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66.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2)
민혁은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며 파리한 안색으로 입을 막았다.
“욱, 멀미할 것 같아…….”
“힘 때문에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래. 끓어오르는 힘을 지그시 눌러 봐.”
도현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던 민혁은 넓은 복도를 지나 뷔페에 들어서자마자 넋이 나갔다.
엄청난 규모의 뷔페. 그런 뷔페의 크기만큼 직원들도 엄청났다. 그걸 시작으로 수천 개는 될 것 같은 좌석과 음식들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텅텅 빈 것 같다니…….’
여길 보나 저길 보나 인테리어가 웬만한 호텔 뺨칠 정도로 고급스러운 건 물론이고 사소한 안내 표지판까지 마나석으로 구동했다.
특히 사람이라 착각할 정도의 최고급 화질의 3D 여성 가이드가 정말 사람처럼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안내하고 있었다.
‘바, 바닥 카펫도 양털이야……!’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푹신함이라니!
민혁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어서 오십시오, 우도현 헌터님.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마침 다가온 직원에게 도현이 헌터증을 보여 주자 존경과 경외를 담은 얼굴로 인사를 하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 직원 뒤로 진정한 뷔페가 펼쳐졌다.
돈 많다, 많다 하더니.
친구 덕에 이런 비싼 곳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민혁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러다 시선이 꽂힌 곳은 테마로 구분된 요리 코너였다.
형형색색의 요리는 다양한 접시에 담겨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모양도 예술이었지만 접시 하나가 세숫대야 같은 양에 입이 딱 벌어졌다.
‘여기 대한민국 맞아……?’
충격과 공포였다.
경악했지만 음식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흐르는 군침은 어쩔 수 없었다.
꿀꺽……!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리며 침을 삼킨 민혁은 무척 감격한 얼굴로 도현의 어깨를 툭 쳤다.
“새끼, 무슨 서프라이즈냐? 이런 데 데려와 주고… 진짜 고맙다.”
도현은 별 감흥 없이 말했다.
“여기 무료야.”
“어……?”
“헌터랑 헌터 일행 2인까진가? 뭐 등급별로 인원수 제한이 있긴 하더라.”
민혁은 턱이 빠질 듯 입을 쩍 벌렸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헌터는 뷔페 무료!
도현은 몇 번 왔던 경험을 되살려 사람이 한적한 곳의 12인 테이블에 앉았다.
아무래도 많은 음식을 놓고 편히 먹으려면 테이블이 넓어야 했기 때문인데, 일반적인 음식점이었다면 민폐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헌터에게 제공되는 뷔페. 대식가인 헌터들 대부분이 혼자 넓은 테이블에 앉는 건 흔한 일이었다.
“여기서 먹을 거니까 위치 까먹지 말고, 이제 음식 가지러 가자.”
“어. 근데 현아, 사람 많은데 괜찮냐?”
요리 학원에서 있었던 해프닝이 떠오른 민혁은 걱정이 앞섰다. 거기야 각성자라 해도 헌터들에 비하면 일반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도현은 심드렁했다.
“어.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배 터지게 먹기만 하면 돼.”
그러면서 익숙하게 접시를 꺼내 민혁에게 건넸다.
“뭐… 그렇다면… 헉, 이거 쟁반 아냐?”
“진짜 촌놈 아니랄까 봐. 좀 이따 보자.”
둘은 각자 먹을 음식을 가지고 자리 잡은 테이블에서 만나기로 했다.
후다닥 바쁘게 달려가는 민혁을 보며 도현은 킥 하고 웃었다.
뷔페에 막 들어왔을 때만 해도 강해진 힘에 적응하지 못하더니 뷔페에 들어서고 완전히 정신 차릴 줄이야.
사실 힘이 한 단계만 상승해도 적응하는 데 빠르면 3일에서 4일이다.
두 단계면 2.5배인 대략 8일에서 10일.
그런데 저놈은 4단계나 뛰어넘고서 멀미가 다였다.
엄청난 적응력 정도가 아니다.
뭐든 받아들이는 몸.
‘마나가 없다고 착각할 수밖에.’
민혁은 애초 몸에 마나 그릇을 만드는 헌터들과 급이 달랐다. 몸 전체가 그릇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 없었고, 효율도 좋을 수밖에 없다.
도현은 익숙하게 접시를 들고 평소 먹던 요리가 아닌 이색 요리 코너를 찾았다.
BIG FOOD라 적힌 곳에 멈춘 그는 흥미롭게 음식들을 살폈다.
일단 뷔페에서 가장 큰 요리였다. 그나마 작아 보이는 음식이 쟁반 같은 접시에 꾸역꾸역 쌓아야 담을 수 있었으니까.
푸드파이터라 해도 이 뷔페에서는 잘 먹는 일반인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나름 재밌는 생각을 하며 음식 이름 아래 재료 설명을 보고 멈췄다.
80% 이상이 워프에서 나온 식자재들이었다.
“오…….”
