴 듯 생물이 터져 나가며 부서지고 땅이 뒤집혔다.
대신 그 반동으로 민혁은 총알처럼 바다를 뚫을 기세로 솟구쳤다.
도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힘 조절부터 먼저 가르쳐야 했나.”
헌터 등록하던 그날, 삼촌의 대련으로 정리됐다 싶었더니.
워프에 온 김에 전부 처리하자고 생각한 도현은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는 아바에게 말했다.
“뭐 해?”
“네, 네?”
“같이 가. 주워 와야지.”
본국에서 받아 보지 못한 대우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들러리. 그녀는 들러리였으니까.
아바까지 수면 위로 올라가자 도현은 팽팽하게 당겨진 낚싯줄을 살짝 당겼다.
생각보다 저항이 심했다.
“뭐가 걸린 거지?”
낚시란 걸 시작하고 적극적인 토토가 먼저 물었다.
“압빠! 줄! 땡땡해!”
“그러게, 인어 좀 물어 오라고 보냈더니. 한눈팔다가 어디 먹혔나?”
도현의 예상은 적중했다. 모르달은 조개에 갇혀 낑낑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낚싯대를 당겨 보던 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귀찮아서 보냈더니 더 귀찮은 일을 만들어 낸 듯했다.
‘일단은 이놈이 움직여야 낚시를 하지.’
도현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다 낚싯대를 휙 당겼다. 팽팽한 줄이 끊어질 듯 더 팽팽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끊긴 고무줄처럼 축 늘어졌다.
그리고.
구구구구궁!
바다가 진동하며 거대한 덩어리가 줄에 딸려 왔다.
“조개……?”
가끔 엄마가 해 주었던 조개 무침의 주인공, 꼬막이었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엄청나게 거대하다는 걸까.
부그르르르륵!
조개가 끌려올 때마다 살짝 열리는 껍질 사이로 공기 방울이 밖으로 삐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