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68화 (68/200)

# 68

68. 바다의 맛 (1)

두 사람이 악수한 손을 놓자마자 토토와 모르달을 달고 도현이 나타났다.

“가자.”

말만 툭 던지고 어색한 둘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도현은 워프 관리실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헌터님들!”

목소리의 주인공은 양복을 입은 50대 아저씨였다.

워프 관리 직원의 유니폼이 아닌 모습에 도현은 주변을 훑었다.

그제야 사무실 안쪽의 문이 벌컥 열리고 다급하게 한 사람이 나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 헌터님.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게… 박 사장님?”

박 사장은 자신을 부르는 조 소장을 무시하고 도현에게 말했다.

“인어 워프 청소하러 오셨지요? 2주기라 걱정이 많았는데, 우 헌터님이 오셨으니 걱정은 덜었습니다. 핫핫핫.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굽혀 가며 인사하는 모습은 거래처를 뚫으려는 영업 사원을 보는 듯했다.

도현 옆에 잠자코 있던 모르달이 뚱한 얼굴로 팔짱을 끼며 조 소장에게 따졌다.

“일반인 출입 금지 아님까요?”

말하는 거대 흰족제비. 모두가 놀랄 만도 했지만, 도현 다음으로 유명한 모르달이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박 사장님이 이 주변의 땅 주인이셔서…….”

땅의 주인.

워프가 나타난 땅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경우 워프 관리실까진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박혁은 이 땅을 사고 새 건물을 올리려다 워프가 나타나면서 손만 빨게 된 사람이었다.

국가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 주었는데, 해당 워프에서 나오는 수익의 1%를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였다.

그 덕에 많은 돈을 꾸준히 받아먹던 박 사장은 2주기에 들어선 워프 때문에 며칠째 잠도 못 자고 이곳에서 헌팅하러 올 헌터만 기다리고 있었다.

2주기에 들어선 워프는 파괴를 우선으로 한다는 국가의 공표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제일 강한 헌터는 차도식밖에 없어서였지만, 도현이 공식적으로 데뷔하자 국가는 은근슬쩍 워프 청소를 요구하는 실정이었다.

도현은 박 사장을 지나 인벤토리에서 꺼낸 헌터증을 조 소장에게 건넸다. 이어 민혁과 아바도 헌터증을 건넸다.

헌터증을 받아 든 조 소장은 도현의 헌터증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생소한 투명색의 헌터증. 거기엔 1급이라 쓰여 있었다.

가끔 TV에서 미국 헌터 노아 이선을 다룰 때나 들어 봤던 헌터증을 실물로 보는 건 국내에서 그가 최초일 것이다.

빠르게 정신을 수습한 조 소장은 헌터증을 스캔하고 돌려주었다.

“확인되셨습니다. 우 헌터님, 김 헌터님, 아바 헌터님. 헌팅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이후에도 소식이 없으시면 지원 팀이 파견됩니다.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조 소장은 박 사장을 의식해 빠르게 도현을 내보내려 했다. 그런 조 소장의 눈치만큼 박 사장도 눈치가 빨랐다.

“우 헌터님! 혹시나 해서 준비했습니다. 받으시지요.”

박 사장은 도현이 문을 여는 틈을 타 작은 종이 가방을 세 헌터에게 건넸다.

도현의 손으로 가려는 종이 가방을 잽싸게 낚아챈 모르달이 안을 확인하고 물었다.

“검은 상자? 이건 뭠니까요?”

“인어 워프는 70%가 물이지요. 육지가 잘 없어서 베이스캠프를 지정하는 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물 위에 임시 거처를 만들어 주는 아이템입니다. 이런 워프는 처음이시니 필요하실 것 같아 준비해 봤습니다.”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도현에게 설명하자 입술을 삐죽거린 모르달이 종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뇌물임까요?”

“아이고, 아닙니다, 모르달 님! 어디까지나 헌터님들께 감사해서 소소하게 준비한 겁니다. 좋은 뜻으로 받아 주십시오.”

사정사정하는 박 사장 뒤로 눈을 반짝이며 아이템을 챙기려던 민혁과 아바가 모르달의 눈짓에 고개를 돌렸다.

모르달이 인상 쓰며 뭐라 하려는데 도현이 잘랐다.

“넣어 둬.”

“우 헌터님! 역시 뛰어난 명성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가지셨군요! 하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엎어져 절이라도 할 기세인 박 사장에게 고개만 끄덕인 도현은 그대로 워프 관리실을 나왔다.

워프 입구에 도착하자 입이 댓 발이나 나와 구시렁거리던 모르달이 빽 소리쳤다.

“도련님! 이런 뇌물 왜 받슴까요! 마님도 받지 말랬단 말임다요!”

