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65.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1)
김민아는 한적한 데스크에 앉아 무료함에 투정을 부렸다.
“아아, 지겹다.”
각성자보다 더 희귀한 일반인. 거기에 대학생인 그녀는 방학을 맞이해 요리 학원 사무 보조로 일하는 중이었다.
시급도 세고 칼퇴가 보장되는 몇 없는 꿀직장이긴 했지만, 그녀의 무료함까지 달래 줄 수는 없었다.
“실장님이라도 계셨으면 수다라도 떨 텐데.”
하필 여름 휴가로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니 그녀로선 따분하다 못해 좀이 쑤셔 미칠 것만 같았다.
모니터의 조용한 메신저를 훑어보던 김민아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20분 뒤면 점심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20분이 이렇게 길어서야.
끄응, 한숨을 쉬던 그녀의 눈이 키보드 옆 잡지로 향했다.
헌터가 나타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월별로 엮어 내는 헌터 잡지, 헌팅헌터였다.
보통 월말 25일에 출간되지만, 이번 달은 엄청난 이슈가 터진 탓에 특별집이 출간되었다.
그 주인공은 신생 헌터 우도현. 그리고 빌런킹 채근석.
1위 자리에서 물러난 차도식 헌터의 인터뷰까지.
발 빠르게 출간한 건 좋지만, 평소 가격의 두 배라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그래서인지 두께는 두 배지만.’
기사와 증권사 지라시 같은 이야기가 대부분이긴 해도 이번 특별집 판매 부수는 올해 총 판매 부수를 넘어섰다는 말도 있었다.
특히 잡지에 실린 차도식의 인터뷰가 압권이었다.
[저는 우도현 헌터를 신으로 모시는 우도현교의 독실한 신도입니다. 저는 처남님… 아니, 우도현 헌터님을 옆에서 보필할 것입니다!]
우도현교라니!
순식간에 퍼진 그 이야기로 현재 우도현교라는 팬 카페가 만들어졌다.
당연하게도 차도식 헌터가 회장을 맡고 있다.
김민아 자신도 신도가 되었다. 아직 초급 사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멋지다.’
그녀는 특별집 표지에 찍힌 우도현을 보며 몽롱해진 눈으로 얼굴을 붉혔다.
차가우면서도 무덤덤한 표정과 우수에 젖은 눈빛. 그리고 머리와 눈 색에 맞춘 올블랙 헌팅 웨어.
‘이게 헌터 웨어 장인이 만든 스페셜 넘버 제로라던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옷이지만 대(大)블랙홀의 장남이니 이 정도는 입어 줘야 급이 맞다.
거기에 테이밍 몬스터인 붉은 원숭이 토토와 거대 흰족제비 모르달까지.
둘 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5급 헌터와 동급의 전투력을 갖고 있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다.
“그럼 뭐해, 이렇게 귀여운데!”
특히 모르달은 한국인처럼 말도 잘했다.
이미 국내 여성들 대부분은 우도현과 그의 테이밍 몬스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김민아는 작게 꺄아, 비명을 지르며 표지에 얼굴을 문질렀다.
‘아아, 정화된다.’
그녀의 소소한 취미 생활은 막 출입구에서 들어온 한 사람에 의해 깨졌다.
“저기요.”
“예, 예, 예?! 어, 어서 오… 헉!”
도현은 요리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을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여직원을 보며 당황했다.
‘남자였지 않나?’
일주일 전 상담받았던 실장은 어디 가고 처음 보는 여직원이 눈을 부릅뜬 채 자신만 보고 있는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오늘부터 수업한다는 문자 받고 왔는데요.”
도현은 그날 받았던 임시 수강증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수강증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멍한 얼굴로 도현에게 물었다.
“우도현 헌터님……?”
“예?”
“꺄아아! 어떡해! 어떡해! 진짜 우도현 헌터야! 아니, 헌터님! 학학!”
‘미친 건가……?’
도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일주일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자서 몰랐지, 대한민국은 지금 우도현앓이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도현은 자신 앞의 김민아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는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한마디 해 버렸다.
“저기요.”
“네?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수, 수강하러 오셨다고 하셨나요?”
김민아는 떨리는 손으로 수강증을 받고 빠르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조금 전 무료함에 주리를 틀던 그녀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민혁이가 마치려면 10분 남았나?’
도현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며 수업 중인 실습실을 힐끗 봤다.
12시가 되기 10분 전.
도현의 수업은 1시였으나, 민혁이와 점심이라도 같이할까 싶어 붙잡는 5명을 외면하고 달려왔다.