헌터 뷔페라서 그런가, 몬스터 요리를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도현은 고기가 돌돌 말린 카우엑스 샤브샤브 고기말이였다.
얇은 카우엑스 고기에 온갖 채소를 담아 둘둘 만 것인데, 안에 들어가는 속 재료는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었다.
대개 아삭거리는 식감의 채소류가 많았고, 다음으로 과일과 면, 치즈로 이어졌다.
빅사이즈답게 재료를 몇 개 고르지 않았음에도 고기말이 하나가 옛 대왕 김밥 한 줄 크기였다.
‘우선은 가볍게 10개만.’
워밍업으로 다양한 재료를 넣어 주문하고 옆으로 움직였다.
그곳은 해산물 몬스터로 만든 통짜 요리였다.
대게, 킹크랩, 랍스터를 시작으로 오징어, 문어, 새우, 조개 등의 해산물이 가득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크기는 역시 1m 이상. 그중에 갑각류의 집게발이 주먹만큼이나 컸으니 까먹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이건 접시에 담을 수 없겠는데?’
직원 앞으로 가서 보니 예상대로 주문하면 자리까지 배달해 준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다시 옆으로 이동하니 육류를 이용한 회 종류의 음식과 바비큐가 있었다. 고기와 함께 과일과 채소를 통짜로 주문 가능했고, 퓨전 요리라 해서 빅푸드의 재료로 탕이나 면 요리도 커스텀으로 주문 가능했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이 나 주문했다.
빅푸드의 요리사들이 주문서와 도현을 번갈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렇게 카우엑스 고기말이만 덩그러니 가지고 자리에 돌아온 도현은 앉자마자 두툼한 고기말이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와삭와삭! 쫀득쫀득!
먼저 씹히는 채소와 라이스페이퍼가 궁합이 좋았다. 사이사이로 씹히는지 녹아내리는지 모를 정도의 부드러운 고기 맛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요리사의 추천대로 주문하길 잘했다.
다시 한입 베어 먹자 채로 썰린 채소 사이로 과일이 씹혔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하고, 새콤하면서 끝은 살짝 아린 맛이 고기와 만나자 맛이 풍부해지며 엄청난 조화를 만들어 냈다.
일반적인 소고기였다면 속 재료에 묻혔을지도. 하지만 카우엑스의 고기라서 그런지 얇은 고기임에도 엄청난 육즙과 고소한 기름 맛에 황홀해졌다. 최고로 꼽자면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최근에서야 고기에 다시 흥미를 되찾은 도현의 손이 빨라질 정도였으니 말할 필요가 없었다.
도현은 음식을 계속 씹으며 이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일주일이나 공복으로 지낸 위장이 꿀렁대며 독촉을 날렸다.
꿀꺽.
삼키자마자 더 강해진 허기가 먹을 것을 더 종용했다.
그 맛에 취해 정신없이 먹다 마지막 고기말이를 들었을 때, 양손 가득 음식을 가져온 민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도현의 접시를 보며 비웃었다.
“야, 덩치에 안 맞게 그게 뭐냐?”
뿌듯한 듯 접시를 내려놓고는 으스댔다.
“먹고 싶으면 먹어. 이 형님이 친히 허락하지.”
“오냐.”
도현은 오랜만에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빅푸드 왔습니다.”
둘이서 키득대는데 직원 5명이 각기 1m가 넘는 큰 접시를 도현이 앉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텅텅 비었던 12인 테이블이 음식으로 쌓아 올린 산이 되어 산맥을 이루었다.
“맛있게 드세요!”
“예, 감사합니다.”
유유히 사라지는 직원 뒤로 민혁이 하얗게 질려 물었다.
“이게 다 들어가?”
“음. 적당히인데.”
“미친놈… 못 본 사이에 위장만 늘려서 왔나.”
“먹고 싶으면 말로 해라. 이 형님이 친히 허락해 주마.”
“필요 없다, 인마.”
민혁은 많은 음식과 도현을 번갈아 보며 ‘회사 이름이 왜 블랙홀인지 알겠다.’라고 중얼거리다 다시 감격한 눈으로 ‘이 모든 게 공짜.’라며 입에 음식을 넣기 시작했다.
도현은 그 모습을 안주 삼아 대게의 집게를 들었다.
집게만 해도 자신의 주먹 두 개보다 조금 더 컸다.
‘이 정도면 초대형 주먹밥 수준이지.’
얼마나 맛있을지 빨리 맛보고 싶었던 도현은 집게를 쥔 손에 살짝 힘을 줬다. 딱! 거리는 짧고 깔끔한 소리가 나며 껍질이 세로로 쪼개졌다.
하얀 속살이 껍질 속 육즙에 반짝이며 뭉툭한 하트 모양으로 그 자태를 뽐냈다.
감상도 잠시, 도현은 흐르는 육즙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다급하게 손을 놀려 홀라당 입에 넣었다.
탱글탱글한 대게 살에 볼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짭조름하면서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감칠맛에 혼이 쏙 빠질 것만 같았다.