씩씩대는 모르달의 모습은 당장에라도 종이 가방을 찢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기세에 민혁과 아바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겼다.

도현은 그저 모르달을 빤히 쳐다봤다.

“모르달, 화산에 다시 처박아 줄까? 용암 찜질이 별로면 얼음찜질은 어때?”

극한 지방의 빙산에 처박을 의향도 있는 도현의 진심을 느낀 모르달은 고개를 홱홱 저었다.

“바, 바다 구경하러 먼저 가겠슴다욧!”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쌩하니 워프에 들어가 버리는 모르달의 뒷모습에 도현의 어깨에 앉은 토토가 그의 볼을 탁탁 쳤다.

“압빠! 모루달 괴롭히지 마!”

“어?”

생각지도 않은 토토의 말에 도현이 당황했다.

토토는 엄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괴롭히는 거 나뿐 짓! 할무니가 그랫써! 압빠, 나뿐 짓! 맴매!”

토토가 좀 더 강하게 볼을 탁탁 쳤다. 아픈 건 아니었지만 도현은 기분 나빴다.

헤츨링 육아 때도 간섭받은 적 없던 도현이었으니 오죽하겠나.

“육아로 인한 고부 갈등이라더니…….”

토토의 육아 문제로 포스팅을 참고할 때면 열에 여덟, 언급되는 게 육아로 인한 고부 갈등이었다.

도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아직도 뺨을 치고 ‘아랏찌?!’라는 토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리고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가자.”

[3등급 워프, 인어의 메아리에 입장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워프에 뛰어든 민혁은 기계음에 가까운 여성 음성이 머리에 울리자마자 멀미하듯 속이 울렁거렸다.

워프에 입장할 때나, 퇴장할 때 몇몇이 겪는다는 마나 울렁증이었다.

그 느낌을 며칠 전 겪었던 민혁은 발을 버둥거렸다. 빨리 땅을 밟고 마나를 누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발에 닿는 건 땅 대신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허공뿐.

갑자기 몸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 추락?!’

눈을 번쩍 뜬 민혁은 주변을 보고 팔과 다리를 허우적댔다.

“으아아아! 왜, 왜, 허, 허공……!”

떨어지는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넋이 나갔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였다. 강렬한 햇볕에 반짝여 부서지는 모습은 여자들이 왜 보석에 매료되는지 이해가 갈 만큼 아름다웠다.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바다는 물도 얼마나 투명한지, 바닷속에 노니는 물고기들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어쨌든, 물이라 죽진 않겠구나.’

바다라는 사실에 안도하던 민혁은

떨어지는 아바를 확인하고 도현을 찾았다.

그 순간 아바 아래, 바다에서 거대한 푸른 고래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며 튀어 오르자 가슴이 철렁했다.

어림잡아도 63빌딩만 했기 때문이다.

“아, 아, 아바 씨이이이!”

손이라도 뻗어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수십 미터. 다급한 마음에 소릴 질렀다.

“민혁아, 뭐 하냐?”

민혁은 옆에서 들리는 도현의 목소리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거기에는 심드렁한 얼굴로 같이 떨어지는 도현과 어깨에 앉은 토토, 시원한 바람을 음미하는 모르달도 보였다.

‘어? 먼저 들어갔었는데?’

멍청한 얼굴로 도현을 보고 있자, 어느새 옆으로 날아온 아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도현에게 따졌다.

“세상에, 브리핑도 안 하고 들어오는 헌터가 어딨어요―!”

“아바 씨! 괜찮아요?”

반가운 마음과 안도감이 교차하던 민혁은 브리핑이란 단어에 도현을 쳐다봤다. 도현은 이제야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네. 지금 할까?”

“미쳤어요? 이대로 있다간 곧 바다에 빠진다고요!”

민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아래를 봤다. 아바의 말대로 시야에는 바닷속 생물들이 자신에게 달려들 듯 빠르게 확대됐다.

그 말인즉슨, 바다가 코앞이란 소리였다.

“빠, 빠진다아앗!”

등이 축축하다 못해 소름이 돋아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을 때, 세 사람과 두 펫의 몸이 허공에 뚝 멈췄다.

“꺄악!”

아바가 놀라는 사이, 도현의 발이 닿은 수면이 하얗게 얼기 시작했다.

쫘좌좌좌좍!

빙판 하나를 뚝 떼어다 놓은 듯 거대한 얼음이 나타났다.

두께 60cm의 새하얀 빙판.

축구를 해도 될 만한 크기에 민혁은 놀랄 힘도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냉기 대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절로 탄식이 흘렀다.

그사이 얼음 위로 폴짝 뛰어내린 모르달이 신이 나서 외쳤다.

“오오오! 여기 구멍 뚫고 낚시하면 얼음낚시임까요?!”

“하고 싶으면 해. 미끼는 너다.”