그리고 저번에 꺼냈다 만 이야기도 매듭지어야 했다.
‘그건 먹었으려나 모르겠네.’
크로아 워프 때문에 서둘러 가면서 건넸던 작은 상자.
우황청심환 같은 환이 들어 있는데, 실제로는 마나를 빚어 농축시킨 것이었다.
일반인이 먹는다면 각성과 동시에 5급 헌터가 될 수 있고, 각성한 사람의 경우 그 체질과 특성에 맞춰 2단계 이상 더 강해질 수 있다.
만약 민혁이가 먹었다면, 당장에라도 헌팅에 뛰어들어도 될 정도.
‘아직 잠잠한 걸 보니 그냥 갖고 있겠네.’
성격상 그랬을 확률이 높지만, 어떻든 오늘 정리하면 될 일이었다.
‘뭘 좀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데, 뭐가 좋지?’
도현의 맛 기준으로 최고의 요리는 몬스터 고기로 직접 만든 요리였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 먹기엔 무리가 있으니, 차선으로 생각한 곳은 헌터 협회의 뷔페였다.
‘너무 자주 가서 조금 물리긴 하는데.’
그래도 거기만큼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곳은 없었다.
그런 즐거운 고민을 하던 도현은 모기 같은 여직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어― 우 헌터님?”
“예.”
“정말 죄송한데요… 지석환 셰프님이 수업을 연기하셨어요.”
“연기요?”
셰프가 수업을 연기한다고?
수업 대기라는 시스템도 말이 안 된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연기다.
차라리 수업을 취소하고 다른 학원을 알아볼까 하던 도현은 이어진 여직원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분이 헌터로도 유명하신데, 이번에 식재료를 구하러 워프에 가셨거든요. 근데 이틀 정도 더 걸리시나 봐요.”
‘헌터? 식재료?’
도현은 생각에 잠겨 여직원이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빌려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가 요즘 빠진 몬스터 요리의 실마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얼마나요?”
“예? 아, 일주일이요. 대신 수강생 전부 전액 무료라고…….”
한 달에 100만 원이라는 엄청 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한 번 수업을 진행하면 3개월 이상 등록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안 받겠단다.
도현은 그런 혜택보다 헌터라는 지석환 쉐프가 궁금해졌다.
‘어차피 워프도 다녀와야 하고.’
나쁘지 않다. 어차피 오늘 수업을 들으면 최소 한 번은 빠져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예, 그럼 일주일 뒤에 오면 됩니까?”
“네! 일주일 뒤, 시간은 오후 1시 그대로예요. 수강증은 임시 수강증에서 확정으로 바꿔 드릴게요.”
그녀는 빠르게 빈 수강증을 꺼내 펜으로 적은 다음 도현에게 건넸다.
“다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현이 수강증을 가볍게 잡았다. 그런데 여직원이 수강증을 놓지 않았다.
도현의 눈동자가 김민아를 향하자,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저… 우 헌터님, 사, 사인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역시나 부담스러운 여직원이다.
“예.”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여직원은 눈에 빛을 내며 헌팅헌터 잡지에 펜을 올려 도현 앞에 바쳤다.
도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잡지 표지에는 심드렁한 자신과 방정맞게 웃는 모르달, 또롱또롱한 눈으로 웃는 귀여운 토토가 찍혀 있었다.
크로아 바위산 워프에서 나오자마자 인터뷰 요청 때 찍힌 사진 같았다.
‘이런 사진을 잘도…….’
불쾌했지만 얼굴을 굳히진 않았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힘 때문에 애먼 사람, 잡아서는 안 되니 말이다.
‘헌팅헌터라고?’
항의를 다짐하며 도현은 대충 이름을 휘갈겨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자마자 학원 내에 벨이 울리며 조리실 문이 벌컥 열렸다.
“어? 현이?”
“우, 우도현?”
“우도현 헌터다!”
“꺄아악! 우도현 헌터님!”
처음으로 나온 민혁이 도현을 보고 얼떨떨해했다.
도현은 주변의 웅성거림을 무시한 채 민혁을 보며 씩 웃었다.
“잘 지냈냐?”
“세상 뒤집어 놓고 잠수타더니, 오늘은 수업이라 왔어?”
“어. 그런데 셰프가 헌팅한다고 수업을 연기했어.”
“연기? 혹시 지석환 셰프야? 그 셰프 수업 도중에 통보 잘하는데. 뭐, 그래도 헌터라서 그런지 인기는 좋더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리실을 나오는 사람마다 비명을 질러 대 학원이 떠나갈 것 같았다.
민혁은 난처하게 웃으며 도현에게 물었다.
