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67.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3)
도현의 워프 헌팅 준비는 순조로웠다.
아니, 순조로운 게 아니라 딱히 준비할 게 없었달까. 외출하기 전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게 준비라면 준비였다.
오후 1시. 헌팅할 워프로 향하기 위해 도현과 토토, 모르달은 이틀 만에 다시 주차장에 왔다.
마지막으로 차에 탄 모르달이 목적지를 설정한 후 도현 반대편 의자에 철퍼덕 드러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도련님. 소인 죽겠슴다요. 마님이 얼마나 피를 말리는지, 밥도 안 주고, 간식도 안 주고,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슴다욧!”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불쌍한 척 도현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도현은 토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그 모습에 힘입은 모르달이 더 귀여운 척, 불쌍한 척해 대며 도현을 빤히 바라봤다.
도현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자상하게 말했다.
“이번엔 대기권 밖으로 던져 줄까? 우주 여행 다녀올래?”
극도로 시무룩해진 모르달이 축 처진 모습으로 도현 반대편 의자에 털썩 앉자, 토토가 깡충 뛰어 모르달을 토닥였다.
“모르달, 힘내! 핫 쑤 잇써!”
도현은 토토의 발음을 듣고 흐뭇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받침 발음이 아직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틀 만에 이 정도면 꽤 잘하는 거 아닐까?
일상에서 단어를 찾아 배우니 그때마다 실력이 훅훅 늘어 가르치는 재미를 느끼던 도현이었다.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눈으로 보자 토토는 다시 폴짝 뛰어 도현의 품으로 돌아왔다.
습관이 된 쓰다듬이 다시 이어지자 역시 또 부러운 눈을 떼지 못하는 모르달을 향해 말했다.
“브리핑.”
모르달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공간에서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오늘 헌팅할 워프는 인어의 메아리라는 워프임다요. 2주기에 들어선 3등급에 음… 워프 필드의 70%가 바다임다요.”
워프 이름대로 바다에는 인어들이 살고 그들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단다.
“인간 상반신에 물고기 꼬리가 하반신이고 크기는 1.8m에서 최대 3m, 수컷이 큼미다요. 그리고 못생겼담다요.”
나름 매니저를 흉내 내는 모르달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도현은 워프가 바다란 소리에 표정이 미묘해졌다.
해산물은 좋아하지만 물에 젖는 건 싫어서다.
‘그래도 해산물은 잔뜩 먹을 수 있으니까.’
“청소야, 파괴야?”
“이 워프에서 제일 비싼 게 초대형 진주람다요. 하나만 해도 국가 예산 한 달 치쯤 된다는데, 그래서 국가에서는 청소 협조를 요청했슴다요.”
“강혁 삼촌은?”
“알아서 하라 하셨슴다요.”
그저께 민혁이를 데려가 실컷 삼자대면을 해서 그런가, 예상과 달리 좋은 반응이었다.
‘뭐… 민혁이가 3급이라서 그러나?’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1급 헌터증을 건네던 강혁 삼촌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자신을 와락 껴안던 기억까지 떠오르자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졌다.
“다른 건?”
“어차피 다 부실 거 아님까요? 뭐, 이번 워프는 도심 속에 있는 워프이긴 함니다요.”
콧방귀를 팽 뀌며 대답하는 모르달이 오늘따라 여러모로 참 거슬렸다.
‘이번엔 물에 담가 버릴까?’
저번엔 콸콸 넘치는 용암이었으니 이번엔 소용돌이에 넣어 탈탈 터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물속에 고드름도 있다고 들었는데, 차라리 얼려 버려?’
뭐든 나쁘지 않을 듯했다.
도현은 팔짱을 끼고 의자에 푹 기댄 채 물었다.
“물이 많으니까 물고기도 많겠지?”
“당연한 거 아님까요? 혹시 매운탕 파티 할 검니까요?! 매운탕 먹어 보고 싶었슴다욧!”
도현은 혼자 김칫국 들이켜는 모르달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봤다.
“그래, 배 터지게 먹어 보자.”
“에헤헤헤, 소인에겐 도련님밖에 엄씀니다요! 도련니이이임!”
펄쩍 뛰어 자신에게 안기려던 모르달의 얼굴을 냉큼 잡아든 도현은 천장의 선루프를 열고 모르달의 머리를 끼워 버렸다.