모르달이 다시 구시렁거리는데 도현의 어깨에 앉아 있던 토토가 흥미를 보였다.

“압빠, 압빠, 어름낫시가 모야?”

“궁금해? 토토, 아빠랑 낚시할까?”

“응! 응! 재밋겟따, 히힛!”

두 몬스터를 대하는 도현의 모습에 민혁과 아바는 모르달을 동정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나, 워프에서 나갈 때쯤에는 도현과 같은 마음이 될 줄은.

“앉지.”

도현이 인벤토리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꺼냈다.

이제 놀라기도 지친 아바는 피곤한 기색으로 군말 없이 앉았다.

도현이 늦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인어의 메아리 워프. 2주기에 들어섰고 최종으로 3등급 워프야. 보다시피 바다가 70%, 육지가 30%. 인어가 대표 몬스터다. 여태 헌팅 내용은 진주 발굴, 해산물 채집, 기타로 인어를 잡긴 하는데, 유일하게 쓸모가 없대. 뭐, 별것 없으니 대충 넉넉하게 3일 휴가 즐기고, 워프핵 부수고 나간다. 이상.”

참지 못한 아바가 벌떡 일어났다.

“장난해요? 몬스터가 뭔지, 어떻게 공략할 건지, 목적이 뭔지 다 설명해 줘야죠! 우리가 무슨 들러리예요?!”

바다가 쩌렁쩌렁 울릴 목소리였지만, 도현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뭐어……?”

“들러리라고.”

“야! 우도현!”

씩씩대는 아바 뒤로 ‘아바 씨, 우리 쩌리예요, 쩌리. 쩌리 인생~’이라 흥얼거리던 민혁이 도현에게 물었다.

“배고프다. 우리 잠은 어디서 자?”

“밥 안 먹고 왔어? 오후 헌팅이었잖아.”

“긴장해서 넘어가야 말이지.”

“워프 와서 긴장이 풀리는 놈은 처음 본다.”

도현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모형 주택을 빙판 위에 툭 던지고 손을 튕겼다.

부르르 떨던 모형 주택이 갑자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쿠구궁!

아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주택이 빙판 절반을 차지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빙판이 다시 두 배로 넓어지며 마른 장작이 작게 쌓이더니 불이 지펴졌다. 마지막으로 빙하 위로 반구의 투명막이 만들어지며 햇볕에 반짝였다 사라졌다.

그러자 서늘하게 불던 바람이 봄바람처럼 느껴졌다.

“와, 쩐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워프에서 평생 살라고 해도 살겠는데?”

우어어 소리를 지르던 민혁은 눈을 번쩍이며 주택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토토와 모르달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민혁을 따라 집에 들어갔다.

셋을 흐뭇하게 보던 도현 옆으로 아바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미친… 이게 말이 되는…….”

이젠 이 사람이 무얼 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인간을 스킬로 세뇌하거나 미인계로 귀화시키려고 했다니.

100%에 가까운 답과 모든 경우에 맞춰 해결 방안을 만든다는 HCIA (Hunt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헌터 중앙정보국)도 이번만큼은 헛일한 게 틀림없었다.

‘그날 봤을 때 직감을 믿었어야 하는 건데…….’

감을 무시한 결과였다.

이젠 될 대로 되라, 포기에 이른 아바에게 도현이 직구를 던졌다.

“날 회유하러 온 거 아니었어?”

“……!”

하얗게 질린 아바 얼굴이 삐거덕대는 태엽 시계처럼 돌아갔다.

“쯧, 초짜를 보낸 건지, 초짜라서 보낸 건지.”

도현은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아바는 다리에 힘이 풀려 빙판에 주저앉아 버렸다.

온몸에 돋는 소름과 한기에 그녀는 양팔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어떻게 알았지……?’

블랙홀이라는 세계 최대의 몬스터 마켓의 주인인 부모 덕일까?

아니면 협회에서?

아바는 고개를 저었다.

협회 뷔페에서 봤을 때 말하지 않았나. 스토커 여자라고.

이미 처음 본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거다.

‘계획이 어그러진 게 다행일지도…….’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소리 소문 없이 제거되지 않았을까……?

모든 게 헝클어져 천만다행이었다.

아직도 소름이 가시지 않은 몸을 부르르 떨던 그녀는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헌팅헌터 잡지에서 차도식이 했던 인터뷰.

우도현교!

그저 우상을 더 높이기 위해 표현한 건 줄 알았는데.

“정말… 신이란 말이야……?”

혼잣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망상에 가까운 추측이었지만 그녀의 직감은 그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멍하니 집을 바라보는데, 마침 열린 현관문으로 민혁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바 씨, 어서 들어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요오!”

해맑게 웃는 얼굴은 마치 캠핑하러 온 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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