“인기인이라 이제 쉽게 다니지는 못하겠네. 뭐 먹을래?”
같이 점심 먹자고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챈 민혁은 학원 출입구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도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민혁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오늘 시간 되냐? 오늘 나랑 데이트 좀 하자.”
“데, 데이트?!”
데스크의 여직원은 도현의 임시 수강증을 든 채 새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그 뒤로 학원은 여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민혁만이 떨떠름한 얼굴로 도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
“이게 네 차라고?”
요리 학원 지하에 주차한 도현의 차에 타며 민혁이 부러움을 담아 감탄했다.
“어, 택시 드론 타기 귀찮아서. 펫도 있고.”
“하긴, 부잔데 이 정도는 타야겠지. 부럽다, 부러워.”
도현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했다. 그리고 요리 학원으로 오기 전 사 둔 음료수를 민혁에게 건네면서 의자에 편하게 기댔다.
민혁은 차 내부를 기웃거리며 연신 나오는 감탄으로 마른 목을 축였다.
도현은 눈을 감은 채로 민혁에게 물었다.
“너 내가 준 건 어떻게 했어?”
“어, 그거? 그냥… 가지고 있지.”
“먹으랬잖아.”
잠깐 말없이 음료수만 들이켜던 민혁은 원샷으로 마신 뒤 투덜댔다.
“인마, 내가 아무리 무늬만 각성자라 해도 그게 범상치 않은 거라는 건 알거든?”
“그럼 당연히 먹었어야지.”
“……너랑 기브앤 테이크 관계 되고 싶지 않다. 새꺄.”
도현은 창밖을 보며 투덜대는 민혁의 뒤통수를 빤히 봤다.
귀까지 붉어진 걸 보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나 보다.
‘그래, 이런 녀석이었지.’
고생해서 그런지 더 좀생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성격은 여전했다.
“5년 치 생일 선물이라고 했잖아.”
“개소리하고 있네. 이거 팔기만 해도 10억은 받겠다.”
사실 부르는 게 값이긴 했다. 권력가들 손에 들어간다면 100억도 부를 물건이다.
“그럼 팔든가.”
“어후, 내가 말을 말아야지.”
성질을 내는 모습이 뭐랄까, 정말 짜증이 났다기보다 역시나 과분해서다.
“내 말이.”
한마디 덧붙이니 발끈해서 뭐라 하려던 민혁은 신경질적으로 의자에 퍼질러졌다.
그가 힘겹게 입을 뗐다.
“솔직히 고맙다. 아직 빚도 남았고 집도 엉망이고, 큰돈 벌려면 결국 헌터밖에 없는 건 아는데, 좋다고 덥석 받는 것도 솔직히 속물 같고. 먹고 막상 헌터가 된다고 생각하니… 무섭더라.”
침을 꿀꺽 삼키더니 깊은 한숨과 함께 팔로 눈을 가렸다. 민혁의 입에서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헌팅이라는 거, 결국 목숨 걸고 싸우는 거잖아. 까짓것 돈 벌다 죽는 건 상관없는데, 나 죽으면 우리 엄마는 어쩌냐?”
순간 도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겨진 가족. 민혁은 아버지를 보내고 그 슬픔을 뼈저리게 겪은 사람이다.
침묵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픽 웃은 민혁은 습기 가득한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 그렇게 원하던 헌터가 될 수 있는데, 돈방석에 앉아 울 엄마 호강시켜 줄 수 있는데! 무슨 개소리를 해 대는지, 나 찌질하지 않냐?”
“어, 존나 찌질해.”
“새끼, 이런 것도 친구라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피식피식 웃어 댔다.
도현은 웃음을 멈추고 아직 눈을 가리고 있는 민혁에게 말했다.
“너 안 죽어.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웃던 민혁의 입이 일자로 다물렸다.
“정 무서우면 나랑 팀 짜든가. 같이 돌아다니면서 보고 선택해. 그래도 무서우면 뭐 그냥 내 팀에서 찌끄레기나 줍든가.”
민혁은 와락 찌푸린 얼굴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새끼 찌끄레기라니. 내가 청소부냐?”
“그게 주먹만 한 다이아라면?”
“아이고, 평생 찌끄레기나 줍고 다니겠습니다.”
굽실굽실 허리를 숙이던 민혁은 도현과 동시에 파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먹어.”
“어? 지금?”
“어. 도착하기 전에 끝내야지.”
“어디 가는데?”
“있어, 좋은 데.”
도현의 의미심장한 말에 민혁은 일주일간 부적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작은 환을 꿀꺽 삼켰다.