***
민혁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워프 관리실을 넘어 거대한 워프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노란색. 황금색 같기도 한 달 조각이 환한 빛을 내며 위용을 뽐냈다.
크기만 해도 30m. 그나마 작은 크기라는데, 뭐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알 수가 있어야지.
민혁은 워프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긴장으로 축축해진 손을 쥐었다 폈다.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몸을 가득 채우는 마나가 천천히 퍼지며 워프의 위압감을 몰아냈다.
무늬만 각성자였을 때는 느껴 본 적 없던 마나. 이것도 이제 이틀째였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 일부였던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게 마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 같은 충만함에 마음이 설레, 몸이 살짝 떨렸다.
불과 이틀 만에 살던 세상이 달라지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 민혁은 가끔 볼을 꼬집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괜찮겠지……?”
엄마에게 잠시 지방으로 4일 정도 일을 다녀온다고 했다.
자식 걱정 먼저 하는 엄마였지만, 헌터가 됐다는 걸 밝히기에는 마음의 준비도, 커밍아웃할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쫓기듯 워프에 온 민혁은 마음이 뒤숭숭했다.
‘현이가 몸만 오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TV나 인터넷 기사로 접했던 헌터들은 대부분이 헌터 웨어와 무기에, 자신의 몸집만 한 가방까지 둘러멘 모습이 정설이었으니까.
헌팅을 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삼 일, 늦는다면 일주일까지도 워프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집만 한 가방에는 1인용 텐트나 캠핑용 조리 도구, 식량 등 생존에 관한 물품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인벤토리라는 능력을 가진 헌터는 몸만 오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아공간 주머니가 뭐 그렇게 비싸냐?’
한 평 크기의 아공간 주머니.
그 하나가 50억부터 시작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억 소리를 지르며 마음을 접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에효.’
왠지 서글펐다.
헌터가 고소득 직업인 만큼, 헌팅에 필요한 비용도 상상 그 이상이어서다.
“하… 근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지금이라도 뭔가 챙겨 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던 민혁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을 움찔거렸다.
“이봐요.”
여자 목소리였다.
민혁은 도현을 제외하고 올 사람은 뷔페에서 만났던 그 외국인 여자뿐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고… 곰탕녀?”
딱히 이름을 들은 적이 없어 불쑥 기억된 단어를 말하자 그녀는 빨갛게 물든 얼굴로 발끈했다.
“곰탕녀!? 그쪽도 우 헌터도 너무 무례한 거 아니에요? 악! 또 발끈했어! 왜 이 사람들만 만나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거야!”
그녀는 커리어우먼 같은 지적이면서도 차가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머리를 쥐어뜯을 기세로 발을 동동 굴렀다.
민혁은 아바의 헌터 웨어에 눈이 갔다. 빈틈없이 쫙 달라붙은 모습이 누구든 쉽게 소화 못 할 핏이라는 건 굴곡진 몸매만 봐도 알 만했다.
‘뷔페에서 봤던 깔끔한 오피스룩도 참 좋았지.’
외국인이라서 그럴까, TV 속 연예인보다 그녀가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민혁은 괜히 마음이 설렜다.
그러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뭘 봐요?”
레이저를 뿜을 수 있었다면 자신은 이미 통구이가 되지 않았을까?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미… 미안합니다.”
그녀는 한참을 노려보다 한숨을 푹 내쉬더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바예요. 미국 교류 헌터고요.”
‘교류… 헌터?’
헌터에 관한 정보는 전혀 모르는 민혁은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인사는 제대로 하자.’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호칭으로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말이다.
“예, 아바 씨. 전 김민혁이라 합니다. 저번에 뷔페에서도 뵀지만, 한국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민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악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의 숨이 거칠어지더니 사납게 손을 잡곤 부술 듯 힘을 줬다.
민혁은 손을 빼려다 멈췄다. 한발 늦었다.
‘이대로 빼면 아바 씨가 넘어지겠지?’
우악스럽게 힘을 주고 있지만 자신이 느끼기에는 꼭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빈정대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예, 한국어 잘하죠. 덕분에 협회에서 아주― 인기인이 됐어요. 정말 감. 사. 해. 요.”
아바는 뷔페 소동 이후 몸살을 겪어야 했다.