꿀꺽.
넘기자마자 다시 입 안에 가득 고인 침을 꿀꺽 삼킨 도현은 눈을 번쩍였다.
두 번째 집게 다리를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입에 들어가기 전 순식간에 껍질이 벗겨지고 탱글탱글한 집게 살이 도현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우물우물우물.
씹음과 동시에 다른 음식들을 양손으로 쥐고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1m 크기의 모랄보어의 뒷다리도 순식간에 뼈만 남아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팔뚝 두께의 대왕문어 다리가 후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면발처럼 도현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채 20분도 되지 않아 초대형 접시 4개가 비어 버렸다.
민혁은 먹던 것도 잊고 도현의 먹방에 혀를 내둘렀다.
“누가 몬스터인지 모르겠네.”
픽 웃은 도현이 어른 머리통만 한 완자 하나를 민혁의 입에 쑤셔 넣으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쫄깃한 식감과 함께 짭조름한 버터 맛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완자를 씹던 민혁이 욕을 하며 감탄했다.
“하, 나 정말 여기 살 것 같다. 뷔페 때문에 헌터가 되고 싶을 정도야. 여기가 공짜로 운영하는 게 말이 돼?!”
민혁은 아직 모르지만, 워프에서 나온 모든 부산물에는 세금이 붙는다.
국가 10%, 협회 3%. 다시 부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워프 마켓인 블랙홀에 판매하면 대금 수수료가 최소 3%부터 시작했다.
즉, 16%라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떼는 셈이다.
그래도 양심적인 헌터 협회는 뗀 세금으로 헌터에 한해 월 15회 뷔페 무료 이용을 제공하지만, 국가는 그저 대중교통 무료와 국가가 관리하는 도로, 문화유산 관람 무료가 전부였다.
헌터라면 백에 백, 모두가 빈정대는 무료 부분을 민혁은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와, 엄마 좋아하시겠다. 엄마랑 놀러 가야지”
도현은 그런 민혁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부푼 꿈에 찬물을 끼얹긴 그랬지만, 확실히 말해 둬야 했다.
“너 놀러 갈 시간 없어. 모레 나랑 워프 들어가.”
“……어?”
민혁은 스테이크를 씹던 것도 잊고 입을 벌린 채 멍청한 소리를 냈다.
“먹고 등록하러 갈 거야. 그리고 모레 헌팅. 몇 번이나 뛰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소 4일은 비워 둬.”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혁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렸다가 질끈 감겼다.
“에이씨, 모르겠다! 먹고 죽자!”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씹기보다 밀어 넣기에 집중된 민혁의 식사를 키득거리며 보던 도현은 옆 8인 테이블에 혼자 앉은 여자를 보고 국어책 읽듯 말했다.
“어, 비 오던 날 스토킹하던 여자다.”
놀란 민혁의 눈이 디룩 굴러 옆을 향했다.
여자, 아니 아바는 헉! 하고 놀라다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발끈했다.
“스토킹이라뇨! 내가 가는 곳 따라온 게 누군데! 아니, 이게 아니라 이미 날 알고 있었어?!”
디룩 다시 구른 민혁의 눈이 도현에게 물었다.
“누구……?”
“우리 곰탕 먹을 때 소리 지른 외국 여자.”
“아!”
아바의 화가 민혁을 향해 튀었다.
“그쪽은 왜 그 포인트에서 알아듣는 건데!”
씩씩대던 아바는 고개를 홱 돌려 도현에게 따졌다.
“또 날 스토킹하러… 어? 음식을 먹고 있어……? 어, 언제 왔지? 언제 왔어요? 왜 몰랐지……?”
당혹, 놀람, 허둥지둥 혼잣말해 대는 아바는 주변이 적막해진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도현은 간단하게 답해 주었다.
“그건 알 필요 없고. 그런데 괜찮아?”
“뭐가요!”
“주위 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 아바는 멈칫, 조심스럽게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도현이 올 때만 해도 한적했던 자리들은 꽤 많은 헌터들로 붐볐다.
그랬기에 이 자리를 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멈추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거기에 목소리만 듣고 이쪽으로 고개를 쭉 빼 그녀를 구경하는 헌터들도 있었다.
아바는 토마토처럼 붉어진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Holly shit… 하, 젠장!”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빠르게 뷔페를 나가 버리는 그녀는 오늘 흑역사를 하나 갱신했다.
낄낄대는 도현을 보던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더니. 내 친구 놈 우도현 맞네.”
저런 놈이 우도현앓이의 주인공이라니.
“아.”
낄낄 웃다 뜬금없이 목소리를 낸 도현을 보며 눈썹을 까딱여 묻자 그래도 착실하게 대답은 해 줬다.
“마지막 팀원을 찾아서.”
그러면서 이젠 음흉하게 웃는다.
‘팬들이 이 모습을 봐야 하는데.’
이런 모습을 봤다면 없는 정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민혁은 남은 랍스터를 우적우적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