딱히 정보가 오가는 곳은 아니었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들의 사소한 대화까지 엿들었다는 말이 나오며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커졌다.
협회는 이때다 싶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미국에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말만 권고지 사실은 협박이었다.
더럽고 치사해서 짐을 싸던 그때 생각지도 않은 통보가 내려왔다.
우도현 헌터의 헌팅 멤버로 자신이 발탁됐다는 거다.
사건은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결됐지만, 아바는 그 일로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임무 실패의 이유도, 협회가 잠잠해진 이유도 다 도현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오기로 귀국을 선택했다.
하지만 조국도 그녀를 받아 주지 않았다.
살아서 조국의 땅을 밟으려면 도현을 미국 헌터로 귀화시켜야만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깨달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아바는 눈앞의 사내를 봤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곤란해하는 김민혁.
우도현 헌터의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우 중 하나였다.
음식점에서 홀로 남은 이 사내를 인질로 삼기 위해 뒤를 밟았다.
가족과 환경을 알고 황당했던 기억밖에 없었다.
폐건물이 아닌가 싶은 낡은 빌라에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라니.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게 민혁의 삶은 충격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실행에 옮기려던 순간, 헌팅을 끝내고 돌아온 도현이 TV에 뜨면서 그녀는 도현을 이유로 납치를 포기했다.
무엇 하나 계획대로 굴러가는 게 없어 짜증이 샘솟은 아바는 맞잡은 손에 더 많은 힘을 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히 괴로워할 민혁의 얼굴을 감상하려 했지만, 그는 방금 짓던 표정 그대로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굳어 버렸다.
‘내가 힘을 안 줬어?’
아니다.
맞잡은 손은 노골적인 힘에 하얗게 핏기까지 사라졌다.
민혁을 향하는 시선에 놀라움이 담겼다.
‘어리바리한 숙맥이 나보다 강하다고?’
대체 이런 헌터들이 어떻게 튀어나오는 거지?
자신은 4급 레드이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3급 그린까지는 스킬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국에서 자신이 파견된 이유였다. 하지만 눈앞의 이 사내를 보고서 자신의 능력에 회의가 들었다.
‘3급 블루……?’
대체 이 나라에는 숨겨진 3급 헌터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한국 헌터들이 워프 파괴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는 건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모습을 비꼰, ‘한국 헌터는 게으르다.’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래서 더 특이한 나라였다.
게으른 만큼 강한 헌터가 없어야 하는 게 맞았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국 헌터는 강했다. 그녀는 자신의 특성으로 자신보다 강한 헌터를 알아볼 수 있었다. 두 단계인 3급 그린까지는 말이다.
4급 헌터들 중 햇병아리로 불린다는 헌터들이 블루였고, 조금 봐줄 만하다고 하는 헌터들은 레드. 팀장급에는 블랙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드물게 알아볼 수 없는 헌터들도 있었다.
정말 미친 나라였다.
그제야 그녀는 이 나라가 왜 이런 건지 이해됐다.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한국만 달랐다. 워프를 무척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도 그랬고, 헌터와 헌팅이 그저 하나의 직업처럼 바로 녹아드는 모습도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헌터가 되길 꺼려 하는 나라.
안정적인 게 최고라는, 그 인식.
아바는 머리를 비우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움직여 봤자 계획대로 된 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우도현을 찾고 조사하기 위해 2주, 3주를 웅크렸지만 실패했고, 오히려 바람 쐬러 나갔다가 해결되지 않았나.
그가 그렇게 빨리 자신을 드러낼 거라곤 예상 못 했다.
계획을 수정해 그의 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테이머라는 특수 직업 때문에 헌팅 멤버는 애초 구하지도 않았다.
될 대로 되란 식으로 포기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뷔페에 갔더니 돌아온 건 손에서 놓은 그의 팀원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헌터 우도현.
그의 성격을 꼭 빼닮은 나라 한국.
아바는 바짝 조였던 마음과 함께 손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어색하게 손을 빼려는 민혁을 보았다.
‘어쩌면 이 사람이 키(Key)일지도.’
우도현이 아끼는 친우.
한국에는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있었다.
‘꼭 해내고 말 거야.’
3급 블루. 이 정도면 돌아갈 비행기 티켓 정도는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